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특별사 수감자들의 의지를 꺾으려고 조직했던 프로레스링경기는 뜻밖에 역효과를 가져왔다. 《법무부》에 올라갔다가 돌아온 형무소 소장은 이 사실을 늦게 알고 노발대발하며 백근식을 몰아댔다. 가뜩이나 정치범들에 대한 초보적인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안팎으로 소요가 잦은데 세상에 없는 간수와 수인간의 살인적인 경기를 조직했으니 이 책임을 누가 지겠느냐고 따지였다. 백근식은 소장의 질책에 찍소리 한마디 못했다. 더우기 한을손의 파면문제를 어떻게 하면 무난히 처리하겠는가가 골치거리였다. 아무리 후안무치하기로서니 경기에서 패한이상 시치미를 뗄수는 없었다. 모름지기 한을손을 내쫓아도 수감자들은 앞으로 더 큰 요구를 내댈것이다. 백근식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였다. 억대우같은 최간수가 페인한테 지다니!…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가 되지 않았다.
교도소장은 한을손을 잠시 잡범간수로 돌려놓았다가 수감자들의 감정이 사그러진 다음 구실을 붙여 다시 제자리에 갔다놓으라고 했다. 백근식은 데리고 놀던 계집한테 뺨을 맞은듯 하여 속이 알짝지근 했으나 소장의 명령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그무렵 한상수는 온몸이 무딘 칼로 째는듯이 쑤시고 고열이 나서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이따금 정신이 혼미해지고 육체가 부서져나가는듯한 아픔을 느끼였다. 간밤도 열에 떠서 헛소리를 치며 지새웠다. 아침에 감옥의 소지가 밥을 날라왔으나 일어날수도 없거니와 입안이 소태처럼 써서 작은 보리밥덩어리도 목구멍으로 넘길수 없었다. 어제 저녁에 가져온 밥도 그냥 감방바닥에서 뒹굴었다.
한나절이 지나서 새로 온 간수가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무관을 데리고 나타났다. 매양 이런 환자와 맞다들군 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얼굴이 갱핏하고 살이 없는 메마른 사람이였다.
그가 감방안에 들어오자 병원특유의 소독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는 한상수에게도 익숙된것이였다. 병원에서 돌아온 옥야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풍기군 했었다.
의무관은 정맥이 파랗게 보이는 하얀 손으로 청진기를 잡고 한상수의 몸을 한참동안 찬찬히 진찰하고나서 쇄골과 륵골 세개가 골절되였다고 했다. 그는 말없이 나갔다가 얼마후에 한뭉테기 붕대를 가지고와서 한상수의 상반신을 칭칭 결박했다. 뼈가 붙자면 한달정도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상수는 어이가 없었다.
간수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겠거니와 누구의 방조도 없이 한달을 누워있다는것은 죽으라는 소리와 같은것이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했다. 그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었다. 하루종일 누구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컴컴한 감방안에 혼자 누워있다는것은 그야말로 지독한 고문이였다.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이렇게 까딱 않고 누워있자니 미칠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고 견디여야 했다. 참지 못하면 죽어야하는것이다. 감방바닥에 누워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어려서 어머니가 삯빨래를 해준 부자집에 함께 가서 밥을 얻어먹던 일, 동무들과 대동강에서 미역을 감으며 강건너편 쪽으로 헤염치기내기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일어 빠져죽을번 하던 일, 코피가 터지게 얻어맞으면서도 권투와 유술을 배우던 일…
아주 어렸을 때 일이 더 생생히 기억된다.
한상수는 눈길을 들어 뙤창을 바라보았다. 작은 하늘에는 봄의 운무가 끼여있었다. 이따금 밖에서 랭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였다. 문득 파아란 물이 든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불려와 창가에 걸렸다. 한상수는 그 나무잎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바람에 불리여 어디론가 날아가다가 창턱에 내려앉았건만 그것이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보내준것같이 생각되였다. 봄이면 하얀 솜꽃을 눈보라처럼 날리던 버드나무들, 하많은 버드나무로부터 유래된 내 고향 류경! 대동강가에 있는 경상골 돌집뒤에도 버드나무가 있었다. 고향집울타리엔 노란 나리꽃이 얼마나 호함지게 피군 했던가. 지금도 어머니가 그 울타리안에 서서 이제나저제나 이 아들을 기다릴것만 같았다. 아마도 이제는 어머니의 검고 윤기도는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렸겠지.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만신창이 된 몸으로 감옥에 누워있는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실거야. 차라리 그게 낫지. 이 모양을 안다면 어머니는 가슴이 터지여 견디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 아들을 결코 탓하지만 않을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침착했고 강의했고 사려가 깊었다. 광복후에 어머니는 가루개장마당에 나가 지짐장사를 한적이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자기 키보다 더 큰 비자루를 들고 아침 일찌기 거리로 나가는것이였다. 지짐장사를 걷어치우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도로관리원》을 한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남보기 민망하여 하많은 일중에 그런 천한 청소부를 하겠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기식의 지론이 있었다.
《천한 일이라고 안한다면 누가 길을 관리하겠느냐. 일이 천한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어머니의 말에 한상수는 더 우기지 못했다.
한상수는 아버지의 얼굴도 생각났다. 학교목수노릇을 하던 아버지가 왜놈교장의 집을 수리하던중 룡마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집에 있을 때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의 얼굴을 익혔다. 아버지가 자기를 무릎우에 앉히고 찍은 사진이였다. 자기는 딸 은옥을 안고 사진한번 찍어보지 못했다. 그럴 사이가 없었다. 안해가 그 애를 몸에 가졌을 때 전선으로 나갔던것이다. 세월이 흘러 딸이 네살이 되였을 때 집에 나타났으나 그 애는 아버지를 보고 뒤걸음을 쳤다. 처음보는 사람이였던것이다. 은옥이와 겨우 친해놓자 이번에는 이렇게 철창속에 갇히게 되였다. 은옥이는 불행한 아버지를 둔 셈이였다. 안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상수는 안해를 기쁘게 해줄수 없었다 .행복한 가정생활만을 바라는 안해의 소원을 풀어주자면 투쟁을 포기해야 했다. 남편때문에 불안으로 가슴조여온 안해, 감옥에 찾아온 그에게 너무도 억이 막혀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주고 헤여진 일이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때없이 박우갑의 마지막말이 가슴에 마쳐왔다. 제 안해하나 동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무슨 민족의 단합을 운운한단 말인가. 이제 밝은 빛을 보게 되면 안해를 더 사랑하여주고 참다운 길로 이끌어 미더운 동지로 만들련만, 아, 내가 이 저주로운 철창밖으로, 안해에게로 돌아갈 날이 과연 언제일가?…
의무관이 감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의 상념은 깨여졌다. 그는 이따금 와서 처치를 해주군 했으나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항상 무엇인가 조심하며 경계하는 빛이였다. 하긴 어디가나 귀가 있고 눈이 있다는 세상이다.
한상수는 그를 여러번 만나는 과정에 그가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개인병원을 차려놓고 운영하는 사람인데 감옥의 의무관으로 촉탁되여 수인들을 치료해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뒤따라 들어온 백근식이 치료를 하고있는 의무관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의사선생.》
《환자의 몸에 륵막염이 왔습니다. 다친 다음 항생제를 쓰지 못한 탓이지요.》
《항생제?…》
백근식의 목소리는 힐난조로 울렸다. 그러나 인차 목소리를 누그려 관심을 표시하듯 물었다.
《그럼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위험합니까?》
《예. 벌써 륵막염의 징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페결핵으로 넘어갈것이고 종당에는…》
《죽는다!… 죽으면 안되지. 우리 <한국>은 사람생명을 귀중히 여깁니다. 수인의 경우에도 례외가 아니구요. 더우기 정치범의 생명은 더 중하지요.》
사실 백근식은 한상수와 최간수를 경기장에 내보낼 때 둘중에 누가 이기고 지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한상수네에게 공포감과 육체적고통을 주면 그만이다. 최간수는 내장이 파렬되여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살아도 사람구실을 할것 같지 못하다고 한다. 그까짓 죽으면 어떻고 종신불구자가 되면 어떻단말인가. 그러나 한상수는 사정이 다르다. 그를 그냥 죽게 해서는 안된다. 한상수의 운명이자 자기 백근식의 운명인것이다. 한상수를 전향시키는 날이 자기가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다. 그러니 자기와 한상수는 하나의 줄에 매여있는 셈인것이다. 인간관계란 참 기기묘묘한것이다. 백근식은 한상수도 인간인 이상 자기의 생명을 놓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고 타산했다. 전향서에 도장을 누르고 병을 고치겠는가, 아니면 감옥에서 페결핵으로 신음하다가 죽겠는가, 한상수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그는 살길을 택할것이다.
그러니 한상수와 최간수와의 《프로경기》는 백근식에게 희망을 준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고문없이 수감자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키는 희세의 고문인것이다. 백근식은 먼 후날 력사가들은 이것을 놓치지 말고 기록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늘 저녁에 《사꾸라꽃》음식점에 가서 탄력이 넘쳐나는 젊은 주인녀자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주무를 생각을 하니 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러면 선생, 곧 병원으로 후송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의무관은 기계적으로 붕대를 다시 감고나서 후송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눈을 감은채로 의무관이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아무말이 없던 한상수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의사선생, 고맙소. 그러나 난 병원에 갈 생각이 없소. 사람은 아무때고 한번은 죽기마련인데 페결핵으로 죽든 고문을 받다가 죽든 매한가지요.》
《그건 너무 지나친 허무주의야. 물론 인간이란 어느때고 한번은 그 길로 가는건 사실이지. 그건 자연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누구나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오래 살기를 원하고 호의호식하기를 바라는게 아닌가.》
백근식이 훈시조로 참견을 했다. 의무관은 자기가 말할 장소가 아니라는듯 덤덤히 앉아있었다.
《그거야 당신같은 사람들의 인생관이지 우린 그렇지 않소. 한순간을 살아도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싸우다 죽는것이요.》
한상수는 자기자신에게 하듯 힘주어 말했다. 의무관은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버렸다. 듣기가 거북했던것이다.
《자네 신경이 지내 예민해진것 같군. 난 그래두 자네를 생각해서 한 말인데. 정 싫다면 그만두게. 하지만 자네가 이 감옥에서 죽으면 법무부 차장님께서도 대노할걸세. 자넨 차장님의 친구인 서무진박사의 유일무이한 사위가 아닌가.》
《그래서 어쨌단말이요?》
한상수는 병주고 약주는 백근식이 노는 꼴이 가소로왔다.
《차장님께서는 자네를 전향시켜 석방하고 그전처럼 뽈을 차도록 하라는것이지.》
《만약 전향을 안한다면?…》
《이 감옥에서 죽어야 해.》
《그럼 할수 없군. 죽는수밖에…》
백근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쳤다. 뭐 죽고싶다고?!… 백근식은 한상수의 뺨을 후려치고싶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비수>다운 결단성이군. 그러나 아직은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게 좋아. 실은 죽고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고싶어도 살지 못하는게 자네 처지야. 고집부리지 말게.》
한상수는 침묵을 지켰다.
《그건 그렇고. 자네의 별명이 <비수>라고 했지?》
백근식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우고 왕청같은 질문을 했다.
《몰라서 묻소?》
《그 별명의 유래에 대하여 말해줄수 없겠나?》
《꼭 알고싶소?》
《물론.》
《나의 별명이…》 한상수는 저력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수>라고 하는것은 칼 <비>자에 머리 <수>자를 쓰는데 우리 동지들은 미국놈들을 할애비처럼 섬기고 통일을 반대하는자들의 목을 단칼에 요정내라고 이런 별명을 달아주었소.》
《허허… 자네의 비수야말로 독기를 뿜는 무서운 칼이구만.》
《자신을 지키고 악을 물리치는 칼이지.》
그랬었다.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의 돌단검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조선의 비파형청동단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날의 총창과 대포, 비행기와 땅크들은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남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생겨났다. 물론 이 모든 무기들이 누구의 손에 쥐여지는가에 따라 선에도 복무할수 있고 악에도 복무하는것이다. 악한들의 손에 쥐여지면 남을 억누르고 지배하는데 리용될것이고 선한 사람들이 차지하면 선을 지키는 보검으로 될것이다.
