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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식은 기술발전실에서 그곳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를 깊이 학습하면서 찾아낸 예비탐구안들, 소형압축기와 플라즈마절단기도입문제며 동선재생기와 미분탄용선로도입문제, 못프레스와 구출기문제, 멜라멘수지라크와 원삭지목삭판도입안들을 장시간에 걸쳐 토론해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여물고 책상우에 놓인 나무함의 2를 들여다보던 그는 강은주, 홍학주라고 쓴 글이 눈에 띄자 그들을 언제까지나 그자리에 둬둘 작정이냐던 강준호의 노염섞인 말이 떠올랐다.
우선 은주와 학주를 만나봐야겠군.
최주식은 현장으로 나가기에 앞서 오늘 제기된 문제들이 어떤것인가고 주병삼에게 전화로 물었다.
주병삼은 축가공능력이 딸려 생산부기사장이 기계가공직장으로 나갔으며 배관공 김찬이가 배관길이를 줄이면서도 종전의 능력을 낼수 있는 새 방법을 찾아냈는데 담당지도원이 나와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제기를 해와서 선우동무가 2척기선저예망선 3호선으로 반시간전에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소한것들은 자기가 처리했다고 대답했다.
최주식은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크고작은것을 가리지 말고 만사를 제껴놓고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한다고 이른후 방을 나섰다. 선박완성직장에 이르니 조선공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를 높이 받들고 드높은 열정에 넘쳐 일하고있었다.
(김찬이가 가치있는 창의고안을 했다는데 거기부터 들려봐야겠군.)
최주식은 이렇게 생각하며 완성단계에 들어선 저예망선 3호선의 배관작업장으로 내려갔다. 김찬을 비롯한 배관공들이 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갸름한 생산부의 선우지도원둘레에 어깨성을 쌓고 도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래 어떻소? 됨즉하오?》
최주식이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누구에게라없이 묻자 선우지도원이 웃음을 담뿍 머금고 대답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김찬동무가 큰 일을 했습니다.》
《어디 좀 보기오.》
최주식은 배관공들이 자리를 틔워주는 짬에 들어가 도면을 들여다보았다.
거미줄보다 더 조밀한 배관도의 한부분에 붉은 연필로 동그랗게 표시를 해놓은것이 시선을 끌었다. 최주식은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가지고 그 부분의 용량을 계산해보았다. 얼핏 스쳐 한 계산과 종전의것을 대비해보니 별반 차이가 없다.
최주식은 환히 웃으며 김찬의 기름묻은 손을 잡아흔들었다.
《김찬동무, 수고했소. 꿩먹고 알먹을수 있는 신통한 안을 찾아냈구만. 이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높은 긍지와 책임감이 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요.》
김찬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다.
《선우동무, 선박설계연구소에 이 도면을 들고 가서 제꺽 토론을 하고 오시오.》
최주식의 말에 선우는 머뭇거렸다.
《왜 그러오.》
《기사장동지, 오늘중으로 토론이 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업소가 다르고보니 몇분이면 될 일을 가지고도 며칠씩 걸릴 때가 드문합니다.》
최주식은 머리를 끄덕였다. 선우의 말이 사실인 까닭이였다. 조선소를 위해 존재하는 선박설계연구소가 틀림없었으나 기관이 서로 다른것으로 하여 일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설계연구소에서 친 도면이 현장에 내려와 수정되는것이 적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조선소에서 애를 먹군했다.
《내 설계연구소 소장동무한테 전화를 걸겠소.》
《알겠습니다.》
선우는 도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최주식은 배관공들과 몇마디 얘기를 나누고나서 강은주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강은주는 저예망선 5호선에서 기관실내부 도장작업을 하고있었다.
최주식이 도장공들에게 수고들 한다고 모두걸이로 인사를 건늬자 웃고 떠들며 도장작업을 신이 나서 해대던 그들은 하던 말과 웃음을 뚝 그치고 《기사장동지, 안녕하셨습니까?》하고 합창이나 하듯 대답했다. 무슨 재미나는 얘기를 하댔는가고 최주식이 물었다. 그러자 한씨가 싱글거리며 난쟁이얘기를 반장이 해서 웃었다고 했다.
