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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미태평양함대의 각종 군함들과 수백대에 달하는 전투기들, 수천명의 해군장교들과 함선승무원들, 해병대원들, 비행사들, 보장성원들이 집결되여있는 진주만으로 난데없이 백수십대에 달하는 함재기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날개밑에 일장기를 그린 이 까마귀들은 주도기가 신호탄을 발사하자 각기 자기가 맡은 대상을 향하여 급강하하며 줄폭탄과 항공어뢰를 떨구고 기총탄을 퍼부었다. 고사무기를 장비한 수십척에 달하는 군함들이 맞불질을 하기는 고사하고 미처 출항도 하지 못한채 부두에 계류한 상태에서 직탄을 맞고 산산쪼각이 나거나 불길에 휩싸였다.

미해군에게 있어서 실로 청천벽력같은 공습이였다. 제노라고 으시대던 양키들은 쪽발이들의 불의의 타격에 혼비백산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동북쪽으로 백수십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일본항공모함들이 두번째로 날려보낸 까마귀떼가 재차 공습을 들이댔다.

쾅! 꽈르릉!―

진주만의 전함거리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페허로 변했다.

유흥에 들떠서 아침부터 술이나 마시고 계집들과 춤을 추던 미해병들은 변변히 저항도 못해보고 아우성치며 쓰러졌다. 파철더미로 된 비행기와 함선의 잔해들, 불타고 찢겨진 해병들의 시체가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던 진주만에 한벌 쭉 깔렸다. 도처에서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고 불길이 널름거렸다. 련이어 울리는 폭음과 아우성소리…

 

7년전 12월초에 있은 태평양전쟁의 서막인 진주만전투진행정형을 이처럼 방불하게 학생들의 눈앞에 펼쳐보이고있는 사람은 수상보안간부학교 학생들이 《뽀쬼낀》이라고 부르는 교원 한백천소좌였다.

그는 수상보안간부학교가 개교하자 인상적인 첫 수업으로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었다. 출석을 부르고난 그는 칠판에 큼직하게 제 이름을 쓰고 곁에 괄호를 치고 로어로 뽀쬼낀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한백천입니다. 쏘련에서는 나를 한뽀쬼낀이라고 불렀습니다. 혹시 아는 동무들이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그리고리 알렉산드레예비치 뽀쬼낀은 18세기 유명한 로씨야장군으로서 짜리를 도와 흑해함대를 창설했습니다.

로씨야가 흑해함대를 창설하지 못했더라면 오늘까지도 서방의 멸시를 받는 락후한 봉건국가로 남아있었을겁니다.

해방된 우리 조국은 빨리 함대를 창설해야 합니다. 그래야 령토를 튼튼히 지키고 조국을 통일할수 있습니다. 나는 조선의 〈뽀쬼낀〉이 되고싶어서 조국에 나왔습니다. 우리 함께 전심전력하여 조선함대의 첫 창설자들로 력사에 기록되여봅시다.》

미구하여 창설하게 될 함대의 지휘관이 될 포부를 안고 모여든 학생들은 격동을 금할수 없어 바람맞은 파도마냥 뒤설레이며 박수를 쳤다.

《해양대국이 된 로씨야는 당시로서는 최신기술로 장비한 전투함을 건조하고 거기에 뽀쬼낀의 이름을 달았습니다. 이듬해인 1905년 6월 14일 전투함 〈뽀쬼낀〉호에서는 혁명적인 해병들의 폭동이 일어나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뽀쬼낀〉호의 마스트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붉은기가 휘날렸던것입니다.》

한백천은 후에도 여러번에 걸쳐 전투함 《뽀쬼낀》호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하군 했었다.

해방전에 쏘련태평양함대의 구축함에서 항해장으로 복무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에게는 짜리로씨야를 반대하는 폭동에 가담하여 유명해진 전투함의 이름이 그자신의 이름인듯 잘 어울리는것이였다.

각종 해상전법들과 세계해전사에 정통하고있으며 그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기는 그는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열기띤 언변으로 자기의 박식을 시위하군 했다.

《…이처럼 항공모함전단으로 진주만을 불의에 기습하여 거기에 집결되여있던 미해군주력을 불태우고 수장해치움으로써 전쟁 초기에 제해권을 장악한 일제의 해군무력은 실로 막강했습니다.

항공모함이 열척에 주력전투함은 열다섯척인데 배수량은 척당 수만톤에 달했습니다.

