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제정할데 대한 정령이 발표되자 즉시 전군에 폭풍같은 반향이 일어났는데 어뢰정대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어떤 위훈을 세워야 영웅이 될수 있나?》
《작전과장동지가 그러는데 육탄이 되여 적화점을 까부셔야 영웅이 된다는구만. 쏘련 붉은군대에서 마뜨로쏘브라는 병사가 화구를 막고 영웅칭호를 수여받았대.》
《우리도 전쟁 첫날에 불뿜는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은 전사가 있다는구만. 그 동문 틀림없이 영웅칭호를 받게 될거야.》
《보병이 부럽소. 바다엔 적의 화점이 없으니 정말 유감스럽구만.》
《우리야 화점이 아니라 적함을 까부셔야지. 우리가 어뢰정으로 놈들의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까부시면 영웅은 문제없을거야.》
전술훈련의 휴식참에 건강검진을 받으며 모래불에서 휴식을 하는 정대원들이 큰소리로 법석 떠들어대고있었다.
김군옥은 그 소리를 들으며 모래불에 앉아 해도작업용연필을 깎는중이다. 그가 날이 예리한 손칼을 익숙한 솜씨로 조심스레 놀릴 때마다 연필밥이 동그랗게 말리며 밀려나 소리없이 모래불에 떨어졌다. 그는 연필심을 뾰족하게 다듬었다.
겉으로는 여유작작하고 태연해보이나 내심은 몹시 초조했다.
《흥! 바다에 나가지두 못하고 림시잔교에 매달려있는 신세에 영웅이 될 꿈을 꾸니 천진들하구만.》
24호정장 양판익이 속상해서 하는 소리다.
23호정장 최정수도 입을 쩝쩝 다시였다.
《그러게나 말이요. 놈들의 기동분함대가 나타나서 날친다는데 우린 왜 여기에 앉아서 말공부만 하는거요? 바다사나이들이야 바다에 나가서 큰소리를 쳐야지.》
곁에서도 속이 달아 윽윽댔다.
《오만한 미제해적들에게 우리 어뢰정대의 본때를 보여줘야 해!》
《해군사령부에 올라간 기지장동지는 왜 아직 돌아오지 않을가?》
《이거 정말 애가 타는구만.》
김군옥의 심정도 정대원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저 생각같아서는 이제 당장 어뢰정에 올라 출항의 배고동을 높이 울리고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전투임무를 받지 못했으니 기다릴수밖에…
그는 초조하거나 불안할 때면 이처럼 해도작업용연필을 깎든가 권총을 분해해놓고 손질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군 했다.
(기지장동지가 언제 돌아올가?)
그 생각에 옴했는데 처절썩! 하고 밀려들어 모래불을 휩쓸고나가는 파도소리가 웬일인지 류별나게 크고 소란스럽게 들렸다.
김군옥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파도는 모래불에 잦아들며 밀려나갔는데 파도가 들어왔던 자리에 흰거품같은것이 한벌 쭉 깔려서 팔딱팔딱 뛴다. 신선한 물고기비린내가 확 풍겼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출항명령을 받지 못해 몸살이 나하던 정대원들은 와! 하고 환성을 올리며 모두 뛰쳐일어나 바다기슭으로 내달리며 그것을 줏노라 야단법석했다. 허리를 굽힌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서로 지끈 부딪쳐 궁둥방아를 찧기도 한다. 그 승벽내기가 볼만했다.
김군옥은 짐작이 갔지만 우정 큰소리로 물었다.
《그게 뭐요?》
《멸치입니다. 이거 보십시오. 살이 통통 올랐습니다.》
펄떡거리는 멸치를 량손에 서너마리씩 쥔 채기정이 아주 성수가 나서 큰소리로 자랑스레 대답했다.
요즘은 멸치철이다.
항만에까지 멸치떼가 밀려들었다. 주변에 있는 수산합작사들에서는 적기들이 날치기때문에 밤에 그물로 멸치를 잡아 젓을 담그어 전선에 보내주고있었다. 떼를 지어 구름처럼 이리저리 밀려다니던 멸치떼들은 맹어에게 쫓기우는지 가끔 파도에 실려 모래불에까지 튀여나오기도 했다. 이럴 땐 땅에서 물고기를 잡는 횡재를 한다.
