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
백근식은 뜻밖에 선선히 응하며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곁에 있던 한을손이 한상수의 등을 밀었다.
《앉게.》
백근식은 사뭇 친절하게 걸상을 권했다. 한상수는 걸상에 천천히 앉으며 입을 꾹 다물고 놈을 주시했다. 백근식은 한상수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후안무치한자들이라 하더라도 20년동안이나 족쇄를 채워 고통을 주고도 그것이 모자라 또다시 감옥에 처넣겠다는 리유가 당당하지 못하기때문일것이다.
《우린 당신이 받았던 형이 만기되여 내놓기는 싫어도 어쩔수 없었는데 방금전에 <법무부>에서 출소정지령이 내렸어.》
《?》
《리해가 안될테지. 당신은 <탈옥미수죄>로 재기소되여 형기가 연장되였소.》
백근식은 상대방의 얼굴에서 그 어떤 미세한 반응이라도 찾을듯 예리하게 살폈다.
《탈옥미수죄?》
한상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생각 안나? 런던경기인지 뭔지 할 때에 감방문을 들부시다 못해 교도관이 문을 열려고 하자 힘내기로 밀어제끼며 복도로 뛰여나오던 일을!…》
《…》
그것은 사실이였다. 런던경기때 조선이 우승후보팀인 이딸리아를 이기고 8강자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격동되여 감방복도로 뛰여나와 조선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던것이다. 그 일로 하여 한상수는 《탈옥미수죄》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사흘동안이나 징벌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이제 놈들은 그것을 구실로 한상수를 또다시 잡아둔것이다. 그야말로 앙천대소할 일이였다.
한상수의 얼굴은 분노에 이그러지고 숨결이 거칠게 오르내리였다. 당장이라도 그 유명한 발길차기로 백근식의 급소를 내찌르고싶었다. 백근식은 한상수의 표정에서 그 어떤 조짐을 느꼈던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애당초 한상수와 잘못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이미 자기의 운명은 고삐를 놓친 수레를 타고 내리막길로 내닫고있는중이였다.
그 수레가 뒤집혀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2년전 1972년 《7. 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당국에서는 갑작스럽게 교도소에 《전향공작전담반》을 내오고 《생명을 꺾어도 좋으니 비전향자를 없애라.》는 지시를 하달하였다.
그리하여 인류형법사에 《<한국>의 사상전향테로》로 악명을 떨친 전대미문의 전향공작의 새로운 서막이 시작되였다.
공작반놈들은 《한국》의 교도소들에서는 《빨갱이》사상을 가진 자가 한명도 있어서는 안된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빨갱이》들을 돌려세우라, 전향공작과정에 생긴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것이 《청와대》의 《특별지령》이라고 하면서 죽든가 아니면 전향하여 살든가 두 길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공공연히 위협하였다.
낮에는 복도를 돌아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한명씩 불러내다 잔인한 고문을 들이댔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그칠사이가 없었고 고문으로 숨지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등 죽어가는 사람이 꼬리를 물었다. 신념을 안고 정치적생명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신념을 버리고 육체적생명을 부지하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이 벌어졌다.
밖에서는 《사회안전법》을 휘둘러 이미 만기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비전향장기수들이 재범할 우려가 있으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무자비하게 체포하여 청주보안감호소로 끌어갔다.
놈들은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을 만들어낸 후 《형사소송법》, 《형사소송특별조치법》, 《호적법》 지어 《소년법》까지 개악하였으며 1974년 1월 8일에는 《긴급조치》1, 2호라는 또 하나의 비상경계령을 선포하고 민주주의적권리와 생존의 자유를 요구하는 인민들에 대한 야수적인 폭압을 전면적으로 강화하였다.
놈들은 여러가지 파쑈적살인악법들을 만들어내는 한편 폭압기구들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남조선전역을 군사, 경찰, 정보, 특무망으로 뒤덮었으며 테로가 성행하는 생지옥으로 전변시키였다. 그러니 제놈들이 내놓은 법도 제손으로 떡주무르듯 하는것이였다. 판결을 해놓고 그 판결대로 형을 마친 사람도 비위에 거슬리면 재판도 없이 눈섭 한오리 까딱않고 더 잡아놓는것이 《법치국가》라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였다. 이런것을 두고 무법천지라고 하는것이다.
한상수는 몸을 젖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연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긴 감옥안에 있으나 밖으로 나가나 우린 매일반이요. 그러니 불쌍한건 당신이요.》
한상수는 백근식을 쏘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랭소가 떠돌았다.
《왜?》
미처 리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전향하지 않는 우리 수감자들때문에 당신의 밥통이 떨어지게 됐으니 말이요.》
백근식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소. 나역시 당신을 전향시킨 다음 서울로 올라가게 되였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마리하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러니 참 야단은 야단이요. 인간이 인간아닌자들한테 질수는 없는 일이고… 만약 내가 전향을 한다면 당신보다 더 못한 놈이 되지.》
한상수는 기가 막힌듯 껄껄 웃었다.
《뭐라구? 그럼 난 뭐야?…》
백근식은 고개를 홱 돌려 한상수를 쏘아보았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요.》
《닥쳐!》
백근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감옥이 떠나가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맥이 빠져있었다.
《부끄럽소. 내가 타민족한테 이런 일을 당한다면 그래도 지금같지는 않을게요. 그런데 명색이 조선사람이라는게… 같은 민족끼리 사상이 다르다고 20년, 30년 족쇄를 채워 감옥에 가두고 그 사상을 버리라고 강요하는것이 이 세상 동서고금 어느 력사에도 없을것이요. 력사는 오늘의 야만적행위를 빠짐없이 기록할것이며 우리의 후대들은 먼 미래에 가서도 수치스러운 오늘의 당신들을 단죄할것이요.》
한상수의 목소리는 증오와 격분으로 하여 떨렸다.
《그러니까 끝내 감옥귀신이 되겠다는건가?》
백근식은 기가 꺾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몇번이나 말해야 알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따라 통일애국에 나선 몸인데 이 길로 끝까지 가야 할것이 아닌가. 이 길에서 죽는다 해도 결코 다른 길을 걸을수 없어. 의리를 지키는 계선까지는 사람이고 의리를 버리는 순간부터 개, 돼지가 되는거야. 이 한상수는 백번 죽어도 이 의리만은 베고 죽는거야. 한마디 충고한다면 20년나마 이 한가지를 가지고 나와 겨루어왔는데 아직도 그걸 모른다면 당신은 정말 어린애만도 못해.》
한상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기의 감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도소밖은 만기복역을 마치고 출소하게 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가족친척들로 붐비였다. 한사람씩 철문에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눈물겨운 환성을 올리며 그를 에워쌌다.
