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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쪽같던 달도, 금싸락을 쥐여뿌린듯 무수히 반짝이던 뭇별들도 이미 꿈나라로 간지 오래다. 하늘에는 오직 새별만이 남아 유난히 밝은 빛을 뿌리고있다.

선대확장공사장에서 조선공들과 함께 밤새 일한 리윤종은 사무실에서 출근시간까지 한두시간 눈을 붙이려고 청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그는 2층 최주식의 방창문을 바라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청사의 방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는데 유독 최주식의 방에서만 불빛이 환하게 흘러나오고있다. 며칠밤 보는 불빛이다.

오늘도 문을 걸고 밤을 새우는가?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안되겠군. 이제라도 좀 쉬게 해야지.

리윤종은 청사를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문을 잠궜으면 두드리고라도 열판이다. 그는 최주식의 방앞에 이르자 살그머니 문을 당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이 소리없이 스르르 열린다. 아마도 오늘은 문잠그는것을 깜빡 잊은 모양이다. 방안에 들어선 리윤종은 한여름의 이른아침 해변가에 낀 짙은 안개마냥 뽀얀 담배연기에 숨이 막히고 눈이 쓰렸다.

원, 사람두. 무슨 담배를 이렇게 지독스레 피웠담.

한마디 하려던 그는 앞상에 올려놓은 팔굽에 이마를 대고 코를 드렁드렁 고는 최주식을 보자 가벼운 걸음으로 환기창과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방에 갇혀있던 연기가 밖으로 앞다투어 빠져나간다.

리윤종은 최주식의 곁으로 갔다.

꽁초가 골똑한 커다란 사기재털이안에서는 최주식이 금시 잠들었음을 실증해주듯 다 탄 담배가 파르스름한 연기를 모록모록 피워올리고있다.

리윤종은 최주식의 머리맡에 놓인 자그마한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수첩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가 적혀있었는데 ① 1 000t급이상의 큰 배무이, 10 000t급, 100 000t급 대형선박이라고 쓴데는 빨간 원주필로 네모칸을 그렸으며 ② 설계사업소와 조선소의 통합 ③ 선대확장공사라고 쓴데는 동그라미와 감탄표가 쳐있다. ④ 기중기제작이라고 쓴 밑에는 붉고 푸른 색으로 여러번 덧줄을 그어놓았으며 그뒤에는 물음표가 여라문개나 쳐있다. 수첩옆에는 아직은 도면이라고 말할수 없는 그림종이들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널려있다. 그런데 그 종이장들엔 토막식, 지상확대식이란 글자가 겨우 알아볼수 있게 란필로 써있다.

교시수첩과 최주식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가 깃든 종이장들을 들여다보는 리윤종의 눈굽은 저도 모르게 화끈 달아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관철을 위해 낮에는 현장에서, 밤에는 자기 사무실에서 전쟁시기 당한 부상도 아랑곳없이 꼬박 새우고있는 최주식이였다.

사업의욕과 열정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

리윤종은 자기의 작업복을 벗어 최주식의 어깨에 씌워주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최주식이 언제 코를 골며 자던 사람인가싶게 머리를 들며 눈을 번쩍떴다.

《아, 당위원장동무군요.》

《쪽잠을 깨워서 미안하오.》

리윤종은 벌겋게 충혈이 진 최주식의 눈을 보며 죄송스레 말했다.

《쪽잠이라니요? 실컷 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문을 잠궜댔는데…》

최주식의 목소리는 명랑했으나 그속에는 의문이 실려있었다.

리윤종은 사실대로 말할가 하다가 슬쩍 에둘렀다.

《기사장동무는 날 아직 모르는군요. 나에겐 문여는 재간이 있답니다. 〈천하루밤이야기〉에 나오는 알리바바처럼 주문을 외우면 그 어떤 문이든 쫙 열리지요.》

《그처럼 신통한 재간을 가지고있는걸 여적 몰랐군요.》

최주식은 큰소리로 말하며 소리내여 웃었다.

리윤종은 최주식이가 며칠밤 고심하며 연구하던 문제를 일단 매듭지었음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새 어떤 좋은 안을 생각해냈습니까?》

그 말에 최주식은 의외에도 얼굴을 붉히였다.

《당위원장동무, 부끄럽습니다. 수령님께서 기중기를 크게 만들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이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

《수령님께서 기중기를 크게 만들라고 하신 말씀은 새형의 큰 배를 뭇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거야 물론이지요.》

《그런데 난 그 말씀에 담긴 그이의 깊은 뜻을 몰랐댔단 말입니다. 교시의 자자구구를 따져가며 연구해보니…》

(그래서 ④ 기중기제작이라고 쓴 밑에 덧줄을 긋고 그뒤에 십여개의 물음표까지 쳐놓았었구나.)

리윤종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최주식이 말을 이었다.

《수령님께서 기중기를 크게 만들라고 하신 말씀에는 우리 조선공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며 우리 나라 선박공업을 보다 빨리 발전시킬 원대한 뜻이 담겨있더란말입니다.》

《…》

《한마디로 말하면 배토막을 땅우에서 크게 만들어 척척 조립해야 한다는거지요. 그러면 일은 헐하게 하면서도 배무이속도는 몇배나 빨라지게 됩니다.》

《!》

《그 방법에 이름을 붙이면 〈지상확대식배무이조립방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뭡니까?》

《수령님의 그 깊으신 뜻을 내가 왜 이제야 깨닫게 되였는지… 선박전문가라는게… 참 한심하단말입니다.》

《!》

리윤종은 최주식의 자책어린 말을 들으며 감심했다.

수령님의 의도와 구상을 뒤늦게 알았다고 가책하는 일군, 수령님의 교시를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 철의 신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일군,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해 분과 초를 쪼개가며 아글타글 애쓰는 일군! 바로 이런 일군이 우리 당이 바라고 우리 혁명이 요구하는 우리 시대 일군의 참모습이 아니랴!

리윤종은 가슴속에 그들먹히 차오르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최주식의 손을 꽉 잡았다.

《기사장동무, 수고했습니다.》

《수고는 무슨…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는데요.》

최주식은 눈을 슴뻑이며 진정을 담아 말했다.

이런 최주식에게 강준호를 비롯한 일부 일군들이 골을 앓게 만들다니…

리윤종은 조선소에서 내보낸 사람들을 모두 데려오면 좋겠다고 한 최주식의 말을 듣고 노발대발했다는 강준호가 고깝게 생각되였다.

계획된 날자에 선박을 기어이 무어내려고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는 최주식기사장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괴롭히지 말도록 해야 한다.

리윤종은 앞으로 최주식을 더 잘 도와주어야겠다고 내심 굳게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이제라도 눈을 좀 붙이시오.》

최주식은 그 말에 펄쩍 뛰였다.

《당위원장동무는 날 잠꾸러기로 만들 작정입니다. 좀전에 보다싶이 난 한잠 달게 잤습니다. 이제 현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참모일군들이 출근하면 〈지상확대식배무이방법〉을 토론하겠습니다. 당위원장동무나 좀 쉬십시오.》

정말이지 불덩어리같은 사람이군! 아니, 불덩어리야!

리윤종은 속으로 재삼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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