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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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밤색창가림이 드리운 방에서는 태민이와 성민이가 나눈 대화가 하나의 잡음도 없이 재현되여 울리였다.
《아니, 미국에서야 그러루한 일은 재미난 일화거리로나 되지 범죄로는 안되는것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조선사람인때문이겠지요.》
《글쎄 창호도 그렇다고 우둘거리긴 하더라만 방법이 있니?…》
(저건 뽑아버려야 했는데―)
구석진 쏘파에 앉아 록음기만 지켜보던 창호는 흠칫하며 명례를 돌아보았다.
제낀 등받이의자에 반쯤 눕다싶이 한 명례는 다행히도 싱그레 웃기만 할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창호의 나이트클럽추태를 상상해보는듯싶었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였다. 아니, 분한 일이였다. 그때문에 또다시 명례의 손탁에 휘감긴것이 아닌가.
(문제는 비끄러매든가 억지다짐으로라두 그놈의 나이트클럽엔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걸.)
경자는 50이 다된 나이인데도 차림은 여전히 처녀처럼 하고 뻔질나게 무도장을 찾아다녔다. 하여 창호도 옛날솜씨를 발휘할겸 둘러리격으로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경자가 나타나면 꼭뒤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들까지 그한테 엉겨붙어 돌아가는것을 대범하게 스쳐보았다.
오히려 처의 미모와 젊음에 대한 자부로 긍지까지 가지게 되였다. 그런데 웬걸, 록크인지 뭔지 하는 춤에 미쳐난 경자는 웬간한 미국인들도 얼굴을 찌프리는 레스링춤까지 거침없이 춰댔다.
집에 오면 그때문에 다툼질이였으나 경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젖가슴을 좀 쥐우고… 그런 부위를 맞부빈다 해서 정조까지 더럽힐줄 아느냐고 야단을 쳤다.
기사도흉내라고 한 그날도 참자고 했다.
한데 오래전부터 경자만 보면 《오, 나의 사랑.》하며 감겨돌던 기생오래비같이 매끈한자가 (그 역시 꼭뒤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였다.) 대바람에 경자의 볼이며 가슴에까지 마구 입을 맞추고 구석진 기둥쪽으로 사라지는것을 보자 젖먹던 밸까지 꿈틀거렸다. 그래도 참았다.
미친듯 한 록크의 울부짖음이 끝나고 느린 왈쯔곡 비슷한 선률속에 하나둘 조명등이 꺼지고… 다시 그 조명불들이 켜질 때 창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생오래비는 경자의 아래부분과 완전히 맞닿아 지랄이였고 그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의 걸탐스런 입술에 반쯤 드러난 가슴을 맡긴 경자는 나른한 눈길로 창호도 아니요, 그 녀석도 아닌 어딘가 허공을 보면서 꿈속에서인양 몸을 뒤틀고있었다.
창호는 더 참을수 없었다.
어떻게 달려갔는지 모른다. 경자의 뺨을 호되게 후려붙이고 그 기생오래비의 팔목을 나꿔챘다. 그다음 《노.》하는 소리와 함께 얻어맞았고. 눈앞에 불꽃이 번쩍임과 함께 창호는 태권도의 솜씨를 보였다.
두―세번 더 찼던가.
우― 하는 울부짖음, 그자는 담가에 실려나갔고 창호는 수갑을 찬채 끌려갔다.
무슨 새로운 종의 원숭이나 나타난듯 싱글거리던 얼굴들… 경찰관들이며 검사라는 작자들앞에서 갖은 구변을 다 발휘해 무죄를 증명했으나 쓸데없었다. 그동안 경자는 한번인가 갈아입을 내의를 던져버리고는 두번 다시 오지 않았고 《한국대사관》의 참사라는자 역시 랭담한 얼굴로 나타나서는 다 알만하신분이 무슨 폭행이였는가고 나무람하며 5년형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5년형의 선고를 기다리며 이를 북북 갈고있을 때 뜻밖에도 대사관참사가 나타나 감옥살이는 면하게 했으니 이 즉시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감옥행이 추방으로 바뀐셈이였다.
하루를 기약하고 집으로 가니 경자는 한바탕 눈물만 짰을뿐 함께 가자는 소리도 없었고 이렇다할 사죄도 없었다.
더우기 분통한것은 수학려행으로 유럽에 간 아들 역시 전화 한통 하지 않는것이였다. 처와 아들까지 다 잃었다는 자포자기의 절망과 비분속에 미국을 떠나 서울비행장에 내리니 장인장모에게만은 그의 불운을 알려 누구든 마중나왔으려니 했는데 맞아주는것은 명례 하나뿐이였다.
그 역시 랭담했고 하는 말이란 거의나 욕설뿐이였다. 주먹질 몇개가 한미간의 국제관계로까지 번져져 구속류치가 기다리고있다고 하던끝에 자기가 애써 그것을 막았고 미국에서의 빼돌리기공작도 자기가 했노라고 하며 창호를 울먹지게 만들었다.
그다음 준 과업이 좀스러운 끄나불들이나 할 도청놀음이였다.
앞으로 비전향장기수들 대부분이 북으로 갈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태민이의 심리적변화를 잘 살펴보며 성민을 북으로 보내지 못하도록 있는 힘껏 재량을 발휘하라고 했다. 리유인즉은 《국군공로자》이시고 한다 하는 퇴역장성인 태민의 동생이 북으로 간다면 태민은 태민이고 우리 한국의 위엄과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느냐 하면서.
그런데 그뒤에 하는 말에 수그러들게 되였다.
