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균 렬
1
강준호가 탄 《갱생》은 영포를 향해 질주하고있다.
길에 한가스레 누워 해빛을 받으며 반짝이던 하얀 눈가루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영문도 모르고 차의 뒤꽁무니를 허덕이며 따라간다.
겨울치고는 푸근한 날이였다.
차에 앉은 강준호는 마음이 상쾌하고 가벼웠다.
최주식이 영포조선소로 내려간 후 여름과 겨울이면 어쩔수 없는 일처럼 되여있던 《계절병》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처음으로 월계획을 해내였을뿐아니라 분기와 년간계획도 넘쳐수행하였다. 물론 지표별계획은 일부 미달하였으나 액상계획은 103%로 해내였다.
103%! 그게 어디인가. 작금년간에 그렇듯 당당히 계획을 초과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최주식인 확실히 능력이 있단말이야.
흡족해서 중얼거리는 그의 눈앞에는 기사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우거지상을 하고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능력이 없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우는 소리를 하던 최주식의 모습이 스쳐지났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그러자 문득 성격이 활달하고 인물이 남의 축에 빠지지 않는 사랑하는 조카 은주생각이 났다.
은주가 제대되여 기계공업성산하 영포조선소에 배치받았을 때 강준호는 그를 평양에 떨굴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치받은 조선소로 기어이 가겠다고 하는 은주의 청을 못이기는척 하고 받아들인데는 강준호로서 타산이 있었다. 그것인즉 은주의 배우자로 최주식을 내심 점찍어놓은데 있었고 만약 그 일이 뜻대로 안되는 경우 선박관리국으로 소환할 심산이였다.
강준호의 덧없는 생각은 승용차의 다급한 경적소리와 함께 차가 직선주로에서 옆으로 벗어지면서 차체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깨여졌다.
지그시 감고있던 눈을 번쩍 뜨고 금테안경알속으로 앞을 보니 대안지경의 지선도로에서 평양-영포기본도로로 《갱생》 한대가 번개처럼 달려나와 앞서는것이였다.
제길, 무슨 사고를 치지 못해 저렇듯 급히 달린담.
혀를 차며 차뒤에 붙은 번호를 얼핏 본 강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볼이 부어 입귀를 실룩거리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아니, 저게 최주식기사장의 차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운전사는 불만기어린 눈으로 앞을 주시하며 마깝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따라가기오.》
《…》
성격이 급한 운전사는 가속기를 콱 밟았다.
《갱생》은 흠칫 놀라 차체를 부르르 떨더니 쏜살같이 내달린다. 몇백m를 달리지 않아 두 차는 나란히 섰다. 방금전의 일로 성이 채 가라앉지 않은 강준호의 운전사가 경적을 다급히 울리였다. 차주인들은 서로 알아보았다.
두대의 승용차는 딴딴하게 다져진 매끄러운 눈길우를 몇m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급정거했다.
강준호는 최주식의 인사에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그를 자기 차로 손짓해 불렀다.
최주식은 차에서 내려 강준호의 옆좌석에 앉았다.
강준호의 차가 앞서고 방금전까지 기세좋게 앞서 달리던 최주식의 차가 그 뒤를 따랐다.
강준호는 등받이에 작은 몸을 기대며 체격이 미끈한 최주식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갔다가 오는 길이요?》
《대안전기공장에 전기선때문에 갔댔습니다. 한데 지난해 말에 한번 오겠다고 하다 못오신걸 보니 일이 매우 바빴던 모양입니다.》
《몸이 열쯤 되였으면 좋겠소. 일감이 많아 영 자리를 뜨기가 힘들구만. 하지만 기사장동무가 일을 척척 제껴주어 영포는 내 한시름 놓고있소. 국에 올라온 통계를 보니 영포로 가자마자 고질적인 〈계절병〉과 〈월초, 월말병〉을 뚝 떼버렸더구만. 정말 수고했소.》
《액상계획은 넘쳐했는데 지표별계획을 일부 미달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사실 액상계획도 중요하지만 지표별계획이 기본이다. 지표별계획을 해야 제품의 공정이 맞아떨어지며 완제품이 나오게 된다. 가격이 높은 부속들을 가공하여 액상계획만 하는것은 면무식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부 공장들에서 액상계획이나 하고 곰이나 잡은듯 흰소리를 치는것은 량심이 없는 일이라고 해야할것이다. 액상계획과 지표별계획, 이 두가지 계획을 다 수행했을 때에야 비로소 부과된 국가계획을 했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
최주식이 가책을 받는것도 바로 이때문이였다.
