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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 해군군관학교 제1기 졸업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최우등의 성적을 쟁취한 김군옥은 단번에 해군대위의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어뢰정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고준무도 해군대위의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소포정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젊은 해군지휘관들이 출항식에 참가했던 전투함정들을 몰고 의기양양해서 배고동을 높이 울리며 원산기지로 떠나가자 청진항은 졸지에 빈 새둥지처럼 되고말았다.
바로 이때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소원대로 해군에 입대하여 청진기지에 온 김정인은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해상실습의 힘겨우나 보람찬 나날에 어뢰정대와 친숙해진 그는 이름도 정다운 어뢰정들과 정대원들이 보고싶어서, 더우기는 정식 정대장으로 임명되였다는 김군옥이 보고싶어 그야말로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해군사령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청진기지에는 통신소와 수로대, 군의소 등이 있었다. 해군복을 입었지만 륙상에서 근무하는 성원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을 《몽고해군》이라고 불렀다. 정인이가 보기에도 그들은 뭔가 모자라는것 같았고 사내답지 못했다. 해군복을 입었으면 전투함정을 타고 바다에 나가야 할게 아닌가.
정인은 그런 연고로 몽고해군들과는 애당초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군의소에 새로 온 녀군의가 활짝 핀 해당화처럼 아름답지만 그 값을 하려는지 도고하기 이를데 없다는 소문이 난건 그때문이다.
어느날 기지곁에 있는 해군군관학교의 군의소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정치부교장의 안해가 해산을 하다가 중태에 빠졌던것이다. 급해맞은 해군군관학교 군의소에서는 기지군의소에 방조를 요청했다.
기지군의소에도 산과의사는 없었다. 이때 김정인이 자진해나서서 아기를 무사히 받아냈다.
그는 산모와 아기의 건강관리를 위해 후에도 자주 조정철의 집에 다녔다.
그는 정치부교장인 조정철을 만날 때마다 함선구분대들이 집중되여있는 원산기지에 가고싶은 심정을 터놓군 했다. 그러면 조정철은 호의적으로 나왔다.
《동무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이 계셔서 각별히 해군에 입대시켰는데 이왕이면 어뢰정대가 있는 원산기지에 가야지. 그래야 아저씨와 언니도 만나볼수 있고 군옥이를 비롯한 어뢰정대원들과 함께 생활할수 있지. 그런데 가기 전에 할일이 있소.》
《뭡니까?》
《정인동무처럼 아이도 척척 받아내고 치료도 할수 있는 준의를 서너명 키워놓고 가라구.》
《알았습니다.》
대답은 쉽게 했지만 그것을 정작 실천에 옮기기가 헐치 않았다. 김정인은 준의양성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초봄에야 원산기지 군의소로 조동되였다.
원산해군기지는 전투적용맹이 차넘치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재작년에 왔을 땐 금시 무너질것 같은 나무잔교가 가냘프게 서있던 자리에 든든하고 넓은 콩크리트부두가 일떠섰다. 부업선과 전마선 대신에 새로 건조한 경비함 《로동》호와 소해함들, 소포정과 경비정들이 렬을 지어 계류해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뢰정은 한척도 눈에 띄우지 않았다.
여기에 오면 의례히 어뢰정대를 보게 될것이고 김군옥을 비롯한 정대원들과 반가운 상봉을 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며 힘든줄도 모르고 수십리길을 내처 걸어온 처녀는 그만 다리맥이 풀려서 하마트면 주저앉을번 했다.
횡대로 렬을 지어 계류한 소포정들의 선수갑판에서 해병들이 무엇인가를 하고있었다.
정인은 호기심이 동해서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해병들은 기다란 포소제대끝에 걸레를 감고있었다. 걸레는 사용기간이 지난 속내의따위를 깨끗이 빨아서 말리운것이다.
《포신소제준비를 잘하오. 포신강엔 티 한점도 있으면 안되오. 포신강은 해병들의 근면성과 량심을 비춰보는 거울이란 말이요, 거울!》
야전복차림에 항해모를 멋을 부려 비스듬히 제껴쓴 군관이 선수갑판에 위엄있게 서서 훈시를 하고있었다. 목소리가 귀에 익어 자세히 바라보니 이게 누군가, 수상보안간부학교와 군관학교시절에 김군옥이와 늘 앞자리를 다투던 고준무였다. 고준무는 이 함선에서 저 함선으로 오가며 포신소제준비상태를 검열하고나서 손에 쥔 붉은색수기를 높이 추켜들었다.
《준비!》
구령에 따라 해병들은 함상포의 포신아가리에 걸레뭉치를 감은 소제대를 간신히 틀어박았다.
