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3

 

《참, 미국에 갈 때 엔트로우인가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는데 그가 지금도 살아있소?》

《살아있구말구요. 한데 아직도 그를 잊지 않고있습니까?》

정창호는 자못 놀랍다는 기색이였다. 성민은 웃었다.

《잊을 사람이 따로 있지. 그와의 회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셈이니까.》

《역시 선생님다운 소리군요. 하긴 그 사람도 선생님에 대해서 가끔 얘길 하군 했지요. 대체로 좋게 말하더군요. 카터씨가 평양으로 갈땐 자기 공로도 없지 않다고 하면서 선생님한테 인사받을 소리까지 했구요.》

《그가 뭘하길래?》

《무슨 카터재단의 연구소인가 하는데서 조선문제전문가로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영국에 가서 산다는가봅디다.》

《거긴 왜?―》

《제 말로는 조상들의 땅에서 눈을 감겠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두루 사람들의 눈밖에 났는가봐요. 그의 주장이 너무 친공적이라던지―》

정창호는 희갈색쎄단차가 앞질러 선회하자 《에익―》하며 가속변을 밟다가 시무룩이 웃으며 다시 속력을 늦추었다.

《선생님을 봐서 참겠습니다.》

선생님이라기보다 지나친 과음때문일것이다.

그동안 미국생활에서 창호가 달라진것이 있다면 술고래가 된것이다.

창호는 성민이 잡아끌어앉힌 식탁에서 소주 세병을 말끔히 비워버렸다. 그러고도 얼굴색 하나 달라진것이 없고 차를 모는데서도 여유작작하다.

성민은 오늘 이 정창호로 하여 하나의 대용단을 내렸다. 태민형을 만나기로 한것이다.

그간 해성이네를 봐서도 태민형을 꼭 만나야 하겠다고 별렀으나 못갔다. 결별한 형님이였고 찾지도 않는 사람이니 굳이 가볼수 없지 않느냐 하는 자기로도 옹졸한 생각이 발을 묶었던것이다. 그런걸 오늘 창호가 풀어준셈이였다.

보름전에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창호는 그동안의 인사도 인사지만 장인님의 분부때문에 왔다고 하며 성민을 일으켜세웠던것이다.

창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가보면 알게 되는것이고 성민이로서는 해성이네와 태민이네의 절치부심만은 꼭 깨뜨려야 했으니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창호가 무척 고마왔다.

잠시후 차는 쇠울짱을 빙 둘러친 2층집앞에 이르렀다.

창호는 짤막히 경적을 울리고 부석부석한 얼굴을 쓸어만졌다. 연하늘색라크칠이 번쩍이는 대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집지기인듯 한 허우대 큰 로인이 꺼꺼부정한 자세로 서있다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집은 교외에 위치한때문인지 유럽식의 별장처럼 이렇다할 장식은 없고 현관루대의 돌화분과 벽에 붙인 대리석판들이 이채로왔다.

《…로동자들 피땀을 짜먹는 똥장군과 무슨 화해고 뭐고 있단 말이냐.》

언젠가 하던 지응석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현관정문에는 옥영이가 나와 서있었다. 실내복인듯 한 노란 달린옷차림에 까만 숄을 어깨에 두르고 서있던 옥영은 차가 멎기 바쁘게 두손을 찰싹 맞부딪치고는 굴듯이 계단을 뛰여내려왔다.

《글쎄 난 점심을 챙겨놓고 눈이 까매 기다렸는데 이제 오믄 어떻게 해.》

먼저 창호에게 눈을 빨고는 그는 그간 아무런 일도 없었고 자기와는 여전히 무랍없는 사이임을 강조하듯 어릴적 말투로 생긋 웃으며 성민의 잔등을 밀쳤다.

《어서 들어가요.》

《허허, 이거 포로취급이구만.》

성민이 역시 그동안의 일은 가뭇 잊은듯 허심하게 웃으며 옥영의 뒤를 따라섰다.

