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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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후 성민은 음침한 랭기가 풍기는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동안 성민은 수사과장이라는자의 방에서 초벌심사를 당했다. 주소성명으로부터 여기 온 목적에 대한 심사였다. 수사과장은 쓰기만 하고 아무런 타발도, 꽥 소리도 없었다. 형을 만나러 왔다는데 대해서는 고개까지 끄덕여보였다.…

삐그덕― 철문이 열리자 퀴퀴한 곰팡내와 시체타는 냄새 비슷한 역한 공기가 몸을 으쓸하게 했다. 캴캴한 얼굴에 메밀눈을 한 소령이 그를 안내했다. 물기가 축축히 배인 바닥은 우둘투둘한 콩크리트바닥이였다. 철그물에 감긴 뿌잇한 전등알의 불빛에 희스름한 벽과 그벽에 휘발려진 검붉은 얼룩점들과 푸릿한 곰팽이자국들이 드러났다. 뭔가 수선거리는 소음속에 아츠러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성민의 눈길이 그리로 쏠리자 메밀눈의 소령이 곤청색뼁끼칠을 한 문을 열어제꼈다.

뜨거운 김발이 풍겨나오는 그 방의 천정에는 벌거벗기운 사내의 몸이 푸대자루처럼 매달려있고 그아래에는 두억시니같은 샤쯔차림들이 벌겋게 단 부저가락을 쥔채 웬일인가 하는듯 눈을 겁석이고있었다.

한 놈팽이의 가슴팍에는 벌건 피방울들이 뿌려져있었다.

《조용히들 해.》

꽥 소리를 지르고난 소령은 미안쩍은 눈길로 성민을 힐끗 보고는 캴캴한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굼뜬 동작으로 천천히 문을 닫았다.

희디흰 벽에 여러개의 고촉전등이 자동차전조등처럼 붙어있는 자그마한 방에 들어갔다.

책상 하나를 사이두고 2개의 걸상이 마주 놓여있는 그 방에는 방금전의 고문실에서 본것과 같은 2명의 두억시니가 서있었다.

《저 방 소제 했어?》

소령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간벽문을 가리키자 억대우같은 녀석 하나가 기다렸던듯 《네.》하며 그 문을 열어제꼈다.

놀랄만치 아담하고 깨끗한 방이 나타났다. 노란 장판을 입힌 방의 한쪽 벽가에는 일여덟장의 미군모포가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살창을 댄 창문가에는 옻칠이 반들거리는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었는데 그 책상우에는 두단짜리 책꽂이대가 있었다. 하나같이 두툼한 책들은 일문판으로 된 세계문학전집들과 우리 글로 된 《한국문학전집》들이였다.

《어데서 쓰겠습니까. 여기든 저기든 마음 내키는대로 택하십시오.》

《쓴다는건… 뭡니까?》

《아, 거야.》

소령은 그것도 모르겠느냐 하는 미소를 그리며 책상우에 쌓인 쉰나문장의 백지장과 원주필에 눈길을 멈추었다.

《선생이야 대학까지 다녔으니 어렵지 않을것이지요. 참, 려순공대의 수석이셨지요.》

《수석이라기보다 일본애들을 앞섰을따름입니다.》

《참 훌륭한 말씀이군요. 사실 저도 일정때 려순공대를 지망했댔는데 그놈의 반도인이라는걸로 미끄러졌지요. 붙었으면 선생의 후배로 각근한 사이가 될수 있었겠는데… 이제 와서 군복쟁이로 선생과 알게 되였군요. 참, 운명이란 묘한것이지요? 전 숙명론자는 아니지만 운명에 거역할수 없다는건 믿습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 끌려온것이 운명이라는거요?》

《하, 그렇게까지야… 사실 전 여기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돼는데… 석두가 아닌 사람들은 죄다 개과천선을 해서 돌아들 갔지요. 이따금 만나게 되면 여간 반갑지 않더라구요. 또 그분들 덕도 보고… 참, 개과천선이라는 말은 선생한테 어울리지 않는것이지요. 이제 나가시면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허허, 난 당신들한테 죄인이 아니요?》

《원,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저두 웃어른들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래 쓰라는건 뭡니까?》

