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

 

밖을 나선 성민은 옷섶으로 스며드는 쌀쌀한 여우바람에 몸을 움츠려뜨렸다.

그를 인수받은 형사는 《요시찰사상범》을 단독으로 호송하게 된때문인지 아니면 택시 하나 붙잡지 못할 빈털터리에 대한 락심때문인지 배추잎처럼 퍼래진 얼굴로 주위를 두릿거렸다.

성민이 나와선 곳은 감옥정문이 아니라 후문뒤마당이였다.

그간 출소식때마다 언론계와 운동권단체성원들이 마중오는것을 잘 아는 성민으로서는 마른 락엽만이 딩구는 텅 빈 마당에 나서고보니 마음이 지겹게 쓸쓸해졌다.

뿌잇한 하늘로 몇마리의 새가 날아가는것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새들이 앉았던 메마른 백양나무의 가지 하나가 꺾어져 드리운것을 보니 허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아지를 지팽이삼아 꺾어들고 부지런히 걸어가면 그립고 그리운 순정이며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갈수 있을것이 아닌가.

형사가 투덜거렸다.

《이거 너무하군요. 지장군의 동생이라니 택시라도 불러댈줄 알았는데―》

락엽들이 딩구는 길로 얼마간 걸었을 때 쥐색승용차 한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선생님!―》

차에서는 까만 조선치마저고리차림의 설화가 나는듯이 달려왔다.

쓸쓸한 황야에서의 첫 기쁨, 차에서는 또 한사람 어깨팍이 쩍 버그러진 장정이 내렸다. 해성이였다.

자기는 큰어른이니 어린 처녀에게만 기쁨을 죄다 맡긴다는 식으로 싱글싱글 웃으며 내려서는 《웃자요!》하며 성민을 들어안은채 두세바퀴 휘둘렀다.

《얘얘, 어지럽다. 그만 놓거라.》

솟구치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설화도 눈굽을 찍었다. 텅 빈 마당쪽을 둘러보고는 귀엽게 중단발을 쓸어올리며 웃어보였다.

《선생님, 미안하네요. 선생님 나오실 땐 굉장한 환영식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알게 되니 저만 왔군요.》

해성이가 바빠맞은듯 입을 열었다.

《저두 오늘 새벽에야 통지를 받고… 너무 덤벼치다나니 설화양에게만… 형님, 안됐어요.》

《얘, 난 너희들만으로도 기쁘다, 기뻐.》

연신 시계를 보던 형사가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이거 안됐습니다만 서울까지 가자면 서둘러야겠는데요. 해떨어지기 전 들지 못하면 수속을 못하고 한데서 밤을 새야 하지 않아요. 회포는 차츰 나누시기로 하고―》

기차로 갈 예정이였던듯싶은 형사는 승용차가 나타난 뒤부터 어지간히 반색한 꼴이였으나 제법 틀잡힌 지시조였다.

설화의 맵짠 눈이 그에게 휘돌아가는것을 본 성민이 《얘, 법에 걸릴라.》하며 잔등을 떠밀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설화의 옆에 앉아 그가 잡아주는 손길과 체온을 느끼게 되니 《법에 걸린다.》라고 한 말이 자기로도 우습기도 하고 바깥세상을 그리워한 심정이 돌이켜지며 또다시 눈물이 났다.

 

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차는 바람처럼 내달렸으나 서울에 이르렀을 때는 해떨어지기는커녕 늦저녁이였다.

시계를 보던 형사가 오늘은 틀렸으니 어데서 쉰다? 하는 식의 말을 꺼내자 해성이가 그의 주머니에 뭔가 찔러넣었다.

《아 아, 공무집행중에 이러시면 안돼요.》 형사는 이러면서도 《밤참이나 하시라는겁니다.》하는 해성의 말에는 건숭 고개를 끄덕였고 《형사님 수단이면 날치기통과 문제없잖어요.》하는 설화의 말에는 입귀가 헤벌쭉해졌고 그래줬으면 하는 성민의 애절은 눈길을 보자 《에라― 퇴근녘이지만 한번 개땅쇠 굴레바퀴놀음을 해봐.》하며 차를 어디어디로 몰라고 사또님고개짓을 했다.

해성이가 찔러준 돈이 약차한것 같았다.

개땅쇠 굴레바퀴라더니 형사는 맞다드는 기관들마다에 부리나케 뛰여들었다가는 뛰여나오고 그렇게 하기를 두세번 하고나더니 몇개의 도장이 찍혀진 종이장을 성민에게 주었다.

래일 아침 어디어디 몇군데 가 인사말씀 잘 올리면 사회인이 될터이니 아무쪼록 재범(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뜻.)말고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뻘겋고 노란 장식등들이 껌벅이는 술집앞에서 내렸다.