《영포의 실태에서 단번에 액상계획과 지표별계획을 하기야 아름이 벌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난 기사장동무의 능력과 일욕심이면 앞으로 지표별계획도 능히 하리라고 보오.》
《너무 추어올리지 마십시오. 일이야 뭐 제가 합니까. 조선공들이 하지.》
강준호는 최주식의 시원스런 대답이 마음에 들어 눈에 생기를 담고 껄껄 웃었다.
《신년사관철을 위한 토론이랑, 금년도 계획실행을 위한 토론이랑은 다 했겠지?》
《했습니다. 작업반에서부터 참모회의에 이르기까지… 지금 조선소에 부과된 배건조목표에 따라 구체적이고도 과학적인 세부계획을 세우고 힘껏 내밀고있습니다.》
《좋소. 좋아. 역시 기사장동무는 어느모로 보든 마음에 든단 말이요. 괜찮거든.》
《…》
《지도일군은 조직사업이 기본이야. 동무는 조금전에 일은 조선공들이 한다고 했지만 조선공들이야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는걸 뭐… 동무가 기사장으로 가기전에도 조선소에는 리억석부기사장을 비롯해서 지도일군이 있었단 말요. 하지만 그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도 계획을 제대로 수행못했거든.》
강준호는 말을 끊고 길옆으로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눈에 덮인 달천의 사동벌과 오동벌 그리고 그 벌판뒤로 병풍을 친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솟아있는 오석산이며 금봉산 등 높낮은 산발들을 차창으로 잠시 내다보고나서 최주식이쪽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바꾸었다.
《참, 우리 은주가 어떻소? 건강해서 일이나 제대로 하고있는지?》
그의 여느때없이 은근한 목소리에는 그 어떤 내놓고 말 못할 기대가 스며있었다.
하지만 지도일군을 어떻게 조직사업이나 하는 사람들로 보며 조선공들을 어떻게 시키는 일이나 하는 피동적인 사람들로 여길수 있겠는가 하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느라 강준호의 말속에 담긴 야릇하고도 미묘한 의미를 낌새채지 못한 최주식은 강은주에 대한 자기나름의 느낌과 인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일을 잘한다고 호평입니다. 제대군인이 되여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미때문인지 성격이 호방하고 탁 틔인게 내 마음에도 꼭 듭니다. 사실 난 국장동지의 편지를 받아보고 처음엔 좀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조선소를 쭉 돌아본 은주동무가 선박완성직장에서 일하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내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소.》
강준호는 흡족했다. 어쩌면 은주를 최주식의 반려자로 만들어주려는 자기의 속심이 실현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갱생》은 나지막한 신흥리 언덕을 넘어 전극공장을 지나 상대두거리에 들어섰다.
강준호는 무슨 비밀이나 얘기하듯 목소리를 낮추어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소곤거렸다.
