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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이 일어나기 며칠전부터 주일미군은 전시태세에 들어갔는데 도꾜만에 기지를 두고 사세보를 비롯한 여러 군항에 널려있는 7함대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시내에 쓸어나가 추파를 던지며 감겨드는 일본계집들을 끼고 술마시고 춤추던 해병들이 명령에 따라 모두 승선하여 출항준비를 갖추노라 분주탕을 피웠다. 전투예비물자를 점검하고 부족되는 어뢰와 폭뢰, 포탄들을 적재했으며 연유탕크와 청수탕크도 가득가득 채워놓았다. 함상포들이 오래간만에 씌우개를 벗기고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다섯해가 돼오도록 패전국인 일본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진탕망탕 놀아대다나니 이젠 유흥도 싫증이 났다. 포식을 할대로 한 해적들은 렵기와 모험심을 불러주며 어서 오라 출렁이는 대양을 종횡무진하며 함포와 어뢰를 쏴갈기고 화약내와 피냄새를 맡으면서 새로운 정복과 강탈의 희열을 맛보고싶었다. 놀 때는 유쾌하게 놀고 일단 싸울 때는 《용감》히 싸운다는것이 이를테면 미해군용사들의 전통적인 기질이였다.
7함대사령부는 이미 짜놓고있던 작전계획에 따라 사세보항에 정박하고있는 군함들로 조선동해에 급파할 기동분함대를 신속히 편성하였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명성을 유감없이 떨쳐온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기함으로 하고 경순양함 《야이카》호와 원양구축함이 배속되였다. 경순양함의 화력만 놓고봐도 륙군 1개사단의 화력과 맞먹었다. 그러니 기동분함대는 물우에 뜬 군단인셈이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동분함대를 여러개 편성하여 조선의 동서남해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고 미지상군의 북상을 강력히 지원할데 대한 이 작전방안의 주작성자는 며칠전에 대좌로 승급한 웨리크였다.
이태전 이맘때 해군대장으로부터 직접 특수임무를 받고 잠수함 《U―504》호를 몰고 조선동해의 주요항구들과 쏘련태평양함대의 기지인 울라지보스또크항까지 정찰하고 근 두달만에야 쯔가루해협을 통과하여 기지로 돌아온 웨리크는 곧 함대사령부 작전장교로 조동되였었다. 유감스러운것은 해군대장 니미쯔가 무엇때문인지 트루맨대통령의 눈밖에 나서 사퇴하고 고향으로 간것이였다. 이통에 웨리크는 자기의 출세를 담보해주던 유력자를 잃게 되였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작전실에 꾹 들여박혀 앞으로 치르게 될 조선전쟁과 관련한 해상작전연구에만 몰두했다.
이 나날에 그는 군부와 정계의 영향력있는 신문, 잡지들에 발표하는 니미쯔의 글들을 주의깊게 읽고 분석해보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간 1901년에 미국의 해군력은 세계의 12위에 불과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깝고 불만스러웠다. 하기에 그때 나의 최종목표는 해군장관이였고 나의 리상은 미국의 해군력을 세계1등급으로 끌어올리자는것이였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최종목표에 도달했고 리상을 실현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할수 없으며 해군의 장래운명을 두고 심히 우려하게 된다.
요즘 백악관과 펜타곤에서는 이른바 핵시대의 요구에 맞게 해군무력을 발전시킨다는 미명하에 해군무력을 대폭 축소하려는 위험천만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결속하여 대아메리카의 강대성을 만천하에 시위하게 해준 해군이 이제 와서는 거치장스럽고 쓸데없는 존재가 되였는가?
세계1등급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미해군을 영광의 단상에서 끌어내리려고 모지름을 쓰는자들의 속심은 도대체 무엇인가?
태평양해전시기 미국을 위해 기꺼이 날바다에 몸을 던진 우리의 함장들과 해병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분개하여 통탄할것인가. 나는 바로 이것이 가슴아프다.
