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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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아를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중국 목단강에서의 집들이때였다.

집들이판을 크게 벌렸다. 이 고장의 법도이기도 했다.

목단강에 있는 조선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한때 화승대를 멨거나 두세 나라 국경을 넘나다니며 독립과 사회주의를 웨치던 사람들로서 식견도 높았고 인심도 후했다.

성민이네 짐을 풀기 시작한 날에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것없이 찾아들어 일손을 도와주었고 집들이때는 청첩을 받은 사람들은 물론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인사겸 구경군격으로 찾아들었다.

하나같이 조국을 빼앗겨 떠나온 사람들이라 조선에서 건너왔다면 무작정 친척처럼 여겼다.

성민이네는 오기 바쁘게 땅마지기도 얼마간 사고 외삼촌이 남기고 간 정미소를 추켜세우는것으로 소문을 요란스럽게 낸탓에 잘사는 집안으로 알려졌다. 그때문에 찾아드는 사람들도 거개가 잘사는 집 사람들이였다.

려아네도 잘사는 집이였다. 아버지는 없었으나 목단강교회의 권사로 있는 어머니가 거부의 며느리였던지라 많은 돈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려아와 한학급동창이였던 옥영이도 이 집들이때 알게 되였다. 한때 상해림시정부에 가있은 옥영의 아버지는 목단강녀중학교 영어교원이였고 어머니는 큰 장사판을 펼쳐 유족한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날 성민이네 어린축들은 뒤울안 찔광이나무밑에 자리를 잡았다. 방이란 방들은 죄다 어른들이 차지했기때문이였다.

성민이네 어린축이라고 해야 무산에서 살다가 왔다는 같은 나이또래의 동무 셋에다가 어머니가 끌어다앉힌 려아와 옥영이가 전부였다.

려아와 옥영은 첫눈에부터 고향처녀애들과 달랐다. 노란 달린옷에 맵시난 흰 구두를 받쳐신은것으로부터 깍듯이 머리를 수그려 인사를 하는것까지 고향에서는 볼수 없는것이였다. 겉으로는 무척 새침하고 얌전한 티를 보였으나 고향땅의 처녀애들보다 더한 활량들임을 알게 되였다. 물음도 먼저 건네였고 통성도 먼저 청했다. 어느 학교를 다녔는가, 무얼 희망하는가,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가. 옥영은 연거퍼, 려아는 간간이 물었는데 성민이 미처 대답을 못할 때면 옥영은 바보스럽다는듯이 혀를 차며 웃었고 려아 역시 어디서 온 촌아이인가 하는 눈길로 빤드름히 마주보았다.

성민이 처녀들의 이런 싸개에 들어 쩔쩔맬 때 다행히도 태민이 그자리에 끼여들었다. 성민이한테는 형님이라지만 아직 어른대접을 받을수 없어 이 방 저 방 인사를 마치고온 태민은 현란한 차림의 처녀애들을 보자 이건 어디서 날아든 메새들이냐 하는 눈찌였으나 자못 기세넘친 태도로 자리에 앉았다.

옥영은 태민형도 례외로 보지 않았다. 보다 얌전해진 대신 간사스러워졌다. 성민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태민이 어느 학교엘 적을 붙이느냐고 물었다. 성민이에게는 《붙였니?》 했다면 태민에게는 《붙이려고 하셔요?》라는 애교어린 말을 썼다. 돼지발쪽을 집어든 태민은 감사나울 정도는 아니지만 저으기 무뚝뚝한 눈길로 그를 스쳐보았다.

《너들 알바가 못돼.》

《아이, 큰어른이시네.》

너무나 예상치 않던 대답이여서인지 돼지발쪽의 한쪽귀를 짓씹던 태민은 눈이 둥그래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어른이다. 학교는 사범을 택했구.》

《사범학교?!… 그럼… 진짜였군요.》

《건 무슨 소리야?》

《이 집에서 사회주의를 한다고…》

《뭐?》

《사범은 사회주의자들을 키워내는 학교이지요. 정말 그것도 모르세요.…》

태민은 소리없이 돼지발쪽을 내려놓았다.