참, 여기에 항공모함이나 주력전투함을 구경해본 학생들이 있습니까?》

학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수자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뜬채 숨을 죽이고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들이 어떻게 리착륙을 하는지 아는 학생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시오.》

학생들은 누구도 손을 들지 못하고 교원의 눈길을 피해 슬며시 고개를 수그렸다.

한백천은 의례히 그럴줄 알았다는듯 아량이 어린 미소를 짓더니 칠판쪽으로 돌아서서 백묵을 들고 항공모함을 큼직하게 그렸다.

《보는바와 같이 활주로는 갑판에 약간 사선으로 놓였는데 250~300메터정도로 매우 짧습니다. 때문에 활주로에는 함재기들의 리착륙을 방조해주는 완충장치가 붙어있습니다.》

그는 완충장치의 작용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나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본해군은 그외에도 순양함과 구축함, 잠수함이 도합 수백척에 달했고 함대에 소속된 비행기는 1 500대가 넘었습니다.

참, 학생들은 잠수함이 물속에서 어떻게 항해하는지 알고있습니까?》

한백천소좌는 알만 한 학생이 있으면 어서 일어나 대답해보라는 눈길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평균나이는 스무살, 구성을 보면 대체로 동서해수상보안대에서 선발추천되여온 우수한 젊은이들이다. 드넓은 바다를 활무대로 삼고 힘과 용기를 뽐내며 제노라고 호호탕탕 큰소리를 치던 사내들이 한데 모였으니 누구도 남에게 지겠다고 할리가 없었다. 하기에 개학 첫날부터 학습과 체육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의 경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 두명의 학생이 눈에 띄우게 두드러졌다.

한 학생은 서해수상보안대 신의주분소에서 온 김군옥이고 다른 학생은 동해수상보안대 함흥분소에서 온 고준무다.

한백천소좌와 눈길이 마주친 김군옥은 슬며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아직 잠수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지 못했지만 해군에 대한 자료들을 학습하는 과정을 통하여 잠수함이 물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정도의 상식은 알고있었다. 그러나 일어나서 대답하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기분이 상해서 그럴 흥이 나지 않았던것이다.

그의 곁에 앉아있는 채기정도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에서 교무부교장으로 사업하고있는 채기정의 아버지 채정보상좌는 해방전에 상선의 조타를 잡고 5대양이 좁다하게 돌아친 항해가이고 선박설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러니 그의 아들이, 장차 아버지처럼 이름난 항해가가 될 꿈을 지닌 젊은이가 그런 초보적인 상식을 모를리 없겠건만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고있다.

소대장인 고준무가 자리를 차며 일어났다.

《예,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한백천은 미더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준무는 잠수함이 물속에서 항해하는 비결을 상세하게 큰소리로 설명했는데 마치 자기만이 아는듯이 으시대는것이였다.

한백천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좋습니다. 역시 소대장이 소대장이요. 소대장동무처럼 각이한 전투함선들의 구조와 작용원리에 정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류학을 가면 그런 함선들을 짧은 기간에 솜씨있게 다루어낼수 있습니다.》

고준무더러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 한백천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처럼 미해군은 유흥에 취해있다가 진주만에서 크게 참패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제해권을 상실하다나니 태평양과 인디아양사이의 전략적항로와 필리핀과 부루네이, 쟈바를 비롯한 수많은 섬들을 일본에게 빼앗겼습니다.

미국은 진주만참패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이를 갈며 다시 일어나 수많은 군함들을 건조하고 비행기들을 만들어 해군의 무장장비를 결정적으로 강화했습니다. 하여 그후에 진행된 미드웨이해전에서 미해군은 오만해진 일본함대를 격파했는데 그 싸움이 볼만 했습니다. 먼저 일본함대가 장기항해하여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들을 날려보냈는데 미드웨이섬에 있던 미해군은 이를 역리용하여 비행기가 없는 일본항공모함을 타격했습니다.》

한백천은 무시로 변하는 얼굴표정과 열띤 목소리로 가렬한 해상전을 학생들에게 방불히 펼쳐보였다. 마치도 그자신이 함포가 되여 불을 토하고 항공어뢰가 되여 떨어져내리는것만 같았다. 그는 일단 해상전이야기만 시작하면 이처럼 흥분해서 자감상태에 빠져들군 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야기에 심취되여 입을 하 벌리고 정신없이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러나 김군옥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상보안간부학교의 주변엔 바다가라면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해당화대신에 키높이 자란 아카시아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해풍에 설레이고있었다. 겨울엔 죽어버린듯싶던 아카시아나무들이 5월 중순에 들어서자 별안간 생기를 띠면서 한창 물이 오르는 잔가시투성이인 가지마다 다투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포도송이처럼 하얀 꽃잎들이 오롱조롱 매달린 소담하고 탐스런 꽃송이들은 교정에 신선하고 콕 찌르는듯 한 달콤한 향기를 아낌없이 뿌려주었다.