웨리크는 니미쯔가 이젠 늙어서인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소유하지 못하고 과거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고있으며 리성보다 감성을 앞세운다는것을 괴로운 심정으로 인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나날에 미친듯이 건조한 대형전투함선들과 무려 300만이 넘는 병력으로 미해군은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졌다.
이것은 맥아더를 비롯한 다른 군종병종의 장성들의 질투를 야기시켰다. 정부도 전쟁이 끝난 오늘에 와서까지 이런 방대한 해군력을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고 또 유지할수 있는 힘도 없었다.
낡은 군함들을 퇴역시키고 병력을 축소하며 이에 대처하여 핵동력잠수함을 새로 개발하고 반잠순찰기의 성능을 제고하며 장차 항공모함들도 핵동력화하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었다.
니미쯔는 감정상 이런 실태에 불만을 가지고 백악관과 국방성에 엇섰고 나중엔 대통령의 미움을 받아 왕별이 다섯개나 박힌 해군대장복을 벗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이였다.
비록 퇴임은 당했지만 미해군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니미쯔처럼 인생의 목표와 리상을 태평양상우에 높이 세운 웨리크는 작전연구에 전심전력했다.
이 나날 그를 적극적으로 협력해준 사람은 야마모또 시마무라였다.
그 간특한 일본인은 여전히 극비밀리에 맥아더사령부 작전실에 들여박혀서 지난 시기 대륙침략과 태평양전쟁에서 악명을 떨친 황군의 잔당들과 함께 미군의 조선침략전쟁준비를 위한 작전계획완성에 혈안이 되여있었다. 그자들은 패전후 맥아더사령부에 압수된 황군 총참모부의 문건들을 모조리 들춰내서 검토하고 필요한 자료는 영어로 번역하여 미군작전 장교들에게 넘겨주었다.
황군의 해군에 관한 자료들은 주로 시마무라가 맡아보고있었다. 웨리크는 시마무라를 통하여 북조선의 해상무력에 대한 정탐자료도 주기적으로 넘겨받을수 있었다.
어느날 시마무라가 함대작전부에 찾아왔다.
《중좌님, 내가 깜짝 놀랄만 한 정보를 가져왔으니 한상 차리십시오.》
웨리크는 그제서야 작전지도에서 눈을 떼며 부석부석해진 눈잔등과 눈시울을 손으로 소리나게 문질렀다. 하지만 얼굴에 거미줄같이 엉켜붙은 피곤은 가셔지지 않았다.
《뭔가?》
시마무라는 흡사 게눈같이 반들반들한 눈을 깜박거리며 값을 올렸다.
《우선 위스키라도 한잔 부어주십시오.》
《여보, 그게 정말 내가 깜짝 놀랄만 한것이라면 만딸라도 아끼지 않겠네.》
너무 좋아 입이 귀밑까지 돌아간 시마무라는 얼른 정보자료를 넘겨주었다.
그것을 보고 웨리크는 정녕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음, 대단한 가치가 있는 정보로군.》
웨리크는 금고를 열고 손에 잡히는대로 두툼한 지페뭉테기를 하나 꺼내여 시마무라에게 던져주었다. 마치 사냥군이 개에게 먹이감을 던져주듯이…
《중좌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시마무라는 흡족하고 황송해서 몇번이고 갑삭갑삭 고개를 조아리다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북조선에서 함대출항식을 거행하고 정식으로 해군사령부를 내왔단 말인지. 웨리크는 몹시 흥분했다.
극비. 해군정보부입수.
지난 8월 28일 북조선의 청진항에서는 김일성장군의 참석하에 함대출항식이 진행되였다.
출항식에 참가한 함선들은 배수량이 45톤급미만인 소포정과 어뢰정, 소해정들이다.
며칠후에 해군군관학교를 졸업할 학생들이 이 전투함정들을 지휘운영하게 된다.
