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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옥은 허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노를 저으며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잠망경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노대를 놓고 얼굴에 피가 몰리도록 잔뜩 고개를 숙이고 물속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만에야 지쳐서 전마선을 몰고 섬기슭으로 나갔다.
《부교장동지, 잠망경을 분명히 보았댔습니까?》
채정보는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미타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글쎄… 내 보기엔 그렇게 생겼댔는데…》
채기정이 끼여들었다.
《아마 아버지가 착각했을겁니다.
잠수함이 여기까지 뭘하러 들어왔겠나요.》
《혹시 정찰하러 왔을수도 있지 않을가?》
조정철은 별안간 두눈을 번뜩이더니 날카로운 턱을 손으로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우리 수상보안간부학교를 노리고 온 미국잠수함일수 있지요.》
모두들 가슴이 섬찍해져서 채정보가 잠망경이 나타났다고 하던 쪽을 주시했다. 하지만 아무런 징후도 없었다. 수면은 고요해도 물속에서는 적잠수함이 수상보안간부학교를 겨누고 어뢰를 발사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놈이 물우로 불쑥 솟구쳐올라 함포를 쏘거나 기관총을 갈겨댈수도 있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대응할만 한 함선이나 무기가 없으니 난사였다.
채정보는 심각한 기색으로 말했다.
《적들은 우리 코앞에까지 들어와 볼장을 보는데 우리가 눈뜬 소경처럼 그것도 모르고있다면 야단이 아니요. 이러다 큰일이 나겠소.》
김군옥을 비롯한 학생들은 난처하고 억이 막혀서 서로 마주보기만 했다.
조정철은 그들에게 신심을 안겨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러게 빨리 배워야지요. 적들의 잠수함을 발견하고 까부시는 법도, 순양함이나 구축함과 맞서 싸우는 법도 배워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자면 행여나 해서 다른 나라를 쳐다볼게 아니라 지금 당장은 여기에 있는 고장난 부업선을 우리 손으로 수리하면서 산지식을 하나하나 습득해야 합니다.》
채정보는 그간 자신의 사업에서 빈틈이 있었음을 자인하며 전적으로 공감했다.
《예, 응당 그래야지요. 먼산에 가서 도라지를 캐먹을바엔 뜨락에 있는 길짱구를 캐서 잘 우려먹는게 낫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조정철은 껄껄 웃었다.
《예, 먼데 있는 처녀만 바라보다가는 장가를 갈수 없는거지요.》
그들은 저물녘에야 전마선에 올라 사슴섬을 떠났다.
잔교로 돌아온 그들은 수확물을 부리웠다. 물고기잡이는 신이 나지만 물고기손질은 시끄러운 법이다. 채정보는 학생들과 함께 물고기를 손질하는 조정철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그런 일은 학생들에게 맡겨두고 나와 함께 가십시다.》
조정철은 긴히 의논할 문제가 있나부다 하고 손을 씻고 걷었던 팔소매를 내리우며 따라섰다.
《어딜 가자는겁니까?》
채정보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을 구경합시다. 집사람이 뭘 좀 차렸을겁니다.》
조정철은 공연히 페를 끼치고싶지도 않거니와 학생들과 함께 물고기를 손질하고 이왕이면 자기의 료리솜씨도 보여주고싶어서 뒤를 돌아보며 주춤거렸다. 채정보가 재촉했다.
《자, 어서 가십시다. 정치부교장동지가 오신다니 우리 집사람이 아무리 깍쟁이래도 닭이야 한마리 잡았겠지요.》
《그럼 기정학생을 데리고갑시다.》
채정보는 큰일이나 난듯이 펄쩍 뛰였다.
《그건 안됩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집에 가니 아닐세라 푸짐하게 생긴 안주인은 삶은 통닭과 터밭에서 방금 뜯어서 씻은 부루와 쑥갓, 고추장단지를 차린 상을 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주인은 손님을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행여나 아들이 껴묻어오지 않았나 해서 고개를 빼들었다.
두 군관은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에 잠기면서 상에 마주앉았다. 조정철은 삶은 통닭보다 고추장에 먼저 눈길이 갔다. 새빨간 고추장을 저가락끝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니 맵짜면서도 달콤하고 고소한게 과연 기가 막혔다.
《하! 이거 아주머니 장담그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군요.》
채정보는 기름진 닭의 다리를 뜯어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재간 하나만은 있지요.》
밖에 나갔던 안주인이 샘물에 잠그어두었던 막걸리항아리를 들고 들어왔다.
《저… 이런것도 드시겠는지? 막걸리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목이 컬컬했던지라 조정철은 안주인이 벌떡사발에 퍼주는 막걸리를 받아 꿀꺽꿀꺽 단숨에 시원하게 들이켰다.
《어!》
탄성이 절로 나갔다.
