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지장군의 부관은 행운아
지장군의 부인님은 행운녀
행복해 행복해 차차차
지태민사령관의 신임부관인 정창호는 윌 스라우의 《차차차》에 맞추어 손벽도 치고 뛰기도 하며 노래를 불렀다. 주단우를 대여섯바퀴 돌고나자 몸이 훈훈해졌다. 잠시후 쏘파우에 주저앉은 그는 녀성타자수에게서 압수한 《포르노》잡지(색정잡지)를 뒤적이다가 을씨년한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담벽우의 《결사반공》, 《근검긴장》이라고 쓴 왕붓글씨가 잡지의 벌거벗은 녀자며 자기의 광태스러운 뜀박질을 질책하는듯 했다. 후―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안의 랭기가 다시 느껴졌다.
령관급장교들도 사바사바 뒤돈을 받아 공기조화기며 석유난로 같은것을 장만해놓고 볼쪽이 척 늘어지게 지내는데 한다하는 지장군만은 뒤돈은커녕 공기조화기마저 마다했으니 그놈의 《군인의 기강》이요, 《긴축절약》이요 하는 바람에 매일매시가 석가모니의 고행 한가지이다.
하지만 참을수밖에 없다.
지장군은 다 좋지만 안락과 사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니만치 그에 맞게 처신하라던 동료들의 말도 그렇고 큰사람이 되려면 웃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던 부모님들의 신칙을 생각해도 참을 《인》을 명심하는 길밖에 없다.
일찍부터 샬로크 홈스를 흠앙하여 오제도(남조선지하혁명조직과 애국적인사들을 적발색출하는데서 악명을 떨친자)와 같은 인물이 될것을 꿈꾸고있는 그에게서 부관이라는 자리가 훌륭한 도약대로 될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소장파의 쟁쟁한 실력자이고 군화랑정신의 귀감인 지장군이야말로 자기의 영상에 후광을 입히게 되리라는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군부내의 모모한 인물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것 역시 출세의 튼튼한 방편으로 될것이니 지금의 고생을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것이다.
그렇지! 그렇지! 옳다! 옳아!
다 돌아간 축음기판이 같은 소리로 떨그덕거리는것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전축을 끄고 레코드판을 제자리에 넣은 다음 손이 간 흔적이 없는가를 세심히 살폈다. 지난해 웬 미국인이 주고갔다는 전축과 레코드판들은 이 방의 유일한 사치품이자 누구도 손대지 않고있는 금단의 골동품이기도 했다.
그로서는 부임 첫날부터 고양이 기름종지 노리듯이 축음기판들에 눈독을 들였으나 오늘에야 처음 손을 대보게 되였다. 지장군이 박정희의 초청을 받고 간것만큼 일찍 돌아오지 않으리라는것과 주요하게는 이 금단의 골동품을 꼭 뒤져봐야 할 필요가 있었기때문이였다. 륙군본부 인사과에서 부관임명을 받은 날 밤, 방첩계의 장교로부터 지장군의 일거일동을 주의깊이 살피고 조그마한 이상스러운 점도 즉시 보고할 임무를 목숨과 비밀로 담보했던 정창호였다. 물론 오제도같은 큰 인물이 될 그로서는 화류계의 논다니들까지 하게 되는 좀스러운 끄나불노릇은 하지 않겠지만 일정한 성과와 재간만은 보여야 했던것이다.
혹시 예상밖의 공로를 세울지도 모른다. 최근에 들춰낸 《장도영일파반혁명사건》을 봐도 그렇다. 쟁쟁한 3성장군이요 륙군참모총장이던 장도영, 박정희가 그처럼 총애하며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직까지 맡겼던 장도영은 물론 그 수하 일파도 죄다 북에서 온 서북출신이다. 지장군도 함경도출신의 북에서 온 사람이라는데서 다 같고같은 동아리다.
방첩계의 장교도 바로 이 점을 강조했다.
서북! 해서 관북을 다 포함한다는 의미에서는 함경도도 례외가 되지 않는다. 한때 군에서는 물론 《한국》사회전체가 서북출신이라 하면 벌벌 기였다. 반공의 열기도 높은데다가 수완과 손탁들이 이만저만 쎄지 않기때문이다. 허나 오늘에 와서 볼 때 이 나라 기둥과 받침돌은 령남이다. 령남, 박정희도 령남이요, 자기도 령남출신이다.
하니만치 지장군과는 혈통상으로도 거리가 멀고 습관도 취미도 다르다. 혈통과 습관, 취미와 기호는 생활상 일면만 아니라 사상과 정견상 차이까지 빚어낸다는것이 력사와 현실이 보여주는 엄연한 진리다.