김일성장군이 직접 어뢰정을 타고 바다에 나가 포실탄사격과 폭뢰투하를 보면서 실습지휘관들과 승무원들을 고무해주었다고 한다.
출항식이 끝나자 김일성장군은 소해함을 타고 동해안의 조선소에 가서 자체의 기술과 힘으로 500톤급 경비함을 건조한 그곳 일군들과 로동자들을 축하해주었으며 며칠후에는 조선소에 가서 역시 새로 건조한 경비함을 돌아보며 해군무력강화발전을 위한 중대한 훈시를 했다고 한다.
동서해를 순시하고 상평한 김일성장군은 조선함대사령부를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로 개칭하는 문건에 비준하였다.
이로써 한두척의 발동선과 목선들로 초라하게 출범했던 북조선의 수상보안대는 오늘에 와서 작지만 속도가 빠르고 타격력이 강한 공격용함선들과 자체로 건조한 경비함들, 수송선들로 함대의 면모를 갖추고 해병대와 해안포부대, 고사포부대, 해군군관학교와 기술원훈련소, 함선수리기지들을 망라한 정규무력의 한개 군종으로 강화되였다.
부표에는 현재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관하 동서해의 해군기지들에 있는 각종 함정들의 종류와 척수, 배수량과 무장장비정형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다.
웨리크는 속셈으로 그 배수량을 다 합쳐보았다.
그것은 미해군에 흔한 구축함 한척보다도 배수량이 작았다.
이런걸 놓고 함대요, 해군이요 하는가?
어쨌든 북조선의 해상무력발전속도는 놀랍구나. 우리 잠수함을 추격해오던 쪽배가 한해사이에 어뢰정으로 변했으니… 북조선해군이 이 속도로 계속 발전하면 10년후에는 잠수함과 구축함도 소유하게 될것이고 태평양상에서 무시할수 없는 세력으로 자랄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내버려두지 않을걸.
그는 더욱 분발해서 작전방안을 완성했던것이다.
조선동해에서 활동할 기동분함대가 조직되자 함대사령관은 웨리크를 승선지도장교로 임명하였다.
그가 위엄을 차리며 부두에 나타나자 항해준비를 하던 장교들과 사병들은 기합이나 당한듯이 당장 빳빳이 굳어지며 거수경례를 했다. 웨리크는 그때마다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례해주었다.
《대좌님! 승급을 축하합니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시마무라가 게눈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에 아첨기가 흐르는 미소를 짓고 바삐 다가왔다. 앙바틈한 작자가 안짱다리를 재게 놀리며 오는 모습이 아름드리목통이 기우뚱거리며 굴러오는것 같았다. 그 주제에 대위계급장이 달린 미해군장교복을 입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소?》
《나는 정식으로 미해군에 입대했습니다.》
시마무라는 제가 입은 장교복을 비웃는듯 한 눈길로 훑어보더니 쓰겁게 입을 다셨다.
《대좌님은 승급했지만 난… 어제날 일본해군중좌가 미해군대위로 강급된셈이지요.》
전범자로 교수대에 매달 대신에 살려주고 장교복까지 입혀주니 제딴에 타발질을 한다.
《직무는 뭔가?》
《소해함 함장입니다. 함성원들의 대다수가 미해군복을 입은 일본인들이지요. 전쟁이 터지면 북조선해군이 항구들과 해안을 봉쇄할수 있으니 우리더러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소해작업을 하라는겁니다.》
《당신은 그게 달갑지 않다는거요?》
《물론이지요. 난 대좌님과 함께 기동분함대의 특수작전에 참가하고싶습니다. 우리야 그러자고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웨리크는 잠수함으로 북조선해안을 정찰할 때 시마무라의 수로안내를 받은적이 있었고 후에도 이모저모로 톡톡히 신세를 졌지만 그것을 남들이 알거나 눈치채게 하고싶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기동분함대를 승선지도할 중임을 지닌 자기가 패전한 일본장교를 모사처럼 달고다니며 일일이 조언을 받는다는건 자존심이 상하고 남들 보기에도 체면이 깎이는 노릇이였다. 그래서 그 요청을 점잖게 거절했다.
