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5

 

《어, 대단하십니다, 글은 명필이고.》

메밀눈의 소령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틀 채 안되는 사이에 스무나문장 넘게 글을 썼으니 그럴만도 할것이였다.

《뭐 붓글은 좀 쓰지만 펜글은 신통치 못합니다.》

《웬걸요, 명필이라구요. 선생의 기품까지 느껴지는 글입니다. 획이 곧으니 성정이 굳세고 바른것이고 옆으로 누워 내달리는 기세이니 진취감과 씩씩함이 느껴지는군요.

아, 광명단이라… 저도 소학교 5학년땐가 소년탐험대라는 조직에 들었댔지요. 뭐 어린시절에야 무슨 일인들 없었겠습니까. 참, 섬세한 기억에 솔직한 분석이군요. 〈왜놈들의 압제와 빈부의 차이를 없앤다는 민중본연의 의식을 따랐다고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똑똑한 애들의 흐름에 섭쓸리고싶은 천진한 마음에서―〉 이런 식 분석과 그때의 생활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쓴다면 훌륭한 논픽숀으로 될겁니다. 게서는 오체르크라고 하던가요.… 지금 여기선 논픽숀바람이 셉니다. 급높은 잡지에 실린 논픽숀들엔 거액의 돈이 지불되고… 선생의 일후 생활은 이런 글만으로도 희한번쩍할겁니다.

여기 18에 2라는건 1등없는 2등이라는거겠습니다.》

《네, 거기도 썼지만 목단강1중에서 려순공대에 추천받은 학생은 18명이였는데 추천서의 학력순서에 2등으로 썼더군요.》

성민은 례입을 썼다. 이자의 기분을 거슬려 그간 쓴 글들이 휴지장처분을 받는다면 이틀간의 공력이 수포로 돌아가는건 둘째로 치고 모처럼 세운 계획이 파탄될것이였다. 이 글은 태민형만이 아니라 5. 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까지, 좋기는 알건모르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본다면 더이상 원이 없을것이였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선생이야 분명 1등이였겠지만 조선사람이라는것으로 2등을 매겼겠지요. 원체 쪽발이들이란 그런 놈들이지요.

하여튼 재미있습니다. 무슨 소설을 보는것 같군요.》

소령은 련속 종이장을 번져나갔다. 휴식을 모르는 입에서 줄닿게 튀여나오는 감탄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끊어졌다.

《잘 보이지 않는걸.》

혼자소리처럼 말하고는 고촉전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소이폭탄의 폭발때보다 더 강렬한 불빛이 망막을 찔렀다. 대뜸 쓰린 눈물이 내배였다. 하지만 눈을 감지도 또 눈물을 닦을념도 하지 않고 소령을 쏴보았다. 희디흰 은빛공간속에서 소령의 모습은 거뭇한 물체로만 비껴들었다.

이때부터 소령은 말이 없었고 종이장 번지는 소리만이 규칙맞게 들렸다.

《야, 이거.》

소령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내가 시력이 좋지 않다보니.》

소령은 이런 말로 전등을 켠데 대하여 량해를 구하며 성민의 눈물진 얼굴을 얼핏 스쳐보고는 종이장에 시선을 떨구었다. 마지막페지까지 다 읽었음을 알수 있었다.

《참, 글을 잘 쓰시는군요.

그런데 다시 썼으면 합니다.》

《다시 쓴다는건…》

《뭐… 전부 다 다시 쓰라는건 아닙니다.》

소령은 나직이 한숨을 짓고 지금까지 없던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선생도 모르지야 않겠지요.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의도하는지… 솔직히 말씀드려 이 글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선생의 운명이… 사실 저희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보내고싶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리해됩니다.》

《암, 그럴테지요. 그렇구말구요.》

소령은 희색이 만면해 종이장을 되번져갔다.

《여깁니다, 여기! 선생은 바로 이때부터 북한제도의 모순을, 그 사회의 악페를 체감하게 되는것이고 그로 인한 희생자로 된셈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때의 실상과 느낌을 깊이 파헤쳐 써야 할것입니다.》

《허허, 뭔가 착각을 한것이 아닙니까. 거기엔 제도와 사회의 모순이 아니라―》

《잠간.》

소령은 문가에 지켜선 2명의 사병을 돌아보며 《너흰 나가봐.》하고 꽥 소리치고는 스위치가 붙어있는 벽에 다가갔다. 그의 손이 언듯하자 벽 한면이 부르르 떠는듯 한 속에 광폭스러운 굉음이 터져나왔다.

껄껄껄, 하하하 하는 남녀의 웃음과 유리창을 쇠못으로 긁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소리, 세상의 온갖 거치른 소음들을 죄다 모은듯 한 불협화음이였다.

《리해해주십시오.》

우울한 얼굴로 자리에 와앉은 소령은 성민의 분기찬 눈길과 부딪치자 머쓱한 태도로 웃었다.

《어쩌겠습니까. 저도 이 히스테리음악엔 질색이지만 속담에도 있지 않습니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난 선생에게 불리한 말이 남들에게 알려질가봐 이렇게 하는겁니다. 여기엔 별의별 장치가 다 있거던요. 물론 저 음악은 우리가 심문할 때 상대방의 심리와 신경을 자극하기 위한것입니다만.》

성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한 연극인가.