전실구석쪽 쏘파에 앉아있던 사람이 엉거주춤 일어서다말고 다시 앉았다.

《음, 오긴 오는구나.》

웅글진 목소리로 그가 태민임을 알아보았다.

차잔을 놓고 앉은 그는 한여름철인데도 회색털세타를 입고있었다.

분명 일어설듯 한 자세였으나 몸만 조금 움씰했을뿐 다시 등받이에 몸을 젖힌채 랭담할사 한 눈길로 성민을 뜯어보았다.

검버섯이 잔뜩 돋힌 얼굴은 차거워보였다.

《점심은 먹었니?》

《네.》

《참― 무슨 형제가 이렇담. 게 앉든가… 아니, 집구경부터 해요.》

《집구경은 무슨 집구경, 사느라면 죄 볼텐데.》

태민이 이렇게 불퉁그러진 소리를 했으나 다행이라는 투였다. 성민이 역시 서먹하고 어색스러운 역에서 잠시나마 피하고싶었다. 2층계단을 올랐을 때 옥영이가 숨찬 소리로 소근거렸다.

《이봐요, 너무 뻣뻣해서 그러지 말고 좀 사근사근하라요. 글쎄 그간 우리 잘못두 없지 않지만 어쩌겠어요. 저이야 고혈압이 아닌가요.》

고혈압! 성민은 속이 뜨끔했다. 그간 성민이가 태민이를 찾아오지 않은데는 이 고혈압때문이기도 했다. 경주 김씨의원이라는 사람이 뇌졸중완치는 장담했지만 시골 돌팔이의사의 치료를 어느 정도 믿겠는가. 태민이와 맞다들면 거짓연기는 할수 없으니 예전보다 더한 충돌이 있을수 있는것이고 그렇게 되는 경우 뇌졸중재발이 일어날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옥영이가 집구경을 시킨다는것도 이때문일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태민의 침실에 들어서니 첫눈에 띄는것이 액틀사진들이였다.

그중의 한 사진은 태민의 결혼식사진으로서 성민이네 가족전체가 찍혀진것이였다. 성민이 그 악몽같은 날 밤에 찢어버리다 남긴 사진과 같은것이였으나 3배로 확대한것이라 먼발치에서도 얼굴들을 잘 알아볼수 있었다.

불시에 눈굽이 젖어들며 가슴이 쩡해들었다.

옥영이앞에서 지나친 감상을 드러내는듯싶어 고개를 돌리니 침대 맞은편에는 한폭의 커다란 유화가 걸려있었다.

《9번째 파도》! 산악같이 치솟는 험한 파도, 길길이 날뛰는 그 파도마루를 쏴보며 노대를 억세게 틀어잡고있는 주인공, 검게 드리운 구름속에서는 몇줄기의 해빛이 꿰비쳐나오며 구원을, 승리를 암시하고있었다.

아이바좁쓰끼의 이 그림은 성민이 젊을적부터 무척 사랑하던 그림이였다.

감옥에서도 이 그림을 자주 떠올려보군 했다. 어찌 보면 그 그림의 주인공은 자기같기도 하고 자기의 지향과 결심그대로를 재현시킨듯 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그 그림을 상기할 때마다 고향바다의 풍랑과 그 풍랑속을 헤쳐오던 사공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였다.

그렇다면 형님은?… 형님에게는 무슨 파도가 있었을가. 하긴 없었다고는 할수 없었다. 모름지기 그에게 덮쳐든 파도중에는 자기라는 존재도 있지 않을가.

방들을 돌아보고 내려가니 태민은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이유, 이게 뭐예요. 그만큼 담배를 끊으라고들 하는데―》 옥영이 깜짝 놀라는 소리를 하며 그의 손에 들린 려송연과 재털이를 빼앗아들고 나갔다.

《허허, 저 사람은 여전히 암쾡이(고양이)다. 게 앉아라.》

태민은 한결 풀린 기색으로 그의 옆 쏘파를 가리키며 차잔을 옮겨주었다.