《거 정말 좋구만요. 헌데 부교장선생은 안 드십니까?》
채정보는 시무룩이 웃었다.
《난 그런건 아무리 마셔두 마신것 같지 않습디다.》
《술을 좋아하십니까?》
《배놈치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해방전에 내가 상선을 탈 때 일본선장놈이 어찌도 못되게 굴던지 하두 속이 상해서 가끔 정비용알콜을 마시며 속을 달래군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마트면 술도깨비가 될번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왜 안 마십니까? 술이 없습니까?》
《끊었습니다.》
《어째서요?》
채정보는 앉음새를 바로하더니 벽에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경건히 우러러보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같은걸 다 믿으시고 수상보안간부학교 부교장으로 임명해주시였지요. 정말 분에 넘친 신임입니다. 그런데 내가 학생들앞에서 순간이라도 처신을 바로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임명받은 날부터 술이고 담배고 딱 끊었습니다.》
조정철은 이처럼 지나칠 정도로 고지식하면서도 결단성이 있는 채정보가 대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거 정말 쉽지 않은 용단을 내렸습니다.》
《내가 애아버지에게 술을 끊으라고 잔소리를 얼마나 했다구요. 술을 끊은 다음엔 이렇게 막걸리나 감주를 만들어드리구 있지요.》
이렇게 끼여든 안주인이 저으기 미안쩍은 기색으로 뒤를 달았다.
《우리 기정이가 덩치만 컸지 제구실을 변변히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정철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채기정학생은 모범입니다.》
《듣자니 걔가 재구를 치고 처벌로동을 한다던데요.》
《젊은 나이가 아닙니까. 승벽심이 강한 때니 간혹 언쟁도 하고 다툴수도 있는거지요. 기정학생이 처벌을 받고도 주눅이 들지 않고 해상부업을 본때나게 하는걸 보니 대장부답습니다. 해군지휘관이 되려면 배짱도 있어야 합니다.》
안주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밝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참, 학교가 신설이라 이모저모로 불편할텐데 가족이 이사올 때까지는 우리 집에서 숙식하세요. 주인과도 의논이 있었답니다.》
채정보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조정철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고맙습니다만 난 병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습관이 됐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왜 그런지 더 불편하더군요.》
이것은 사실이였다. 그는 평양학원에서도 그랬고 만경대혁명학원에서도 학생들과 침식을 함께 해온것이였다.
그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정보내외는 왜 벌써 일어나는가고, 닭을 마저 잡숫고 가라고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잘 먹었습니다. 거 미안한 부탁인데 고추장을 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예, 그거야 못 드리겠습니까.》
채정보의 부인은 얼른 그릇을 들고 뒤울안의 장독대에 가서 고추장을 퍼왔다.
고추장그릇을 소중히 들고 학교로 돌아오는 조정철은 신이 나서 코노래를 불렀다.
어디까지 왔니 마을까지 왔다
어디까지 가려니 학교까지 간다
…
맛좋은 고추장이 있으니 달콤새콤하고 얼벌벌하게 해삼회를 치자.
꽃게는 간장에 절여 게장을 만들고 성게로는 운단을 만들며 잡어로는 국을 끓이자.
그는 이런 생각에 흥이 나서 식당으로 갔다.
이튿날 아침식사때 학생들은 구수한 김이 문문 피여나는 생선국과 그 빛갈만 봐도 군침이 절로 넘어갈 지경으로 먹음직스러운 해삼회가 한접시씩 놓여있는 식탁을 마주했다. 어제 고기잡이에 나갔던 학생들을 내놓고는 모두들 뜻밖이여서 놀라는 동시에 입이 귀밑까지 돌아갔다.
《히야! 이거 해삼회가 아닌가? 어디 맛을 좀 보세.》
《기막히구만. 혀까지 넘어가겠어.》
《맛있다고 너무 먹지 말게. 그러다가 그게 용을 쓰면 야단이야.》
하하!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요즘엔 다시마랭채와 다시마국이 보기도 싫었는데 오래간만에 먹으니 잡어국도 별맛이구만. 열기나 망챙이따위가 이렇게까지 맛있을줄은 몰랐네.》
살진 청어떼가 구름처럼 포구에까지 밀려들던 지난 초봄에는 청어생선국에 물린 판이라 이런 잡어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염장청어가 동이 나서 비린내를 맡아본지도 보름이 지난지라 이제는 보잘것 없어보이던 잡어국도 이른봄의 풋절이처럼 제법 구미를 돋구는것이였다.
김군옥은 내심 흐뭇했다.
처벌을 받고 증이 나면 보리방아 더 잘 찧는다는격으로 물고기잡이에서 솜씨를 보인건데 새로 온 정치부교장의 과분한 칭찬을 받았고 동무들에게도 기쁨을 안겨주었으니 이거야말로 화가 복이 된셈이였다.