그 술집간판에는 ―꿈, 추억, 눈물도 반끽(만족을 기한다는 뜻.), 문배, 청주, 코냑, 리카도… 동서의 명주 다 있습니다.― 하는 글이 우리 말과 영어로 써있었다.

해성이네가 식당으로 꾸렸다는 자그마한 2층집앞에 이르니 그 식당 간판에도 안내광고글이 씌여있었다.

―보신, 보양, 보음을 원하신다면… 칼치, 도미, 명태, 오징어, 상어, 동해의 푸른 물에 씻기우고 대양의 풍랑속에 키워진 그 힘을 얻게 됩니다.―

성민은 《동해의 푸른 물…》이라는 글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모름지기 거기에는 고향 바다가를 그리는 지응석의 훈수가 작용했을것이다.

차가 식당뒤로 돌아들어서자 청간처럼 지은 살림집문이 삐그덕 열리였다. 허리가 굽은 파파 늙은 할머니가 기웃하고 내다보다가 소스라치는 소리를 내며 뛰여나왔다.

그뒤 방안에서 《어― 어―》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에그, 기차라.》

차에서 내리는 성민을 본 할머니는 두손을 맞잡은채 이빠진 입을 항벌렸다. 5촌숙모였다.

성민은 맨땅에 무너지듯 꿇어앉으며 그에게 절을 올렸다.

《에그―》 또 한번 고향사투리그대로의 다기찬 한숨을 내뿜는 5촌숙모의 어깨를 잡아쥐니 그동안 세월의 변화가 새삼스럽게 안겨왔다.

《성민인… 여전하네그려.》

눈물이 글썽해 성민의 아래우를 오르내리 훑어보던 숙모는 방안에서 《어― 어!》하고 재차 울리는 소리에 어서 들어가자고 하며 성민을 이끌었다.

두칸짜리 웃방에 지응석이 누워있었다.

향수내가 방안을 꽉 채우고있었다. 오래동안 자리에 누워있는 늙은이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서일것이였다.

《성민아―》

이불을 높이 고여 상체가 엇비스듬히 들린 지응석은 성민을 맞으려 갈아입은듯 한 하얀 조선바지저고리차림으로 바지랭대같은 팔을 힘없이 내뻗쳤다.

성민은 눈물이 꽉 뻗쳐 얼른 그 팔을 집으며 꿇어앉았다.

《아주바이!―》

성민이 그의 어깨를 그러안자 응석은 메마른 손으로 성민의 얼굴을 쓸어만졌다.

《넌두… 령감이 됐구나.… 에그… 그 몹쓸… 형네 집에 가지 않길 잘했다.》

《아버님, 그런 말씀 안하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해성이 두덜거렸다.

지응석이 뜻밖일 정도로 큰소리를 쳤다.

《왜 안한단 말이냐, 왜? 그게 인피를 썼지 사람이냐.》

《아주바이, 고정하십시오.》

성민의 말에 응석은 또다시 손을 쳐들려다말고 맥없이 내리웠다.

《성민아… 내 지금껏… 너를… 보자구… 살았다. 이젠 됐어. 늬 아버님이랑 자꾸… 찾으니… 가도 되겠다.》

《아주바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젠 저두 있으니… 고향에 가야지 않습니까.》

《그래, 가야지… 가구말구―》

지응석은 입귀를 실룩이다가 《어, 밥을 차렸나?》하며 누구에게라 없이 소리치고는 《됐수다.》하는 소리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인차 잠드는듯싶었다. 가르릉거리는 숨결에 이어 이따금 호흡이 막히는지 흡뜨는 소리를 했다. 쪼그라들고 마른 얼굴엔 흉터자리도 없고 다치면 종이장처럼 버석거릴듯싶은 살가죽이 푸릿하게 보였다.

《오늘은 그만하면 정정하신셈입니다.》

해성이가 아버지를 측은히 보다말고 식사를 하자며 아래방으로 이끌었다. 5촌숙모는 굽은 허리인데도 부지런히 부엌을 들락거리며 상차림을 했다.

《게 소에(송이버섯)를 놓았느냐?》

수저소리에 그동안 잠든줄 알았던 지응석이 큰소리를 내질렀다.

그다음은 감감 소리가 없었다.

성민이 송이버섯이라는 소리에 해성을 보자 해성은 울적한 얼굴이였다.

《아버지는 제가 떠날 때부터 저 소리였는데… 형님이 가지고 왔던 송이버섯을 상에 놓으라는거지요.》

《아니, 그게 아직도 있나.》

성민은 40여년이 지났는데도 그 송이버섯이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태민형에게 주려고 가지고 왔던중에 얼마간을 덜어놓았던것이다.