《내가 알건대 자네별명은 그런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보는데. 자네는 혹시 내가 <태백>의 재정감독으로 있었다는걸 망각한게 아닌가?》
《천만에. 당신이 이 감옥에 숨어있는줄을 미처 몰랐을뿐이지.》
《놀랍다는거겠지. 나는 생각할수록 당신이 놀랍네. 자네야 뽈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였지. 사랑에 열렬하고 우정에 성실하고… 그런데 어떻게 되여 그 유명한 축구선수 <비수>가 <빨갱이>의 <비수>로 되였는가.…》
백근식은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 《비수》라는 별명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 한때 축구애호가인 함흥의 최명학이란 의학박사가 해마다 일본도꾜에서 진행하는 《명치신궁대회》에 조선팀을 참가시키기 위한 야심을 가지고 청진의 《기계다리》라고 불리우는 허죽산에게 조선에서 이름있는 축구선수들을 모집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그무렵 평양에 중학교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축구선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허죽산이 한상수를 찾아왔다. 그들은 상봉을 기념하여 한잔 하려고 음식점으로 가고있었다. 어느 학교옆을 지날 때였다. 운동장에서 찬 뽈이 담장을 넘어와 발앞으로 굴러왔다. 뽈을 멈추어 세워놓고 그들은 가던 길을 걸어갔다. 학교체육선생이 운동장에서 담장밖을 내다보며 그 뽈을 차달라고 소리쳤다. 두사람은 모르는척 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학교선생은 별 야박한 사람이 다 있다고 투덜거렸다. 한상수는 걸음을 멈추고 정말 뽈을 차달라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뽈을 차달라는데 무슨 여러말이 많은가고 하였다. 한상수는 할수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학교운동장을 향해 슬쩍 찼는데 그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뽈이 터져서 날아갔다. 학교선생은 한상수의 범상치 않은 솜씨에 놀라 허둥지둥 달려나와 인사를 하며 선생님들을 몰라보고 무엄하게 행동했으니 용서하여달라고 하면서 잠간 운동장에 들어가 학생들의 축구련습을 보아줄것을 부탁했다. 《기계다리》가 한상수의 능력도 시험해볼겸 학생들을 좀 가르쳐주고 가자고 했다. 그들은 선생을 따라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학교선생은 학생들에게 11m벌차기훈련을 시키던중이였다. 한상수는 학생들에게 벌차기묘술에 대하여 몇가지 설명을 한 다음 시범동작을 하려고 문지기를 비키라고 했다. 모두 의아해하자 한상수는 문지기가 뽈을 잡다가 사고가 날수 있다고 하면서 기어이 물러서라고 했다. 한상수가 찬 뽈은 총알처럼 날아가 그물을 째고 멀리 사라졌다.
학생들은 한상수의 벌차기솜씨를 보고 경탄의 웨침을 터뜨렸다.
《과시 자네의 발끝은 비수와 한가지군.》
허죽산은 한상수의 어깨를 툭 치며 감탄했다.
이때부터 그는 《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날아가는 비수처럼 속도가 빨랐고 발끝타격이 비수와 같이 강했다.…
백근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새삼스럽게 자네의 별명을 상기시키는가 하면 자네는 어디까지나 축구선수라는걸세. 축구계에서 활약을 해야 <비수>로서의 명성을 떨치지 그렇지 않으면 손칼보다 못해.》
《난 이젠 축구의 <비수>노릇하기는 틀렸소. 그러나 민족의 통일을 위한 <비수>로는 여전할것이요.》
한상수는 고개를 돌려 아까보던 철창가의 그 파란 잎사귀에 눈길을 주었다. 그의 눈은 평온한 빛이 어려있어 마치 그 어떤 명상에 잠겨있는듯했다.
백근식은 자기의 말이 소귀에 경읽듯 했음을 느끼자 당장 씹어삼키고싶도록 부아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면 이놈을 길들이겠는가!…)
2
감방안은 한낮에도 컴컴했다. 밖의 날씨가 흐렸는지 개였는지 낮이 가고 밤이 오는지 도대체 가늠할수가 없었다. 다만 감옥담장밖의 소소리높은 상수리만 보이는 미루나무가지에서 새들이 우짖어서야 아침이 온것을 알수 있었다. 감방벽이 눅눅해지며 곰팽이가 끼는것을 보니 장마철이 오는것 같다.
정창식이가 출소한 다음부터 놈들은 한상수가 있는 방에 수감자를 더 넣지 않았다. 아예 독방에서 제김에 말려죽게 하려는 심산같았다. 하긴 하루종일 혼자 있느라면 정창식이나 박우갑이와 함께 있었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군 했다. 지금쯤 창식이가 박영진을 만났을가. 모름지기 창식이는 박영진보다 옥야를 더 먼저 만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5년옥살이에 든 골 병으 로 지금 병상에 누워있 을수도 있다. 왜 그런지 오늘따라 정창식이가 더 보고싶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인지 옆구리가 더 쏜다. 붕대는 한달만에 풀었는데 목숨이 질긴탓인지 다행히 페결핵은 온것 같지 않았다. 다만 한쪽팔이 경직이 와서 아예 쓸수가 없었다. 온천치료가 효과적이라는데 그것은 꿈에서나 생각할 일이다. 옆구리가 심하게 쏠 때에는 식구통으로 던져주는 보리밥덩어리도 먹을수 없었는데 요즈음은 부상당한 몸이 좀 차도가 생겨서인지 배가 고파 헐헐 했다. 배고픔이 총알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옳은것 같다. 이따금 옥야가 령치금이나 차입물을 들여보내여 허기를 면하군 했다. 모름지기 가산을 팔아서 들여보낼것이다. 한상수는 그것을 받을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혼자서 살아가기도 힘들터인데 남편 옥바라지까지 하느라니 얼마나 고달플텐가. 그러나 아직은 친정집에서 방조를 받는다고 했다. 다행이였다.
옥야는 한동안 감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 면회와서 두번째아이가 태여날것 같다고 했는데 혹시 해산때문인지 모른다. 안해는 그 이야기를 고개를 떨구고 간신히 한마디 했다. 안해는 외모와 마음도 변했다. 이제는 홍조가 곱게 피던 부드러운 뺨도 퇴색해버렸다. 다만 변함없는것은 속눈섭이 긴 영채도는 눈이였는데 그것마저 남편에 대한 죄의식으로 흐려있었다. 두번째면회를 왔을 때 울기만 하는 안해에게 다른 생각말고 아이를 잘 키워달라고 했었다. 그것은 용서였다. 했으나 안해는 그 죄의식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옥야는 결코 그것을 쉽게 털어버릴 녀자가 아니였다. 그만큼 그는 속이 깨끗한 녀자였다. 만약 옥야가 그 일을 빨리 잊어버린다면 한상수는 무척 섭섭해하였을지도 모른다. 옥야가 제스스로 형벌을 받는 마음이니 한상수는 안해를 더 깊이 리해하는것이다.
(여보, 저질러진 일을 어찌겠소. 기운을 내야 하오. 넘어져서는 안되오. 꿋꿋이 일어나서 나를 대신하여 통일을 위한 시대의 격류에 합류해야 하오.)
연약한 옥야가 어찌 그럴수 있으랴만 한상수는 마음속으로나마 이렇게 호소했다.
어느날 면회시간이였다. 간수가 열쇠묶음을 절렁거리며 감방문을 열고 《면회》하고 소리쳤다.
누가 왔을가? 정창식이?… 아니면 옥야가?…
여러사람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누가 왔소?》
한상수가 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보면 알게 아니야.》
간수는 곱지 않게 소리쳤다.
한상수는 할수 없이 한손으로 감방벽을 짚고 일어나 옆구리에 손을 댄채 기우뚱거리며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발을 옮겨짚을 때마다 어깨와 옆구리가 떨어져나가는것 같다.
유리로 간벽을 댄 면회실에 들어서니 박영진이 와있었다. 반가왔다. 박영진은 한상수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면회실에 들어설 때까지 멍청히 쳐다보기만 했다. 이윽고 한상수를 알아본 박영진은 유리문앞으로 급히 다가서며 《상수형!》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글썽하여 유리간막이아래 말이 통하도록 열려진 곳으로 손을 넣어 뼈만 남은 한상수의 손을 거머쥐였다.
《잘 있었나?》
한상수가 먼저 얼굴에 미소를 담고 물었다.
《우리야 잘 있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못쓰게 됐소?》
박영진은 한상수의 손을 쓸어만지며 목이 메여했다.
《인향씨랑 철숙이도 건강하나?》
《예, 다 잘 있소.》
박영진이 손수건을 꺼내여 끝내 눈굽을 닦았다.
그는 정창식이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정창식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상수형, 그동안 나때문에 섭섭한것이 많겠는데 용서해주!》
박영진의 얼굴에 자책의 빛이 진하게 어려있었다.
《이러지 말게. 이제부터는 안해도 더 사랑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라구.》
한상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가족이 아닌 사람은 면회를 할수 없다는걸 형님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더니!…》
박영진은 무엇때문인지 얼굴을 붉혔다.
《무슨 말이요. 어서 말하게. 나도 자네를 보고싶었네.》
한상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재촉했다.
《상수형, 이 못난놈을 생각해서라도 은옥 어머니를 용서해주. 사실 은옥 어머닌 상수형을 살리려고 본의아니게 아버지친구에게 부탁한것이 그만…》
《원 사람두, 그 문젠 걱정말게. 마음을 알면 되는거지 다른게 없네.》
한상수는 너그럽게 말했다. 이미 용서도 했고 리해를 하였는데 이제 새삼스럽게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박영진의 등뒤에서 녀자의 흐느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제야 옥야도 함께 왔음을 알았다. 등에는 아기가 업혀있었다.
《당신이 왔구려.》
한상수의 눈길이 아이에게 닿았다. 얼굴이 동싯한 아기는 고개를 어머니의 잔등에 묻고 쌔근쌔근 자고있었다. 이 애가 바로 내 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한상수는 문득 가슴이 설레였다. 은옥이를 처음 보았을 때 자기가 아버지가 되였다는 기쁨으로 마음이 출렁거렸는데 둘째를 보니 또다시 그런 감정이 되살아났다.
옥야는 그제야 생각난듯 말없이 등에 업은 아이를 풀어 면회탁우에 앉혀놓았다. 잠들었던 아이는 어느새 깨여났는지 머루알같은 까만 눈알을 굴리며 울지도 않고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자기 아버지라는것을 알기나 하는것처럼 두손을 뻗치며 한상수에게 가겠다고 엉덩짝을 들었다놓았다 했다. 순간 한상수는 눈굽이 저릿해졌다. 이 애도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쁨보다도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사내요, 처녀애요? 이름이 뭐요?》
한상수는 두서없이 물었다. 옥야는 그 경황에도 눈물고인 눈에 모성의 기쁨을 미소로 피워보였다.
《사내자식이요.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달라구 데리고 왔소.》
박영진이 얼른 알려주었다. 한상수는 떡돌같은 아이를 안아보고싶었다. 옥야가 급히 아이를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간막이가 있어서 안아볼수가 없었다. 한상수는 간막이아래로 손을 내밀어 어린것의 애리고 토실토실한 손을 잡아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제 애비에게 안기겠다고 손을 뻗치며 해쭉해쭉 웃었다. 그럴 때마다 차돌같은 앞이가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한상수는 아까부터 아이의 이름을 생각했다. 뜻이 깊게 지어야지. 이 감옥안에서 아버지가 너에게 줄수 있는것은 이름뿐이로구나.
한상수는 아이의 얼굴에 정어린 눈길을 박고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여보, 아이의 이름을 지읍시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된 조국에서 살기를 바래서 일국이라고 말이요. 한일국! 어떻소?》
《그것 참 멋있는 이름이요.》
박영진이 곁에서 큰소리로 찬성을 했다. 옥야도 무척 기쁜듯 새뭇이 웃었다.
한상수는 안해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이제는 두 아이의 어머니요. 아이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바라오. 진심이요.》
옥야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애절한 빛이 어려있었다.
《한형!》 박영진의 얼굴에 심중한 표정이 깃들었다.
《뽈차는 사람이 뭐 에둘러 말할게 있소. 사실 내가 오늘 찾아온것은 한형에게 권고하자고 왔소. 그까짓 손도장 하나 눌러주고 나와 함께 뽈이나 찹시다. 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박영진은 안타까운 얼굴로 한상수를 바라보다가 서늘한 눈길과 마주치자 말을 중도에서 끊고 말았다. 불시에 한상수의 가슴에는 련민의 정이 솟구치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친구가 불쌍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영진이, 자네 말대루 그렇게 하면야 이 고생을 하지 않지. 그러나 난 그렇게 할수 없는 사람이야. 다시는 나에게 그런 소릴랑 하지 말게. 누구나 자네처럼 팔짱을 끼고 관망하며 제 볼장만 본다면 통일은 언제 되겠나.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우리 체육인들이 앞장에 서서 통일을 위해 싸워야 할게 아닌가. 그래서 내 스스로 이 길을 택한것일세.》
《글쎄 한형의 뜻을 내 모르는바 아니요. 난 한형의 처지가 안타깝고 기술이 아까와서 그러오.》
박영진이 얼굴이 시뻘겋게 되여 격해서 말했다.
《허허… 정말 이러지 말게. 통일이 되여야 나라의 재사도 빛을 볼수 있고 민족체육도 발전할수 있네. 그리고 우리모두가 사람답게 살자고 해도 통일이 되여야 해. 자네야 식민지민족의 설음과 수치를 겪어본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자네도 통일을 위한 길에…》
《면회 그만!》
면회담당간수가 꽥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한상수의 말은 중둥무이되고말았다.