《기사장동무, 래달 중순이나 하순경쯤에 전국 선박부문일군협의회가 있을것 같소. 기본은 선박건조문제요. 지금 뭇고있는 저예망선의 7~8배에 달하는 천t급이상의 선박건조를 토론하자는거요. 난 상동지에게 우선 오백t급 배를 뭇자, 실은 그것도 대단하다, 지금보다 두배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천t급 배를 뭇자는건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시기상조〉다라고 말씀드렸소. 그런데 상동지는 큰 선박을 뭇는것은 시대의 요구라며 나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소. 참, 안타까운 일이요. 글쎄, 현재 우리 나라 조선소의 설비나 조선공들과 기술자들의 기술기능을 가지고 어떻게 그렇듯 높이 날아오른단 말이요? 저예망선도 제대로 못무어 수령님으로부터 지적의 교시를 받았는데 어림이나 있는가말요. 기사장동무도 지금부터 잘 생각했다가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길 바라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소.》
《…》
《동무도 로작을 학습해서 알겠지만 영포시당전원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포조선소에서는 200t, 300t짜리 배를 아이들의 헌바지 만들듯이 되는대로 만들어 쓰지 못할 불합격품만 내고있다고 하시면서 2척기선저예망선은 3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완성하지 못한채 있다고 엄하게 지적하시지 않았소.》
《…》
《수령님의 비판교시를 생각할수록 나는 큰 자책을 느끼군 하오. 선박부문을 책임진 내가 일을 쓰게 했더라면 왜 그런 일이 생겼겠소. 그래 내 큰 맘먹고 오백t급 배를 무어보자고 하오.》
최주식은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심심히 뉘우치며 실천으로 과오를 씻으려는 강준호를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기사장동무, 수령님께 다시는 그런 심려를 끼쳐드리지 말아야 하오. 그러자면 나는 물론이고 동무도 일을 더 잘해야겠소.》
《…》
《우리는 뭇지 못할 선박을 건조하겠다고 무분별하게 나서선 안된단 말요. 주관적욕망은 항상 실패를 꼬리에 달고 다니거든. 그렇지 않소?》
최주식은 대답을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그에겐 강준호가 말하고있는 책임문제보다도 조문광이 내놓은 선박건조안이 더 가슴을 쳤다.
상동지가 대단한데. 정말 대단해. 어쩌면 그렇듯 어마어마한 구상을 했을가.
《어떻소? 내 말이.》
최주식의 생각은 강준호의 물음에 동강이 났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여서…》
《그럴거요.》
강준호는 빙그레 웃었다.
선진기술을 습득하고있는 최주식이 왜 그 허황함을 투시해볼수 없을텐가.
《갱생》은 닻거리를 지나 조선소정문앞에 이르렀다.
몸에 꼭 맞는 보위색옷을 단정히 입은 처녀보위대원이 강준호와 최주식을 알아보고 깍듯이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부리나케 정문여닫이단추를 눌러 철문을 드르륵 열어제낀다.
처녀의 절도있고 날렵한 행동에 강준호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환해졌다. 하지만 정문을 들어서듯마듯 그의 눈은 둥그래졌다.
구내도로옆을 따라가며 흙무지가 무득무득 쌓여있었고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동력직장〉, 〈주물직장〉, 〈선박완성직장〉, 〈의장품직장〉이라고 쓴 표말이 꽂혀있었다.
《기사장동무. 저건 뭐요? 왜 길옆을 따라가며 언땅을 파헤쳤소?》
《지금 구내도로확장공사를 하고있습니다.》
최주식의 대답에 강준호는 방금까지 마음을 후덥히던 좋은 기분이 다 사라져버리는듯 했다. 그는 최주식의 얼굴과 파헤쳐진 도로옆의 흙무지를 번갈아보며 누가 저런 일을 생각해냈는가, 물덤벙술덤벙하는 생산부기사장인가고 물었다. 그 어조에는 리억석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풍기였다.
최주식은 자기의 립장을 명백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내가 그랬습니다.》
강준호는 최주식의 말이 미덥지 않은듯 《동무가? 무슨 동무가 그랬겠소?》하고 반문했다.
《여기와보니 구내도로가 좁고 답답하기에…》
최주식의 말을 들으며 강준호는 주머니에서 《금강》담배를 꺼내 붙여물었다.
《그래서 도로공사를 벌려놓았단 말이지요?》
《국장동지, 낮엔 배를 뭇고 작업이 끝난 후에 과외로동으로 한두시간씩 하고있습니다. 직장별로 담당구간을 설정해서…》
최주식은 덩지 큰 《자주호》가 《승리》에게 길을 비켜주느라 가재처럼 뒤걸음치던 광경과 리억석이 하던 웃지 못할 말을 상기하며 대답했다.