교문을 나서면 곧 바다기슭이다.

바다는 고요했다. 너무도 한적했다. 사나운 기세로 날뛰던 바다는 따스한 봄빛의 애무에 노그라져서 까박까박 졸고있는것 같았다.

우묵하게 패여들어와서 호수처럼 잔잔한 포구에는 초라한 나무잔교가 어설프게 서있다. 거기에 열구기관을 놓은 자그마한 부업선과 전마선 두척이 매달려 잔파도에 흔들리고있었다.

바다가에서 나서자란 젊은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군옥이도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막 벅차오르고 심장이 쿵쿵 높뛰였으며 탁 트인 저멀리 수평선을 향하여 뭐라고 큰소리로 목청껏 웨치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군 했다. 변화무쌍하고 거창한 대자연을 그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흥분을 느껴볼수가 없었다.

해방된지 3년이 되여오지만 우리의 바다엔 지금 무엇이 있는가?

한백천소좌가 이야기하고있는 항공모함이나 순양함이 큰 산이라면 저기 바라보이는 부업선이나 전마선은 자그마한 돌멩이나 가랑잎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어쩔수없이 주눅이 들고 기분이 상했다.

앞으로 창설해야 할 해군함대의 지휘관들을 키워내고있는 이 학교에는 학생들의 항해술을 련마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실습선이 아직 없었고 교육용배기관이나 항해기구, 함상포와 수뢰무기들도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못했다.

실정이 이러하다나니 항해학이요, 기관학이요, 병기학이요 하고 진행하는 기본강의가 실속이 있을리 만무했다. 아직은 보지도 못한것을 설명을 듣고 리해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교원들로서는 학생들에게 리해시키기가 헐치 않았다.

그래서 교원들은 졸릴 정도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기본강의도중에 이처럼 세계해전사나 해전사에 자기의 자취를 뚜렷하게 남긴 해군명장들에 대한 일화로 분산된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군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장차 유능한 해군지휘관이 되여 큰 공을 세우려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부쩍 자아냈다. 군옥이도 그랬다. 그는 강의도중에 교원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귀가 항아리만 해서 정신없이 듣군 했다. 그런데 다 듣고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으기 허망해지고 맥살이 풀리군 하는것이였다.

남들에겐 산같이 큰 전투함선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우리에겐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동서해에 있는 수상보안대 함선들을 다 합쳐도 발동선은 고작 열척미만이고 나머지는 노를 젓는 목선에 불과했다.

그러니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속이 상할수밖에…

하지만 《뽀쬼낀》선생은 성수라도 나는듯이 미해군의 무력에 대하여 일일이 수자를 들어가며 상세히 렬거하고있었다.

그것은 학생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방대한 무력이였다.

학생들은 너무도 놀라와서 모두 입을 딱 벌린채 굳어지고말았다.

《 내가 왜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바로 동무들이 앞으로 이런 강대한 적수와 맞서 싸워야 하기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뭐 과장하거나 숨길것도 없지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해군무력은 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해안선이 긴 우리 나라에서 바다를 지키려면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동서해에 적어도 대여섯척씩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극은 뭔가?

지금 설사 우리에게 누가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관리운영할수 있게 준비된 인재들이 없다는것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우리는 해군함대를 어떻게 건설해야 할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학생들에게 수차 강조한바와 같이…》

이때 공교롭다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상학휴식시간을 알리는 함선호각소리가 휫! 또르르― 하고 명랑하게 울려왔다.

학교에서는 채정보부교장이 질서를 세워준대로 신호나팔이 아니라 함선호각으로 함상에서처럼 일과를 집행하고있었다.

한백천소좌는 나라의 해군함대건설과 관련한 자기의 중대연설을 주요대목에서 중지하게 된것이 자못 아쉬웠지만 제꺽 교수안을 접었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긴장하게 교원의 태도를 지켜보던 고준무가 벌떡 일어서며 구령을 쳤다.

《일어섯!》

학생들은 일제히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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