《사회주의란게 도대체 어떤 물건이냐?》

《아이, 사회주의도 모르세요. 사회주의야 사회주의지요.》

《너 매맞아본적 있니?》

《아니, 그럼 절 때리겠다는거예요?》

《그럴수도 있지.》

태민은 큰숨을 내쉬며 눈을 부릅떴다. 옥영은 그것이 더 재미난다는듯 생글생글 웃었다.

《태민오빤 동생과는― 판 다르군요.》

《뭐이 다르단 말이냐?》

《첫째로 무섭고 둘째로 막돌이예요. 셋째로는… 꿀꿀!》

옥영이가 입술을 빼주름히 내밀며 돼지흉내를 내자 태민은 턱을 쳐들고 웃음을 터쳤다.

《넌 알락까치로구나.》

《알락까치란게 뭐예요?》

《곱다는… 그 말이다.》

《아이, 절을 올리리까.》

《허허, 주의자타령이나 그만둬라. 우린 그런건 몰라.》

《걱정말아요. 조선사람치고 개가 되는것은 없어요.》

《허허, 네가 대단하구나.》

《대단하지 않구요. 그러니 남존녀비는 말고 우리한테서도 많이 배우라요.》

《그럼 어떤걸 배워주겠니?》

《우선 학교를 달리 정하라요.》

《건 왜?》

태민은 바싹 끌리는 기색이였다. 성민은 아직까지 그가 처녀애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옥영은 호기심과 정이 찰찰 넘치는 눈길로 태민을 보다가 방그레 웃었다.

《제 생각으로는 태민오빠가 미술을 하면 좋겠다고 봐요.》

《미술을?!…》

《그래요. 태민오빤 벌써 대상을 정확히 보는 안목을 갖추고있거던요. 이 옥영이가 곱다는걸 알았다는건 아름다움을 볼줄 안다는것이고 질긴 돼지발쪽을 이악스레 씹는것은 근면과 집중력이 있다는것이지요.》

《어랍쇼.》

《그리고 제가 미술을 좋아하기때문이지요.》

《흠, 그건 중요한걸.》

《그럼 됐어요. 이곳 상업전문에는 유명한 미술교사가 있는데 그 학교에선 미술교육을 첫째로 꼽고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교계통이거던요.》

《건 예수님의 턱밑을 핥으란건데 게 뭐 좋나.》

《아이, 정말 막돌이시네. 이 목단강에서 제일 점잖고 착실한 학생들은 다 거기 학생들이예요. 게 가면 태민오빠처럼 우락부락하고 무서운 성미도 고쳐질거구요.

려아, 그렇지 않니. 이 앤 진짜배기 예수님의 딸이예요.》

옥영이가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그때까지 락화생을 오물오물 씹던 려아는 단번에 얼굴이 빨개졌다.

《난 잘 몰라.》

태민은 부끄럼타는 려아와 녀걸역을 하는 옥영이를 보다가 빈정거리는 어조로 옥영에게 말했다.

《얘, 넌두 이 처녀처럼 얌전할수 없니?》

《호호, 지금 이 앤 태민오빠 동생과 한책상에 나란히 앉는 색시꿈을 꾸느라고 이래요.》

《얜!》

려아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 태민이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니 너희들은 다 한반에 다니게 되니?》

《그렇잖구요. 저와 려아는 이미 1국민학교의 한반인것이고 저 동생님도 우리 반에 오게 되지요. 그리고 려아와 동생님이 한책상에 앉게 하는건 제가 책임지지요.》

《너야말로 1등명물이구나.》

《1등똑똑이구요.》

옥영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면이 있은 날 후부터 옥영은 한주일이 멀다하게 성민이네 집에 놀러 왔다. 물론 올 때마다 려아와 함께 오군 했다. 그가 말한대로 자기네와 한학급이 된 성민이를 보러 온다고 했지만 실은 태민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태민이도 그만 나타나면 급한 공부마저 다 뒤밀어버리군 했다. 자기를 찾지 않을 때도 성민의 방에서 그들의 말소리가 울리면 이런저런 구실로 찾아들어 옥영이와의 말씨름에 열을 올렸다. 그 회수가 잦아지자 성민이와 려아는 아예 밀어젖히고 단둘이 만나는데만 급급해했다. 그렇게 되니 자연히 성민이와 려아도 단둘이 있게 될 때가 많았다. 려아는 《예수님의 수제자》여서 그런지 말도 조용조용 했고 웃을 때도 소리없이 웃었다. 수집음을 잘 탔다.