《난쟁이얘기라니요?》
《글쎄 키다리가 난쟁이를 자기 어깨우에 올려놓았더니 난쟁이가 〈여 키다리, 내가 자네보다 더 크니 이제부턴 나를 형님으로 부르라구.〉라고 으시댔다질 않수. 원 세상에,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질 말이 아니우.》
《거 황새가 붕어배안에 들어가 죽게 된 메뚜기를 살려주니 메뚜기가 체면두 없이 〈어, 시원하다〉하고 말하며 이마를 쓸어올려서 이마가 쭉 벗어지고 그걸 보던 개미가 너무 웃어 허리가 잘룩해지고 황새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실룩거렸는데 부리가 삐죽해졌다는 얘기와 비슷하군요.》
《호호, 기사장동지는 우스운 말도 곧잘 하시네.》
도장공처녀들과 아주머니들이 입을 싸쥐고 깔깔거렸다.
최주식은 빙그레 웃으며 솜옷을 입어 어린애처럼 애되여보이는 강은주의 곁으로 갔다.
《은주동무, 힘들지 않소?》
강은주는 하던 붓질을 멈추고 무안스러운 기색으로 대답했다.
《처음하는 일이여서 좀 힘이 들어요.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최주식은 속심을 송두리채 털어놓는 이런 처녀와는 가식이 없는 진실만을 얘기해야 하리라고 단정했다.
《은주동무, 나 좀 봅시다.》
그는 강은주를 데리고 배에서 내려 도장작업반 휴계실로 갔다. 향수내가 가볍게 감도는 휴계실은 깨끗하고 정갈했다.
《은주동무, 국장동지가 동무의 직종문제를 두고 걱정하더구만.》
《저한테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강은주는 긴 속눈섭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그래 그냥 도장공일을 하겠소?》
그 말에 강은주는 내리깔았던 눈을 치뜨고 최주식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쩜 기사장동지가 그렇게 말씀하실수 있어요?》하는 속대사가 스며있었다.
《난 동무의 뜻대로 해주자는거요.》
최주식의 말에 강은주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삼촌이나 부직장장동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말고 절 여기에서 그냥 일하도록 해주세요. 전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도장공일이 마음에 든단말이예요.》
《!》
《기사장동지, 제 아까도 도장공일이 힘은 좀 들지만 재미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아무렴 제가 속에 없는 소리를 하겠어요? 이 일터는 제가 자진해서 온곳이 아니예요.》
강은주는 나직한 목소리를 바꾸어 열정적으로 말했다.
《…》
최주식은 강은주의 결심이 확고함을 재삼 느끼였다. 애인을 사랑하듯 자기 일터를 끝없이 사랑하는 처녀, 이런 처녀에게 직종을 옮기라고 자꾸 권고하는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간참으로 될것이며 그의 자존심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될것이라고 최주식은 생각했다.
《좋소. 동무의 결심에 나도 찬성이요.》
《고마와요. 제 심정을 리해해주셔서… 그럼 전…》
강은주는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사뿐히 일어섰다.
최주식이도 거쁜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앞으로 강은주를 사랑하는 청년은 참으로 행복할것이라고 여기였다.
《은주동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을 돌보면서 일하오.》
《알겠어요.》
최주식은 강은주를 바래주고나서 완성직장사무실로 갔다.
훈훈한 사무실에선 체소한 도면관리원아주머니가 찢어지고 보풀이 일고 기름이 얼룩이 진 도면을 정성껏 풀로 붙이고있었다.
《거참, 좋은 일을 하고있구만요. 부직장장동문 어딜 갔습니까?》
《현장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도면관리원이 일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례절바르게 대답했다.
최주식은 그더러 앉으라고 권하고나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여물며 도면관리원으로 일하는지 얼마나 되는가고 물었다.