《시―작!》
고준무는 포사격구령이나 치는듯 수기를 홱 나꿔챘다. 바줄당기기를 할 때처럼 기다란 소제대를 서로 엇바꿔잡은 해병들은 일제히 《영차! 여엉차!》하고 웨치며 포신소제를 시작했다. 소제대를 동시에 밀고당기는 숙련된 그 힘찬 동작이 어찌도 멋진지 배기관의 크랑크축이 맹렬히 움직이는것만 같았다. 그런가하면 잘 째인 무용장면을 련상시키기도 한다. 기발을 흔들며 련속 구령을 치는 고준무의 모습은 안무가나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정열에 넘쳐있었다.
김정인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게 바로 지나칠 정도로 영악스럽고 승벽심이 강하고 저만 저라고 우쭐거리던, 그래서 걸핏하면 동무들사이에 불집을 일으키군 하던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의 고준무가 옳은가?
구령을 칠 때마다 금이발이 번쩍거리고 이마에 엇비스듬히 찍힌 허물자리가 드러나는걸 보니 고준무가 분명했다. 하지만 어제날의 그가 아니였다.
높은 요구성과 통솔력을 지니고 해병들과 친절히 어울리는 지휘관으로 성장한 고준무였다.
정인은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입학하러 갔을 때 《뽀쬼낀》선생에게 맹목적으로 동조하면서 자기를 본체만체 했던 고준무를 얼마나 야속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후에 청진기지에 실습나갔을 때 고준무를 차겁게 대해주었다. 그 야속함과 차거움이 이 순간에 봄눈녹듯 사라지는것이였다.
《그만!》
해병들은 포소제대를 뽑고 긴숨을 내쉬며 일제히 한걸음 물러났다.
고준무는 함상포앞에 다가가 한눈을 지그시 감고 다른 눈으로 포신강을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한바탕 용을 쓴지라 땀투성이가 된 해병들은 얼굴에 줄줄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훔칠념도 하지 않고 사뭇 긴장해서 정대장을 지켜본다. 김정인도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포신강에서 눈을 뗀 고준무는 해병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아주 좋소! 합격!》
《야!》
해병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껑충껑충 뛰였다. 그들은 값높은 표창이나 받은듯이 그저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들이 소포정과 함상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모습을 보아도 충분히 알수 있었다.
고준무는 12호정의 갑판으로 훌쩍 뛰여넘어가 포신강소제정형을 검열하였다.
《좋아! 여기도 합격이요!》
해병들의 환성이 터져올랐다.
《아니?! 이게 누구요?》
뒤미처 김정인을 알아본 고준무는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함흥의전의 꽃이로구만! 허! 군관복을 입으니 더 매력이 있는걸, 정말 몰라보겠소.》
김정인은 상급인 그에게 규정의 요구대로 깍듯이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준무는 훌쩍 부두에 뛰여내렸다.
《정인동무, 우리 기지에 배치되였소?》
《예.》
《군옥이 그 친구가 되게는 좋아하겠는걸.》
김정인은 아닌보살했다.
《그 동무가 어째서요?》
고준무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동무들은 남다른 사이지.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입학하러 올 때 있은 일이 생각나지 않소? 그래서 동무는 어뢰정대에서 해상실습을 했겠지. 어뢰정대에선 오늘도 동무를 잊지 않고있더군.
자! 나와 함께 군옥동무를 찾아가기요.》
《고맙지만 저는 먼저 기지지휘부에 도착보고를 해야 합니다.》
《아! 동무 아저씨가 기지장동지지. 전에 수상보안간부학교 교무과가 있던 건물이 기지지휘부요.》
김정인은 고준무에게 사의를 표하고 지휘부로 갔다.
바다기슭에 있는 낯익은 단층건물이 눈에 띄우자 느닷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재작년 정초, 개교식을 앞두고 군옥이와 함께 수십리길을 걸어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찾아오던 못 잊을 그 밤이 생각났다. 자기를 문전거절했던 한백천의 얼굴도 떠오르고… 그때 찾아왔던 군옥이또래들이 오늘은 어엿한 해군지휘관으로 자랐다.
건물안에 들어서니 전에 교장실이였던 방에 《기지장》이라는 표쪽이 붙어있었다. 문기척을 하니 응대가 없는데 분명 말소리는 들렸다.
정인은 언제 봐도 너그럽고 배포가 유한 아저씨의 벙글벙글 웃는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며 살며시 문을 열었다.
대기실은 비여있는데 기지장방에서 어딘가 모르게 귀에 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방그시 열린 문짬으로 새여나왔다.
《그 동문 정말 안하무인입니다. 내가 그만큼 그만두라는데도 자기는 기어이 원항해타격훈련을 하겠다고 고집이지요. 새로 온 문화부정대장은 실정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맞장구를 치고있습니다.》
정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굴가? 목소리는 분명 귀에 익은데…
《기지장동지도 아시겠지만 어뢰정은 종류가 여러가지입니다.》
정인은 어뢰정이라는 말이 나오자 대뜸 긴장해서 귀를 강구었다.