정대원들이 겨끔내기로 주어낸 멸치를 한데 모으니 거의 한바께쯔나 되였다. 모두들 큰일을 치러낸듯이 흥취가 나서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이게 바로 벼락맞은 소고기라는거야.》
《어서 잡숴주시오! 하고 바다가 선심을 쓴거지.》
《이거면 오늘 저녁에 생선국을 푸짐히 끓여먹을수 있겠소.》
《아따, 식당창고에도 멸치가 가득합니다.》
《그래도 제 손으로 잡은게 더 맛있는 법이지.
여! 순봉이! 빨리 바께쯔를 가져오라구.》
건강검진을 잠시 중지한 김정인은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달려나온 취사병과 함께 멸치를 담은 바께쯔를 맞들고 식당으로 갔다.
모두들 흥이 나서 떠들어댔지만 김군옥은 속이 상했다. 어뢰정대원들이 적함은 못 잡고 모래불에서 멸치잡이나 하고있으니 꼴불견이로다.
그는 전투가방에서 해도를 꺼내여 모래불에 펴고 들여다보았다.
21호정의 사령탑에서 무전대기근무를 서던 무전수가 상반신을 내밀고 소리쳤다.
《정대장동지! 즉시 해도작업도구를 가지고 기지지휘소에로 오랍니다.》
《알겠소!》
김군옥은 제꺽 해도를 접어 전투가방에 넣고 희열에 넘쳐 모래불을 차며 일어났다.
이렇게 부르는걸 보니 해군사령부에 갔던 기지장이 돌아온게 분명했다. 그처럼 기다리던 전투명령을 이제야 받게 될것 같다.
그는 기대어린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정대원들에게 호기있게 한손을 흔들어보이고나서 기지지휘소로 냅다 달려갔다.
구분대지휘관들이 다 모여든 지휘소에서 김군옥을 각별히 반갑게 맞이해준 사람은 기지장이 아니라 뜻밖에도 함선건조위원회 위원장인 채정보대좌였다.
《어! 군옥이! 정말 오래간만이요!》
채정보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 자기가 그처럼 믿고 사랑하던 제자를 만나게 된것이 매우 기뻐서 평소의 그답지 않게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정대원들은 다 잘있소?》
김군옥도 어제날 부교장을 만난게 반가와서 그의 손을 잡고 인차 놓지 못했다.
《예, 다 잘있습니다. 기정동무두요.》
이렇게 아들을 상기시켜주자 채정보는 빙그레 웃었다.
《그 애가 21호정에 갔다지?》
《예, 어서 만나보십시오.》
채정보는 문득 정색해지며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럴새가 없소.》
초조한 기색으로 그들의 상봉을 지켜보던 한백천은 이 기회를 타서 《군관동무들!》하고 소리쳤다.
웅성거리던 지휘관들은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채정보대좌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쉬엿하시오.》
채정보는 방 한가운데 놓인 해도탁앞으로 다가서며 다들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지휘관들은 해도탁에 둘러섰다.
《동무들도 알겠지만 어제부터 미7함대가 조선전쟁에 참가하여 동서해에서 작전수행에 착수했습니다. 놈들은 함포사격으로 남진하는 인민군부대들의 앞길을 막고 우리가 해방시킨 지역들을 불바다로 만든 다음 원산과 인천을 비롯한 전략적지점들에 대규모의 상륙작전을 진행하여 지금 대대적으로 투입하고있는 미지상군과 함께 반공격을 하려고 시도하고있습니다.》
김군옥은 마음의 탕개를 더 바싹 조이며 채정보대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해군사령부에서는 이에 대처하여 기뢰부설조들을 시급히 편성하여 주요항구들의 입구와 연안을 봉쇄함으로써 적함들의 기동을 저지시키고 상륙작전을 사전에 파탄시킬데 대한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채정보는 기뢰부설에 참가할 함정들을 선정하고 기뢰부설조들의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륙상구분대들에 필요한 인원수를 할당하였다. 마감으로 그는 기뢰부설에 나가는 함정들의 기뢰적재완료시간과 출항시간을 알려주고 모임을 끝냈다.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은 한초라도 지체할세라 서두르며 급히 돌아갔다.
