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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낮이다. 머리우에 뜬 작은 태양이 그리 따갑지 않은 해볕을 지구에 쏟아붓고있다. 바다와 륙지의 경계를 이룬 석축방파제우에는 두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서있다.
해리서털모자를 눈섭우에까지 푹 눌러쓰고 진한 밤색외투를 입은 키가 작은 사람은 강준호고 바다바람에 머리칼을 흩날리며 재빛반외투를 입고 서있는 사람은 최주식이다.
강준호는 다 피운 담배를 파도를 일으키며 늠실늠실 밀려온 누런 바다물에 던지고나서 저 멀리 항구에 닻을 내리고 서있는 여러척의 외국무역선들을 바라보며 침묵을 깨뜨렸다.
《이번에 여기 와보니 기사장동무가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해제꼈다는것이 확연히 알리오. 년간계획두 하고 〈월초, 월말병〉두 없애고. 정말 수고했소.》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그리고 어제도 내 간단히 얘길 했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를 관철하기 위한 계획도 한두가지를 내놓고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세웠소. 국에 올라가면 철판과 기관, 카바이드와 모래, 도장재들을 비롯한 자재들을 해당 성과 토론하여 내려보내주겠소. 그런데말요, 좀 유감스러운것은 동무의 사업에서 주관주의가 느껴지는거요.》
최주식은 강준호의 단도직입적인 마감말에 자못 생각이 깊어졌다.
주관주의라? 나에게서 주관주의가 느껴진단 말이지.
최주식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그것도 그럴것이 로동자의 경우는 주관이 개인에 국한되지만 일군의 경우 그것은 기업소사업전반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선박공업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일군들은 누구나 주관주의를 경계한다.
《국장동지, 무엇을 보고 그렇게 느끼는지 찍어 말해줄수는 없습니까?》
최주식은 담배불을 끄고 심중하게 내심을 털어놓았다. 강준호는 오른손 지명지로 안경허리를 밀어올리고나서 대답했다.
《그것은말요. 중심고리에 력량을 집중하지 않고 일을 분산시키는데서 찾아볼수 있소.》
《내가 일을 분산시키고있다구요?》
최주식은 반문했다. 강한 의문이 말마디마디에서 내풍긴다.
강준호는 쓰거운듯 입을 다셨다.
《아직 무슨 말인지 리해하지 못한 모양이구만. 동무는 새해 배무이에 력량을 집중해야겠는데 왕청같이 구내도로확장공사를 벌려놨단 말요.》
그 말에 최주식은 가두었던 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 문제때문이라면야 무슨 근심할게 있는가. 도로공사를 한다고 해서 아무렴 선박건조를 등한히 하겠는가. 이제보니 강준호국장의 로파심이 대단한걸…
《국장동지, 그건 마음놓으십시오.》
강준호는 잔뜩 긴장해있던 최주식이가 의외에도 여유작작하게 말하자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는 노기를 지그시 누르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큰소리는 약자의 허세며 조급성의 산물이다. 그리고 무력함의 방패이다. 큰소리를 쳐서 얻을것이란 상대방의 노여움을 사는것뿐 아무것도 없다. 자칫하다가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을수도 있다. 그런 밑지는 장사를 무엇때문에 하겠는가. 장사는 리득을 보기 위해 하는것이다.
《여보 기사장동무, 무릇 모든 일은 주관적욕망만으로는 안되는거요. 생각같아선 하늘의 별도 당장 따올수 있지.》
강준호는 어제밤에 너무나도 많이 마신 술로 하여 아직도 부석부석한 볼과 눈두덩을 어루쓸며 낮은 목소리로 아량있게 말했다.
《국장동지, 주관주의와 주견을 식별해보기 바랍니다. 주관주의는 사업과 생활에서 백해무익하지만 주견은 쓸모가 있지요. 거 왜 코끼리화가에 대한 우화도 있지 않습니까. 주견이 없이 이 짐승, 저 짐승이 한마디씩 하는대로 그림을 고쳤다가 종당엔 패작을 만든 얘기말입니다.》
《그러니까 구내도로확장공사를 그대로 내밀겠다는거요?》
강준호가 정색하여 묻자 최주식은 그렇노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문 거 무슨 고집이 그리 세오?》
강준호는 더는 참을수 없는 모양 담배꽁초를 바다가로 홱 내던지며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짜증기배인 목소리로 타박했다.
최주식은 《고집》이란 말을 듣는 순간 전쟁때 있은 일이 불쑥 떠올랐다.
