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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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야는 오래간만에 집안팎을 쓸어내고있었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 아버지가 남산재밑에 사준 양옥집이였다.

아담하고 정갈한 보금자리였는데 남편이 없다보니 꼭 나간집같았다. 하얀 행주치마를 가뜬히 동이고 머리수건을 쓴 옥야의 모습은 여전히 알뜰한 주부였다. 남편은 감옥살이를 해도 산 사람은 생활을 꾸려야 했다. 눈물이나 흘리며 주접에 싸여있는것이 남편이 바라는것이 아니였다. 부엌을 치우고 방안을 털어낸 다음 토방마루에 걸레질을 했다. 어느덧 그의 하얀 이마에 송골땀이 뽀얗게 맺혔다. 은옥이가 집안을 곧잘 닦아내군 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여서 공부가 바쁜 모양이다.

옥야가 삽으로 마당의 구뎅이를 메우고 비자루질을 하는데 불쑥 어머니가 나타났다.

《뭘 하느냐?》

《집안을 좀 치우댔어요.》

옥야는 비자루를 한쪽에 세워놓고 머리수건을 벗어 몸을 활활 털며 엷은 웃음을 지었다.

《애들은 어디 갔느냐?》

어머니는 토방마루에 앉으며 집안을 둘러본다.

《은옥인 학교에 가고 일국인 나가 노는가 봐요.》

옥야는 세면기의 물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문지른 다음 어머니의 곁에 앉았다.

《너두 이젠 늙었구나. 흰머리칼이 생기는게…》

어머니는 넙적한 손으로 딸의 머리를 쓸고 또 쓸었다.

《어머니두 참. 제 나이 몇인데 벌써 늙었다고 하세요.》

옥야는 오래간만에 시름을 털어버리고 웃었다.

《너무 마음고생을 해서 생긴가부다.》

어머니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그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옥야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왜 병원에 나가지 않았느냐?》

옥야는 그 물음에 가슴이 질리였다. 차마 어머니에게 병원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어제 퇴근때에 병원원장이 오라고 해서 그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래일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옥야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원장은 구구한 소리를 했다. 한마디로 《빨갱이》가족은 의사노릇을 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옥야는 처음 그 소리를 들으며 앞이 캄캄했으나 인차 자신을 다잡았다. 의사노릇을 안하면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을 치랴 하는 배심이 들었다. 하여 오늘은 마음놓고 집을 거두는중이였다.

그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휴가를 받았어요.》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또다시 한숨을 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 당장 출국수속을 해야 한다는데… 떠나야지?》

《떠나다니요? 어딜요?》

옥야는 처음듣는 소리처럼 되물었다.

《미국으로 가는것 말이다.》

어머니의 어조에는 어딘가 애원이 섞였다. 옥야는 조용히 한숨을 내긋고 그린듯이 앉은채 대답을 안했다. 사위의 일로 하여 심뇌하던 아버지가 얼마전부터 가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라로 귀국하는 병원원장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갈 생각이였다. 복은 마중나가고 화는 피하랬다고 사위의 일로 해서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타산한 아버지가 미리 선손을 쓴것이다. 아버지는 완고했다. 외동딸인 옥야를 이 살벌한 땅에 절대로 남겨둘수 없노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옥야에게 있어서 청천벽력이였다. 나서자란 이 땅을 떠나고싶지도 않거니와 더우기 남편을 감옥에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고집불통이였다. 사위가 《빨갱이》로 감옥살이를 하고있는데 무슨 화를 당하자고 여기에 있겠는가. 옥야가 정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결박하여 짐짝처럼 싣고 갈 잡도리였다. 옥야는 조롱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된 자기 처지를 놓고 울었다. 떠나가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는 남편, 자기때문에 감옥에 갇혀 갖은 악형을 받으면서도 도리여 용서해주고 리해해준 고마운 남편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혼자 떨어져있으면서 보고싶고 그리울 때마다 남편을 찾아가고싶은 마음이였다. 매일 만나지 못해도 감옥담장밖에서 저안에 남편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그이의 숨결을 느끼고 소식을 듣기만 해도 더 바랄것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정성을 기울여 그이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일국이 아버지와 의논해 보겠어요.》

옥야는 파릿한 낯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논은 무슨 의논이냐. 감옥에 갇혀있는 그 잘난 남편을 기다리다 다 늙고말겠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격해졌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나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보고…》

옥야는 어머니를 나무랬다. 마음이 서글퍼졌다. 아무리 그가 감옥에 있다해도 남편이 아닌가. 자기는 죽어도 남편앞에 지은 죄를 보상할수 없는 몸이였다.

《정 그렇다면 미국에 가서 마음이라도 안정하고 오면 어떠냐?》

어머니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옥야는 말없이 고개만 저을뿐이였다. 어머니는 꺼지게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의 정상을 보니 더 말할 기력도 없는 모양이다.

옥야는 마루에 얼어붙은듯 앉아있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남편도 없는데 부모들까지 미국으로 가면 황막한 들판에 홀로 내던져진 신세가 되고만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집에 얹혀서 생활을 꾸려나갔고 남편의 옥바라지도 그럭저럭 해왔다. 그런데 이제 부모들이 떠나면 남겨놓은 돈과 재산으로 얼마간 살아갈수는 있을것이다. 아니 짐짝처럼 꿍져서라도 기어이 끌고가겠다고 펄펄뛰는 아버지가 안가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딸에게 무엇이 고와서 살아갈 밑천을 남겨놓겠는가. 물론 어머니가 아버지몰래 얼마간 놓고 갈수 있겠지만 일자리까지 쫓겨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겠는지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남편이 마음을 돌려먹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그 전향서라는 종이장 하나가 무얼가. 어떤 죄수들은 약차한 돈을 찔러주고 지장을 찍고 감옥을 나온다지 않는가. 글쎄 그게 무어라고 그다지도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물론 백근식이나 《법무부》차장처럼(옥야는 남편의 체포를 《법무부》차장의 배신으로 인정하고있었다.) 살아서는 안되지만 그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뽈을 차고 가정을 꾸려나가면 될게 아닌가. 그 차디찬 감방에 앉아 20년세월을 보낸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할가. 물론 남편이 그렇게 한들 장본인인 자기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있을수는 없었다. 어쨌든 남편을 만나야 할것 같았다.

다음날 아이들을 친정집에 맡기고 집에 쇠를 잠근 다음 옥야는 대구로 떠났다.

그는 백근식의 방에서 남편이 들어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꿈에서조차 보기 싫은 백근식이였지만 그리운 남편과 말이나마 길게 나누자고 놈에게 돈까지 찔러주며 부탁해야 했다.

옥야의 사정이야기를 듣던 그는 서무진네 가족이 미국으로 간다는 소리에 음험한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우에 놓인 돈봉투를 도로 밀어놓으며 자기가 남편을 보내주겠노라고 했다.

후렁후렁한 수인복을 입은 남편이 나타나자 옥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부룩한 수염, 두드러진 관골, 고문에 터지고 찢긴 상처자욱… 전보다 더 못쓰게 되였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 남편앞으로 다가섰다.

《여보!》

남편의 눈에 반가와하는 빛이 어렸다. 옥야는 헝겊으로 감싼 남편의 두손을 감싸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손을 얼굴에 대고 부볐다.

《그래 아이들은 잘 있소?》

《예, 앓지 않고 잘 자라요.》

목이 메여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가정과 안해의 신상에 부닥친 이야기를 다 듣고난 한상수는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요?》

《전 결심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제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고쳐먹어달라고, 이렇게야 어떻게 살겠는가고, 당신없이 내가 어떻게 살며 무슨 가정의 행복이 있겠는가고 부르짖었다.

안해의 심중을 들여다본듯 한상수는 옥야의 자그마한 손등에 자기의 손을 올려놓았다.

《여보, 미안하오. 당신을 한껏 행복하게 해주자고 한 일이 이렇게 되였구만.》

옥야는 황급히 남편의 입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저때문에, 저때문에… 제가 벌을 받을 녀자예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전 견디지 못해요.》

옥야의 목소리는 울음절반, 애원절반으로 범벅을 이루었다.

한상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잘못이 아니요. 이런 비극은 미국놈들이 우리 조국을 둘로 갈라놓았기때문이요. 또 이렇게 되는걸 바라는자들이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기때문이요. 나는 그것을 반대했을 따름이요. 옥야!》

한상수는 옛시절처럼 다정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가정일에 부딪겨 수고하는줄 내가 왜 모르겠소. 또 내 옥바라지도 하느라 고생하고, 그걸 생각하면 내 가슴도 터지는것 같소. 하지만 앞으로 더 큰 시련을 겪을수도 있소. 그렇다고 맥을 놓지 마오. 마음을 든든히 먹고 맞받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내 옥야마음을 아오. 나를 떠나 다른데서 행복을 찾으려하지 않는다는것을… 우리 사랑이야 그렇게 맺어진게 아니겠소.》

《여보!》

옥야는 두팔로 한상수의 목을 와락 그러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때껏 입속에서 맴돌던 말마디들이 그만 모래우에 쏟은 물처럼 잦아들었다.

그는 울었다. 동그란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렸다.

그는 지금껏 남편이 자기를 용서해준다는것 그리고 믿고있으며 여전히 사랑해준다는것을 페부로 느끼였다.

그이상 더 바랄것이 없었다. 무엇을 요구할것도 없었다. 다만 남편이 빨리 나와 함께 있었으면 하는게 소원이였다. 다른 집들처럼 아이들과 손목을 잡고 놀러도 나가고 사진도 찍고 경기장구경도 갔으면 했다.

아, 그러나 그런 날이 언제면 올가.

문이 열리며 백근식이 나타났다.

《남편을 설복하라고 이 큰 방을 내주었더니 사랑을 나누고있군.》

그는 입을 비죽이 이그러뜨리고 비양조로 시까슬렀다. 아마 엿들은 모양이다.

옥야는 남편의 가슴에서 떨어져나와 눈물을 닦았다. 걸상에 앉은 백근식은 담배를 붙여물며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상수군, 이제 서무진씨까지 미국으로 가면 어쩔셈이요. 옥야씨와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소. 옥야씨는 상수군때문에 병원에서 쫓겨났소. 부모들의 후원을 받던 옥야씨가 이제 살아갈 일을 생각해보오. 사실 오늘 찾아온것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자고 한것인데 차마 말이 나가지 않은 모양이요. 그래서 내가 대신 알려주는거요.》

옥야의 낯빛이 하얘졌다. 그는 백근식을 쏘아보았다. 어째서 돈도 받지 않고 이 방에서 면회를 허락했는지 그 속심을 알았던것이다. 남의 가정문제까지 저들의 목적에 리용하려는 비렬한의 속내를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말을 안하길 얼마나 잘했는가. 하마트면 이들과 합세해서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을번 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옥야는 백근식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는 뜻밖이라고 할 정도의 말마디들이 차겁게 울려나왔다.

《그런건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난 이미 결심했어요.》

백근식은 그만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듯 멍한 표정으로 옥야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한상수는 감방으로 돌아오자 벽에 머리를 기대고앉아 눈을 감았다. 눈앞에는 옥야의 얼굴만이 꽉 차있었다.

그렇게도 어질고 눈물이 헤프던 그에게 그런 담찬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야!…》

그는 안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엊그제도 오철남이로 하여 깊이 자책한것이지만 오늘의 옥야모습을 보니 마냥 첫 사랑이 너울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그저 사랑이라는 면사포속에 누이동생의 응석을 받아주듯 했을뿐이였는데 어쩌면 그리 높이 돋보이는지 몰랐다. 생활의 세파를 겪어보지 못한 녀자, 비바람 한번 맞아보지 못한 연약한 온실의 화초라고만 생각했던 옥야였다. 그러면서도 사랑했던 녀자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박우갑의 그 유언과도 같은 말마디가 떠올랐다. 아, 내 조국을 통일한답시고 동분서주했지만 가까이에 있건, 멀리에 있건 이런 깨끗한 인간의 정을 가진 사람들이 내곁에 있다는것을 왜 몰랐던가.

그 인간의 정이 휘저어도 휘저어도 마르거나 흐릴줄 모르는 샘물처럼 영원한것임을 그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듯 했다. 그래서 우리 수령님께서 나와 옥야의 사랑을 두고 그처럼 뜨겁게 말씀하신것이 아닌가.

불현듯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해님처럼 어려온다. 우리 부부를 한품에 품어주시고 믿어주신분, 우리의 사랑을 이어주시고 지켜주신분, 분렬된 조국을 두고 그리도 가슴이 아프시여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던 우리의 사랑을 통일의 상징처럼 내세워주신 어버이, 통일을 위한 이 길에 옥야부터 내세웠어야 수령님의 그 믿음에 보답하는것으로 되지 않는가.