해성은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잡혀간 다음 집뒤짐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감추고 내놓지 않았습니다, 형님이 풀려나온 다음 같이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변하다못해 아예 먼지가 되고말았습니다. 한데 오늘 새벽 그걸 꺼내서 볶으라구… 허참.》

성민은 목이 메여 밥술이 올라가지 않았다.

밤새워 그간 일들을 이야기하는중에 날이 희푸릇 밝아졌다. 그때부터 아침상에 마주앉을 때까지는 잠에서 깨인 지응석이한테서 또 그간 겪은 일을 되풀이했다.

기력은 쇠진했으나 기억력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지응석은 이야기대목마다에서 한탄도 하고 분기를 떨치는데 그 분기란 대부분 태민에 대한 지탄과 노염이였다.

첫아침에 해성이와 함께 형사가 찾아가라고 한 기관들을 몇군데 다니며 수속을 하고 《가르침》도 받았다. 그 《가르침》이란 《보안관찰대상》이니만치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며 누구를 만나거나 래왕이 있을 때면 법기관의 승인》밑에 움직여야 한다는 주의사항이였다.

《보안관찰대상》이란 《반국가적》위험행위를 했거나 할수 있는 대상에 대한 엄중감시와 통제를 의미한것이다. 결국 감옥밖에 나왔지만 절반은 옥살이를 하는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2~3일씩 걸린다던 수속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다. 《가르침》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였을뿐이다.

집에 돌아오니 해떨어질녘부터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설화의 동무들과 그동안 성민에게 신세를 입힌 운동권대표들과 먼저 나온 감옥동지들이였다.

그런 사람들과의 재회로 며칠을 보낸 뒤 성민은 살아갈 방도를 의논한 끝에 고서적점을 내오기로 했다. 책점은 해성의 호의로 식당안에 차리기로 했다. 이틀사이에 카운더 비슷한 매대를 차리고 설화와 그의 동무들이 가져온 책들을 쌓은 다음 수지유리판에 《옛고서들을 널리 사드립니다.》라는 자기로도 약간 얼굴이 붉어지는 안내광고 비슷한 글을 써놓고 책상우에 척 올려놓았다.

며칠사이에 책점이 흥성거렸다. 설화와 그 동무들의 선전과 선심도 있었겠지만 대학가의 청년들을 비롯한 각계층의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들었다. 대부분은 책을 공짜로 넘겨주었고 그대신 사려는 책은 비싸게 사갔다.

이것은 성민에게도 그렇지만 고서적수매는 잘되지 않을것이라고 기웃거리던 설화도 뜻밖일 정도라고 감탄했다. 사학계통의 학자님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호화족속과 명문가의 돈부자들속에서도 골동과 옛책에 환장이 되여 조상들의 누런 한지에 먹글로 찍혀진 책이라면 거금을 휘뿌려 거두어들이기때문이였다.

성민은 그만치 감동이 컸다. 비전향수에 대한 따뜻한 정과 존경을 느꼈기때문이였다. 어느날인가는 시골차림의 청년이 이등박문을 격살한 안중근을 변호하려다 실패한 안병찬의 《소암집》까지 무상으로 성민에게 넘겨주었다.

리조때의 문집들까지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되넘겨주었다. 그것은 귀한 책이여서 허술히 팔아버릴것이 못된다는데도 있었지만 바라는 목적이 달랐기때문이였다.

성민은 감옥에 있을 때부터 조선현대사의 보충으로 될수 있는 글을 써볼 결심을 했던것이다. 그 시기는 할아버지때의 《한일합방》으로부터 70년대까지로 항일혁명투쟁력사와 비전향장기수들이 겪은 체험과 투쟁을 담아보자는것이였고 이를 하자니 여러모로 력사자료가 필요했던것이다.

성민이 책점을 차리는통에 식당업도 흥성이였다. 그러나 얻어지는 총수입은 해성이 혼자 할 때보다 늘어난것이 없었다. 귀한 고서들인 경우 성민은 가능한껏의 높은 액수로 값을 지불했고 공짜로 주는 책들에 대해서는 정 값을 받지 않는 경우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야 했기때문이였다.

책점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속에는 반갑지 않은 담당경찰관이며 수상쩍은 요원들도 있었으나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비전향장기수 조국귀환실현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 그들대신 성민이의 귀향길을 축하하는 환송객들이 늘어났다.

그런 어느날 책점안에 있는 성민의 앞에 여름철류행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제낀양복차림에 변색안경을 낀 요원비슷한 장발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미국에 가있던 정창호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