…
그것은 생사를 판가름하는 거세찬 불과 불이 엇갈리며 매캐한 화염이 짙은 안개처럼 서려돌던 준엄하고 격렬했던 전쟁시기에 있은 일이였다.
적들의 네번째 공격을 물리친 최주식은 소대전사들과 함께 폭탄과 포탄에 무참히 파괴된 전호를 수리하고나서 이마에 질펀히 내밴 땀을 훔치며 잠시 휴식을 하고있었다. 그때 중대장의 애젊은 련락병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사단참모부에서 찾는다고 했다.
대대도 련대도 아니고 사단에서 일개 소대장에 불과한 자기를 찾는다는 사실에 최주식은 잔뜩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떤 기대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미제원쑤놈들에게 된벼락을 안길 특수임무라도 주려는것이 아닐가.
최주식이 사뭇 높뛰는 심장을 안고 사단참모부에 들어섰을 때 참모부에서는 사단간부과장을 만나라고 했다.
간부과장을? 왜 그를 만나라고 할가?
최주식은 의문을 안고 간부과로 갔다. 사단에 온지 얼마 안되는 간부과장은 최주식의 경력을 깐깐히 묻고나서 상급의 조치에 의하여 대학으로 가게 되였음을 알려주었다.
최주식은 깜짝 놀랐다.
대학으로 가다니? 지금이 어떤 때인데 대학으로 간단 말인가.
최주식은 붓으로 쿡 찍은듯 진한 눈섭을 쭝긋거리며 어성을 높여 단호하게 자기의 의사를 표명했다.
《못가겠습니다.》
《못가겠다?》
《그 명령만은 집행하지 못하겠습니다.》
최주식은 《그 명령만은》에 력점을 찍었다.
간부과장은 앞에 놓인 크지 않은 책상을 꽉 움켜쥔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종이우에 놓였던 연필이 훌쩍 뜀박질을 하더니 때그르 굴러 책상아래로 떨어졌다.
《정 고집을 부리겠소?》
《그게 무슨 고집입니까?! 그게 고집이라면 전… 천번도 더 고집을…》
《동무!》
두사람은 목에 퍼런 피대줄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고는 씨근덕거리며 싸우는 수탉마냥 서로의 눈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때 밖에서 수선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다양한 해빛이 환하게 비쳐들었다.
방으로는 뜻밖에도 수수한 군복차림을 한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몇명의 장령들과 함께 들어오시였다. 최전연을 시찰하시고 돌아가시던 길이였다.
그이께서는 당황하여 낯색이 꺼멓게 질린 두사람을 번갈아보시고나서 간부과장에게 왜 다투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간부과장은 주눅이 든 소리로 떠듬떠듬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저… 소대장동무가 이번에 대학으로 가게 되였는데… 못가겠다고 잡아떼는 바람에…그만… 어성이 높아졌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주식이쪽으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소대장동무, 동무는 어째서 대학으로 못가겠다고 하오?》
홍안의 최주식은 차렷자세를 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미제원쑤놈들과의 판가리싸움에서 조국이, 인민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있습니다. 저희 소대에서만도 한명이 전사하고 세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소대장인 제가 어떻게… 어떻게 대학으로 편안히 공부하러 간단 말입니까. 대학으로는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모조리 몰아낸 후에 가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결패가 센 최주식을 보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옆에선 부관도 웃고 동행한 군단장도, 사단장도 빙그레 웃었다.
《그것때문이요?》
《그렇습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사단간부과장동무의 말대로 하시오. 우리는 지금 이긴 싸움을 하고있소. 이긴 싸움을! 이제 전쟁이 끝나면 우리의 힘으로 파괴된것을 곧 일떠세워야 하오. 그러자면 기술일군이 필요하오. 그것도 능력있는 기술일군이 말이요.》
최주식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이긴 싸움》이라고 한 그이의 말씀이 무한한 힘을 가지고 높뛰는 심장의 흉벽을 거세차게 두들기였다.
《그래 이름은 어떻게 부르오?》
《최주식입니다.》
《최주식이라?…》
그이께서는 최주식의 이름을 두어번 뇌이시였다.
《전쟁전엔 어느 대학을 다니였소?》
《김책공대 1학년에서 선박을 공부하였습니다.》
《선박을? 그건 어떻게 되여 전공하게 되였소?》
《아버지가 조선공이였습니다. 해방전부터 영포조선소에서 일했습니다.》
《영포조선소? 나도 거기에 간적이 있는데… 1948년도에…》
《우리 아버지도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오?》
《최한무입니다.》
《최한무? 그러면 동무가 최한무의 외아들이란 말이요?》
그이께서는 최주식을 눈여겨 찬찬히 보시며 아버지가 건강한가고 물으시였다. 최주식은 아버지가 군함을 수리하다가 미제놈들의 비행기가 쏴대는 기총탄을 맞고 몇달전에 잘못되였다고 말씀드렸다.