그는 의욕이 북받치고 사기가 충천했지만 그럴수록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점잔을 빼며 말없이 식사를 했다.
뜨거운 잡어생선국을 게눈감추듯 퍼먹고나니 가뜩이나 붉은 량볼이 더 빨갛게 익은 김도형이가 큰소리로 곱배기를 청하고나서 군옥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벌써 세번째로 했다.
《정말 수고했어. 이거 처벌로동을 하는 동무들덕분에 우린 명절을 쇠는구만.》
김군옥은 못 들은체 했다. 곁에 앉은 채기정이가 귀가 간지러웠던지 짜장 눈을 부라렸다.
《거 말조심하라요. 처벌로동이 뭐요? 이건 우리가 새로 온 정치부교장동지와 상봉기념으로 잡은거란 말이요. 어제 밤에 정치부교장동지가 손수 해삼회를 치고 게장도 담그었소. 사나할 지나면 게장과 운단도 맛있게 익을거야.》
그제서야 사연을 알게 된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김도형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참, 어제 해삼잡이를 하다가 잠수함을 봤다면서? 그게 정말이야?》
채기정은 으쓱해서 뻐기듯이 과장하여 대답했다.
《그렇잖구, 군옥동무가 물밖에 나온 잠망경을 발견하고 노대로 후려치려고 했지. 잠수함은 급해맞아 얼른 물속으로 잠망경을 내리우고 뺑소니를 쳤어.》
채기정은 얌전하고 말이 적은 축이였는데 하루밤사이에 활발하고 언변도 좋은 학생으로 돌변했다.
저으기 멋적은 기색으로 아무 말도 없이 해삼회를 조심스레 집어먹던 고준무는 오늘따라 별스레 수다스러워진 채기정이 눈에 거슬려서 찌글서 흘겨보았다.
《흥,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거짓말이라니?!》
채기정은 눈을 똑바로 뜨고 부쩍 우겨댔다.
《죄다 사실이요. 그렇지 않아요? 군옥동무.》
그의 곁에 앉아있는 김군옥은 그저 소리없이 웃으며 식사만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의 어엿한 태도가 오히려 신빙성을 부여해주었다.
고준무는 메사했다. 김군옥이네가 해삼을 잡다가 적잠수함을 발견했다는 그 시각에 자기는 다시마나 건지고있었으니 더 할말이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수저를 놀리는데 채기정이 잔뜩 기고만장해서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사슴섬주위엔 온통 보물이야. 해삼과 성게가 한벌 쭉 깔렸고 열기와 노르메기, 줄도미가 와글와글해. 우린 고장난 부업선을 수리해가지고 그걸 다 건져내자는거야.》
김도형이 미타해했다.
《부업선을 우리가 수리할수 있을가?》
《있구말구, 그까짓 열구기관따위는 문제없어.》
김군옥이도 듬직하게 한마디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린거야.》
발언권을 잃은 고준무는 나직이 한숨만 내쉬였다. 저혼자 기슭에 밀려난듯 외로운 생각조차 들었다. 그는 식사가 끝나자 홀로 부업창고앞에 가서 담배를 피우고나서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창고문을 열었다.
다시마냄새가 별스레 역하게 확 풍겼다.
며칠동안 자기가 허리부러지도록 건져내여 대충 말리워넣은 다시마가 창고안에 더미로 쌓여있었다.
다시마따위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으니 수고스럽게 수확한 이것도 창고안에서 묵다가 종당엔 변질돼서 쓰레기처럼 내버려질게 뻔했다. 더는 다시마에 손대고싶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는 고개를 숙이고 군옥네와 함께 부업선을 수리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노릇인데…
한백천소좌가 창고앞을 지나가다가 멈춰섰다.
《아! 소대장동무로군. 이 많은 다시마를 동무가 혼자서 건져냈다지?》
고준무는 느닷없이 얼굴을 붉히며 그렇다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군옥이와 기정인 도대체 뭘하고있다오? 계속 허풍을 치며 배놀이만 하다 오는가?》
《아닙니다, 식당에 가보십시오. 그 동무들이 잡아온 해산물로 해삼회를 치고 생선국을 끓이고 굉장합니다.》
한백천은 어마지두 놀랐다.
《그들이 맨손으로 그걸 어떻게 잡았다는거요?》
《글쎄 말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잠수함까지 잡을번 했다고 합니다.》
한백천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뭐?! 잠수함을 잡을번 했다구? 여보,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하여간 근거가 있는 소리인것 같습니다. 잠수함은 잠수함이고 오늘 아침엔 그 동무들덕분에 모두 잘 먹었습니다. 군옥이와 기정이는 부쩍 사기가 나서 오늘부터 부업선을 수리해서 해상부업을 더 통이 크게 벌리겠다는데… 나도 그래야 할가 봅니다. 거 보아하니 새로 오신 정치부교장동지가 그들을 적극 떠밀어주는것 같습니다.》
한백천은 맹랑해서 입을 다셨다.