한상수는 한줄기의 해빛이 비쳐드는 철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는 두손을 무릎우에 얹고 고개를 떨구었다.

(수령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조선의 뽈을 차겠다고 서울에 왔다가 아무것도 한일없이 철창속에 갇힌 몸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저희들의 사랑을 찾아주신 그 은정을 안고 안해와 함께 통일의 원쑤들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한상수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젖은 그의 눈은 열기로 번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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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야는 빈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방안은 썰렁했다. 친정집에 맡긴 아이들을 찾아와야겠으나 어쩐지 일어나고싶지 않았다. 그저 렬차를 타고 오면서부터 들리느니 온통 남편의 목소리뿐이였다. 면회를 갔다온 일이 꼭 꿈속에서 벌어진 일만 같았다. 어쩐지 이제는 남편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다. 옥야는 남편을 만나기전에는 남자들과는 말 한마디 번질줄 몰랐다. 남학생들의 곁을 지날 때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양에 수학려행을 갔을 때 자기를 위기에서 구원해준 한상수의 모습은 그의 작은 가슴에 지울수 없는 존재로 인찍혀졌다. 더우기 쓰러진 왜놈을 짓밟고 떳떳이 고개를 쳐들고 웨치던 모습은 그 누구도 대비하지 못할 거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했다.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으로 존경하던 마음이 급기야 막을수 없는 사랑으로 번져졌다. 그 사랑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한번 다진 맹세를 변치 않는 바로 여기에 남편의 참모습이 있고 생의 전부가 있는것이 아닐가. 사랑에서도 축구에서도 통일을 위한 운동에서도… 그러니 자기가 품고있던 가정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먹어들수 있겠는가.

옥야는 부지중 한숨이 쏟아졌다. 한두해도 아닌 몇십년이란 세월을 옥살이로 보낸다는것은 너무도 억울하고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수 없다. 언제 어떻게 될지. 수감자들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이 항시적으로 따르는 곳에서 어떻게 래일을 담보하며 살아간담…

언젠가 옥야가 면회를 갔을 때 면회실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피멍이 든 얼굴, 뼈만 남은 손목, 게다가 남편은 말을 못했다. 그는 손짓으로 단식투쟁을 하다가 교도관들의 강제급식에 의해 후두를 다쳤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변함없는 마음을 담아 옥야의 두손을 감싸쥐고 어루만졌다. 옥야는 남편에게 손을 맡긴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옥야의 손바닥을 펴고 자기의 손가락으로 한자두자 글을 썼다.

《나는… 굴하지… 않을것이요!》

옥야는 손바닥에 씌여지는 글을 읽으며 오열을 씹었다. 남편은 미소를 짓고 울지 말라고 옥야의 손을 말없이 흔들었다. 그랬던 남편이였다. 그런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한단말인가.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뜨락으로 나가 대문을 여니 겉옷을 팔에 걸친 정창식이 미소를 머금고 서있었다. 처음으로 감옥에 있는 남편의 소식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였다.

《계셨군요.》

《들어가시자요.》

옥야는 방안으로 안내했다.

《아니, 여기 마루가 좋습니다.》

정창식은 토방마루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축간 옥야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은 정창식은 집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은옥 아버지한테 갔다오는 길이예요.》

《그래요? 선생님 몸은 어떻습니까. 앓지 않습니까?》

옥야는 남편을 극진히 존경하는 그에게 모든것을 말하고싶었다. 옥야는 가정사정이며 남편을 만나던 일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정창식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움쭉 일어섰다.

《사모님, 이렇게 혼자서 빈방을 지키지 말고 거리로 나갑시다. <모나리자>다방에서 저의 처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두분이나 재미있게 노세요. 저야 뭐…》

옥야는 어설픈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사양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 우정 시간을 냈습니다. 아이들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자 갑시다.》

옥야는 사양하다가 정창식의 성의를 무시하는것 같아서 할수없이 일어섰다.

그들은 거리에 나섰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정창식은 걸으면서 자기 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의 처는 교사랍니다. 녀대학생이였던 그가 나와 한 감방에 있는 외삼촌의 옥바라지를 다닌것으로 하여 인연이 맺어졌답니다. 그의 외삼촌이 나에게 조카딸자랑을 많이 하였지요. 결국 감옥안에서 내 가슴에 사랑이 움텄다고 할수 있지요.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인간적향취가 아닐가 하고 생각해요. 난 감옥에 있을 때 애인의 사랑이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기도 하고 또 그앞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량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애썼지요. 그러고보면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지탱점이기도 하지요.》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리해가 갔다. 아무리 바깥세상과 격페된 감옥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힘은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바로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변함없기를 바라는 눈물겨운 마음이다. 다방의 아치형문이 바라보이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정창식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모님!》

옥야는 발끝만 보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정창식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옥야는 그가 지금 다방에 들어가기 앞서 긴요한 말을 하려 한다는것을 알았다. 어쩐지 긴장해졌다.

정창식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모님, 전 선생님과 한 감방에 있으면서 어떻게 되여 선생님이 잡혀들어오시게 되였는지 잘 압니다.》

옥야는 흠칫했다. 온몸에 전률비슷한것이 지나갔다. 다음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어서 이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정창식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을 알고 한상수가 밤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와하던 일이며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박우갑이 유언처럼 남긴 말도 다 해주었다.

《전 왜 선생님이 그토록 괴로와하고 사모님을 잊지 못해하는지 다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님과 사모님의 사랑을 알고계시기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사모님을 이끌어주지 못한것으로 하여 더욱더 가슴아파했습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함께 나섰으면 더 힘이 되고 더 굳건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고 지금같은 일도 없었을게 아닙니까. 선생님은 사모님이 이제라도 이남의 사회현실을 똑똑히 가려보고 새로운 생활속에 뛰여들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좀 오십시오. 곁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창식은 웃음어린 어조로 말을 끝내고 옥야의 팔을 이끌었다. 옥야는 그의 이끌림에 따라 발을 옮기면서 정창식의 말을 음미해보았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이 하던 말과 같은 소리다. 그는 다방에 들어가면서도 줄곧 한생각에만 옴해있었다.…

옥야는 정창식부부와 헤여져 아이들이 기다리는 친정집으로 돌아오면서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창식의 말은 위기에 봉착한 옥야의 인생에 깊은 파문을 던져주었다. 한마디로 옥야가 남편의 통일성업을 이제라도 리해하고 적극 도와나서야 한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정창식이 자기를 우정 찾아온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는 아직도 남편의 뜻을 리해하지 못하고있었다. 지금껏 자기 인생에서 남편이 귀중하다는것을 알았을뿐 남편의 뜻을 받들어야 행복하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 불찰로 하여 남편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것이였다.

그러니 자기는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인간이였던가. 정창식의 안해는 처녀로서 외삼촌과 함께 옥살이를 하는 청년을 사랑하고 옥바라지를 했는데 자기는 철부지소년처럼 남편의 목에 매달려 응석을 부리다가 모진 광풍에 쓰러진 신세가 되고말았다. 옥야는 마음이 괴로왔다. 자기에 대한 혐오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며칠후에 옥야의 친정집은 미국으로 떠났다. 영원히 부모와 함께 살줄 알았던 옥야는 리별의 슬픔에 목메여 울었다. 딸을 부둥켜안고 떨어질줄 모르던 어머니와 헤여지는 그 시각에 굳이 눈물을 안보이려고 고개를 비트는 아버지를 보니 옥야는 더욱 설음이 북받쳤다.

그렇게 헤여진 아버지가 떠난지 한달후에 편지를 보내여왔다. 사연인즉 미국회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남편의 석방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빨리 미국으로 오라는것이였다.

옥야는 눈앞이 번쩍 트이는것 같았다. 남편이 감옥에서 나올수만 있다면 천리든 만리든 달려갈 생각이였다.

더우기 힘이 막강한 미국이니 어쩌면 남편을 석방시킬수 있을것 같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가 고마왔다. 사위가 《빨갱이》라는것을 알게 되자 당장 감옥에 처넣으라고 호통치더니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어들게 마련인듯 미국에 가서도 석방운동을 벌리는것 같았다.

옥야는 정창식을 찾아갔다.아버지의 편지를 보이며 미국으로 떠날 의향을 말했다. 편지를 읽고나서도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정창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국행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그네들은 결코 도와주지 않을것입니다.》

《그래두 가보겠어요. 혹시 도와줄지 알게 뭐예요.》

옥야의 어조는 완고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아버지친구들을 믿고싶었다.

정창식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래기라도 잡는 격이 되여 리성을 잃다싶이 허둥거리는 옥야를 더 만류할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출국수속을 끝낸 옥야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창식의 집을 찾아갔다.

《창식씨, 그동안 우리 애들을 돌봐주세요. 아무래도 이 얘들을 놓고 가야 할가봐요.》 옥야는 눈물이 그렁해서 말했다.

《아이들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다만 미국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만나보고 인차 돌아와야 합니다.》

정창식의 어조는 의미심장했다.

《알겠어요.》

열두살이 된 은옥이와 여덟살밖에 안된 철없는 일국이를 정창식에게 맡기게 된 옥야는 가슴이 쓰라려 눈물이 자꾸 솟구쳤다. 만약 남편의 신상에 불행이 없다면 부모들을 만나러가는 이 려행이 얼마나 즐거우랴. 아니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부모들이 애당초 낯설은 타향으로 떠나지도 않았을것이다. 물론 정창식의 부부가 부모된 심정으로 잘 돌봐주겠지만 남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가는 옥야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두 아이의 어깨를 잡고 삼촌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쇠를 채운 집에 자주 찾아가 마당에서 놀면서 돌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좋은 소식 가지고 오세요.》

은옥이는 철이 얼마간 들었다. 어머니가 감옥에 있는 아버지때문에 미국으로 간다는것을 알고있는 그애는 오히려 먼길을 떠나는 어머니를 걱정해주었다.

《엄마, 빨리 갔다와야 해.》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떼를 쓰던 일국이도 제법 큰 애처럼 선선히 떨어졌다.

《응, 엄만 인츰 온다.》

옥야는 다시금 두 아이를 껴안아주며 눈굽을 문질렀다.

다음날 그는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

3

 

백근식은 담배를 꼬나물고 창밖에 시선을 보낸채 생각에 골몰하고있었다. 그의 매끈한 얼굴에는 피로가 잔뜩 어렸다. 한상수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다. 처음에는 뽈이나 차던 단순한 녀석이기때문에 쉽게 돌아설줄 알았다. 그래서 고문도 하지 않고 점잖게 대하면서 안해가 밀고자라는것을 대주기도 하고 삼성그룹산하회사사장도 만나게 하고 지어 서유럽의 축구감독까지 데려다가 유혹시켜보기도 했으나 개구리상통에다 물끼얹기였다. 어떤 때는 당장 때려죽이든가 총으로 쏴죽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일었으나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호미난방격이였다. 그가 《법무부》차장의 특별관심속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면 벌써 결단이 났을것이다. 그는 확실히 지난날 자기가 생각했던 그런 인간이 아니였다. 그때는 축구선수로서 단순했고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하기만한 사람이였었다. 그렇게 생각한것으로 하여 벌써 피해를 톡톡히 보았다. 그는 치면 칠수록 더 강하게 맞섰다.

《빨갱이》가 되면 그렇게 강해지는가?

그 무서운 병에 걸리면 부모처자도 모르는 그런 인간으로 변한단 말인가?

백근식은 담배연기를 진하게 내뿜으며 자기와 맞다든 정치범들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리해할수 없는 공통된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 사상에 대한 완강한 믿음이였다.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는것이였다.

과연 그 사상이란것이 마약과 같은것인가.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교도소 소장이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다. 아까 교도소정문안으로 승용차가 들어오는것 같더니 우에서 누가 내려온 모양이다. 그는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또 전향실적을 따지겠지…)

소장방에 들어서던 백근식은 그만 그자리에 굳어졌다. 새까만 양복에 검은색안경을 쓴 사람이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풀숲에서 독사를 본듯 가슴이 섬찍했다.

《자네 오래간만이군.》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네는 사람은 방치백이였다. 군사정권이 선후 다른 장차장들은 다 파면되였지만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있는 그가 이렇게 교도소에까지 내려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차장님, 그동안 옥체만강하셨습니까?》

재빨리 자신을 수습한 백근식은 활등처럼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덕분에 잘 있었네. 자네도 기상을 보니 두루두루 괜찮은 모양이구먼.》

《…》

백근식은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솟았다.