김군옥은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명령도 지시도 받지 못했다. 아쉽다기보다 랑패한 기색으로 서있던 그는 채정보에게 우린 어떻게 하라느냐고 물었다.
《어뢰정대에 대해서는 따로 지시할게 없소.》
《그럼 저더러 해도작업도구는 왜 가지고오라고 했습니까?》
채정보는 그제서야 손으로 머리를 툭 쳤다.
《아, 이 정신 보지. 어서 해도를 꺼내오.》
김군옥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전투가방에서 해도를 꺼내 펼쳤다.
채정보는 지시봉을 들고 해도탁에 이미 펼쳐진채로 있는 커다란 해도에서 필요한 지점들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여기… 그리고 여기 또 이곳에 기뢰를 부설하게 되오.》
김군옥은 기뢰부설구역을 재빨리 해도에 표시했다. 어뢰정대가 기뢰부설구역을 피해서 항만을 드나들수 있게 해도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앞으로 기뢰부설구역이 더 늘어나는데 따라 그시그시 동무에게 통보해주겠소. 이상이요.》
일껏 기대를 가졌던 김군옥은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남들은 포탄수송을 한다, 기뢰부설을 한다 하고 법석 끓어대는데 우리 어뢰정대는 여전히 대기상태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아니, 해군사령부에서 무슨 련락이 온게 없습니까? 우에서 우리 어뢰정대를 잊어버린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뢰정대를 잊다니?! 원, 그게 무슨 소리요.
너무 조급해서 그러지 마오. 아마 큼직한 대상을 맡겨줄거요.》
김군옥은 터갈라진 입술을 감빨았다.
《기다리기에 지쳐서 요즘엔 입맛을 다 잃었습니다. 모두들 속이 새까맣게 탔지요.》
《참, 내 깜박 잊을번 했군.》
채정보는 부랴부랴 배낭에서 보자기에 싼 고추장단지를 꺼내주었다.
《받소, 고추장이야. 이걸 가지고가서 입맛을 돋구게. 내가 원산기지에 나간다니까 어뢰정대원들에게 가져다주라고 집사람이 이걸 꾸려주더란 말이요. 거 재작년 봄에 새로 온 정치부교장이 맛좋은 해삼회를 쳐준적이 있지?》
김군옥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날 맛있게 먹은 해삼회를 생각하니 입안에 스르르 군침이 돌았다.
《그 해삼회에 우리 집사람이 담근 고추장을 넣었던거요. 그래서 맛있었다니.》
《아, 그렇습니까.》
《내가 그날 조정철동지를 우리 집에 데리고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지. 조정철동지가 고추장이 맛있다고 칭찬하기에 한단지 주었더니 글쎄 그걸 가지고가서 해삼회를 쳤더란 말이요. 그런즉 사연이 있는 고추장이니 어서 가지고가서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을 추억하며 나누어먹소.》
김군옥은 부글부글 끓던 속이 스르르 가라앉는것 같았다. 초조감이 씻은듯 사라지고 여유작작해진다.
《고맙습니다. 대좌동지, 저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오래간만에 오셨는데 아들을 잠간이라도 만나보십시오.》
채정보는 약간 미간을 찌프렸다. 그는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설사 있어도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뢰정대원들은 다 젊은 동무들이다. 기정이가 아버지를 만나는걸 보면 모두들 얼마나 부러워하겠는가. 전투를 앞두고 부모생각, 집생각을 더할수 있게 된다.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 한목숨 바쳐서라도 놈들을 족칠 생각을 해야 했다.
《후에 만나지.》
채정보는 작별을 못내 서운해하는 젊은 정대장의 어깨를 두손으로 꽉 쥐였다.
《동무와도 회포를 나누고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구만. 앞으로 기회가 생기겠지. 그만 헤여지기요.》
김군옥은 묵직한 고추장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기뢰부설조원으로 선발된 륙상구분대 해병들이 전투복장에 구명조끼를 입고 렬을 지어 활기있게 부두로 가고있었다. 지난 상륙작전때처럼 부두에는 주변 수산합작사들의 고기배들까지 다 모여들기 시작했다. 발동선도 있고 돛배와 지어는 전마선들도 있었다. 김치독처럼 둥글고 고정고리가 달린 검은색기뢰들을 운반대차에 싣고 밀고가는 해병들도 보인다.