《이보게 대위, 중대한 이 시각에 우린 서로 맡은바 임무수행에 전심전력함으로써 전쟁승리에 기여해야 할것이요. 하여간 난 당신을 잊지 않겠소. 전쟁이 끝나면 우리 원산항에서 만나자구. 거기서 축배를 들잔 말이요.》
웨리크의 속심을 알아차렸던지 불시에 어두워진 시마무라의 얼굴에서 아첨기가 씻은듯이 사라지고 랭소가 비꼈다.
《축배를 들자는 말씀은 고맙지만 거 지나친 호언장담은 삼가해야 하지 않을가요?》
지나친 호언장담이라? 가만, 이 작자는 우리 기동분함대가 조선동해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는것이 달갑지 않다는건가? 우리가 운수사납게 암초에라도 걸려서 애를 먹으면 내심 깨고소해할 놈이 분명하군.
웨리크는 언제 봐도 늘 자기의 속심은 감추고 겉으로만 복종하는척 하는 이 간특한 일본인이 때에 따라 위험한 존재로 될수도 있겠기에 경계하고있었다. 이 패전당한 쪽발이들이 태평양해전에서 미군한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나중엔 원자탄맛까지 톡톡히 본걸 결코 잊을수 없을테지. 그래서 소가지가 삐뚤어진 수작을 하는군. 흥!
웨리크는 코웃음을 쳤다.
《시마무라군, 난 미해군장교로서 명예를 귀중히 여기기때문에 여태 빈말을 해본적이 없소. 우린 선전포고도 없이 달려든 당신네한테 진주만에서 먼저 처참하게 얻어맞았지만 기어이 복수하고 명예를 되찾을 결의를 다졌고 끝끝내 그 결의를 실천에 옮겼단 말이요.》
시마무라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에도 내가 아니, 미해군이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걸 명심하시오. 내가 당신과 다시 만날 때 원산항은 미국식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될거요. 그럼 안녕히!》
웨리크는 해군단검으로 베여던지듯이 시마무라를 떼버리고 거연히 머리를 추켜들고 기동분함대 기함인 《볼티모》호의 사선으로 경사진 배다리를 짚으며 올라갔다. 갑판에 올라서는 순간 황급히 마중나온 당직장교가 거수경례를 했다.
이 순간 마스트를 바라본 웨리크는 매우 아쉽고 유감스러웠다. 자기의 승선을 알리는 기발이 마스트에 오르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자기의 기발을 올리려면 지금처럼 작전장교가 아니라 적어도 함대참모장의 직급에 올라야 했다. 그날은 멀지 않았다.
조선전쟁은 그날을 당겨오는 결정적인 기회로 될것이다.
잭슨함장은 전시환경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례복차림을 하고 맥아더를 흉내내여 파이프로 려송연을 피우고있었다.
그는 기본지휘소에 짜장 위엄있게 들어서는 웨리크를 보자 격식을 차려 맞이해줄 대신 히물히물 징그럽게 웃었다.
《이보게! 자네 소식 들었나?》
웨리크는 이런 식으로 자기를 하대하는 잭슨을 불쾌한 기색으로 마주보았다.
물론 군사칭호나 직급상으로 보면 기함인 《볼티모》호 함장은 함대사령부의 작전참모들과는 대비할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해군에는 《볼티모》호 함장의 경력을 반드시 가져야만 해군제독이 될수 있다는 관례까지 생겼다. 하지만 해군제독이 파견한 승선지도장교는 임무수행상 해당 작전이 끝날 때까지 함장우에 있게 된다.
웨리크는 이런걸 감히 무시하고 자기를 하대하는 상대방이 아니꼽기 그지없었다.