옥야는 두손을 모두어잡고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나오기를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다. 한사람, 또 한사람… 숨이 가빠왔다. 은옥이, 일국이 그리고 박영진이와 정창식도 같은 심정이 되여 긴 목을 빼들고 조급해했다. 드디여 마지막사람이 나오고 육중한 철문이 닫기였다. 어찌된 일인가. 혹시 급병이라도 만난게 아닐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로들 부둥켜안고 밀려가버린 텅 빈 마당엔 그들 다섯사람만이 못박힌듯 서 있었다. 누구도 말을 꺼내기 저어했다. 박영진이가 교도소측에 알아보겠다고 달려갔다. 잠시후 어깨를 떨구고 나온 그는 한상수의 형기가 연장되였다고 말을 하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옥야는 가슴을 떠박질리우는 충격에 더 서 있지 못하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어머니!》
곁에 있던 은옥이가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한참만에야 두 자식의 부축임을 받으며 일어선 옥야는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됐다.》
얼굴이 해쓱해진 옥야는 박영진이와 정창식에게 고개를 숙이였다.
《안됐어요.》
《어머니, 뻐스에 오르자요.》
일국이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소형뻐스쪽으로 이끌었다. 옥야는 아들의 팔을 밀어놓았다.
《아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가야겠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당국이 행하는 불법무도한 반인륜적행위이니 이제 와서 울고불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남편을 만나보기라도 해야 발걸음이 떨어질것 같았다.
얼마후에 옥야는 은옥이와 일국이를 앞세우고 면회실에 나타났다. 백근식은 20년을 기다리던 안해와 자식들간의 상봉에서 그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던지 그들의 면회를 허락했다.
한상수가 면회실에 나타났을 때 옥야는 아무리 마음을 도사려 먹었지만 눈물은 걷잡을수 없이 쏟아졌다.
《아버지!》
은옥이와 일국이가 약속이나 한듯 함께 부르며 아버지앞으로 다가갔다.
《너희들이 왔구나.》
한상수는 입가에 애써 웃음을 띠우고 앞으로 내밀어진 두 자식의 손을 잡았다. 얼마만에 잡아보는 손인가. 전향의 《미끼》로 여기로 왔던 어릴 때 그 야들야들한 손을 잡아보고는 처음 만져보는 손이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살결이 눈같이 희고 몸매가 곱고 버들잎처럼 나긋나긋해보이는 예쁜 처녀가 된 은옥이와 눈길이 부리부리하고 어깨팍이 쩍 버그러진 청년이 된 일국이를 보니 한상수는 다 자랐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옥야가 면회와서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어서 낯이 설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손을 잡고 마주 서있으니 아버지와 자식간의 육친의 정이 못견디게 사무쳐왔다.
은옥이는 올해 스물세살, 의학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일국이는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얼마전에 면회왔던 옥야가 기쁨에 넘쳐 한 말이였다. 20여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을 옥야의 수고가 헤아려져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더구나 오늘은 석방되는 남편을 만나리란 기쁨을 안고 찾아왔던 옥야가 절망에 잠겨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안해와 자식들앞에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부부가 살아서 생리별을 하면 마른 벼락을 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됐나요?》
옥야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고나서 숨가삐 물었다.
《그렇게 됐소. 그야말로 생벼락을 맞은 셈이지. 놈들은 나를 <탈옥미수죄>에 걸어 형기를 연장했구려.》
《<탈옥미수죄>라니요?!》
옥야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허허허… 이 몸으로 감옥을 어떻게 빠져 나가겠소. 본심이야 뻔하지. 전향을 거부한 보복이요.》
남편은 어이가 없는듯 껄껄 웃으며 크게 놀라와하지 않았다. 옥야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수인이 형기를 마치면 세상밖으로 내놓는것이 법의 본도가 아닌가. 하물며 감옥에서 20년을 살아온 사람을 또다시 붙잡아놓다니…
하긴 이놈들이야 수인이 실어증을 막으려고 감방벽에다 대고 무슨 말이라도 하면 《빨갱이》선전을 했다고 트집을 잡고 감방안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기만 해도 도망치려 했다는 구실을 잡아 징벌방에 가둔다니 이것이 법의 불모지가 아니고 뭐겠는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그럼 상소라도 하세요.》
옥야는 눈물어린 시선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상소? 그건 쓸데없는 짓이요. 놈들의 법이야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요. 문젠 내 의리와 량심을 버려야 출소를 시키겠다는건데 20년동안 죽음앞에서도 지킨것을 어떻게 포기하겠소. 내가 만약 그것을 버리고 나간다면 이 애들은 물론 당신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거요.》
한상수의 어조는 석쉼하게 울렸다. 옥야는 그제야 모든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살아서는 결코 이 감옥에서 나올수 없다는것을 알아차렸던것이다.
온몸이 얼어들고 천길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것만 같았다.
《여보, 너무 상심마오. 설사 내가 이 감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애들이 있지 않소. 이 애들이 아버지가 조국앞에서 통일을 위해 어떻게 살며 싸웠는가 하는것을 자랑스럽게 추억한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할것이요.》
옥야를 위로하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신심과 락관이 어려있었다.
《알아요, 그건 저두 알아요.》
옥야는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한상수는 안해의 얼굴에 정찬 시선을 준채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다음 아이들에게 시선을 옮기고 한동안 애무하듯 하다가 간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로서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량심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되여라. 그리고…》
한상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식들을 이윽히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근엄한 빛이 어리였다.
그는 또박또박 찍어서 말을 이었다.
《이 아버진 조국앞에, 자식들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여기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굳세게 싸울것을 너희들앞에서 다짐한다.》
《아버지!》
오누이는 목메여 부르짖으며 아버지의 품에 안길듯 앞으로 다가들었다. 한상수는 흐느끼는 그들을 굽어보며 다정한 음성으로 부탁했다.
《얘들아, 이제는 너희들도 어른이 되였으니 어머니를 잘 돌봐드려야 한다.》
《알겠어요.》
일국이가 주먹으로 눈굽을 뻑 문지르며 대답했다.
《여보, 아이들 걱정은 마세요. 당신처럼… 저두 꿋꿋이 살겠어요. 밝은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옥야가 초연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젖어있었으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슬픔의 한계를 넘어선것이다.
《고맙소.》
한상수는 안해가 한없이 돋보였다. 이제는 비바람에 흩날리는 온실의 화초가 아니였다. 광풍이 불어도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처럼 굳센 의지를 가진 녀자로 되였다. 그는 안해가 참말로 아름다운 녀성임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그 아름다움은 별빛같은 눈동자나 백옥같은 살결에서 풍겨오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20여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겪은 가지가지 경난속에서 깨닫고 수양되고 체득한데서 떠올린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이였다.
옥야는 남편과 헤여질 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밤이 깊어 자식들이 잠든 후에야 이불속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슬피 울었다.