《여보!》
박영진의 뒤에 서있던 옥야가 아이를 안고 어푸러질듯이 다가왔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여보, 일국이 아버지,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철숙이 아버지 말씀만은 제발 들어주세요.》
담당간수는 박영진과 옥야를 면회실에서 내보냈다. 한상수는 뿌리가 내린듯 서있었다. 눈부신 해빛이 면회실 창문으로 흘러들었다. 뽀얀 먼지를 들쓴 면회탁우에 조가비만한 두개의 흔적이 선명히 찍혀있었다. 그것은 아들의 발자국이였다. 그 발자국을 보는 순간 한상수는 눈물이 쿡 솟구쳤다.
감방에 돌아온 한상수는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남녘땅의 모든 체육인들이 박영진이와 같이 된다면 조국통일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날 이때껏 하나의 조국을 위해 동분서주하였건만 내가 왜 영진이를 친구로만 대해왔던가. 통일은 사람의 마음에서 먼저 오는것이 아닌가. 아 박영진이,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
한상수는 박영진이로 하여 받은 마음의 상처로 가슴이 에이는듯 아팠다.
3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가부다 했더니 인차 추위가 닥쳐왔다. 겨울은 감옥에부터 먼저 찾아오는 법이다. 그 사이에 파면되였는가 하고 생각했던 한을손이 면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특별사에 나타났다. 제 말로는 몇달동안 서울에 올라가 닥달질을 받았다고는 했지만 그 말의 진실성여부는 알수 없었다. 어쨌든 한을손은 수감자들에게 전처럼 기승을 부리지 못했다.
추위를 막느라고 수인들자체로 비닐쪼박을 댄 감방의 뙤창이 부르르 떨었다. 금시에 찬바람이 뼈속에 스며들었다. 밖에서 눈보라가 이는가부다. 여전히 비닐박막을 때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겨울은 수감자들에게 있어서 어느 계절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기이다. 간수들은 저들이 요구하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리유로 살점을 뜯어내는 혹한속에 알몸으로 세면장에 앉히고는 찬물을 쏟아붓고 구두발로 걷어차면서 희롱하는것을 하나의 오락으로 여긴다. 식구통으로 던져주는 보리밥덩어리는 얼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있고 손발은 물론 뺨이나 귀에 얼음이 박혀 빨갛게 부풀고 터져서 피가 배여나온다.
그러나 한상수는 생을 위한 결사적인 투쟁을 어느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온몸을 맨손으로 문질러 피부를 단련시키고 혈맥을 통하게 하는 운동은 물론 체조를 하거나 감방안을 수십바퀴도는 운동을 매일 하군 했다. 그러느라면 엄혹한 겨울은 물러가고 봄이 온다. 봄은 역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절이다.
한상수는 감방안에 박우갑이가 놓고간 포대기를 덮고 누워서 그윽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이맘때면 뽀얀 운무가 서린 대동강에서 쩡쩡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리고 모란봉의 경상골에는 노란 나리가 제일먼저 아기입술을 벌린다. 그다음 경쟁이라도 하듯 진달래, 철쭉꽃, 살구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여나고…
그러나 여기 감방안의 봄은 아직 멀리에 있다. 감방천정에서는 허연 성에가 푸실푸실 떨어지고 뙤창에서는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한상수는 박우갑이가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벗어주고간 내의를 벗을 념을 못한다.
그러나 계절은 속일수 없었다. 운동시간에 감옥뜨락에 나가면 어디선가 봄의 훈향이 15척담장을 넘어 흘러든다. 어떤 때는 따뜻한 해볕이 호듯호듯 내려쪼여 졸음을 청하기도 한다. 아, 봄은 이렇게도 좋은것인가!… 언젠가 한상수는 운동시간에 감옥뜨락에 나갔다가 변두리에 파란 풀이 돋아난것을 보았다. 한상수는 그것이 신기스럽게 보였다. 엄혹한 겨울에도 죽지 않고 수감자들이 운동을 하느라고 밟은 딴딴한 땅속에서 봄풀싹이 솟구친것이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록색주단같은 풀우에 맨 발을 벗고 올라섰다. 싱싱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체내에 홀러든다. 그것은 억센 생명력이였다. 그 어떤 광란앞에서도 굽힐줄 모르는 불굴의 상징인듯싶어 한상수의 마음은 후더워났다.
그 봄에, 한상수가 감옥에 들어온지 여섯해가 되는 그 봄에 감옥밖에서는 뜻밖의 사변이 일어났다. 무엇때문인지 간수들은 얼마전부터 수감자들에 대하여 악착스럽게 학대하지 않았다. 어느날엔가는 담장밖에서 함성이 터지고 뒤이어 총소리가 몰방으로 울렸다. 감방안은 삽시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간수들은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 황급히 뛰여다녔다. 감옥문밖에 모래가마니가 쌓여지고 철조망이 늘어졌다. 간수들이 총을 들고 살벌하게 돌아치며 교대로 보초를 섰다. 밖에서는 여전히 함성소리가 울려왔다. 웬일인가? 어떤 정세가 도래했는가?…
한상수는 궁금하여 옆방에 있는 김성교한테 통방을 보냈다. 그에게서 놀라운 답전이 왔다. 밖에서 리승만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전국민적인 봉기가 일어났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세찬 격동에 휩싸였다. 자기도 달려나가 그들과 합세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감옥안은 들끓었다. 쉴새없이 통방이 날아가고 날아왔다. 봉기군들의 함성소리는 점점 더 높아갔다.
운동시간이 되자 뜨락에 나온 수감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김성교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는 흥분하여 정세추이에 대하여 간단히 말했다. 봉기는 4월 19일 마산에서부터 시작되였는데 지금 서울, 대구, 광주, 청주 등 온 남녘땅에 번져가고있다고 했다.
한상수는 운동시간이 끝나자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흥분으로 하여 온몸이 둥둥 뜨는것만 같았다. 과연 리승만통치를 뒤집어엎을수 있겠는지… 그것이 초조케 했다. 만약 리승만《정권》이 거꾸러지면 통일은 곧 실현될것이다. 나라도 민주화가 될것이고…
감방문에 자물쇠를 채우려던 한을손이 웬일인지 슬그머니 철문턱에 걸터앉았다.
《한선생!》 이윽고 한을손이 약간 어색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오?》
했으나 한을손은 한동안 우물쭈물하더니 주위를 돌아보며 조용히 물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
한상수는 그제야 이자의 심중을 짐작할수 있었다. 요즘 한을손은 마음이 몹시 복잡한 모양이다.
《어떻게 되다니. 악질간수들이야 인민의 심판을 받게 되지.》
한상수는 속이 뜨끔하라고 시침을 따고 침을 놓았다. 한을손은 금시 풀이 죽어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거야. 나같애도 그냥 둬두지 않을테니까. 인간이라면 누구한테나 복수심이 있으니까…》
《옳게 말했소.》
《그런데…》 한을손이 주저주저하며 또 입을 열었다.
《극악한 반공두목인 김구선생도 북에서는 용서해주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요. 하지만 간수들이야 김구선생하고는 대비도 안되지.》
한상수는 한을손을 바싹 조이였다. 한을손은 얼굴이 점점 까맣게 질려 대꾸를 못했다.
《하지만…》하고 한상수는 조이던 올가미를 약간 늦추었다.
《이제부터라도 통일을 위해 도우면 과거를 묻지 않을수 있소. 그러나 못되게 놀면 언제든지 인민의 심판을 면치 못해.》
《고맙소. 한선생, 진정으로 말해줘서…》
한을손의 얼굴은 약간 어두운 빛이 가셔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좌우를 살펴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한선생, 우리 같은 종씨로서 서로 도와주는게 어때? 내 한형한테는 모든걸 눈감아줄테니까.》
《나역시 찬성이요. 그러나 나한테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소. 모든 수감자들에게 나와 꼭같이 대해주는 조건에서 앞으로 고려하겠소.》
한상수는 아예 오금을 박았다.
《하여튼 한형, 세상이 바꾸어지면 마음착하고 어진 간수였다는것을 보증서달라구요.》
한을손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빌붙었다. 자기의 운명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놀아대는 이자의 꼴이 역겨웠으나 한상수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당장 세상이 뒤집어지는것 같았다. 포악하던 간수들도 주눅이 들고 식사질도 좀 나아졌다. 운동시간도 늘어났다. 면회시간을 제멋대로 단축시키거나 차입품을 가로채는것도 없어졌다. 수감자들은 당장 출소라도 되는듯 환희와 기쁨에 휩싸였다. 독방에 갇혀있던 정치범들이 서로 다른 방으로 가서 정세이야기도 하고 밖에서 들여온 신문도 돌려가며 읽었다.
드디여 리승만독재정권은 타도되였다. 정치범들은 격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될 날도 멀지 않은듯 싶었다. 인민의 힘은 무서운것이다.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한상수도 면도를 말끔히 하고 하루하루 감옥문이 열릴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쁨은 때이른것이였다. 허정내각, 장면내각을 거쳐 5. 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더니 남조선전역은 리승만독재정권시기보다 더 무서운 감옥으로 전변되였다. 《국가보안법》, 《반공법》의 시퍼런 칼날이 사람들의 머리우에 군림했다. 놈들은 조금이라도 저들의 비위에 거슬릴 때에는 무자비하게 칼날을 휘둘러대군 했다. 형무소는 교도소로 바꿔지고 간수는 교도관으로 이름이 변했다. 정치범들의 전향을 전문으로 맡아보는 교무과가 생기고 교무과장이 그 우두머리로 되였다. 4. 19봉기로 하여 잠시 기가 죽었던 백근식은 교무과장이 되여 그 어느때보다도 전향바람을 세차게 일으켰다.
어느날 복도한끝에서 삐이걱 하는 감방문닫기는 소리가 온 사동을 뒤흔들었다. 그 다음 소지가 척 늘어진 수감자 한명을 업고 한상수의 감방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불빛이 희미해서 누군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누군가 또 고문을 당한 모양이다.
(누굴가? 어느 동지일가?)
이때 옆방에서 통방이 날아왔다. 통방내용은 비통한것이였다. 방금 고문을 받고 들어온 《1029번》수감자가 감방안에서 자결을 했다는것이였다. 또다시 고문을 받다가 자기도 모르게 전향문에 손도장을 누를가봐 옆방의 동지들에게 자기는 죽음을 택하였다는 통방을 간신히 날리고 세멘트벽에 머리를 짓쫏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상수의 눈에서는 비분의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1029번으로 불리우던 사람은 키가 크고 안경을 낀 언제나 조용한 사람이였다. 북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사업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달려나와 용감하게 싸운 지식인이였다. 후퇴도중 어쩔수 없이 체포된 그는 10여년간 갖은 악행을 당하면서도 전향하지 않고 굳세게 신념을 지켜온 투사였다. 그랬던 그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스스로 목숨을 끊은것이였다. 그의 자결은 비겁성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으로 신념을 지킨 고결한 최후인것이다. 옆방에서 다시 통방이 날아왔다. 한상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통방의 내용을 한자한자 가슴에 새기였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어도 혁명정신 살아있다
빨찌산추도가였다. 박우갑이가 사형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날에도 동지들은 울면서 이 노래를 온 사동에 통방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투지를 가다듬었고 복수를 맹세했다. 자기도 한을손이와 같은 악질간수들, 백근식이와 같은 인간교형리들을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것이라는 결심을 다졌었다.
《1010번, 잠 안자고 뭘해?》
대전교도소에서 전근해왔다고 하는 직일교도관이 사담당교도관 한을손이와 함께 감방을 순찰하다가 시찰구에 눈알을 들이대며 시비를 걸었다.
한상수는 돌아앉은채 아무런 대꾸도 안했다.
《야 1010번, 내 말이 말같지 않아. 왜 대답이 없어?》
직일교도관이 트집을 잡았다.
한상수는 더 참지 못하고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시돋힌 목소리로 쏘아부쳤다.
《잠을 자고 안자는건 내 자유요. 그런 자유까지 침해하는게 교도관인가?》
《뭐뭐, 뭐라구?… 자유? 이 새끼가 자유의 맛이 얼마나 값비싼것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직일교도관이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그러나 한을손은 모르는척 하고 복도입구쪽으로 걸어갔다.
《여, 한교도관. 빨리 열쇠 좀 가져와. 이 새끼를 아예 죽여버리겠어.》하고 그자는 기광이 나서 더욱 날쳤다.
한상수는 얼굴에 싸늘한 빛을 띠우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만약 감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매에 거꾸러뜨릴 잡도리를 했다. 이밤 또 한명의 동지를 잃은 그는 복수심에 불탔다. 너 죽고 나 죽고 할 판이다.