《제가 바라는건…》

소령은 계속했다.

《선생이 한시빨리 자유의 몸으로 되는것입니다. 다시 쓰는건 바로 여기서부터 하면 되겠습니다. 지장군의 탈출과 그뒤 군교육부 지도원을 하면서 느끼게 된 공산사회의 모순과 악페를…》

《여보시오, 이건 무슨 아이들 장난을 하자는것이요?》

《장난이라구요?》

소령의 메밀눈에 반디불같은것이 팡끗거렸다. 하지만 순간뿐이였다.

《선생, 이러지 맙시다. 선생은 지금 우리들의 관용을 놓고 무슨 얼뜨기들의 연극같은것으로 보는것 같은데… 건 심한 오해입니다.》

성민은 새삼스러운 긴장이 왔다.

그렇다, 이자나 택규는 결코 얼뜨기도 연극배우도 아니다.

지금까지 졸렬하게 본 《연극》에 어떤 타산과 심리적계산이 깔려있는가가 직감되였다. 무장해제를 위한 놀음!… 흔히 사람들은 상대가 경박스럽고 졸렬하다고 보면 긴장감을 잃게 된다.

《내 말이 틀립니까?》

《옳소.》

《역시 선생은 솔직한분이군요. 참, 바다가태생이지요?》

《그렇소.》

순순히 대답하는 자기자신에 화가 났다.

《음악》이 바꿔졌다. 스위치밑의 글자판을 돌리고 와앉은 소령은 두눈이 맞붙어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절벽을 휘때리는 파도의 명동소리에 이어 께륵께륵하는 갈매기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거센 바람소리에 섞여 울렸다.

《이 소리는 듣기 좋지요.》

《괜찮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도 좋아합니다. 프랑스의 어느 학자가 스트레스해소제로 만들었다는 음악인데 저 소리를 듣게 되면 마음에 안정이 오고 인생살이라는것이 좀 어려운 때도 있지만 날바다의 새들보다는 한결 낫다는 위안이 들지요.

참, 형님되는 지장군님 부관이 어저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형님의?!―》

《네, 사실은 만나면 안되는것이지요. 하지만 풋면목도 있는데다가 지장군한테서 왔다는것으로 규정을 위반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말에 의하면 지장군께서는 지금 식음을 전페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수일안으로… 끝낼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뭘 그렇게까지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제가 바라는건 큰것이 아닙니다. 좋기는 처음 만났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북의 실상과 선생이 알고있는 한에서의 당, 국가, 군사비밀까지 밝혀놓는다면 큰 공로를 세우는것으로 되지만 지조와 의리를 귀중히 여기실 선생으로서야 그런 일을 할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그건 불문에 붙이고 여기 1947년도 당시부터 체험하게 된 제도상모순을… 바로 그러그러하기때문에 일약 우리한테 왔다는것만 있으면 충분할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이 쓴 글은… 정 반대거던요, 완전히 이북찬양의 선전물로 되였고.》

《나는 진실그대로를 썼을뿐입니다.》

《선생, 수신교과서야 어릴 때나 참고하는것이지요. 난 선생의 글을 보면서 우리가 바란 론거와 실례가 충분히 묻혀있다고 봤습니다.》

《어떤데서 그런걸 봤습니까?》

《여기, 여기에도 있지요.》

소령은 마지막장의 한 대목을 짚었다.

《제가 읽지요. 〈…이렇듯 나의 친지들과 벗들이라고 한 사람들이 조국과 고향을 등지고 남으로 떠나온데는 나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옳지요? 여기서 〈나〉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그들을 쫓아보냈다는것으로 하면 간단히 해결될것입니다.

계속하여 〈하여 나는 그들모두를 만나 지난 기간의 오해와 편견과 현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마음과 뜻을 같이하게 하기 위해〉라고 썼는데 이런건 깨끗이 지워버리면 되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성민의 날카로운 눈빛에 소령은 락담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그건 제가 결론을 내릴것이 못됩니다. 명백한것은… 사회와 영원히 격페되고 인생과도 작별할수밖에 없다는 그뿐입니다.》

《각오하고있소.》

《그러니 이 글은 유서겠습니다.》

《정확히 맞혔소. 다만 한가지 부탁할것은… 이 글을 당신네 부사령관과 법관들 그리고 나의 형과 이 글에 있는 월남한 나의 옛동무들모두가 보게 했으면 하는것이요.》

소령은 침묵을 지켰다.

파도의 명동도 소연한 바다의 울부짖음도 가늘어졌다.

《노력해보지요.》

소령은 례절맞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야!―》

그의 꽥소리에 메뚜기처럼 뛰여든 두 사나이가 먹이를 본 들개마냥 성민이에게 다가왔다.

《가만있어.》

소령은 또 한번 성민을 스쳐보고는 《음악》스위치를 눌러 껐다.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있습니다.》

소령은 이 말을 남기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성민은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감을 느꼈다.

귀가에는 소령의 말이 아니라 파도의 명동과 갈매기들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그냥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이상스럽게도 험상궂은 바다가 아니라 조용한 바다, 유유히 날아예는 갈매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잠시후 소령이 밀어놓은 종이장을 간추려모았다. 군데군데 밑선과 점이 찍혀진것이 알렸다. 려아와 명례의 이름밑에도 점이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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