2
요즈음 백근식은 무서운 꿈에 시달렸다. 잠에서 깨여난 그는 자기에 대한 한상수의 뿌리깊은 원한을 두고 생각에 잠기군했다. 탈옥을 시도했다는 리유로 만기복역이 끝난 한상수의 형기를 연장시키자는 제기를 자기가 했다는것을 한상수는 언젠가는 알게 될것이다. 한상수는 반드시 보복을 할것이다. 설사 그가 감옥에서 죽는다해도 그의 처와 자식들은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백근식은 이러한 불안속에 어두운 운명이 입을 쩍 벌리고 자기를 노려보고있는것만 같아 저도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럴 때마다 《하지만 나는 한상수를 기어이 전향시키고야말테다.》하고 으스러지게 주먹을 꽉 틀어잡군 했다. 그러면 마음이 좀 가라앉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초조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다. 그래도 자기의 목줄을 거머쥐고 으르렁거리던 방치백이 늙어서 은퇴를 한것만은 다행이였다. 그러나 이리를 피하니 호랑이가 나선다고 우에 앉은자들은 하나같이 백근식을 못살게 굴었다. 백근식은 그 등쌀에 못이겨 이따금 돈도 찔러주고 뢰물도 꿍져보내주었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새로 올라앉은 《법무부》차장은 별명이 《당일에 한함》이라더니 먹을 때뿐이다. 당국에서도 비전향장기수들때문에 골머리를 앓는지 본인당자가 버티면 가족친척들이 대신 전향서에 손도장을 찍어도 된다는 지령까지 내려보냈다. 지어 그전날 교도소장이 펄쩍 뛰던 정치범들의 《사회참관》도 마음대로 할수 있게 되였다.
전향공작의 창구가 훨씬 넓어진것이다.
드디여 백근식의 머리우에 뒤덮여있던 먹장구름속에서 우뢰가 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른다는 련락이 온것이다. 백근식의 가슴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방치백이 은퇴한 후 새로 상전이 된 교도소담당 차장은 전향문제 때문에 교무과장들을 솥안에 넣은 콩알처럼 들볶아댔다. 이자는 걸핏하면 교무과장들을 파면시키겠다고 을러메군 했다.
전향실적이 낮은 백근식은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환갑에 이르렀다. 륙십갑자가 한바퀴 돌아온다고 하여 일명 회갑이라고 하는 나이에 이르고보니 인생의 허무감과 서글픔이 갈마들었다. 옛날사람들처럼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락향하여 향촌에 묻혀있으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그 땅에 묻히면 더 바랄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고 위안도 가져보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늙마에 필요한것은 자식보다 돈이였다. 돈이 없으면 그 모든것이 허망한것이였다. 더우기 백발이 성성한 지금에 와서 염라국의 사자와도 같은 새 차장이 자기를 부르는것은 벌써부터 나쁜 조짐이였다. 그가 결코 자기의 마지막인생을 즐겁게 해줄리 만무했다.
차장의 방에 들어선 백근식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원로에 수고가 많았소.》
차장은 널다란 책상앞에서 비대한 몸을 약간 움직여보였다.
《차장님, 그간 몸은 별고 없었습니까?》
백근식은 마치 구면처럼 인사를 했다. 이제는 서울승진은 코집이 틀렸지만 밥탁은 유지해야 하므로 비굴한 웃음을 띄우고 차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앉으라구.》
백근식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로 서있자 차장은 턱짓으로 옆의 쏘파를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라구.》
차장은 담배까지 권한다.
그들은 말없이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이윽고 차장이 두터운 도수안경너머로 실눈을 짓고 백근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금년나이가 어떻게 되던가?》
《예?!…저…》
백근식은 당황했다. 차장이 무엇때문에 나이를 묻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자네 나이말일세.》
차장이 반복했다.
《뭐 한일도 없이 환갑이 되여옵지요.》
백근식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대꾸했다.
《환갑? 벌써 그렇게 되였나? 하긴 세월은 류수와 같은걸세.》
자기의 지나온 경력을 돌이켜보는지 차장의 얼굴에는 한가닥 회심의 빛이 지나갔다. 백근식은 차장이 어떤 속궁냥이 있어서 나이를 물어보는지 알수가 없었다.
《내가…》차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를 알게 된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나역시 환갑이 넘었구. 자네도 또한 환갑을 맞이하게 되였으니 정말 감회가 깊네그려.》
백근식은 속이 답답해났다. 이 령감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하자는거야. 제길헐것, 변죽만 치면서… 그러거나말거나 차장은 여전히 세월타령이다.
《인생이란 살고보면 허무해, 그렇지 않은가?》
《예?!… 글쎄 그런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거야.》
이제야 본론이 시작되는구나. 전향수자가 작다고 주리를 틀겠지. 차장은 마치 철학가나 시인들처럼 세월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다고 수작질하더니 불쑥 《그런데 교무과장, 자네가 대구교도소에서 전향시킨자가 몇명이나 되더라?…》 하고 살멱을 잡았다.
백근식은 그만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그는 떠듬떠듬 주어섬기기 시작했다.
《가만.》 차장은 백근식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중도에서 무찔러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네를 믿고 정치범들을 전향시키라고 교도소 교무과장을 시켜주었더니 도리여 그들을 고스란히 먹여주고 환대하여주었구만. 한두해도 아닌 26년동안을!…》
차장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혀있었다. 가슴이 섬찍했다. 금시에 그의 칼날같은 눈길이 몸을 휘감는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너는 환갑이 될 때까지 국가의 쌀과 공금을 축내면서 감옥의 그늘밑에 살아온 기생충에 불과한 인간이야. 환갑이 되였다고 무사히 사직서를 낼줄 알았어? 이 뻔뻔스럽고 철면피한 자식, 나는 정치범들이 있던 독방에 너를 잡아넣겠다.》
좀전의 아량과 너그러움은 언제 있었느냐는듯싶게 차장의 두눈은 갑자기 먹이를 본 야수의 눈처럼 충혈지였다. 갱핏한 몸을 앞으로 기울사하고 두손을 맞잡은채 공손히 버티고선 백근식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슴이 활랑거리고 무릎이 떨렸다. 이마와 코등에 식은땀이 내돋았다.
《차장님, 제 이번에 내려가서…》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이젠 차마 《전향시키겠다.》라는 말을 하기조차 끔찍했다. 그는 지금 차장이 누구에게 모를 박고 압의 도수를 높이는지 잘 알고있었다. 대구교도소에서 제일 오랜 장기수인 한상수를 두고 하는 소리다. 이젠 틀렸다. 26년동안이나 전향시키지 못했는데 하늘과 땅이 뒤집히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이틀사이에 꺾어놓는단말인가. 차라리 죽여버린다면 몰라두…
《왜 말을 못해!》
차장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듯 앞탁을 쾅 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재털이가 공중재비로 나가 떨어졌다. 이 남《한》땅 교도소들과 구치소들에 저런 밥버러지가 얼마나 많은가.
저런자들을 믿고 정치범들을 전향시키자고 하니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모양, 그 꼴이 아닌가. 안되겠다. 이러다간 내 운명도 어떻게 끝장날지 모른다. 차장의 곤두선 눈섭은 여전히 푸들푸들 떨렸다. 그는 백근식에게 30분이나 줄소나기로 욕설을 퍼붓고는 한상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졌다. 이제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백근식은 절망에 잠겨 고개를 푹 꺾고 차장의 처사만 기다렸다.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는 한상수를 전향시키기 위해 26년동안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했다. 그런데 차례지는것은 감옥의 공금을 축낸 죄로 한상수대신 독방에 들어가라는것이였다. 당장 까무라칠것만 같았다.