《뭐 별치 않은겁니다. 북에서도 여러번 써봤을텐데… 뭐라고 할가, 게서 쓰는 간부리력서 비슷한것이지요. 집안래력으로부터 살아온 경력… 장소와 날자로부터 관계된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일수록 더 좋습니다. 제일 중요하게는 여기 오게 된 동기와 목적을 정확히 밝히는건데… 우리에 대한 립장과 견해, 거기 말로 하면 사상관점인데 그걸 잘 밝히는거고… 그런데는 그전때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지금의 바로 이 시각의 생각과 감정을 잘 써야 하겠습니다. 뭐… 저흰 다 알고있습니다만 그래도 선생의 자필진술이 중요한것이 아니겠습니까.

필요하다면 종이는 더 갖다드리겠습니다.

참, 이건 제 개인적인 조언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선생은 론설원으로서 북의 신문사 계장을 하셨다지요.…》

《계장이 아니라 부장이요.》

《아, 그렇지요. 그럼 부장을 하시면서 아시게 된 북의 경제실태와 전망을 품목과 수자로 자상히 적어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우리 국가에 커다란 공헌을 하시는것으로서 선생이나 지장군 그분께도 커다란 기쁨으로 될겁니다. 상금과… 앞으로의 출세에도 큰 도움이 될거구요.》

《나더러 간첩질을 하라는것이요?》

《어이쿠, 무슨 별난 말씀을―》

소령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메밀눈은 간단치 않다고 했는데 그 눈에까지 겁기가 흘렀다.

《그렇다면 쓰겠소.》

《그럼, 그래야지요.》

소령은 너무 기뻐 두손을 썩썩 비볐다.

《얘, 저 불을 꺼.》

소령은 이때야 고촉전등이 그대로 켜진것을 알아챈듯 사병에게 소리쳤다. 천정의 전등 하나만이 남게 되자 소령은 전보다 더 살가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여기보다 저 안방에서 쓰는것이 나을겁니다. 사실 여긴 대질심문을 할 때 쓰는 방이거던요. 얘, 커피랑 준비됐니?》

《예.》

《얼른 가져와.》

소령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으며 안방쪽을 가리켜보였다.

《저긴 온돌방이여서… 감기 들 념려도 없을것입니다. 이제 좀 쉬다가 식사를 한 다음 글을 만들어도 됩니다,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소설도 보시고. 저기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싸르트르의 소설도 있습니다. 싸르트르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난해하다고 하지만 파고들어보면 오묘한 진리가 있거던요. 난 그 사람 글에서 제일 감복되는것이 선택에 대한 철학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그가 딛고 선 땅과 상황이라는 구속에선 벗어날수 없다, 그런데서 선택에선 부자유가 있다, 하지만 최종선택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작용된다.…

이런걸로 요약할수 있다고 보는데 최종! 최종의 선택이라는것이 얼마나 의미깊습니까. 작게는 어떤 애인을 택하는가, 어떤 술을 마실것인가 이러루한것이지만 크게 보면 죽겠는가 살겠는가 이런 문제에 귀결되는것이 아닙니까.》

《그럴듯 하오.》

《쓰는건 래일까지면 되겠지요. 우에선 3일간이라고 찍었지만… 이름과 지명은 될수록 한문으로 써주십시오.》

소령은 갔다. 성민은 커피를 가지고온 키다리사병의 안내를 받으며 그 안방으로 들어갔다. 소령의 말대로 온돌방이였다.

《좀 누워도 될가?》

사병의 속중을 떠보았다. 사병은 반색했다.

《아, 거야 자유입지요.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자유세계니께요.》

《그런가. 한데 하필이면 왜 이따위 커피심부름을 하오?》

《어망께, 제야 선임하사인지로.》

《왜, 자유세계인데 임자들도 좀 눕지.》

선임하사의 눈자위가 희뜩 돌아갔다.

《건 규정위반입니다.》

《안됐군.》

손에 잡히는대로 책 한권을 뽑아든 성민은 그것을 목침삼아 자리에 누웠다. 온몸이 대번에 천길나락속으로 떨어지는듯 하며 거의 만족에 흡사한 피로가 온몸을 솜뭉치처럼 만들었다.

(마지막순간도 이럴가?!… 마지막… 하긴 이것이 마지막안식일수 있어.)