부두는 전투적인 분위기로 들끓는데 어뢰정들이 대피하여 위장하고있는 도래굽이의 가설잔교는 조용했다. 지금 정대원들도 기뢰부설준비로 설레는 부두를 바라보며 전투명령을 받고올 정대장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을것이다.
김군옥은 가설잔교로 가던 도중 고추장단지를 두려고 식당에 들렸다.
주방에 들어가니 멸치를 간장에 졸이는 냄새가 매울사 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하게 풍겼다.
김정인이 위생복을 산뜻하게 입고 부뚜막앞에 서서 멸치를 졸이고있었다. 식당근무를 서는 량볼이 붉은 애숭이해병은 24호정 기관총수인 강순봉인데 곁에서 담당준의의 료리솜씨를 신기한듯 지켜보는중이다.
《수고하오!》
김군옥이 큰소리로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그들은 정대장을 알아보고 자세를 바로했다.
《자! 이걸 받소. 21호기관장동무의 어머니가 보낸 고추장이요.》
《야!》
강순봉은 환성을 올리며 달려와 고추장단지를 덥석 받아안았다. 그리고는 제꺽 뚜껑을 열고 손끝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야! 깨고추장이구나. 준의동지도 맛보세요.》
정인은 미소를 지으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정대장동지, 이 고추장은 항해식품으로 건사해두겠습니다. 싸움판에 나가서 먹어야지요.》
《음, 그게 좋겠소.》
《이건 엊그제 수산합작사에 가서 접수해온건데 졸임을 하려고 꼬득꼬득 말리웠댔습니다.》
강순봉은 제꺽 저가락으로 졸인 멸치를 한마리 꺼냈다.
《정대장동지, 검식을 하십시오.》
《검식이야 준의동무가 해야지.》
《이건 준의동지가 만든 음식이니 정대장동지가 해야 합니다.》
김군옥은 취사병이 억지로 쥐여주는 그것을 받았다. 간장과 기름, 사탕가루와 풋고추를 두고 졸인 멸치는 먹음직스러웠다. 맛을 보니 밥찬으로는 제격일것 같았다.
《동무 정말 재간이 있소. 그냥 지진것보다 이렇게 졸이니 더 맛있구만.》
칭찬을 받은 강순봉은 다소 면구스러워했다.
《전 지금 준의동지에게서 견습을 받고있습니다. 멸치젓도 담그었는데 맛보십시오.》
강순봉은 호박통만 한 꽃단지의 뚜껑을 열어보였다. 그안에 고추가루를 빨갛게 친 멸치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건 다 항해식품입니다. 참, 우리 정대는 언제 출항합니까?》
김군옥은 짐짓 태연한 기색으로 취사병의 어깨를 툭 쳤다.
《기다리자구. 그러면 때가 오겠지.》
그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김정인이 위생복을 입은채로 뒤따라나왔다.
《정대장동무, 정말 무슨 소식이 없어요?》
그것은 해군사령부에 올라간 아저씨를 념두에 둔 질문이였다.
《아직은 없소. 참, 조카애는 어떻소?》
김정인은 그 애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져서 서글서글한 눈동자에 미소를 함뿍 머금었다.
《그 앤 그저 쌔근쌔근 잠만 자지요. 깨여나면 젖을 먹고는 또 자고… 아마 전쟁이 일어난것도 모르는가봐요.》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 방불하게 눈앞에 얼른거려서 김군옥은 벙글서 웃었다.
《아저씨가 빨리 돌아와야 이름을 짓고 출생등록을 할텐데…》
채정보대좌를 만나고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김군옥은 의논조로 물었다.
《이름을 우리가 지어볼가?》
《우리가요?》
《응, 동무의 언니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었지. 지금은 전쟁판이니 아무 일이나 질질 끌면 안돼. 이름도 전투적으로 짓기요. 내가 앞글자를 지을테니 동문 뒤글자를 지으라구.》
김정인은 쾌히 응했다.
김군옥은 즉흥적으로 말했다.
《앞글자는 바다 해요.》
김정인도 제꺽 말했다.