《원항해타격을 위해 건조한 어뢰정은 배수량이 크고 침실과 취사장, 창고를 비롯하여 숙식조건이 갖추어져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있는 〈게뻬아찌〉는 연안순찰용으로 건조해서 침대도 밥가마도 없단 말입니다. 원항해를 하려면 적어도 사나흘은 걸리는데 허허날바다에서 그동안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데서 잔다는겁니까? 실정이 이러한데 강다짐으로 그런 훈련을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괜히 아까운 연유나 랑비하고 고속기관이나 혹사하며 어뢰정들의 전투성능을 저하시킬뿐이지요.》
웬일인지 아저씨는 응대가 없었다.
어뢰정대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게 분명했다.
《지금 상가대에 올려놓고있는 어뢰정들을 하가하려면 품은 또 얼마나 들겠냐 말입니다. 흘수선아래에 바를 독장만 해도 수십키로에 달합니다. 그게 값이 얼마입니까? 나라사정도 생각해야지요.》
이제야 비로소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보우, 작전과장동무.》
그런즉 원항해타격훈련의 불가능과 불필요성에 대하여 역설한 사람은 해군군관학교에 있다가 원산기지 작전과장으로 간 한백천이였다.
《동무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소. 하지만 연유나 기관이 아깝다고 어뢰정들을 그 무슨 귀중품이나 장식품처럼 계속 상가대우에 올려놓고있을수도 없잖소.》
《그래도 그게 상책입니다. 바다에 띄운 어뢰정은 한주일이면 다시 상가시켜야 하니 이게 어디 보통 품이 먹는 일입니까?》
김정인은 한백천이 하는 말을 선뜻 리해할수 있었다.
어뢰정선체의 재질은 비행기처럼 알루미니움합금강이여서 가볍고 견고하지만 바다물에서는 인차 부식될수 있었다. 그래서 하가할 때면 흘수선아래에 부식을 막는 독장을 바른다. 그래도 한주일이상은 견딜수 없어서 다시 상가시키고 청수로 선체를 깨끗이 씻어야 했다.
《어뢰정들은 땅우에 올려놓고 승무원들은 륙상병실에서 한담이나 하다가 전쟁이 터지면 어쩐다?》
한백천은 비양어린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난 어뢰정대장을 지지하는거요.
이젠 동기훈련도 마감에 이르렀는데 어뢰정대는 원항해타격훈련을 꼭 진행해야 하오.
적구축함이나 순양함이 어뢰맛을 보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올리는 만무하니까 우리가 찾아가서 맛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잖소. 범의 굴에 가야 범을 잡을수 있다는 소릴 못 들었소?》
한백천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응대했다.
《토끼가 범의 굴에 찾아가야 먹이감이나 되지요.》
《여보, 하필이면 어뢰정을 왜 토끼에 비유하는거요? 이왕이면 풍산개에 비유해야지. 그래 풍산개 다섯마리가 달려들면 호랑이가 견딜것 같소?》
김정인은 아저씨가 풍산개소리를 우연히 한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처가가, 즉 자기의 고향이 풍산이였다.
언니 김정녀는 해방직후 풍산군당에서 부녀부장으로 사업하다가 중앙녀맹에 올라간 기회에 홍동철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한백천은 달갑지 않은 투로 물었다.
《풍산개란건 뭡니까?》
《과장동문 우리 나라의 유명한 풍산개도 모르오? 풍산군에 있는 토종개요.
자그마하지만 령리하고 날쌔게 생겼지. 집을 잘 지키고 사냥을 잘해서 예로부터 소문이 났소.》
《하여간 그 훈련은 심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알겠소. 기지당위원회에서 토의해보기요.》
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한백천상좌가 나왔다. 그는 기분이 상해서인지 대기실에 있는 정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성급히 밖으로 나갔다. 김정인은 기지장방에 들어가 깍듯이 도착보고를 했다.
홍동철은 군관복을 입고 나타난 처제를 보고 별로 놀라와하는 기색이 없이 웃으며 물었다.
《너 어째서 여기로 왔니? 언니가 보고싶어서 왔니, 아니면 이 아저씨가 보고싶어서 왔니?》
당당한 군관을 어린애처럼 취급하기에 정인은 약이 올라서 아저씨를 흘겨보며 우정 격식을 차려 말했다.
《기지장동지, 무슨 말을 하십니까.
저는 방금전에 보고드리다싶이 조동되여온 준의입니다.》
홍동철은 여전히 이죽거렸다.
《음, 그러니까 언니네 집에 나들이를 온건 아니라는거지?》
《물론이지요. 저는 함선승무원들의 의료보장을 위해 자진하여 여기로 왔습니다. 그러니 기지장동지가 많이 도와주십시오.》
홍동철은 도담하고 고집스러운 처제의 오똑한 코등을 손가락으로 꼭 눌러주었다.
