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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건물로 된 설계사업소(선박설계연구소는 조선소와 통합된 후 설계사업소로 명칭이 바뀌였다.)는 조선소의 정문밖 련화봉 동쪽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최주식은 설계사업소에 들어서자 선체설계실, 기관동력설계실, 전기설계실 등 설계실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어느 설계실이나 할것없이 전투가 맹렬히 벌어지고있었다. 설계실에서의 전투란 선대확장공사장이나 조선공들이 일하는 현장과는 달리 최대의 정숙이다.

해빛이 다양하게 비쳐드는 방에서 남녀설계원들은 설계탁앞에 단정히 앉거나 서서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설계를 하고있다. 경사를 이룬 설계탁에는 설계도면이 펼쳐져있는데 그우에 삼각자와 T자를 대고 속이 가느다란 연필을 긋는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치며 사각사각 들릴뿐이다.

최주식은 흡족한 마음으로 4층 맨끝에 있는 설계장 곽용주의 방으로 갔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던 그는 안에서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온곱지 않은 말소리에 잠시 주춤거렸다.

이 사람들이 다투는게 아닌가.

그는 손기척소리를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보통키에 몸이 갱핏한 설계장 곽용주와 키가 크고 얼굴이 허여멀끔하며 뚱뚱한 선체실장 허홍대가 례의를 차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곽용주는 간밤도 꼬박 밝혔는지 정기가 차넘치던 눈엔 피발이 서고 입술에는 보풀이 일었는데 살집좋은 허홍대는 얼굴색이 불깃불깃하고 번지르했다.

《왜들 그러오?》

최주식은 소닭보듯 하고 서있는 그들에게 누구라 없이 물었다. 곽용주는 입을 꾹 다물고 서있는데 턱에 군살이 진 허홍대가 벌개진 뺨을 슬슬 문지르며 불평조로 말했다.

《기사장동지, 선체설계가 일정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한다고 설계장동무가 다긋는데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놀길 합니까 어쩝니까. 처음 해보는 새형의 선박설계인데다 설계원은 적고 일감은 가량없이 많은데 이이상 어떻게 더 빨리 합니까. 빨리 설계를 하려면 설계원을 보충해줘야 할게 아닙니까.

오늘 아침 강준호국장한테서 설계가 지금 어떻게 진척되고있는가를 물어왔기에…》

《그래 뭐라고 했소?》

최주식이 물었다.

《실태를 그대로 말했지요. 설계량은 방대하고 설계력량은 딸리는데 냅다 다긋는다고말입니다. 더우기 구내도로확장공사에 설계원들이 나갔다가 독감에 걸려 우리 선체실에서만도 두명이나 결근을 해서 가뜩이나 긴장한 일이 더 긴장하다구요. 그러니까 그의 말이 설계를 신중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합디다. 우에서도 그러는데 이건 도무지…》

허홍대의 푸념에 곽용주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두었는데 얼굴근육에 파르르 경련이 일고 입술이 몹시도 실룩거렸다. 속이 언짢을 때 하는 그의 버릇이다.

허홍대는 최주식을 흘끔 보더니 곽용주에게 눈길을 돌렸다.

《설계장동무, 일이 급하고 긴장한걸 낸들 왜 모르겠소. 하지만 욕망만으로야 안되지 않소. 실은 나도 속이 여간만 타질 않소.》

그리고는 다시 최주식이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기사장동지, 제발 다른 설계실에서 설계원을 다섯명만 좀 조절해주십시오. 그러면 냅다 밀어 계획된 날자에 설계를 내놓겠습니다.》

최주식은 체통이 큰 허홍대가 우는 소리를 할수록 기가 차고 억이 막혔으며 지어 역스럽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어성을 높일수도 없어 낮으나 엄하게 잘라 말했다. 국장은 거들지 말라. 국장도 설계를 다그치면서 실수 없이 하라고 하는거겠지 아무러면 무턱대고 늦잡으라는 말이겠는가. 그리고 설계원은 다른 실에서 조절해넘길수 없다. 모든 설계실에서 긴장한 전투들을 하고있는데 다른 전선에서 전투원을 빼내오면 그 전선은 어떻게 되겠는가. 힘에 부칠테지만 어떻게든 자기 초소는 자기가 지켜내야 한다.