《한 반년 됩니다.》
《반년이라? 그전엔 어디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저… 여기 선박완성직장에서 도장공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에 정신이 팔려 두메터도 안되는 발판에서… 그만 떨어졌습니다. 일이 안되려면 소발통자리에 괸 물에도 코를 박고 죽는다더니… 제가 그렇게 되였어요. 허리가 상했는데 아직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좀처럼 무거운 짐을 들수가 없어요. 그래서 도면을 관리하게 되였습니다.》
《그것 참, 안되였군요. 병원에는 다닙니까?》
《예.》
《치료를 잘 받아야 합니다. 내 언젠가 어느 외과의사를 만나 들은데 의하면 허리병이라는게 살아가는데서 여간 말째지 않다고 합니다. 남보기에는 꾀병같아도 보이고…》
최주식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강은주가 고맙게 생각됨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만약 강은주가 직종을 바꿔 이곳 도면관리원을 하겠다고 우둥뿌둥 고집해나섰다면 자기의 처지가 어찌될번 했는가. 그는 선뜩하는 마음속 느낌을 담배연기에 담아 내뿜었다.
《기사장동지, 허리병이 말째다고 하는 말이 정말 옳은가봐요. 손에 익고 눈에 익고 몸에 밴 도장작업을 하고싶어도 할수가 없으니말입니다.》
《도장공을 몇년이나 했습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구 조선소에 들어와서 17년간 줄곧 그 일만을 해왔습니다.
어떤이는 도장작업을 하찮게 여기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거 왜 옷은 날개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몸에 꼭 맞는 새옷을 산뜻이 차려입으면 사람의 인품이 돋보이고 우아해보이지요. 도장공이 없으면 누가 배의 새옷을 입히겠나요.
도장공들은 상갑판우에서 도장을 하다가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가지고 풍어기 날리며 들어오는 고기배를 바라보면 마음속 기쁨을 좀처럼 금치 못해한답니다.》
낮은 목소리로 사리정연하게, 마치도 버들개지 움트는 시절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며 정답게 흐르는 시내물소리처럼 조용조용히 하는 도면관리원의 진정이 스민 얘기는 최주식의 가슴을 쳤다.
남들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무한한 애정을 쏟아부으며 그 일에서 무상의 희열을 가슴뿌듯이 느끼는 소박한 도면관리원! 그는 진정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조선공인가.
《저… 얘기순서가 좀 바뀌였는데… 아주머니의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오옥주라고, 해요. 오옥주.》
《옥주아주머니, 빨리 허리병을 치료하고 몸에 밴 일을 맘껏 하기 바랍니다.》
최주식이 피워물었던 담배불을 사기재털이에 비벼끄는데 나들문이 열리며 찬바람을 앞세우고 홍학주가 들어왔다. 그는 최주식을 보자 일순 당황한 빛을 얼굴에 띄웠으나 곧 가무리고 머리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최주식은 가볍게 웃으며 어딜 갔댔는가고 물었다.
홍학주는 강준호를 바래주러 현장을 떴던 사실을 최주식이 어떻게 알랴싶어 김찬이가 창의고안을 했기에 그것을 토론해주느라 아까부터 배관장에 나가있었노라고 혀끝이 돌아가는대로 둘러대였다. 시침을 뻑 따고 하는 홍학주의 말에 최주식의 밝고 명랑하던 기분은 삽시에 잡쳐지고말았다.
사람이 생활하는 과정에 거짓말을 들을 때처럼 역겨운 일은 없다. 량심적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허위란것이 더더구나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참된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것이리라.
문득 최주식의 귀전에는 강준호가 홍학주를 두고 열차게 부르짖던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사람은 내가 이미 료해해봤소. 능력두 있고 내밀성두 있고… 사람이 정말이지 진국이요. 홍학주를 직장장으로 앉히면 일에 꼬물만한 랑패도 없을거요.》
한두차례의 일로 사람을 평가하고 속단하는것이 다시없는 금물임을 최주식이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홍학주를 두고 한 강준호의 장담과 력설은 그의 실망을 자아냈다.