《거 안되였구만. 동무 아버지는 훌륭한 조선공이였는데…》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안색을 흐리시고 창밖을 이윽히 내다보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천천히 이으시였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영포조선소에서 무은 〈신흥호〉의 진수식때였습니다. 그때 최주식동무의 아버지가 자그마한 구리도끼로 진수삭을 끊었습니다. 그는 왜놈때엔 나까무라철공소에서 제관공으로 일했고 해방후엔 조선소를 지켜 용감히 싸웠습니다.
진수식이 있은 날 그는 나에게 〈장군님, 우리가 지금은 몇백t급의 배를 뭇지만 앞으로는 맹세문에 씌여있는것처럼 꼭 더 큰 배를 무어 기쁨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굳게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힘과 정력이 온몸에서 내뿜기는 최주식의 름름한 모습을 정이 담긴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동무는 대학으로 꼭 가야겠소. 가서 공부를 해가지고 아버지가 뭇자던 배를 무어야겠소. 싸움걱정은 아예 말구 어서 대학으로 가시오.》
최주식은 심장이 걷잡을수 없이 높뛰고 눈굽이 화끈 달아올랐다. 온 나라 인민이 한사람같이 떨쳐나 생명을 내대고 싸우는 준엄한 시기에 대학으로 가는것이 바로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의 구상이고 전투명령이라는것을 가슴뜨겁게 절감했다.
그는 샘마냥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먹이는 소리로 띠염띠염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대학으로… 가겠습니다.》
…
최주식의 생각은 강준호의 말에 동강났다.
《정 그렇다면 동무 마음대로 해보오. 하지만 내 말을 명심해 듣소. 기사장동무는 그전 조선소에서 부기사장을 할 때와 사정이 다르다는것을 말요. 구내도로확장공사같은것은 차차로 해도 무방하지만 배무이계획을 어기면 당과 국가앞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요. 전적인 책임을! 알겠소?》
《알겠습니다.》
최주식의 대답은 여전히 확고하고 단호했다.
《앞으로 어디 두고보기오.》
강준호는 이렇게 말하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화제를 돌리였다.
《그리구 다른 한가지 문제는 완성직장장자리를 언제까지나 비워두겠는가 하는거요. 내 생각엔 지금 완성부직장장을 하는 홍학주가 적임일것 같소. 능력두 있구 책임성두 높구…》
최주식은 홍학주가 능력은 있는데 책임성이 좀 결여된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동무에 대해서는 제가 좀더 료해를 해보고…》
강준호가 최주식의 말허리를 잘랐다.
《료해? 여보 기사장동무, 어느 하가에 료해를 한단 말이요. 그 사람은 진국이요. 그 사람을 완성직장장 시키면 일에서 랑패가 없을거요.》
《…》
강준호는 최주식이 침묵을 지키자 담배를 꺼내물었다. 그리고는 외국제 라이타를 계속 잘칵거렸다. 불어오는 해풍에 불이 인차 죽어버리군 했기때문이다.
최주식은 주머니에서 사슴이 그려진 《금강》성냥곽을 꺼내 내밀었다.
강준호는 성냥을 받아 두손을 오그리고서 담배불을 붙이더니 담배연기를 페장깊이 들이그었다가 길게 내뿜었다.
《내 사적인 문제여서 얘길하지 않으려다 말이 난김에 동무에게만 한마디 하겠소. 우리 은주말이요. 어쩌면 도장공으로 배치할수 있소? 페일언하고 동무의 처사가 섭섭해.》
그리고는 방파제를 내려 청사가 있는쪽으로 뻗은 구내도로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최주식은 생각에 잠겨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은주를 부탁한다는 강준호의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할가고 어리둥절해 있은것만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성미가 여간만 활달하지 않은 처녀가 도장공을 하겠다고 선뜻 자청해나섰을 때 자못 감동까지 했었고 조선전문학교를 거쳐 공장대학까지 보내리라고 타산했었다. 선박기사가 되면 조선소의 당당한 기둥이 될것이 아닌가. 그러면 강준호도 나무라지는 않을것이다.
한데 자기의 예상과는 달리 강준호는 은주를 도장공으로 배치한데 대해 달가와하지 않고있다.
《국장동지, 제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그리고 신년사관철계획은 정리해서 인차 국에 한통 올려보내오.》
《알겠습니다.》
두사람은 청사앞에서 그리 유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