어린시절 바다물에 흠씬 젖은 몸을 따끈따끈한 모래불에 묻고 반쯤 감은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때와 같은 기분이였다.

《모포를 덮어드리꺄?》

메주먹은 사병이 친절을 보였다.

(기가 막힌 일이구나.)

무겁게 처져내리는 눈까풀사이로 사병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목단강1중학교시절에 가본 아편굴이 떠올랐다.

때절은 집들이 몰켜선 속에 붉은 주렴을 차일처럼 드리운 집이 아편굴이였다. 벽도 천정도 아편연기에 절어 꺼멓게 보이는 그 집안에서는 열댓명의 사람들이 세상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아편대통을 빨고있었다. 거기에는 흰 바지저고리차림으로 유표한 조선사람도 있었다. 뻥하니 구멍이 뚫린 그의 버선코에서 뱀대가리같은 엄지발가락이 꿈지럭거렸다.

《법무청 어른들은 뭣때문에 아편금지령을 내렸는지 모르겠어. 대브리텐 어른들이 현명했지. 아편으로 녹이면 야마도족의 피도 적게 흘릴것 아닌가. 우리도 때를 봐서 상주문같은것을 올리자구. 히틀러는 아리아족외의 벌레들은 다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의 대동아 신질서에도 바로 그런 척결이 필수적이지. 그건 총과 대포와 함께 바로 저같은 아편장려로 정신과 육체를 소멸해야 돼.》

《그럼 로동력은… 일을 시킬 사람들이 없잖은가.》

《아니, 아편을 빤 다음엔 머저리가 되지만 기운은 장사처럼 되니 달구지도 끌고 밭을 뚜지는데서는 황소맞잡이지.》

성민이와 함께 갔던 동급생―일본애들이 신이 나 주절대며 아편굴을 떠날 때 성민은 바깥전주대밑에 홀로 서서 분함과 수치감에 몸을 떨었다. 한시간 넘게 기다려 바지저고리가 나타나자 그 불만과 수치감은 눈물과 노성으로 터져나왔다.

망국민이 된것만 해도 분한데 어떻게 되여 아편쟁이가 되는가, 피우지 말라, 망국된 처지는 그렇다 해도 가족, 처자라도 생각하라. 무슨 말인들 안했겠는가. 하지만 그 바지저고리는 코웃음을 쳤다.

《도련님이구만. 학생도 한번 피워보라구. 한모금 빨면 팔다리가 매시시, 세상은 오락가락, 두세모금 마시면 구름우에 오르지.》

그다음 《석탄 백탄 타는데》를 부르며 사라졌다.…

(아편?!… 그래, 지금 둬모금 빤셈이다. 친절을 받아들인것으로 되였으니까.)

택규에게도 소령에게도 그리고 이앞의 사병에게도 례의를 보였다.

(무엇때문에? 웃는 낯에 침뱉지 못한다는것으로?…)

그렇다면 택규의 능갈친 말에는 왜 면박을 못 주었던가.

《난 성민군이 우리한테 영 온것으로 믿겠소.》

살리겠다는 유혹, 살수 있다는 희망때문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즉 나에게는 오직 두 길, 변절인가 죽음인가 이뿐이다.)

마음에는 다시 안정이 찾아드는듯싶었으나 눈앞은 더욱 캄캄해졌다. 닥치는대로 또 하나의 책을 뽑아들었다. 장편소설 《사랑》, 어데서 봤더라. 작가의 이름이 리광수임을 알아보고 기억해냈다.

려아한테서 얻어본 소설이였다. 그때의 책에는 흰 모시바지저고리를 입은 저자의 초상이 있었다.

(무슨 안빈이라는 박사의 피에 대한 철학이 있었지.) 기억이 대목대목을 되살려냈다. 변형되는 피에 대한 장광설이 있었다.

(변형?!)

성민은 움씰하며 일어나앉았다.

반쯤 조는듯 한 자세로 앉아있던 사병이 카빙총을 끄당겨 집는것을 보며 성민은 뜨지도 빠르지도 않은 동작으로 대질심문실의 책상에 가 마주앉았다.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첫 글구를 썼다.

이것이 자기가 할수 있는 마지막일감이고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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