《어찌겠어. 방도가 있는가?》
차장이 재차 따졌다.
《없습니다.》
3
한상수가 청주보안감호소에 온지도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청주보안감호소는 각이한 투쟁경로를 거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한상수처럼 애당초 교도소에서 바로 끌려온 사람, 출소하여 나갔다가 재범할수 있다고 《인정》되는 비전향자들, 어쨌든 당국이 내놓은 《사회안전법》희생자들, 다시말하여 재판을 다시 하지 않은 《수인》들이였다. 여기도 독거감방이 있고 전향공작의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러니 교도소와 별다른 곳이 아니였다.
한상수는 부지중 가을의 우수와 같은 쓸쓸함과 적막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여기서 생의 종말을 맞아야 할것 같았다.
불현듯 대구에서의 마지막날 밤이 떠올랐다.
옥살이 26년 3개월이 흘러가던 그밤, 교도소담장밖의 뽀뿌라나무는 왜 그리도 가지를 흔들며 속살거리고 어느 곳에선가 서글프게 우는 귀뚜라미소리는 왜 그리도 한상수의 가슴을 흔들었던지…고독과 슬픔을 늘쌍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던 그 귀뚜라미소리, 그밤에는 애절한 흐느낌같기도 하고 천리를 가든 만리를 가든 잊지 말라 간절히 당부하는것 같던 그 소리에 한상수는 눈굽을 적시였다. 그렇다. 함께 있다가 최후를 마친 전우들을 잊지 말라고 귀뚜라미는 분명 울고있었다. 아, 내 어찌 그들의 넋을 잊으랴. 조국통일의 길우에 자기의 생명을 서슴없이 바친 그처럼 강하고 억세고 거룩한 인간들, 박우갑, 김성교!… 그들은 죽었어도 넋을 동지들의 가슴에 영원한 생명으로 주고있다. 그들은 확실히 자기자신보다 큰 사람들이였다.
한상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동지들! 믿어주오. 이 한상수는 동지들이 보여준 그 절개, 그 넋을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간직하고 싸울것이요.)
그는 어디에 묻혀있을지 모를 그들의 령전앞에 선 심정으로 오래동안 감방문가에서 떠날줄 몰랐다.
어느날 그는 뜻밖에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감옥살이 수십년만에 받아보는 두번째 편지였다.
첫번째는 차입물속에 들여보낸 박영진의 편지였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받아보는 편지는 처음이다.
한상수는 사연이 어떻든지간에 편지를 받으니 희한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서울의학대학 권미선》이라는 녀자였다.
한상수는 무작정 반가왔다. 바로 이 대학에서 안해와 딸이 공부를 했고 졸업했던것이다.
봉투에 씌여진 글씨를 보니 동글납작한게 퍽 깨끗하고 여물어보였다. 그는 서둘러 편지를 개봉하였다.
존경하는 한상수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단 한번도 뵈운적없고 알지 못하는 한 녀대학생이 이렇게 외람되게 편지를 쓴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저는 서울의학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권미선입니다.
나이는 스물셋, 소아과를 전공하여 이 땅의 어린이들을 병없이 키워 내세우려는것이 저의 소박한 꿈이예요.
저의 아버지는 서울메리아스회사 사장이시고 어머니는 부양이예요. 오빠 셋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 대학교수, 외국류학간 오빠도 있어요. 저는 3남 1녀로서 먹고사는데 근심이 없는 집의 고명딸이랍니다.
제가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게 된것은 처녀로서는 한창때이고 보다는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짚어야 하는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하면 탈선되지 않는 인생길을 걸을수 있겠는가 하는 가르치심을 받고싶어서입니다. 저는 얼마전까지만도 학생의 본도에 맞게 공부만을 착실히 해왔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자기의 꿈과 리상을 실현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주위세계와 담을 쌓았습니다. 집에서 대학으로 오가는 통학길, 그 한길외에는 다른 길에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의 규방처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사회를 렌트겐처럼 투시해보아야 한다는 의혹감과 저의 생활에 대한 재분석과 재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결심이 서게 되였습니다.
금년 방학기간 저는 제방에 앉아 말못하는 어린이들의 병진단에 대한 림상실험보고서를 쓰고있었어요.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돌아보니 대학교수인 오빠가 나를 쏘아보고있었어요.
심상치 않은 오빠의 그 서슬푸른 기색에 나의 가슴은 화닥 뛰였습니다. 오빠는 그런 나를 얼없이 바라보더니 그 기색과는 다르게 맥빠진 소리를 했습니다.
《미선아, 청아가 죽었다!》
나는 무슨 소린가 해서 오빠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청아가 죽다니? 죽었다는건 무슨 말인가?… 너무도 뜻밖의 일을 당하면 현실 그자체도 먼 세계의 일처럼, 마치도 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여겨지는가 봅니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오빠는 돌아섰어요. 저는 지금도 오빠의 그 행동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턱을 넘어서며 오빠는 말했습니다.
《넌 분통같이 꾸려놓은 이 방에서 무엇을 바라는거냐. 어린 아이들을 위한다고?… 거리에 나가보아라. 너의 학우들이 지금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있다. 너의 대학 상옥이란 녀대생이 미군병졸에게 욕을 당했다. 그것을 계기로 서울의 모든 대학이 총궐기하여 떨쳐나섰는데 청아가 <백골단>의 쇠몽둥이에 맞아 숨졌구나. 넌 그래 여기서 무얼 한다는거냐. 미군을 몰아내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떨쳐나선 학우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리는데 어린이의 병에 대한 림상이 어쩌구 어째?!… 이 사회의 병집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저의 손에서 철필이 떨어졌습니다. 청아가 죽다니…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문리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저의 남동무였습니다. 저는 황황히 거리로 달려나갔습니다. 포도우에 피를 뿌리면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목터지게 미군을 규탄하는 학우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청아의 죽음은 상아탑속에 파묻혀 옴지락거리던 저의 인생관에 대한 총결산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넘어가자니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운동권내에 발을 들여보지도 못한 제가, 리념써클의 개념조차 모르는 제가 욕망만으로 하루아침에 자반뒤지기를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저는 동무들과 어울려도 보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야 저는 우리 동무들이 이 땅에 있는 여러 교도소들과 감호소들에 계시는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편지를 받아보는분들이 누군가고 하니 바로 수십년간 옥고를 치르는 선생님들과 같은분들이라는거예요. 저의 가슴은 충격으로 높뛰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도 아닌 20년, 30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는 분들이 우리 남한땅에 계시다니 과연 그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가. 어떤 사상을 가진분들이기에 당국이 그처럼 수십년간을 가두어둔단 말인가.
인간답게 살수 있는 권리를 사상이 다르다는 리유로 평생동안 박탈당하신분들,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시다가 감옥에서 돌아가신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향서에 강제로 지문이 찍힐가보아 두 손을 불판에 덮어 지문을 없애버렸다는 선생님들도 계신다지요. 저는 정말 바보인듯싶어요. 자연스럽게 《반공》을 배우면서 이 세상에 선생님같은분들이 계신다는것을 모르고 지냈으니… 저는 그날밤, 한잠도 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였습니다.
