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기동분함대는 현해탄을 건너 깊은 밤 부산항에 들어갔다. 불빛가림을 해서인지 캄캄했다. 먹물을 풀어놓은듯 짙은 어둠속에서 도깨비불같은것이 번쩍거리고 군용화물차들의 발동소리와 구두발소리,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악을 쓰며 고아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혼잡을 이루었다.
목적지에 기항하면 함에서 내려 새로운 고장의 풍치를 구경하고 그곳 특산물도 맛보며 피로를 풀고싶은게 배군들의 일반적인 심리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에 싸여 전전긍긍하고있는 부산항의 음산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그런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는 고사하고 경계심만 잔뜩 자아냈다. 이제 당장이라도 공습이 진행되거나 공산군습격조가 항구로 뚫고들어와 총질을 하거나 수류탄을 던질것만 같아서 도무지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잭슨함장은 고사포들을 전투대기근무에 진입시키고 부두보초를 배로 증강한 다음 부함장에게 항만관리측과 련계를 가지고 음료수와 식료품, 연유를 보충할것을 명령했다.
기동분함대의 총인원수는 무려 4천여명에 달한다. 우선 물소비량이 대단했다. 이틀동안에 소비한 물량은 15톤이 넘었다. 항해용식품은 주로 통졸임인데 그것도 매일 만개이상씩 소비했다. 승무원들이 매일 담배를 한갑씩만 피워도 4천여갑이고 술을 한병씩만 마셔도 4천여병에 달한다.
마침 부산항의 창고들마다에는 전쟁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본토와 일본에서 끌어들인 군수물자가 그득그득 쌓여있었다. 그것이 벼락맞은 소고기는 아니였다. 전쟁이 터진 그날 저녁에 항만관리는 미군측에 넘어갔는데 보급장교가 기동분함대의 요구에 불응했다.
부두에서는 한바탕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잭슨은 성이 독같이 나서 해군을 우습게 아는 그 보급장교나부랭이를 잡아가두고서라도 당장 창고문을 열고 후방물자를 보충하라고 소래기를 질렀다.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함에 물 한고뿌나 통졸임 한통이라도 더 실어야 한다.
한바탕 욕설을 처먹은 부함장이 보급장교에게 밸풀이를 하려고 푸르딩딩해서 나가려는데 통신장교가 뛰여들어 잭슨에게 무전문을 내밀었다. 그것은 전선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있는 미극동군사령부 전진지휘소에서 보내여온것이였다.
7함대기동분함대 기함 《볼티모》호 함장앞
기동분함대는 트루맨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 시각부터 본지휘소의 지휘에 따를것이다.
오늘 11시 30분 인민군은 《한국》의 수도 서울과 동해안의 군사요충지인 강릉을 점령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기동분함대는 강릉―삼척계선으로 시급히 북상하여 동해안을 따라 남침하는 인민군부대들을 함포사격으로 저지시키고 륙상 및 해상보급로를 차단할것.
지휘소 소장 준장 죤 처치.
잭슨은 무전문을 웨리크에게 넘겨주었다.
《이것 보오, 당신이 예견한대로요.》
웨리크는 자기가 예견한대로 작전이 진행되고있지만 내심 불쾌했다. 태평양전쟁때도 그러했듯이 미해군의 지휘권이 자동적으로 미극동군사령부에 넘어갔기때문이였다. 그는 잔뜩 볼이 부어서 투덜거렸다.
《흠, 우린 이번에도 맥아더장군의 수하에서 둘러리노릇이나 하게 됐군요.》
《어쩔수 없는 일이지. 아마 그래서 니미쯔각하는 해군작전부장직을 다시 맡아달라는 대통령의 청을 거절했을거네.》
잭슨은 웨리크에게서 다시 넘겨받은 무전문을 부함장에게 주었다.
《부함장, 그까짓 창고지기놈들과 옥신각신할것 없이 이걸 가져다 보여주게. 그러면 만사오케이요.》
《예, 이젠 됐습니다.》
부함장은 낯색이 좀 풀려서 무전문을 받아쥐고 달려나갔다.
무전문이 은을 내서 드디여 창고문이 열렸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던 곳에서 휙! 휘익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식료품을 실은 운반차들이 굴러나왔다.