《허허… 자네 지내 긴장해지는것 같군. 그래 자네가 이곳 교도소 교무과장이 된지 얼마나 되더라?…》

《형무소로부터 계산하면 몇년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몇년이야?》

백근식은 방치백의 찌르는듯한 소리에 속이 떨려났다. 톡톡히 계산을 할 잡도리였다.

《8년째됩니다.》

《정확히 8년 6개월이야. 안그래?》

방치백은 손끝으로 쏘파모서리를 다독이며 백근식의 말을 정정했다.

《그…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란 뭐냐 하면 호상성이야. 상하관계도 같지. 과업을 주면 집행하고 그러면 승진이든가 상을 주구. 그렇지 않으면 파면을 당하구… 자네 내 말뜻을 알겠나?》

《예, 예, 알고있습니다. 제가…》

《자네 교무과장으로서 그동안 몇놈이나 전향시켰나?》

방치백은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

《한 서너명…》

《서너명? 정확히 말해. 누구? 어느놈?…》

《저, 저…》

백근식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빠질빠질 내돋았다.

탕! 책상치는 소리가 울렸다. 백근식은 와뜰 놀라 무의식중에 한걸음 물러섰다.

《이놈아, 오늘 내가 왜 여기에 온줄 아는가?》

방치백은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백근식의 앞으로 내흔들었다.

《어떻게 했길래 미국대사관에서까지 한상수의 전향을 다그치라는 독촉을 오게 하는가 말이다.》

백근식은 너무도 놀라 고개를 들고 떼꾼해진 눈으로 방치백을 바라볼뿐 말을 못했다. 방치백은 몸을 삑 돌려 까치다리를 했다.

《지금 그의 녀편네가 미국으로 가서 제 애비와 국회의원을 추동하여 한상수를 석방하기 위해 돌아치는걸 알기나 해? 미국대사관에까지 전화를 걸어오고있어. 그 량반들이 빨리 손을 쓰라는 독촉이 불같아 내가 내려왔어.》

처음 듣는 소리다. 여기서야 그런걸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그놈의 녀편네까지 책임져야 한단말인가.

백근식은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문제가 아니야. 대통령께서 아직도 량심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대노하신줄 아는가?》

백근식은 《대통령》소리까지 나오자 오장륙부가 졸아드는것 같았다. 그는 입이 얼어붙어 고개를 떨군채 서있었다.

《교도소장, 이젠 할수 없소. 이 사람 믿고 대구에 정치범을 두었다가는 안되겠소. 그래서 전향할 가능성이 있는자들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대전으로 이송하오. 특히 그 <비수>라는자를 빼놓지 마오. 보내준 서유럽감독을 놓쳐버린 주제에, 넌 교도과장 자격이 없어.》

백근식은 또다시 눈앞이 아찔했다. 방치백은 실패한 《제3국에로의 자유로운 이동》공작도 백근식에게 몰아부치는것이였다. 결국 백근식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허수아비로 락인된 셈이였다. 백근식은 이 순간을 놓치면 자기 운명이 끝장나리라는 생각이 뇌리에 파고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 백근식은 머리에 피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차장님, 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백근식이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뭔데?…》

《한상수 그자만은 남겨주기 바랍니다.》

《그 <비수>라는자 말인가?》

《그렇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만큼 비수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고도 정신이 안들었는가?》

방치백이 어이가 없다는듯 빈정거렸다.

《이제야 칼자루를 잡았습니다.》

《허허… 칼자루를 잡았으니 상대방을 찌르면 된단말이지. 그런 오뉴월 잠꼬대같은 소리 하지 마오. 그자만은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때가 언제요.》

방치백은 더욱 엄하게 따졌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에게 마지막주패장이 있습니다.》

백근식은 방치백의 다리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쳐들고 애원했다.

《마지막주패장이라,… 그게 뭔데?》

방치백은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듯 덤덤히 앉아있는 교도소장을 건너다보았다. 백근식은 방치백이 호기심을 보이자 급급히 자기의 안을 이야기했다.

옥야가 남편때문에 미국으로 갔으니 두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였을것이다. 그 녀자가 오기전에 아이들을 내세워 수감자의 심리를 자극시키겠다는것이다.

방치백이 잠시 생각을 굴리는듯했다. 《부자간의 심리를 리용하겠단말이지. <빨갱이>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야. 진짜 <빨갱이>는 부모처자도 모르거든. 오직 자기 사상에만 충실한 특수한 단백질로 제조되였단말이야.》

방치백은 자기 유식을 뽐내듯이 이렇게 지껄이다가 선심을 쓰듯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당신에게 마지막기회를 주겠소. 한번 솜씨를 발휘해보오.》

《고맙습니다. 차장님.》

백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송해하며 경례를 붙였다.

《그러나 교무과장, 매사에 빈틈이 없어야 하오.》

교도소장은 또 무슨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가보아 백근식에게 미리 오금을 박았다.

《걱정마십시오. 생각이 다 있습니다.》

백근식은 의기양양해서 대답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곧 날파람있는 몇몇 교도관들을 모이도록 했다.

《이제부터 수감자 1010번에 대한 전향공작작전을 조직하겠소. 이건 우리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문제요.》

백근식은 이렇게 엄포를 놓고 서울로 올라가서 여사여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매사에 주의하라고 신칙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교도관들은 황황히 물러갔다.

백근식의 두눈에는 표독한 빛이 번쩍이였다.

4

4

 

《1010번 면회!》

소지가 와서 감방안이 들썩하게 소리쳤다.

《누가 왔소?》

《아이들이 왔어요.》

《아이들이?…》

《두애예요.》

한상수는 무엇때문인지 불길한 예감부터 갈마든다.

(그럼 은옥이와 일국이가?!…)

한상수는 기쁨보다도 속이 불안했다. 여기는 아이들이 올데가 아니였다. 그 애들이 왜 왔는가? 무슨 일이 있는가. 옥야는 어디로 가고 아이들이 왔는가. 어떻게 되여 아이들이 아버지를 만나러왔는가. 제발 다른 일이 없었으면!…

한상수는 아래도리가 후들거리는것을 겨우 발을 옮겨디디며 면회실로 갔다. 유리창너머 두 아이가 오도카니 서있었다. 한애는 몸이 날씬하고 키가 큰 처녀애였고 다른 애는 순하게 생긴 사내였다. 은옥이는 아이때 모습을 알아볼수 있었으나 일국이는 처음보는 얼굴이였다. 첫 이발이 나올 때 면회탁우에 조가비같은 발자국을 남겨놓아 이 아버지의 마음을 울렸던 아들, 한상수의 가슴은 또다시 비둘기떼가 날듯이 화드득 뛰였다.

이애들이 왜 왔을가. 살결이 눈같이 희고 몸매가 버들잎같이 나긋나긋해보이는 딸애는 신통히 제 에미를 빼물었다. 그 애는 앞에 다가온 사람이 분명 자기 아버지인가 하여 긴 속눈섭아래 호수같이 그윽한 눈으로 경계하듯 쳐다보기만 했다. 일국이는 무서운 모양인지 슬금슬금 누나의 뒤로 숨어버린다. 아마 아버지란 사람이 자기와 어떻게 련결되여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어느 그림책에 나오는 동굴속의 무서운 사람을 보는것처럼 두눈에는 공포까지 어렸다.

《은옥아, 일국아!…》

혈육의 정은 어쩔수 없었다. 부지중 입에서 제것같지 않은 목소리가 튀여나갔다. 아이들을 안을듯 두손을 벌리고 다가갔다.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뒤걸음을 쳤다. 유리막이가 있어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얘들아, 손이라도 잡아보자.》

한상수는 분도기크기만한 구멍난 유리칸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은옥이는 수염많고 무섭게 생긴 이 사람이 아버지가 분명한가를 다시금 확인이라도 하듯 입을 오무리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머니는 어디 가고 너희들만 왔느냐?》

《어머닌 미국갔는데 뭐.》

누나의 등뒤에 숨어있던 일국이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때에야 한상수는 언젠가 면회왔던 옥야가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미국에 한번 다녀오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는가?…

《그럼 너희들은 어느 집에서 사느냐?》

《삼촌네집에서.》

이번에도 일국이가 중얼거렸다.

《삼촌이라니? 어느 삼촌?》

한상수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못했다.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였다. 그러니 안해가 누구네 집에 맡겨놓고 간것 같았다. 정신은 삼거웃처럼 혼탕되여버렸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 그러나 아이들앞에서 그것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이 짧은 면회시간에나마 아이들과 함께 가정적분위기에 있고싶었다.

《은옥인 몇살이냐?》

한상수는 미소를 지으며 처녀애에게 물었다.

《열두살!》

아들이 제꺽 대답했다.

《일국이 넌?…》

《난 여덟살!》

《학생이겠구나.》

《1학년이예요. 난 졸업반이구.》

이번에는 은옥이가 한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은 차츰 유리간막이앞으로 다가왔다.

자기 아버지임이 육친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공부들은 잘하느냐?》

《네.》

두 아이가 일시에 대답했다.

《용타!》

한상수는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아버지!》

은옥이가 서늘한 눈길을 들어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불렀다.

《왜 그러느냐?》

《엄만 미국에 잠간 갔다오겠다고 했어요. 외할아버지가 아버지때문에 편지했거든요.》

은옥은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니를 욕하지 말라는 뜻이였다. 이젠 저애도 다 자랐다는 생각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씨, 엄만 거짓말쟁이야. 빨리 오겠다고 하구선.》

일국이는 여전히 불만인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빨리 올수 있니. 미국이 얼마나 멀다구.》

은옥이는 오히려 어머니를 두던하며 동생을 나무랬다.

《비행기타면 빨리 온다고 했어.》

둘은 또 싱갱이질이다.

《됐다 됐어. 일국이 말이 옳다.》

한상수는 또다시 가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은옥이는 좌우를 재빨리 살피고나서 무슨 긴요한 말이라도 할듯 아버지앞으로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내 말 좀 들어보세요. 글쎄 얼마전에 일국이와 내가 학교에 갔다와서 엄마가 왔나 보려고 집에 와서 놀고있는데 웬 아저씨 둘이 차를 타고 오지 않았겠어요. 그 아저씨들은 사탕이랑 과자랑 가지고와서 우리들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아버지가 이제 곧 감옥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겠어요. 우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아저씨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는 원래 큰 죄를 졌대요. 그러나 잘못했다고 쓴 종이장에 도장만 누르면 엄마랑 함께 살수 있다고 했어요.》

은옥은 어른처럼 감옥에 오게 된 사연을 사리정연하게 말했다.

《아버지, 우린 차타고 왔어요.》

일국이는 자랑이나 하듯 참견을 했다.

한상수는 가슴이 왈칵 무너지는듯했다. 아이들이 놈들의 모략에 걸려든것이였다.

《그 다음엔 그 아저씨가 또 뭐라든?》

《그 아저씬 차를 타고 오면서… 아버지가 자기네 말대로 도장을 찍지 않으면 우린 브라질로 간다고 했어요.》

《?!…》 한상수는 그만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놈들은 아이들까지 끌고와 전향을 강요하는것이다. 아, 천추에 용서 못할 비렬한 놈들, 부모와 자식간의 정마저도 이 악마의 소굴에서는 음모의 미끼로 되여야 하는가. 그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 하고싶은 소리를 다 했다.

《거기 가면 서울보다 살기 좋다고 했어요.》

《갈 때는 비행기타고 간다고 했는데 뭐.》

《그래두 우린 안가겠어요.》

《도장만 찍으면 보내지 않겠다구 약속했는데 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들린다. 손에 야들야들한 감촉이 왔다. 어느새 일국이가 다가와서 아버지의 손을 어루만지고있었다. 은옥이도 옆에서 눈물이 가랑가랑하여 쳐다본다.

한상수는 맥이 탁 풀려 비칠했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것만 같아 정신을 가다듬으며 유리문을 꽉 그러잡았다. 무서운 노성을 터뜨려 이 땅, 이 하늘을 들부시고싶었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아버지, 왜 그래요. 예?…》

은옥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일국이도 겁에 질려 눈이 커졌다.

《일없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그랬다.》

숨쉬기가 점점 가빠졌다. 놈들은 자기가 이러기를 바라고있다.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해 전향서에 도장을 찍게 하려고 하고있다. 사람들, 아니 부모와 자식간의 끊을수 없는 애정을 가지고 투전을 하고있다. 그러다가 놈들은 아이들을 머나먼 이국땅으로 팔아버리려고 한다. 그 애들은 그곳에서 배고픔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죽어버리길 바라고 아버지는 그 자식들을 생각하며 피가 말라 죽기를 원한다. 한상수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들이 이처럼 잔혹하고 악착스러울줄은 몰랐다.