성민이가 려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것은 그가 중국말을 잘했기때문이였다. 려아의 중국말은 한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중국녀자한테서 배운것이라고 했다.

성민은 목단강에 올 때부터 한가지 계획을 품고있었으니 그것은 항일빨찌산들의 싸움터를 찾아가보자는것이였다. 이곳에서 듣게 된 이야기들때문에 더욱 그랬다.

오늘은 어디를 쳤다, 래일은 어느 《토벌》대를 요정냈다, 지명과 때려눕힌 왜놈수자까지 상세히 렬거되군 했다. 그런데 이 물계에서는 성민의 선생급이라고 볼수 있는 무산동무들도 싸움터까지 찾아갈 엄두는 못냈다.

왜놈순사와 군대한테 잡혀 죽는다는것이 첫째 리유고 중국말을 모르는데 어찌 갈수 있느냐 하는것이였다.

집에서도 말렸다. 감옥에 잡혀간 외삼촌의 친척이라서 오자부터 왜놈경찰들이 들싸대는데 그러다가 자칫 걸리면 화를 당한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한동안은 싸움터들에 대한 지명연구와 전투이야기들에 대한 수집만을 하며 케를 보았다.

그런중에 국민학교 6학년 여름방학때 있은 려아의 독창회가 계기로 되였다.

시에서 주최한 이 독창회에서 려아는 모짜르트의 《자장가》와 《오쏠로미요》, 《사우》(동무생각)를 불렀는데 어떻게나 잘 불렀는지 《묘령의 쏘프라노가수》로 《만선일보》에까지 소개되였다.

그날 성민은 려아로부터 받은 《초대석》입장권을 가지고 공연을 보았다. 학생으로서는 오직 성민이만이 받은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성민에 대한 려아의 남다른 관심과 신뢰가 아니겠는가.

가자! 려아는 대바람에 찬성하였다. 어찌 보면 성민이보다 더 극성이였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소녀의 랑만이 더욱 그렇게 한것 같았다.

성민은 그에게 《묘령의 쏘프라노가수》로 소개한 신문까지 지참하게 하였다. 왜놈군대나 순사들과 맞다들면 그것이 은을 내리라고 믿었기때문이였다.

뭣때문에 싸다니느냐 물으면 동식물채집이라고 하기로 약속했다.

집에도 그렇게 말했고 동행으로는 무산동무 셋을 택했다.

새벽일찍 기차를 타고 목단강 다음역에서 내렸다. 역앞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있는 말파리들중에 마음어지게 생긴 늙수그레한 중국인마부의 말파리에 올랐다.

아, 얼마나 가슴들뛰던 길이던가.

절렁절렁 울리는 워낭소리, 경쾌하게 달리는 말발굽소리, 마부도 좋아했다. 흰 크레브달린옷차림의 려아를 볼 때면 벙싯벙싯 웃기도 했다. 그런데 시가지밖을 돌아보겠다던 성민이네가 이시하라 《토벌》대가 몰살당한 싸움터까지 가보겠다고 하자 마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곳엔 사람도 살지 않고 집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집은 새침데기로 알았던 려아가 얼마나 재치있게 구슬렸는지 마부는 《호, 호.》(좋다)를 련발하며 신이 나서 채찍을 휘둘렀다. 자기도 뻔질나게 다니는 곳이라고 했다. 왜 다니는가고 하니 그가까이 있는 절간에 친척이 있기때문이라고 했다.

2시간가량 가니 산기슭밑에 타버린 집들이 보였다.