《박교도관, 진정하라구. 그 자식 건드리지 않는게 좋아. 워낙 표범같은 놈이야.》
복도문쪽에서 한을손이 제 동료를 타일렀다. 한을손의 충고가 어느 정도 작용을 했는지 그자는 성풀이를 하지 못해 씩씩거리다가 어디 보자고 뇌까리며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한상수는 감방에서 란동을 부렸다는 죄로 취조방으로 끌려갔다. 놈들은 그의 두손을 뒤로 결박하고 거꾸러 매달아놓은 다음 검도련습용목칼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정신을 잃으면 캄캄한 먹방에 처넣었다가 의식이 들면 다시 끌어내여 구타하군 했다. 그래도 끼때가 되면 푸석푸석한 콩밥덩어리를 던져주군 했다. 그러면 량팔을 뒤로 묶이운채 엎디여 입으로 콩밥을 씹어삼키였다. 그래야만 살수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한상수는 3일만에 겨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한평도 채 안되는 관속같은 방이지만 다시 내 방으로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지긋지긋한 먹방에 비하면 자기의 감방은 《락원》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 수년간 그의 체취와 숨결이 슴배여있는것이다.
4
《한형!》하고 찾는 은근한 목소리에 한상수는 고개를 들었다.
한을손이 감방문을 열고 무슨 꾸레미를 옆구리에 낀채 들어왔다.
《한형?… 내가 어떻게 당신의 형이 되는가. 수인이 감히 교도관한테…》
한상수는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었다.
《웃지 마오. 누가 듣겠소. 실은 한형한테 좋은 일이 생겨서…》
한을손은 여전히 복도쪽을 두릿거렸다. 이자가 왜 이런 노죽을 부리는지 알수가 없었다.
《어쨌든 교도관나으리, 그런 말은 삼가하오. 나는 당신같은 사람한테 형님대접을 받고싶지도 않거니와 설사 나에게 당신같은 동생이 있다면 불행으로 생각하겠소.》
《차 이런, 왜 이리 빈정대요?》
《당신이 나때문에 <빨갱이>로 몰릴가봐 그래.》
《너무 그러지 마오. 나도 조선사람이요. 내 가슴속에서도 조선사람의 피가 흐르고있단 말이요.》
《조선사람의 피가 흐른다고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니요. 최근에 자네가 수감자들에게 그리 악착스럽게 놀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고있지만 아직은 두고 봐야겠소. 통일이 된 다음에 인민의 심판대에 오르기전에 처신을 잘하오.》
한상수는 이따금 살갑게 노는 한을손이 정신을 차리도록 오금을 박았다.
《차, 마음착하고 어진 사람한테 너무 그러면 죄돌아요. 그러지 말고 이 양복이나 입어요.》
한을손이 꿀발린 소리를 하며 가지고 온 꾸레미를 풀었다. 양복과 와이샤쯔, 넥타이, 칠피구두까지 있었다.
《이건 뭐요?》
한상수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귀한 손님이 한선생을 만나러 왔어요.》
《그렇다면 난 이 수인복을 입고 만나겠소. 수인이 수인복을 입는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요.》
《고집부리지 말아요. 자, 입어요. 시간이 없어요.》
한을손이 급해맞아 재촉했다.
《걷어치우라구. 안입겠소.》
한상수는 단마디로 거절했다. 또 무슨 흉계를 꾸미려는 모양이다.
《왜 이리 야단이요. 좋은 일이 있다는데. 후에 이 한을손을 잊지 말고 생각하여주오.》
한을손이 안타까운듯 얼리려들었다.
《어쨌든 입지 않겠소.》
그들이 이렇게 말씨름을 하고있는데 신사양복을 입은 교도관 두놈이 나타났다.
《한교도관, 시간이 없소. 교무과장한테 경칠려고 그래. 옷을 입지 않겠다면 그냥 끌고가자구.》
한상수는 놈들의 강압에 못이겨 수인복을 입은채 감방문을 나섰다. 무엇인가 께름한 생각이 들었다. 한상수는 뿌연 전등빛이 빛을 뿌리는 감방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이 순간 동지들은 시찰구로 나를 바라볼것이다. 만약 내가 고급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신고 복도를 걸어간다면 동지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믿는 동지들이래도 의혹을 감추지 못할것이다. 잠시라도 동지들의 가슴에 의혹을 준다면 나는 용서받을수 없는 인간이다. 놈들은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놈들은 이렇게 옷을 입히지 못했는데두 서둘러 끌고가는것일가.
한상수는 교도관들의 호송하에 감옥밖으로 나왔다. 마당안에는 고급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 그는 교도관들이 하라는대로 할수 없이 승용차안으로 들어갔다. 교도관 하나는 운전사옆에 앉고 나머지 두명은 한상수를 가운데 앉히고 뒤좌석을 차지했다. 교도관 한놈이 한상수의 옷에서 피비린내가 나는지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승용차는 불빛이 명멸하는 대구시내의 번화가를 지나 으슥한 골목길에서 멎었다. 그리 크지 않은 양옥식 집앞이였다. 승용차의 발동소리가 멎기도전에 우유빛현관등밑으로 어여쁘게 생긴 한 녀인이 나와 나푼하고 절을 했다.
한상수는 이것이 비로소 고관들만 출입하는 비밀료정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승용차에서 내릴 때 교도관들이 지금껏 차고있던 수갑을 풀어주었다. 순간 몸이 날아갈듯 하고 숨이 나가는것 같았다. 잠시동안이지만 속박의 사슬이 풀려나간것이였다. 집안에서는 붉은등, 파란등이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얼을 뽑아내는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간장을 녹이는듯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런지 갑자기 어지럼증이 났다. 그는 교도관들을 따라 겨우 어느 한 문에 이르렀다.
땅에 찰찰 끌리는 조선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입은 애젊은 녀급이 사뿐사뿐 앞장서 걸어가더니 미닫이문을 열고 무릎을 꿇었다.
《응, 왔느냐?》
웅글은 사나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녀급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옆으로 살그머니 비켜서서 한상수를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담박하게 꾸려진 검소한 방이였다. 바닥에는 돗자리를 펴고 아래벽쪽에는 10장생병풍을 둘러쳤다. 방가운데는 상감문양에 옻칠을 하여 거울처럼 알른거리는 길고도 넙적한 상이 놓여있었다. 가운데 놓인 신선로에서는 안주가 보글보글 끓고 상우에는 이름도 알수 없는 고급료리들이 가득 차려져있었다. 상좌에 두사람이 마주 앉아있었으나 그들은 김이 서린 목욕탕안에 있는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이 흐리고 뗑한 기분이였다. 얼마만인가. 이런 방안에서 음식을 마주 한것이… 울컥하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빈위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놀라 역작용을 한것이였다. 한상수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휘청거리였다.
《앉으세요.》
노래의 은은한 선률처럼 그렇게 살뜰하고 다정한 녀자의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손이 한상수의 량허리를 부여안아 자리에 앉혔다.
한상수는 무의식적으로 그 녀자가 하라는대로 했다. 먹고싶은 생각보다 잠시 누워서 쉬고싶었다. 그는 첫 타격에 정신육체적으로 노그라지고 말았다. 매 사람옆에 젊고 아릿다운 녀인들이 앉았다.
《한선생!》
저쪽에 앉은 사람이 한상수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한상수는 정신이 피뜩 들었다. 김이 서리여 잘 보이지 않다가 그것이 없어지자 거울안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듯 목소리임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백근식이가 선량하게 웃고있었다.
《뭐 다르게 생각하지 말게. 내 오늘 배꼽 떨어진 날일세. 그래서 이렇게…》
《허, 그렇구만. 고맙소.》
한상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고양이가 쥐에게 선량성을 베풀 땐 그것은 잡아먹자는 수작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 그럼 들게. 교도소 교무과장이 담당한 수인에게 관용을 베푼다고 하여 잘못될것은 없으니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 민주화가 대두한 때이거든.》
한상수가 수인복을 입고 피비린내를 풍기고있음을 알아차린 백근식은 돌연 얼굴을 찡그리며 문가에 서있는 한을손에게 소리쳤다.
《왜 내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어?》
《죽어두 그냥 가겠다고 뻗대는 바람에…》
한을손은 금시 사색이 되여 황급히 중얼거렸다.
한상수에게 신사양복을 입히지 못한 죄책감이 든 모양이다.
《그럼 할수 없지. 자, 술을 부어라.》
백근식은 녀급들에게 분부했다. 그들은 사람을 홀리는듯한 교태를 부리며 새노란 놋잔에 술을 부었다.
《드세요 선생님.》
한 녀급이 한상수의 턱밑에 술잔을 가져다댔다.
《허허… 아가씨들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구려. 나는 수인이요.》
한상수는 어이없어했다.
《아이참, 우리가 모르는줄 아세요. 서울장안에서 아니, 온 <남한>땅에서 축구선수 <비수>라면 전설같은 인물로 아는걸요.》
《<비수>! 하긴 그래. 내가 <비수>야. 곪을대로 곪은 이 사회를 사정없이 쭉 째버리는 시퍼런 칼이란 말이요.》
《아이 무서워라!》
녀급들이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자지러지는 소리를 쳤다.
《하하… 너무 겁날것 없다. 이젠 그 비수도 녹이 쓸었다. 술이나 마시자.》
백근식이가 화제를 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쪽에 앉아서 한상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자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옳소이다. 자, 우리 백과장님의 생신날을 축하해서… 가만 월매, <권주가>나 한곡 뽑지.》
《그러셔요? 그럼 이 월매가 <권주가>를 부르오리다.》
녀급은 기다리고나 있은듯이 술잔을 들고 랑랑한 목소리로 권주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 받으시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먹고 노는 금로주라
…
녀급들이 각기 술을 들고 사나이들한테 다가왔다. 《권주가》를 부르던 녀급이 한상수의 목을 보동보동한 손으로 감싸안더니 입에다 술잔을 가져다댔다.
한상수는 천천히 녀급의 손을 거머쥐였다.
《아이야!…》
녀급이 비명을 질렀다. 술잔이 쟁강하고 떨어졌다.
《아이, 무슨 손이 그래요. 꼭 장작개비예요. 아니, 쇠집게!…》
《하하…》
마주 앉아있던 두 사나이가 그 모양이 즐거운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백근식의 앞에 앉아있던 대머리에 몸집이 유들유들한 사나이가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였는지 한상수가 마시겠으면 마시고 싫으면 그만두라, 우리는 놀겠다, 즐기겠다는듯 녀급들의 허리를 안고 돌아갔다. 녀급들이 연송 아양을 떨며 남자들의 목에 매달렸고 술잔들이 철철 넘쳐났다.
한상수는 또다시 구토감이 났다. 입을 다물고 겨우 참는데 《한상수씨.》하고 이제껏 녀급들과 놀던 대머리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입을 열었다.
이건 또 뭔가. 이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가. 백근식이도 그저 한선생이라고 불렀을뿐인데…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모르겠소.》
한상수는 딱딱하게 대꾸했다. 어디서 보았던자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럴수 없겠는데. 그럼 내가 좀더 설명해주지.》
그자는 계속했다.
《1947년도 당신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였을 때 나를 찾아왔던 일이 생각나지 않소?》
《?!…》
아, 《가죽잠바》!… 틀림없었다. 그때 사무실에 앉아 호통을 치던자였다. 그의 머리에 번개치듯 16년전 일이 떠올랐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들 어찌 그때 일을 잊을수 있으랴. 현우섭의 삼촌… 그렇다. 바로 그자다. 어느 때든지 한번 만나기만 하면 복수를 하리라고 벼르던놈이다. 그런데 그자가 어떻게?!…
《그렇소. 내가 바로 그때의 <가죽잠바> 현진택이요.》
그자는 득의양양하여 꺼리낌없이 지껄였다. 순간 걸고드는듯한 그 목소리가 한상수의 가슴을 송곳처럼 찔렀다. 한상수는 고개를 쳐들었다. 강철처럼 랭철한 판단력을 동원시켜보아도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아득히 흘러가버린 세월과 더불어 가죽잠바를 입고 한상수에게 옥야를 사랑한다고 하여 계급성을 부르짖으며 가슴에 마구 란도질을 해대던 그 가증스러운자의 모색이 떠오른다. 그놈이 바로 이 낯판대기가 유들유들한 놈팽이였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프로레타리아계급성의 화신처럼 떠들던놈, 축구는 져도 계급성은 버릴수 없다고 소리치던자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앉아있단말인가.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불기우리해진 현진택은 턱을 슬슬 쓸었다.
《한상수씨, 잘 믿어지지 않겠지요. 특히 이 맑스주의자가 어떻게 되여 이남에 와있는가 하는것이… 허나 인생이라는건 순풍에 돛을 달아야 하는거요. 그렇지 않으면 파산을 면치 못하거든. 난 지금 삼성그룹의 한 회사사장이요.》
《회사사장이라!》
한상수는 말꼬리를 길게 뽑았다. 그의 복잡다단한 인생행로는 다 모르지만 이자가 변절자라는것은 대뜸 알수 있었다.