―군은 법률상담소인지 한다는데서 친북동향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이북찬양발언도 자주 했다지. 그러니 자넨 그것만으로도 끝장인셈이야. 그러니 이번 일만 잘하면 내가 잘 도웁세.―
명례야말로 정말 끈질긴자였다. 필요하다면 무덤에까지 찾아들어서라도 정보와 요구를 들이댈 검정귀신이였다.…
《이게 전분가?》
등받이에서 몸을 떼는 명례의 눈빛은 예전과 같이 날카로왔다.
《네.》
정창호는 간이 콩알만 해지는 속에서도 시틋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모르겠어.》 명례가 머리를 젓자 기름을 짝 발라 빗어넘긴 머리칼이 춤추듯 흔들거렸다.
《내가 지금까지 세번이나 들어봤는데 지운것이 많은것 같애.》
《지우다니요.》
정창호는 끔뻑 놀라는 태도로 그를 쏴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좋고… 내가 왜 임잘 찾은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뻑 따고 거짓말을 했다. 명례는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척 하며 말했다.
《요즘 자네 장인에 대해서 험담들이 많아. 성민이 북송문제로 적십자회에까지 찾아갔다며.》
《네, 그거야 정부적인 조치이니 잘못된것이야 아니지 않습니까.》
《흠, 자네 그동안 부인님때문에 머리가 돈게 아니여. 국군공로자랍시는분이 북으로 가게 될 빨갱이동생편이 되면 그것이 어찌되나. 또 자네한테는 어떻고. 이에 대해서는 내가 오늘 처음하는 말은 아니잖어.》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로서야 장인도 그렇지만 자네자신을 위해서라도 바로 도와줘야지. 혹시 자네도 그놈의 북송에 바람들린게 아니야?》
《그거야 정부적조치이니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음, 자넨 애당초 미국감옥에 그냥 있어야 할걸 그랬어.》
《모욕하지 마십시오.》
《모욕?!》
명례는 억이 막힌다는듯 입을 쩍 벌리고있다가 웃었다.
《난 자넬 모욕할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어. 생각해보라구. 자네의 불행이 어떻게 생겨났나. 따지고보면 그 성민이라는 고집쟁이때문이 아닌가. 자네 처가 미국에 간것도 그때문인거구. 거기서 안 오는것도 빨갱이친척소리가 싫어서 그런것 아닌가. 또 거기서 그놈의 춤판에 빠진것도 구경엔 그 성민이로 인한 고민때문이 아니겠나?》
《그건… 지나친 삼단론입니다.》
《삼단론?!… 그렇다 하자구. 하지만 장인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그때문에 사회에서 떳떳이 머리를 쳐들수 없지 않나.》
《그럼 어쩌라는겁니까.》
《허, 자넨 오늘따라 왜 그렇게 신경질이 심해졌나.》
《어쩌겠습니까. 저로서는 더 다른 방도가 없고… 설사 있다해도 가야 할 사람은 가는것이니 굳이 붙잡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게 문제야. 자네로선 붙잡진 못해도 그런 표신이야 보여야잖나. 지금처럼 자네가 이도저도 다 좋다는 식으로 나오면 무슨 꼴이 되겠나.
그저 가시집의 식객이 되는것이고 그렇게 되면 처한테서도 그냥 소박당할것 아닌가. 이러지 않고 자네가 두드러지게 뭔가 한다면 출세는 문제없을것이구 그때면 오만방자한 부인님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네 품에 안길것이 아닌가.》
《그건 저의 사생활문제이니 더 말하지 맙시다.》
창호는 명례와 려아의 관계를 생각하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지간 명례와 려아의 관계를 자상히 알게 된 창호였다.
명례는 그걸 느껴서인지 얼굴빛이 험악스럽게 이지러졌다. 아닐세라 재차 하는 말이 창호의 속심을 헤쳐보는 소리였다.
《자넨 지금 내 전처를 생각하지. 뭐 잘못된건 아니야. 이런데선 나도 그 성민이가 괘씸스럽단 말이야. 그자가 나타나니 그 예수쟁이년이 탈바꿈을 했거던.
물론 내가 그를 못 가게 하자는것은 그따위 감정때문은 아니야.
말은 바른대로 사내는 뜻을 따라 사는것이구 뜻을 지키는데 참삶이 있는것인즉 나라를 생각하구 옳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를 못 가게 해야 한다는거야.
내 다시 말하네만 호국의 뜻에서 생각해보라구.
여느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는건 그렇다 하지만 자네의 장인이라는 어른은 국군공로자로서 력사에까지 남을분인데 그 동생이라는 녀석이 형도 뭣도 다 차버리구 간다면 남북대결의 선상에서 우리의 체면은 어떻게 되나.》
《그렇다 해서 무슨 수가 없잖습니까.》
《왜 없어.》
명례의 눈이 칼날처럼 번쩍이는가싶더니 미묘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자네들이 정 못한다면 내가 하지.
요즘 장인의 기분상태는 어떻나?》
《울적해하는 기분입니다.》
《동생과 헤여진다는때문인가?》
《네, 그런것 같기도 하고…》
《됐네, 내가 며칠안으로 자네 장인을 만나겠어.》
《그건… 잘 료량해서 하십시오.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아요. 혈압파동이 심하거던요.》
《이봐, 그런 자그마한데까지 신경을 쓰면 큰일은 못해.》
명례는 싸늘한 눈길로 훑어보고는 탁밑의 초인종을 눌렀다.
짧은 바지차림의 애젊은 처녀가 나타났다.
《이 어른을 싸우나(한증)에 데려가.》
창호는 화닥닥 놀랐다.
《전 그만 가겠습니다.》
《뭐 좀 땀을 빼고 가는것 좋잖아, 식사도 함께 하고.》
《일없습니다.》
창호는 쫓기듯 밖을 나왔다.
《허, 자네는 여전하군.》
명례의 낄낄거리는 웃음이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