마부는 왜놈《토벌》대가 불태운 집들이라고 했다. 그 마을을 조금 지나자 2채의 커다란 토벽건물이 나타났다. 일본군대들이 쓰던 군용마구간 비슷한것이였는데 왜놈《토벌》대가 있던 건물이였다. 《토벌》대는 거의 전부가 그 건물안에서 녹아났다고 했다. 건물의 토벽은 도처에 구멍투성이였다.

토벽들이 통채로 허물어져내린 곳도 있었다.

《…쿵! 쾅.》 려아에게 손세까지 써가며 하는 마부의 말을 통해 그싸움이 얼마나 멋있었는가를 알수 있었다.

건물안에 들어서니 고양이만 한 쥐들이 무리지어 달아났다. 어떤 놈들은 도망칠념도 하지 않고 웬 불청객이냐 하는듯 지켜보았다. 그통에 려아는 까무라치듯 놀라 뛰쳐나갔고 그때부터 내내 겁질린 얼굴이 되였다.

성민이와 무산동무 둘이 몇개의 총알을 얻어쥐고 범잡은 기상으로 나왔을 때 친절스러운 마부는 친척이 있다는 절간까지 가보자고 하였다. 재미나는 사람을 볼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옮겨놓을 때 려아는 무척 쑥스러운 기색이였다.

《옴쟁인데 조선사람이라고 해요.》

조선사람이라는것과 재미나는 사람이라는 말에 절간까지 올라갔다.

산중턱에 있는 암자비슷한 절간이였다. 가는 길에 그 옴쟁이가 《토벌》대에 있었음을 알았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하니 마부는 웃기만 할뿐 가서 들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려아에게 몇마디 수군거렸는데 려아는 단박 얼굴이 빨개졌다.

마부의 친척과 함께 옴쟁이가 나타났을 때 몸서리가 처졌다. 옴쟁이의 얼굴은 온통 푸릿푸릿한 멍과 흠집투성이였고 두눈은 연기에 쐬운듯 흐리멍텅했다. 마부가 중국말로 몇마디 하자 그의 흐리멍텅한 눈에 놀라움이 비꼈다.

《조선애들이란 말이지.》

물끄러미 성민을 보다가 긴 한숨을 쉬며 돌의자에 앉았다.

《너희들도 여기 와서 앉아라.》

곁의 돌의자를 가리켜보였다. 려아만은 그냥 서있고 성민이와 동무들은 돌사자가 우뚝 서있는 옆의자에 가앉았다.

《너희들은 내 얘기를 듣자고 왔다는거지?》

옴쟁이의 눈은 다시 흐리멍텅해졌다. 선뜻 대답을 할수 없었다. 혹시 알겠는가, 《토벌》대에 있었다는데.

성민은 그가 앉은 돌의자에 지전 몇장을 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옴쟁이는 그에 대해서 모르는척 하며 한동안 려아만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난 누구한테도 내 얘기를 숨기지 않는다. 이제 살아야 얼마나 살겠고…》 목탁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려아가 왜 마부의 수군덕거림에 얼굴을 붉혔는가를 알게 되였다.

유격대는 새벽에 《토벌》대를 들이쳤다. 그때 옴쟁이는 변소간에 있었다. 어디 도망치려고 했으나 몰박는 총소리와 작탄소리에 벌벌 떨기만 하다가 유격대들의 수색이 벌어지자 한길 넘게 파진 변소구뎅이안에 몸을 숨겼다. 냄새도 뭣도 다 잊고 얼굴만 내민채 숨을 쉬고있는데 변소문이 벌컥 열렸다. 어망결에 살려달라는 소리부터 했다. 그말에 유격대원은 조선사람인가고 따져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유격대원은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구뎅이안으로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다시 빠져나오기가 수월치 않았다. 끙끙 갑자르며 비좁은 구멍으로 어깨부터 뽑으려는데… 총창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옴쟁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그때를 그려보는지 눈까지 반쯤 감았다.