이미 로문판 《세계해전사》를 번역한 그는 계속하여 쏘련해군의 함선규정을 번역하는데 몰두하고있었다. 어제도 상학후에는 그 일에 달라붙어서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그 일을 끝내면 쏘련해군의 해상전투규정들과 교범들을 번역할 작정이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수상보안간부학교에서는 바로 이런것을 학생들에게 배워주어야 했다.
그런데 고장난 부업선을 수리해서 해상부업을 통이 크게 벌린다구?!
흥, 여기가 뭐 어부들을 양성하는 곳인가? 새로 온 정치부교장이 키를 바로잡게 내가 조언을 주어야지 이러다간 배가 산으로 올라가겠는걸.
한백천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정치부교장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정치부교장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항일투사이다. 듣자니 산에서 싸울 때도 정치일군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치부교장앞에 서면 위압감을 받고 저도 모르게 언행을 자중하게 되는것이였다.
부업선을 수리하는 문제는 교직원들속에서도 론의에 올랐다. 또한 교육방법과 교육내용도 실정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정치부교장이 새로 오더니 뭔가 달라진다. 채정보부교장과 그를 따르던 김군옥을 비롯한 학생들이 기세를 올린다. 고준무는 주눅이 들었다. 한백천은 자기의 발밑이 꺼져내릴듯 흔들거리는것 같았다.
위구심을 느낀 그는 재고재다가 정치부교장을 찾아갔다.
《정치부교장동지, 부업선이 보기엔 허술해도 수리하자면 간단치 않습니다. 기관만 수리할게 아니라 선체도 수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상가시켜야지요. 그런데 상가설비가 있습니까?》
한백천은 이처럼 실정을 잘 모르는 정치부교장을 리해시키려고 설득력있게 차근차근 시작을 뗐는데 이야기도중 화약같은 성미가 살아나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와짝 언성을 높이였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학생들이 함선규정을 암송하고 외국어단어를 하나라도 더 머리속에 집어넣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류학이라도 보낼수 있을게 아닙니까.》
《류학이라?!》
《예, 지금형편에서 제구실을 하는 해군지휘관들을 키워낼 방도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여기야 말이 수상보안간부학교지 뭐가 있습니까. 실습선은 고사하고 교육용배기관이나 항해기구도 없거던요.
형체도 없는걸 배워주자니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한백천이 안달아할수록 조정철은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형체가 왜 없다는거요? 부업선이 있잖소.》
한백천은 정녕 어이가 없었다.
물고기비린내가 역하게 풍기는 고장난 부업선을 모델로 하여 현대과학기술이 집대성된 순양함이나 구축함에 대한 강의를 하란 말인가?
《허참… 정치부교장동지두… 이거야말로 고양이를 보면서 범을 그리라는 소리로군요.》
비꼬는 그 소리에 조정철은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옳소! 바로 그렇게 하자는거요. 호랑이도 족보를 따져보면 고양이과에 속해있소. 그러니 고양이를 잘 연구하면 능히 호랑이를 알수 있소.》
이게 뭐야?!
한백천은 놀라운 눈길로 정치부교장을 바라보았다. 정치부교장의 주장이 옳았던것이다. 고장난 부업선을 놓고서도 전투함선들의 일반적구조와 동작에 대하여 얼마든지 실감있게 설명해줄수 있었다.
《글쎄 그렇긴 하지만… 나는 해군함대를 창설할바엔 세계적인 수준에서 통이 크게 하자는겁니다.》
《욕망이 큰건 좋소. 그러나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여야 하오. 지금의 조건과 실정에서 어떻게 해야 학생들을 유능한 해군지휘관으로 하루빨리 키워낼수 있겠는가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진지하게 연구합시다. 그래야 허공에 뜨지 않은 실천적인 방도가 나옵니다.》
조정철은 썩 달가와하지 않는 한백천의 어깨를 다정히 잡았다.
《동무는 오늘부터 함선건조사업때문에 조선소에 나가게 된 교무부 교장의 사업을 대리하여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행정사업을 책임지고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예?! 제가요…》
한백천은 저으기 놀랐다.
그는 항일투사인 조정철이 정치부교장으로 임명되여온 첫날부터 대를 세우자 내심 긴장해졌던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기를 믿고 중임을 서슴없이 맡겨주니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믿고 내세워주는데 계속 투정질을 하며 왼새끼를 꼴수는 없었다. 이 기회에 발벗고 나서서 정치부교장에게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야 학교교육행정사업도, 학생들을 류학보내는 문제도 자기의 의도대로 해나갈수 있었다.
그는 이튿날 상학장소를 부업선수리장소로 대담하게 옮겼다.
