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지성민은 휘연히 밝아오는 창문쪽을 보며 아직도 꿈이 아닌가싶었다. 옆에 선 두 사병도, 손목에 채워진 쇠수정도 한마당 꿈의 세부로 느껴질뿐이다.
지난밤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던 그는 날이 샐녘에야 깜빡 잠이 들었는데 내내 어지러운 꿈에 시달렸다. 어떤것은 꿈인가 하면 낮에 하던 생각의 연장이기도 했다. 태민을 마지막으로 봤던 날의 일은 사실그대로 재현되였다.
그때문에 와지끈하고 문이 열리며 검은 그림자 셋이 덮쳐들 때도 사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옴짝 말앗!》하는 소리와 함께 총구가 이마를 찔렀고 손목에 쇠수정이 채워졌다. 이렇다할 반항도 못했고 또 그럴 여유도 없었다.
드센 손탁에 이끌려 밖에 나서고보니 알몸뚱이로 뛰쳐나온 지응석이 웬 장교의 손을 부여잡고 애원 절반, 울음 절반의 벙어리소리를 하고있었다. 놀랍게도 성민을 띄여본 장교가 거수경례를 붙였다. 대문밖에는 2대의 스리쿼타가 서있었는데 거기서 서성이던 2명의 장교도 경례를 붙였다. 대위 아무개, 중위 아무개라는 식으로 자기 소개까지 하였다.
이것 역시 꿈인듯싶었다.
차가 떠날 때 솜옷을 중쳐든 지응석이 뛰쳐나오는것을 보고서야 자기가 어떤 처지에 빠져들었는가를 깨달았다.
지응석은 장밤 술을 마시다가 곤드라졌고 5촌숙모는 시키지도 않는 망보기로 집밖을 에돌았었다.
그렇다면… 한데 놈들은 왜 경례까지 붙이며 나를 대감모시듯 했는가. 헌병사령부라고 하는 이곳에 와서 죄인들의 구류장이 아니라 일반 격술훈련실에 모셔졌고 지켜선 사병들도 신랑둘러리같이 곰살궂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방금 들은 말이 뇌리를 쳤다.
《쉿, 저기 있네. 그전 우리 부사령관님의 상관으로 있던 지장군의 동생일세.》
그럼 태민형이?!
숨이 꺽 막혀들며 눈앞에서 자름자름한 불꽃같은것이 서물거렸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곁에 선 두 사병이 놀란듯 돌아보았다.
(아니, 아니다! 형은 총으로 쏘면 쏘았지 밀고할 성미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동생이라고 했다, 동생이라고…
(경자?… 그앤 모른다. 상사?… 그도 알수 없는것이다. 그럼 형님의 장모가?)
후들후들 떨던 목단강녀걸의 겁먹은 모습이 애처롭게 비껴든다.
(아니, 그도 그럴순 없어.)
갈피없는 혼탁된 생각속에서 지난밤 꿈에 보았던 형이, 형을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의 일이 방불히 살아올랐다.
성민이 군교육부 일군에게 불려갔다와 이틀째되는 일요일이였다.
그동안 집에만 꾹 박혀있던 태민이 바람 쐬이러 가자고 하는통에 집삼바다가로 갔다. 옥영이도 함께 갔다. 옥영이는 해당화를 꺾었고 태민은 가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어린시절 놀던 때를 두루 말했다.