《그건― 내가 잘못 안거다. 그 총창은 내 뒤덜미의 옷깃을 뀄고 그다음에 몸이 건중 들리더구나. 죄꼬만 사람이 기운이 장사였다.… 그도움으로 변소간에서 나오니 뭘하는 놈이냐구 묻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돈을 많이 준다기에 순사질을 하다가 《토벌》대에 갔구 통역도 하고 심부름하면서 죽지 못해 산다구. 그러니까 당장 빨리 가서 몸을 씻으라는거다.》

《그러니 용서를 받은것이겠습니다.》

《그래, 용서를 받은것이지. 〈조선사람이기때문에 살려준다.〉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개질을 하지 말고 고향에 가 살라구 하면서.》

《그런데 왜 고향엔 가지 않았습니까?》

《내가 어떻게 고향엘 갈수 있겠니. 페물에 병신이 된 형편에…》

《왜요, 그때 인차 몸을 씻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씻는다는거냐, 힘이 다 빠진판에. 일본군대시체가 피더미로 널린걸 보니 더욱 그랬다. 한데 뒤미처 들이닥친 일본군대가 옹근 사흘동안 나를 닥달질했다. 몽둥이로 얻어맞구 불두덩일 들이채우구… 내가 통비분자가 아니란걸 뻔히 알면서도 제 족속들 죽은것때문에 앙갚음을 한거지. 그다음 몸에 똥독이 퍼지니 내던지더구나. 모진게 목숨이야. 옹근 한달을 앓았는데 일어서고보니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란걸 알았다.

그때 여기 절간 중들이 나를 도와주었지, 부처님한테 잘 빌어 래세에 가서라도 사람답게 살라구.》

기차시간때문에 더 들을수 없었다.

떠나올 때 옴쟁이는 돌의자에 놓았던 돈을 집어들고는 허청허청 절간안으로 사라졌다.

오는 길에서 그에 대한 말을 많이 했다.

사실이라거니, 아니라거니, 돈때문에 꾸며낸 거짓말이라거니 하는중에 조선사람망신을 시킨 그런 놈은 가차없이 쏴버려야 한다는데서는 일치를 보았다.

려아만은 내내 말 한마디없이 몸을 옹송그리고있었다. 성민이네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던 마부가 무슨 말들인가 물었을 때야 입을 열었다.

마부는 옴쟁이의 말 전부가 사실이라고 했다. 조선에서 순사질을 하다가 중국에 온 그놈은 어느 일본군장교의 곰보딱지딸과 눈이 맞아 장가를 들었는데 그때문에 일본군대의 조선말통역관으로 출세를 했다.

그놈이 시체더미를 뒤진것은 제 장인인 일본군장교놈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고보면 백번 쳐죽인대도 마땅한 놈이였다.

성민이네의 이 말에 마부도 동감했다. 하지만 유격대는 그걸 알았어도 살려줬을거라고 했다. 그때 《토벌》대에서 물심부름, 장작패기를 하던 중국사람도 살려주었다고 하며 유격대는 큰사람들이여서 그렇다는것이였다.

그 말에 성민은 넘치는 환희를 느꼈다.

큰사람! 여기에는 많은 뜻이 비껴있다고 보았다. 훌륭하고 선량한 그리고 강자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강자! 용서란 오직 강자들만이 하는 법이 아닌가.

가슴뛰는 생각은 기차간에서도 계속되였다. 다들 노그라져 끄덕끄덕 졸고있을 때 성민은 옴쟁이에 대해서도 생각하였다.

인간아닌 인간, 그 인간은 출발점에서부터 추물이였다. 만약 그에게 조그마한 인간적부스레기가 있었다면 용서가 아니라 죽음을 바랐을것이고 더 좋기는 유격대를 따라갔어야 했을것이다.

(용렬하고 너절한 바보.)

사람은 출발점에서부터 바른 길을 잡아야 한다, 혹시 그 길에서 탈선이 있었다면 그 즉시 바로잡을줄 알아야 하고, 그러자면 비상한 용기와 대담성을 지녀야 할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성민은 그 일에 대해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집안어른들을 근심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동무들과도 그렇게 약속했다. 그러나 태민이가 방학차로 집에 들렸을 때는 더 참아낼수 없었다.

누런 만주군관학교제복이 일본군복비슷한때문이였던가. 그때 태민의 앞날에 대한 위구가 있었던지도 모른다.

옴쟁이에 대해서는 자기가 생각한것까지 죄다 말했다.