《그래, 감상이 어떠냐?》

《괜찮군요.》

《괜찮다?!… 골고루 잘살아야 한다는 네 뜻에는 거슬릴테지.》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하긴 그렇지. 그래, 응석아주바이랑 어떠냐? 앓고있다던데.》

《심합니다. 지금은 음식도 못들고… 하는 말씀이란 거의나 고향소리뿐이구요. 오래 앉아있을것 같지 못합니다.》

《음―》

태민은 상두대밑에서 또 하나의 려송연을 꺼내들며 눈을 찌글서 떴다.

《넌… 그때문에 날 더… 원망할테지.》

《그렇습니다.》

《그럴수 있지.》

태민은 려송연을 매만지다가 성민을 곧추 보았다.

《그건 네 말마따나 내 잘못이 크다. 한데… 해성이 류치장살이를 한걸 아니?…》

《압니다.》

《그 애가 감옥살이까지 하지 않은건… 내가 좀 힘을 썼다.… 경자가 유괴인지 뭔지 절간에 끌려갔을 때 해성이가 거기서 보초를 섰다는것두 들었을테지.》

《네. 절간에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가끔 들군 하는 암자에 그 앨 넣고… 해성이가 지켜있었다더군요.》

《경자도 문틈으로 해성인걸 알아보았다. 뭐 내 자랑으론 듣지 말어라. 그 일루 경찰에서 더 알아보자는것두 내가 막았다. 그런데 넌… 우리 집에 와서 살면 안되겠느냐.》

성민은 태민의 눈시울이 가늘게 떠는것을 보며 뜨거운것을 삼켰다.

《왜 살고싶지 않겠습니까. 그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렇다면 예 오렴.》

《거야 제가 형님의 뜻을 어기는것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동안 널 외면했다 그때문이겠구나.》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저로서 형님뜻을 따른건 이 하나뿐이구… 또 이것만은 꼭 지켜야겠다 생각했지요.》

《건 옥생각이다.》

《그렇다면 형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성민은 옥영의 부탁을 생각했으나 어쩔수없이 이 말을 했다.

다행히도 태민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가닥 실웃음을 지어보였다.

《건 네 말도 옳다. 하지만 동생이 양보를 해야지 형이 먼저 〈제발 와주십사.〉 빌어야 옳겠느냐. 난두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

그 말에 성민은 속이 좋지 않았다.

태민의 축 늘어진 볼과 검버섯들을 다시 보니 짜장 그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태민이 탄식조로 계속했다.

《하긴 너도 70고개에 올랐으니 옛날로 하면 인간귀유 70사라고 저세상사람인셈이지. 여하튼 안됐다, 좋은 세월 다 아깝게 보냈으니―》

《형님, 못난 세월 살았다 해야지요.》

성민이 빙그레 웃어보이자 태민이도 따라웃었다.

《허허, 아버님말씀이로구나. 못난 세월에도 살줄 알구 못난 세월에도 이겨야 한다! 그런즉 너는 못난 세월과 싸워이겼구 난 그렇지 못하다는 소린데 내 말하자는건 네가 좋은 시절을… 다 감옥에서 보냈으니… 하는 말이다.》

태민의 눈굽이 질척해졌다.

《형님!》 성민은 속이 쓰려들었으나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전 그에 대해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때문에 너무 속을 쓰지 마십시오.》

《허허, 인생무상이라구 난두 거기서 초월하려고 하지만 어디 그렇게 되니, 후회도 많구… 너 보기두 부끄럽구… 한데 너두 집에 갈 신청수속을 한다는데 그냥… 갈셈이였니?》

려송연에 불을 붙이는 태민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떠나기 전에 찾아뵈려구 했습니다.

제가 좀 옹졸하다나니―》

성민은 진정으로 미안스러웠다.

《그래, 꼭 가야겠니?》

《거야 더 말할것 있습니까.》

《하긴 나두 그렇게 생각했다.》

태민은 길게 한숨을 내뿜고는 당장 리별을 앞둔 사람처럼 성민을 뚫어지게 보다가 불쑥 물었다.