《정말 희한한 소식일세.》
잭슨은 한손으로 텁수룩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불손하게도 웨리크앞에 담배연기를 구름처럼 내뿜었다.
《트루맨대통령이 우리 7함대에 출동명령을 내리고나서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니미쯔각하를 찾아갔다는거야. 그에게 해군작전부장을 다시 해주십사 하고 정중히 요청했다는구만.》
이미 해군제독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웨리크는 씁쓸하고 심드렁해서 조타기만 만지작거렸다.
잭슨은 워낙 말이 많은 작자라 성수가 나서 마치 제 자랑거리나 되는듯이 떠들었다.
《니미쯔각하는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는거야. 그통에 대통령은 개코망신을 했지. 하지만 난 아쉽구만. 니미쯔가 자존심을 좀 죽이고서라도 다시 그 자리에 앉아주었으면 좋겠단 말일세.
말이 났으니 말이지 니미쯔는 타고난 행운아야. 꼬막옛적 우리 〈볼티모〉호에서 항해장교로 복무할 때부터 운수가 기막히게 좋았다니 말일세. 아무리 가렬한 해전을 치러도 끄떡없었지. 바다의 신같은 존재였어. 내 경험에 의하면 운수좋은 상관을 만나야지 그러지 않으면 코코에 랑패를 당하기 쉽다네.
니미쯔가 자기 대신에 해군작전부장으로 쎌만을 추천했다는데 이 잭슨은 그자를 인정하지 않아. 그자는 우리 〈볼티모〉호에 발도 대보지 못했거던. 그자가 타고다니는 함선은 평화시기에도 조난을 당한적이 있단 말이야.
제길, 그런 작자가 해군작전부장이 된다니 어쩐지 께름직하구만.》
웨리크는 조타기에서 손을 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내가 승선지도를 하니까요.》
잭슨은 어이가 없는지 코웃음을 쳤다.
《자네가?! 흥, 자넨 니미쯔의 총애는 받았지만 그의 발뒤축에도 못가.》
잭슨은 자기보다 군복무년한이 적고 따라서 경험도 부족한 웨리크가 승선지도하게 된걸 시답지 않아하는 내심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다.
웨리크는 모욕감에 피가 꺼꾸로 흐르는것 같았다. 그렇다고 중대작전을 앞두고 함장과 다툴수도 없었다. 그는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자신만만하게 해도탁앞으로 다가갔다.
《함장님, 이젠 본론에 들어갑시다. 당신은 적수인 북조선해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파악하고있습니까?》
잭슨은 눈을 흡뜨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야유조로 반문했다.
《북조선에도 해군이 있소?》
웨리크는 질책의 눈초리로 잭슨을 흘겨보았다.
그 모습이 가히 니미쯔해군대장을 방불케 하는것이여서 잭슨은 저도 모르게 파이프를 놓고 해도탁앞에 공손히 마주섰다.
《조선엔 경적필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깔보면 진다는 소리지요.》
잭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였는데 비죽이 내민 입술과 가느스름하게 좁힌 두눈에는 아직도 거만함이 비껴있었다.
《함장님, 부디 명심하기 바랍니다.
북조선해군은 엄연히 존재하고있을뿐더러 그 발전속도가 상당히 빠르기때문에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는걸 먼저 말씀드립니다.
6월 28일현재 북조선해군은 해군사령부의 참모부기능을 수행하는 청진기지와 동해에는 원산기지, 서해에는 남포기지를 두고있습니다. 이외에 해안포부대, 고사포부대, 해상륙전대와 해군군관학교를 비롯한 양성기지들, 배수리공장들을 가지고있습니다.