과연 옳바른 삶, 참된 삶은 무엇일가. 제 나이보다 5년이나 더 많은 30년세월을 감옥에서 계시는 선생님은 어떤 바램을 안고 계실가. 화분의 봉선화처럼 연약한 저, 아직 운동권에 나서기도 무서워하는 저… 저는 생각했어요. 정의란 무얼가, 진리란 무얼가. 사람이 태여나면서 지니고있는 성정이야 얼마나 깨끗합니까. 아기들의 맑은 눈동자, 토실토실한 살결, 어머니의 젖밖에 모르는 입술에 그 어떤 티검불이라도 낀다면 보는 사람들조차 마음이 좋지 않을거예요. 그럴진대 그 깨끗한 마음에 비끼는 사회악이 자라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리란것은 불보듯 명백한것이 아니겠나요. 저 역시 그 어떤 일가견이 없이 맹목적인 순응에 포화된 속물이였어요.
만약 제가 불굴의 투사로 변한다고해도 이 사회를 위해 한목숨 내대고 절개를 지키는 그런 각오가 있는가고 자문해볼 때 부끄럽지만 이것이다 하고 웨칠만한 아무런 명분도 없는거예요. 이렇게 놓고보면 선생님들이 지켜가시는 그 리념은 무엇일가요.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그 리념이 있을 때 그것은 사랑을 지키는 춘향의 절개와도 같은 행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 목숨과도 바꾸어야 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와 진리이겠지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 어리석은 소녀가 그것을 깨닫자고 감히 이렇게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가지고 편지를 쓰는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지켜봐주세요. 이제부터 저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하렵니다. 선생님과 같은 참인간, 참사람들이 걸으시는 그 자욱을 짚으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가보렵니다. 비록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지옥의 길이라 할지라도 큰맘 먹고 과감히 걸어보겠어요.
선생님, 제 편지가 선생님마음에 조금이라도 불편을 드렸다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환절기가 다가옵니다. 계절이 바뀌는 때가 어른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라고 하는데 겨울이 다가오는 이때 부디 감기에 류의하시여 꼬옥 건강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권미선 올림. 1982년 10월 30일.
한상수는 편지를 손에 든채 눈을 꾹 감았다. 편지의 글줄이 미선의 고운 목소리처럼 귀전에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권미선! 스물세살의 녀대학생,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이다. 목소리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이란것은 일부러 맺어지겠다고 해서 되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과 뜻이 통하면 생면부지라 해도 순간에 이어지고 끊을수 없는것으로 튼튼해지는것이다.
시대는 변했다. 권미선이와 같은 화분의 봉선화들이 모진 광풍을 맞받아 일어서고있는것이다.
(그때의 옥야는 이 권미선이와 달랐지.…)
그랬었다. 그 나이때 옥야는 세상을 너무도 모르는 고무풍선에 불과했었다.
한상수는 편지를 보내준 권미선이가 고마왔다. 그 솔직한 마음이 가슴을 울렸다. 그에게 힘이 되는 편지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감옥안에서 쓴 편지가 본인의 손에 언제 가닿겠는지…
그후에도 권미선의 편지는 계속되였다. 이제는 편지마다에서 그 숨결과 맥박이 그대로 느껴지는듯 싶었다.
처음의 편지는 처녀의 고충과 고심에 대한 조언을 바란것이라면 지금에 와서는 감옥안의 고독을 풀어주려는 갸륵한 마음이 실리여있었다. 거리와 대학가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첫사랑의 비밀까지 아기자기하게 터놓았다.
은옥이와 일국이 그리고 그의 동무들이 써보낸 편지들도 드문했다. 편지의 내용은 한결같이 감옥에서 고생하는 한상수에 대한 동정과 신뢰, 존경과 고무였다. 마지막에는 자기 인생의 길잡이로 따르겠다는 결의까지 있었다. 한상수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놈들이 제아무리 발광을 해도 통일애국위업을 위해 싸우는 장기수들의 의로운 투쟁소식은 감옥담장을 넘어 바깥세상으로 날아가는것이다. 이 땅은 결코 악마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인정의 세계, 선의 세계도 있다. 감옥안에서 발산한 고결한 빛은 부지불식간에 그 세계에 침투되고있는것이다. 그러고보면 누군가가 감옥은 혁명대학이라고 한 말이 옳은듯 싶다. 그렇다. 신념과 의리는 인간을 더 아름답고 억세고 고결한 세계에 높이 올려세운다.
그것을 천만금에 비기겠는가. 삶과 죽음의 계선앞에서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게 되며 한고비한고비 시련을 이겨낼 때 참다운 인간으로, 통일애국투사로 수양되는것이다.
이따금 보호소에서도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교도관들이 불시에 달려들어 감방안을 뒤지군 했다.
그날도 무엇때문인지 한상수가 있는 감방안을 샅샅이 뒤지던 교도관이 그동안 받은 편지묶음을 집어들고 《이게 뭐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모르겠소. 편지요.》
한상수는 놈의 거동이 아니꼬와 마뜩지 않게 대꾸했다. 놈은 한장한장 편지봉투에 씌여진 주소를 대충 훑어보더니 《전탕 대학생계집들한테서 온것이군.》하며 바닥에 홱 뿌려던졌다. 삽시에 편지가 감방안에 하얗게 깔렸다. 한상수는 격분이 욱 치밀었다. 놈은 기광이 나서 구두발로 편지를 마구 짓밟으며 방안을 돌아쳤다.
《아!》
한상수는 저도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어떤 고문앞에서도 몰랐던 신음소리였다. 교도관은 깜짝 놀라 한상수를 쳐다보았다.
《왜 편지를 밟는가? 이게 어떤 편지인줄 아는가?》
황급히 편지를 주어 모아드는 한상수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그래 련애편지라도 되는가? 밑씻개나 할 종이장을 가지고…》
교도관은 입가에 얄궂은 웃음을 지으며 시까스르더니 밖으로 나갔다. 한상수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귀중한 보물처럼 편지를 챙그리였다. 이 편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것인가. 편지마다에는 매 인간의 순결한 넋이 깃들어있는것이다. 도덕의 불모지인 이 감호소에서 편지를 짓밟은 교도관들을 욕한다는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편지를 다시 꽁꽁 싸매놓고 한명한명 편지를 보내온 청년들의 얼굴을 제나름으로 그려보았다. 이제 그들은 이 땅에 뒤덮인 암흑을 불사르며 거세차게 일떠설것이다. 비록 몸은 철창속에 있어도 뿌린 씨앗은 무성한 숲으로 될것이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는 통일의 길로 줄달음쳐나가는 새 세대의 억센 대오가 도도히 굽이치는듯 했다. 가슴속에서도 쿵쿵 심장이 박동을 울린다.
온몸에 투지와 신심이 솟구쳐오른다. 그것은 수십년간 원쑤들에게 굴하지 않고 싸워온 보람과 긍지이기도 했다.
