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3
현대판 피라미트로 불리우는 감옥에 새벽이 왔다.
개털외투를 푹 뒤집어쓰고있던 교도관도 그것을 알았다. 자명종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얼굴을 내놓기가 으쓸했다.
전날 밤 권교장의 부덕쥐가 얼어죽었다.
이상한 일이였다. 다 죽은 송장으로 껄떡껄떡하던 권교장은 눈이 머룩머룩 살아있는데 그의 가슴팍에 안겨자던 부덕쥐가 얼어죽다니.
(한데 고사제까지 지냈다지. 세계기록편찬자들은 뭘하고있어. 이걸 광고하면 대 쎈쎄이슌일텐데. 내가 편지를 내봐? 여기 감옥안의 쥐란 쥐는 모조리 고단백식품으로 전멸되였는데 빨갱이령감쟁이 하나만은 부덕쥐와 동거동침을 하며 고사제까지 지냈다고.)
고향이 남원이여서 《남원대망이(구렝이)》로 통하는 교도관은 개털외투짬으로 한눈을 빠끔히 내밀고 먼저 권교장의 방부터 살펴보았다. 시찰구의 네모서리짬에 성에가 다보록히 엉켜있는것이 오늘도 숨은 꺼지지 않은것 같았다.
(명줄이 질기기도 하군. 하긴 다행이야. 이 대망이의 당번 밤에 애처로운 인생 하나가 꺼지면 부처님의 노염이 나한테까지 뻗칠수 있거던.)
연덩이가 박힌 방망이와 그러루한 잡것들이 든 구럭안에 한밤의 친근한 벗이였던 양주병을 밀어넣은 대망이는 자명종의 초침이 때깍거리는것을 지켜보다가 움찔하며 일어섰다.
부르르!
성에낀 외양간의 수말처럼 몸을 떨고난 그는 한밤의 지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반나절의 휴식을 하게 되였다는 기쁨으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고양이걸음으로 시찰구에 다가갔다. 매방을 살피며 어깨를 으쓱이기도 하고 비죽이 웃기도 했다. 어깨를 으쓱인것은 하얗게 성에를 쓰고도 푸파 꾸르럭 꺽 하며 모질스러운 삶을 지켜내는 수인들때문인것이고 비죽이 웃은것은 털내의 두벌에 양주까지 받쳐 마시며 생을 즐기는 자기자신에 대한 만족감때문이였다.
(이자는 어제 밤에도 통방을 시도했지. 하지만 이 대망이님앞에서야 어림있었나.)
교도관은 감옥요시찰로 지목된 권교장방 옆방앞에서 고양이웃음을 짓고는 5방앞에서도 한바탕 속푸념을 했다.
(모를 일이란 말이야, 모를 일. 대통령각하께서까지 끔찍이 위하시는 퇴역장성의 동생처지에 빨갱이라니. 뭐 남북통일?!… 간뎅이도 크지. 한데 사람은 아까와. 착실히 맘만 돌이키면 대선사님이 되시던가 대학교수님도 문제없겠는데…)
성민은 시찰구여닫이문의 달그덕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을, 단꿈을 청했다. 아니, 잠도 꿈도 아닌 지난날속으로 빠져든다. 지금의 감방도, 교도관의 발걸음소리도, 벽에 서린 성에도 아닌 지난날의 달콤한 아침을 그러안게 된다. 잠에서 깨일 때마다 맛보게 되는 즐거움이다. 숨도 크게 쉬지 말아야 하고 몸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발을 내뻗치면 차거운 성에벽이 모든 즐거움을 앗아버린다.
지금은 집에 있다. 첫살림을 차렸던 집.
…순정의 칼도마소리가 가락맞게 울린다. 치직― 지짐판에서 타는 파와 기름냄새, 성민은 파를 태울 때의 냄새를 무척 좋아했다.
(일어나야지. 마당청소를 해야 되고.)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까지 낸다. 그러면 물기젖은 손이 이마에 닿는다.
《여보, 출근시간이 돼와요.》
《어―엉.》
성민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눈을 뜬다. 바로 안해의 그 손을, 그의 말을 기다려 게으름뱅이흉내를 낸것이다.