《내 말을 마저 들어보시오. 나는 전쟁때 미강점지구에서 지하투쟁을 하고있다가 동지들과 함께 <치안대>에 체포되였소. 나는 내 눈앞에서 우리 동지들의 육체가 갈가리 찢어지고 생매장당하는것을 보았소. 나도 말로는 당신이 알고있는것처럼 계급성이요, 신념이요 하고 투쟁도 했고 곧잘 웨치기도 했소. 허나 나는 인생체험을 통해 인간이 살고 본 다음에 신념도 있지 죽으면야 하나의 썩은 고기덩어리에 불과하다는걸 알게 됐소.》
《…》
한상수는 석상처럼 까딱 안하고 앉아서 현진택을 노려보고있었다. 이제야 그는 놈들의 잔꾀를 속속들이 알아차렸던것이다.
한상수는 광복후 이자때문에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찢어죽여도 씨원치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이윽고 한상수는 나직이 응수했다.
《당신은 동지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이 무섭고 그래서 살아야 되겠다는 욕망으로 변절의 길을 걸어왔겠소?》
《변절이 아니라 전향이지. 다시 말하면 내 인생관대로 자유민주주의사상을 받아들였단말이요. 상수씨, 신념이란 뭐겠소. 자기가 믿는 마음인데 믿음이 허물어지면 제꺽 바꾸는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겠소.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이 바람따라 돛을 달라고 했소. 그러니…》
《그러니 나더러 어찌라는거요?》
《어쩔것 있소. 그까짓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볼판이지. 상수씨, 이젠 마음을 돌리시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전향했다고 해서 북에서는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해. 세상에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나같은 혁명가도 전향을 하는데 항차 당신이야…》
《걷어치우라!》
한상수는 듣다 못해 끝내 노성을 터뜨렸다.
《한선생, 진정하오. 현사장님의 말씀에는 귀중한 인생철학이 있소.》
백근식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인생철학이 있다구?… 그건 이놈의 변절넉두리에 불과해. 이놈은 북에 있을 때 그 누구보다 프로레타리아트요, 계급성이요 하고 부르짖은 놈이야. 그리고 내 안해를 친미분자의 딸이라고 타매하던놈이 뭐 어쨌다구?…》
한상수는 현진택이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서슬푸른 어조로 들이대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자가 어쩔사이없이 두손으로 멱살을 거머쥔채 세차게 흔들며 다시 부르짖었다.
《이 변절자, 배신자!… 너는 이제도 신념을 주절댔는데 이놈아, 그 더러운 입에 신념이란 말을 담지 말라. 똑똑히 알라. 신념은 그 자체가 목숨이다. 우리의 신념을 모독한 네놈을 내 오늘 죽여버릴테다.》
한상수는 현진택을 힘껏 밀어버리였다. 현진택은 뒤로 벌렁 넘어지며 10장생병풍을 박살냈다. 주안상이 뒤집어지고 녀급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상수는 옛말에 나오는 장수처럼 두다리를 떡 버티고 방안 복판에 서있었다.
5
한상수는 한밤중에야 소지의 등에 업혀 감방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였다. 현진택을 내세웠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백근식은 분통이 터져 한상수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을 들이댔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웃동을 벗어던지고 고문도구를 들었다.
한상수는 쇠못이 박힌 몽둥이로 어찌나 맞았는지 온몸이 팅팅 부었다. 그러나 그는 감방에 돌아와서도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다만 량쪽 감방에다가 백근식의 야수적폭행을 통보했을뿐이였다.
다음날 오후에 한상수가 감방에 누워있는데 철문이 절커덕거리더니 새 수인 한명이 방에 들어섰다. 박박 깎은 머리에 안경을 쓴 젊은이였다.
한상수는 누운채 새로 들어온 젊은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얼굴은 고문을 받아서인지 몹시 상했으나 젊은이다운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넓은 이마에 높은 코날,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있는 입술, 예리함과 지혜로움이 함께 느껴지는 눈을 가진 청년이였다. 그의 앞가슴에는 광목천에 시꺼먼 먹으로 방금 쓴듯한 《1450》이란 번호가 붙어있었다.
《이리 와서 앉소.》
한상수는 자기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얼떨떨해있던 생각이 나서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젊은이가 다가와 앉았다. 둘사이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상수는 말할 기력이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고 젊은이는 첫 대면에 먼저 말할수가 없어 침묵을 지켰다.
얼마후에 젊은이가 먼저 《많이 다치신 모양이군요.》하며 근심스럽게 물었다.
《견딜만 하오.》
한상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몸이 무수한 바늘로 사정없이 찌르는듯했고 고열이 났다. 자기 방에 또 한명의 수감자가 생긴것이 반가왔으나 그 기쁨을 나눌 형편이 못되였다. 그저 몸이 둥둥 떠다니는것만 같았다.
이때 옆방에서 바람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김성교가 보내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받아야겠는데 몸을 움직일수 없다.
《통방을 할줄 아오?》
한상수가 기여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젊은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럼 할수 없군.》
한상수는 신호소리가 울려오는 바람벽쪽으로 간신히 몸을 끌었다.
《한상수, 기운을 내라. 왜 대답이 없는가?》
김성교가 안타깝게 찾는 소리였다.
《한상수 듣는다.》
한상수는 천천히 손등으로 대답신호를 보냈다.
《고문을 이겨내여 장하다. 우리는 오늘저녁부터 강제전향반대투쟁으로 넘어간다.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포했다. 끝까지 견지하라.》
김성교는 이 신호를 반복했다.
《알았다. 동지들!》
한상수는 통방을 하면서도 격정이 북받쳐 어깨를 떨었다. 무기한 단식투쟁! 엄숙하고도 고결한것이 가슴을 꽉 채웠다. 신념을 지켜 동지들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투쟁이 시작되는것이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젊은이가 궁금한듯 물었다.
《오늘저녁부터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오. 아 참, 우린 아직 통성을 못했지. 이름을 어떻게 부르오?》
한상수는 심중한 얼굴로 말하다가 그제야 생각난듯 물었다.
《오철남이라고 합니다.》
청년은 어줍게 대답했다.
《난 한상수라고 하오. 운명을 같이 합시다. 당장 단식투쟁에 들어가게 되는데 잡도리를 잘해야 하오.》
오철남의 낯빛은 대뜸 긴장해졌다.
《그러니까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단말입니까?》
《그렇소. 단식으로 정치범들에 대한 폭행에 항의하는 투쟁이요. 감방에선 이 싸움이 최후의 투쟁이요.》
한상수는 일순 이 청년은 이번 집단단식투쟁에서 제외시켜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날 이런 싸움끝에 여러명이 목숨을 잃은적이 있는데 투쟁경험이 없는 오철남이가 어떻게 이 시련을 이겨내겠는가.
오철남은 침묵을 지켰다. 그의 낯이 졸지에 컴컴해졌다.
《그래 어떻게 되여 감옥에 들어오게 됐소?》
한상수는 감방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인채 물었다.
《미국문화원방화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되였어요.》
오철남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대답했다.
《자네가 미국문화원을 불질렀단말인가?》
보기에는 부자집도련님처럼 아련하게 생긴 청년이 어벌찬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재차 반문했다.
《저야 뭐 심부름이나 했지요.》
《장하오!》
한상수는 오철남이네들이 더없이 장해보였다. 얼마나 끌끌한 우리의 새 세대들이 자라나고있는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미국을 《해방자》, 《원조자》, 《벗》으로 생각하고있을 때 그놈들의 소굴에 불을 지름으로써 미국은 결코 우리의 우방도 벗도 아니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자만자족에 빠져 오만방자하게 노는 침략자들을 징벌하였으니 얼마나 의로운 행동을 단행하였는가. 이들이 지펴올린 반미항전의 불길은 곧 수백수천만 이 나라 청년들의 가슴에 불씨를 안겨주어 마침내 료원의 불길마냥 이 남녘땅에 세차게 타오를것이다.
《그래 몇년형이요?》
《10년입니다.》
《뭐? 10년?》
《저야 제일 적게 먹었지요. 주동에 섰던 사람들은 총살형을 받았어요.》
《뭐라구?…》
한상수는 억이 막혀 두눈을 흡떴다. 금시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한 격분이 솟구쳤다. 아무리 그악한 놈들이기로서니 이처럼 의로운 젊은이들을 총살한단말인가. 미국놈들이 이 땅에서 저지른 행위들에 얼마나 분격하였으면 한창 학업에 전념할 대학생들이 그런 의거를 단행하였겠는가. 남의 나라 땅에 기여들어 주인행세를 하며 우리 민족을 학대하는자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어 그런 결단을 내린 학생들의 장거를 높이 평가해주고 내세워야 할 대신에 오히려 그들에게 총살형을 내리고 징역살이를 시키는 당국자들, 이놈들이야말로 미국의 하수인, 희세의 민족반역자들이다.
한상수는 생각할수록 분노로 들먹거리는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놈들은 이 오철남이까지도 감옥에 가두어넣고 육체를 마멸시키며 반미통일의지를 꺾으려 하고있다. 그러나 놈들이 제아무리 발광을 해도 결코 이 젊은이의 견결한 의지를 꺾을수는 없을것이다.
한상수는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저으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남인 이번 단식은 그만두라구.》
《왜 말입니까?》
오철남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처음이니 견디기 힘들거요.》
《아니, 참가하겠어요.》
세차게 도리질을 하는 오철남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옹골찼다. 그러한 오철남을 보는 한상수는 내심 대견한 생각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속의 우려는 감출수 없었다.
저녁부터 특별사는 일제히 단식투쟁으로 들어갔다. 투쟁구호는 정치범들에 대한 교무과장의 야만적인 폭행을 중지하지 않는 한 온 수감자들은 무기한 단식으로 맞설것이라고 선언했다. 식구통으로 들어온 보리밥덩어리들이 다시 복도로 내던져졌다. 교도관들은 펄펄 뛰며 어디 밥을 먹지 않고 몇날이나 견디나 보자고 을러멨다.
다음날도 여전히 소지가 날라온 보리밥덩어리가 그냥 나갔다.
《정말 그럴테야. 굶어죽어봐야 알겠어?》
교도관들이 악에 받쳐 고함을 질러댔다.
《한교도관, 교도소장에게 말하오. 교무과장이 정치범들을 학대하지 않겠다고 사죄하면 단식을 중지하겠다고…》
옆방에 있는 김성교가 하는 말이였다.
《쳇, 교무과장이 너희들한테 사죄를 해? 어림두 없는 소리야. 어디 처먹지 않고 견디나 보자.》
한을손의 옆에 선 교도관이 코웃음을 치며 나갔다. 잠시후에 몇놈의 교도관이 우르르 나타나 김성교의 감방문을 열어제끼고 그를 끌어냈다. 어느 방에선가 《살인고문 중지하라!》, 《교무과장은 사죄하라!》하는 웨침소리가 련이어 터졌다. 그러자 온 특별사동이 그 소리를 되받아 살인고문을 중지하라고 웨쳤다. 특별사동은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되였다. 교도관들이 또 다른 감방문을 열고 몇사람의 수감자들을 끌어냈다. 강제급식을 하려는것이였다.
단식투쟁을 시작한지 사흘이 되자 온 특별사동은 무덤속처럼 괴괴해졌다. 모든 수감자들은 정신이 혼미하여 늘어져있었다. 한상수자신도 모진 고문을 당한데다가 단식까지 하자 입조차 벌릴 힘이 없었다. 그래도 젊은이가 젊은이였다. 오철남은 입술에 조갈이 들어 험하게 트고 부풀어올랐지만 한상수를 정성스럽게 간호했다. 하면서도 끼니때마다 식구통으로 콩보리밥덩어리가 들어올 때면 몸을 흠칠흠칠 떨며 입맛을 다시군 했다. 그랬다가 한상수와 눈길이 마주치면 면구스러운듯 얼굴을 붉히군 했다. 그도 사흘째되는 저녁에는 기진맥진하여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였다.
《선생님, 이러다가 굶어죽지 않을가요?》
오철남이 누운채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한상수는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굶어죽을수도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것이 아닌가.
《죽을수도 있지!》
한참후에 한상수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싸우다 사형장에서 죽으면 몰라라 이렇게 눈을 펀히 뜨고 굶어죽는게…》
오철남은 맹랑한 노릇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이것도 싸움이요.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되오. 이런 싸움에서 의지도 강해지고 인내력도 생기는 법이요.》
한상수는 아직도 감방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의지가 여린 이 청년에게 무엇인가 힘이 될 말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입을 열었다.