원산해군기지에는 어뢰정대를 비롯한 네개의 정대와 소해함, 수송선, 경비함들이 있고 어뢰조종대와 통신소, 수로국이 배속되여있는바…》
잭슨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우연히 해군대장의 눈에 들어 함대사령부에 올라가 건달을 치는줄 알았던 웨리크대좌가 북조선해군의 실태를 너무도 환히 꿰뚫고있기때문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웨리크는 사세보를 떠나 조선해협을 통과하여 북상하는 배길과 북조선의 주요항구들과 군항들의 위치, 그 입구와 묘박지의 수심, 지질상태까지도 다 파악하고있었다.
웨리크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잭슨함장의 얼굴에 비껴있던 비웃음이 경탄으로 바뀌우는것을 흐뭇하게 감촉하면서 해도작업도구를 쥐고 자신만만하게 쭉쭉 항로를 그어나갔다.
기동분함대의 예비해도작업을 자기가 직접 하는 판이였다.
그는 기항지를 부산항과 울산항으로 정했다.
《인민군은 전쟁 첫날에 반공격으로 넘어가 한국군 8사 10련대를 밀어제끼고 주문진을 탈취하였으며 강릉일대로 계속 남진하고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빨리 강릉앞바다에 진출하여 집중적인 함포사격으로 동해안을 따라 진격해오는 인민군부대들을 저지시켜야 합니다.
지금 출동준비를 갖춘 24사가 부산에 공수하여 북상하게 되면 정세는 즉시 호전될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작전수역을 38도선이북으로 확대하여 원산항을 들이침으로써 북조선해군의 기본력량을 소멸하고 제해권을 철저히 장악해야 합니다.
뒤이어 원산항에 우리 해병대가 상륙하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 북상하여 청진항을 탈취하고 거기에 타고앉아 필경 참전의 기회를 노리고있을 쏘련태평양함대를 견제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기동분함대만으로도 이상의 작전수행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웨리크는 계속하여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전투정황에 대처한 작전안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은 즉흥적인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연구를 전제로 한것이여서 빈틈이 없었다. 잭슨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우린 서둘러야 합니다.
인민군이 남진하면서 해안을 기뢰로 봉쇄하는 경우 일이 시끄러워질수 있지요.》
《당장 출항하기요. 우린 만전을 기하고있소.》
웨리크는 출항준비정형을 자기가 직접 돌아보고 함대사령부에 보고하겠노라 언명했다. 잭슨은 기꺼이 응했다.
항해준비를 알리는 배고동이 군항을 흔들며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승무원들은 발을 구르며 각기 자기의 전투초소로 달려갔다. 세척의 군함에서 수천명에 달하는 승조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니 굉장했다.
먼저 보조기관들이 돌아가면서 각 초소들에 전원을 공급했다. 높이 치솟은 마스트와 사령탑우에 설치된 여러가지 형태의 안테나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뿌렸다. 함상포들도 휙휙 포신을 휘둘러댔다.
웨리크는 잭슨함장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자못 거룩한 자세로 먼저 함상포들을 돌아보았다.
203미리주포 9문이 선수갑판, 중갑판, 선미갑판에 계단식으로 틀고앉았는데 과연 볼만 했다. 127미리부포는 12문이나 된다. 40미리, 20미리고사포들은 모두 합쳐 49문이였다.
이 함상포들이 동시에 울부짖으면 아마 사세보항이 순간에 재가루로 될것이였다.
그 광경을 상상해보니 매우 흡족했다. 승무원들의 전투동원준비상태도 마음에 들었다. 모두들 규정대로 전투항해복장을 착용하고 자기 위치에 지켜서있는데 부릅뜬 눈동자에선 마주보는 사람의 속을 섬찍하게 해주는 살기가 희번득거렸다. 모두들 한바탕 싸워보고싶은 갈망에 불타고있었다.
웨리크는 그들을 둘러보다가 여기에 혹시 볼티모내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키는 꺽두룩한데 녀자들처럼 살결이 희고 해사하게 생긴 애티가 나는 사병이 한걸음 나섰다.