《정 피곤하면 더 쉬세요. 마당청소는 내가 했으니까.》
《그럼 더 잘가.》
눈을 꾹 감고 이번에는 더 크게 코소리를 낸다.
드렁 드렁, 푸파 푸파.
그러면 안해는 간지럼을 피운다. 그다음 함께 껄껄, 호호― 웃는다.
첫살림때부터 깨가 쏟아지는 생활이였다. 제대군관이라고 제일먼저 건설된 아빠트의 입사증을 받고 첫살림을 폈다. 불이 잘 들어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몰랐다.
따끈따끈한 온돌, 따끈따끈한…
(새로 들게 된 아빠트는 온수난방이였지.)
점차 현실로 돌아온다.
(온수난방!… 탄불 살릴 걱정도, 탄을 빚을 일도 없는것이지. 아마 지금쯤은 온수난방집에서 나를 생각하겠지.)
새 아빠트입사증을 도로 바치려고 가져갔을 때 잔뜩 성을 내던 일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바치겠다는건가. 이제 아이들이 크면 다 제 방을 요구하겠는데―》
그래, 이젠 아들애도 따로 자려고 할거야. 날 보면 무슨 아저씬가 몰라볼것이고…
《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앉자 즐거움은 깡그리 사라졌다. 살눈섭에 붙은 성에를 털고보니 두장의 가마니를 붙여만든 침구도 하얀 눈가루를 쓰고있었고 가마니안에서 깔고 덮었던 그의 옷과 문둥병병원에서 쓰다버린 몽드라지고 닳아빠진 얄팍한 담요 역시 성에투성이였다.
(된추위로구나.)
머리맡에 놓아둔 사탕봉지에 손이 가닿았다. 이제 한알만 입에 물고 2~3분 있으면 달콤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감과 함께 몸에 따뜻한 열기가 퍼져날것이다.
후―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남은 사탕은 3알뿐이였다.
또 한번 《음.》소리를 내며 가마니속에서 빠져나왔다. 퍼릿한 몸살이 대번에 닭살로 되는것을 보며 급급히 세면기를 찾아드니 두세사발 모아두었던 물이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한주먹에 깨여버렸다.
다행히도 물은 조금 괴여있었다. 재빨리 수건을 담갔다가 팔다리부터 문질렀다. 이때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상을 입던가 급성페염에 걸릴수 있다.
《으흐흐.》
시찰구구멍에서 커다랗게 흡뜬 눈이 도리를 쳤다. 성민은 웃었다.
《이 모범 따르라구.》
살갗이 뻘겋게 달아오르자 몸이 훈훈해졌다. 잠시후 랭수마찰을 끝낸 성민은 담당교도관을 되찾았다.
《왜 찾능교?》
《3방 가야지.》
《어―》
교도관은 머리가 잘 안 돌아서인지 성민을 멀뚱히 보다가 《아, 잊었댔네요.》하며 자물쇠를 따주었다.
성민은 3알의 사탕과 한줌 채 안되게 골삭한 암가루봉지를 들고 옆방인 권교장방으로 갔다.
한때 제주도소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남부군빨찌산의 중대장으로 활약한바 있는 권교장은 특이한 완력과 감사나운 기질로 소문난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전신불수로 구척장신의 허울만 남아있었다.
《견디셨군요.》
성민의 인사말에도 입술만 실룩일뿐 더부룩한 수염과 눈섭에 매달린 성에를 부벼 털어주어서야 《어.》하며 반기는 기색을 보여주었다.
《요기는 했습니까?》
《했지라우.》 권교장은 미안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성민은 성급히 그의 머리맡을 뒤져보았다. 까맣게 때가 낀 빈 비닐봉지만 나왔다.
《장밤 숨이 질락꼬해서… 그냥 까먹었는지라우.》
가슴이 덜컥했다. 어제 저녁만도 열다섯알이 남았었는데… 벽에 붙은 성에를 손바닥에 긁어모아 암가루와 뒤섞었다.