《요건 그저… 내 그러지 않아도 네가 조동되여온다는 련락을 받고 기다리던중이란다. 너를 보면 언니가 무척 기뻐할게다.》
정인은 더이상 공식적인 태도를 견지할수 없었다. 그래서 생글 웃으며 물었다.
《언닌 잘있어요?》
《음.》
《언닌 여기서 무슨 일을 해요?》
《여기서도 부녀부장인셈이지. 녀맹사업에 분주하단다.》
《순이는요?》
《그 애도 앓지 않고 잘 자란다.
이젠 제법 못하는 말이 없어. 쩍하면 이모를 찾군 해.》
홍동철은 귀여운 딸을 가진 아버지들이 다 그러하듯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인의 눈앞에는 이제 세살잡힌 조카애의 모습이 막 얼른거렸다. 어서 빨리 언니네 집에 달려가서 반기며 아장아장 마중나올 그 애를 담쑥 안고 볼을 비벼주고싶었다.
누구나 조카애를 귀여워하지만 그가 순이를 이토록 각별히 귀여워하는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방직후 해주시당에서 사업하다가 중앙당으로 소환된 홍동철에게 보안간부학교 부교장이라는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홍동철은 부임지로 갈 때 안해가 만삭이여서 집에 떨구어두었다. 마침 방학기간이라 정인은 언니네 집에 와있었다.
초산부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언니는 병원에 가기를 몹시 부끄러워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새벽에 해산을 했다. 의전학생이라지만 이런 일에 생둥이인 정인은 어쩔수없이 두팔걷고 나서서 기적적으로 아기를 무사히 받아냈다.
그때 그가 맛본 희열은 참 대단한것이였다.
그래서인지 조카애는 보두룩새 정이 갔다.
《순이 엄마가 네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있는지 몰라. 그럴만한 리유가 있지. 몇달후엔 순이의 동생이 생길게다.》
정인은 너무 기뻐서 철부지소녀처럼 콩콩 뛰였다.
《아이 좋아! 그게 정말이예요?》
홍동철은 싱글벙글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그 사람은 이번에도 꼭 너한테서 해산방조를 받고싶다는구나.》
《그야 응당 그래야죠. 순이를 받아낼 땐 내가 정말 애를 먹었어요. 그러나 이젠 자신이 있어요.
청진기지에 있을 때 조정철부교장동지의 부인이 해산을 했거던요. 내가 아기를 받아냈어요.》
홍동철은 큰소리를 탕탕 치는 처제에게 진심으로 당부했다.
《정인아, 이번엔 꼭 사내애를 받아내거라.》
《어머! 그거야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요?》
홍동철은 우정 두눈을 흡뜨며 을러멨다.
《이건 내가 너에게 아저씨로서 부탁하는게 아니라 기지장으로서 명령하는거야.》
《명령이라구요?》
《음, 사내애가 태여나야 앞으로 어뢰정을 타고 한몫 할게 아니냐. 군옥이처럼.》
군옥이소리가 나오자 정인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발기우리해졌다.
그는 짐짓 태연한체 하려고 애쓰면서 어뢰정들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홍동철은 자못 섭섭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 넌 언니나 조카보다도 그 사람부터 만나보고싶다는거냐?》
《아저씨두 참…》
완전히 빨개진 처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홍동철은 호탕하게 웃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됐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
처제를 데리고 집에 간 홍동철은 반겨맞는 안해에게 능청스레 말했다.
《여보, 정인이가 군옥정대장부터 만나보겠다는걸 내가 억지로 끌고오는중이요.》
이통에 정인은 급해맞았다.
《언니, 그런게 아니예요.》
언니는 즐겁게 웃으며 한수 더 떴다.
《정인아, 여기선 숱한 처녀들이 그 총각정대장만 쳐다보고있단다. 정신을 바싹 차려라.》
김정인은 더 급해맞아 얼굴이 빨개졌다.
《언니두…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예요.》
《아닌보살하지 말아라. 애아버지가 그러는데 어뢰정대장은 함대사령관감이래. 사실 함대사령관은 사내번지기인 네가 되고싶어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적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함대사령관의 부인이라도 돼야 할게 아니냐.》
《아유, 그런 소리 마세요. 난 시집 안 가요.》
홍동철이 끼여들었다.
《둘이 같고 같구나. 군옥이도 그런 소리를 하더라.》
언니가 큰일이나 난듯이 눈이 올롱해서 물었다.
《그 사람이 어째서 장가를 안 가겠대요?》
홍동철은 정색해서 대답했다.
《장가를 가면 해군지휘관구실을 제대로 할수 없다는거요.》
언니는 어이없어했다.