《이름은?》
《토니입니다.》
《볼티모에서 뭘 했어?》
《선박호텔경비원을 하다가 작년에 입대했습니다.》
토니는 승선지도장교가 하바닥인 자기를 친절히 상대해주는게 자못 황송해서 총소제대라도 삼킨듯이 빳빳한 자세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일본에 와서 실컷 놀았겠구만.》
토니는 헤벌쭉거리며 여긴 지상천국이다, 호텔경비나 서다가 여기와서는 매일같이 유흥장에 나가 마시고 춤을 추니 흡족했다, 직업이 신통치 않아서 군복을 입었는데 인생의 선택을 잘한것 같다고 제법 희떠운 소리를 했다.
웨리크의 눈앞에는 가렬처절했던 태평양전쟁의 나날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갈가마귀떼처럼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던 날개에 일장기를 그린 함재기들, 미해군이 미처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상공을 찢어발기며 우박치듯 쏟아져내리던 폭탄과 항공어뢰들, 련속 울리는 폭음, 도처에서 번쩍이는 화광, 솟구치는 물기둥, 순식간에 바다는 불타는 함선잔해들과 물결우에 둥둥 떠도는 시체들의 란무장으로 변했다.
파철더미가 되여 바다밑으로 가라앉는 함선들마다에서 비통하게 울려나오던 《해군행진곡》소리…
주여 보살펴주소서
나의 령혼 천당에 갈수 있게
파도여 나를 도와
바다깊이 안내해다오
진주만과 미드웨이섬의 앞바다에서 그렇게 천당으로 간 미해병들은 그 얼마였던가. 그네들의 원쑤를 갚자고, 훼손된 미해군의 명예를 회복하자고 한결같이 분발하여 일떠서서 가증스러운 사무라이해군을 쳐부시던 나날엔 누구나 개인의 생사나 환락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녀인들의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불비가 쏟아지는 거치른 파도우에서 향수내대신에 노상 화약내와 피비린내를 맡으며 혈전을 거듭해야 했다.
그 나날에 미해군은 해군대장인 니미쯔로부터 자기가 몰고다닌 잠수함의 조기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병들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본해군을 격파함으로써 진주만에서 당한 최악의 수치를 깨끗이 씻어버리자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였다.
이처럼 태평양전쟁초기의 패배는 술에 만취되고 환락의 소용돌이속에 깊숙이 잠겼던 미해군을 정신차리게 해주었고 전체 미군과 국민을 단합시켜 대아메리카의 명예와 안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게 해주었다.
그런데 애비가 손끝에서 피나게 번 돈으로 진탕망탕 놀아대는 귀공자처럼 전후에 입대하여 점령군의 특세를 부리는 이 애숭이들이 그것을 과연 알기나 할가?
《자네가 일본에 와서 누린 향락은 지난 태평양전쟁때 흘린 로병들의 피의 대가라는걸 명심하게.》
토니는 무거운 숨을 내그었다.
《대좌님, 제가 그걸 모를리 있겠습니까. 당시 나의 형은 주력전투함인 〈네바다〉호에서 주포의 조준수로 복무했답니다.》
순간 화약내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듯싶었다.
웨리크의 눈앞에는 일본함재기들이 불의에 진주만을 기습할 때 요행 항구밖으로 빠져나가 전속으로 내빼다가 맹폭격을 받고 불길에 휩싸여 가라앉던 《네바다》호의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형은 어떻게 됐소?》
토니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듯이 큰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침몰하는 함선과 운명을 함께 했습니다.》
《당신도 그럴 각오가 되여있소?》
《예,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북조선에는 우리 〈볼티모〉호를 침몰시킬만 한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이 없다고 합니다. 난 좀 본때있게 싸워보고싶은데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토니가 희떠운 소리를 줴치자 곁에 있던 해병들도 동감인듯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웨리크는 그렇다고 해서 북조선해군을 너무 얕보면 안된다, 바싹 긴장하라고 일장훈시했다.