《뒤글자는 사내 남이예요.》
그런즉 해남이, 바다사나이란 뜻이였다. 어렵게 생각되던 일이 예상외로 수월히 풀려서 김군옥은 흐뭇했다.
《좋구만! 그렇게 부르기요.》
김정인은 곱게 눈을 흘겼다.
《피, 우리 맘에 든다고 되겠나요. 부모의 마음에 들어야지요.》
뭐나 즉석에서 결심하거나 결정하기를 좋아하는 김군옥은 우겨댔다.
《미래의 해병에게 있어서 그 이상 더 좋은 이름이 있을수 없소.
어서 가서 언니에게 이제부터 아기를 해남이라고 부르라고 하오, 어서!》
김정인은 웃으며 살레살레 도리질을 했다.
《전 정대원들의 건강검진을 마저 해야 해요.》
《우리 동무들은 나를 닮아서 다 건강하오. 구태여 검진할 필요가 없소.》
김정인은 그 말이 언짢아서 나무라는 눈초리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왜요. 내 보기엔 정대장동무부터 정상이 아닌것 같아요.》
김군옥은 덴겁을 했다.
《그건 무슨 왕청같은 소리요?》
김정인은 두눈을 내리깔며 실무적인 어조로 랭담하게 말했다.
《정대장동문 지금 몹시 초조해하고있어요. 속에선 불이 일구요. 아마 체온계를 꽂으면 40도가 넘을거예요.》
김군옥은 구태여 자기의 심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옳소. 난 속에서 불이 일어 못 견디겠소.
지금 미제침략자들의 기동분함대가 나타나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고 무고한 인민들에게도 무자비하게 함포탄을 퍼붓고있단 말이요. 자칫하면 그 함포탄이 여기에도 날아올수 있소.
귀여운 아기가 단잠을 자고있는 요람에 함포탄이 날아들면 어쩌겠소.》
그것은 입에 올리거나 상상해보기조차 끔찍했다.
김군옥은 얼른 입을 다물며 부지중 몸서리를 쳤다.
김정인은 그의 심정을 잘 알면서도 도움을 줄수 없으니 애가 탔다.
그래서 입술만 꽉 깨물었다. 그 모양을 보니 김군옥은 자기가 공연히 분풀이를 하는 식으로 우둘렁거린것 같아서 미안하고 멋적기도 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도래굽이로 갔다.
김정인도 소곳이 고개를 숙인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모래불에 무료하게 앉아서 정대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정대원들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김군옥은 피로한 기색으로 모래불에 주저앉아 전투가방에서 해도를 꺼내 펼쳤다.
정대원들은 이제야 전투명령이 떨어졌나부다 하고 재빨리 정대장을 에워쌌다. 수십쌍의 긴장한 눈길들이 해도에 집중되였다. 김군옥은 마른 기침을 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채정보대좌동지의 지휘하에 원산만입구와 주변연안을 봉쇄하기 위한 기뢰부설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됩니다.
여기에 표시된 곳이 기뢰를 부설할 수역들이요.
정장동무들은 이 수역들을 해도에 기입하고 예비해도작업을 다시 하시오.》
고개를 들고 저으기 실망이 어린 정대원들을 둘러본 그는 눈짓으로 저쪽에 오도카니 서있는 김정인을 가리켰다.
《다른 동무들은 건강검진을 받으시오.》
정장들은 남고 다른 정대원들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채기정은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김군옥은 그가 얼른 아버지를 만나보게 해달라고 제기할줄 알았는데 정작 들어보니 그게 아니였다.
《정대장동지, 어뢰정들을 하가한지 벌써 닷새가 되였습니다. 상가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가요?》
기관장은 기관과 함께 선체관리를 기술적으로 책임지고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때문에 속이 상했던 김군옥은 급소를 찔린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래일 의논해보기요.》
《전 아무리 전시환경이라고 해도 어뢰정의 기술관리를 철저히 함선규정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군옥은 그를 마뜩지 않게 쳐다보며 신경질을 부렸다.
《아직 이틀이 남아있잖소. 그러니 그 문제는 래일 의논하잔 말이요!》
채기정은 입을 다시며 마지못해 물러났다.
김군옥은 더 부쩍 등이 달았다.