빵 빵!
갑자기 울리는 승용차의 경적소리에 정창호는 와들쩍 놀라며 창문쪽으로 뛰여갔다. 밤늦어 올것으로 생각한 지태민이 차에서 내리고있었다.
부한 몸집임에도 날렵하게 보이는 지태민은 뒤짐을 진채 본부청사를 휘둘러보는데 여느때없이 환한 얼굴이였다. 철모를 쓰고 달려나간 당직장교의 어깨까지 두드려주며 웃는것 역시 전례없던 일이였다. 지태민과 함께 떠났던 옥영사모님만은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철갑모를 눌러쓴 정창호는 거울앞에 가 옷차림을 살핀 후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복도를 꽉 채우며(정창호에게는 늘 그렇게 보였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지태민의 희스름한 뺨에 붉은 반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무척 많이 마셨구나.)
되들이술 두세병쯤엔 낯색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태민의 얼굴에 홍조가 핀것을 보고 인사말을 골랐다. 초대처럼 기척을 하고 《오늘 참 좋으셨습니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고쳐 생각했다. 발라맞추는 언행에 질색이라던 이전 부관의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습니다.》 가방을 받아들며 하는 말에 지태민은 빙그레 웃었다.
《독수공방 외로울가봐 일찍 왔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지태민의 부드러운 얼굴빛과 그의 입에서 풍겨나오는 고급위스끼의 향긋한 냄새가 몸까지는 띄우지 않았으나 마음은 한자높이로 띄워올렸다. 눌러버렸던 인사말이 튀여나왔다.
《오늘 참 좋으셨습니다.》
《그래, 그래서 안됐다는거야. 함께 가야 되는걸.》
정창호는 코언저리가 시큰해졌다.
《원, 무슨 말씀을… 한데 사모님은…》
《음, 그 사람 시내집에 들렸다가 오게 됐다. 그래 별다른건 없겠지?》
《네, 없습니다.》
정창호는 또 한번 놀랐다. 여느때면 《이상없는가? 웃집에서는…》라는 질문이 인사말처럼 되여있었고 그때면 엄엄한 눈이 가슴속까지 꿰지를듯이 날카로와지군 했다. 웃집이란 분리선에 대처한 인민군부대들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지장군에게는 서울 북쪽방향에 전개된 《국군》부대들에 대한 별칭으로 되여있다. 알파, 베타, 델타로 불리우는 그 부대들은 《5.16군사혁명》이후부터 경계감시대상으로 되여 반쿠데타행동을 취할 경우 지장군이 그들을 반타 제압하게 되여있었다.
《이건 뭐야?》
산하 부대들의 일보철을 받아들던 지태민은 정창호의 손에 쥐여진 《포르노》잡지를 보자 세모눈섭이 곤두섰다.
정창호는 정중한 자세로 차렷을 했다.
《새로 들어온 녀성타자수에게서 압수했습니다.》
《그런데…》
잡지뚜껑의 함지박만 한 젖통을 힐끔 보고난 지태민의 눈에 의아한 빛이 맴돌았다.
《전 군인의 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군인의 도?!… 계집도 군인인가.》
《저… 그렇지만 사령관님께서 사소한 부패요소라도 보고하라고―》
탕! 책상이 드르릉 울렸다.
《난… 저따위걸 보고하라는건 아니야. 그래 군은 입이 없었던가.》
《필요한 훈계는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다지. 그래 특무대장이 되고싶은가.》
또다시 터져나오는 노성에 정창호는 겨울나이참대가 되고말았다.
호랑이눈의 사령관이 방금전까지의 자기의 속심과 도적행위까지 죄다 알아챈듯싶었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잘한다는것이 그만.》
《됐다. 군으로서는 오늘 처음이니만치 용서한다.》
지태민은 일보철묶음을 대강 뒤적여보고는 한결 온화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기분이 어때?》
《괜찮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 더 배우라. 오늘로써 이 땅의 무정부주의적민주주의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
《저…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척결, 정화, 새 기강의 확립… 희망의 출범은 오늘로써 정식 돛을 올리고 축포를 쏜셈이다.》
《그럼 의장각하께서 대통령으로.》
《그 비슷하다. 국회도 우리 의장각하께 나라를 부탁했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는 대통령중심제로 된다.》
《그럼 사령관님께서도 무슨 장관쯤?》
《난 오늘도 앞으로도 호국의 견마일따름이야.》
지태민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피여나는 웃음을 가무리지 못했다. 시계를 언뜻 보고난 그는 한결 더 밝은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우리도 간단한 파티를 하자는거다.》
정창호는 넘쳐나는 기쁨을 무슨 말로 표현할지 몰랐다.