그무렵 투쟁은 감방안에서뿐아니라 밖에서도 벌어지고있었다. 거리에서 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이 격렬해진 모양인지 그들의 함성소리와 최류탄터지는 소리가 감호소안에까지 들려왔다.
한상수가 대구에서 청주보안감호소로 이송된 그해부터 어느 한해도 빠짐없이 벌어지는 시위투쟁이였다. 올해는 그 투쟁이 더 세찬것같았다. 수감자들은 여기저기에 모여 정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5년에 들어와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투쟁이 그 어느때보다도 세차게 벌어져 전두환일당을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의 통치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있었다. 대낮에 서울 《미국문화공보원》, 《미국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를 습격점거하고 《성조기》를 불에 태우고 미군장령차에 돌탕을 먹이기도 했다.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이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의 구호밑에 남조선전역에서 폭풍같이 일떠서자 전두환도당은 그 무슨 《간첩단사건》을 날조하여 인민들속에 동족간의 반목과 대결의식을 불어넣는 한편 《남침위협》의 막뒤에서 새 전쟁준비책동에 매달리였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은 놈들의 온갖 탄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경찰들과 투석전을 벌리면서 롱성과 시위투쟁을 과감히 벌리였다.
한상수는 흥분하였다. 그는 정세의 추이를 긴장하게 주시하면서 밖의 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렸다.
그럴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권미선이한테서 편지가 왔다. 편지는 두툼했다. 그의 낯익은 글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세차게 울렁거렸다.
한상수는 서둘러 편지를 개봉하였다.
《선생님, 저 미선입니다. 선생님 편지 잘 받았어요. 마음이 급해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 란필을 올리니 리해해주세요.
오늘은 제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중의 하나예요.
선생님, 밝은 맘으로 읽어주세요. 지금 옆에서 8살짜리 조카애가 떠들기에 조용하라고 소리쳤더니 그 애는 깜짝 놀랐다고 투정질을 하는군요. 그래도 할수 없어요. 한시바삐 이 기쁜 소식을 선생님께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거든요.
선생님, 그새 저는 많이 바빴어요.…》
이렇게 시작된 미선의 편지는 요즘 서울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에 대하여 상세하게 썼다.
《선생님, 전 사회의 한사람으로 이 사회에 대해 용납할수 없었지만 단지 분노했을뿐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있었습니다.
며칠전 일이였어요. 저는 거리에서 울리는 청년학생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있었어요. 퇴근시간이 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리는 마치 방금 폭풍이 지나간듯 스산했어요. 아스팔트우에 군데군데 흘린 피자욱, 깨여진 기와장, 팔매돌, 병사리들이 뒹굴고있었어요. 그 광경을 보니 이 대오에 함께 참가하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을 찌르더군요.
이때 누군가 나에게로 급히 달려오며 <선생님,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숨가쁜 소리를 하더군요. 돌아보니 옆집에 사는 대학생총각이였어요. 나는 그의 손에 이끌리여 거리의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갔어요. 방안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러명의 대학생들이 누워있더군요. 저는 가슴이 섬찍했어요. 그런데 한쪽에서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어머니 한분이 앉아 부상당한 학생에게 주사를 놓고있겠죠. 붕대도 그 어머니가 다 감아주신것 같았어요.
<지혈제가 없어요?>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어요. 내가 의사라는것을 대뜸 알아차린 모양이예요. 나는 얼굴을 붉혔어요. 가방에 지혈제가 없었거든요.
<지혈제가 있어야겠는데 어쩌면 좋아요?>
…어머니는 안타까와 어쩔바를 몰라했어요. 대학생 하나가 얼굴이 백지장같았어요. 피를 너무 흘린 까닭이였어요. 나는 더 생각할사이 없이 밖으로 뛰여나와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얼마간의 약을 구해가지고 다시 나타나니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겠나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문밖을 나서니 밤이 이슥했어요. 시위때문에 전차도 마비되였는지 거리는 괴괴한 정적만이 흐르고있었어요. 더구나 밤안개가 콱 끼여 옆에서 뺨을 쳐도 모를 지경이였어요.
몸을 실실이 감도는 모스링같은 안개는 황홀하기도 했지만 또한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모퉁이에서 칼을 든 괴한이 불쑥 나타나 찌를것만 같더군요. 제가 무서움에 잠겨 부들부들 떨고있노라니 어머니가 나의 손목을 잡고 태연히 걸음을 옮기며 어서 가자고 했어요. 다행히 우리는 집이 한방향에 있었어요.
<어머니, 그 대학생들과 잘 아는 사이예요?>
나는 걸음을 옮기며 혹시 아들의 친구되는 학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물었어요.
<아니예요. 그저 거리에 나왔다가 부상자들이 생기길래… 나두 한때는 의사였거든요.>
어머니는 조용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어요. 저는 부지중 얼굴이 뜨거웠어요. 어머니와 나는 너무도 대조적이였으니까요. 거리에서 청년학생들이 시위를 하고있지만 저는 병원문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거든요. 참말로 비겁쟁이였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늙으신 몸으로 거리에 나와 부상당한 대학생들을 자진하여 치료했던거예요. 얼마나 아름답고 돋보이는 행동이예요.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손목을 꼭 잡은채 걸음을 옮기며 다시 입을 열었어요.
<난 첫눈에 선생이 의사라는걸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무섭지 않아요? 시위자들을 치료했다면 당국에서 좋아하지 않겠는데…>
어머니는 나를 걱정해주더군요. 나는 처음으로 만나는 어머니에게 정이 끌리여 솔직하게 말하고싶었어요.
<좀 가슴이 떨리긴 했댔어요.>
<그랬을거예요. 나도 처음엔 가슴이 떨리여 시위가 일어나는 날에는 거리에 얼씬두 못했어요. 시위에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밤깊도록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나도 대학생들과 함께 이 거리에 나서고싶어요. 의사선생, 우리 힘자라는껏 통일을 위해 싸우는 젊은이들을 도와주자요. 그들이 얼마나 장해요.>
시내물처럼 잔잔하면서도 상냥하게 울리던 어머니의 어조는 점차 흥분에 넘쳐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나도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정말 어머니가 장해보였어요.
<의사선생.> 어머니는 다시 이야기를 했어요.
<누군가 닭모가지를 비틀어두 새벽은 온다고 했어요. 옳은 말인것 같아요. 지금은 캄캄한 밤이지만 반드시 새벽은 와요. 우리가 그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자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절했어요.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자!)
저는 가슴이 확 불타올랐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밤 생면부지의 한 어머니에게서 그 말씀을 다시 듣게 되니 저의 심정이 어떠했겠는지 선생님도 짐작하실줄 믿어요.
<어머니,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마와요. 저두 그렇게 살자고 맹세했어요. 수십년간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이미 저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씀했거든요.>
저는 진정으로 그 말씀을 다시 깨우쳐주는 어머니가 고마와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걸음을 옮기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듯 서버리는게 아니겠어요. 그리고는 숨찬 목소리로 물었어요.
