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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령롱한 빛을 뿜을것 같던 뭇별들은 자정이 넘어서자 졸음에 못이겨 깜빡깜빡 졸고있더니 밤 3시가 넘어서서는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서산에 기운 반달과 몇개의 크고 작은 별들만이 우주공간에 희미한 빛을 뿌리고있다.
맡은 일을 끝낸 강은주는 그제서야 조선소를 나서 합숙으로 뻗은 길을 걷고있었다.
여느때없이 세괃게 일을 했지만 오늘은 여간만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고 명랑하지 않았다.
한것은 선대확장공사의 일별계획을 배로 넘쳐해내였고 오늘 해야 할 진수대늘이는 작업도 밀물이 들어오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멋지게 해제끼였으며 오락회시간에는 김찬이와 부른 2중창이 예상외로 3청까지 받은때문이다.
더우기 그의 마음을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게 하고 눈굽이 찌르르하도록 감동시킨것은 기사장 최주식이며 당위원장 리윤종, 생산부기사장 리억석, 선박완성직장의 김석홍아바이를 비롯한 기업소내 일군들과 다난한 세파속에서 의지가 강철로 벼려진 로세대들이 피가 끓고 기운이 세찬 돌격대원 젊은이들과 한데 어울려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한것이였다.
이것은 비단 오늘 하루에 국한된 일이 아니였으나 긴장한 일별계획을 훨씬 넘쳐하고보니 환희의 웃음집이 저절로 흔들거렸고 보는것, 듣는것이 그저 통쾌하기만 했다.
강은주는 조선소에서 비록 몇달밖에 일하지 않았으나 마치도 수십년간을 일한 사람마냥 배뭇는 일이 더없이 마음에 들었고 조선소일군들과 조선공들이 친동기마냥 정겹고 살틀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제와서 그는 조선소를 떠나 한시도 살것 같지 않았다.
내가 평양에 자리를 잡아주겠다는 강준호삼촌의 권고를 마다하고 조선소로 온것은 정말이지 잘한 일이였어. 다른 모든 일터도 그렇겠지만 조선소야말로 한생을 고스란히 바치며 긍지높이 일해갈만 한 곳이야.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춤추듯 합숙으로 걸음발을 옮기는 강은주의 눈앞에는 웬일인지 불쑥 김찬의 모습이 안기여왔다.
장미빛 아침노을이 거대한 화폭마냥 하늘에 장엄하게 피여날 때나 바다바람이 뭍으로 시원하게 불어올 때, 혹은 기쁨이 샘처럼 솟구칠 때나 어쩌다 크지 않은 괴로움이 번민을 안고 찾아올 때면 느닷없이 그가 문득문득 생각키웠는데 그것은 자기도 걷잡을수 없는 야릇하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글쎄 김찬이란 청년이 도대체 자기에게 뭐란말인가.
제대군인답지 않게 매사에 수집음을 타는 그였고 처음 상대했을 때는 착하고 온순한 본연의 자세를 깡그리 잊고 자기를 철새라고 부르면서 조선소를 떠나 언제 날아갈 심산이냐고 시까스르기까지 한 희떠운 김찬이였다.
더우기 보통키에 그리 남자싸게 생기지도 못한 그가 아닌가.
한데 그런 김찬이가 어찌하여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날이 흐를수록 자기의 마음을 그리도 끌어당기는것일가.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그는 뭇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인간이기도 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받들고 종업원궐기모임을 한 날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던 그의 불같은 모습이며 새형의 선박을 만드는 나날에 꼭 청년영웅이 되자고 신심에 넘쳐 하던 그의 말 그리고 복잡하고 힘에 부치고 어려운 선대확장공사를 책임지고 군사령관처럼 능숙하게 지휘하는 담찬 그 자세…
그러고보면 김찬은 결코 어리숙하거나 속통이 쪼물짝한 청년이 아니였으며 속대가 굳고 도량이 넓고 리상과 포부가 큰 어엿한 청년이였다.
강은주는 자기가 해빛을 받아 반짝이며 흐르는 시내물이라면 그는 지심깊은 땅속을 소리없이 줄기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아닐가고도 생각을 했다.
참, 우스운 일도 다 있지. 그가 지심깊이 줄기차게 흐르는 물줄기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단 말야.
내가 그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할 근거가 뭐람.
무한대한 창공을 거침없이 나는 새마냥 기쁨과 반신반의의 세계를 자유롭게 날아예던 강은주의 사색은 《은주 아니냐?》하는 합숙 경비원아주머니의 친절하고도 상냥한 물음에 끊어지였다.
어느사이 합숙정문에 이른것이였다.