《아버지!》

은옥이가 아버지의 고통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브라질로 가면 죽는대요. 저는 책에서 봤어요. 코브라라는 독뱀도 있고 사람을 통채로 삼키는 악어도 있대요.》

《아버지, 나두 가기 싫어. 무서워!》

일국이가 금시 울음이라도 터뜨릴듯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 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날창이 되여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주어 섬긴다.

《아버지, 아버지는 뭘 잘못했나요?》

은옥이가 눈물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아버진 잘못한게 없다.》

《그런데 그런 옷이랑 입구 왜 여기에 있나?》

이번에는 일국이가 입이 삐죽해서 두덜거렸다.

아, 이 어린것들에게 어떻게 무슨 말로 대답해줄수 있으랴.

《아버지.》 은옥이가 또다시 아버지를 부른다.

《오냐.》

《아버진 정말 잘못한게 없지요?》

《그럼. 어머니에게 물어보렴. 아버지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그런데 엄만 왜 아버지말만 꺼내면 우실가요?》

은옥이는 흑진주같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또 묻는다. 또다시 가슴이 얼얼해온다. 안해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어째서 감옥에 있는가를 아직은 말하지 못할것이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랬겠지. 그러나 좀 더 있으면 나아질게다.》

한상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흔연스레 말했다.

《그럼 아버지, 종이장에 손도장을 찍어주세요. 그까짓 뭐라고 못찍겠나요. 손도장 찍어주고 엄마랑 함께 살자요. 예?》

은옥이가 애원한다.

《아버지, 여기 도장있어.》

누나의 옆에서 듣기만 하던 일국이가 아래주머니에서 나무도장을 꺼내여 유리구멍에 나와있는 아버지의 손에 쥐여주었다. 한상수는 얼결에 그것을 잡았다. 일국이는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듯 씩 웃었다.

《너 그 도장 어디서 났니?》

은옥이의 놀란 눈길이 동생을 쏘아본다.

《그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에서 말할 때 집에 들어가 농짝 빼람에서 꺼냈는데 뭐.》

일국은 금시 시무룩해서 누나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것이였다.

《누가 너보고 이걸 가져오라고 했니?》

은옥은 동생을 맵짜게 다몰아댔다. 잘하자고 한 노릇이 누나한테 된 욕을 먹게 된 일국이는 고개를 푹 떨구어버렸다.

도장을 쥔 한상수의 손은 중풍이라도 만난것처럼 후들후들 떨렸다. 모름지기 일국이는 이 목도장만 있으면 아버지가 감옥에서 놓여나올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놈들은 이렇게 천진란만한 어린것들까지 자기의 전향을 위해 리용하고있는것이다. 한상수의 가슴은 또다시 놈들에 대한 격분으로 끓어번졌다. 그는 손안에 든 목도장을 꽉 그러쥐고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찍지요?》

은옥의 간절한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아슴푸레 들려온다.

《…》

한상수는 입을 꽉 다물고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만약 입을 열면 아이들의 순진한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대답할것만 같았다.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용기를 가다듬고 마주 보았다. 두 아이의 애절한 눈길이 가슴을 사정없이 찌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그대로 고문이였다. 아니 생살을 저며내는것보다 더 괴로운 고문이였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 아버지가 종이장에 도장을 누르는것을 왜 그리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줄 모를게다.

전향서에 도장을 찍는것은 순간이면 된다. 그러나 수년세월 이 아버지가 그것을 부정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것을 너희들은 다 모를게다. 내가 거기에 도장을 찍는것은 조국을 배반한다는 공개적인 선언이다. 나라가 둘이 되던 셋이 되던 오직 일신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하겠다는 반역의 증거이다.

내가 만약 그 종이장에 도장이나 지장을 찍는다면 아버지는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과 같고 이 땅에서 머리를 들고 살아갈수 없게 된다. 아버지는 남의 물건을 다친것도 없고 누구를 때린적도 없다. 다만 하나된 조국을 위해서 미국놈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웠을뿐이다. 이것이 곧 《죄》로 되였다. 놈들은 이제 너희들마저 남의 나라로 팔아먹으려 하고있다. 너희들을 제물로 삼아 이 아버지를 짐승만도 못한 변절자로 만들려고 하고있다. 아버지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한다. 비록 철창속에 갇힌 몸이지만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다가 죽을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납득시킬수 있으랴. 한상수는 참으로 괴로왔다. 불행하게도 감옥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실망을 주게 되였으니 이 철없는것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하랴.

한상수는 뼈만 남은 메마른 손으로 유리막앞에 가까이 다가선 일국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코마루가 오똑하고 입귀가 야무지게 맺힌 일국은 눈을 아래로 깐채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있었다. 문득 언제인가 옥야가 면회와서 한 말이 떠올랐다.

동네아이들과 마당가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일국이가 옆집아이를 때리여 코피를 터뜨렸다는것이였다.

사연인즉 아이들이 놀다가 제 아버지에 대한 타령이 나왔는데 옆집에 사는 같은 또래의 아이가 불쑥 일국에게 《너의 아버지 이마에 뿔났지?》하고 빈정거렸다. 동네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뭐, 우리 아버지가 뿔났다구?》

일국이는 모욕감에 두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빨갱이>들은 이마에 뿔났다구 했어.》

일국이가 사납게 나오는 바람에 그애는 기가 죽어 중얼거렸다.

《이 새끼야, 너 우리 아버지 이마에 뿔난것 봤니?》

《못봤어. 감옥에 간걸 어떻게 보니.》

《바보새끼야, 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 이마에 뿔났다고 했어. 사람이 어떻게 이마에 뿔이 날수 있니. 너 알지도 못하면서… 맞아보간.》

일국은 주먹으로 그애의 코등을 세차게 쳤다. 금시 그애의 코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옥야는 일국이를 세워놓고 동무를 때렸으니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했다. 그러나 일국은 끝내 빌지 않았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이 기특한 생각이 들어 《일국아, 너 얼마전에 옆집 아이를 때려 코피를 터뜨렸다는게 사실이냐?》하고 다정히 물었다.

일국이는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얼핏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그 일을 아는가 하는 눈치였다.

《길남이 그 새끼, 악나게 노니까 때렸죠 뭐. 그런데두 엄만 내가 잘못했다구 용서를 빌라는거예요.》

일국은 불만에 차서 투덜거렸다.

《그래 빌었느냐?》

한상수가 대견스러워 넌지시 물었다.

《빌긴 왜 빌어요. 잘못하지두 않았는데.》

일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 봐라. 아버지도 너처럼 잘못한게 없다. 잘못한게 없는데 어떻게 잘못했다고 손도장을 찍겠느냐.》

《그런데 어째서 아버진 감옥에 있나요?》

지금껏 잠자코있던 은옥이가 오돌차게 물었다.

《그건 너희들이 큰 다음에 알게 될게다.》

한상수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버지, 그럼 우린 어떡해요?》

은옥이가 눈굽에 이슬을 담고 또다시 안타깝게 물었다.

《!…》

한상수는 말문이 막혔다. 할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한상수는 아이들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아버지, 우린 브라질 안갈래. 아버지와 함께 살래.》

일국이가 몸을 흔들며 떼를 쓴다.

아, 이거야 사람의 정신을 뽑아버리는 일이지 뭐란 말인가. 그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것만 같다. 무슨 말인가 하여 아이들을 달래여야 했으나 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그냥 있으면 아이들앞에서 목놓아울것만 같았다. 그는 더 견딜수가 없어 몸을 돌리였다.

《아버지, 그냥 가면 우린 어떡해요.》

아버지의 거동을 눈여겨보던 은옥이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입이 얼어붙은듯 도무지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아버지, 가지마!》

일국이가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찢겨진 생살에 소금을 뿌리는듯 쓰리고 아팠다. 그는 눈을 감은채 발걸음을 떼였다.

《아버지!―》

두 아이가 일시에 소리쳤다. 그 애절한 부르짖음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숨이 콱 막혀왔다. 온몸이 쇠돌에 눌리는듯 했다. 걸을수도 돌아설수도 없었다.

(얘들아! 잘 가거라.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

가슴이 터져나가는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술을 과하게 마신것처럼 걸음이 잘되지 않는다. 등뒤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이들의 처절한 부름이 그냥 귀전을 때리며 따라왔다.

한상수는 어떻게 감방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교도관이 열어주는 문안으로 발을 옮겨놓는 순간 그는 허물어지듯 쓰러져버렸다. 오철남이 깜짝 놀라 웬일인가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실신한듯 누워있노라니 점점 정신이 맑아졌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손가락같은 나무도장이 쥐여져있었다. 일국이가 전향문에 찍으라고 주머니에서 꺼내여 아버지의 손에 쥐여준 도장이였다. 한상수가 서울에 와서 《태백》의 축구선수로 첫월급을 타던 날 안해가 도장방에서 새겨온것이였다. 이 도장을 전향문에 찍고 어머니와 함께 살자고 어린것이 손에 쥐여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또다시 란도질을 당하는듯 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뜨거운 피가 터져나가는듯 했다. 이 야만들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5

5

 

밖에서는 장마비가 줄금줄금 내리고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철창밖에서 봄의 훈향이 실리여오는것 같더니 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이 온것이다. 감방벽에는 곰팽이가 허옇게 돋아나고 온몸에서는 진득진득한 땀발이 솟았다. 숨막히는 악취와 무더위!… 여름은 여름대로 수인들에게 고통을 준다. 최고 34도까지 오르는 감방온도에서 심장부담을 받는 수인들은 때로 질식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페활량이 큰 한상수도 헐떡거리다가 환기통에 코를 박고 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여야 기온이 낮아지며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또다시 한증탕에 앉은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거린다. 이것은 말그대로 하나의 고문이였다. 게다가 뜨물같은 짠 소금국을 먹었더니 물이 당겨서 견딜수가 없었다. 물을 달라고 요구하면 몇방울씩 주어 간을 말리였다. 전향만 하면 물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이죽거릴 때마다 한상수는 짐승같은 놈들에 대한 분노로 온몸에서 불이 이는듯 했다.

요즈음 한상수는 아이들생각이 더 났다. 그럴 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하루종일 감방벽에 몸을 기대인채 멍하니 앉아있군 했다. 눈앞에는 울고있는 은옥이와 일국이의 얼굴이 얼른거리고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귀전을 그냥 때린다. 그것은 고문을 당하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언젠가 백근식은 한상수에게 너도 인간이냐고 소리친적이 있었다. 그렇다. 나도 인간이다. 피가 있고 살이 있고 열이 있는 인간이다. 심장은 돌덩어리가 아니다. 나 역시 자식을 귀중히 여기는 아버지다. 아이들의 소식을 모르니 더더욱 피가 마르는것 같았다.

아이들을 만나고 감방으로 돌아온 그날 한상수는 오철남에게 모든 사연을 이야기했다. 분노한 오철남은 즉시에 좌우감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타전했다.

《감옥측은 한상수동지를 전향시키기 위해 두 아이를 유혹하여 아버지와 상봉시켰다. 전향하지 않는 경우 아이들을 브라질로 팔아넘길 흉계를 꾸미고있다. 누구든지 모든 가능성을 다하여 면회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바란다. 급히 이 사실을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83번지에 살고있는 정창식씨에게 알려달라.》

특별사동의 모든 감방에 즉시 이 사실이 전달되여 수감자들의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곧 놈들의 흉계를 파탄시키기 위한 련대투쟁이 조직되고 한상수에 대한 동정타전이 날아왔다. 한상수는 가슴이 뻐근하였다. 동지들이 고마왔다.

《선생님, 너무 상심마십시오. 놈들은 은옥이와 일국이를 팔아먹지 못합니다.》

오철남은 부리부리한 눈길로 한상수를 쳐다보며 안심시켰다.

《!》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아닌 악귀같은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한상수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스럽기 그지없었다.

《놈들도 아이들이 감옥에 와서 아버지가 전향하지 않으면 브라질로 팔려간다는것을 공개한걸 알고있는것만큼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교무과장놈에게 미리 침을 놓읍시다.》

오철남은 뜻밖에도 론리가 명백한 기지있는 청년이였다. 한상수는 오철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회여론이 터지기전에 아이들을 처리한다면 큰 일이였다.

다음날 아침 한상수는 담당교도관인 한을손을 불렀다.

《왜 그래?》

한을손은 어정어정 다가와 시찰구에 낯짝을 대고 흥심없이 물었다.

《나를 교무과장에게 안내하라.》

한상수는 나직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했다.