강준호는 속이 좋지 않았으나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루일이 끝나면야 조선공들에게 휴식을 주어야지. 다음날 선박건조에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말요. 내 생각엔 구내도로확장공사를 그만두는게 좋을것 같구만.》
강준호의 타이르듯 하는 말에 최주식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국장동지. 그렇게 할수는 없습니다. 이 일은 이미 당위원회와도 토론을 했고 참모회의에서도 협의를 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큰 배를 뭇기 위해서도 도로공사는 꼭 해야 할일이 아닙니까. 좁은 구내도로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두겠습니까. 생산은 늘 긴장한데… 난 이 일들을 동시에 내밀어야 한다고 봅니다.》
강준호는 코와 입으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나서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야 물론 넓혀야지. 그러나 지금은 2척기선저예망선을 건조하는데 력량을 총집중해야 하오. 구내도로가 좁기때문에 당장 지장을 받고있는건 아니지 않소.》
강준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담배를 몇모금 급히 빨아대고나서 다시 이었다.
《내 동무네 당위원장에게도 얘길 하겠소.》
최주식은 자기를 은근히 탓하고 질책하는 말은 묵새길수 있었으나 리윤종당위원장을 껴드는데는 참아낼수가 없었다.
《우리 당위원장동무에게는…》
《말을 하지 말란 말이지?》
강준호의 낯엔 가벼운 웃음이 스쳐지났다.
차가 청사앞에 멎자 두사람은 기사장방으로 들어갔다.
강준호는 외투를 벗어 문곁에 놓인 옷걸개에 걸자 쏘파에 앉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관철계획을 보자고 했다.
최주식은 서류함에서 문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강준호는 오랜 시간 꼼짝 않고 문건을 들여다보았다. 그릇된 계획이 초래하는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그는 사소한 문제도 결코 소홀히 여기는 법이 없었으며 그런만큼 계획을 검토하는데 신경을 썼다.
문건에는 주, 순, 월, 분기에 따라 각 직장과 부서들이 해야 할 2척기선저예망선건조계획과 협동품생산계획, 기술발전계획과 예비안까지 구체적으로 정연하게 세워져있었다. 흠이라면 구내도로확장공사를 3월중순까지 완성하도록 한것이였다.
도로공사가 문젠 문제로군. 하루 일이 끝난 후에 몇시간씩 과외로동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배무이에 지장을 안줄수가 있는가.
강준호는 그 문제를 지적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현장을 돌아보며 직장장들의 견해와 조선공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얘기해도 늦지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차안에서도 이미 말을 했으니 여기서는 그만두자. 그의 신경을 자꾸 자극할 필요가 없지.
강준호는 무슨 도면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있는 최주식에게 말을 건늬였다.
《기사장동무, 신년사관철계획을 비교적 괜찮게 세웠소. 그러나 계획이 곧 실천을 의미하는것은 아니지. 현장에 나가 좀 더 료해해보기오.》
《알겠습니다.》
방을 나선 그들은 선박완성직장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강준호는 완성작업을 하고있는 저예망선곁에 이르자 저도모르게 발을 멈추고 미간을 찌프리였다.
거기서는 솜바지저고리를 입어 누구라없이 몸매가 뚱뚱해진 녀성도장공들이 웃고 떠들며 일을 하고있었다. 언변좋은 한씨가 말을 계속했다. 《글쎄말야. 곱게 화장한 처녀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슬그머니 옷깃을 잡아당기더래. 처녀는 〈그 청년이겠지. 출퇴근때마다 앞길을 떡 막고 치근거리는… 참, 어쩌면 이런데서까지 못살게 굴가.〉하고 생각하며 얼굴이 발개져 소곤거리듯 말했다나. 〈놓으세요. 이게 무슨 짓이예요? 사람들이 봐요.〉 그래도 뒤에선 옷깃을 놓아주지 않더래. 처녀는 소리를 칠수도 없어 울상이 되였대. 잠시후 그는 할수 없이 사정했다나. 〈지난날 내가 너무했어요. 동무의 청을 들어줄테니 강가에 나가 얘기하자요. 그러죠?〉 걸음을 떼는데 뒤에서 그냥 당기더라지. 〈동무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하잖아요. 어서 놓으세요.〉 성이 난 처녀는 이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어마나!〉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대. 그래 그게 누굴것 같애?》
《누구긴 누구겠어요. 지지리 못난 그 청년이죠.》
《총각들이란 뻔뻔스럽다니까.》
도장공녀인들이 찧고 까부는 말에 한씨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총각? 아무렴 우리 청년들이 때와 장소두 모르고 처녀의 옷깃을 잡고 안놓아주겠어? 그건말야. 총각이 아니라 문틈에 솟구친 못이였어. 못.》
《호호. 못이요?》
폭소가 터졌다.