《처는 어떤 녀자냐? 순정이라면 그전에 내가 목단강집에 갔을 때 본 그 처녀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생기긴 괜찮더구나.》

《마음도 그렇습니다, 반일독립투사의 딸이고.》

《그건… 그때두 알았다.… 자식은 둘이라고 했던가?》

《네, 둘 다 아들입니다.》

《허, 욕심을 부렸구나. 한데 그들 소식은 모르겠지?》

《…》

성민은 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 어디 도청기라도 있지 않을가 하는 경계심때문이였다.

태민이 불현듯 싱그레 웃었다.

《게 가면… 날 무척 욕할테지.… 한데 그들한테만은 내 부실한 소리들을 옮기지 말거라. 시형이라는게 인륜도 도덕도 모르는 사람이 되였으니 무슨 망신이냐.》

옥영이가 들어와 정담들은 그만하고 음식을 들면서 속풀이를 하라는 말에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는 하고 왔는데요.》

《뭐 이른저녁 겸 함께 들면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태민을 따라 전실 옆방에 들어선 성민은 고향집 할아버지방에 들어선듯 한 착각이 일었다.

왕골로 짠 돗자리우에 놓인 장탁형의 앉은뱅이밥상도 고향집것과 비슷한것이였고 비단방석의 색갈도 그때의것 그대로였다. 흰 바람벽에 붙은 액자의 글들도 죄다 한문으로 쓴것으로서 그때의 방을 련상시켰다.

《사람이 늙으면 어릴적 시절을 그리게 되는거다.》

성민이 놀라와하는 상을 띄여본 태민이 벙글서 웃으며 어서 앉으라고 했다.

상차림은 요란했다. 그전날 할아버지도 손님들이 오거나 명절때면 자기 방의 장탁형밥상에 음식들을 가득 넘치도록 차려놓는것을 좋아했다.

《창호는 안 오우?》

태민이 술병을 안고 들어서는 옥영을 보며 물었다.

《경호 아범은 적은이 점심대접에 배가 불렀다면서―》

《거 잘됐군, 당신도 게 앉소.》

태민은 그의 손에서 술병을 받아들고는 성민에게 의미있는 눈길을 주었다.

《이게 어떤 술인지 알겠니?》

성민이 새삼스럽게 살펴보니 목이 긴 술병에는 《평양소주》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

《아니, 이 술이 어떻게 집에 있습니까?》

《허, 이런 술이 들어오는지가 언젠데. 해성이네 식당엔 없던?》

《이런 술이 들어온다는건 알았지만…》

《이게 세월의 흐름이란거다.》

태민이 술을 잔에 부으려 하는것을 보고 성민이 닁큼 병을 받아쥐였다.

《제가 부어야지요.》

《그래라.》

태민은 못내 흡족한 기색이였다.

성민은 이름할수 없는 감회와 아픔을 안고 조심스레 그의 잔에 술을 부었다.

태민의 결혼식때 말고는 이번이 처음인것이다.

《인줘요.》

옥영이 술병을 받아들고 성민의 잔에 부을 때 커다란 접시우의 송이버섯이 눈에 띄였다. 산판에 있던 모양 그대로 옹기종기 세워놓은것들이였다.

《너도 이젠 술을 배웠겠지?》

태민이 물었다.

《조금은 합니다.》

《그래, 할 때는 좀 해야지.》

태민은 성민의 눈길이 멎어있는 송이버섯접시를 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너… 버섯구이가 생각나니?》

《네.》

《저게 그거다. 송이갓밑에 소금을 넣고 해볕에 쬐이던… 이런 말은 안하자고 했다만 네가 집에서 올 때 송이버섯을 가지고 왔던것두 알고있다. 그땐 어머니가 보내신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자, 이런 말은 그만하고 어머님과 아버님의 명복을 비는 제술로 알고 들자.》

마셨다.