《교무과장?…》

한을손은 이렇게 반문하며 잠시 생각을 굴리는듯 했다. 한상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는지 《왜?…》하고 되물었다.

《교무과장에게 할 말이 있다. 여러말 말고 빨리 문을 열어.》

한상수의 목소리는 위압적이였다. 한을손은 무엇인가 뒤가 켕기는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과장님은 안계시는데 혹시 내가 전달하면 안되겠나?》

《좋아, 그럼 당신이 교무과장에게 직접 말하라. 우리 아이들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특별사동수감자들의 련명으로 <법무부>에 상소하며 신문을 통해 사회에 공개하겠다구. 우린 이미 보도매체와 인권단체에 통보했으니 모가지가 무사하려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구 해.》

한상수는 놈에게 엄한 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한을손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놈은 자신을 수습하고 《무슨 날벼락맞을 소리를 하는거야. 우린 청백해.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주어듣고… 》하고 뇌까리며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아무 소리가 없었다.

백근식이도 조용하고 면회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상수는 안해가 없는것이 답답했다.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미국에 갔다고 한다. 미국으로 함께 이주하자는 아버지의 강요를 뿌리치고 서울에 남아있던 그가 아이들을 남의 집에 맡기고 떠난데는 무엇인가 절박한 용무가 있었던것같다.

그가 살붙이들을 남의 집에 맡겨놓고 머나먼 타향으로 떠날 때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겠는가.

그는 불시에 안해에 대한 련민의 정이 솟구쳤다.

근래에 와서 박영진이와 정창식이도 보고싶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상수는 가족이 아닌 사람은 면회를 할수 없고 설사 면회를 하는 경우에는 전향공작에 나서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더우기 백근식은 한상수에 대한 면회를 일체 불허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에 대한 저들의 모략이 들장나 어떤 화단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였기때문이다.

6

6

 

옥야는 토방마루에 걸터앉아 어둠이 짙어가는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 정창식이와 며칠을 헤매이는 중이였다. 신문에 광고도 내고 있을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으나 행적이 묘연했다.

처음 그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정창식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었다. 그다음 그는 정신없이 아이들을 찾아헤매였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끼니때가 되였는데도 배가 고픈줄 몰랐다. 오늘도 아이들을 찾아 신발이 닳도록 헤매고 돌아왔으나 힘든줄도 모르겠다. 그는 오히려 독이 뻗쳤다. 그의 두눈에서는 무섭고 결사적인것이 서서히 피여올랐다. 이제는 살 의향이 없어졌다. 남편을 감옥으로 보내고 아이들마저 잃어버린 내가 누굴 믿고 산단 말인가. 나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녀자이다. 누구에게 이 삶이 필요하단 말인가. 정녕 살고싶지가 않았다. 설사 내가 산다고 해도 이제 무슨 낯으로 남편의 얼굴을 대하며 어떻게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볼수 있겠는가. 철없는 처녀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운명을 남편에게 의탁했고 자식들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자신이 이 세상에 더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되였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옥야는 놀라 눈길을 들었다. 또 어떤 불행이 문을 두드리는것인가. 또다시 조심스럽게 대문을 두드린다.

옥야는 할수 없이 일어나 대문을 열었다. 문가에는 옷이 람루한 늙은 로인과 어린 처녀애가 서있었다.

《이거 안됐소다. 이 애가 너무 배가 고파하기에 장물이라도 한사발 얻자고…》

로인은 미안해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차마 밥을 달라는 소리가 안나오는 모양이였다. 처녀애는 허기를 만난듯 얼굴이 창백했다. 옥야는 불시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나도 어디에 갔다오는 길이여서 집에 밥이 없군요. 저 마루에 잠간 앉아계세요.》

옥야는 로인과 처녀애를 토방마루에 앉게 하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음식점으로 뛰여갔다. 그는 얼마간의 떡과 빵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로인과 처녀애는 몇끼를 굶었는지 음식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정상을 보니 옥야는 아이들생각이 나서 눈물이 절로 났다. 이 순간에도 은옥이와 일국이가 이렇게 방랑하고있을지 어이 알랴. 내가 죽으면 우리 은옥이와 일국이도 길가에서 굶어죽을것이다. 옥야는 소스라쳐 놀랐다.

《고맙소이다. 귀인을 만나 오늘은 죽지 않고 살았소이다.》

로인이 눈굽에 뿌연 눈물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이처럼?…》

옥야는 가슴이 아파 더 묻지 못했다.

《충청도에서 왔지요. 땅이 미국놈의 군사기지로 되는 바람에 밥줄이 떨어졌지요. 서울이 살기 좋다고 하여 왔더니 로친은 병을 만나 길가에서 숨지고 이렇게 손녀애의 입에 풀칠할 길조차 없으니 언제면 좋은 세상이 오겠는지… 》

로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그었다.

《이제 그런 세상이 오겠지요.》

《아니요. 그저 미국놈들이 나가야 합네다. 그 길만이 살길이지요. 잘 먹고 갑네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다.》

로인은 이렇게 사례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가세요.》

옥야는 로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로인과 처녀애는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옥야는 저쪽 집모퉁이로 사라지는 로인네를 바라보며 대문가에 굳어져있었다. 세상은 이렇게도 공평하지 못한가. 호의호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물도 먹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

이 빈부의 차이가 누구때문인가. 정녕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은 언제나 오겠는가. 하지만 자기는 저 방랑로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인은 미국놈이 이 땅에서 나가야 살길이 열린다는것을 알고있는데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죽을 생각을 하고있지 않았는가. 어리석고 암둔한 나다. 불의를 맞받아 싸울 대신 절망에 빠져 몸부림치고있었으니 남편이 이것을 알면 또 얼마나 가슴아파하랴.

다음날 정창식이 얼굴이 까맣게 죽어 허둥지둥 달려왔다. 대구교도소에 면회를 갔던 사람에게서 소식이 왔다는것이였다. 교도소놈들이 아이들을 브라질로 팔아넘길 흉계를 꾸미고있다는것이다. 옥야는 눈앞이 빙빙 돌았다. 한시바삐 대구로 떠나야 했다.

그들은 곧 택시를 잡아타고 대구로 향했다. 옥야는 운전사에게 차를 빨리 몰아달라고 간절히 사정을 했다. 이순간에도 아이들이 브라질로 팔려가는것만 같았다.

옥야는 차가 더디게 가는것만 같아 가슴이 졸아들었다. 만약 그곳에도 아이들이 없다면 자신이 견디여 낼것같지 못하였다.

(어쩌면 모두 한바리에 실어도 짝지지 않을 악마들일가.)

아버지가 그렇게 숭배하는 미국이란 나라도 같고 같은 놈들이 있는 곳이였다.

옥야가 미국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파산당한 딸의 행복을 다시 찾아주기 위하여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난 관광지를 데리고 다니며 옥야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옥야는 모든것이 귀찮았다. 어서빨리 남편의 석방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그 국회의원인가를 만나보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출장을 떠났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아버지는 옥야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무진 애를 썼다.

세상을 돌아보고 딸이 마음에 드는 곳에 영주시키겠다고 했다. 옥야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서울에 두고온 아이들과 감옥에 있는 남편생각뿐이였다. 아버지가 아무리 딸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고 해도 비둘기의 마음은 콩밭에 가있듯이 옥야는 애당초 미국에 정을 붙이지 않았다.

어느날 아버지는 우울해있는 딸에게 말했다.

《얘야, 세상에 영원이란 없다. 괴로움도 같다. 세월이 지나면 그 괴로움이란 연기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즉 너도 너무 자기를 속박하지 말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도대체 아버진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여기 미국에서 훌륭한 배우자를 골라 잡으라는거다.》

《훌륭한 배우자라구요. 그래서 나를 오라고 했어요?》

아버지의 말은 오싹할 정도로 옥야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아니, 그래서 오라고 한것은 아니고, 평생 혼자서 살수 없기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자 당황하여 중언부언했다.

옥야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위가 감옥살이를 한다고 하여 딸에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한없이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었다. 설사 남편이 감옥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한생 그이를 그리며 살것이다. 옥야는 이 미국에 와서 남편이 자기의 심장에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있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가 없는 삶이란 가시덤불길이고 암흑이다. 그가 없으면 자기의 삶도 무의미하다.

꿈에 남편과 아이들이 자주 나타났다. 남편은 그전처럼 옥야의 어깨를 잡고 다정히 이야기를 하군 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글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소스라쳐 놀라 잠에서 깨여나군 했다. 그런 밤이면 남편과 아이들이 그리워 베개깃을 눈물로 적시며 한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어느 주지사의 아들이라는 미국회의원은 얼마후에야 돌아왔다. 40대의 젊은 사람으로서 키가 늘씬한것이 녀자들의 이목을 끌수 있는 멋쟁이였다. 그는 옥야를 보자 동방의 미인이라고 추파를 던지며 손을 잡아 스스럼없이 입술을 가져다대는것이였다. 옥야는 첫인상이 불쾌했다. 한시바삐 그를 피하고싶었다.

아버지는 그의 환심을 사려고 피아노를 치라고 했다.

《아, 피아니스트입니까?》

이름이 마크웨이라고 소개를 한 그는 옥야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옥야는 할수 없이 피아노연주를 했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마크웨이는 미국에도 이만한 연주가가 없을것이라고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얼마후에 그들은 음식상에 마주앉았다. 국회의원이 옥야에게 부탁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사위에 대하여 간단히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리념을 지키는것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런 리념을 가졌다고 잡아가둔다는것이 얼마나 미개한 짓입니까. 내 곧 주한 미국대사관의 삼촌에게 전화를 하겠습니다. 전향서고 뭐고 당장 석방시키라고, 더우기 나라의 유명한 축구선수를 감옥에 가둔다는것은 <한국>의 수치입니다. 부인, 내 말을 믿으십시오.》

《국회의원님, 고맙습니다.》

옥야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사의를 표시했다.

《저도 부인을 알게 된것이 기쁩니다.》

마크웨이는 주머니에서 주소가 적힌 명함장을 꺼내여 옥야에게 보이며 래일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본인이 있는데서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화를 하겠다는것이였다. 옥야는 할수 없이 약속된 시간에 그를 찾아갔다. 마크웨이는 이미 남조선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면서 함께 갈데가 있으니 나가 승용차에 오르라고 했다. 옥야는 이 미국신사가 자기를 집에까지 데려다주는줄로 알고 고맙게 생각했다. 마크웨이는 옥야를 교외에 있는 자기의 별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정욕에 충혈진 눈을 번뜩이며 다짜고짜로 옥야를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짓이예요.》

옥야는 놈을 밀어제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부인, 조용하오. 여기는 우리 둘밖에 없소.》

놈은 다시 옥야에게 달려들었다. 차거운 눈길로 마크웨이를 쏘아보던 옥야는 놈의 뺨을 철썩 때리고 바람처럼 밖으로 뛰여나왔다.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탄 옥야는 집으로 돌아와 분함을 참지 못해 침대에 쓰러져 흐느껴울었다. 사연을 알게 된 아버지는 입이 쓰거워 아무 말도 못했다. 며칠후 옥야는 서울행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옥야는 미국려행과 아이들을 찾아 이 땅을 헤매는동안 불합리한 이 세상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다.

미국회의원이 남편의 석방에 방조를 준다고 하기에 찾아갔더니 그놈이야말로 추악하고 더러운 속물에 불과했고 주한미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주었다는것은 한갖 기만이였다. 결코 미국은 신사의 나라가 아니며 《벗》이 아니였다.

남편이 미국놈을 내쫓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옳았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싸웠고 감옥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아이들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남편을 구원해보겠다고 미국행을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자기가 갈 길을 알았다.

그것은 남편이 가는 길이였다.

…현관문을 나서던 백근식은 앞에서 오고있는 정창식과 옥야와 마주쳤다. 옥야는 파리한 얼굴에 서리찬 기운을 내뿜고있었다.

백근식은 가슴이 섬찍했다. 분명 아이들때문에 오는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으나 곧 자신을 다잡았다. 감히 제가 여기가 어디라고, 저 연약한게 큰소리 한마디면 움츠러들것이…

백근식은 반색을 하며 옥야앞으로 다가왔다.

《아 이거 옥야씨 아니요. 미국에 갔다더니 언제 왔소. 아마 또 면회를 오던 모양이지요?》

《아니, 전 교무과장님을 만나러 왔어요.》

옥야의 목소리는 차거웠다.

《그래요. 그럼 어서 들어갑시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오.》

백근식은 정창식을 제지시키고 앞장에 서서 면회실이 아니라 자기 방으로 옥야를 이끌었다. 아마 전처럼 또 자기 방에서 면회를 시켜달라고 부탁하자는것이 아닐가.