만약 래일까지 전투명령을 받지 못하면 모레는 부득불 어뢰정들을 상가대에 올리고 청수로 선체를 닦아야 한다. 그러자면 상가대차와 권양기를 점검해야지, 상가대에 위장을 해야지, 시끄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일단 어뢰정들을 뭍에 끌어올리면 하가공정이 복잡하기때문에 전투명령을 받는다 해도 즉시 출항할수 없게 된다.
그는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정장들과 예비해도작업을 다시 했다.
이때였다.
저 멀리 부두에서 함정들이 다투어 기관을 시동하는 소리가 울리고 검은 배기가스가 물씬물씬 피여올랐다. 뒤이어 리안작업을 지휘하는 함정장들의 호각소리와 구령소리, 해병들의 복창소리가 울리더니 함정들이 련속 출항하기 시작했다.
기뢰부설에 동원된 함정들까지 바다에 나가고나니 군항은 거의나 비여버려서 허전하고 쓸쓸한감을 주었다.
어뢰정대원들은 너나없이 기분이 저락돼서 어깨가 축 처졌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어제는 포탄을 수송하는 소포정대를 부러움에 찬 눈길로 배웅해주었다면 오늘은 기뢰부설을 하러 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쳐다보고있는판이였다.
전쟁이니 싸움터에 나가지 못하는 군인은 이처럼 면목이 없고 죄스러운것이다.
문화부정대장이 취사병과 함께 밥국통을 맞들고 다른 손엔 흰 보자기를 씌운 버치를 껴들고 나타났다.
《뭘 멍하니 쳐다보고있소? 자! 식사나 하기요.》
리학섭은 호기있게 소리쳤다. 그제서야 그를 발견한 정대원들은 우르르 마주달려가 버치와 밥국통을 받아쥐였다. 고소한 음식냄새가 기분좋게 풍겼다. 분위기가 저조하던 모래불은 천렵이나 하듯이 삽시에 흥성거렸다.
밥을 푸거나 반찬을 담고 멸치생선국을 떠놓노라 밥차림당번이 따로없이 모두들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푸짐하게 차린 음식앞에 주런이 둘러앉았다. 김군옥이 살펴보니 반찬이 여러가지인데 아까 김정인이 직접 만들던 멸치졸임이 보이지 않았다.
《순봉동무, 멸치졸임은 왜 안 가져왔소?》
취사병은 생색을 부리며 잡아떼듯이 대답했다.
《그건 항해식품입니다.》
《오늘 저녁엔 빠다도 없구만.》
《그것두 항해식품이지요. 이제라도 출항만 하면 고추장을 비롯해서 고급반찬들을 다 내놓겠습니다. 군관가족들이 해온 항해식품도 일일창고에 다 보관해두었습니다.》
문득 하늘을 썰며 적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남쪽 어디선가 웅글진 포성이 간간이 울려왔다.
미제침략군 기동분함대가 가까이에 나타나서 또 함포사격을 들이대는게 아닐가? 그런 경우 포탄수송을 간 소포정대는 무사하겠는가? 기뢰부설을 나간 함선들은?
모두들 이런 생각에 잠겨 묵묵히 식사를 했다.
군항에 밤이 왔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출렁이는 파도에 실려어둠이 소리없이 밀려들었다.
당직근무를 제외한 승무원들은 전투장구류를 곁에 벗어놓고 부드러운 모래불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김군옥은 어뢰정 21호에 올라 비좁은 선수갑판에 네활개를 벌리고 누웠다. 갑판은 활등처럼 휜데다가 리베트를 촘촘히 쳐서 못대가리들이 도드라졌기에 눕기가 말째고 등이 배겼다. 하지만 그는 어뢰정갑판이 따스한 아래목이나 푹신한 고급침대보다 더 좋았다.
갑판에 누우면 어릴적 그 시절로 되돌아간듯 마음이 절로 유정해진다.
찰싹찰싹 배전을 두드리는 파도소리는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런듯 들을수록 정답다. 여느땐 횡포하고 사납던 거치른 대자연인 바다가 이런 밤이면 이렇듯 상냥해진다. 마치도 어뢰정이 요람이런듯 둥기둥기 흔들어주는것이다.