《수고하시는군요.》
강은주의 인사에 나이가 지긋한 경비원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불빛이 환히 내비치는 경비실의 뙤창문을 열고 한장의 편지를 내밀었다.
강은주는 편지를 받아들자 발신인의 주소와 성명을 읽어보았다.
삼촌 강준호에게서 온것이였다.
《고마와요.》
강은주는 나비형 맞물리개가 달린 자그마한 밤색 손가방을 열고 편지를 넣고나서 2층에 있는 자기 호실로 올라갔다.
호실문을 여니 어둠에 잠긴 방안에서는 한발 먼저 들어온 박성임의 피곤에 다몰린 숨소리가 고즈넉한 정적을 깨뜨리며 가느다랗게 울리고있다.
강은주는 단잠에 든 박성임이 깨여날세라 발끝걸음을 걸어 자기의 침대곁으로 가자 책상우의 탁상등을 켰다. 그리고는 가름옷을 입고 책상앞 의자에 단정히 앉아 강준호가 보낸 편지의 겉봉을 가위로 살짝 자른후 속지를 꺼내 입속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조카 은주에게.
그동안 몸성히 잘 있느냐? 횡진수대건설 공사와 선박건조의 료해지도차로 당분간 지방에 나가있어야 하겠기에 몇자 적어보낸다.》
서두를 이렇게 뗀 강준호는 돌격대에 망라되여 얼마나 수고하느냐. 합숙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친절하게 묻고나서 평양에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놓았으니 지방에 갔다와서 직장을 옮기게 하겠노라고 썼다. 계속해서 강준호는 무역성지도원으로 일하고있는 청년이 수일내로 그곳에 출장을 가는데 잘 맞아주라고 력점을 찍었다.
《이태전에 대학을 나온 그는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민족보위성에서 중책을 맡고 일하는 사람이다.》
강준호는 무역성지도원을 하는 청년에 대하여 극구 칭찬하고나서 최주식과 강은주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하여 푸념과 원망과 자책을 여름날 뙤약볕에 늘어난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놓았다.
《…
현장에 나가겠다는 너의 옹고집을 낫으로 풀대 베듯 무자비하게 잘라버리고 싶었다만 못이기는 척하고 응한것은 실상 그곳 조선소기사장 최주식을 너의 배우자로…》
여기까지 읽고난 강은주는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편지를 휴지장처럼 와락 구겨버렸다. 자기를 믿고서 쓴 편지이고 자기를 끔찍이도 생각해서 보낸 편지였지만 그는 강준호의 편지가 역겹기 그지없었다.
내가 조선소로 내려오는데 응한것이 바로 그런 리기적인 목적에서였단 말이지.
강은주는 북받치는 격분과 울분, 타드는 괴로움을 도저히 묵새길수 없어 일기장을 펴놓고 자기의 심정을 냅다 쓰기 시작했다.
《1965년 4월 3일 맑음.
조선소정문을 나설 때는 몸이 날듯이 가벼웠는데 합숙에 와서 삼촌의 편지를 받아본 후엔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다. 지난날 내가 그리도 존경하던 삼촌의 사고가 고작 그 지경이란 말인가.
나를 평양의 좋은 일자리로 옮기겠다? 그리고 무역성지도원을 하는 청년을 택해놓았다?…
삼촌이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있지 않는가.
그건 그런대로 참자. 내 생활과 직접 관련된것이니까. 하지만 최주식기사장에 대하여 한 말은 참을수가 없다. 기사장으로 내세워주었더니 사람이 영 달라졌다구? 제 주장만을 내세우던 나머지 이제 어떤 일을 빚어놓을지 모른다구?
삼촌은 너무하다. 잘 안된 일이면 진심을 터놓고 바로잡아야지 모르쇠하겠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내 생각엔 삼촌이 최주식기사장의 절반만큼이라도 일에 대한 전개력과 투신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쟁시기 부상당한 몸도 개의치 않고 진수대확장공사장으로 질통을 지고 뛰여드는 최주식기사장, 화선에서 약속한 애인을 여직껏 기다려 병약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혼자있는 기사장, 구내길을 걷다가도 용접봉꽁다리나 철판쪼각을 보고는 반드시 파철더미에 가져다놓는 기사장…
정말이지 우리 최주식기사장은 어느모로 보든 훌륭한 사람이다. 정열적인 일군이다.
그런 사람을 달라졌다고 하다니?… 내가 보건대 달라진건 최주식기사장이 아니라 자기가 없으면 배를 뭇지 못할것처럼 여기는 강준호삼촌이다.》
강은주는 쓰던 펜을 멈추고 어둠의 깃없는 장막이 짙게 덮인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마음은 그저 한대중으로 괴롭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