학생들은 나무잔교와 부업선갑판에 빼곡이 올라섰다.
한백천은 갑판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설명했다.
《오늘부터 이 부업선을 교육용전투함선으로 삼고 강의를 하겠습니다.
에― 동물들은 크나작으나 신체의 구조가 비슷합니다.》
함선구조학상학시간에 왕청같이 동물소리가 나오자 모두들 놀라서 눈이 퀭해졌다.
《산중의 왕이라는 범이나 사자에게도 대가리와 몸통, 팔다리, 꼬리가 있고 보잘것 없는 다람쥐나 고양이에게도 그런게 다 달려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순양함이든 부업선이든 함선의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는 소리입니다.》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빙긋 웃었다.
과연 귀에 쏙 들어오는 소리였던것이다.
《때문에 이 부업선을 놓고도 함정의 일반구조를 얼마든지 직관적으로 학습할수 있습니다.
선수에서 선미까지 배밑창 중심을 타고 지나간것이 룡골인데 사람에 비유하면 척추입니다. 룡골의 좌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맞물린것이 륵골인데 달리 말하면 갈비뼈입니다.》
이처럼 배수리작업을 하면서 실물강의를 받으니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고준무가 책임진 대다수의 학생들은 선체수리에 달라붙었다.
우선 배밑창에 고여있는 물과 기름찌끼를 말끔히 퍼내고 이음짬이 생긴 곳에 타르를 먹인 삼끈을 박아넣고 꺾어지거나 부식된 부위의 판자를 갈아댔다. 김군옥과 채기정은 기관을 몇번이나 뜯었다맞췄다 하다나니 온몸이 기름투성이였다. 흑인들처럼 얼굴과 두손이 까맣고 번질번질한데 이발만 희게 번쩍거렸다.
조정철은 불편한 몸이지만 비좁은 기관실안에까지 들어가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수고하오! 여긴 병기창같구만.》
《예?!》
두 학생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의아한 눈길로 정치부교장을 바라보았다.
《항일유격대에는 야장도구로 폭탄까지 만들어내는 병기창이 있었소.》
김군옥은 어마지두 놀랐다.
《아니?! 폭탄을 자체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그렇소, 처음엔 망치로 두드려서 창과 칼을 벼리고 다음엔 고장난 무기를 수리했지. 그 과정에 경험을 쌓아서 폭탄도 만들어냈소. 자력갱생의 창조물인 그것을 장군님의 발기와 지도밑에 유격구의 병기창에서 만들어냈소. 왜놈들을 족치고 근거지를 사수하는데서 연길폭탄이 정말 큰 몫을 했소.》
구수한 그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학생들은 선체수리를 하던 일손을 잠시 놓고 저마다 기관실로 다가갔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때 하자고 결심만 하고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혁명의 요구라면 그 무엇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소. 병기창성원들은 그 말씀에 고무되여 더욱 분발했소.
어느해인가 조국진군을 앞두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재봉대에 600여벌의 군복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소.
재봉대엔 손재봉기가 한대밖에 없었고 재봉기바늘도 하나뿐이였소.
그 손재봉기를 교대로 밤낮없이 돌리다나니 그만 재봉바늘의 귀가 떨어져나갔소. 재봉대원들은 울상이 되였지. 이것을 알게 된 병기창에선 고심하고 무진애를 써서 야장도구로 재봉바늘을 만드는데 성공했단 말이요.》
모두들 경탄하여마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요. 후엔 국수분틀까지 만들어 국수를 눌러먹기도 했소.
항일유격대원들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은 그 무엇도 해냈단 말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은 혁명의 요구이며 조국의 요구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어서빨리 조국의 바다를 지켜갈 유능한 해군지휘관이 되기를 바라고계시오. 항일유격대원들처럼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소. 동무들이 그런 정신으로 이 열구기관을 자체로 수리해내면 앞으로 어뢰정의 고속기관도 척척 다룰수 있게 될거요.》
못 잊을 항일전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추억하던 조정철은 부지중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비좁은 기관실에 불편한 자세로 서있으니 부상당한 두다리가 금시 꺾어질듯 아파났던것이다. 그는 놀라는 학생들에게 미안한 어조로 량해를 구했다.
《안됐소. 다리가 말썽을 부리는구만.》
그는 정비작업을 하느라 어지러워진 기관실발판우에 두다리를 쭉 펴고 편안히 앉았다. 그제서야 아픔이 좀 가셔지는듯싶었다.
김군옥은 언제부터 알고싶었던지라 조심스레 물었다.
《다리는 어떻게 상했습니까?》
《언젠가 나는 적후공작을 나갔다가 부대로 돌아오던중 호수가에서 적들을 만나 한바탕 맞불질을 한적이 있었소. 그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정신을 잃었댔지. 얼마후에 겨우 의식은 회복했는데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더구만. 잔등이 축축히 젖어들기에 호수가에 무성한 갈대를 손에 잡히는대로 꺾어서 깔고 그우에 누웠지. 갈대라도 있으니 다행이였소. 배가 고프면 갈대를 씹어서 즙을 마시고 총상이 쑤셔도 갈대즙을 뱉아 약대신 발랐소.