최주식은 홍학주의 허위와 가식을 당장 까밝히고 다시는 자기앞에서 거짓말을 못하도록 단단히 면박을 주고싶었으나 방에 도면관리원이 있는것을 고려하여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그러느라니 직장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아 오손도손 일을 의논하고싶은 생각은 싹 사라졌다.
최주식은 직장에 걸린 문제가 무엇이냐고 몇마디 실무적으로 묻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렵니까? 담배 한대도 안피우시구…》
최주식의 심중을 모르는 홍학주는 정중한 기색을 띠우고 기사장이 인차 가는것이 섭섭한듯 크지 않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미 피웠소.》
최주식은 뱉듯 말하고는 외투깃을 바로잡으며 선박완성직장사무실문을 나섰다.
시원한 바다바람이 불어왔으나 그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강준호국장이 극구 칭찬하는 홍학주가 어째서 나에겐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을가. 혹시 내가 홍학주를 일면적으로 생각하는것은 아닐가.
머리를 수굿하고 걷던 최주식은 《기사장동무!》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들었다. 앞에는 병색이 짙은 지배인 홍연구가 서있었다.
《지배인동지, 퇴원했습니까?》
《퇴원은 무슨… 조선소가 보고싶어 잠시 〈탈출〉했소.》
빙그레 웃는 홍연구를 보는 순간 최주식은 자책으로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부임되여와서 병원에 한번 가보고는 여적까지 병문안을 간다간다하며 못가본 까닭이다. 그는 인간성을 일에 파묻어버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러고도 내가 무슨 일군이란말인가.
한편 그는 홍연구가 오죽 배뭇는 일이 걱정되였으면 입원해있는 몸으로 현장에 나왔을가싶었다.
《지배인동지, 병문안을 가보지 못하여 정말 미안합니다.》
최주식은 진정으로 사과했다.
《무슨 소릴? 오히려 내가 갓 온 동무의 어깨에 지배인의 짐까지 들씌워 죄송하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기사장동무가 배무이에 전심전력하는것이 더없이 기쁘오. 지난날 미진되였던 월계획도, 년간계획도 다 제대로 수행하고 신년사관철계획까지 빈틈없이 세웠다니 참으로 수고가 많았겠소. 그렇게 하는것이 병문안 오는것보다 나를 몇십배나 더 기쁘게 해준다는걸 명심해주오.》
최주식의 심장은 드세게 들먹였다. 홍연구의 인간됨이 가슴을 쳤다.
《…》
《기사장동무, 앞으로는 지금보다 큰 배를 무어야겠는데… 그러자면 고급기능공이 꼭 요구될거요. 그래서 난 병원에서 일부 편협한 일군들이 몇년전에 조선소에서 내보낸 고급기능공들을 다시 데려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소. 류경훈을 비롯한 고급기능공들을말요. 한번 당위원장동무랑 토론을 해보오.》
《알겠습니다.》
최주식이 대답하는데 문화회관앞으로 난 길을 따라 빨간색으로 《+》자표식을 한 병원차가 달려와 그들의 옆에 멎었다. 차에서는 흰 위생복을 구김살하나 없이 다려입은 홍연구지배인의 담당의사와 간호원처녀가 내리였다.
최주식에게 인사를 한 그들은 홍연구의 팔을 량쪽에서 끼며 말했다.
《지배인동지, 이러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어서 차에 오릅시다.》
《자, 이런… 지배인이 자기 조선소에도 못들어와있게 하는구만. 더우기 의사선생들이 남의 기업소에 들어와 〈폭력〉까지 행사하구. 이건 너무하오, 너무해.》
홍연구는 《체포》되여 차에 오르며 거쉰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나 자기 직무에 충실한 의료일군들은 그의 말을 귀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아, 지배인동지!)
부르짖는 최주식의 눈엔 핑그르르 물기가 고이였다. 그는 염낭에서 손수건을 꺼내 축축히 젖은 눈굽을 훔치며 멀어지는 차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