웨리크는 잭슨과 함께 경순양함 함장과 원양구축함 함장을 불러다놓고 강릉―삼척계선에서 진행할 작전에 대하여 토의했다. 내친김에 예비해도작업까지 하고나니 시간이 퍼그나 흘러갔다.
그들은 통졸임을 서너개 까놓고 람술을 둬잔씩 마신 다음 쌘드위치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여졌다.
웨리크는 함장실에 들어가 군복을 입은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전신이 녹작지근했다. 편히 누워서 물자보충이 끝나기를 기다리자던 노릇이 그만 깜박 잠들어버렸다. 그는 꿈을 꾸었다.
《볼티모》호를 앞세운 기동분함대가 38°선을 넘어 북상하여 원산만으로 들어가고있었다. 그들은 갈매기반도앞에서 항구에 대고 함상포 일제사격을 들이댔다. 북조선해군의 불과 몇척밖에 안되는 어뢰정들과 소포정이나 소해정따위의 작은 함정들이 포탄세례를 받고 산산쪼각이 나서 가랑잎처럼 날아간다. 적은 맞불질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부두에 계류해있는 덩치가 큰 배 한척은 아무리 함포사격을 해도 끄떡이 없었다.
웬일인가 해서 가까이 가보니 식탁을 주런이 내다놓은 상갑판에 신사숙녀들이 앉아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자세히 여겨보니 노예선 비슷하게 생긴 그 배는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선박려관이였다.
그러니 벌써 원산항은 미국의것이 된게 분명했다. 아니, 여기는 원산항이 아니라 볼티모항인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자기의 항구에 대고 함포사격을 했단 말인가?
《대좌! 어서 일어나게, 어서!》
잭슨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웨리크는 찌뿌둥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왜 그럽니까?》
《이것 보게. 맥아더각하가 우리더러 빨리 작전수역에 진출하라고 독촉하누만.》
웨리크는 그제야 알쏭달쏭한 괴이쩍은 꿈에서 말짱 깨여났다.
잭슨이 보여주는 무전문에는 맥아더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맥아더각하는 수원에 있는 전진지휘소에 방금 날아들었다누만.
각하의 긴급명령을 받고 5공군은 즉시 출격했다오. 우리도 서둘러야겠소.》
웨리크는 터져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막으며 물자보충이 끝났는가고 물었다.
《채 끝나지 못했지만 출항하기요.》
지휘소에 나간 잭슨은 무선통화기를 들고 경순양함과 원양구축함 함장을 호출하여 빨리 출항할것을 명령했다. 잠시후 당장 출항하기 곤난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물자적재도중에 수십명의 승무원들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급히 인원점검을 해보니 《볼티모》호 승무원들도 열댓명이 없었다.
은밀히 출항하려고 했었는데 하는수없이 배고동을 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뚜!―
아앙!―
세척의 함선들이 큰소리로 울어대니 가뜩이나 어수선하고 음산하던 군항의 분위기는 더 스산해져서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였다. 그제서야 헐레벌떡 달려와 배다리를 쿵쿵 구르며 갑판에 올라오는 작자들의 발걸음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웨리크는 배다리곁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초조히 지켜서있던 부함장은 무단외출자들을 1렬횡대로 세워놓고 잡아먹을듯이 으르렁거렸다.
《망할 자식들! 어디에 가 엎드려있다가 이제야 나타나는거야, 엉?》
무단외출자들은 구구히 변명을 했다.
《우린 후방물자를 싣댔습니다.》
《우린 그저 산보를 하댔는데…》
부함장은 회중전지를 켜고 무단외출자들의 뻔뻔스러운 낯짝을 하나하나 비쳐보았다. 어느 놈에게서나 술냄새와 불고기냄새 그리고 분냄새와 향수냄새가 혼탕되여 역하게 풍겼다. 어떤 작자의 입술엔 방금전까지 누리던 향락의 증거인듯 연지가 묻어있었다.
《자식들! 카페와 유곽에 갔댔구나. 전시라는걸 잊었어?》
규률위반자들이 찍소리도 못할줄 알았는데 웬걸 제놈들이 한짓이 빵짱이 나자 젠장 될대로 되라는 식인지 뻔뻔스럽게 나왔다.
