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이 땅,  저 하늘

2

 

《어마나! 오빤 그새 왜 이리 늙으셨어요?》

조만규가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문간으로 달려나와 가방을 받으며 하는 조옥의 말이였다.

《허허, 내 나이가 지금 몇인줄 아니?》

《그래두 오빤 좀처럼 늙을것 같지 않았는데… 사업부담이 큰가부지요?》

《아닌게아니라 좀 힘들구나, 요샌… 너는 외려 젊어졌다. 몸매서껀 더 날씬해진것 같구.》

조옥은 처녀시절 인물이 환하고 몸매와 목소리가 고와 한때 도예술단체들에서까지 욕심내던 안변땅의 미인이다. 그러나 예술계통으로 뻗지 않고 상업간부학교를 졸업한 다음 군상업관리소 회계원으로 있다가 회계과장을 거쳐 전년부터는 군상업관리소 소장사업을 하고있다.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한개 군의 상업을 맡아안은 책임감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행동거지도 자못 진중하고 보기 좋게 퍼진 몸매에서는 함부로 범접 못할 녀성일군다운 기품까지 풍기였다. 하지만 흔히 혼자 사는 녀성들이 그러하듯 조옥의 그 원숙해진 매력과 크고 그윽한 눈가에 어딘가 모르게 수심이 비낀것을 조만규는 놓치지 않았다.

《원 오빠두, 날씬해지는게 다 뭐예요. 허리가 다 굵어진걸 보세요.》

《건강해보이는게 보기가 딱 좋다.》

그때 푸성귀가 담긴 소랭이를 들고 부엌에서 나오던 안주인 정씨가 손님네들은 그냥 여기 전실에서 시간을 보낼 작정이냐고 시까슬러서야 그들은 방문을 열었다.

자기 방에서 실내옷을 갈아입고 큰방에 나온 조만규는 마침 보도시간이여서 텔레비죤을 켜놓고 앉아 보도를 청취하였다. 그때쯤 부엌에서 안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조옥이가 옆에 와 무릎을 눕히더니 보도가 끝나고 방송원이 중기일기예보를 시작하자 말을 걸었다.

《오빠, 제가 왜 평양행을 했는지 아세요?》

농업일군인 까닭에 기상상태에 관심이 높은 조만규여서 동생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고 화면을 주시하였다. 예견되는 기상조건이 좋지 않았다. 내몽골지역에 형성된 찬전선이 확대되면서 량강도와 자강도일대에서는 기온이 10 아래로 내려가고 남태평양상에서 발생하여 북쪽으로 이동하는 저기압골의 영향으로 강원도를 비롯한 중부산악지대에는 다음주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내릴 예견이였다.

(망할놈의 하늘, 작년에는 가물과 태풍으로 애를 먹이더니 금년엔 랭한과 폭우로 해볼셈이군, 봄서부터…)

《그래, 무슨 일루 올라왔냐?》

기상상태가 나쁜데 기분을 잡쳐 조만규는 조금 뚝뚝한 어조로 물으며 동생쪽으로 돌아앉았다.

대답에 앞서 조옥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부터 감빨았다.

《상업부(당시)에 볼일두 있지만 그보다는 오빠의 방조를 받자고 우정 온거나 같아요.》

아무리 조만규가 농업위원회의 한다하는 부위원장이지만 한번도 오빠한테 와서 손을 내밀어본적이 없는 조옥이가 어려운 청을 가지고 왔는지 힘들게 말을 떼자 조만규는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듯 천천히 담배를 꺼내물었다.

《우리 상업관리소는 원료기지로 아홉정보의 논을 가지고있어요.》

《안변 남대천가에 있는 그 논 말이냐?》

《아니,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왜 몰라, 도농경에서 등록문건이 올라왔는데…》

《어마나! 그럼 벌써 등록됐어요?》

조옥의 가뜩이나 큰 눈이 금시 화등잔처럼 되였다.

《등록되다마다, 올해부턴 정식 계획이 떨어진다. 헌데 너는 왜 그리 놀라니?》

조옥은 락담실망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무릎앞의 방바닥만 망연히 내려다보더니 맥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평양에 온건 사실 그 논의 계획면제기간을 더 연장받든가, 그게 안되면 논자체를 달리 처분하자고 해서 왔어요.》

조만규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으며 조종막대기로 우선 텔레비죤의 소리부터 낮추었다.

《무슨 소리냐?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조옥은 기가 차서 말할 형편도 못되는지 망연자실한 기색으로 제가 어리석었노라고 하며 설레설레 고개를 젓더니 꺼질듯 한숨을 내불었다.

원료기지를 조성할 때만 해도 조옥의 타산은 면밀했다.