《난 말이다, 너한테도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더욱 죄스럽다.》

《형님, 그런 말씀 더 하지 말자구 하잖았어요.》

성민은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송이버섯 한개를 집어들었다. 갓을 떼니 희읍스름한 속대살우에 채녹지 않은 소금 몇알이 다문다문 박혀있었다.

《어떠냐, 옛날때 그대로이지. 내가 직접 한거다. 바위돌이 아니라 지짐판우에 놓아두었다만…》

태민은 웃어보이려는듯 했으나 입술만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경자는 왜 안 온다는겁니까?》

《경자?!…》

《네, 창호의 말로는 집사정때문에 못 왔다고 하던데요.》

《집사정은 무슨 집사정… 그 애들은 갈라진셈이다.》

《갈라지다니요?》

태민의 고혈압을 념려해 화제를 돌린다는것이 반대로 되였다. 다행히 태민은 그닥 대수롭지 않다는 기색이였다.

《건 먼저 경자한테 따질 일이다만 시작은 창호때문이다.》

《창호가?!》

《그렇다. 사위라는 녀석도 자칫하면 너처럼 옥살이를 할번 했다. 그것도 미국감옥에서 말이다.》

《아니, 건 무슨 일인데요?》

《허―어, 그걸 다 말하자면 옛날말루 활극같은거다.

그 녀석이 옛날 유럽식기사도흉내를 낸셈인데― 허, 무슨 나이트클럽인지 뭔지 하는데서 경자한테 지분거리는 녀석을 때려눕혔다는거다.》

《죽였는가요?》

《죽이기까지야, 창호말로는 태권을 해서 꺼꾸러뜨렸다는데 법기관들에서는 살인죄보다 더 큰걸로 소동을 부렸다는구나.》

《아니, 미국에서야 그러루한 일은 재미난 일화거리로나 되지 범죄로는 안되는것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조선사람인때문이겠지요.》

《글쎄 창호도 그렇다고 우둘거리긴 하더라만 방법이 있니? 우리 외무부에선 그 애 문제가 국가관계로까지 번져졌다고 울상이였구. 그런대로 외무부사람들이 손을 써 5년징역을 살게 된 그를 여기로 빼돌렸다.》

《그런데 경자는 왜 갈라진다는것입니까?》

《망신을 당했다는거다.》

《그러니 영 갈라질 잡도립니까?》

《뭐 딱히 그런 소리는 안하더라만 모르겠다.》

《야단이군요.》

《그렇다. 나처럼 다 늙어빠진 다음에야 셈이 들겠는지… 하긴 그애가 외로 빠진건 내탓도 있지. 옥영이더러는 그 애 응석을 너무 받아들였다고 책망하였지만… 한데 옥영은 그 애 외고집이 너를 닮은탓이라는구나.》

《허허, 나를요?》

《그건 그렇구, 이제부턴 매사에 조심하거라.》

《건 어떤 뜻에서요?》

《듣자하니 너를 재구속대상이라구 하더라. 네가 반국가선전과 북쪽사상선전에 열심한다고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잡아넣겠다는거지. 그러니 운동권단체들과도 너무 섭쓸리지 말구. 요 며칠전 택규도 와서 그런 소릴 하더라.》

《택규도 살아있습니까?》

《살아있지. 그도 다된 늙은이다만.》

《그는 지금… 어떻습니까?》

《예전이나 같지. 한데 너에 대해서만은… 좀 안됐다고 하면서 북송에는 찬성이더라.》

《허허, 상전벽해라더니 정말 놀랍군요.》

《크게 놀랄건 없다. 나도 지금처럼 말한다 해서 그전과 달라진건 별로 없다.》

《아니, 그건?…》

성민의 실망어린 말에 태민은 씩 웃었다.