《이거 한잔 마시고 오는데 뭐 그다지나 그러십니까?》
《입항을 했으니 항해피로를 풀어야지요.》
부함장은 규률위반자들을 혼쭐이 쑥 나오게 달구어칠 대신 침먹은 지네처럼 이내 누그러져서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그래 <한국>의 카페가 어때?》
《일본이나 어슷비슷합니다. 부산인지 사세보인지 분간을 못하겠더군요.》
《여기 술맛은?》
《그것두 마찬가지지요. 전탕 일본제와 미국제 술이니까요.》
부함장은 그냥 꼬치꼬치 캐묻는다.
《써비스는 어때?》
《그것두 그렇지요. 접대부들은 차리고 나선걸 봐도 그래, 아양을 떠는걸 봐도 일본계집인지 조선계집인지 분간을 못하겠습니다.》
곁에서 말참견을 했다.
《그런대로 재미를 보려는참인데 재수없게 배고동이 울리더군요.》
《입항한지 기껏 서너시간밖에 안됐는데 왜 벌써 출항한다는겁니까? 거 꽤나 들볶아대는구만요.》
녀석들은 어둠속이라 웨리크가 곁에서 지켜보는줄도 모르고 지껄이며 로골적으로 불평을 부렸다.
망할놈들, 전쟁이 터졌는데 싸움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신기신 술집계집들이나 찾아다니고있어? 그걸 부러워하는 부함장이란 놈도 한심하지.
그들속에 볼티모내기인 장탄수 토니가 없는게 다행이였다.
웨리크는 이 뻔뻔스러운 녀석들을 발길질로 바다물에 차넣거나 비류지가 질벅한 배밑창에 가두어넣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올 놈이 다 왔는지 부함장은 당직장교에게 배다리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뒤이어 주기관이 시동됐다. 《볼티모》호는 수로안내선을 뒤따라 먼저 항만을 벗어났다. 한참후에야 경순양함과 원양구축함이 허겁지겁 따라왔다. 기동분함대는 북으로 배머리를 돌렸다.
웨리크는 갑판에 있는 포초소들의 전투준비상태를 돌아보고나서 기본지휘소에 올라갔다.
잭슨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사치한 례복차림을 하고 조타기옆에 서서 앞창을 내다보며 태연히 파이프를 빨고있었다. 애연가인 그는 바다에 나가면 담배를 곱절이나 피웠다. 담배를 피우지 않을 때에도 손에 쥔 파이프를 노상 장난감처럼 주무르거나 빈 파이프를 빨기도 했다.
구태의연한 그 모습이 오늘따라 웨리크의 눈에 거슬렸다.
《함장님, 규률이 없군요. 무단외출을 했던 사병들을 어떻게 처벌하려고 합니까?》
잭슨은 대뜸 얼굴을 찡그리더니 입에서 파이프를 뽑고 마지못해 대꾸했다.
《대좌, 뭐 그럴 필요가 있겠소. 태평양전쟁이 끝난지도 다섯해가 지났소. 그새 점령군의 자격으로 모두들 잘 놀았지. 오랜 기간 몸에 배인 방탕이 하루 아침에 가셔질리야 만무하잖소. 거기에 지내 신경을 쓰지 마오.》
그러고보니 바다우에 뻐젓이 떠오른 잠수함의 사령탑에서 항복한 섬나라를 긍지높이 바라보며 도꾜만에 들어가던 그 못잊을 가을날이 어제런듯싶은데 5년이란 세월이 어느새 지나가버렸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승무원들 다수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에 입대한 햇내기들이였다. 술이나 처마시고 계집질이나 하던 이것들이 죽고살고하는 전쟁판에서 꽤 제구실을 할수 있을가? 그것도 날바다우에서…
《함장님, 이제라도 사병들을 바싹 조이고 각이한 정황속에서의 전투훈련을 부단히 진행합시다.》
잭슨은 웨리크가 승선지도를 한답시고 함의 규률문제와 훈련에까지 간참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훈시를 주는게 정녕 못마땅했다. 조타수와 항해장이 곁에 있으니 더우기나 자존심이 상했다.
《대좌, 걱정하지 마오. 그들이 설사 제구실을 못해도 이 함장만 제구실을 하면 되는거요.》
《그래도 작전수역에 도착할 때까지 훈련을…》
잭슨은 신경질을 부렸다.
《공연히 시끄럽게 그럴게 없소. 대좌, 정 할 일이 없으면 가서 잠이나 자오. 작전수역에 들어서면 깨워주지.》
웨리크는 당장 전투경보를 울리고 자기가 직접 훈련을 주고싶었지만 함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만 물러났다.