처음엔 어쩌자고 그런 모험을 하느냐고 나무라던 태민이 《그따위 녀석은 조선사람망신인데―》하며 분을 참지 못해 씨근벌떡거렸다.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 할 땐 아직 총이 없어 못 가겠다고 하며 성민이의 이마에 밤알총을 놓았다.

성민은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였다.

그뒤 성민은 또다시 모험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려아가 물러났다.

성민은 성이 독같이 났다.

《왜 안 가겠다는거니?》

《무서워.》

《뭣이 무섭단 말이냐. 혹시 넌 그 쥐들과 옴쟁이때문에 그런건 아니니?》

《몰라, 다 무서워.》

성민은 목단강1중을 졸업하게 된 해 가을 봉천에 있는 일본군 조병창에 실습로동을 가게 되였을 때 또 한번 커다란 감격과 흥분을 체험하게 되였다.

그 조병창에는 대수리를 요하는 파괴된 땅크와 대포, 기관총들이 가득 들어차있었는데 어느 부대가 어느 전투에서 사용하다가 파괴되였다는 기록부까지 붙어있는것이 있었다.

박격포들과 기관총들 거의 전부는 항일유격대와의 싸움에서 파괴된것들이였다. 성민은 그 기록부 몇장을 몰래 뜯어내여 깊이 건사했다.

그것이야말로 항일유격대의 위용에 대한 증표였고 조국의 해방을 예시하는 상징이였기때문이였다. 이로 하여 고역처럼 느껴지던 실습로동도 어렵지 않게 할수 있었다.

그런데 대엿새가량 일하고있을 때 목단강고녀(고등녀학교) 졸업반학생들과 만주군관학교 졸업생들까지 그리로 밀려들었다. 고녀학생들은 근로봉사때문이였고 만주군관학교 학생들은 연수참관이였다.

그속에는 물론 태민이와 려아도 있었다. 태민이와는 그가 성민이네 기숙사에 찾아온것으로 만나게 되였고 음악부졸업반생이였던 려아와는 의무실로 가는 길가에서 만났다.

웬 안경쟁이키다리의사와 나란히 걸어나오는 흰 위생복차림의 처녀가 려아일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방학때도 자주 만났지만 그 사이에 몰라보게 변했던것이다. 날씬한 몸매를 감싼 흰 위생복과 키다리의사의 찌프린 눈때문이기도 했다.

려아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성민은 수리작업용의 낡은 군복을 입고있었던것이다.

《학생이 주물작업장에서 상한 사람인가?》

의사가 그를 멈춰세웠다.

《아닙니다. 전 그때문에 지금 의사선생님을 찾으러 가던중입니다.》

성민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려아가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없었다.

성민이네가 사락작업(주물품의 모래털기)을 하던데서 갓 부은 포바퀴형조품이 폭발하여 몇몇 애의 눈에 모래알이 날아들었기때문이였다.

려아와는 오후일이 끝난 다음 파철창고뒤의 공지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군대식규률이라 저녁식사까지 군률에 따라 하고 나오다나니 어슬녘이였다. 순찰경비병들이 어슬렁거리는 작업장구내를 벗어나 철조망 가까운 파철창고뒤로 가자 문득 가냘픈 비명과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더 올려라, 더. 멋진데, 멋져… 말큰하고…》

3명의 목단강1중 학생들이 쎄라복차림의 려아를 그러안고 씩씩 황소숨을 몰아쉬며 움지락거리고있었다.

려아의 입은 웬자의 손에 틀어막혀있고 한 녀석은 그의 치마를 말아올리며 키드득거렸다.

《야!―》

성난 갈범처럼 내달려갔다.

《아, 지군인가.》

성민이네 반 아이들은 아니여도 풋낯이나 있는 일본애들이였다. 다들 육담의 명수들이고 유곽에까지 다니는것을 자랑처럼 떠들던 망나니들이였다.

《이새끼들아, 놓지 못해.》

목단강1중이래 처음으로 상스러운 말을 하며 려아의 치마를 걷어잡은자를 발로 차 딩굴게 하고 려아의 입을 틀어막은자의 팔을 거세게 나꾸챘다.