세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먼바다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오막살이를 홀로 지키는데 진절머리가 났고 후에는 이국에서 떠돌이생활을 한 그에게 있어서 어뢰정은 전투함선이기 전에 살틀한 정을 붙인 집이고 보금자리였다. 그러기에 어뢰정을 떠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정다운 어뢰정아! 너는 나와 함께 훈련으로 날과 날을 보내며 결전의 날을 기다려왔지, 조국의 바다에 감히 기여든 미제침략선들을 까부시는 싸움에서 우리 위훈을 떨치자, 두발의 어뢰를 쏘아 적함을 침몰시키지 못하면 나는 너와 함께 육탄이 되여 적함에 돌진할테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열렬히 속삭이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품속에서 담배쌈지를 꺼냈다.
력사적인 함대출항식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해병들의 생활상문제들을 헤아리시다가 몸소 펼쳐보신 담배쌈지다. 쌈지안에는 그날 장군님께서 손으로 쥐시고 냄새까지 맡아보신 써레기담배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함선승무원들의 손은 늘 바다물에 젖어있거나 기름이 묻어있어 마라초를 말기 말쨀거라고 하시면서 가치담배를 공급해주자고 하시던 그이의 인자하신 당부가 금시 귀에 울려오는듯싶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 담배쌈지에 어뢰정을 수놓은 김정인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그를 소원대로 해군에 입대시키라고 하시였지, 정인이! 동문 정말 복받은 처녀야.
김군옥은 담배쌈지의 보드라운 공단에 수놓은 어뢰정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쌈지에서는 담배냄새가 아니라 봄이면 군항에 만발하던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것 같았다.
정인이! 사랑스런 처녀야, 아까 동무와 함께 기지장동지의 아들 이름을 짓듯이 우리 관계도 그렇게 수월히 매듭지을수는 없을가? 지금은 전쟁시기란다, 그러니 모든걸 서둘러야지, 이것저것 재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간 후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될거야, 난 이제 전투명령을 받고 바다에 나가면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어, 그래서 될수록 동무를 멀리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었지, 그러나 그게 아니야, 난 전투출항에 앞서 동무에게 꼭 말해주겠어, 나는 동무를 사랑한다고, 그저 사랑하는게 아니라 저 바다처럼 끝없이,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이야, 동무를 생각만 해도 난 힘이 솟아, 동무가 지켜보고있기에 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거야, 승리하고 돌아와 이 사연깊은 바다기슭에서 동무를 만나면 난 이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사나이가 되는거야.
누군가 슬며시 21호정의 갑판우로 올라왔다.
단꿈을 꾸듯이 달콤한 생각에 잠겨 누워있던 김군옥은 담배쌈지를 얼른 품에 넣으며 서둘러 상반신을 일으켰다.
갑판에 쭈그리고앉은 사람은 문화부정대장이였다. 후방사업에 언제나 관심을 두는 그는 식당에서 취사근무병의 일손을 도와주다가 오는 길인지 몸에서 고소한 음식냄새와 물고기비린내가 났다.
《정대장동무, 이제 전투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너무도 뻔한걸 묻기에 김군옥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어떻게 할게 있습니까. 즉시 임무수행에 착수해야지요.》
리학섭은 신중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앞서 승무원들의 심장마다 불을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가요?》
《정치사업을 하자는겁니까?》
《예. 서울해방작전에 참가한 부대들은 전투에 앞서 군인결의모임을 가지고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했더군요.》
그제서야 김군옥은 자기가 너무도 실무적인 태도로 전투명령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문화부정대장은 매일 라지오로 전승소식만을 들은게 아니였다.
그는 남진하는 보병들과 땅크부대들의 혁혁한 전투성과들이 어떻게 이루어진것인가를 연구하였고 전투에 앞서 어뢰정승무원들을 어떻게 분발시키겠는가를 모색해온것이였다.
김군옥은 느닷없이 얼굴을 붉히며 성급히 동의했다.
《문화부정대장동무, 일깨워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맹세문초안은 내가 작성하겠습니다. 정대장동무는 첫 토론을 준비해주십시오.》
김군옥은 대할수록 미더운 문화부정대장에게 의지하고싶은 심정이였다.