함장실에 간 그는 몇해째나 벼르고 별러오던 거사를 앞두고 안일하게 침대에 드러눕고싶지 않아서 진정을 못하고 서성거렸다. 어쩐지 불안했다.
걱정하지 말라. 이 함장만 제구실을 하면 된다고 하던 잭슨의 호언장담이 그냥 귀전에서 맴돌았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볼티모》호는 조선전쟁을 앞두고 전투기술기재와 무장장비를 현대적인것으로 갱신하였다. 통신설비, 전파탐지설비는 말할것도 없고 주포를 비롯한 함상포들도 반자동화했다. 하기에 몇명의 부실한 사병들이 혹 제구실을 못해도 지장을 받을건 없었다. 함장과 전투부문을 책임진 장교들이 제구실을 하면 그 어떤 정황에도 얼마든지 대처할수 있다. 비록 사병들은 포연내보다 향수내를 더 맡은 햇내기들이지만 함장과 장교들 대다수가 태평양전쟁의 불길을 헤쳐온 로병들이다.
마음이 든든해진 그는 볼티모경의 초상화가 붙어있는 벽쪽에 놓인 탁자에 다가가 탁상등을 켜고 앉아 펜을 들었다.
그는 퇴임후에도 해군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기울여 해전사집필에 열중하고있는 니미쯔에게서 감동이상의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자기도 그처럼 먼 후날에 가서 그러한 력작을 내놓고싶었다. 그래서 조선전쟁이 터진 날부터 매일 기록을 남기군 했다.
극동군사령부의 보도에 의하면 오늘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제2차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형식상 38°선이남에 국한시켰던 미해군 및 공군의 작전구역을 38°선이북으로 확대하고 부산지구의 항구와 비행장을 방위하기 위해 제한된 보병의 전투병력을 지체없이 투입할데 대한 중대결정을 채택하였다.
이로써 미군이 조선전쟁에 참가하기 위한 이른바 합법적절차가 이루어졌다.
조선전선을 시찰중인 맥아더는 이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결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백악관에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지상군파견을 요구하는 메쎄지를 보냈다고 한다. 한편 《한국》군의 작전 및 통솔권까지 넘겨받은 그는 륙군참모총장을 비롯하여 무능한 장성들과 고위급장교들을 철직시키고 미국에 충실한 인물들을 등용할데 대한 단호한 조치도 취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내가 승선지도를 하는 기동분함대도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작전수역으로 항해하고있다.
맥아더의 요구대로 미지상군이 대대적으로 투입되는 경우 전선형편은 즉시 역전될것이다. 미지상군과 《한국》군이 반격하여 북상하면 우리 기동분함대도 북상하여 북조선해군의 주요기지인 원산항을 타격해야 한다. 이에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배합하면 리상적이다. 서해에서도 해주나 남포에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하면 전승은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놓고보면 조선전쟁은 륙군이 아니라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맡아서 해야 했을것인데…
펜을 멈추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던 그는 별안간 두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주먹으로 탁상을 힘껏 내리쳤다.
요글거리던 가슴속에서 질투와 야심이 불길처럼 솟구쳐올랐다.
이번 조선전쟁에서 미군이 이기는건 확정적이다.
그런데 전승의 월계관은 땅에 편안히 앉아서 노상 파이프나 물고 거드름을 피우고있는 그 늙다리가 쓰게 될것이다. 그러면 원산항에는 어처구니가 없이 맥아더의 이름이 붙게 될는지도 모른다.
오, 하느님 맙소서.
이거야말로 통탄하지 않을수 없는노릇이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전쟁에서 해군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태평양전쟁을 총화할 때 그러했듯이 전승의 마당에서 해군이 륙군과 동등한 자격으로 월계관을 함께 쓰게 된다.
애써 의지를 가다듬고 강심을 먹은 웨리크는 사기를 돋구려고 람술을 한잔 마시고 야심만만히 기본지휘소에 나갔다.
그는 뿌시시해서 입귀가 째지도록 하품을 하는 함장에게 들어가 쉬라고 했다. 잭슨은 군말없이 함장실로 갔다. 웨리크는 무선통화기로 경순양함과 원양구축함에 련계를 취하고나서 쌍안경을 들고 앞창앞에 바투 나섰다.
