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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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려행이였다.
이 길에서 고향사람들과도 다시 만났고 벗과 원쑤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였다.
죽음과의 대화는 이미 끝났고 이젠 마지막결산, 한 인간의 마지막표말을 바로 세우는것만이 남았다는, 이 하나의 집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이때문인지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이렇다하게 방해되는것도 없었다.
2명의 사병은 말뚝에 벙어리였고 고문장에서 드문히 들려오는 아츠러운 비명과 복도바닥을 울리는 군화소리도 태연히 스쳐들을수 있었다. 괴로운것은 그리운 사람들과 다시 만날수 없다는 그리고 자기의 무덤가엔 따뜻한 눈물 한방울도, 꽃송이 하나도 놓일수 없다는 아픔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뿐이였다. 그럴 때마다 앞벽에 설치된 고촉전등을 지꿎게 쏴보았다.
피심자의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설치한 그 전등에서 강렬한 불줄기가 쏟아져나오는듯 한감을 느끼려 했었다. 1952년 854.1고지공격전투때 그는 비발치는 적의 기관총사격을 맞받아 보병총 하나를 들고 돌진했다.
글의 방향과 요점을 잡는데서는 메밀눈의 소령이 식자자랑으로 씨벌인 (본인으로서는 정략적인 심리전이였겠지만) 운명과 선택이라는 말이 도움으로 되였다.
이 글은 소령이나 택규만 아니라 태민이며 옥영이로부터 경자또래의 모든 사람들이 읽기를 바랐다. 운명과 선택, 그가 운명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된것은 여섯살때인가 아버지를 따라 어느 한 집에 갔을 때였다.
그 집주인은 아버지의 옛 선생으로 경성지방에서도 손꼽히는 독립운동자였는데 10년간의 옥고를 마치고 돌아온 뒤 늘 병석에 누워있는 몸이라고 했다. 베감투를 쓴 어른들과 양복에 검은 완장을 팔에 낀 사람들이 붐비는 속에서 그 집주인의 아들이 아버지를 맞았다.
《어찌된 일인가.》
허겁지겁 대문턱을 넘어서며 창황히 묻는 아버지의 물음에 그 집 아들은 주먹같은 눈물을 떨구며 《지난밤에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운명이란 죽었다는 말이구나 하는것은 그때 깨달은거고 그뒤 옥편을 뒤지며 그 말의 뜻이 여러가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행운》, 《액운》, 《죽음》 등등으로 그가 찾아 써놓은 글을 본 할아버지는 집안신동의 재주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한다발의 칭찬을 안겨주었는데 가문대대의 행운과 성민의 복운을 말하며 이 모든것은 조상덕이고 운수 팔자라고 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마을어른들한테서도 자주 들었고 그 고장의 한다하는 관상쟁이자 의원인 아낙도사(녀도사)도 그렇게 말했다.
성민이 일곱살때인 어느 가을날에 있은 일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성민은 아낙도사라고 하면 머리를 저었다. 대대로 유학자이고 마을의 으뜸가는 존위들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때문이였다.
할아버지는 무당의 관상술을 놓고 잡술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미신이라고 했다. 여기에 태민은 한수 더 떠서 아낙도사를 가리켜 무당보살이고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속에서는 그 반대되는 말도 있었다. 침도 잘 놓고 얹힌 마음도 잘 풀어준다고 했다.
그날 지응석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가 권하는 감주 한사발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집앞을 지나게 되였다. 그런데 그 집 울안에서 흘러나오는 장고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옛다! 떴다!》하는 청아한 목소리에 이어 발구름소리가 일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울널쪽으로 가 옹이 빠진 판자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칠보단장에 옥색띠로 머리를 동인 녀인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있었다.
둥당둥당 새장고를 칠 때마다 열두폭 람색치마가 우산처럼 퍼지며 핑그르 도는가 하면 건공중으로 한길씩 뛰여오르기도 했다. 몸이 공중으로 솟구칠 때마다 손에 쥐인 쇠구슬북채에서 잘랑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우여― 최영장군 강림이시다.》
부드러우면서 랑랑한 목소리와 함께 북채소리는 더욱 높아졌고 녀인의 눈에서는 정기로운 빛이 뿜겨나왔다. 황홀할 지경이였다.
《누구요?》
녀인이 문득 뛰기를 멈추고 엄하게 소리쳤다.
(과연 도사구나.)
도망치려고 했으나 발이 땅에 붙었는지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아유, 작은도유사님이 어떻게 여길 다.》
대문밖으로 나온 녀인은 여느 동리사람들과 다름없이 《도유사님》이라고 그를 괴여올리며 반색해했다.
《어서 들어가자구, 어서.》
녀인이 손목까지 덥석 쥐는 바람에 뿌리칠수 없었다.
울안으로 들어서니 마루우에 한 처녀애가 앉아있었다. 성민을 본 처녀애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였다.