《난 당신들이 이번 전쟁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서 기어이 이기고야마는 미해군의 전통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소. 참, 누가 조선에 가보았소?》
대답을 하는 해병이 없었다.
《조선은 경치가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요. 그래서 예로부터 대국들이 서로 넘겨다보며 군침을 흘려왔소. 우리 미국이 지금 조선반도의 남쪽을 타고앉았는데 세계제패를 위하여 38도선을 압록강기슭과 두만강기슭까지 올려밀자는거요. 나는 당신들이 로병들이 점령해준 이 섬나라가 아니라 자기가 점령한 북조선의 명승지인 명사십리나 송도원에서 즐기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소.》
토니와 해병들은 대좌님의 기대에 보답하겠노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웨리크는 이런 식으로 경순양함과 원양구축함도 돌아보면서 승무원들을 고무해주었다. 그러고나서 《볼티모》호로 돌아왔다.
《볼티모》호의 사령탑은 3층으로 되여있다.
1층은 예비지휘소고 2층은 기본지휘소이며 3층은 작전지휘소다. 함장실은 기본지휘소곁에 있었다. 웨리크는 자기가 숭배하는 볼티모경의 초상화가 붙어있는 이 방에서 니미쯔로부터 북조선해안을 정찰할데 대한 특별임무를 받던 그날이 생각나서 감개무량했다.
잭슨은 라지오를 켜더니 장을 열고 위스키병과 고뿌 두개를 꺼냈다.
《대좌, 당신이 세운 작전안은 만점짜리요. 난 탄복을 금할수 없소.
그럼 력사적인 출항을 기념하기요.》
웨리크는 잭슨함장이 술을 부어주는 잔을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라지오에서는 녀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공산군은 그야말로 노도와 같이 진격하고있습니다. 전쟁개시 첫날에 개성을 탈취하고 계속하여 옹진반도와 연안을 거쳐 오늘은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압박하고있습니다. 정황이 위급하여 리승만대통령은 새벽 3시에 대전으로 피신했고 무쵸대사도 서울에서 빨리 탈출하라는 미국무성의 지시를 받고 아침에 수원으로 떠났습니다.
무쵸대사는 서울을 떠나기 앞서 기자들에게 미군이 전쟁에 속히 개입하지 않으면 한국은 열흘어간에 붕괴될것이라고 언명했습니다.
트루맨대통령의 긴급지시에 따라 조선전쟁조사단이 수원에 가서 오늘 저녁부터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오늘부터는 미국이 전면에 나서서 《자유세계》를 지켜 공산군과 싸우겠다는 소리였다.
보도가 끝나자 《해군행진곡》이 울려나와 출전을 앞둔 그들의 사기를 더욱 돋구어주었다. 그들은 태평양해전때 즐겨부른 이 노래를 입속으로 따라부르며 잔을 들어올렸다.
잭슨이 자못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대좌, 무엇을 위해 마실가?》
웨리크는 액틀속에서 엄숙한 기색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볼티모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북조선의 원산항을 제2의 볼티모항으로 만들기 위하여 듭시다.》
《나 역시 그게 소원이요.》
두개의 수정술잔은 공중에서 마주치며 귀맛좋은 소리를 냈다.
라지오에서는 《해군행진곡》이 계속 울려나오고있었다.
그날 밤 기동분함대는 출항에 앞서 이런 경우에 전통적으로 그러했듯이 모든 승무원들이 각기 자기 함선의 갑판에 정렬하였다.
먼저 하느님께 승전과 축복을 바라는 종군목사의 기도가 있은 다음 잭슨함장의 선창에 따라 《내리워지지 않는 성조기》를 일제히 합창했다.
사세보항을 뒤흔드는 그 우렁찬 노래소리를 들으니 웨리크는 가슴속에서 피가 끓어오르고 눈굽조차 뜨거워졌다.
기동분함대는 조선전선으로 떠났다.
《장엄》한 출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