그렇게 여러날이나 호수기슭에 누워있었더니 젖은 몸이 퉁퉁 불어나더군. 그대로 더 누워있으면 살이 다 문적문적 떨어져나가겠더란 말이요. 나는 단도로 부상당한 다리를 째고 탄알들을 끄집어냈소. 그리고 피고름을 짜냈지.》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학생들은 그 광경을 상상해보기조차 끔찍해서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대충 처치하고 나무가지를 하나 얻어쥐고 짚으면서 부대를 찾아 떠났소.
보름후에야 부대를 만났지. 총상은 그런대로 아물긴 했었는데 후에 쩍하면 도지더구만. 그래서 이렇게 다리병신이 된거요.》
김군옥은 상처자리를 보여달라고 간청하며 정치부교장의 바지가랭이를 무작정 걷어올렸다.
자기가 예상했던것보다 상처자리는 더 험해서 보기에 끔찍했다. 이런 다리를 끌고서 산에서 어떻게 유격투쟁을 할수 있었는지 정녕 놀라왔다.
험한 상처자리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어루만져보던 그는 흠칠 몸을 떨었다. 무언가 돌멩이나 쇠붙이처럼 딱딱한것이 손끝에 맞혔던것이다.
《이… 이건 뭡니까?》
《그때 미처 빼내지 못한 파편이요.》
모두들 놀라와서 눈이 둥그래졌다.
《이쪽에 또 있지. 오래 된 파편은 굳은살에 싸여서 별로 위험하지 않소.》
조정철은 파편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파편이 알릴듯말듯 움직거렸다. 그걸 바라보는 학생들은 끔찍해서 으쓸 몸서리를 쳤다. 조정철은 그들에게 이쯤한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유격대원들속에는 부상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해서 썩어올라오는 두다리를 제 손으로 뭉청 잘라버린 대원도 있었소.》
모두들 눈이 뒤집혀질 지경으로 놀랐다.
《그것도 통졸임통을 잘라서 두드려 만든 톱아닌 톱을 가지고 그랬지.
혁명가를 부르며 제 손으로 절단수술을 한 그 동무는 후날 적들이 후방병원을 〈토벌〉하자 대원들을 피신시키고 싸우다가 자폭했소.》
김군옥은 저도 모르게 두눈을 꽉 감았다.
제 손으로 자기 다리를 자르는 투사의 모습이 눈앞을 꽉 채웠다. 양철톱이 다리뼈를 썰어대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오는듯싶었다. 이어 만세소리와 함께 폭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그 소리는 자기의 정신과 육체를 세차게 뒤흔들어놓는것만 같았다.
인간의 정신과 의지가 그렇게까지 강할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수 있을가요?》
조정철은 미더운 눈길로 학생들을 둘러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있구말구. 항일투사들이라고 특수한 사람은 없었소.
대다수가 동무들처럼 째지게 가난해서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고생꾸러기들이였지.
우린 유격대에 입대해서야 글을 배웠소. 행군의 쉴참이나 전투가 끝난 저녁이면 구대원들이 신대원들을 한명씩 맡아서 배워주었소. 때로는 몇달씩 밀영에서 집중적으로 군정학습을 하기도 했소.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글을 배우고 유격전법을 배우며 혁명가로 자라난 우리들은 그 무슨 사관학교졸업생이니, 륙군대학졸업생이니 하고 우쭐대는 일본장교들이 지휘하는 백만대군과 싸워 이겼단 말이요.
동무들도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배우고 훈련하면 구태여 류학을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짧은 기간에 훌륭한 해군지휘관이 될수 있다고 보오.》
이처럼 교직원들과 학생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고무해주고 학교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한 조정철은 며칠후 평양으로 올라갔다.
위대한 장군님께 해군지휘관양성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보고드리고 필요한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한백천은 선체강의가 끝나자 기관강의로 넘어갔다. 학생들이 갑판에서 들여다볼수 있게 발판을 다 제껴놓았다.
《이것이 요즘 고기배들에서 흔히 쓰는 15마력짜리 기통 두개를 놓은 열구기관입니다. 내연기관으로서는 가장 단순한 형태입니다.
특징은 노상 뜨겁게 달아있는 열구가 기관안에 들어와 압축되는 연료와 공기에 불을 달아주는것입니다.》
기관수리를 하노라 온몸에 까만 기름매닥질을 한 김군옥과 채기정이도 잠시 일손을 놓고 한백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보다 발전된 기관은 반세기전에 디젤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디젤기관이라고 부릅니다.》
김군옥은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였다.