《거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장가를 갔으니 기지장구실을 제대로 못하고있다는거예요?》
정인은 조카애를 다시 껴안고 애무해주면서 내심 긴장해서 언니내외가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장가를 가고도 기지장구실은 제대로 할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정대장구실은 제대로 하기 어렵지. 어뢰정대장인 경우엔 더욱 그렇소.》
《무엇때문인가요?》
《어뢰정대엔 이미 장가를 간 정장이 한명 있소.》
《거야 리완근 22호정장동지이지요.》
《음, 듣자니 그 친구도 장가간걸 후회한다는구만. 안해요, 자식이요 하고 달린게 없어야 어뢰정을 몰고 적함으로 대담하게 돌진할수 있다는거요.》
정인은 강한 충격을 받고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언니도 놀랐던지 입을 벌린채 굳어졌다.
《지금 어뢰정대가 준비하고있는 원항해타격훈련은 그런 결사의 각오와 희생정신에 기초한거요.
당신네 군관가족들도 그 훈련준비를 적극 도와주어야 하겠소.》
홍동철은 이 말을 하고나서야 담배를 한가치 뽑아물고 성냥을 켜서 불을 달았다.
언니는 호― 하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치마두른 아낙네들이 무엇을 도와줄수 있을가요?》
《어뢰정엔 숙식설비가 없소. 장기항해를 하려면 미리 음식을 준비해야 하오. 며칠 보관해두어도 쉬거나 변질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란 말이요.》
《알겠어요.》
정인은 별안간 심장이 높뛰고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수 없었다.
《아저씨, 나도 그 훈련에 참가할수 있게 해주세요.》
홍동철은 저으기 놀란 눈길로 처제의 몹시 흥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훈련을 할 때 해상에서 의료보장을 해야지요. 해군군관학교 학생들이 실습항해훈련을 할 때처럼 말이예요.》
정인은 그때 학생들과 함께 실습함선을 타고 자주 바다에 나가군 했었다.
어째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녀성들대다수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멀미를 심하게 해서 옴짝을 못한다. 그러나 정인은 아무리 파도가 세차도 끄떡없었다. 그래서 군옥을 비롯한 해군군관학교 학생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홍동철이 역시 그때 바다사나이 못지 않은 처제를 무척 대견하게 생각했었다.
《어뢰정대엔 비편제위생지도원이 있어.》
《만약 항해도중에 구급환자가 생기면 어쩌겠어요? 위생지도원이 치료해낼수 있어요? 그러니 제가 꼭 있어야 해요.》
처제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자 홍동철은 양보하는척 했다.
《그럼 어뢰정대장에게 부탁하려무나. 원항해타격훈련을 할 때 군의소 준의도 참가시켜달라고 그가 정식으로 제기하면 난 눈 꾹 감고 승인해줄테다.》
《알았습니다! 기지장동지.》
정인은 사기가 나서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막상 언니네 집을 나서니 곧장 어뢰정대에 찾아가 김군옥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젠 어엿한 정대장이 된 그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기만 해도 가슴이 활랑거리고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김군옥이 그랬다. 총명하고 어질고 단정해보이면서도 억센 의지가 느껴지는 이런 총각을 싫어할 처녀가 어데 있으랴. 그래서 대뜸 믿음이 갔고 서슴없이 속을 터놓고 의지하고싶어진것이다.
가까이 지내보니 그에게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다운 높은 지향과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완강한 투지도 겸비되여있었다.
정인은 이것을 해상실습의 나날에 충분히 목격하고 재삼 확인했다.
하기에 그는 해군군관학교 제1기 졸업생들가운데서 제일 우수한 성적을 쟁취했고 대뜸 어뢰정대장으로, 해군 대위로 된것이였다.
정인이도 그렇게 되기를 열렬히 희망했었다. 그래서 용단을 내리고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입학하러 갔더랬다. 그런데 녀성이라는 당치않은 리유로 입학하지 못하고 자기가 다니던 의전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로 그때는 김군옥도 자기처럼 수상보안간부학교 입학지망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두해가 지난 오늘에 와서는 둘사이에 아찔한 차이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정인은 그를 만날 일이 점점 더 난처하고 두렵게 여겨지는것이였다. 하기에 륙상병실옆의 상가장에 주런이 올려놓은 어뢰정들을 보면서도, 가끔 그 주변에서 얼른거리는 군옥의 모습을 보면서도 정작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고있었다.
그런데 어뢰정대에 나가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겼다.
저녁총화모임때 늙수그레한 군의소장이 정인에게 래일부터 어뢰정대를 고정담당하여 예방치료를 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정인은 갑자기 가슴이 막 뛰놀아서 얼굴만 붉혔을뿐 미처 대답을 못했다.
군의소장은 색다른 감촉을 받았던지 돋보기우로 정인을 지꿎게 바라보다가 짜장 불만스러운듯 퉁명스레 물었다.
《준의동무, 왜 대답이 없소?》
정인은 주사바늘에 찔린듯 흠칠 몸을 떨었다.
《어뢰정대를 담당하라는 이 소장의 지시를 듣지 못했소?》
정인은 그제서야 일어나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저… 들었습니다.》
《헌데 어째서 그러오? 나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소? 그렇다면 다른 동무를…》
급해맞은 정인은 덤벼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마음에 듭니다!》
별스레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히는 그를 저으기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던 군의들과 간호원들은 군의소장이 능청스레 한쪽눈을 껌벅이자 일제히 까르르 웃어댔다.