《그 준비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건 집사람이 준비해.》
《그럼 본집 따님과 장모님도 오시게 해야겠지요.》
《아니, 그들과는 따로 할것이고… 오늘은 파티이자 군사계엄령 해제와 관련된 토론도 하게 된다. 래일부턴 나도 시내집에서 출퇴영을 할것이고.》
집에서 다니게 된다고! 정창호는 얼씨구 춤을 추고싶었다.
부관실에 나와 먼저 보급계부터 찾았다. 그다음 시내식당과 상점들에 연줄이 있는 그러루한 날치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비상계엄》이라 그동안 얼어붙었던 배집들이 와들쩍 놀라게 차리자면 단단히 잡도리를 해야 할것이였다.
그가 한바탕 전화를 마치고 휘파람이라도 부를가 하며 들썩이는 마음을 주무르는데 문이 삐써 열리며 옥영부인이 들어섰다.
정창호는 지장군에게 그러했듯이 화닥닥 자리를 차며 일어섰다.
그런데 정창호만 보면 살가운 웃음부터 지으며 반기던 옥영부인은 혼들린 사람처럼 아는듯 모르는듯 곧추 지장군의 방으로 들어갔다. 혼들린 사람치고는 별스럽게 문을 꼭 닫는다.
(혹시 집에 도적이 든게 아니야?)
치받치는 호기심에 귀가 말박만 해 있는데 뭔가 웅글진 소리가 터져나왔다. 신음같기도 하고 감탄같기도 한 소리였다.
(뭣때문일가.)
샬로크 홈스다운 추리를 해보았으나 신통하게 짚어지는것이 없어 바재이는데 문이 열리며 옥영부인이 나왔다. 옥영은 이때야 정창호를 알아본듯 가볍게 목례를 하는데 눈굽에는 알릴듯말듯 물기가 어려있고 낯색은 분필처럼 하얬다.
그때문에 정창호는 어떤 인사말을 할지 몰라 복도쪽 문을 열어주는것으로 례절을 차렸다.
그가 계단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고개를 기웃하며 문을 닫는데 헌병감이 승냥이한테 놀란 말처럼 덴겁하여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제 먼저 묻고난 그는 정창호 역시 얼친 물고기눈이 된것을 보자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지장군의 방문을 열었다.
정창호는 그가 문을 어떻게 닫는가 보다가 다행히 손등만 한 두께로 짬이 생긴것을 보고 히죽이 웃었다.
《이봐!》
불퉁그러진 소리가 울려나왔다. 정창호는 온몸이 귀가 되였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매한가지였다.
《북에서 내 동생이 왔다.》
《동생이라니요? 저… 전쟁전에 대학생이였다던―》
《그렇다.》
《그럼 영 왔습니까?》
헌병감의 반지빠른 물음에 《그럴 애가 아니다.》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에 이어 한숨이 새여나오는듯싶더니 또박또박 찍어박는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앤 분명히 나를 되돌려세우려고, 적화공작때문에 온것 같은데… 이렇든저렇든… 그 앤 내 동생이고 그곳 가문과 조상선영을 지킬 기둥이니 죽여서는 안될 몸이고 나로서도 죽게 할순 없다. 헌병감!》
갑자기 높아지는 소리는 《옛.》하는 소리에 눌리웠다.
《그래 그 앨 살릴수 있는가?…》
《…》
《그 앨 살릴수 없다면 난 군복을 벗는것이고 또 그 애의 행처도 대줄수 없다. 이상이다. 할 말이 있는가?》
《사령관님!》
헌병감의 목소리가 청청하늘의 종다리소리다.
《얼마든지 살릴수 있습니다. 그가 여기 와서 뭔가 반국가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사령관님의 위망과―》
《위망따위로 되는가.》
《사령관님, 문제 없습니다. 반공법에 공소보류항목이 있잖습니까?》
《공소보류?!…》
《그렇습니다. 본인당자의 회개여부와 협력열의를 봐서 보류시킬수 있는…》
《협력?!…》
《그까짓 회개나 협력은… 사령관님의 동생인이상 약간한 형식으로만 끝날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정창호는 속이 한줌만 해서 하회를 기다렸다.
내가 그의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할가. 무엇보다 가슴을 죄이는것은 오늘 저녁 연회가 가망이 없다는 아쉬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