백근식은 옥야에게 의자를 권하고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음침한 눈길로 옥야를 바라보았다.

《옥야씨, 옥야씨도 이제는 퍼그나 늙었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젊으나 젊은 나이에 남이 겪지 않은 인생고초를 다 겪으시니…》

《그런 소리는 더 하지 마세요.》

옥야가 쌀쌀하게 백근식의 말을 밀어치웠다.

《인간이 인간의 불행을 동정하는것은 미덕이라고 할수 있지요. 저는 지금까지 옥야씨를 도와주지 못한것을 괴로와하고있습니다.》

옥야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백근식은 그의 입에서 다음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여 옥야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과장님, 제 아이들이 어디있어요?》

《아이?…》

백근식은 얼굴에 비굴한 웃음을 담았다. 벌써 다 알고왔다는것이 알렸다. 이제 한상수를 만나면 구체적인 내용을 알수 있을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맞대놓고 공세를 들이댈 판이다. 한상수는 어쩔수 없다쳐도 모성애야 거기에 비하겠는가. 게다가 옥야같은 녀자임에랴.

《아이들의 행처는 나도 모르오. 나는 아는 처지에 그애들을 아버지와 면회시켰을 따름이요. 두 사람이 데리고 왔었는데 매우 선량해보이더군. 너무 락심할건 없소. 아무리 서울장안에 인총이 많다 해도 잔디밭에서 바늘찾기보다야 쉽겠지. 내가 우리 사람들을 동원해서 그자들도 찾고 아이들도 찾아봅시다.》

백근식은 저도 모르게 말이 거침없이 슬슬 나옴을 느꼈다. 그러나 옥야는 어느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을 보는 눈길로 백근식을 쳐다보며 맵짜게 쏘아부쳤다.

《아니, 난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어서 우리 아이들을 내놓아요!》

백근식은 딱하다는듯 두손을 벌리였다.

《하, 이거 정말 난처하군. 아무리 사상이 대립되여 용납 못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아이들까지 우리가 처리한단말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차근차근 아이들을 찾을 방도를 찾읍시다.》

백근식은 철궤를 열고 종이 한장을 꺼내 인즙과 함께 옥야앞에 내놓았다.

《이건 내가 옥야씨를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내놓는 방안입니다. 뭐 에둘러 말할것도 없지요. 한상수씨는 체육인이고 남자다운 자존심이 있으니 체면상 그렇다 치고 옥야씨야 다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면 법에 어긋나지만 어찌겠습니까. 남편을 대신해서 옥야씨가 찍으면 한상수씨는 석방될수 있고 우리가 힘껏 노력하여 아이들을 찾아드리겠습니다. 한상수씨도 병보석으로 하면 자연스러운 석방으로 될것입니다.》

옥야는 책상우를 내려다보았다.

《전향서.》

대형영사막에 영화의 제명이 나타나듯 세글자가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옥야는 갑자기 오한이라도 일어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보는 종이장이다. 세글자를 내놓고는 티한점없는 하얀 종이이다.

그는 비로소 세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것임을 알았다. 지금 백근식이 무엇을 꾀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강요하는가를 페부로 느꼈다. 이때껏 이런 놈들과 한하늘아래서 살았다는것이 거짓말같았다. 추악한 상통들이 한꺼번에 엉키여 돌아간다.

《작은아버지》라고 믿었던 《법무부》차장 방치백이며 자기에게 달려들던 국회의원이라는 미국신사… 하나같은 인간추물들이다.

옥야는 전향서를 움켜잡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눈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서슬푸른 빛이 뿜어나왔다.

《나는 오늘에야 나의 남편이 세상에 대고 자랑하고싶은 귀중한 사람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았어요. 그리고 수십년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하고 당신들에게 갖은 악형을 당하면서도 왜 이 종이장에 지장을 찍지 않았는가를 잘 알았어요. 바로 여기에 지장을 찍으면 당신들과 같은 추악한 인간이 되기때문이예요. 그런데 나더러 대신 찍으라고? 어림없는 소리 걷어치워요. 난 영원히 그이의 안해예요!》

옥야는 전향서를 소리나게 북 찢어 마루바닥에 힘껏 뿌렸다.

《내 아이를 내놔요! 내 남편을 내놓으란 말이예요!》

《이년 미치지 않았어?》

《미친건 당신들이예요. 당신들이야말로 이 하늘아래서 살수 없는 악당들이예요. 빨리 내 아이들을 내놔요. 내 남편을 내놓으란 말이예요.》

어디서 힘이 솟구쳤는지 옥야는 백근식에게 달려들었다.

《에익 쌍년!》

백근식이 힘껏 옥야의 얼굴을 후려쳤다. 옥야는 그 한번의 손찌검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7

7

 

백근식은 자기 방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신문을 한장한장 훑어보고있었다. 혹시 신문에 자기의 비행이 실리지 않았나 해서였다. 담당교도관을 통해 한상수가 아이들을 내놓지 않으면 특별사동의 수감자들이 련명으로 《법무부》에 상소하고 신문에 광고하겠다고 통고한 그때부터 백근식은 은근히 신문에 주의를 돌렸다.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을 유괴한 일이며 전향하지 않으면 브라질로 팔아먹겠다고 한 사실이 신문에 공개되면 큰일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죽가마처럼 끓게 되고 비난의 화살이 비발치듯 할것이니 방치백이 자기를 그냥 두지 않을것이다. 결국 그는 한상수를 전향시키려다가 덜미를 잡힌 격이 되였다. 처음에 백근식은 한상수의 말을 전해듣고 네놈이 감옥안에서 어쩔셈인가 하며 형편을 두고보려다가 감옥에 찾아온 옥야와 대들이싸움을 한 후부터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사태가 점점 험악해질것 같았다.

하여 그는 부랴부랴 유괴하여놓았던 아이들을 졸개들을 시켜 고아원에 처넣게 했다. 후에라도 불집이 일어나면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고아원에 데려다주었다면 될것이다.

하지만 그후에도 백근식은 속이 께름해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일은 크게 번져지지 않았다. 후에 알아보니 고아원에 들어간 한상수의 아이들은 제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허나 불은 꺼졌지만 불씨가 남아있으니 어느때 불이 일어날지 누가 알랴.

신문들에는 상품광고따위나 자살사건을 비롯한 범죄행위들을 쓴 기사들이 얼룩덜룩 실려있었다. 그는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러다가 노루 제 방귀에 놀랐다는 생각이 들자 한상수에 대한 복수심이 불붙듯 일어났다. 문제는 그의 《빨갱이》신념을 꺾고 전향을 시켜야 한다. 백근식은 이런 생각을 굴리며 신문을 뒤적이다가 어느 한 보도기사제목에 눈이 끌렸다.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서울에서 국제경기를 한다는 소식이였다. 순간 백근식의 눈앞에 한상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연기가 피여오르는 담배가치를 손가락에 끼운채 이마를 짚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문득 도꾜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 친구에게서 들은 격언이 생각났다.

《개구리는 황금옥좌에 앉혀놓아도 늪으로만 뛰여든다.》

한상수 역시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축구를 떠나서 살수 없는 인간이다. 어차피 그를 전향시키는 출로는 축구에 대한 유혹의 낚시를 끊임없이 던지는것이다.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고 말은 매여놓아도 뛸 생각밖에 없는 법이다. 요즈음 북측에서 또다시 북남유일팀문제를 제기하고있는것만큼 이것을 기화로 낚시를 던져보자. 그는 모름지기 이 일에 무관심하지 않을것이다. 나이가 들고 페인이 된 그가 이제 다시 경기에 나설수는 없지만 전향하면 석방하여 감독을 시켜준다고 꼬일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런 수로는 안된다. 전향을 안하면 제 아이들을 브라질로 팔아넘기겠다고 최후통첩을 하였을 때도 용수부동이던 자이다.

백근식은 어쨌든 한상수를 감옥밖으로 끌어내여 축구구경을 시키면서 서서히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는것도 필요하다는 결론을 지었다. 여기에 지금 축구감독을 하고있는 박영진을 인입할 작전을 무르익혔다.

백근식은 그 길로 교도소장을 찾아갔다. 얼굴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고 둔하게 생긴 교도소장은 백근식의 말을 듣더니 펄쩍 뛰였다. 엄정독거를 시켜야 할 수감자를 밖으로 내보낸다는것은 천만번 위험하다는것이였다.

백근식은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교도소장의 벽돌색상판을 경멸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여보, 교무과장, 어리석은자는 항상 남을 가르쳐주기를 좋아하고 현명한자는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당신은 알고있소?》

교도소장은 어디서 얻어들은 유식한 말을 하면서 얼굴에 심술궂은 미소를 피우며 빈정거렸다.

순간 백근식의 이마에 퍼런 피줄이 일어났다. 신경이 돋을대로 돋고 속이 뒤집힐대로 뒤집힌 그는 저울추같은 주먹으로 살이 피둥피둥 진 교도소장의 면상을 후려갈기고싶었다.

《그럼 소장님은 한상수를 전향시킬 대상에서 제외시키잔 말인가요?》

《…》

《1010번은 축구에 대한 광신자입니다.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런던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지금 동료들에 대한 생각으로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그를 체육계로 끌고다닌다면 분명 심리상태에 변화가 일어날수 있습니다.》

백근식은 할수 없이 자세를 낮추고 교도소장을 설득시키느라 애썼다.

《그래서 서유럽감독이 개코망신을 당하고 달아났소?》

교도소장은 어림없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1010번은 선수생활까지는 못하겠지만 감독은 얼마든지 할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가 선수를 하는가 감독을 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체육에 대한 바람을 계속 불어넣어 보자는것입니다.》

《하여튼 상부에 문의하여 허락을 받은 다음 생각해봅시다.》

교도소장은 백근식의 제의를 이렇게 일축해버렸다. 그런데 《법무부》에서는 뜻밖에도 백근식의 의도대로 하라는 지령을 내려보냈다.

그리하여 백근식은 한상수의 이른바 《바깥세상구경》을 주도세밀하게 작전하게 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절커덕소리가 나더니 먹방문이 열리고 희끄무레한 빛발속에 교도관이 나타났다.

《한선생, 이젠 그만 주무시고 <집>으로 갑시다.》

한을손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느때는 승냥이처럼 날뛰던 놈이 오늘은 웬일인지 제법 살뜰하기까지 하다. 한상수는 한동안 영문을 알수 없었다. 리승만정권이 무너질 때는 마음 착하고 어진 간수였다는것을 보증서달라고 빌붙던 놈이 정권이 교체되고 정치범들에 대한 폭압이 강화되자 언제 그랬느냐는듯 싶게 누구보다 조폭스럽게 놀아대며 수감자들을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한상수에게만은 불손하게 놀지 못했다.

《자, 일어나요. 그래두 제 집이 낫지.》

한을손은 여전히 문턱에 서서 재촉을 한다.

한상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특별사동 9호방 자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을손은 감방문앞에 이르러서야 한상수의 손목에 찬 수정을 풀어주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선생, 오늘저녁은 꿈을 잘 꾸세요. 선생덕에 나두 좀 서울구경 해보게.》

한을손은 한쪽 눈을 찡긋해보이며 히히 웃었다.

8

8

 

이른 새벽, 우유빛택시 한대가 대구―서울간의 도로를 달리고있었다. 백근식이 한상수를 데리고 서울로 가는 길이였다. 운전사옆좌석에 백근식이 앉았고 뒤좌석에는 흰샤쯔를 입고 중머리를 감추느라 회색모자를 쓴 한상수와 그 좌우에 한을손과 다른 교도관이 붙어앉았다. 새벽바람이 한상수의 옷자락을 가볍게 희롱했다. 침울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여윈 모습은 아침노을빛에 젖어 마치 조각상처럼 엄숙하게 보였다.

한가위에 가까운 들판은 모든것이 누르러가고있었다. 농촌살림집들이 말잔등같은 부드러운 산밑에 널려있었다. 한 아낙네가 물지게를 지고 마을로 들어가는데 초롱에서 출렁거리는 물이 노을빛에 반짝거린다. 아침밥을 짓느라 마을앞 향나무박우물에서 길어가는 모양이다. 한상수는 부지중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새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송이들이 뭉게뭉게 떠있다. 그밑으로 넓지 않은 들판과 그의 변두리에 잇닿아있는 산발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한상수는 불현듯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마냥 꿈틀꿈틀 뒤채이는 들길을 발목이 시도록 걷고싶었다. 차는 더욱 속력을 내였다. 명상에 잠겨있을 권한이 없다는듯 차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고막을 진동한다.

한상수는 눈을 꾹 감았다.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자들이 도대체 무슨 흉계를 꾸미려고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가.