그런데 점심밥을 먹고난 뒤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던 태민이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성민아, 넌 우리 집안이 앞으로 어떻게 될것 같니?》
거야 명백하지 않은가. 우리 집이 부자소리를 듣던것은 옛날일이구, 아버지랑 집안에서 독립운동자들을 도와준것은 이 고장 사람들 거의가 다 아는 일이구… 더구나 외삼촌은 려순감옥에서 반일애국자로 옥사하지 않았는가. 그때문에 형님도 놓여나온것이구…
《허, 내가 놓여나온건 그 빨찌산어른이 나를 봐준거야. 이곳 계급투쟁바람을 보면 나같은건 타도대상이거던…》
《아니, 빨찌산들이 그랬다면 그게 다 김일성장군님의 뜻에 따른것이 아닙니까. 나도 그동안 좀 알아봤는데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의 계급투쟁과 빨찌산들이 내놓은 투쟁에서는 차이가 있으니 념려될것 없어요.》
성민이 료량껏 하는 말에 태민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넌 생각이 단순하니 좋구나. 그런데 한가지만은 명심해라. 계급투쟁에는 사정이 없다는것이다. 지금 내가 빨찌산덕에 놓여나왔다만 이제 국가의 기틀이 서고 계급투쟁원칙이 조목조목 법률로 제정될 때면 아버님도 그렇고 너도 견뎌배기기가 헐찮을게다. 그래 로동자, 농민의 세상에서 자산계급출신이라고 하는 우리가 무사할상싶으냐. 누가 봐준다고 해도 우리 집안래력을 아는 무산자들이 가만두려고 하지 않을거다. 너두 봤지. 해방후 중국에서 지주와 친일파들을 타도하던걸.
로씨야를 봐도 그렇다. 한때 그네들은 네쁘정책(신경제정책)을 실시하면서 자본가와 부농을 잔뜩 키우다가 죄다 청산해치우지 않았니.》
성민은 그때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사실이였기때문이였다.…
《형님, 나는 그때 하지 못한 대답까지 하려고 왔습니다.》
태민을 만날 일을 두고 얼마나 엄청난 공상을 달렸던가. 그런데… 쇠수정에 채워진 손목이 벌겋게 부어오른것을 보며 쓰겁게 웃었다.
(명백한것은 끝장이라는것뿐이다. 끝장?!… 그러니 이젠 인간을 지키는, 그 인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후만이 남은셈이구나.)
안해와 아이들의 얼굴이 희미한 쪼각달처럼 흔들린다. 헤여질 때 가슴에 안겨 입술을 감빨던 아들애의 귀여운 얼굴… 고개를 들었다. 창밖의 앙상한 나무가지사이로 비쳐드는 희푸른 하늘이 또 한번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타고난 비겁쟁이는 없어. 이 계선에서 지키는가 못지키는가, 여기에 따르는거야.)
밖을 보는것이 두려웠다. 열려진 하늘은 자유에 대한 그리움과 잇닿아있기에 이 방에 들어설 때의 결심을 되살려보았다.
1951년 봄 성민이의 서투른 영어때문인지 아무 대답도 없이 눈만 희번득거리던 흑인포로는 옆의 호송병도 어쩔새없이 모난 바위에 머리를 짓쪼았다.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다. 후에 들은데 의하면 그 포로는 미국인인 경우 사지를 찢어죽인다는 악선전에 속아 자살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흑인병사는 뛰쳐일어날 때까지는 강한 용기가 있었겠지만 바위와 부딪치는 순간 겁을 먹었든가 생에 대한 본능적애착이 그 용기에 제동을 걸었을것이다. 그와 같은 약자는 되지 말아야 할것이다.
(꼭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 길밖에 없다. 돌아갈 길도 살아 싸울 길도 끊기지 않았는가.)
세면 벽을 둘러보았다. 각이한 조법의 격술동작들이 그려져있었다. 주먹들어곧추치기, 에돌아치기, 공중날며머리받기…
벽을 받으면 순간에 끝날것이다.
(콩크리트벽이여야 하는데.)
벽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단행할수 없었다. 순정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왔다.
《꼭 살아 돌아와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다신 상대를 안하겠어요.》
다시는 상대를 안한다?!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그러나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 그도 그랬을거야.
지금쯤은 뭘하고있을가. 헤여질 때처럼 미색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있을가. 끝까지 웃음을 지어보이려 애썼지. 그동안의 가슴아픈 말들은 다 아녀자의 넉두리로 들어달라고 하며 웃음어린 롱담도 했지.
《저야말로 참으로 행복하고 현명한 똑똑이지요. 왜 그런가 하면 내가 랑군님을 잘 골랐거던요.》
그 말을 하며 웃을 때 눈에는…
(아, 아, 아직은 이르다.)
성민은 자기 몸에 식은땀이 질퍽하게 내배인것을 알았다. 이때 문이 열렸다. 네댓명의 장교가 들어섬과 함께 그를 지켜섰던 2명의 사병이 화닥닥 일어섰다.