《철남이, 원쑤와의 싸움에서 목숨이 두려워 잔꾀를 부리거나 한발 물러서면 절대로 이길수 없소. 놈들에게 조금이라도 허술히 보여서는 안되오. 약점을 보이면 놈들은 더 기고만장하여 사납게 굴거든. 놈들이 심하게 나오면 우린 더 세차게 맞서야 하오. 그래야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오.》
한상수는 불현듯 박우갑이가 자기를 일깨워주던 때가 생각나서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이젠 자기가 오철남을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각했다.
오철남은 한상수의 말에 공감이 되였던지 묵묵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얼마후에 한상수는 오철남에게 포대기 한쪽 끝을 뜯어보라고 했다. 오철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기여가서 한상수가 대준 곳을 뜯어보니 종이에 싼 소금이 나왔다. 단식투쟁때마다 조금씩 물에 타서 마시면 한결 기운이 솟는다고 하면서 묘리를 가르쳐주던 정창식이가 감추어놓은것이였다. 교도관들이 불의에 검방을 하기때문에 어느 한가지도 마음놓고 보관할수가 없었었다.
《저 공기에 있는 물에 소금을 조금 타서 마시오. 그럼 정신이 들게요.》
한상수가 조용히 말했다. 오철남은 한쪽에 있는 물공기에 소금을 조금 넣어 푼 다음 한상수의 터갈린 입술에 가져다댔다.
《난 괜찮소. 어서 마시오.》
《선생님부터 마시십시오. 그래야 저도 마실게 아닙니까.》
오철남이 굳이 권해서야 한상수는 소금물을 조금 목구멍으로 넘기였다. 확실히 흐릿하던 정신이 맑아지는듯 했다. 동공이 풀렸던 오철남의 눈동자가 또릿또릿해졌다.
《어떻소?》
한상수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확실히 정신이 듭니다.》
오철남도 신기스럽다는듯이 얼굴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것 보오. 죽을수가 있으면 살수도 있는 법이요. 이제 놈들이 철남이를 끌어다가 강제급식을 시킬수 있소.
그때는 먹지 않겠다고 뻗대지 말고 처넣는대로 먹어야 하오. 만약 먹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면 음식이 후두로 들어가 생명이 위험할수 있소. 알겠소?》
《알겠습니다.》
한상수가 선배들이 가르쳐준 경험을 오철남에게 알려주고있는데 복도에서 급한 발자국소리들이 울렸다. 끌려갔던 동지들이 감방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였다. 그는 김성교가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여 그의 방에 통방신호를 보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웬일일가? 정신을 잃었는가?… 한상수는 잠시후에 다시 벽을 두드렸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왜그런지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갈마들었다. 이때 한상수의 방 반대쪽에서 신호가 왔다. 그는 급히 바람벽에 귀를 가져다대고 통방신호를 들었다. 얼굴이 금시 재빛이 되였다. 가슴이 왈칵 무너져내리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김성교가 잘못되였다는것이였다. 놈들이 강제로 인공급식을 시키다가 동맥을 터쳐놓아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숨졌다고 하였다.
아, 김성교동지가 죽다니?!… 한상수는 눈앞이 캄캄해왔다. 자기때문에 그가 죽은것이였다. 한상수가 처음 감방에 들어왔을 때 공화국의 체육인답게 잘 싸우도록 도와주라고 당부하던 동지, 살인경기를 할 때에는 몰매를 맞으면서도 경기를 하지 말라고 웨치던 고마운 동지,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원쑤놈들은 이렇게도 통일의 열혈투사들을 무참하게 학살한단말인가. 이 원쑤를, 이 살인귀들을 어떻게 복수한단말인가. 한상수는 너무도 절통하여 있는 힘을 다내여 주먹으로 철문을 마구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이 인간백정놈들아, 김성교동지를 살려내라아!…》
그가 미친듯 절규해도 어느 교도관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기가 질린 모양이였다. 한상수는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6
교도관들의 야수적인 고문에 의하여 김성교가 학살된 이후 특별사동은 오래동안 살인귀들에 대한 증오와 비분에 잠겨있었다. 놈들도 얼마동안은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를 삼가했다. 감옥방마다 수용자준수사항이라는 인쇄물을 붙여놓고 그를 조금이라도 위반하면 《명령불복종》죄에 걸어 고문실에 끌어다가 만신창이 되도록 구타하던 짓도 당분간 중지했다. 운동시간도 지키고 4등짜리 콩보리밥도 제량대로 내주었다. 지어는 보안과장이 감방을 순시할 때 수감자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몽둥이찜질을 하던짓도 그만두었다.
그러고보면 이번 단식투쟁은 놈들에게 일정하게 타격을 주었고 수감자들이 비록 철쇄에 묶여있지만 제 마음대로 다룰수 없는 존재들이라는것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상수는 슬픔에 잠겨 며칠을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어떻게 잊을수 있으랴. 애오라지 이 나라의 통일위업과 동지들을 위해 제 한몸을 바친 애국충정에 불타던 그를… 그는 정녕 박우갑과 함께 통일년대기우에 깊은 자욱을 남겼다.
한상수는 삶과 죽음이 항시 대결하는 감옥에서 언제까지나 비애에 잠겨있을수 없었다. 또다시 생명을 걸고 신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했다.
감옥생활은 표면상 조용히 흘러갔다.
한상수는 아침부터 감방바닥에 그려놓은 《축구경기장》에 《선수》들을 세워놓고 그앞에 쭈그리고앉아 생각을 골똘히 하고있었다. 《축구선수》들이란 보리밥을 짓이겨 만든 작은 덩어리들이였다. 수년전에 함께 있던 정창식이 감방에서 나간 후 차입물속에 넣어 들여보내준 장기쪽은 첫탕검열에서 빼앗기고 그후 한상수가 운동시간에 교도관모르게 감옥마당에서 주어온 작은 돌덩이도 검방때에 회수당하였다. 그는 할수 없이 매끼마다 보리밥을 조금씩 남기여 공기돌만 하게 밥덩어리를 짓이겨 만들었다. 그러나 걸핏하면 벌리는 검방성화에 그것마저도 보관할수가 없었다. 한번은 검방할 때에 교도관이 보리밥덩이가 든 작은 주머니를 발견하고 이게 뭔가고 소리쳤다.
《밥덩어리요.》
한상수는 시침을 따고 태연히 대답했다.
《왜 먹지 않고 이런 장난을 하는가?》
놈은 이상스럽다는듯 또 캐물었다.
《배고플 때 먹으려고 남겨놓았소.》
《에익, 더럽다.》
교도관놈은 주머니채로 아까운 보리밥덩이를 변기통속에 던져버렸다. 한상수는 그후에도 멈추지 않고 보리밥으로 《축구선수》들을 빚었다. 그랬다가 검방을 할 때면 제꺽 먹어치우군 했다.
감방천정에 매달린 전등불빛에 경기장의 선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했으나 그는 자신있게 《선수》들을 옮겨놓으며 《경기》를 시작했다. 물론 주심은 한상수였다. 호각소리가 울리지 않을뿐이였다. 경기는 그의 머리속과 감방바닥에 새긴 경기장에서 맹렬하게 벌어졌다. 한상수의 눈빛이 긴장해지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가 피여오르기도 한다.
《그렇지, 왼쪽날개 측면돌파를 하라. 그러다가 슬쩍 공격수에게. 복식으로 돌입! 때리라!》
한상수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때 한쪽벽에 기대여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오철남이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누굴 때려요?》하고 물었다.
《헛참, 현우섭이 실수를 했군.》
한상수는 아쉬운듯 입을 쩝쩝 다시며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와락와락 끌어냈다.
《현우섭이 누구예요?》
오철남이 궁금한듯 또 물었다.
《평양팀공격수야. 속도가 좋고 공빼몰기를 잘하는 친군데 좀 덤비는게 탈이지. 그래두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가서 한몫 했어.》
한상수는 이렇게 말하며 열한명의 축구선수들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얼마나 믿음직하고 투지만만하던 친구들이였던가. 키가 꺽두룩하고 문어다리처럼 긴팔로 뽈을 잡으며 조국의 관문을 지키던 문지기, 그앞을 땅크처럼 철벽으로 지켜서있던 방어수들, 조약력이 좋고 질풍같은 속도와 강한 차기를 잘하던 공격수들, 그들은 모두 팔방돌이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뛰고 또 뛰던 투지와 공격정신이 강하던 친구들이였다. 그들은 모두 조국이 자랑하고 인민이 사랑하는 축구선수들이였다. 한상수는 부지중 눈굽이 뜨거워났다. 그들이 그립고 그들과 함께 뽈을 차고싶었다.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이북두 참가했는가요?》
오철남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호기심이 동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우리 공화국축구팀이 1등을 했지.》
얼굴을 환히 빛내이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한상수의 가슴도 눈에 뜨이게 오르내리였다.
《그래요?! 참…》
젊은이들의 감수성이란 예민한것이였다. 감격으로 하여 말을 잇지 못하던 그의 눈빛도 동경과 환희로 하여 불붙는듯하였다.
한상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체육은 나라가 크고 작은데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게 아니요. 물론 체육선수들이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경기에 참가하는가 하는 그 정신이 중요한거요.》
오철남은 한상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다가 자못 심중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은 이제 다시 축구를 할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상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시 뽈을 찰수 있는가구? 가슴이 저리여왔다. 아, 내 인생에 분렬된 조국이 아니라면 축구와 떼여놓고 감히 생각해볼수 있었으랴. 그러나 지금은 경기장에서와 다름없이 혈투를 벌리고있다.
아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사생결단을 하고있다. 오직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만이 그의 사색을 지배하고있을뿐이였다. 그러나 축구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한상수였다.
《이제야 운동장을 뛸수 없지. 하지만 아직 뽈은 놓고싶지 않소. 축구는 내 희망이고 사랑이였으니까. 오죽하면 장가간 첫날밤에 축구를 하는 꿈을 꾸다가 옆에서 자는 새색시의 옆구리를 걷어찼겠소.》
《거참, 재미있는 일화군요. 좀 이야기해주십시오.》
오철남은 두눈을 빛내이며 졸랐다.
《실없는 얘기를 뭘 듣겠다고.》
《아, 그러지 마십시오. 그래 신부가 무사했습니까?》
오철남은 감질이 나서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한상수의 다음말을 재촉했다.
《글쎄 잔치를 한 첫날밤에 코를 드렁드렁 골며 정신없이 자던 내가 갑자기 <꼴잉이다!>하고 소리치며 발길로 색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는거야. 문득 곁에서 <아이야!>하는 비명소리가 나길래 깜짝 놀라 깨여보니 색시가 쿨쩍거리며 울질 않겠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눈물을 씻으며 <뽈하고 살라요.> 하, 이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바람에…》
《하하하…》
이야기를 듣고있던 오철남은 엉뎅이를 들썩이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쉿, 교도관이 듣겠소.》
한상수가 급히 오철남을 제지했다. 했으나 오철남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이 글썽해서 입을 싸쥐며 말했다.
《거참, 사모님의 말씀이 명담이군요.》
오철남은 생각할수록 재미가 있다는듯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그땐 철이 없었지. 색시가 귀한줄을 몰랐거든. 눈뜬 소경이였으니까.》
급기야 복도끝에서 직일교도관의 구두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아무일도 없은듯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 웃었어?》
교도관이 시찰구에 상판을 들이대고 왜가리청을 지른다. 한상수와 오철남은 여전히 모르쇠를 하고 대답을 안했다. 한동안 눈알을 굴리며 두사람을 살피던 교도관은 다른방에서 소리가 났는가 하여 옆방으로 가서 또다시 을러댔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교도관이 사라지자 오철남이 다시 소곤거렸다.
《지금도 그 색시가 선생님의 부인입니까?》
했으나 한상수는 말없이 제 생각에 옴해있었다. 옥야에 대해서 말해놓고보니 불시에 안해에 대한 련민의 정이 밀려들었던것이다. 함께 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들이 헤여져있으니 벌써 그 시절에 이미 터득했던것처럼 여겨진다. 행복했던 그 시절엔 제 사랑이 항상 곁에 있으니 가정에 대한 관심도 남편이 지녀야 할 의무감도 느끼지 못했다. 집안에 들어오면 언제나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안해의 정다운 손길과 지칠줄 모르는 애무에 익숙되였고 그것이 곧 응당한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바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던가. 내가 그때 그 따뜻한 보금자리에서나마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일깨워주고 그것을 헤쳐나갈 길을 알기 쉽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것이다.
그저 자기 주위의 동무들에게만 관심을 돌리고 등잔밑이 어둡다는격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안해에게는 왜 등한히 했던가. 그것은 사랑이 아니였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의 사상과 리념, 목적지향의 공통성이 이루어질 때만 가능한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안해를 참다운 동지로, 조국통일을 위한 한길에 나서서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걸어갈 영원한 길동무로 만들지 못한것이다. 자책이 크면 클수록 가슴이 아팠다. 팔굽이 닿는 바람에 고개를 돌리니 오철남의 반짝이는 눈이 의혹의 빛을 띠고 주시한다.