날이 밝으면서 하늘과 바다의 계선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산같이 큰 세척의 함선들이 파도를 가르며 내달리는 모습은 볼수록 장관이였다. 함선들이 일으킨 흰물결은 검푸른 바다에 넓은 폭을 이루며 퍼져나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넘실거리는 파도뿐 북조선해군함정은 고사하고 고기배 한척 눈에 띄우지 않았다. 기동분함대의 위세에 질겁하여 바다새들조차 감히 나래치기를 주저하는지 갈매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웨리크는 쌍안경을 저멀리 해안가로 돌렸다.
해안가의 상공은 검은 연기로 흐려있었다. 거기서는 지금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는것 같았다.
정오무렵, 기동분함대는 삼척을 지나 강릉앞바다에 이르렀다.
함선들은 기관을 끄고 표류했다.
잭슨함장이 기지개를 켜면서 기본지휘소에 나왔다.
《대좌, 출출한데 먼저 요기를 하고나서 일을 시작하기요.》
웨리크는 찬성했다.
그들이 한창 식사를 하는데 전진지휘소에서 당장 함포사격을 진행할데 대한 명령과 사격제원이 날아왔다.
《이거 정말 되게 들볶아대는군.》
잭슨은 두덜거리며 나프긴을 떼던지고 식탁에서 물러나더니 기본지휘소에 들어가 전투경보를 울렸다.
먼저 배고동이 울렸고 각 초소들과 구간에 붙어있는 싸이렌이 겨끔내기로 자지러지게 울렸다.
식사를 하던 천수백명에 달하는 승무원들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던지고 부리나케 자기의 초소로 달려갔다. 즉시에 주기관과 보조기관들이 시동되였고 전투초소들에 전원이 공급되였다.
《함포사격준비!》
기본지휘소에서 울리는 함장의 구령을 포병장과 포장들이 힘차게 복창했다. 즉시 포탄고들이 열렸다. 포수들은 날랜 동작으로 각이한 구경의 포탄들을 포탑에로 운반하고 장탄했다.
잭슨함장의 지휘에 따라 세척의 함선들은 해안선과 평행으로 나란히 섰다. 함의 위치를 이렇게 정해야 선수와 선미에 설치되여있는 함상포들을 동시에 리용할수 있었다.
기본지휘소에서 내려오는 사격제원에 따라 조준했다.
《기함, 경순양함, 구축함 순서로! 주포 일제사격!》
《볼티모》호의 선수와 선미, 하갑판과 중갑판에 설치된 203㎜ 주포 9문이 동시에 굉음을 지르며 불을 토했다.
《꽝! 꽈르릉!―》
뒤이어 경순양함에 설치된 157㎜ 주포 12문이 다투어 울부짖었다. 뒤질세라 구축함의 주포들도 련이어 포성을 울렸다. 포성이 울릴 때마다 선체의 두꺼운 장갑철판이 당장 산산쪼각이 날듯 푸들푸들 떨렸다. 하늘이 깨지고 바다가 뒤번져지는듯싶었다. 시꺼먼 포연이 세척의 군함을 휩쌌다. 실로 《장엄》한 광경이였다.
기본지휘소에서 이 광경을 굽어보던 웨리크는 피냄새를 맡은 맹수마냥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살기띤 두눈을 희번득거리던 그는 지휘소를 뛰쳐나가 중갑판으로 급히 내려갔다.
잭슨은 그 무슨 장엄한 의식을 거행하는듯 자못 엄숙한 기색으로 해안선을 주시하며 파이프를 쥔 손을 휘저으며 사격제원을 련속 불러주고 사격구령을 쳤다.
《기함, 경순양함, 구축함 순서로! 부포 일제사격!》
《볼티모》호의 부포 127㎜ 12문이 동시에 불을 토했다. 경순양함의 부포 127㎜ 12문도 뒤이어 포성을 울렸다. 구축함의 부포들도 울부짖었다.
사격구령을 받지 못한 고사포들과 어뢰발사관, 폭뢰투하기에서는 포수들과 발사수들이 동료들의 멋진 사격솜씨를 바라보며 등이 달아서 《잘한다!》, 《쏴라!》, 《갈겨라!》 하고 미친듯이 소래기를 질러댔다.
웨리크도 목이 째지게 고함을 치거나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둘러메치고 마구 두들겨패고싶었다. 그는 그런 광적인 충동에 떠밀려서 헐떡거리며 중갑판에 있는 주포로 달려갔다.