《갑시다. 우리 부사령관님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계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중령이 성민을 일으켜세웠다.
긴 복도, 원형식계단… 2명의 사병이 뒤따르는 속에 이 헌병사령부에서 숱한 애국자들이 고문학살되였다는것을 상기했다.
(그래, 아직은 죽지 말아야 한다. 뭔가 할수 있는껏, 싸울수 있는껏 다 해야 할것이다. 그렇다, 아직은 이르다.)
2층복도의 끝방까지 가는 길이 수십리맞잡이로 여겨졌다.
키다리보초의 군화발이 요란스럽게 부딪침과 함께 문이 열렸다. 누런 인조가죽 방음장치를 한 또 다른 한개의 문이 열리자 장탁너머에서 다부진 몸매의 사나이가 일어섰다.
《아.》
보라빛색안경을 낀 그 사나이는 짧은 탄성을 내지르고는 재빠른 걸음으로 그를 마주왔다.
《기다렸소. 반갑구만, 반가와.》
불쑥 손까지 내밀던 그의 눈길이 중령에게 가 멎었다.
《이건 뭔가.》
《제가 그만―》
중령은 무척 바빠난 상을 하며 성민의 손목에서 쇠수정을 벗겼다.
연극같지는 않았다. 성민의 부어오른 손목을 본 보라색안경은 혀까지 찼다.
《몹시 심화를 했을테지. 앉으라구, 앉소.》
그와 눈길이 마주친 순간 성민은 흠칫하며 굳어졌다.
이게 누군가.
1945년 10월의 봉천(지금의 심양).
접이걸상에 앉아 다리를 흔들어대던 사시눈.
《무슨 돈냥이 될만 한게 없어?》
단추가 터져나갈듯 팽팽한 배와 굵진 목만 아니라면 첫눈에 알아봤을것이였다.
택규?!… 틀림없는 택규였다.
《식사는 시켰는가?》
택규는 성민의 시선을 피하였다.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니까, 죄수취급을 했을테지.》
택규는 눈섭을 쭝깃하며 설레설레 머리를 젓고는 성민의 어깨를 툭쳤다.
《너무 걱정말라구.》
분노와 수치감에 성민은 몸을 떨었다. 머리속이 불단지 같았다. 그런데 왜 이자는 자기를 밝히지 않는가. 뭐가뭔지 가늠할수 없는 속에 이름하기 어려운 야릇한 감정이, 반가움까지는 아니라고 하여도 적의와 절망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형님을 만나러 왔다지.》
택규는 지나가는 소리처럼 묻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줄이 피줄을 찾는거야 응당하지.》
그리고는 자못 근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지난밤 내 군의 형님한테서 부탁을 받았고 또 편지까지 받았소, 방금전에도 전화를 받았고.》
성민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달리 생각마오. 군에 대한 지장군의 정은 각별하오.》
성민의 표정변화를 유심히 살피던 택규는 한장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지장군이 나한테 보내온 편지요. 보오.》
노란 줄칸들이 쳐진 종이장우에서 엇가로 쓴 글자들이 뜀박질했다.
태민의 편지가 옳았다. 게발 그리듯 한 글씨, 글체는 인격의 표현이니만치 한자를 써도 올곧게 써야 한다는 훈시를 늘 입에 담고있던 태민이였건만 제가 쓰는 글은 소학교 1학년생도 흉을 볼 악필이였다.
…택규군, 정말 미안하오. 전화로도 마음놓이지 않아 편지까지 쓰게 되오. 생각 같아서는 그 어리석은 녀석을 가차없이 쏴버리고싶지만 나를 믿고 찾아온것이니 이처럼 안절부절이요. 군도 일찍부터 잘 알고있지만 그 녀석은 나의 유일한 동생이자 가문의 대를 이을 하나밖에 없는 둘째손이요. 사람됨으로 보면 고정하고 학문밖에 모르던 백면서생이고… 나는 이 형님을 보고싶어 왔다는 그애 말을 믿소. 해방직후에도 나때문에 수륙만리길을 에돌아오지 않았댔소. 이번에도 나를 데려갈 생각이 있을수 있다고 보오. 하지만 이거야 나와 둘사이의 일이고 내가 어떠하리라는건 불보듯 명백한 일이니 그저 웃고말 일이 아니겠소. 이건 그애와 어릴적부터 한이불속에서 딩굴며 살아온 이 지태민이 국가와 법앞에서도 단연코 보증할수 있는 문제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부질없는 망상이고 그애의 목적이 반국가범죄기도이라면 나로서도 할말이 없소. 그땐 이 지태민이도 법과 군률앞에서 응당한 심판을 받을것이고 어디 산골에 가서 밭이나 뚜지고 낚시질이나 하게 될것이요.