《왜? 무슨 말을 했어?》
《지금있는 부인이 그 색시인가 말입니다.》
한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물론이지. 첫날 밤은 내가 망신을 당했지만 다음날부터는 정신을 차렸으니까.》
《그야말로 축구선수의 첫 인사가 멋있군요.》
오철남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듯 작은 소리로 웃어댔다.
《조용하오. 이래뵈두 내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시는 축구선수요.》
한상수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자못 긍지에 넘쳐 말했다.
《뭐라구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시는 축구선수라구요?》
오철남은 깜짝 놀라 두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렇소.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조선의 뽈을 차라고 가르쳐주셨소. 그런데 이렇게 철창속에 갇힌 신세가 되였으니…》
한상수는 뙤창에 그윽한 눈길을 보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오철남의 존경어린 시선이 한상수의 얼굴에서 잠시도 떠날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이 감방안에서 허송세월을 할수야 없지 않소. 비록 몸은 갇혀있지만 내 마음만은 지금도 경기장을 달리고있소. 난 이 감옥안에서 기어이 조선의 축구전술을 완성하겠소. 그래서 북남이 하나의 팀으로 출전할 때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축구선수로서 더 무엇을 바라겠소.》
한상수의 얼굴은 연한 홍조에 물들었고 목소리는 흥분에 떨리였다. 오철남은 깊은 감동에 잠겨 벅차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고개만 끄덕일뿐이였다.
7
백근식은 나이가 들면서 춘매라는 녀자가 운영하는 《사꾸라꽃》음식점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술과 계집은 그의 울적한 마음을 풀어주군 했다. 교태를 부리는 춘매의 흰 넙적다리를 베개삼아 베고 누워 은은한 노래소리를 듣노라면 한순간이나마 인생의 쾌락에 잠기게 되였다.
춘매는 조선이름을 딴 일본인계집이다. 사람을 홀리는 미소와 정욕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남자를 녹여내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무불통달한 춘매는 한때 일본의 무서운 깡패조직이였던 《범나비단》두목의 정부였다. 이제는 그 노릇도 싫증난 모양인지 조선으로 건너와 변성명을 하고 대구에 일본음식점을 차려놓았다.
백근식은 이 계집에게 빠져 세월가는줄 모르고있다가 방치백이 서울에서 찾는다는 바람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자기의 목줄을 쥐고있는 방치백에게 잘못 보이면 순간에 파직되고 알거지가 될것이다.
그 손탁에서 벗어나자면 돈이 있어야 했다. 리치는 뻔하지만 어디서 계속 돈이 생긴단말인가. 수단은 오직 수인들의 목줄을 잡고 흔들어대는수밖에 없다. 남쪽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중에서 돈이 많은 수인들은 령치금을 뭉테기로 들여오는데 그런것을 《특별사면》이요. 병보석이요 하며 빨아낼수 있으나 정치범들에 한에서는 그런 엄두를 낼수 없었다. 그들에게서는 돈이 아니라 사상을 뽑아내야 했다. 그것은 상금과 표창, 승진의 길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직무태만이나 무능으로 락인되여 밥통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늘 남쪽땅에서는 도덕과 량심이 시궁창에 박힌지 오래다. 자기의 리익을 위하여 친구든, 상급이든 물어메치기도 하고 서슴없이 죽이기도 한다.
누가 상대방을 능숙하게 틀어쥐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부려먹는가, 누가 더 비굴하고 아부와 아첨에 능수가 되여 승진을 하고 재부를 긁어모으는가, 바로 이것이 돈과 권력이 살판치는 이 사회의 현실이고 생존방식인것이다.
대구교도소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백근식은 머리가 복잡했다. 자기의 한생은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듯이 언제나 아슬아슬한 위험속을 뚫고 살아온 길이였다. 지금 염라국의 사자와도 같은 방치백이 자기를 부른다는게 결코 좋은 일일것 같지 않았다. 한것은 그동안 정치범들의 전향실적이 높지 못하기때문이였다.
방치백은 뜻밖에도 백근식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이리 가까이 오게. 그동안 <빨갱이>들과 혈투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네.》
전향실적을 따지며 줄욕을 퍼부어댈줄 알았던 방치백의 태도에서 백근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 <비수>라는 자는 아직 전향할 기미가 없는가?》
방치백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예. 그 자식은 감방안에서도 축구전술을 연구한답시고 감방바닥에 경기장까지 그려놓고 중 념불외우듯 하고있습니다.》
《허허허… 축구미치광이니 할수 없네. 그래서 내 좋은 방도가 생겨 자네를 불렀네.》
방치백은 껄껄 웃으며 너그럽게 말했다.
(이건 무슨 꿍꿍이조화속인가?)
백근식은 반신반의한 눈길로 방치백을 쳐다보았다.
《지금 서울에 서유럽의 축구감독 비또리오 뽀즈라는 사람이 와있네. 그는 <한국>계사람인데 잠간 친척집에 온 사람이야. 그와 함께 작전을 잘 짜보라구.》
백근식은 방치백의 말이 얼른 깨도가 되지 않아 상전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비수>란 놈이 축구광신자인것만큼 뽀즈가 나서서 자기 나라로 데려가겠다고 하면 미끼를 물수 있네. 절대로 <전향서>같은 소리는 하지 말구. 이제 와서 그런건 필요없어. <비수>가 응하기만 하면 돼. 그때는 우리도 할 소리가 있네. <빨갱이>는 조국도 없다, 명예와 황금을 위해 사상을 버렸다, 어때?》
백근식의 얼굴은 환해졌다. 그 지긋지긋한 전향소리가 없는것이 천상에서 자기에게 구호신을 보내주지 않았는가 할 정도로 반가왔다.
《성공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함께 일해보세.》
방치백은 슬쩍 미끼를 던졌다. 백근식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황송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런데 그 뽀즈라는 사람한테 사례금을 주어야 하겠지요?》
백근식은 돈걱정이 들어 이렇게 비치였다.
《물론, 그건 하나의 도덕이니까.》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뜻이였다. 백근식은 속이 께름직했다. 과연 한상수가 뽀즈가 던지는 낚시의 미끼를 물겠는가. 실패하면 백근식 자기만 손해를 톡톡히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돈을 쓰지 않고 어떻게 거사를 하랴. 방치백의 말대로 한상수를 전향시키고 서울로 올라간다면 이 작전에 들인 돈의 몇백배를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백근식은 방치백의 말을 명안이라고 극구 추어준 다음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유럽의 축구감독 비또리오 뽀즈라는 사람이 한상수를 데리러 교도소에 온다는 상부의 련락을 받은 백근식은 교도소 소장과 함께 그와의 면담을 주도세밀하게 짰다.
비또리오 뽀즈이시여, 제발 《비수》를 데려가주소이다. 그 나라 국민으로도 좋고 미합중국 국민으로도 좋소이다.
그다음 세계의 면전에 공개할것이다. 비전향장기수 한상수는 서유럽으로 갔다고, 《빨갱이》들한테는 조국이 없다고, 이 행성이, 이 우주가 그한테는 조국이라고… 하나된 조국이란 하나의 기만이였다고.
우연이랄가, 필연이랄가 당국에서는 이 천재일후의 기회를 고스란히 백근식에게 위임하였다. 한쪽으로 생각하면 이번에는 한상수가 이의를 표하거나 반대할 근거란 있음직해보이지 않았다. 그처럼 완강히 거부하는 전향이라는 요구가 없는 《체육에로의 자유로운 이동》이 아닌가. 그것도 저네들이 아니라 제3국의 요구에 의하여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는것이다. 백근식은 행운이 차례지기를 속으로 빌었다.
한을손이 또다시 감방문을 열어제끼였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벙글거리며 한상수를 나오라고 했다. 그도 웃을 때가 있다는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교도소 소장님이 친히 부르세요. 빨리요.》
한상수는 허리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이놈들이 왜 또 나를 부르는가.
한을손은 한상수를 교도소 소장방까지 데려다주고 나갔다. 넓고 깨끗한 방이였다. 넓은 유리창으로 해빛이 줄줄이 흘러들고 신선한 공기가 가슴을 후련하게 열어주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원탁우에는 사치한 유리고뿌들과 고려청자기주전자가 놓여있고 창턱에는 고무나무화분이 검고 윤기도는 두터운 잎사귀를 늘어뜨리고있다.
창문과 마주쳐있는 벽쪽에는 개인용 쏘파와 길다란 쏘파가 놓여있었다.
방안에는 세사람이 앉아있었다. 교도소 소장이 자기 자리에 앉아있고 백근식이와 다른 한명은 뜻밖에도 가느다란 은테안경을 낀 외국인이였는데 쏘파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하고있었다.
한상수는 갑자기 머리가 핑 내둘리우는것 같았다. 눈부신 해빛, 신선한 공기, 정갈한 방안, 향기로운 담배연기… 지하동굴마냥 침침한 지옥같은 교도소안에 이런 방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왔다.
《한선생, 인사하시오. 이분은 서유럽에서 오신분이시오.》
몸이 좋은 교도소 소장이 쏘파에 앉아있는 외국인을 가리켰다.
한상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가 왜 서유럽사람과 상면해야 되는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들이 또 무슨 모략을 꾸미였다는것만은 명백했다. 그것은 그동안 몸에 배인 타성이였다.
백근식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한상수를 바라보았다.
외국인은 한상수를 유심히 뜯어보더니 알릴듯말듯 고개를 숙여 례의를 표시했다.
《한선생, 앉으시오.》
교도소장이 아직도 한상수가 서있음을 알아차리고 친절히 말했다. 한상수는 옆에 있는 쏘파에 천천히 앉았다.
《에, 한선생을 오라고 한것은…》 교도소장이 틀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유명한 <까딸로니아구락부>책임감독인 비또리오 뽀즈선생이 면담을 요구했기때문이요.》
비또리오 뽀즈?… 축구감독?… 어디선가 듣던 이름이다.
소개받은 당자가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한상수는 그의 류창한 조선말에 다소 어안이 벙벙해졌다.
노란 머리칼에 파란 눈을 가진 뽀즈는 리해할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조선말을 잘하니 놀랄만도 할것입니다. 지난날 이 나라가 일본놈들에게 통채로 먹히웠을 때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지요. 그때 남부녀대하고 고국을 떠나 유럽을 방랑하던 우리 집은 지금 내가 사는 나라의 까딸로니아에 정착하게 됐지요.》
뽀즈의 목소리는 비감에 떨렸다.
교도소 소장도 백근식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잘 알았습니다. 조선을 찾자, 조선사람의 긍지를 지키자! 나는 이렇게 결심했지요. 그래서 내가 찾은 길이 체육입니다. 체육이야말로 세계만방에 자기를 나타내고 명예와 영광을 획득할 자리가 아니겠느냐, 나는 체육으로 나의 조국을 받들고 빛내이자, 이렇게 결심했지요. 그때로부터 나는 체육에 미쳐서 돌아갔습니다. 서유럽에서 까딸로니아사람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강한것으로써 유명합니다. 당신도 알다싶이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알렉산드르 듀마의 장편소설 <몽떼 끄리스또백작>에 나오는 미인 메르쎄데스도 공명과 출세의 화신 페르낭도 협잡과 기만의 능수인 당글라르도 까딸로니아사람들입니다.》
뽀즈는 잠시 말을 끊고 한상수를 유심히 여겨보았다. 아마 반응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한상수는 여전히 조각상처럼 앉아있었다.
《나는…》뽀즈는 계속했다.
《까딸로니아인이 된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우리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어머니는 까딸로니아의 미인 메르세드의 후손입니다.
까딸로니아구락부는 세계적인, 가장 이름이 높고 력사가 오랜 <바로샤>구락부의 자매구락부입니다.》
《!…》
한상수는 문득 자기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음을 느꼈다. 그의 말은 옳다. 바로셀로나구락부를 일명 《바로샤》라고도 한다. 바로셀로나국제비행장에 내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바로샤》구락부가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대뜸 알수가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까딸로니아사람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광신적이며 《바로샤》구락부는 그들의 큰 관심사가 되고있다.
이 구락부가 경기에서 이기면 온 까딸로니아가 환희에 잠기고 지게 되면 온 도시가 슬픔에 잠겨있다고 한다.
유명한 축구구락부인 《바로샤》는 1899년 가을, 정확히는 10월 27일 바로셀로나에 거주하고있던 스위스상인 한스 캡퍼가 발기했고 그에 의하여 7일후에 창립이 선포되였다. 이 구락부의 성원수는 수만명이며 경기장은 11만 2천명의 수용능력을 가진 《캠프노오》경기장이다.
까딸로니아구락부가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바로샤》의 자매구락부라면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뽀즈의 말은 계속되였다.