군의소장도 일부러 지었던 엄한 표정을 풀며 벙글벙글 웃었다.
《사실 어뢰정대는 동무들이 저마다 담당하겠다고 하는데 어째서 새로 온 김정인동무에게 맡기는가?》
그런 의문이 없지 않았던지라 모두들 정색해서 군의소장을 바라보았다.
《이 동무는 어뢰정대원들과 함께 이미 해상실습에 참가한 전적이 있으며 그때 〈해상에서 함선승무원들에 대한 군의보장사업〉이라는 소론문까지 썼다고 합니다.》
모두들 놀라와하며 새삼스레 정인을 바라보았다.
《이 동문 천성적으로 멀미도 안한다는구만. 그래서 우리 기지에서 제일 중요한 어뢰정대의 군의보장사업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군의들과 간호원들은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하며 박수까지 쳐주었다.
《그럼 모임을 끝냅시다. 모두들 어깨가 근질거리겠는데 어서 마당에 나가서 춤이나 추라구.》
모두들 위생가방을 메고 마당에 나갔다.
그들은 요즘 총화모임이 끝나면 마당에서 가무련습을 하군 했다.
보름전에 민족보위성 문화훈련부에서는 5월초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하게 될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와 예술경연대회 요강을 《조선인민군》신문에 발표하였다.
륙해공군의 모든 군부대들이 이 경쟁에 참가하여 우승하기 위한 준비로 들끓고있었다.
군의소에서는 간호원들의 생활을 담은 가무 《우리의 생활》을 준비하고있었는데 모두들 열성이 대단했다.
밤이 깊어서야 가무련습이 끝났다.
정인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래일부터 어뢰정대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진정을 모르고 계속 뒤설레서 통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와 동갑인 간호장 오봉임도 잠이 오지 않는지 궁싯거리다가 슬며시 상반신을 일으켰다.
《준의동무.》
《응.》
《래일 어뢰정대에 나가면 건국실에 꼭 들려보라요. 새로 온 문화부정대장동지가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에서 기어이 1등을 하려고 벼른대요. 어뢰정대에선 재간이 있건없건 정대장으로부터 조기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발명품을 만들거나 연필화라도 한점씩 내놓게 했다더군요. 발명품과 미술작품이 나오는 족족 건국실에 전시하는데 정말 볼만 하대요.
그뿐인줄 아세요. 문화부정대장동지는 예술경연대회에서도 어뢰정대가 1등을 양보할수 없다면서 자기가 직접 합창을 지휘하고 재담에도 출연한대요.》
간호장이 문화부정대장에 대한 소리만 하니 정인은 은근히 섭섭했다.
어째서 정대장에 대한 소리는 하지 않을가?
그는 무심코 물었다.
《문화부정대장이 어디에서 왔어요?》
《청진에서 고기배를 타던 사람인데 해방이 되자 수산합작사를 뭇고 당세포위원장을 하다가 중앙당학교를 나오고 어뢰정대에 왔다고 해요.》
중앙당학교 졸업생을 문화부정대장으로 임명한것만 보아도 당에서 어뢰정대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알수 있었다.
《중앙당학교를 나온 일군이니 수준이 대단하대요. 그런 유능한 정치일군을 만났으니 어뢰정대장은 말타고 견마잡힌셈이지요.
정대장은 요즘 더 부쩍 사기가 올라서 이 군항엔 어뢰정대밖에 없는듯이 큰소리를 탕탕 치고있어요.
코대가 얼마나 높고 건방진지 알아요? 우리같은건 쳐다보지두 않아요.》
《누가 말이예요?》
《누군 누구겠어요. 위신을 차리기 좋아하는 어뢰정대장이지.》
봉임은 슬쩍 정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비죽이 내밀었다.
《흥, 난 그가 대위를 달고 으시대기에 적어도 스물대여섯은 난줄로만 알았댔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나와 동갑이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그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갑인 정장들과 기관장들이 옴짝을 못하더군요. 통솔력은 있는것 같아요.》
김정인은 애써 무심한듯 한 표정을 짓고 잠자코 있었다.
간호장의 말을 들어보면 젊은 나이에 정대장이 된 김군옥은 기지에 있는 처녀들의 관심사가 된게 분명했다. 그는 처녀들이 표시하는 호감을 받아주지 않아서 원망의 대상이 된것 같았다. 장가를 안 가겠다는 총각이니 그럴수밖에…
《어뢰정대에 나가면 정대장과는 아예 상대를 하지 말라요.
준의동문 미인인데 값을 올리란 말이예요. 건방진 사람은 그렇게 대해줘야 해요. 알겠어요?》
봉임이는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이런 묘한 소리를 하며 새물거렸다.