이에 대해선 각하께도 말씀드렸는데 각하께서도 나와 마찬가지의 견해였소, 근본이야 어데 가겠느냐고… 그럼 오늘은 이만하겠소. 우리집 독재관인 옥영이도 문안을 전하오. …
성민은 혼자 있고싶었다. 무서운 허탈감속에 격파치던 분노도, 배신감에 대한 통절함도 죄다 사그라져버렸다. 애수 비슷한 아픔이 가슴굽을 훑었다. 《어릴적부터 한이불속》이라는 구절이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놀랄것도 새삼스러울것도 없다.)
새벽부터 지금까지의 온갖 《친절》과 《선의》가 이때문이였다는것으로 허구픈 생각이 들었다.
《이젠 알만 하오?》 택규는 기고만장한 기색이였다. 《지장군과 나와는 막역한 사이요.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된데도 그분의 각근한 천거가 있었고…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분밑에서 참모장도 했소. 그러니 나로서는 성민군과 전혀 남남이라고는 할수 없지.》
택규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제풀에 너털웃음을 웃더니 제자리에 가 앉았다. 성민의 손에서 되받아든 편지장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 군의 형님이야말로 훌륭한분이요, 인정이 깊고 의리가 있고… 군에 대해선 나도 형님과 같은 생각이요. 그런데―》 택규는 얼핏 중령을 스쳐보고는 계속했다. 《우리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든 북에서만 왔다면 눈에 쌍심지를 켜오. 성민군과 같은 경우가 있다는걸 모르니 당연하다고밖에. 성민군으로 말하면 계급투쟁의 대상이였고… 그통에 아버님도 어머님도 죄다 잃었으니 우리한테 올수밖에 없지 않소.》
《그건 무슨 소리요?》
《아 아, 뭐 콩이야 팥이야 꼭 따져야겠소. 본질이 그렇다, 이거지.》
택규는 게면쩍어하는 기색이였다. 성민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좀 조용히 말할수 없겠습니까?》
《건 무슨 소리요?》
《둘러리들이 많으니 말이 자유롭지 못하군요.》
《음, 그런가. 거야 좋지.》
택규의 턱짓 한번에 2명의 사병은 물론 중령까지 황급히 밖으로 사라졌다.
《나와 조용히 말하자는건 뭔가.》
색안경속의 눈에서 은은한 웃음이 감돌았다.
성민은 묵묵히 마주보다가 말을 떼였다.
《먼저 당신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하는겁니다. 옛날처럼 택규형이라고 해야겠는지 아니면 소장각하라고 해야겠는지.》
택규는 무슨 소린가 하는 태도였다.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성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당신은 중국에서 우리가 만났던 일을 다 잊었습니까? 수만리길을 함께 걸은것을… 하긴 17년세월이 흘렀으니 잊을수도 있겠지요. 나도 처음엔 기연가미연가 하다가 형님이 쓴 저 편지를 보고 옳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허, 알아봤구만.》
택규는 시무죽 웃고는 조금도 무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말했다.
《내가 군을 모르쇠한건 직분도 직분이지만 군을 생각해서 그런걸세. 그럼 하자는 얘기란 무엇인가. 나에 대한 호칭때문인것은 아닐거구―》
《물론 그렇습니다. 또 옛날일을 추억하자는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자는건 형님과 관계된겁니다.》
《거야 후날 그와 만나서 말하면 될것 아닌가.》
알량한 거짓말. 내가 속을줄 아는가. 성민은 찍어박듯 말했다.