길가의 가로수들이 홱홱 지나친다. 택시가 몇시간 달렸을 때였다. 문득 시창앞에 흰색외장재를 바른 고층건물들이 비좁을 정도로 우뚝우뚝 서있는것이 보였다. 한상수가 관심을 품고 그것을 본다는것을 운전칸의 거울을 통해 알아본 백근식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이요. 한선생이 감옥에 있는 동안 세상은 몰라보게 변했소.》

한상수는 문득 가슴이 설레임을 느끼였다.

서울!… 그곳에는 집이 있고 안해가 있고 함께 뽈을 차던 친구들이 있다. 한상수의 심장은 세차게 뛰고 혈관마다에 더운 피가 굽이치며 흐르는듯 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무렵에 그들은 시내에 이르렀다. 따가운 불볕이 포장도로를 지글지글 지져댔다. 금시에 거리는 불도가니마냥 확확 달아올랐다. 전차들이 아침부터 헐떡거리며 달리고 거리를 메우는 사람들은 꼭 한증탕에 들어갔다 나온것처럼 땀을 뻘뻘 흘렸다.

택시는 종로 을지로를 지나 한동안 달리다가 동대문근방의 어느 한 아치문앞에서 멎어섰다. 차앞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것이 무슨 일이 있는것 같았다. 데모인가? 군중집회?…

《한선생, 내리오. 여기가 선생이 <비수>의 명성을 떨치던 서울경기장이요. 오늘 <한국>팀과 외국팀과의 경기가 있소. 구경이나 하고 갑시다.》

백근식이 차에서 먼저 내렸다.

한상수는 가슴이 서서히 뛰기 시작했다. 백근식의 말은 잠들었던 그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동료들이 저 경기장안에서 뽈을 찰것이다. 불시에 자기도 경기장에 들어가고싶었고 친구들이 보고싶었다. 발맞춰달리던 젊고 쟁쟁한 동료들도 이제는 퍼그나 늙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을것이다. 외국팀과의 경기를 한다니 더더욱 경기를 보고싶었다.

사람들은 경기장입구로 물결처럼 흘러들어가고있었다. 그는 망연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불현듯 49년도에 서울에 와서 미국팀과의 첫 경기를 하던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자석에 끌리듯 저도모르게 그쪽으로 한걸음 내짚다가 무엇에 찔리운듯 흠칫 놀랐다. 이 꼴로 친구들을 만나다니?… 철쇄에 묶인 몸으로 친구들을 만나고싶지 않았다.

《자, 한선생 들어갑시다.》

백근식이 한상수의 팔을 잡아 끌며 재촉했다.

《난 그만두겠소.》

한상수는 차겁게 거절했다.

《그만두다니?!… 어째서?…》

백근식은 뜻밖인듯 두눈을 크게 떴다.

《보고싶지 않소.》

한상수는 차있는쪽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백근식의 눈에 독기가 번뜩이였다. 한동안 한상수를 무섭게 쏘아보던 백근식은 할수 없었던지 《여기서 기다리라!》하고 교도관들에게 소리치고는 급히 경기장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에도 구경군들은 경기장으로 물밀듯 모여들었다.

얼마후 백근식이 나타나 운전사옆좌석에 앉으며 몹시 거치른 소리로 분부했다.

《창경원으로!》

택시는 인파속을 겨우 뚫고 거리에 나섰다. 답답하고 숨가빠지게 하는 거리였다. 잠간사이에 택시는 창경원의 홍화문앞에 이르렀다.

택시에서 내린 그들은 창경원으로 들어갔다. 단풍이 타는 때이지만 구경군들이 별로 없다보니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경기장에 쏠린 모양이였다.

백근식은 할일없는 건달군처럼 한상수를 끌고 련못가며 동물사를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속이 타는 모양인지 얼굴이 잔뜩 찌프러졌다.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피워댔다.

흥미가 없는 구경은 고통스러운 법이다. 하루종일 감방에 앉아있던 한상수는 맑은 공기를 마셔도 다리가 아파 서있지 못하겠다. 오히려 감옥이 그리울 정도이다.

백근식은 창경원에서 두어시간을 보내다가 모두 차에 오르라고 했다. 교도관들도 맹랑한 모양인지 저희들끼리 눈을 맞추며 비웃었다. 백근식이 노는 꼴이 어이없는 모양이다. 한상수는 묵묵히 그가 하자는대로 했다.

택시는 그들을 싣고 시내를 한바퀴 돈 다음 치과대학사이길로 한참 들어가서 단층집들이 빼곡이 들어찬 구역의 어느 한 기와집 대문앞에 멎어섰다. 수수한 기와집이지만 첫눈에 주인의 알뜰한 살림살이솜씨를 엿보게 하는 집이였다.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백근식이 대문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후에 대문이 열리며 주인이 나타났다. 한상수는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스프링바람인 박영진이가 아닌가.

《?…》

한상수가 한쪽에 선채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바라보고있는데 《박감독, 벌써 경기가 끝났소?》하고 백근식이 물었다.

《예, 방금 끝났지요. 끝나는 참으로 뛰여왔어요.》

《<비수>를 모시고왔네.》

백근식이 얼굴이 환해서 말했다. 그제야 박영진은 택시옆에 초연히 서있는 한상수를 알아보았다.

《한형!》

그는 황급히 다가왔다.

《한형, 이게 얼마만이요!》

박영진은 한상수의 갑삭한 몸을 부둥켜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새 잘 있었나?》

얼굴에 반가운 미소를 띄운 한상수는 박영진을 쳐다보았다.

《나야 잘 있었지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소.》

박영진은 또다시 뼈만 남은 한상수의 어깨를 쓸어만지였다.

《자, 얘기는 집안에 들어가서 하자구.》

그들의 상봉을 지켜보던 백근식은 사뭇 흡족한듯 이렇게 말하며 제 먼저 스스럼없이 대문안으로 들어갔다.

때늦게 한상수의 도착을 알게 된 박영진의 안해 인향이 부엌에서 급히 뜨락으로 나서는데 첫마디부터 울음머금은 소리다.

《은옥 아버지!…》

했으나 그 녀자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수건을 눈가에 가져갔다.

《철숙이 어머니, 진정하오. 내 죽지 않고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소.》

한상수가 오히려 인향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했다.

《고마와요, 은옥 아버지.》

인향은 손등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며 목이 메여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어디 갔소?》

한상수가 집안을 둘러보며 흔연스럽게 물었다.

《학교에 갔어요. 이런때 은옥 엄마가 있었으면…》

그 녀자는 또다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됐소. 괜히 실없는 소릴!…》

박영진이 제 처를 나무랐다. 한상수는 가슴이 쿡 찔리우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백근식이와 교도관들은 웃방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아래방에 박영진이와 한상수가 두손을 마주 잡은채 앉았다.

《얼마전에 교무과장한테서 상수형을 데리고 한번 오겠다는 말을 들었소.》

성미가 직통배기인 박영진은 터놓고 말을 했다. 알고보니 백근식은 박영진이와 오늘의 상봉을 위해 미리 선통을 한것이였다. 백근식의 속은 뻔했다. 외국팀과의 경기를 하는 서울경기장으로 끌고다니기도 하고 막역한 친구인 박영진과의 상봉을 통해 체육으로 하여 불붙는 한상수의 마음에 키질을 하여 어떻게 전향의 출로를 열어보려는 심산이였다. 속심은 어떻든지간에 한상수는 박영진을 다시 만나게 된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설사 박영진이가 백근식의 강요에 전향소리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며 만나보기 위한 위장에 불과한것이리라.

한상수는 불안스러울것도 두려울것도 없었다. 아니나다를가 속이 봄시내물처럼 맑고 깨끗하고 솔직한 박영진은 축구선수답게 씨원씨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과장씨가 오늘 한형을 데리고 구경을 오겠다고 하기에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겠소. 그런데 경기를 보지 않기를 차라리 잘했소.》

《왜?…》

《패했지요. 3 대 0으로…》

박영진은 쓸쓸히 중얼거렸다.

《거참, 안됐구만.》

《할수 없지요. 실력이 없는데 재간있소. 이런때 상수형같은 선수가 몇명 있었어도 오늘경기처럼 무참하게 지진 않았을거요.》

박영진은 제김에 결이 나서 말했다.

《이 사람아, 내가 있어도 마찬가지야.》

이번에는 한상수가 박영진을 위로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그렇지 않아도 아까 선수들속에서 하는 말이 상수형이 감옥에서 나왔으면 했지요.》

옆에서 듣고있던 백근식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자기의 뜻대로 척척 되여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한상수는 묵묵히 앉아 듣기만 했다.

이윽고 술상이 차려졌다.

《자, 내려들 오시오. 한잔하면서 이야기나 합시다.》

박영진은 사뭇 기쁘기만 한듯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 상에 마주 앉았다. 음식은 푸짐했다. 한상수를 위해 인향이 마음먹고 차린것이였다.

《한형, 한잔 드시오.》

박영진은 놋주전자의 술을 조그마한 사기잔에 따라 두손으로 받쳐들고 한상수에게 권했다.

《고맙네.》

한상수는 친구가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감옥에 들어온 이후 처음 마시게 되는 술이다.

《어서 드세요.》

인향이 한상수의 곁에 앉아 정겹게 권하는 말이였다. 한상수는 부부의 권고에 못이겨 천천히 마시였다. 순간에 배속이 찌르르해지며 머리가 뗑해졌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성미가 아니였다. 어찌다가 차례지면 한두잔 마시는것이 고작이였다. 축구의 왕자가 되려는 야심이 술과 담배를 의식적으로 피하도록 했다. 이제 와서 친구가 주는 술을 마시게 되니 지나간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눈굽이 저려왔다. 교도관들은 기다리고있은듯 상에 마주앉자 부어라 마셔라 했다.

백근식은 자기에게 차례지는 술잔을 매번 비우면서도 박영진에게 귀띔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박감독, 그래 이 한선생과 함께 뽈을 차고싶지 않소?》

《무슨 소릴 하슈. 난 하루에도 열두번이나 그 생각뿐이요.》

《그럼 박감독이 친구를 위해서 나서야 할게 아니요.》

백근식은 로골적으로 약속한 문제를 꺼내라는 암시를 했다.

《물론입지요. 그런데 한형 생각이 어떤지?… 한형, 오늘은 내 말좀 합시다. 그래 우리가 뭐가 모자라서 국제경기를 할 때마다 져야 한단 말이요. 가슴이 아프지 않소.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먹고 나와 함께 축구를 다시 하잔말이요.》

박영진은 한상수의 처사가 안타까운듯 한손으로 상을 두드렸다.

《…》

한상수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박영진의 마음이 리해되였다. 전 같으면 벌써 상을 뒤집어엎고 일어났을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일시적인 흥분때문에 일을 망치는 한상수가 아니였다. 하지만 박영진에게 이제는 아픈 말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체육활동에 나서면 <한국>팀이 이길상 싶은가?》

《난 그렇게 생각해요. 상수형만한 축구선수가 우리 조선은 물론 아시아땅에서도…》

《너무 과찬하지 말게. 자네가 똑똑히 알아야 할것은 나라가 통일되지 않고서는 체육에서 세계의 패권을 잡을수 없어. 명심해듣게. 우린 하나가 되여야 해. 하나가 되여야 체육에서도 세계를 뒤흔들수 있네. 그런데 자넨 언제까지나 이 명백한 진리를 리해못하고 뽈을 차고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정신을 차리라구!》

한상수의 목소리는 준절하게 울렸다. 그의 마음이 움직이는줄 알고 말을 받던 박영진은 그만 낯색이 거멓게 질려 고개를 푹 꺾었다.

한상수는 수저를 상우에 놓으며 백근식이 들으라는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난 이미 축구와 인연을 끊었소. 육체도 허락치 않고…》

《무슨 당치 않은 소리를 하오. 이제라도 한선생은 축구로 인생을 더욱 이채롭게 채색할수 있소.》

백근식은 펄쩍 뛰였다.

《교무과장, 오늘은 서울구경도 시켜주고 친구를 만나게 해주느라 수고했소. 그러나 다시는 이런 놀음을 하지 마오. 나는 노예로 살기보다는 신념을 지켜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요.》

한상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근식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여 한상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상우에 수저를 소리나게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그제야 박영진은 한상수와 헤여지게 된다는것을 직감하고 《한형!》하며 목메여 불렀다.