《이건 왜 이래.》

두 애가 헤식은 웃음을 지으며 성민을 볼 때 팔을 엇가로 끼고 구경하던 후지산(체육선생이 붙여놓은 별명이였다.)이 성민의 어깨를 틀어잡았다.

《넌 뭐가 돼서 이 지랄이냐?》

《이 앤 내 동무다.》

《동무?! 색시감이라 그 말이냐.》

《시시한 말 그만둬.》

《같이 놀면 안될가.》

성민이가 보라는듯 얼굴을 싸쥔채 떨고있는 려아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성민은 이자가 학교적으로 유도패권자임을 알았으나 참을수 없었다.

《놔라!》

말보다 손이 앞섰다. 그자의 팔을 쳤다고 생각한 순간 몸이 허공에 떴다가 태질을 당했다. 눈앞이 핑 돌았다.

《맛이 어때. 여, 저걸 마저 벗겨라. 센징주제에 건방져.》

하지만 두 애는 비슬비슬 눈치만 보았다. 그에 악이 받친 후지산이 《에익, 오좀싸개들!》하더니 성민이 미처 어쩔새없이 려아의 쎄라복을 콱 잡아챘다. 북―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외마디비명이 울렸다. 성민은 어떻게 달려나가고 어떻게 들이받았는지 모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자기가 후지산의 몸뚱이를 타고앉은것을 알았다. 목을 죄였다. 성민으로서는 일생 처음 해보는 싸움이였다. 목을 죄이는것은 궁끼놀이를 할 때 영길이네들한테서 배운것이였다. 일본애들을 고상(일본말, 항복)시킬 때 목을 죄인다는것을 그때 알았다. 지금은 고상이 아니라 이자가 려아한테 다시 덤벼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것으로 만신의 힘을 다 손에 모았다.

《끅, 끅.》하는 소리에 《왜 가만들 있어.》하는 말이 들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뒤골이 쾅 울리며 눈알이 튀여나올듯 했다.

연신 날아드는 발길에 벌떠덕 일어나 손으로 막으려 했으나 헛된 일이였다.

《빠가!》

후지산의 노성과 함께 성민은 또 한번 공중태질을 당했다.

눈앞이 가물가물한 속에 후지산이 자기 몸을 깔고 목을 죄이는것을 알았다.

성민은 몇번 손으로 밀었으나 무익한 일이였다. 숨이 막혀들었다.

《자, 잘못했다고 빌어라, 빌어. 고상! 고상을 하란 말이다.》

성민은 안하겠다고, 죽어도 안하겠다고 말하려 했으나 입을 열 기운이 없었다.

방금전에 뜬듯싶은 초생달이 노란 불꽃처럼 아물거리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달이 다시 보이고 숨이 콱 열리였다. 바위돌처럼 그를 짓누르고있던 후지산이 나동그라지고 도망치려던 두 애도 살맞은 개구리처럼 뻗어버렸다.

《여 태민군, 너무하지 않나. 애들 싸움엔 공정해야지.》

음랭한 목소리. 가쁜 숨결을 내뿜는 태민의쪽으로 2명의 개똥별들이 스적스적 걸어왔다.

《너희들은 입다물어.》

쇠장을 토막낼듯 한 태민의 웨침에 2명의 만주군관학교 거구들도 주춤하며 멈춰섰다.

태민은 후지산의 목덜미를 끄잡아 일으켜앉혔다.

《꿇어앉앗. 무릎을 꿇란 말이다.》

그의 노성에 살맞은 두 개구리도 엉거주춤 꿇어앉았다.

《너희들의 죄를 알겠는가.》

대답이 없었다.

《빌어먹을!》

태민의 손이 언뜻하더니 후지산이 《억.》하며 쓰러졌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2명의 개구리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빌자 태민은 《흥.》 하고 코소리를 내더니 두팔을 깍지꼈다.

《그럼 너희들의 잘못을 말하거라.》

《잘못했습니다.》

같은 말이 반복되였다.

《쓰레기같은것들, 그럼 똑바로 알아두거라.》

태민의 눈에서 또 한번 시퍼런 불꽃이 번쩍거렸다.