《디젤기관에는 기화기와 점화전이 없습니다.
대신 고압연료뽐프와 분사구가 설치되여있습니다. 이로써 기관은 수천마력, 지어는 수만마력도 낼수 있는 길이 열렸던것입니다. 기관의 성능이 높아지자 함선들의 속도가 빨라지고 해상무력은 현대화되였습니다.
실례로 이 부업선보다도 작은 어뢰정에는 800마력짜리 고속기관이 두대 설치되여있습니다.
도합 1 600마력인데 자그마한 어뢰정을 1 600마리에 달하는 말들이 끌고 달리는 셈입니다. 어뢰정의 최대속도는 45놋트입니다.》
어뢰정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더 긴장하여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김군옥은 머리속으로 재빨리 환산해보았다.
45놋트는 시간당 45마일을 간다는 소리다.
45마일은 200여리에 달한다. 바다에서 이 속도는 실로 대단했다.
학생들이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한백천은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했다.
《어뢰정은 400키로그람에 달하는 폭약을 장진한 어뢰를 두발 적재합니다. 어뢰 한발이 명중하면 선체의 파공직경은 무려 7메터나 됩니다. 이러한 파공을 막는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어뢰를 두발 다 명중시키면 구축함은 물론이고 순양함도 침몰시킬수 있습니다.》
통쾌한 그 장면이 금시 눈앞에 펼쳐지는것 같아서 모두들 야! 하고 탄성을 올렸다.
《아직은 세계해전사에서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기적은 일어날수 없습니다.》
김군옥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다가 발판틀에 정수리를 되게 짓쪼았다.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는 찡! 울리는 정수리를 두손으로 움켜쥐면서도 갑판우에로 고개를 쳐들고 항의하듯 큰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수 없습니까?》
한백천은 김군옥을 굽어보며 조리있게 설명했다.
《그건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화력이 어뢰정과는 대비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때문이요.
지금 일본 도꾜만에 기지를 두고있는 미7함대기함인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례들어봅시다.
배수량은 1만 7 300톤이고 길이는 200메터가 넘는데 203미리 주포를 비롯한 함상포들이 무려 69문이나 설치되여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 수자에 모두들 입을 딱 벌리며 숨을 죽였다.
《그뿐이 아닙니다.
5관식어뢰발사기와 폭뢰투하기를 비롯한 각종 수뢰무기가 장비되여있고 상갑판엔 직승기도 싣고있습니다.
륙군 한개 사단의 화력에 맞먹는 이 함상포들과 수뢰무기가 일시에 불을 뿜으면 쏘구역은 불바다가 됩니다. 어뢰정이 확고한 명중사격을 하려면 이 포탄소나기속을 뚫고 적함으로부터 3까벨트까지는 접근해야 합니다.》
3까벨트면 550메터 정도다.
《때문에 중순양함을 공격하려면 어뢰정이 적어도 40척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어뢰정들이 중순양함을 둘러싸고 공격해야 적함포탄에 맞아서 다수가 깨져도 두세척은 쏘구역을 무사히 뚫고들어가 어뢰를 발사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면밀히 타산한 확률입니다.》
김군옥은 나사틀개를 내던지고 발판틀을 잡고서 갑판우에로 훌쩍 솟구쳐나왔다.
《교원동지, 좀더 자세히 가르쳐주십시오.》
언쟁사건이 있은 후 은근히 자기를 멀리하던 김군옥이 이렇게 바싹 달라붙어 간청하니 한백천은 속에 무죽히 맺혔던것이 쑥 내려가는것 같았다.
그래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물었다.
《뭐가 더 알고싶소?》
《어뢰정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이 부업선을 어뢰정이라고 놓고볼 때 어뢰는 어디에 싣습니까?》
한백천은 선미갑판을 가리켰다.
《저기에 나란히 적재하오.》
《기관실은?》
《선수선창에 있소.》
《배수량은?》
《17톤이요.》
그러니 어뢰정의 배수량은 부업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작은 함선에 고속기관을 두대나 놓고 어뢰를 두발이나 싣는다니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석연치 않아하는 그에게 한백천은 말했다.
《저녁에 나를 찾아오라구, 어뢰정설계도면을 보여주지.》
김군옥은 너무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돌아갔다.
《교원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버그러졌던 그들의 관계는 다시 친밀해졌다.
《그래 기관수리는 어느 정도로 진척됐소?》
《닦을건 닦아내고 깎아맞출건 다 깎아맞췄는데두 시동이 잘되지 않아 애를 먹고있습니다.》
《그으래?》
한백천은 마음이 동해서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배기름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기관실에 들어갔다.
기관을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기름걸레에 불을 달아 열구에 올려놓았다.
《이건 말그대로 열구기관이여서 이 머리통을 화끈 달구어야 해.》
한백천은 이새로 침을 찍 내쏘았다.