(개간지는 땅이 제구실을 할 때까지 국가계획을 받지 않는다. 그동안에 생산한 알곡은 고스란히 우리 손에 들어온다. 게다가 논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안전하고 품도 적게 들어 모만 내면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못해도 첫해엔 정보당 2t은 나올것이다. 2t이면 어딘가? 종자값을 물고도 10t이상 떨어진다. 두번째 해에는 2t반, 3년째는 3t으로 봐도 25t이나 30t은 거둘수 있다. 벼 30t이면 그만한 강냉이보다 얼싸 낫고 그 낟알이면 탁아유치원공급소에 당과를 보장해주는건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 잘하면 영예군인들과 로병들, 로인들에게 세찬술도 정상적으로 공급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첫해농사를 지어보고 조옥은 자신의 타산이 너무 천진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벼농사는 논판에 모만 내면 먹는다던 말은 맞지 않았다. 논농사에 익숙되지 않은 상업관리소로서는 모를 길러 논에 내기도 힘들었지만 그것이 다 먹어놓은 농사는 더구나 아니였다. 새로 개답한 논이여서 김은 왜 또 그리 성한지 오뉴월 염천에 온 상업관리소사람들이 논판에서 살다싶이 했다. 거기에 바다가까이에 있는 논이라 땅에 염기가 돋고 논판에서 물이 새는것이 문제였다. 진흙깔이를 하여 물이 새는것은 좀 해결했지만(군당과 군인민위원회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염기는 쉽사리 빠지지 않아서 2t을 바라본 첫해에 정보당 겨우 1t을 넘겼는데 종자값을 물고나니 남는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종업원들은 지나간 날의 고생을 다 잊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비록 한쪽구석일망정 상업관리소마당끝에 쌓아놓은 벼가마니들을 바라보며 일한 보람을 크게 느끼였다.

한해 경험이 생기다보니 다음해에는 제법 영농기술까지 따져가면서 이악하게 농사를 지었다. 원래 손끝이 여무지고 한번 결심한것은 무조건 해내고야마는 성미인 조옥은 그 과정에 농사물계가 환해졌다. 애쓴 보람이 있어서 이듬해에는 수확고가 정보당 1.6t으로 껑충 뛰여오르고 그 다음해에는 2t수준에 이르렀다. 날이 갈수록 논이 논다와지고 뼈심을 들인만큼 수확고가 올라가는 재미에 조옥은 날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였다. 작년 가을에는 군당책임비서가 군급일군 모두와 군안의 비생산단위책임자들을 조옥이네 원료기지에 불러다놓고 참관사업까지 진행했다. 군안에 조옥이에 대한 평판이 자자했다. 인물만 잘난게 아니라 일솜씨도 미인이라고, 군상업관리소에나 두기엔 정 아까운 녀자라고…

그런데 막상 농사에 파악이 생길만 하니까 개간지를 국가토지로 정식 등록할 때가 되였다. 토지가 국가에 등록되면 상업관리소로서는 많은 의무를 지게 된다. 한마디로 토지가 일단 국가에 등록되면 그에 따르는 의무가 무겁고 상업관리소로서는 그 의무를 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옥은 군내 아이들에게 사탕과자를 먹이고 영예군인들과 로병들에게 세찬술만 공급할수 있다면 그 모든 의무를 기꺼이 짊어질 각오가 되여있었다. 문제는 상업관리소의 힘으로 논농사를 감당하기가 너무도 힘에 부친것이였다. 종업원들속에서 쉬쉬 돌아가는 불만도 없지 않았다. 농사를 이렇게나 힘들게 하여선 실리에 맞지 않는다, 벼농사품으로 밭농사를 했더라면 관리소마당에 강냉이무지가 산을 이루었을것이다, 등등… 하여 많이 생각던 끝에 조옥은 몇가지 방도를 찾아냈다.

첫째 방도는 농업위원회 부위원장인 사촌오빠의 힘을 빌어 계획면제기간을 한두해 연장받는것이였다. 그것이 안되는 경우 논을 뽕밭이나 약초밭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벼농사를 피하자는것이고 그나마 안되면 국가에 토지를 바치고 바다가양식으로 넘어가자는것이였다.

《너는 잘못 생각하고있다!》

먼저 그렇게 전제한 조만규는 무엇이 잘못되였는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조옥이 잘못 생각한 점은 우선 개간지가 자기 체모를 갖추어 국가계획을 받아물수 있게 되였음에도 계획을 면제받으려고 한것이였다. 경우에 따라 계획면제기간을 2년까지 연장받을수 있지만 조옥이네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더구나 잘못한 생각은 논을 뽕밭이나 약초재배지로 전환하려 한것이였다. 안변군은 좀 낫지만 강원도는 온통 뙈기논에 뙈기밭인데다 토질자체가 나빠서 도 전반적인 수확고가 높지 못했다. 형편이 그럼에도 정보당 2t이 나는 논을 뽕밭으로 돌린다는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거니와 설사 리유가 성립된다고 해도 나라의 토지관리를 책임진 립장에서 그자신이 허용할수 없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요? 이렇게도 안되고 저렇게도 안되면… 난 정말 땅때문에 이런 곤경을 겪을줄 몰랐어요.》

조옥은 아예 울상이 되여 한숨을 내불었다.