허홍대는 기사장 최주식의 립장이 설계장 곽용주와 미리 약속이나 한것처럼 일치함을 느끼자 문가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렇지만…》하고 말꼬리를 달았다.

최주식은 그의 요구에도 일리가 있음을 충분히 납득하고있었으나 실장으로서의 태도가 너무나도 불만스러워 그를 불러세웠다.

《그렇지만 뭐요?》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멘다는겁니다.》

《목이 멘다?》

최주식은 허홍대를 아니꼬운 눈길로 흘겨보았다.

《실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확신없이… 그래 동문 설계가 선박건조의 첫공정이란걸 모르오? 선체설계에서 하루 드티면 다른 공정에서는 며칠이 드티게 된다는걸 모르는가말이요. 더우기 실장동무가 그런 립장과 관점에 서서 우거지상을 하고다니면 아래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소? 일이란 생각하기 탓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어려워보이고 하자고 달라붙으면 묘수가 생기는 법이요. 우리 신심을 가지고 해봅시다. 그럼 가보오.》

《…》

허홍대는 여전히 찌푸둥한 낯으로 대답없이 방을 나간다.

최주식은 잠시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여물었다. 그의 안타까움을 말해주듯 입과 코로는 청솔을 땐 굴뚝에서마냥 담배연기가 짙게 쏟아져나온다.

《설계장동무, 다른 실들에서는 어떻소? 선체실장동무와 같은 의견이 많이 제기되오?》

그제서야 곽용주는 빗장을 지른듯 꾹 다물고있던 입을 연다.

《설계원이 모자라는걸 모두들 뻔히 알고있지만 제기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설계원이 갑자기 어데서 나올수 없다는걸 리해하고있기때문이지요. 2척기선저예망선이나 설계하던 인원으로 종전의 7~8배에 달하는 큰 배를, 그것도 처음으로 뭇는 큰 배를 석달안으로 설계하자니 왜 힘에 부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일감은 방대하고 아름찹니다. 그러나 설계원들의 기세는 대단하지요. 한 설계원이 두몫, 세몫을 담당하고 윽윽 내밀고있습니다. 지금 거의 모든 설계원들이 침식을 설계사업소에서 하고있습니다. 단지 저 허실장만이 우는 소리를 할뿐입니다. 그러나 기사장동지, 마음놓으십시오. 그도 해낼겁니다. 전투명령을 받은 전사들이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지휘관이 그자리에 서있을수는 없으니까요.》

최주식은 어떻게든 자기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곽용주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훗훗하게 달아오르면서 코마루가 찡해졌다.

《설계장동무, 좋은 말을 들려주어 정말 고맙소.》

하지만 그는 설계사업소뿐아니라 조선소내 그 어디서나 기술일군은 물론 급수 있는 제관공과 배관공, 용접공과 목공 등 일감을 한몫 맡아 당당히 해제낄수 있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부족한데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원료나 자재, 설비같은것은 사람문제에 대비할수도 없었다. 기술일군은 한두달, 아니 한두해 키워서 풀릴 문제가 결코 아니였다. 그렇다면 사람문제, 기술일군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것인가.

최주식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귀따갑게 울리였다. 곽용주가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설계장 곽용주입니다. 기사장동지요? 예, 여기 계십니다.》

곽용주는 최주식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기사장 최주식 전화바꾸었습니다. 예? 국장동지라구요? 국으로? 새형의 선박건조계획서를 가지고 오늘 올라오란말입니까? 한데… 오늘은 안되겠습니다. 며칠간 더… 예 알겠습니다.》

최주식은 송수화기를 놓자 곽용주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설계실을 나섰다.

웬일인지 머리도 마음도 발걸음도 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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