《이건 당신과도 관계되는 말입니다.》
《나와?!…》
《그렇습니다. 우선 말하고싶은것은 우리의 민족분렬과 조국통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다들 직급이 높으니만치 그에 대한 일가견이 있겠는데―》
《허허, 자넨 지금 여기가 어데고 자네 처지가 어떤지 모르는게 아닌가?》
《압니다. 그때문에 더욱 묻게 되는겁니다.》
택규는 랭소를 지었다.
《임잔 여전히 철부지학생님이구만. 그따위 어리석은 소린 더 듣지도 않겠어.》
《유감인데요. 민족분렬과 조국통일문제가 어리석은 소리로 되니. 한때 당신도 통일된 조국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아니, 통일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것입니까. 그땐 하고 지금은 그만둔다는…》
《자넨 나와 말싸움을 벌리자는건가.》
택규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졌다. 성민은 웃었다. 모처럼 얻어진 기회를 잃고싶지 않았다. 적으나마 자기의 뜻이 태민에게 가닿을수 있지 않겠는가.
《택규형, 난 형과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은 전쟁판도 아니고… 나로 말하면 비록 잡힌 몸이지만 형님과 친지들을 만나려고 온 사람인것이고. 그런데 어떻게 되여 통일문제에 대한 물음을 말싸움으로 생각합니까. 형님도 같을가요?》
택규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자넨 여전히 고지식하구만. 이런 말은 더 하지 말자구. 자넨 지금까지 한 말만으로도 총살감이야.》
《어떤 죄명으로요?》
《적화통일선전이니까. 자네로선 엄청난 소리겠지.…》
《슬프군요. 그럼 택규형한테는 더 대답을 듣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형님한텐 꼭 전해주십시오. 지금 집안친척들속에서 원성이 크다고, 집을 뛰쳐났으니 집안에서는 배반자이고 큰 별을 달고있으면서 미국에 붙어있으니 나라에도 배신자라고― 우리 어머니는… 형님을 그처럼 자랑하고 귀히 여겼던 어머니는… 늘 형님소리를 하며 앓다가 미국놈들한테, 미국놈들의 폭격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단가.》
택규의 손이 책상밑으로 내려갔다. 성민은 자신을 다잡았다. 분명 그 책상아래턱엔 초인종이 붙어있을것이고 그걸 누르면 사병들이 뛰여들것이다.
《택규형, 한가지만 더 말합시다. 형님에게 꼭 전해줬으면 하는 말입니다.》
《뭔데?―》
택규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성민은 지난밤의 꿈을 그려보며 웃음어린 어조로 말했다.
《형님과 나와는 채 매듭을 짓지 못한 얘기가 있습니다. 형님이 이곳으로 되돌아올 때 그는… 우리 집안이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택규는 제법 흥미진진한 기색이였다. 고개까지 끄덕여보였다.
《그때의 형님은 계급투쟁에 대한 문제로 나를 곤경에 빠뜨렸댔습니다.》
《그럴테지.》
택규는 두손을 맞잡아쥐였다.
《그런데 형님의 생각은 죄다 잘못이였다는것입니다.》
《으―음.》
택규의 두눈이 가느스름해졌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편견이였지요. 잘사는 집안출신은 죄다 한몽둥이로 친다는 외국식의 리론에 분별과 리성을 잃었던것입니다. 그것은 상대가 패덕한이 아닌 이상》 성민은 이 말에 력점을 찍으며 계속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가림없이 품어안고 손잡자는것이 우리 공화국의 정치고 주장이라는것을 전해달라는겁니다.》
성민은 택규의 얼굴이 퍼렇게 질리는것을 보며 길게 숨을 내그었다.
(그래, 이만하면… 기본적으로 한셈이다.)
《성민군.》
택규는 뜻밖에도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말했다.
《난 군의 말을 잊어버리겠어. 군도 그렇게 해야 할거구―》 그리고는 일어섰다.
《후에 다시 만나자구. 이제 우리 사람들과 몇가지 문답만 있으면 죄 끝날거요. 그러니 그때 지장군이랑 옥영사모님이랑 함께 다들 모여앉자구.》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언제 들어왔는지 두 사병과 중령이 성민을 일으켜세웠다.
택규는 성민이의 손을 잡아주는것으로 마지막인사를 표했다.
《난 군이 우리한테 영 온것으로 믿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