<이제 그 말을 누구한테 들었다구요?>
<청주보안감호소에 계시는 한상수라는 선생님이 편지로 저에게 당부하셨지요. 그분은 30년동안을 감옥살이를 하시면서…>
<아!…>
어머니는 외마디신음소리를 하시면서 나를 와락 부둥켜안았어요. 그리고는 눈물로 저의 뺨을 매닥질하면서 목메여 말했어요.
<미선아, 내가 우리 은옥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마운 너를 찾아가려고 했더니… 이렇게 만났구나!>
<어머니, 그럼 한상수선생님의?!…>
<그래. 내가 그 령감의 로친이다. 우린 끝내 한길에서 만났구나!>
<어머니!>
<미선아!>
우리는 생사를 모르던 모녀가 헤여졌다가 만난듯 서로 뜨겁게 껴안고 울었어요. 상봉의 기쁨에 못이겨 울고 보호소에 계시는 선생님생각에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어요.
어느덧 지척도 분간 못하게 휘감던 안개는 언제 사라졌는지 거리의 륜곽이 점차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밤하늘에는 하나 둘 별들이 나돋았어요. 그 별들은 안개를 비웃듯 제빛을 발휘하느라고 온 힘을 쏟는것 같았어요.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리를 걸었어요.
<어머니, 전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의 말씀 가슴에 새기고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끝까지 걷겠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진심의 말을 했어요.
<그래요. 나는 미선이가 그 길에서 열심히 뛰고 씩씩한 모습으로, 옳은 마음으로 담차게 살기를 바래요.>
선생님, 그후에 집에 갔댔어요. 은옥언니랑 일국오빠랑 만났구요. 우린 한집안식구처럼 친해졌어요. 다음 일요일에 박영진아버님과 정창식아저씨네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어요.
너무도 많은 말을 해서 선생님마음 불편하잖겠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분이십니다. 이 사실 잊지 마시고 부디 귀한몸 잘 돌봐주시기를 미선은 당부해요.…》
편지를 다 읽은 한상수는 한동안 덤덤히 앉아 봄날의 어스름이 깃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덩어리를 삼킨듯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세차게 사품치고 두눈에 눈물의 안개가 핑 돌았다. 무엇인가 고맙고 장하다는 생각과 함께 첫 사랑을 하던 그때처럼 열렬한 애정이 북받쳐올랐다.
(아, 여보!…)
아, 얼마나 큰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투쟁의 길에 나선 옥야인가. 시대의 가녁에서 헤매이며 통일의 걸림돌이 될번했던 안해, 마침내 그는 남편의 뜻을 깨닫고 통일운동에 서슴없이 뛰여든것이다. 이제 그는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을것이며 자식들을 투쟁의 길에 내세울것이다. 이제는 옥야가 안해일뿐아니라 동지가 되였다. 한상수의 얼굴은 흥분과 행복감으로 하여 환히 빛났다. 아, 이제는 나도 남편구실을 했는가. 이것이 삶의 보람이라는 걸가, 투쟁의 긍지이라는걸가. 다시 심장이 쿵쿵 고동쳤다. 나라와 민족의 아들로서 억척같은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4
인간의 생명은 강한것이다. 불굴의 인간 한상수는 죽음의 세월을 이겨내고 한줄기 해빛을 받아안게 되였다.
드디여 그는 장장 수십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청주보안감호소의 철문을 나서게 되였다. 홍안의 시절 우리 나라축구계에서 《비수》로 그 명성이 자자하던 한상수도 이제는 7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여서 왕년의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성성한 백발, 얼기설기 지나간 깊은 주름살들, 그의 강직한 성미를 말해주듯 한일자로 억세게 다물린 입, 언제나 예리하게 반짝이는 두눈… 누가 그를 보고 경기장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던 축구선수라고 하랴.
감호소철문밖에 서있는 버드나무잎은 따스한 해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밤사이에 내린 소낙비로 청신해진 공기는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가까이에서 청아한 새소리가 고요를 깨뜨리며 울려온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이라도 하는듯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감호소철문밖에는 출소자들의 친척, 친우들, 《민가협》을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사진기, 촬영기를 든 기자들로 붐비였다.
이윽고 철문이 삐―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얼마후에 출소하는 사람들이 철문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한상수도 야릇한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바늘로 찌르는듯한 해빛에 눈이 부시여 저도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손채양을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감호소마당에서 늘 보던 하늘이였다. 그러나 속박에서 풀려난 지금의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렀다. 볼수록 자유에 대한 갈증으로 타던 그의 가슴에는 환희의 물결이 숨가쁘게 밀려왔다. 해빛이 그리도 밝고 공기가 그리도 달고 하늘이 그처럼 넓은것을 처음 깨닫는듯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자기가 울고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철쇄에서 풀려난 기쁨의 눈물이 아니였다. 오늘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마친 동지들에 대한 생각, 통일된 조국을 찾지 못한 자책과 회오의 눈물이기도 했다.
《아버지!》, 《선생님!》, 《상수형!》
저쯤에서 기쁨에 넘친 목소리가 각이하게 울려왔다. 한상수가 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돌리니 몸집이 우람한 일국이, 은옥이 그리고 늙은이가 된 박영진이 헐떡거리며 뛰여오고 그뒤로 정창식이, 오철남이, 낯모를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어느사이에 사람들이 한상수를 둘러쌌다. 중년부인이 된 은옥이는 어린애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운다. 한상수는 딸의 머리를 뼈만 남은 손으로 쓰다듬으며 사람들을 기쁨에 젖은 눈길로 둘러본다. 고행의 흔적인듯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고랑을 이루었다. 몸은 여위고 강말랐지만 자세가 꿋꿋하고 표정은 억세여 보였다. 사람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그를 부둥켜안았다. 모두 격정이 사무쳐올라 위로의 말을 못했다. 그저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며 손을 잡고 흔들기만 했다.
이때 기자들이 와르르 밀려들어 한상수의 앞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섬광이 번쩍거리고 촬영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주위가 소란했다.
《한형, 끝내 이겨냈구만. 정말 장하오.》
박영진이 한상수를 부둥켜안은채 잔등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장하다구?…》
한상수는 나직이 반문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국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한뉘 감옥살이를 한 내가 무엇이 장하단말인가.》
《한형은 신념을 지킨것만으로도 우리 민족이 떠받들만 하오. 아직 통일이 되지 못한거야 상수형 책임만이 아니지 않소.》
《책임이 있지. 나한테도 있고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다 책임이 있소. 기자선생들, 이 말을 꼭 전해주시오.》
한상수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하게 울렸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침침했다.
《알겠어요. 전 방송공사기자예요. 유명한 축구계의 <비수>가 감호소에서 나오게 된것을 우리 방송공사를 대표하여 축하하는 영광을 지녀요.
이렇게 가족들과 친구되신분들이 선생의 출소를 환영하여 마중나오셨는데 부인되신분은 누구신지요? 소감을 듣고싶어요.》
《…》
한상수는 그제야 옥야가 생각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가?…
《선생님, 저기에 은옥 어머니가 와있습니다.》
옆에 있던 정창식이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감호소철문밖에 있는 한그루 로송아래에 흰옷입은 녀인 하나가 서서 옷고름을 눈가로 가져가고있었다.