정인은 태연한척 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얼굴이 화끈거려서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준의동무,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봐요. 어서요.》
정인은 겨우 얼굴을 들다가 자기의 속을 빤히 꿰뚫어보는듯 한 간호장의 지꿎은 눈초리와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호호호!》
간호장은 유쾌하게 큰소리로 웃어댔다.
《내가 군옥정대장을 헐뜯으니까 준의동문 기분이 나쁘지요, 예? 솔직히 말해보라요.》
정인은 아닌보살했다.
《나쁘긴, 난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해요.》
《그럼 준의동무가 어뢰정대원들과 함께 해상실습에 참가했다는건 허튼 소린가요?》
《그건 저…》
간호장은 얼굴이 빨개진 정인을 바라보며 깔깔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웃음을 그치고 정색해서 물었다.
《준의동무가 천성적으로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게 사실이예요?》
정인은 시무룩이 웃었다.
《난 그런 행운을 타고나진 못했어요.》
《그럼 멀미를 하댔나요?》
《예, 난 어렸을 때 학비를 벌어보자고 일자리를 찾아헤매다가 정어리를 잡는 고기배를 타고 취사일을 했단 말이예요. 처음엔 멀미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쓰거운 열물까지 토했댔어요. 그러나 다른 일자리가 없으니 그 고생을 할수밖에요. 멀미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싸워보자 하고 악을 먹고 배를 타느라니 차츰 멀미가 슬며시 사라지더군요.》
봉임은 바다에서 단련돼서인지 건강하고 담차게 생긴 정인을 부러움에 찬 눈길로 바라보다가 불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난 멀미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슥메슥해요. 작년 가을에 어뢰정을 비롯한 전투함정들이 우리 기지에 배속되였지요. 그때 우리 군의소처녀들은 멋지게 생기고 속도가 빠른 어뢰정을 한번 타보고싶어서 어뢰정대에 찾아갔더랬어요. 정대장동무에게 어뢰정을 한번 타보자고 졸랐더니 큰일이나 난것처럼 펄쩍 뛰더군요. 그래서 기지장동지에게 정식으로 제기했지요. 우리도 해군복을 입고있으니 어뢰정을 한번 타봅시다! 하고 말이예요.》
《기지장동지가 요구를 들어주던가요?》
봉임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요. 기지장동지가 명령으로 내리먹이니까 그 건방진 정대장도 어쩔수가 없었지요. 소원대로 어뢰정갑판에 오른 우린 너무 기뻐서 애들처럼 왁작 떠들었어요. 어뢰정이 물갈기를 일으키며 내달리니 부쩍 사기가 나더군요. 그런데 항만을 벗어나니 숨이 막힐 정도로 해풍이 세게 불면서 파도가 막 밀려드는데 무섭더군요. 속도를 늦춘 어뢰정이 산같은 파도머리로 올라갔다가는 아래로 내려꽂히군 하는데 그때마다 속이 통채로 뒤집히는것 같았어요.
너무도 어지러워서 우린 모두 눈을 꽉 감고 보호손잡이만 틀어쥔채 꼼짝을 못했지요. 그러다가 토하기 시작했어요. 글쎄 우린 잠간사이에 제몸도 가누지 못하고 창피도 느낄줄 모르는 바보가 됐다니까요.
토한게 군복앞자락에 지저분하게 묻어서 주제가 말이 아니였어요.
어뢰정승무원들이 우리를 중환자처럼 다루었지요. 망신을 톡톡히 했어요. 어뢰정들이 입항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우린 얼굴을 싸쥐고 군의소로 도망쳤어요. 그때 일을 생각만 해도 얼굴을 들수가 없어서 난 오늘도 어뢰정대 근처엔 다가가지도 못해요.》
어느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처녀들의 아침일과는 분주한 법이다. 세면을 하고 군복을 다리고 머리단장에 가벼운 화장까지 하고나니 벌써 식사시간이 거의 되였다.
구분대를 담당한 군의들은 밥차림을 하기에 앞서 검식을 해야 한다.
김정인은 위생가방을 메고 서둘러 군의소를 나섰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거칠게 불어와 아침날씨는 자못 쌀쌀했다. 수면을 하얗게 덮은 안개가 자오록이 피여오르며 뭍으로 소리없이 기여나오고있었다. 점차 설피여지는 안개발속으로 부두에 계류해있는 전투함정들의 모습이 위엄있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뢰정대의 부두병실은 부두에서 몇백메터 떨어진 도래굽이의 상가장곁에 있다.
부두병실과 운동장을 마주한 새로 지은 아담한 건물이 식당이다.
식당직일관은 25호정기관장인 채기정중위였다. 그는 김정인을 보자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하며 정도이상의 격식을 차려 정중히 맞이했다.
《소위동지, 제2어뢰정대 식당은 검식준비되였습니다. 식당직일관 중위 채기정.》
정인은 대뜸 마음이 즐거워져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내여 웃었다.