한차례의 사격을 진행한 포수들은 기분이 고도로 상승되여 탄피들이 나딩구는 갑판에 펄쩍하니 주저앉아 땀을 들이고있었다. 이럴 때 보니 모두들 캬바레나 무도장에 찾아다니며 술이나 마시고 계집을 껴안고 춤이나 추던 난봉군들이 아니라 포연과 화약내가 물씬물씬 풍기는 해병들, 바다사나이들이였다.
《음, 그래 전투를 해보니 감상이 어떤가?》
모두들 씁쓸히 웃는데 토니가 코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거 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과 싸우자니 싱겁습니다.》
모두 그와 동감인 기색이였다. 웨리크의 심정도 그러했다.
포성은 자못 요란한데 정작 포탄이 날아가서 터지는 모습은 볼수가 없다. 더우기나 포탄에 맞아서 무너지는 전호라든가 적의 지휘소를 볼수 없고 무리로 쓰러지는 적들의 모습도 볼수 없으니 과연 싱겁기 그지없었다.
웨리크는 포장에게서 내부통화기를 받아들고 잭슨함장을 찾았다.
《지휘소! 난 웨리크다. 육안으로 볼수 있는 목표를 소멸하게 해달라.》
만약 잭슨이 이 요청을 거절하면 포수들이 지켜보는 이 마당에서 웨리크는 망신하게 된다. 하기에 그는 즉흥적으로 그런 요청을 한 즉시 내심 후회했다. 다행히도 잭슨은 선선히 동의했다.
잭슨 역시 눈에 보이는 목표를 통쾌하게 박산내고싶었던 모양이다.
《기함, 주포 발사준비.》
203㎜포탄은 몹시 무거워서 네명의 장탄수가 맞들어서 장탄해야 했다.
《장탄끝!》
《목표, 포구에 있는 부두와 건물들. 일제사격!》
주포들은 굶주린 맹수마냥 푸들푸들 떨면서 다투어 울부짖었다.
세계제패를 위해 미국의 전쟁상인들이 딸라를 녹여서 부어낸 값비싼 포탄들이 군사시설물이 아닌 어촌을 향해 대기를 썰며 날아갔다. 포구와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즉시에 산산쪼각이 났다. 모래불에 듬성듬성 서있던 소나무들도 뿌리채 파헤쳐져 공중으로 날아갔다.
《명중이다!》
《만세!》
드디여 쾌락을 본 포수들은 철부지애녀석들처럼 야성을 지르며 기뻐서 미친듯이 날뛰였다. 주먹으로 허공을 찌르거나 갑판을 쾅쾅 구르기도 한다. 광적인 희열에 휩싸인 웨리크는 더욱 감질이 나서 조준수를 밀어제끼고 자기가 직접 조준경으로 목표를 찾았다.
아무리 둘러봐야 모조리 부서지고 불타고 산산쪼각이 나서 대구경포탄을 쏴갈길만 한 곳이 없었다. 아쉬운대로 단념하고 조준경에서 눈을 떼려는데 불길과 포연에 잠긴 포구에서 뭔가 아물거리는것이 눈에 띄웠다. 자세히 여겨보니 사람들이다.
어민들이 분명한 그들은 생존수단인 자그마한 고기배에 달린 불을 끄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웨리크는 이미 파편에 얻어맞고 불길에 휩싸인 고기배를 조준경의 십자선에 올려태웠다.
《발사준비!》
또 한발의 육중한 포탄이 장탄되였다.
《장탄끝!》 《발사!》
꽈르릉!―
굉음을 지르며 날아간 포탄은 면바로 고기배를 때렸다.
물기둥이 하늘을 찌르며 솟구쳐올랐다. 탑모양을 이루었던 물기둥이 분수마냥 흩어져내렸을 때 벌써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포수들은 환성을 올렸지만 웨리크는 이 순간 별스레 허무감을 느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떨군채 스적스적 지휘소에 올라갔다.
잭슨이 벙글거리며 물었다.
《그래, 이젠 직성이 풀렸나?》
웨리크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소리나게 내쉬였다.
《이거 싸움같지 않은 싸움을 하니까 오히려 더 속이 타는군요.》
《나 역시 그렇소.》
잭슨은 털이 부시시한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