강준호는 도장공들이 배를 그러쥐고 웃으며 돌아갔으나 거기엔 개의치 않고 여전히 찌푸둥한 낯으로 은주를 바라보았다. 강은주는 여러색갈의 뼁끼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서 모래분사기를 들고 녹떨기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 은주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하고있을가? 최주식이 혹시 은주를 도장공으로 배치한것은 아닐가. 그러나 설마… 그가 배치했을라구? 그럼?…
최주식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서있는 강준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에서 최주식은 의혹에 잠긴 강준호의 마음을 대뜸 읽어보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눈빛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의 반영이기때문이다. 눈을 주시해보면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도 증오도 분노도 다 알수가 있다. 그런가하면 눈빛은 천만마디의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사람은 설사 마음을 속일수 있어도 눈빛에 비낀 마음은 절대로 속일수 없다.
최주식은 강준호의 눈빛에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우리 은주를 도장공으로 배치한건 아니요 하는 속심을 읽자 루루이 멋적은 변명을 했다.
《아까 차안에서 말씀드리다싶이 은주동무가 조선소를 돌아보고서 꼭 선박완성직장 도장작업반으로 보내달라고 하기에…》
《…》
은주가 요구해서 도장공일을 시켰다구? 조선소를 모르는 은주야 혹 그럴수도 있지. 그러나 최주식이야 어떻게… 더우기 저를 믿고서 편지까지 써보냈는데…
강준호의 침묵으로 하여 최주식의 립장은 더 난처해졌다.
그때 부직장장 홍학주가 달려오더니 두툼한 입가에 웃음을 담고 굵다란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했다.
《국장동지,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잘있었소.》
강준호는 실무적으로 대답하며 손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홍학주는 그의 앞으로 몇걸음 급히 걸어가 강준호의 손을 그 무슨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잡았다.
(원, 사람두…)
최주식은 자기의 옹색한 처지를 벗어나게 해준 홍학주가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의 비굴한듯싶은 행동이 민망하고 역스러워 바다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기사장동무. 내 부직장장과 같이 완성직장을 돌아보고 사무실로 갈테니 먼저 가오.》
《알겠습니다.》
최주식은 대답하자 곧 자리를 떴다.
강준호는 산소직장 옆으로 걸어가는 최주식을 일별하고 홍학주에게 말을 건늬였다.
《부직장장동무, 완성직장일은 잘되오?》
《잘됩니다.》
강준호는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한겨울에 도로공사를 하며 배를 뭇자니 곱절이나 힘이 들겠소.》
홍학주는 일없노라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가느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강준호의 말속에서 그가 도로공사를 달가와하지 않는다는것, 그래서 자기의 의견을 들어보려한다는것을 낌새챈때문이였다.
《국장동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참모회의때 도로공사를 반대했습니다.》
《그건 왜?》
《저는 조선소에서 배를 잘 뭇고 빨리 뭇는것이 기본이라고 봅니다. 배를 제대로 뭇지 못하고서야 도로공사는 해서 무얼합니까. 전 이제라도 구내도로확장공사를 중지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되오? 딴 생각 말구 기사장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구.》
강준호는 이렇게 말했으나 속으로는 홍학주가 문제를 아주 정확히 보는 사람이라고 다시금 생각을 했다.
그가 홍학주를 그리도 탐탁하게, 사자 어금이처럼 여기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다.
몇해전 고급기능공인 류경훈이 선대늘이는 일을 책임지고 하다가 토대균렬사고로 국가에 적잖은 손해를 준적이 있었다. 남들은 그 사고를 실수로만 여겼다. 하지만 홍학주는 류경훈이가 낸 사고를 실수로 보지 않고 그의 가정주위환경과 왜놈때 직공장을 한 경력까지 일일이 까밝히면서 정치사상적으로 예리하게 분석했으며 엄중한 사고를 저지른 그에게 다시는 중요한 배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호되게 비판을 했다. 그러면서 류경훈이와 같은 사람은 원래 조선소에서 일할 명분이 없다고 들이댔다. 그 회의에 참가했던 강준호는 홍학주를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 얼마후 그의 견해를 더 확고히 가지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홍학주가 배무이공정을 바꾸어 건조기일을 며칠간 단축하게 한것이였다.