《이 앤 내 친척인데 그 잘난 무당춤을 보자고 해서 한바탕 뛰던중이다.》
《그러니 아잰(아주머니라는 뜻) 진짜무당이였수꾸마.》
《한시절 미친년노릇을 했다. 왜 마음에 안 드냐?》
《저… 무당은 남을 속인다던데.》
《옳다, 바루 맞혔다. 하긴 이 세월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내 그럼 관상을 봐줄가?》
《아이, 싫수꾸마. 관상술두 거짓부리라고 했어요.》
집에서 알면 욕을 먹는다는 소리까지 나오는것을 참았다.
아낙도사는 웃었다.
《그 말도 옳다. 하지만 조선속담에 겉볼 안이라고 진짜관상은 과히 틀리지 않는단다.》
《그럼 봐주십시오.》
그를 섭섭하게 하고싶지 않았다.
《그럼 봐주마.》
마루에 앉으라고 했다.
《어떤 상일가? 귀인 귀골에 귀상인데―》
마음이 끌렸다.
《귀상이란건 귀하게 생겼다 그 말이겠지요.》
《응, 네가 신동이라더니 문자풀이로 아는구나.》
아낙도사는 자못 재미난다는듯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보다가 무릎을 쳤다.
《옳지, 대성대길에 으뜸가는 복팔자로구나. 밖으로는 궁성룡마요, 안으로는 꽃사슴이고… 오호라― 전란에는 10만장수의 대장군이니라.》
성민의 가슴은 턱장없이 부풀어올랐다.
대성대길(크게 잘된다는 뜻), 궁성룡마의 말뜻을 재빨리 헤아려보고난 그는 한가지 리해되지 않는것이 있어 따져물었다.
《우리 나라엔 왕도 없고 궁궐도 빼앗겼다는데… 궁성룡마라고 하면 거짓부리가 되지 않습니까.》
《옳다, 역시 신동이로구나. 그렇지만 조만간 우리 나라도 다시 독립을 하고 왕도 궁궐도 다 생긴다.
넌 백두산장수얘기를 못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제 그 신령스러운 장수님께서 나라를 찾으시고 옥좌에 오르시여 국정을 돌보시게 된단다.》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귀가 말박만 해졌다.
《그런데 한가지 명심할것이 있다. 너희 집안으로 말하면 다 선량하고 맘씨고운분들이다. 그런즉 너도 흥부처럼 착한 마음을 가지고 돈없는 사람, 못사는 사람 잘 돌봐줘야 복많은 사람이 된다. 한데 오늘 예서 한 말은 어데서든지 하면 안된다. 자칫 이 말이 퍼지면 그 역시 액화로 된다.》
성민은 고향사람들을 그려볼 때마다 그 녀인을 애틋하게 추억했다.
해방후 고향을 찾아왔을 때 그 녀인은 없었다.
왜놈들에게 맞아죽었던것이다. 죽지 않을수도 있었다. 조금만 빌붙든가 수그러졌으면 인차 놓여나올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범상치 않은 녀인은 잡힌 몸으로도 왜도적들에 대한 질욕을 퍼부었고 백두산장수의 신령스러움을 긍지에 넘쳐 도고히 자랑스럽게 말했던것이다.
그에 악이 받친 놈들이 무리매를 안길 때도 녀인은 소리높이 웨쳤다고 한다.
《쳐라, 쳐. 나는 너희들이 망할 날을 환히 보고있다. 백두산장수께서 너희들을 도륙낼것이다. 씨종자까지 죄다 말려버릴것이다.》
놈들은 녀인의 시신을 누구도 모르게 없애버렸다. 저들의 죄행이 두려웠던것이다.
그 녀인을 놓고 한동안 백두산에서 내려온 공작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니였다.
그 역시 보통녀인이였고 고향사람들 거의가 그랬듯이 백두산장수를 우러르는 마음이 지극했을뿐이였다.
성민은 자기가 쓰는 글에 그 녀인에 대해서도 썼다. 비록 촌스러운 침술과 관상술로 살아가는 녀인이였지만 그 역시 조선사람의 넋을 지니고 애국에 자기를 바쳤기때문이였다.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썼다. 할아버지 역시 왜놈들을 미워했고 인간된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기때문이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외삼촌에 대해서는 끝까지 리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성민이가 철이 들무렵부터 조상묘가 있는 선산으로 자주 함께 오르군 했다.
그 산봉우리에서 주변의 들과 마을들을 둘러볼 때면 늘 수심낀 탄식을 했다.
《내가 어릴적만도 저런 게딱지같은 집들은 적었다, 비렁뱅이도 별로 없고.》
《한데 왜 저렇게 되였습니까?》
《거야 나라를 뺏겼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지.