《거야 당연한거 아니냐. 너도 그렇지, 지금은 네가 얼마간 마음이 풀렸다만 여하튼 너도 그렇고 순정이랑 다 날 원쑤맞잡이로 볼거구… 나 또한 반생넘게 지금같은 길을 걸었으니 이제 다 끝난 육신으로 되돌이잡이를 못할것 아니냐.》

《형님, 과거는 과거고 오늘과 래일이 중요한것이 아닙니까.》

《허허, 네 말하는 뜻을 모르는게 아니다. 아마 넌 최덕신이나 최홍희를 비출수 있을게다. 나도 그들이 방향전환을 했구 그때문에 김주석님께서 그들을 따뜻이 품어주시고 내세워주신것도 안다. 하지만 그건 특정인에 한한것이구… 나같은 사람이야 어림있니. 나로 말하면 너한테도 그렇지만 이북 모든 사람들한테 피맺힌 원쑤가 아니냐.》

《형님, 난 그것이 형님의 본의는 아니였다고 봅니다. 비극은 미국놈들때문이지요.》

《그만해라. 네가 어머님소리까지 또 할것 같은데… 나라구 왜 그런걸 전혀 모르겠니.

너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심장두 뇌두 다 좋질 않다. 거기에 경자일까지 겹쳐서… 사람 사는것 같지 않다.

그동안 반나절은 회사일에 조금 삐치구 그다음은 진종일 두루 생각인데… 고향생각이 많다. 죽으면 거기에 뼈를 묻을수 없을가 하는 부질없는 망상두 있고… 에이, 이런 얘긴 그만하자. 그래 넌 이제부터 어떻게 할셈이냐?》

《저… 떠날 준비로 그지간 알게 되였던 사람들도 만나보고 감옥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묘소에 가서 인사를 하자고 합니다.》

《그―래.》

《그다음엔 형님네 집에 와서 신세를 졌으면 합니다.》

《우리 집에.》 태민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맙다.》

《그런데 형님, 응석아주바이한테 가봐야지 않아요?》

《가봐야지. 암, 가보구말구.》 태민은 더없이 기뻐하는 기색이였다.

《근데 네가 가본다는 곳은 어데냐?》

《가능하면 제주도까지 가보려구 합니다.》

《려비는 있냐?》

《네, 그건 장만할수 있습니다.》

《여보!》

《아니, 귀청 떨어지겠구려.》

그의 곁에 앉았던 옥영이 일어날 자세로 벙글거렸다.

태민은 여전히 호령조로 말했다.

《이 사람한테 줄거 있지?》

《네, 준비됐사와요.》

굽석 절까지 하고 방을 나선 옥영은 두툼한 돈봉투를 가져왔다.

《그건 뭡니까?》

성민이 귀뿌리가 달아올라 하는 말에 태민은 엄엄한 태도였다.

《두루 다니느라면 돈쓸 일이 많겠는데 보탬하라는거다.》

《아니, 저한테도 있다고 하잖았습니까.》

《써라, 내 돈이여서 싫다면 어머님이 주시는것으로 알고 받거라.》

《허 참, 건 무슨 말씀입니까?》

《그럴 일이 있다.

너도 아버지도 모를거다만 그전에 내가 집을 떠날 때 어머니한테만은 대충 알렸다. 그때 어머니는… 인차 오라고 하며 시집올 때 가지고왔던 패물과 노리개 전부를 나에게 주었다. 법도가 그렇다고 하면서 옥영이가 쓰게 하라구…》

태민은 목이 꺽 막혀 더 말을 못했다.

성민이도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한참 지나서야 태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래일 너의 집에 가도 되겠니? 응석아주바이한테 말이다.》

《그럼 더 좋지요.》

《그렇게 하자. 한데 돌아보는 일로 너무 지체하지 말아라.

돌아가는 말로는 가을전으로 떠날것 같은데―》

《네, 인차 오겠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형님과 함께 있지요.》

《암, 그래야지. 우리 서로 함께 자구 함께 먹으며… 혹시… 모른다. 나도 너와 함께 따라갈지.》

성민이 정창호가 모는 차에 올랐을 때 태민이와 옥영은 대문가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