단지 홍학주에게서 흠이라면 상급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례절을 지키는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아첨이라고 했다.) 그거야 무슨 큰 결함이겠는가. 세상에 그쯤한 결함(그것도 결함이라고 하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구태여 그것을 결함이라고 보아서 그렇지 상급에게 례절을 깍듯이 지키는거야 아래일군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도의가 아닌가.
아마도 그래서 사람은 보기탓, 생각하기탓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가면 절름발이는 춤을 추는것 같고 곱사등이는 무엇을 한짐 지고 들어오는것 같으며 곰보의 오목오목 패인 자욱은 자그마한 볼우물같아 정이 폭폭 든다고 한다.
고운사람 미운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는 속담이 우연히 생겼을텐가. 이랬든저랬든간에 강준호에겐 홍학주가 똑똑하게만 보였으며 그가 하는 일은 죄다 마음에 들었다. 하여 두사람사이는 국장과 부직장장이라는 현역한 직위차이에도 불구하고 실물과 그림자처럼 자연히 가까와지게 되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뜨음해지고 단둘이 남자 강준호는 홍학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부직장장동무. 내 조카가 완성직장에서 도장공으로 일하고있는데…》
역빠른 홍학주는 그의 맺지 못한 말속에 담겨진 뜻을 곧 알아차렸다.
《국장동지. 죄송합니다. 사실은 저… 갓 온 기사장이 배치한걸 제가 당장 돌려놓을수가 없어서 이러고있습니다.》
《…》
《앞으로 도면관리원을 꼭 시키겠습니다. 인물이 쏙 빠지고 일 잘하는 은주동무에게 도장공일이 어디 어울립니까. 재삼 말씀드리는데 그 문제는 제가 풀겠습니다.》
강준호는 마음이 느긋해져서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그래주오.》
《아무렴요. 그런 일까지 국장동지가 나서서야 안되지요.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여기에 며칠이나 있다가 가겠느냐고 물었다.
강준호는 실태료해나 하고 래일 올라가겠다고 대답했다.
《오래간만에 오셨는데 그렇게 빨리 가시렵니까? 며칠 쉬다가 가셔야지요.》
《생각해주어 고맙소. 그러나 국에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영 눈코뜰새가 없구만.》
《하기야 전국에 널려있는 조선소들과 선박수리공장들을 지도하자니 오죽 바쁘시겠습니까.》
홍학주는 이러고나서 목소리를 낮추어 오늘 저녁은 집에 와서 쉬라고 소곤거렸다.
《뭘 올적마다 페를 끼치겠소. 조선소에 번듯한 외래자합숙이 있는데…》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진심을 말씀드리는데… 국장동지같은 큰 일군을 우리 집에 모시는것은 더없는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강준호는 껄껄 웃었다.
《그런데 거… 홍동무의 아주머니가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가?》
《국장동지두… 아니할 말씀을 하십니다. 그와는 정 반대이지요. 우리 집사람은 〈국장동지가 요즈음은 왜 안오시는가, 어디 몸이 편찮으시지나 않는가.〉고 자주 묻군한답니다.》
강준호의 눈앞에는 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홍학주의 처 오매월의 날씬한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꼭 오십시오. 저녁에 기다리겠습니다.》
유혹의 힘은 강하다. 그것은 아마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감정의 그물로 사람의 마음과 정신, 넋을 사로잡기때문일것이다.
영포조선소의 신년사관철계획은 이미 보았겠다, 구내도로확장공사에 대한 견해도 섰겠다, 엎어진 김에 쉬여간다고 오늘밤은 홍학주네 집에서 보내도 별일 없겠지.
《그러기오.》
흥이 난 두사람은 왁새기중기가 기다란 산형강을 물고 윙윙거리며 지나간 레루우를 넘어서서 현장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