《첫째! 연약한 녀성을 희롱한것이다.

둘째, 교칙을 위반하고 싸움을 도발한것. 맞느냐?》

《네, 네, 잘못했습니다.》

《셋째, 내선일체의 국시를 어기고 애국반도인을 모욕한것이다. 맞느냐?》

《잘못했습니다.》

《좋다. 그럼 가거라.》 태민은 돌아섰다. 스적스적 걸어가는 그의 옆으로 후지산들이 날래게 빠져달아나자 2명의 군관학교 거구들도 맥없이 따라갔다.

려아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 달빛보다 더 창백한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였다.

《어데 다치진 않았어요?》

《아니.》

창피스럽고 부끄러웠다. 자기도 울고있다는것을 알고 고개를 돌렸다.

《려아가 알렸나?》

《네.》

《그럼 가봐. 내 조꼼 있다 갈테니.》

《일어선 다음… 가겠어요.…》

려아의 손수건이 이마와 입술에 와닿았다.

《그러지 말고 어서 가봐.》

헛기침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꼴 좋―다.》 태민형이였다. 《사내명색에 훌륭한 보리자루로구나.》

성민이도 형님처럼 웃어보이려 했다.

《후지산은 제꼈는데 세녀석이 다 달라붙어서―》

《닥쳐.》

태민의 얼굴이 험상스럽게 이지러졌다.

《사내란 세놈이건 열놈이건 다 이겨야 한다. 이겨야, 이겨야 한단 말이다.》

태민은 앞에 보이는 돌멩이를 콱 걷어차고는 휙 돌아서갔다.

성민은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냥 보기만 했다. 이때처럼 형님이 돋보이고 애정겹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였다.

《려아, 우리 형님이 정말 멋있지?》

《그래요. 헌데 좀 무서워요. 뭐랄가, 성서에 나오는 다위드같아요.》

《다위드란게 누구야.》

《그는 골리아데라는 거인을 때려눕힌 대장부예요.》

《그렇다면 우리 형님이야말로 그런 사람이야.》

《성민씨도 그래요.》

려아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는 찢어진 옷때문에 드러난 가슴을 가리우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전… 오늘일을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나도 그래. 다시는 패배자가 되지 말아야 하니까.》

성민은 려아가 하는 말의 의미를 미처 몰랐다.

다음날부터 려아는 성민이를 만나는것을 피했고 혹간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성민이 려순공대에 입학했을 때는 축하전보에 소포까지 보내주었다. 공책과 만년필이 들어있는 그 소포에는 백합꽃을 수놓은 손수건이 들어있었다.

그후에도 계속 소포가 왔는데 그때마다 백합꽃손수건은 빠지지 않았고 겨울철을 앞두고 보내온 소포안에는 털실목도리와 함께 두줄짜리 편지가 들어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떠본 목도리입니다. 저의 마음으로 알고 추위를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성민은 이때에야 려아의 감정이 단순한 소꿉시절의 우정만이 아닌것을 알았다.

놀랐다. 조병창 파철창고뒤에서 무엇때문에 그가 얼굴이 빨개졌고 잊지 않겠다느니 뭐니 하며 내우를 했댔는가까지 알게 되였다.

기분으로는 과히 나쁘지 않았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억이 막혔다.

(안된다!)

그와 자기사이에는 깊은 계선이 가로놓여있다고 생각했다.

골리아데를 때려눕힌 다위드는 침마르게 칭찬하면서도 왜놈들을 쳐눕힌 유격대의 싸움에 대해서는 무섭다고 하지 않았는가.

녀자니까 그럴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그가 보낸 털실목도리는 썼다. 하분하분하고 부드러운 그 목도리는 려순의 겨울추위를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였다.…

려아!… 성민은 그의 이름자아래에 친 밑선을 보며 자기가 쓴 글을 볼 때의 려아를 상상해보았다.

어느 정도로 리해하고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사실을 정확히 쓰는것은 쉬웠지만 자기의 생각과 감정까지를 정확히 밝힌다는것이 무척 어렵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펜을 다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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