《호호! 중위동지가 소위에게 보고하는 법이 어데 있어요?》
채기정은 두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질서야 지켜야지요. 이거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여기에 조동되여왔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는데 왜 이자야 행차를 하십니까?》
《중위동지가 먼저 나를 찾아오겠거니 하고 기다리다가 할수없이 내가 걸음을 한거예요.》
김정인은 정든 고향집에 돌아온듯 한 즐거운 기분에 잠겨 취사장을 둘러보았다.
밥차림대에는 돼지고기편육, 청어찜, 절군 꽃게, 꽈배기, 삶은 닭알, 빠다, 고추장 등을 먹음직스레 담은 접시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방금 나무에서 딴것 같은 싱싱하고 빨간 사과도 한버치나 있다.
기름이 동동 뜬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청어생선국이 과연 별맛이였다.
김정인은 검식한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그릇을 검식함안에 넣고 자물쇠를 잠그고 검식일지를 정리하였다.
《정말 취사장을 깨끗이 거두고 음식도 잘 만들었군요. 늘 이런가요?》
채기정은 시물시물 웃었다.
《정인동무가 온다기에 좀 준비를 했지요.》
정인은 가볍게 놀랐다.
《제가 온다는걸 누가 알려주었나요?》
《문화부정대장동지가요. 우리 정대장동지와 각별한 사이인 정인준의가 래일부터 검식을 나오니 식당을 깨끗이 거두고 식사질도 부쩍 높이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정인은 얼굴이 발기우리해졌다.
《놀리지 마세요.》
채기정은 웃음을 거두고 정색해졌다.
《이건 정말입니다.
준의동무를 우리 정대에 보내달라고 군의소에 정식 제기한건 바로 문화부정대장동지지요.》
정인은 어리둥절해졌다.
《문화부정대장동지가 나를 어떻게 알기에 그런 제기를 했다는거예요?》
《글쎄요, 모름지기 정대장동지가 속을 터놓았겠지요. 우리 문화부정대장동진 누구나 그렇게 속을 툭 터놓고싶은 정치일군이지요. 바로 이 식당도 문화부정대장동지의 발기로 지은거랍니다. 우린 작년 가을 여기에 왔을 때 식당이 작아서 애를 먹었지요. 아시겠지만 우리 어뢰정은 숙식설비가 없어서 륙상에 침실과 식당이 있어야 합니다. 기지에선 우리 어뢰정대의 상가장과 륙상병실은 건설했는데 식당은 미처 짓지 못해서 림시로 후방창고의 방을 하나 리용했는데 좁아서 불편했지요. 식당이야 좁으면 뭐라나, 식사질이 높으면 그만이지, 우린 이렇게 생각했지요.
새로 온 문화부정대장동지가 당장 식당을 짓자고 하더군요. 겨울이 코앞에 다가와서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웃동을 벗어제끼고 석비레를 파서 석회와 섞어 블로크를 찍더란 말입니다. 우리도 따라하는수밖에요. 고생을 하긴 했는데 제 손으로 이렇게 식당을 큼직하게 지어놓으니 정말 좋구만요.》
이때였다.
범소리를 하면 범이 온다는 격으로 문화부정대장 리학섭대위가 불쑥 취사장에 들어왔다.
치째진 눈꼬리, 두드러진 관골, 거무틱틱한 얼굴색으로 하여 그는 첫인상에 무서울 정도로 감때사납고 과묵해보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다냄새가 확 풍기는 사나이였다.
《준의동무, 정말 반갑습니다.》
리학섭은 무섭게 생긴 인상과는 달리 호감을 주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했다.
《난 문화부정대장입니다.》
정인은 급급히 답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구태여 소개를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자, 우선 낯을 익힐겸 우리 함께 식사부터 합시다.》
리학섭은 김정인을 식사칸으로 안내했다.
빈 식탁을 마주하고 홀로 덤덤히 앉아있던 김군옥은 무엇때문인지 취사장에 들어갔던 문화부정대장이 김정인을 데리고 나오자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뜻밖에도 여기서 김군옥을 만나게 된 정인이도 당황해서 일순 어쩔바를 몰라했다.
반가와하면서도 어색해서 수줍어하는 두 군관을 번갈아보던 리학섭은 다정한 형이나 오빠인듯 량손으로 그들의 어깨를 잡아누르며 식탁에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취사장에 대고 큰소리로 독촉했다.
《식당직일관동무! 빨리 내오라구.》
《예!》
채기정이 커다란 접시에 담은 훈제한 통오리를 들고 나타났다.
《이건 어제 문화부정대장동지가 동석식사를 위해 각별히 잡은 물오리입니다.》
김군옥은 더 급해맞아서 얼굴까지 붉어졌는데 이럴 때 보면 순진하고 줄난 햇내기같았다.
오히려 김정인이 스스럼없이 사의를 표했다.
《환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