열구에 떨어진 침은 즉시에 빠지직 끓으며 말라버렸다.
《어서 시동해보오.》
김군옥은 재빨리 시동준비를 하고 시동끈을 감았다가 힘껏 잡아챘다.
기관은 이번에도 마지못해 퉁탕거리다가 푸르륵 꺼지고말았다.
기대와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길로 기관실안을 굽어보던 학생들은 누구나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고준무는 맹랑해서 입을 쩝쩝 다시며 조타실에 들어갔다. 조타실은 비좁고 초라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장차 자기가 함장이 될 순양함의 지휘소로 상상해보면서 타륜을 잡고 마음속으로 위엄있게 구령을 쳤다.
《함 닻 올렷! 미속으로 전진!》
공상에 한껏 들뜬 미래의 순양함 함장은 지금 기관실에 들어박혀서 기름투성이가 된채 녹투성이 열구기관이나 주물러대고있는 군옥이와 기정이가 가소로웠다.
너희들이 기관을 수리해? 어디 해보게, 기관을 살려내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질테다.
《함 전속으로! 해상감시를 강화할것!》
고준무는 그려볼수록 달콤한 상상에 잠긴채 마음속으로 계속 구령을 쳤다.
한편 한백천은 기관시동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바싹 약이 올랐다.
자칫하면 학생들앞에서 교원인 자신이 망신을 할수 있었다. 구축함을 타고 대양을 헤가르던 자기가 이따위 녹쓴 열구기관을 살리지 못해서 궁싯거리다니…
《빌어먹을, 이따위도 기관이야?》
그는 저도 모르게 화를 내며 쌍욕을 퍼부었다.
《군옥학생, 이놈의 열구가 새까맣게 타버리던가 엿처럼 줄줄 녹아내리게 더 와짝 달구라구.》
《예.》
김군옥도 속이 타던 판이라 이놈 어디 혼쌀나봐라! 하는 심사로 기름걸레로 불방망이를 만들어 불을 달고 열구를 달구었다.
페유가 타는 지독한 냄새와 연기가 삽시에 기관실안에 꽉 들어차서 도저히 숨을 쉴수도 없었고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뿌지직, 뿌지직거리며 타는 불방망이의 열기가 어찌도 세찬지 이러다간 부업선을 통채로 태워버릴것 같았다.
한백천은 옆에 엉거주춤 서있는 채기정을 독촉했다.
《뭘해? 어서 기관을 시동해보오!》
채기정은 부랴부랴 시동끈을 감았다가 팔이 뚝 떨어져나갈 지경으로 힘껏 잡아챘다.
꽝!―
함포를 쏜듯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열구기관의 아가리에서 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발사한 포탄같은 화염덩어리는 갑판우에로 뿜겨나가며 조타실의 앞창을 들이쳤다.
쨍가당! 하는 소리와 함께 앞창이 산산쪼각났다.
마침 적함에 대고 함상포 일제사격구령을 치려던 고준무는 별안간 눈앞이 번쩍하면서 뜨거운것이 자기의 얼굴에 확 덮쳐들자 와뜰 놀라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갑판에 서있던 학생들도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 혼쭐이 쑥 나가서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와당 탕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관이 돌아가고있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녹투성이 쇠덩이에 불과하던 열구기관이 생명수라도 마신듯 살아난것이였다.
와당 탕탕탕! 와당 탕탕탕!
순간 산중의 호수런듯 너무도 고요하고 한적하여 외로움과 쓸쓸함조차 안겨주던 바다가 별안간 생기를 띄고 급기야 설레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살았구나! 살아났어!
김군옥은 부업선의 고장난 열구기관이 아니라 마치도 사경에서 헤매던 자기자신이 살아난것만 같았다.
그러한 벅찬 희열이 해일인양 전신을 휩쓸었다.
눈굽조차 쩌릿해진 그는 불망치를 번쩍 추켜들며 저도 모르게 목메인 소리로 웨쳤다.
《만세!―》
채기정도 그처럼 바라던것을 손에 쥔 어린애처럼 환성을 올렸다.
한백천은 기뻐서 춤추듯이 날뛰는 두 학생을 아연해하는 기색으로 지켜보았다. 조타실에 벌렁 나자빠져서 뒤통수에 밤알만 한 혹이 나온 고준무나 선체작업을 하다가 기관시동소리에 와뜰 놀라 눈이 휘둥그래진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기관을 살려냈다고 기뻐하는 두 학생의 지나친 격동과 환희가 잘 리해되지 않았다.
모를 일이다. 아무리 기쁘기로서니 만세를 부르며 눈물까지 흘리다니?!
무엇인가를 위해 고심분투하고 전심전력하지 않고서는 그것의 성공을 두고도 벅찬 기쁨을 맛볼수 없다는것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