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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와 헤여진 최주식은 어찌된 일인지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천근같이 무거웠다. 그래서 그는 1층과 2층을 련결한 16단밖에 안되는 청사계단을 산벼랑을 톺아오르듯 실로 힘겨웁게 걸어올라갔다.
그의 머리에는 얼마전 석축방파제우에서 한 강준호의 말이 지워지지 않고 짙은 음영을 던지며 늪의 물매미처럼 맴돌이쳤다. 어성은 비록 높지 않으나 꾸지람과 나무람이 엇섞인, 거의 강박에 가까운 역증스런 강준호의 말을 되새겨볼수록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구내도로확장공사를 벌린것이 그의 비위를 그렇게도 거슬리는가. 비좁은 도로를 언제까지나 그대로 둘수 없다는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인데…
최주식이 자기 방으로 가기 위해 2층복도에 올라섰는데 머리우에서 《몸이 편찮은게 아닙니까? 낯색이 영 좋지 않군요.》 하는 말이 날아왔다. 3층에서 내려오던 리윤종이였다.
《아픈데는 없습니다.》
최주식은 대답하고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무슨 근심거리라도 생긴게군요.》
최주식을 따라들어온 리윤종이 앞상을 사이두고 마주앉으며 물었다. 주식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리윤종에게 권하고 자기도 피워물며 한숨을 내불었다. 그러면서 그는 강준호가 도로공사를 두고 한 말을 할것인가 말것인가 하고 망설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얘기하십시오. 기쁨은 함께 나누면 곱으로 커지고 괴롬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 강국장이 올라가면서 뭐라고 한게 아닙니까?》
리윤종이 파르스름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최주식의 얼굴을 직시했다.
최주식은 그가 자기의 마음을 손금들여다보듯 속속들이 들여다보고있는것 같아 속심을 털어놓았다.
《그렇습니다. 강준호국장이 나더러 주관주의적으로 일을 한다고 단단히 나무라더군요. 배무이에 력량을 집중하지 않고 구내도로확장공사를 벌려놓았다면서 중지하라고 하는군요.》
《그래 기사장동무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중지하겠다고 했는가요?》
리윤종은 정색해서 물었다.
최주식은 몇모금 피우지 않은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껐다.
《꼭 해야 할 일인데 중지하다니요? 그만둘것 같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겠습니다.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도로공사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지요.》
《그러니까 국장동무는 선박건조계획을 못하면 되게 문제를 세우겠다고, 기사장동무가 책임을 질줄 알라고 그루를 박아 엄포를 놓았겠습니다?》
최주식은 리윤종이가 강준호와 자기가 한 얘기를 옆에서 듣고 말하는것만 같아 눈을 둥그렇게 떴다.
《기사장동무, 대답을 아주 잘해주었습니다. 참모회의에서 토론하고 당위원회에서 결정한 문제인데 누가 그만두라고 해서 중지하면 안됩니다. 일단 회의에서 결정된 문제는 끝까지 내밀어야 합니다. 난 기사장동무가 응당 그렇게 처신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최주식은 자기도 모르게 근심이 가셔지며 가슴이 후더워졌다.
《당위원장동무, 고맙습니다.》
《원,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당위원장이 당의 정책을 관철하자고 애면글면하는 기사장동무를 떠밀어주지 않고 무얼하겠습니까.
사실 말이 났으니말이지 난 기사장동무가 부임되여오자마자 도로확장공사를 제기했을 때 가책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 일쯤 미리 해놓지 못해 신임기사장에게 부담을 주게 하는가구 말입니다. 그리고 기사장동무가 첫 참모회의를 맺고 끊듯 지도한데 대하여 일부 참모일군들이 찾아와서 의견을 제기하는것을 듣고서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지난날 리억석부기사장에게 선박건조일을 일임하고 당위원회에서 잘 도와주지 못했구나 하고말입니다. 기사장동무가 첫 참모회의에서 목격하다싶이 직장장을 비롯한 행정일군들이 참모회의에 대리인을 참가시키는것쯤 보통일로 여기였을뿐아니라 계획도 과학적으로 세우지 못하고 얼렁뚱땅 흰소리만 치면서 일해왔거든요. 그러니 조선소계획이 미달될수밖에요. 기사장동무가 와서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앞으로 내 힘자라는껏 기사장동무를 도울테니 크고작은 일도 허심하게 서로 의논합시다. 부족점도 가차없이 얘길하구요.
어떤 사람은 본인앞에서는 추궁하고 뒤에서는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 일군이 진짜배기 일군이라고 하지만 난 그러고싶지 않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왜 본인앞이라고 해서 일 잘한다고 말 못하겠습니까. 앞에서도 잘한다고 하고 뒤에서도 잘한다고 해서 뭐 나쁠게 있겠나요. 하지만 일을 쓰게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추궁하지요. 아이들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것은 도리여 사업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최주식은 허심탄회하게 하는 리윤종의 말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김석홍이네 집에 갔을 때 아바이가 리윤종을 두고 좋은 당일군이라고 하던 말이 새삼스레 떠오르면서 이런 당일군과라면 손잡고 본때있게 일을 할수 있겠구나 하는 신심이 생기였다.
겉은 어딘가 모르게 랭랭해보이지만 가슴속엔 진실만이 가득 차있는 당위원장! 바로 그렇기에 김석홍아바이가 리윤종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고 당위원회에 의거하여 사업하면 등탈이 없을거라고 얘길 했었구나.
최주식은 선망에 찬 눈으로 리윤종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위원장동무, 솔직히 말하면 큰 기업소 기사장일을 처음으로 하다보니 힘에 부칩니다. 막 아름차지요. 하지만 당위원장동무의 말을 듣고보니 힘이 생깁니다. 앞으로 날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때 손기척소리가 가볍게 나더니 동해안 어느 조선소와 평북도의 기계공장에서 온 출장원이 들어왔다.
《기사장동무, 손님들이 왔는데 일을 보십시오. 난 구내도로확장공사장엘 나가보겠습니다.》
리윤종은 이렇게 말한 후 옷깃을 여미며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