《영진이, 잘있게. 아픈 소리를 해서 안됐네.》

《내 한형의 말뜻 잊지 않겠소. 부디 몸조심하시오.》

《은옥 아버지!》

인향이가 마당으로 한상수를 따라오며 눈물겹게 불렀다.《철숙 어머니, 잘있소. 아이들을 잘 키우시오.》

한상수는 구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겠어요. 은옥 아버지, 일국이와 은옥이를 찾았어요.》

인향은 이 반가운 소식을 한시바삐 알려주려는듯 서둘러 말했다.《그렇소?!》

한상수는 금시 시름이 활 없어지는것 같았다. 그동안 옥야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랴.

《은옥 엄마와 함께 저두 대구에 한번 가겠어요.》

인향은 이렇게 말하면서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울고있는것이 분명했다. 한상수도 가슴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는 대문가에서 다시 박영진내외를 돌아보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차에 태우라!》

백근식이 먼저 택시에 오르며 성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교도관들이 뜨락에서 주춤거리는 한상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택시는 황급히 박영진의 집을 떠났다.

한상수는 흘러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박영진의 흙빛이 된 얼굴이 그냥 떠나지 않고 따라왔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픈 소리를 한 그의 마음도 편안치 않았다. 그러나 한상수는 박영진이 어느때이건 자기의 말을 리해하리라 믿었다.

백근식은 한상수의 《바깥세상구경》이 실패하자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매일밤 술에 얼근하게 취한 교도관들이 차례로 한상수를 고문했다. 교도관들은 그의 의지를 꺾으려고 세멘트담벽에다 머리를 사정없이 짓찧군 했다. 그때마다 한상수는 코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피를 교형리들의 상판에 내뱉으며 《이놈들아, 더 때리라!》하고 소리쳤다. 고문하던 놈들이 오히려 얼굴이 새하얘져서 전률하군 했다. 어떤 때는 한상수도 생명의 불을 꺼버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전향문에 손도장이 찍힐가 보아 겁이 났던것이다.

그런 치욕을 남길바에는 차라리 자결하는 편이 났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슴을 치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 다진 마음속맹세와 그이께서 안겨 주신 믿음에 대한 생각이였다. 그것은 죽음으로써도 저버릴수 없는것이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원쑤들과 싸우고있는 그이의 전사다!

한상수는 순간이나마 나약한 생각을 한 자신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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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세상을 흔들어놓는 사건과 사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사람들을 놀래우고 하많은 사연들을 품은 인간들의 다양한 생활이 벌어지는것과는 아랑곳없이 세월은 흘러 한상수가 감옥살이를 시작한지도 어언 12년이 지났다. 그 모진 감옥살이는 40대의 끌끌한 장년을 늙은이로 만들어놓았다. 빡빡깎은 머리에는 바늘같은 흰머리칼이 희끗희끗 보이고 손등과 얼굴에는 고문으로 생긴 상처자욱들이 로쇠에서 오는 반점처럼 진갈색을 띠고 나타났다.

요즈음은 놈들까지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저들스스로 즘즛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더 모질고 세찬 전향바람을 예고하는 징후이기도 했다.

한상수는 소지가 가져다주는 차입물을 받았다. 안해가 아니라 박영진이가 들여보낸것이였다. 차입물은 여름옷가지와 마른음식 몇가지였다. 얼마전에 안해가 면회와서 박영진이 런던경기에 갔다고 하더니 벌써 돌아온 모양이다.

차입품을 들여다보느라니 친구의 마음이 뜨겁게 안기여왔다.

그렇게 모진 말을 해주었음에도 박영진은 오늘까지 변함없이 한상수의 뒤를 봐주고있었다. 또한 이름있는 체육감독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감형 아니면 석방시켜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는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한상수자신은 아직도 그를 통일애국투쟁에 이끌어주지 못하고있으니 자책이 컸다.

확실히 자기는 박영진을 대함에 있어서 감정을 앞세웠고 도량이 크지 못했다.

《자, 철남이, 친구가 보내온 차입물일세. 오늘은 배꼽이 나오도록 먹어보자구.》

한상수는 빙그레 웃으며 오철남에게 권했다. 그도 배가 고픈지라 사양없이 다가앉았다. 그들에게서 차입물은 네것내것이 따로없었다. 변하기 쉬운 빵부터 먹었다. 세상에 인생을 알려거든 배고픈 고생을 해봐야 한다고 하더니 감옥에서 배고픔은 총알보다 더 무서웠다. 이 살인적인 기아를 그들은 견디여냈다. 서로 겪어온 가지가지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견디여냈고 그것마저 동이 나면 감방바닥에 그려놓은 꼬니판에다 밥알을 뭉그려서 굳힌 쪽을 가지고 꼬니를 두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한결 배고픔이 덜해졌다. 무엇인가 감방에서는 취미가 있어야 했다.

《선생님, 이게 뭡니까?》

오철남이가 먹던 빵을 내보였다. 한상수는 얼른 빵을 받아들고 헤쳐보았다. 빵속에서 차곡차곡 접은 종이가 나왔다. 한상수는 누가 보지 않는가 하여 시찰구로 다가가 복도를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종이장을 펼쳐보니 깨알같은 글이 씌여져있었다. 한상수는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박영진이가 써보낸 편지였다.

《선생님, 제가 감시할테니 어서 편지를 보십시오.》

오철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찰구로 다가갔다. 한상수는 서둘러 편지를 읽었다.

《…상수형, 오늘도 모진 옥고를 치르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이미 출소한 정창식군을 통하여 지옥같은 옥살이를 하면서도 조금도 꺾이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며 오히려 밖에 있는 저에 대하여 걱정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저와 철숙이 어머니는 깊은 자책속에 밤을 지새운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상수형, 저는 이번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가 진행되는 런던에 갔다왔습니다. 런던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상수형에게 경기소식도 알려줄겸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는 이북소식을 한시바삐 전하자고 이곳으로 달려왔으나 면회를 불허하기때문에 려관방에 앉아 이렇게 붓을 들었습니다.》

한상수는 가슴이 후둑 뛰였다. 그는 손에 편지를 든채 무릎걸음으로 뙤창쪽에 다가갔다.

《한형, 저는 이번에 런던에 가서 이북의 현우섭이를 만났댔습니다. 우리가 서울로 가기 위해 38˚선을 넘던 날, 부디 가지 말라고 만류하던 현우섭이… 이북의 축구감독이 된 그는 나의 손목을 잡고 놓을줄 몰라 하며 한형의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내가 그동안의 소식을 전하고 감옥에 있다고 하자 현우섭은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우리 비수가 누구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처럼 믿어주시는 축구선수인데…>라고 하면서 눈물이 그렁해있더군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전해주는것이였습니다.

몇해전에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사업을 알아보시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런 때 우리 공화국의 <비수>가 있었으면 단단히 한몫 할수 있겠는데 참 아쉽게 되였다고 못내 섭섭해하시며 광복된 새 조선에서 첫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한형을 참가시키던 일을 회고하셨답니다. 은옥 어머니로 하여 선수명단에서 제명됐던 일이며 축전에서 조국의 영예를 떨친 사실을 하나하나 추억하시던 그이께서는 그 동무가 참 걸작이였다고, 그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대동강물을 먹으며 자란 조선의 축구선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나서 그후에 남조선팀과 미국팀간의 경기가 있었는데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고 뽈차는 친구들과 애인을 공화국의 품으로 데리고 온다면서 38˚선을 넘어갔다고, 전쟁이 일어나자 손에 총을 잡고 원쑤격멸에 나선 불같은 열정을 가진 동무라고 하시면서 그동무야말로 북남유일팀의 첫 서막을 열어놓은 애국자라고 하셨답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철없이 헤덤비며 저지른 일을 애국적소행으로 평가해주시다니!…

한상수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 시각도 그이께서는 집떠난 자식을 잊지 않고 계신다!

뵙고싶었다. 그리운 그 품에 달려가 안기고싶었다. 언제 한번 잊어본적없는 자애로운 영상…

《수령님!》 한상수는 목메여 불렀다. 아, 내 죽어도 받아안은 이 사랑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눈물을 닦아낸 한상수는 다시 편지에 눈길을 박았다.

《상수형, 기뻐해주십시오. 이번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북의 축구가 <아시아축구의 혜성>으로 나타나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북팀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랄리아의 대표로 출전하여 세계8강자팀이 참가한 준준결승경기까지 올라가 이번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우승후보팀인 이딸리아와의 경기에서 1 대 0으로 이겼습니다. 지금 세계는 이북팀에 대한 경탄과 찬사로 들끓고있습니다. 우리 이남축구선수들도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여 지구상에서 청소하고 작은 나라라고 불리우던 공화국이 전쟁에서 미국을 이기고 체육에서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을 이룩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조선민족을 이끄는 위인의 령도가 있고 이북의 참다운 제도가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지 못하였다. 얼마나 바라던것이냐. 조선민족이 세상을 놀래울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더냐.

그는 주먹으로 눈굽을 닦고 다시 글줄을 더듬었다.

《…상수형, 현우섭은 또 말했습니다. <통일은 멀지 않았다. 우리는 비수가 조국의 아들답게 변함없이 싸우리라고 믿는다>하며 통일되는날 다시 만나자고, 그때 우리 <비수>와 함께 마음껏 뽈을 차자고, 통일이 될 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서…》

한상수는 또다시 마음이 격해져서 편지를 읽을수가 없었다.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인다. 그의 눈앞에는 현우섭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우섭이!》하고 친구의 이름을 목메여불렀다.

한상수는 박영진의 편지를 손에 쥔채 감방의 작은 뙤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그 하늘은 류달리 푸르청청했다. 저 하늘 멀리에 그리운 평양이 있고 그곳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신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불현듯 두고 온 생활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하루훈련을 끝내고 대동강반을 걸으며 전술을 토론하던 일, 그러다가도 옷을 활활 벗어던지고 대동강에 쩜벙 뛰여들어 떠들썩거리며 미역을 감던 일, 휴식일이나 명절때가 되면 모란봉잔디밭에 모여앉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세계축구의 패권을 잡자고 얼마나 열정에 넘쳐 호기를 부렸던가. 더우기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광복후 처음으로 축구 1등을 하고 조국에 무전을 치며 눈물을 흘리던 일이 어제런듯 삼삼히 떠오른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가운데서도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돌아온 축전참가자들을 환영하는 축하연회까지 마련해주시였었다. 아, 조국!… 그 품에 안겨살 때는 그 은혜로움, 그 귀중함을 다는 몰랐던 한상수였다. 돌이켜보면 광복후의 나날들은 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이 무르익던 황금시절이였으며 참다운 인민주권의 혜택을 공기처럼 받던 나날이였다. 때로는 투정질하는 자기를 엄하게 질책도 하고 따뜻이 안아 인생의 상상봉우에 올려세워주며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깨우쳐준 어머니조국, 그 은혜를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을수 있으며 단두대에 선들 그 믿음을 배신할수 있으랴.

한상수의 가슴속에는 이 순간 또다시 조국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는 철석같은 각오가 자리잡았다.

편지는 계속되였다.

《… 저는 요즈음 생각이 더욱 깊어집니다. 어떻게 되여 이북의 축구가 이렇게 높이 올라섰을가. 그것은 북의 정치가 좋기때문이라는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였습니다. 상수형의 말은 옳았습니다.

조선이 하나가 되여 김일성장군님의 정치를 받을 때만이 축구다운 축구도 할수 있고 사는 보람을 가질수 있다는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상수형이 자기의 청춘과 사랑과 명예를 버리고 한목숨 바쳐 싸우고있는가를…

지난날에는 제가 이 현실을 날카롭게 투시하지 못하고 행동좌표를 옳게 세우지 못한채 방황하였지만 지금은 한형이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길을 따라 갈것입니다. 내가 가다가 못가면 자식들이 끝까지 갈것입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주먹으로 감방문을 마구 두드렸다.

한을손이 뛰여와 무슨 란동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교도관 문 좀 열어주.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조선팀이 8강자가 되였단 말이요.》

《그랬으면 어쨌단 말이야.》

그제야 한을손은 영문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뇌까렸다.

《교도관, 당신두 기쁘지 않소.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딸리아를 이긴건 큰 사변이요. 이건 조선민족의 경사요. 이걸 다 알게 해야겠소. 어서 문을 좀 열어주!》

한상수는 체육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있는 돌부처같은 한을손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사정을 했다.

그러나 한을손은 막무가내였다.

《또 경치지 말고 진정하오. 그러다간 <탈옥미수죄>에 걸려요.》

한상수는 이놈과는 싱갱이질을 해야 필요없음을 깨달았다. 다른 수를 써야 했다.

《좋아, 그럼 날 교무과장에게 데려다 달라.》

《왜?…》

《할 말이 있다.》

《무슨 말?》

《그건 당신이 알바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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