《첫 토론을 잘해야 할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자기 우월감이 강한 김군옥이 이렇게 허심하게 방조를 요구하기는 처음이였다.
《그거야 뭐 정대장동무의 심정을 그대로 터놓으면 되는거지요.》
《아, 그래도 문화부정대장동무가 선을 그어주십시오. 정대장인 내가 한마디를 해도 씨먹은 소리를 해야 할게 아닙니까.》
리학섭은 슬며시 일어나 선미갑판으로 갔다. 김군옥은 의아한 기색으로 따라섰다. 비좁은 선미갑판의 량쪽에 아름드리 어뢰가 한발씩 적재되여있었다. 길둥글고 미끈하게 생긴 어뢰겉면에 밤이슬이 차분히 내렸는데 달빛이 유정하게 어려 윤기가 돌았다.
어뢰머리부를 잠시 손으로 어루만지던 리학섭은 조용하나 의미있게 말했다.
《정대장동문 나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군 했지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에 조정철정치부교장이 들려준 연길폭탄이야기가 정말 인상에 깊었다고 말입니다.》
김군옥은 내심 긴장해지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중앙당학교에서 공부할 때 항일투사동지들로부터 연길폭탄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어뢰가 연길폭탄처럼 생각되지 않습니까?》
《예?!》
리학섭은 힘주어 말을 이었다.
《연길폭탄이란 말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일전의 나날에 강도 일제를 쳐부신 연길폭탄을 오늘은 우리의 손에 쥐여주시였습니다. 우리는 이 폭탄으로 미제침략선을 까부셔야 합니다.》
김군옥은 나직이 탄성을 올리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말 그렇군요. 어뢰로는 혹시 적함을 까부시지 못한다 해도 연길폭탄으로는 기어이 까부셔야지요. 그래야 항일선렬들앞에 떳떳하지요.》
《모든 승무원들이 그런 결의와 각오를 가지고 전투항해길에 오르도록 하기 위해 해병결의모임을 가지자는겁니다.》
이런 정치일군이 곁에 있으니 김군옥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문화부정대장동문 전투를 앞두고 이런 좋은 생각을 했는데 나는… 부끄럽게도 안일한 생각에 잠겼더랬지요.》
리학섭은 오늘따라 별로 허심해져서 자기 반성을 하는 젊은 정대장을 친동생인듯 사랑스레 바라보았다.
《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정말입니다. 전투를 앞둔 준엄한 시각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처녀생각을 했었지요.》
《담당준의동무 말인가요?》
김군옥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난 그 처녀가 곁에 있으면 그저 환한게 밤도 대낮같더군요.
이거 쓸데없는 객기인지 모르겠는데 그 처녀가 보는 앞에서는 더 용감해지고 더 씩씩해지고싶었습니다. 그 처녀가 곁에 없을 때도 나는 나를 지켜보고있는 그의 눈길을 감촉하군 하지요.
문화부정대장동무도 련애할 때 그랬습니까?》
너무도 솔직하고 천진한 질문이여서 리학섭은 즐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나도 그랬답니다.》
김군옥은 불현듯 심각해졌다.
《그러니 우리도 련애를 하는게 분명한데 난 아직 정인동무에게 사랑한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러다가 혹시 그 말을 끝내 못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가요? 전쟁이 아닙니까.》
이것은 해상전투에 나갔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념두에 둔 소리였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저으기 비장했다.
리학섭은 그냥 미소를 지은채 사랑하는 동생을 일깨워주듯이 다정하게 조언을 주었다.
《그러게 어서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사랑이란 참 좋은거지요. 뜨거운 사랑을 안고 애인의 배웅을 받으며 항해길에 오르면 불바다속에서도 살아돌아오게 될겁니다. 사랑은 강해서 죽음도 이긴답니다.》
이때 당직근무를 수행하던 무전수가 사령탑에서 불쑥 상반신을 내밀었다.
《정대장동지! 문화부정대장동지와 함께 빨리 기지지휘소로 오랍니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여난 승무원들이 여기저기서 자리를 차고 벌떡벌떡 일어났다.
드디여 때가 왔구나!
튕기듯 잔교를 거쳐 모래불에 뛰여내린 두 군관은 어둠속을 뚫고 그야말로 비호처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