옥야!… 순간 한상수의 심장은 세찬 충격을 받고 고동쳤다. 그는 천천히 옥야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치마저고리, 바람에 흩날리는 백발, 얼굴에 그물처럼 얽힌 주름살, 그중에서도 주글주글해진 목언저리가 아프게 눈을 찔렀다. 백옥같던 그 얼굴에 나타난 모든 로쇠의 흔적들이 페부를 찌르고 심장을 쥐여짜듯이 그러쥐는것이였다.
이 녀자를 어찌 그 옛날의 아련하게 아름다운 옥야라고 할수 있으랴. 애틋한 정을 끌던 통통하던 두볼과 언제나 별빛처럼 정기를 뿜던 그 눈동자는 퇴색해지고 영채를 잃었다. 다만 그의 량볼에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띠우지 않는 아주 작은 보조개가 잔주름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날뿐이였다. 아, 이렇게 우리의 한생은 덧없이 흘러갔는가.
한상수는 옥야앞에 이르자 말없이 그의 팔목을 그러잡았다. 섬약하고 갑삭한 옥야의 몸이 막대기처럼 꽛꽛한 한상수의 품에 안겼다. 백발의 할머니가 된 옥야는 철모르는 소녀마냥 흐느끼였다. 옥야를 부둥켜안은 한상수도 경풍을 만난듯 와들와들 떨뿐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손을 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옥야의 머리를 얼없이 쓰다듬고있었다. 칠칠그믐밤같이 까맣게 윤기흐르던 머리칼이였다. 이제는 그 칠흑같은 머리칼은 한오리도 찾아볼수 없다.
한상수는 가슴이 터지는듯했다. 이것이 세월이 가져다준 탓만이겠는가. 진한 눈물이 옥야의 백발우에 점점이 떨어졌다. 아, 내 눈물이 옥야의 머리를 다시 검게 할수만 있다면 열, 백날이라도 이렇게 굳어져 눈물을 쏟으련만…
이윽고 다소 진정이 된 옥야가 남편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저의 절을 받아주세요.》
《아니 이러지 마오.》
한상수는 황급히 안해의 두팔을 잡아일으켰다. 오히려 안해에게 절을 해야 할 한상수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아이들을 키운 안해인가.
한상수의 일행은 모두 소형뻐스에 올랐다. 옥야는 남편곁에 앉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으려는듯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처녀시절처럼 자기의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였다. 얼굴에는 온갖 시름을 가셔버린 밝고도 깨끗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뻐스는 서울을 향해 달리였다. 화창한 봄이였다. 차창밖으로는 신록이 깃드는 산천이 천천히 흘러갔다. 사람들의 가슴마다에는 한상수의 출소로 하여 새봄의 정취를 더욱 이채롭게 해주었다. 한상수는 차창으로 보이는 새파란 봄하늘을 정신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그 하늘중천에 박우갑, 김성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나라의 통일제단에 애국의 넋을 바친 그들, 조국의 분렬을 막고 통일을 위해 선혈을 뿌린 그들을 생각할수록 눈뿌리가 홧홧 따가와오고 쓰라려오는 가슴을 다잡을수 없다. 달리는 뻐스안에서 즐겁게 담소하던 일행은 숙연한 분위기에 잠겼다. 한상수는 안해가 주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고나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돌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갑자기 돌아오지 못한 동지들생각이 나서…》
《정말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일이요. 그렇게 컸던 대망의 꿈과 사랑을 버리고 한생 감옥에서 살다니!…》
박영진이 쓰라린 상실의 아픔을 느끼듯 조용히 뇌이였다.
《그게 어디 나 하나뿐이요. 그러나 나는 감옥에서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배웠소. 사랑도 명예도 귀중하지만 조국이 더 귀중하다는것을, 인간에게서 고결한 삶은 통일을 위한 투쟁에 바치는것이라고말이요!》
인생을 총화하는 한상수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있는 사람에게서만이 느낄수 있는 신념의 목소리였다. 뻐스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모두가 한상수의 금언같은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걸어온 한생에 대하여, 이제 걸어갈 삶의 길에 대하여…
×
그때로부터 수년후에 한상수는 박영진이와 함께 서울경기장을 찾아갔다. 그날은 북남유일팀선수선발경기를 하는 날이였다. 경기장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영진이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자 입구에서 붐비던 사람들이 일시에 조용해지며 길을 쭉 내주었다. 아마 비전향장기수라고 박영진이 소개한것 같았다. 모두가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한상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점직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여선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군중들속에서 박수가 터졌다. 한상수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그는 재삼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후더워오르고 눈굽이 저릿해졌다.
《한형, 어서 들어갑시다.》
박영진이 곁에서 조용히 귀띔했다.
한상수는 그들이 열어놓은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내원이 어느새 알고 한상수일행을 초대석으로 데리고갔다. 관람석에 앉은 수만관중들이 자기를 보고 손저어주는것만 같았다. 전쟁전 이 경기장에서 《태백》팀에 속하여 미국팀과 첫 경기를 할 때 관중들은 평양에서 온 한상수를 보고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환호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오늘 그처럼 소망이던 북남유일팀을 구성하기 위해 선수선발경기를 하게 된것이다.
경기장안은 곳곳에 울긋불긋 장식구호들이 세워져있고 관중들은 손에손에 작은 기발을 들었다. 귀에 익은 《아리랑》선률이 가슴을 더욱 부풀어오르게 했다. 문득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여 세계를 뒤흔들자!》라는 대형구호가 한상수의 눈을 끌었다. 그는 불현듯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그가 항상 마음속으로 웨치던 구호였다.
드디여 북남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였다. 관중들은 폭풍같은 박수와 환호를 터치였다. 한상수도 저 선수들처럼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였다. 아, 그리운 북녘의 벗들이여, 평양의 열풍이 확 안겨온다. 마음이 둥둥 뜬다. 눈물이 앞을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한형, 저 기발을 보오.》
곁에 앉은 박영진이 흥분에 넘쳐 나직이 속삭였다. 한상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게양대에 오른 통일기발이 푸르청청한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나붓기고있었다. 눈같이 흰바탕에 하늘색조선지도를 새긴 기발이였다. 그 기발은 통일된 민족의 상징이였다. 심장이 쿵쿵 뛰였다. 통일에로 돌진하는 겨레앞에서 펄펄 휘날리는 저기발! 관중들의 손에 든것도 통일기였다.
그들은 그 기발을 흔들며 조국통일을 웨치고있었다.
한상수는 창공에 나붓기는 통일기발을 우러러보며 마음속으로 웨쳤다.
세계여 보아라, 우리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를. 이제 머지 않아 우리 조선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이 행성우에 가장 존엄있고 가장 슬기로운 하나가 될 불패의 강국으로 솟아오르게 될것이다!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한상수의 눈굽에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그는 자기가 몇년후에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되리라는것을 그때는 아직 생각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