우리두 그 왜놈들 등쌀에 숱한 땅을 떼웠다. 그래서 난두 한땐 의병으로 가려구까지 했다.》
《아버님도 독립군으로 가려고 하는걸 할아버님께서 막으셨다지요.》
《그랬다. 어쩌겠니, 장대기로 대포를 이긴다더냐. 그러니 너두 물덤벙술덤벙해서는 안된다. 지금 볼라니 네 어머니 오래비란게 독립인지 뭔지 들뛰는것 같은데 그걸 본받아서는 안된다. 네 애비가 하는 선심쓰기도 본받아선 안되구.》
《할아버진 이웃끼리 화목하고 돕기를 잘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돕는데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정 가난한 집엔 쌀말 같은것은 줄수 있다만 네 애비처럼 그냥 공짜로 퍼주고 소작료 받는것도 주면 받고 안 줘도 무방하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공짜로 주는거야 물어줄 힘이 없어 하는것이고 소작료를 못 무는거야 바칠 곡식이 없어 그러질 않습니까.》
《허허, 너두 네 애비와 외삼촌의 물을 흠뻑 먹는구나. 지금 그때문에 네 애비가 말밥에 오르는걸 모르니. 타처의 땅임자들도 원성이 크다, 농군들의 버릇을 잘못 키운다고. 그래서 네 애비까지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나돈다.》
《외삼촌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사는 사회가 사회주의라고 했어요. 그러니 건 좋은것이 아닙니까.》
《그 빌어먹을 녀석이 너한테까지 사회주의를 가르쳤단 말이냐?》
이럴 때의 할아버지는 무서웠다.
《아, 아니꾸마. 손님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이렇게 말해도 할아버지의 분기는 풀어지지 않는다.
《그런 말은 애당초 듣지조차 말아라. 너두 네 애비가 어렸을적에 당한 일을 모르지 않을테지. 3.1만세를 했다가 콩밥을 먹은건 그렇다 하드래두 그때문에 우리 집안까지 망할번 하지 않았니.
사회주의란것두 그렇지. 세상사람들을 모두 잘살게 하는거라면 좋긴 하다만 지금 사회주의를 한다면 덮어놓고 잡아가지 않느냐.》
《건 사회주의가 왜놈들을 망하게 하기때문에 그런답니다. 그러니 좋은것이 아니겠습니까.
할아버지도 말씀하셨지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허허, 네 학문이 말이 아니구나. 치국평천하(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뜻)도 다 하늘이 준 운수에 따를 때만 되는 일이니 지금세월에 네 애비나 외삼촌따위들로는 어림없다. 그러니 넌 수신제가만을 명심해라. 제 몸을 바로하고 제집을 잘 돌보는것! 평백성으로는 이 하나면 족하다. 참, 맹자를 다 읽었으니 중용지도두 알겠다.》
《네, 읽었습니다.》
《그럼 똑바로 알아두거라. 우리 집안의 법도는 마음을 착하게 가지고 행실을 바로하며 집안을 잘 꾸리는것이고 살아가는 방법은 중용지도다.
인생살이에서 중용지도란 평온과 자중이 근본인즉 란시에는 몸을 사리는것이고 나라안싸움이건 동리싸움이건 일체 참견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거다. 알겠느냐?》
이런 말이 오고간 날 저녁 할아버지는 성민의 천자문교사까지 불러들인 자리에서 이미 산에서 신칙한 말들을 다시 한 끝에 태민이의 방뒤짐을 했다. 태민과 성민의 교육에 해를 줄 책을 찾기 위한것이였다.
성민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방뒤짐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서슬푸른 기상으로 태민의 책가방은 물론 서가의 책까지 모조리 허물어내리던 할아버지는 일본글로 된 책들은 덮어놓고 집어던졌다. 아버지가 들어와서 그건 교과서고 뭐고 하며 말씀드려서야 게면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신 야구장갑과 방망이를 보자 갑절로 분기를 내였다.
《왜놈들의 지랄을 배우다니, 당장 불태우거라.》
결국 야구장갑과 방망이가 아궁속으로 들어가는것으로 이날의 방뒤짐이 무사히 마무리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후 외삼촌이 경찰에 잡혔다가 탈출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여파로 성민이네 집에까지 경찰들이 우르르 쓸어들어 외삼촌을 어데 숨겼나, 어데로 빼돌렸나 따졌고 아버지의 방은 물론 할아버지의 방까지 빈대찾듯 훑어 뒤졌다. 놈들이 떠나가자 할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아버지를 칭원했다.
《불효자식이다, 불효자식! 고르고골랐다는 후처라는게 액운을 몰아왔구나.》
할아버지의 말이 맞는듯싶었다. 쩍하면 경찰들이 달려들어 외삼촌이 오지 않았느냐, 그지간 소식은 모르느냐 하며 아버지를 죄인처럼 다과댔고 집안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노기를 터뜨렸고 그앞에서 어머니는 숨도 변변히 쉬지 못했다. 온 집안이 외삼촌의 일로 심화를 쓸 때 그 이듬해에는 성민이까지 경찰서 구류장신세를 지게 되였다. 성민에게는 이것이 지어진 운명에서 벗어난 첫걸음이였고 할아버지의 유지에 거슬린 첫 선택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쓰는 글에 이 사실에 대해서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