《한상수씨, 나는 축구광신자입니다. 사실 내 본명은 비또리오 뽀즈가 아닙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비또리오 뽀즈는 이딸리아의 명성높은 축구감독입니다. 나는 그 감독을 숭상하던 나머지 또 그와 같은 이름난 축구감독이 되기 위해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비또리오 뽀즈라고 달았습니다.》
한상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해가 되였다. 숭배자의 이름을 본따서 자기의 이름을 고친 실례는 적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 까딸로니아구락부에서는 <바로샤>구락부의 후원밑에 세계적인 판도에서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모집하고있습니다. 대체로 지금까지 축구력사가 오래고 발전되였다고 하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는 아시아에 눈을 돌리지 않고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바로 거기에 우리 까딸로니아의 부흥을 위한 귀중한 보배들이 있다고 간주하게 되였습니다.》
한상수가 연거퍼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빛을 보이자 뽀즈의 얼굴이 환해졌다. 백근식은 닭알침을 꿀꺽 삼켰다. 교도소장의 눈길도 긴장해졌다.
비또리오 뽀즈의 말은 사실이였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고 가장 력사가 오랜 축구구락부인 《바로샤》의 후원을 받고있는 까딸로니아축구구락부는 자기의 선수력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계적판도에서 선수선발사업을 맹렬히 벌리고있었다. 특히 축구력사는 짧으나 신생하는 세력으로서 그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있는 동아시아에 초점을 모았다. 아직 《축구거간군》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미개척지인 동아시아에 후비가 있을수 있었던것이다.
뽀즈는 적지 않은 선수를 찾아냈다. 그는 조선에 관심을 높였다. 세계체육력사에서 아시아라면 조선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고있었던것이다. 축구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위주로 되여있었기때문에 선수선발도 대체로 그렇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60년대 초반기에 들어와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 축구전문가의 눈길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돌려지게 된것이다. 다른 나라의 구락부감독들이 아프리카에서 헤매고있을 때 뽀즈는 동아시아에 인재획득의 활촉을 박았다.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뽀즈는 친척방문면목으로 남조선으로 달려왔다. 뜻밖에 《법무부》에서 그를 찾아와 돈까지 찔러주며 《비수》라고 부르는 축구선수가 감옥에 있는데 꼭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뽀즈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감옥에까지 들어가있는가. 당국에서는 설사 선수로 데려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식으로 《비수》라는 사람을 감옥에서 뽑아내도 좋다는것이였다. 믿져야 본전이였다. 그는 쾌히 수락하였다.
《비수》를 만나기전에 그가 있던 《태백》의 동료들로부터 선수로서의 그의 능력을 료해한데 의하면 그는 비상한 재능을 갖춘 축구선수가 분명했다.
《상수씨, 우리 스포츠인들은 마음만 통하면 한순간에 가까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뽀즈가 한상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
한상수는 덤덤히 앉아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마음만 통하면야 한순간에 친구가 되는것이 체육인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속심은 무엇인가. 축구에 대한 이야기나 하자고 나를 만날리는 없다.
뽀즈는 성수가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동남아를 다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를 찾아서 말입니다.
드디여 이 <남한>땅에서 당신을 찾아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지금도 <명치신궁대회>때 도꾜에서 당신이 참가한 경기를 기억하고있으며 광복후 미국팀과 경기에서 발휘한 당신의 활약에 그들자신도 감탄하고있습니다.
<비수>! 이 별명이 모든것을 다 말해줍니다. 한번의 발길질에 뽈이 터져나가고 꼴문을 향해 들이찬 뽈이 그물을 째고 나갔다고 하여 당신을 <비수>라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미 당신을 만나러 오기전에 당국자들과 합의를 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은 재사를 감옥에 가두어넣고 육체를 사멸시키는것은 인류의 수치입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보석도 막돌로 생각하고 바다속에 처넣는 무지와 몽매의 행위가 벌어지고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까딸로니아로 갑시다.》
그의 장광설은 끝났다. 뽀즈는 백근식을 돌아보았다. 이만하면 사례금에 대한 보상은 되지 않는가 하는 기색이였다.
불현듯 한상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까딸로니아축구감독의 정체를 알아차린것이였다.
《그럼 전향문을 쓰지 않고도 갈수 있습니까?》
한상수는 미소를 머금고 넌지시 물었다.
《무슨 전향문말입니까?》
뽀즈는 리해가 안된다는듯 백근식을 돌아봤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고 <한국>을 지지한다는 전향서말입니다.》
《하하… 우리한테는 사회주의도 그 무엇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체육, 스포츠면 됩니다. 그런 근심은 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시민권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는자는 그 누구든지 국제법에 의해 용서받지 못할것입니다.》
뽀즈는 열이 나서 력설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감옥에서 나가도 된다 그 말씀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뽀즈의 말에 백근식이도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동감의 뜻을 표시했다.
교도소소장이 말참녜를 했다.
《한선생, 법무장관님께서도 이미 말씀이 계셨소. 우리가 지금껏 당신에게 욕되게 한것이 있으면 널리 리해해주시오.》
《뽀즈선생.》
한상수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같은 체육인으로서… 하지만 보다싶이 나는 40이 가까와오고 이렇게 페인이 되였습니다.》
《그건 근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선수가 아니라 감독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까딸로니아에 가서 료양을 합시다. 료양은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보약이 아니겠습니까. 까딸로니아바다가는 참으로 아름답지요.》
《하지만 평양의 대동강보다야 아름답지 못하겠지요?》
한상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또 지어보였다.
《평양의 대동강?…》
뽀즈는 의혹의 눈길을 들었다. 그는 대동강을 본적이 없었다.
《아,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갇힌 몸이 아니였다면 당신을 대동강의 맑은 물과 청류벽, 릉라도나 양각도를 구경시켜주는건데…》
《이제 그런 날이 오겠지요.》
뽀즈는 의미없이 중얼거리였다. 어쩐지 동문서답의 말을 듣는듯했다.
《뽀즈선생. 나도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물읍시다. 아까 선생은 조국을 빛내이기 위해 체육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리해해야 합니까?》
한상수는 또다시 상반신을 약간 뒤로 제끼고 한손으로 걸상을 잡은채 능청스럽게 물었다.
《조국?!…》
뽀즈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가 어리였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나 스포츠인한테는 세계가 조국입니다. 당신은 오늘 우리 까딸로니아로 가지만 래일에는 영국의 만체스터 유나이트도축구구락부로 갈수 있습니다. 당신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을 것이며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것입니다. 그래 환대해주고 돈을 주는데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스포츠인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공민이 아니라 세계의 공민입니다.》
한상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흥분할 때면 매양 그러하듯이 그의 볼편에서 가늘게 경련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이자는 가긍한 인간추물이였다. 방금전에 자기는 어려서부터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잘 알며 조선을 찾고 조선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체육을 시작했노라고 지껄이더니 이제는 환대해주고 명예를 얻는데를 따른다고 한다. 이런 사생아, 체육시정배같은 놈을 나와 맞서게 하다니, 한상수는 이 어리석은자의 상판을 후려갈기고싶었다. 그러나 명색이 체육인이라니 체면을 보아주어야 했다.
《당신들이 알아야 할것은…》
그는 누구에게라 없이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의 조국, 조선만을 인정합니다. 나한테는 수만군중의 환대나 돈보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조국이 더 귀중합니다.》
너는 아마 모를것이다. 그 귀중한 조국이 두 토막이 나 신음하고있는것을, 그래서 나는 하나가 된 이 나라의 《비수》가 되고저 싸웠고 그것으로 하여 감옥에 갇힌 몸이 된것이다. 그런데 뭐 환대해주고 돈을 주는데를 따르라구? 스포츠인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공민이 아니라 세계의 공민이라구? 가련하고 어리석은 놈!…
《당신은…》 뽀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중얼거렸다.
《명예를 바라지 않습니까?》
《조국은 명예보다 더 귀중합니다.》
《스포츠인에게 있어서 조국은 전세계입니다.》 한상수는 터져나오려는 노성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디서 도깨비같은 놈이 굴러와 지껄이고있는것이다. 도깨비와 함께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도깨비가 된다고 하더니 한상수 자신도 머리가 혼탕되는것 같았다. 이런 정신적으로 빈곤한자들이 축구감독이라니, 그래도 뭐, 인재를 찾으러왔다구?… 이런 얼빠진자에게 기대를 가지는자들 역시 어리석은자들인것이다.
한상수는 이자에게 자기 립장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뽈은 국경을 넘어가 찰수 있지만 체육인에게는 자기 조국이 있어야 하오. 뽀즈선생, 이건 좀 다른 문제지만 그 어느 나라든 자기 선수들이 승리하면 온 나라가 명절처럼 흥성거리오. 당신은 그렇게 흥성거려줄 나라도 없는 사생아이니 가련하구려. 이 땅에도 민족의 긍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뽀즈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파란 눈에서 불꽃이 튀였다. 성이 난 모양이다.
한상수는 거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조국도 모르는 가련한자들과 마주앉은것자체가 수치스러웠다. 뽀즈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비수》와 상대하다가 그야말로 시퍼런 칼에 만신창이 되도록 찔리운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망신을 당할대로 당한 뽀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리해할수 없는 사람이요. 재부와 명예가 눈앞에 있는데두 감옥에서 시들겠다고 하니…》
《한상수, 다시 생각해보시오. 이건 한번밖에 없는 기회요.》
백근식이 뽀즈가 일어서자 절망에 차서 황급히 부르짖었다.
《교무과장, 나는 축구를 사랑하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요.》
한상수의 어조는 칼로 자르듯 했다. 금시에 백근식의 얼굴이 험악하게 이그러졌다. 쓰디쓴 참패를 당한것이였다.
감방으로 돌아온 한상수는 가슴이 후련했다. 또 한차례 놈들의 모략을 짓부셔버린 긍지때문이였다. 본래의 비또리오 뽀즈는 그역시 인정하는 이딸리아의 유명한 축구감독이였다. 제1차세계대전직전에 그는 영국에서 류학하고있었는데 영국축구에 대하여 특히는 만체스터 유나이트도팀에 완전히 매혹되여 귀국하라는 아버지의 권고도 거역하고 계속 축구전술을 연구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기차표까지 보내와서야 이딸리아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이딸리아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다. 그는 주로 이딸리아 토리스구락부에서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이딸리아팀은 1934년과 1938년에 세계선수권을 보유하였으며 1936년에는 올림픽경기대회 축구경기에서 1등을 하였다. 그는 선수들에 대한 요구성이 매우 높았으며 심리학자이기도 하였다. 이미 오래전에 뽀즈에 대한 이러한 개인자료와 그의 축구전법들을 연구하고있던 한상수는 그를 존경하게 되였으며 그와 같은 유명한 감독이 되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는 교도소장방에서 은테안경을 쓴 외국인이 자기를 비또리오 뽀즈라고 소개했을 때 가벼운 흥분을 느끼였다. 허나 그 외국인은 뽀즈이면서도 뽀즈가 아니였다. 뽀즈의 숭배자에 불과했다. 다만 이웃나라의 국적을 가진 까딸로니아축구구락부 감독일따름이였다. 그의 말들은 화려하고 매혹적이였다. 축구선수들이라고 하면 어찌 세계에서 가장 오랜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로샤》구락부를 모르겠는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인 《바로샤》!…
그 자매구락부에서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흥분했었다. 한마디만 승인하면 죽음의 심연이 항상 입을 벌리고있는 이 지긋지긋한 감옥살이에서 벗어날수도 있었다. 허나 한상수는 《뽀즈》가 다름아닌 남조선계 《외국인》이라는것과 그가 늘어놓은 《세계의 공민》이니 《돈과 명예를 주는데가 조국》이라는니 하는 따위의 궤변을 듣고는 몸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놈들의 모략은 어떻든간에 그는 자기의 진심을 말했다. 그것이 진실인것으로 하여 더욱 피가 끓었다. 자기의 모국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는것이 아닌가. 어쩌면 인간이 이렇게 이질화될수 있는가.
한상수는 자기의 마음속에 잠시나마 숨어있던 유혹의 낚시를 뽑아던지며 다시금 인간적존엄과 민족적자존심이 거연히 머리를 쳐드는것을 느꼈다.
(너절한 놈, 나를 조국도 민족도 모르는 인간추물로 만들겠다구. 어리석은 놈들!…)
한상수는 자기가 그 가짜 뽀즈의 멱살을 틀어쥐고 바람벽에 머리를 짓쪼아주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나도 자유와 명예를 바라는 인간이다. 지금도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축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몸이 근질거린다. 아직도 축구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축구를 그처럼 사랑하지만 더 귀중한것이 있으니 그것은 목숨과도 같은 조국이다. 그런데 그 조국이 분렬되여있다. 그래서 축구의 《비수》가 통일의 《비수》로 된것이였다.
아, 어머니조국!… 뽀즈의 유혹을 물리친 지금에 와서 더욱더 그리워지는 품이였다. 그는 크나큰 자부심을 안고 맑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뙤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