《그딴 소리 말아. 너네 곤경은 땅때문이 아니라 네가 농사물계를 잘 모른데 원인이 있다. 아무튼 땅에서 손을 뗄 생각은 하지 말아라. 아이들에게 사탕과자를 먹이고 영예군인들과 로병들을 위한 일인데 물러서면 되겠니? 다른 뾰족한 대책도 없으면서…》

《오빤 몰라서 그래요. 우리가 그 땅때문에 뭐 적게 애쓴줄 아세요? 나도 말이 상업관리소장이지 이제는 농사물계가 훤한 반농사군이 되고도 남았어요.》

조만규는 무릎을 덮은 치마말기를 잡아비트는 조옥이의 손등을 내려다보느라니 가슴이 아팠다. 저것이 남편도 없는 몸으로 어린 딸자식을 데리고 살림살이를 하면서 군내 주민들의 생활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으면 명색이 상업관리소장이라는 녀자의 손이 저토록 험해졌으랴 하는 생각이 들며 눈굽이 다 저려왔다. 그러나 동정을 보이면 조옥이가 나약해지고 울음판이라도 펼것 같아 우정 랭담을 보였다.

《너희들이 애를 많이 썼을줄은 안다. 그러나 결과가 나쁘니 문제아니냐?》

《애당초 내가 잘못했어요. 상업관리소의 경우엔 논이 아니라 밭을 개간했어야 하는걸. 그랬으면 이런 맘고생두 안하구 또 수익성도 훨씬 높였을걸… 》

이제 와서 조옥은 아예 울상이 되여 한숨만 꺼지게 내불었다.

《됐다. 우는소린 그만하고 이렇게 하자. 내가 도농촌경리위원장한테 말해줄테니 너네 그 논과 밭을 바꾸어라. 너희 상업관리소로선 토지를 교환해서 강냉이농사를 하는게 몸에 맞는 선택이다.》

조옥의 암울하던 눈에 금시 놀라움이 비꼈다.

《어마, 오빠. 정말 땅을 바꿀수 있어요?》

놀라움과 기대로 한껏 커진 녀동생의 고운 눈을 마주보며 조만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꿀수 있다니까. 그건 토지법에 저촉되는 문제도 아니다. 호상 합의가 있고 교환절차를 밟아 우리 위원회의 비준을 받으면 되는 일이다.》

말이 났던김에 저리 주선해줄 생각으로 조만규는 앉은걸음을 해서 전화기앞에 다가가 강원도 농촌경리위원장을 찾았다. 그리고 위원장이 나오자 사촌동생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토지교환을 부탁하였다. 도농촌경리위원장은 조만규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을뿐만아니라 앞으로 관심을 돌릴 의향까지 내비쳤다.

《고마와요, 오빠. 도농경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저도 신심을 가지고 해보겠어요.》

언제 울상이였던가싶게 조옥의 얼굴은 밝아졌다.

그것을 바라보며 만규는 퇴근녘에 자기를 찾아와 강원도농사를 터밭농사쯤으로 여기던 로영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강원도땅에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아글타글 애쓰는 조옥이가 기특하기도 했고 가엾어보이기도 했다.

저녁상이 차려졌다.

상을 물린 뒤에도 조만규는 조옥이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조만규는 녀동생의 일신상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너는 장차 어쩔셈이냐? 결혼하지 않구 그냥 이렇게 혼자만 살겠니?》

《원 오빠두. 내 나이에 이제 결혼은 해서 뭘해요, 마흔이 곧인데… 난 인젠 총화를 지었어요.》

조만규는 눈을 지릅떴다.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 나이 서른일곱이 뭐가 많아서 벌써 총화야. 안돼. 그건 내가 승인 안한다. 사람이란 고독하게 살자고 태여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여났다, 사랑과 행복을…》

《…》

《물론 녀자가 한생에 두 남편을 섬긴다는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게다. 그러나 다시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데 따라 문제가 달라질수도 있지 않겠니?… 그리고 사람 일이란 모른다. 젊은 나이에 홀로 지내다가 무슨 추문이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격이 된다. 내가 너에게 굳이 재혼을 권하는건 또한 그때문이기도 하니 잘 생각해봐라. 네가 한창나이에 외비둘기처럼 고적하게 사는걸 생각하면 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조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숙인채 손톱으로 무릎을 덮은 치마솔기만 한동안 긁더니 이윽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오빠의 마음을 잘 알겠어요. 하지만 난 그렇게 할수 없어요. 이제 겨우 우리 상업관리소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첫 발자욱을 뗀것이나 같은데 내가 그런데 신경을 쓰다나면 언제 일을 해보겠어요. 곁의 사람들 보기에도 미안한 일이구… 이제 우리 상업관리소가 제구실을 하고 땅땅 큰소리치는 날이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요.》

조만규는 조옥의 말을 긍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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