손의 온기에 척척히 녹아드는 은빛성에와 누르스름하게 젖어드는 암가루를 여겨보느라니 막막한 심정을 걷잡을수 없었다.
권교장의 생명은 지금의 사탕과 암가루로 간신히 이어지고있다. 그만 아니라 성민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500~600㎈도 못되는 감옥 4등식으로는 한여름에도 견디기 어렵지만 이런 대소한추위때에는 더욱 그랬다. 영양실조도 실조거니와 체열저하로 죽게 되는것이다.
《이거 다 죽은 송장… 정말 미안할지라.》
권교장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성민이 넣어주는 암가루를 맛스럽게 삼켰고 세알중의 사탕 한알도 한번의 빠지직 소리와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제주도의 호랑이로 되여있던 그에게서 지금 남은것이란 원쑤에 대한 증오와 본능적욕구에 따른 식욕뿐이였다. 성민은 이 감옥에 처음왔을 때 이 권교장때문에 적잖게 애를 먹었다.
제주도에서 있은 4. 3봉기때 자기가 가르치던 소학생들까지 떼죽음을 당하는것을 목격한 뒤부터 감사나운 사람으로 된 그는 무자비성과 극단적인 투쟁열로 소문을 냈다.
범은 사슬에 묶였을 때 더 요동을 친다고 권교장이 그랬다. 감옥내의 교도관들, 지어는 잡범들에 대해서까지 원쑤로 규정한 그는 맞다드는 기회마다 욕설과 야유의 줄포탄을 쏘았고 완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혹간 다른 사상수들속에서 교도관들에게 조금이라도 점잖게 대하던가 례절겹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투항주의자로 타매하였고 공화국창건절이나 명절때 투사로서의 기개를 시위하지 않으면 변절자로 락인하였다. 이로하여 필요한 싸움만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무모한 말싸움과 완력투쟁에 말려들어 매타작(모두매질)과 총대수정(다리와 팔을 몽둥이에 비끌어매여 총대처럼 꼿꼿이 서있게 하는 고문. 45분이상 당하면 사지마비가 오면서 불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의 형벌속에 죽던가 종신불구로 쓰러졌다.
성민은 감옥에 왔을 때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무모성과 자포자기한 상태에서의 자살행위라고 보았기때문이였다.
이로 하여 삶의 명분이 새롭게 보충된셈이였으나 첫걸음부터 의혹과 반발에 부딪쳤다.
《북에서 살다보니 원쑤들이 어떻다는것을 잘 몰라. 우리 같은 아픔은 당해보지 못했으니까. 형은 이곳 장성님이시래.》
권교장은 성민에게 《소부르죠아 우경분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일정하게 학식과 리론까지 있는 권교장이 이렇게 나오니 성민으로서는 딱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다시 만난 오영기가 성민이와 같은 립장을 취한데다가 성민이가 비밀리에 시작한 우리 당 혁명력사 강의와 위대한 수령님의 통일전선로선과 계급투쟁에 대한 해설이 줄기차게 진행되면서 그러루한 뒤말들과 딱지들이 하나둘 벗겨졌다. 하지만 본래의 투쟁열기만은 여전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인내력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물리적박해와 학대에 대한 어쩔수 없는 반항도 있었다.
권교장이 전신불구로 된것은 그 두가지 요인이 다 작용한것이라고 볼수 있었다.
올여름 독감방생활에 대한 항의를 접하게 된 감옥당국은 《그럼 늬들 좋아하는 공산생활을 해봐라.》하며 0. 75㎡의 방에 10명의 수인들을 단꺼번에 밀어넣었다. 그러지 않아도 숨막히는 더위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밀짚단처럼 엉켜붙어 서있으려니 삽시간에 질식될 판이였다.
그때 권교장이 교도관을 찾았다.
《뭘. 공산재미가 좋아서냐.》
시찰구를 열어본 교도관이 히죽거릴 때 권교장은 뭘 보여줄것이 있다고 했다.
《멋있는거 있는지라우.》
교도관은 그의 눈이 툭 삐여져나온것을 보고 머리를 기우뚱하면서도 멋있는거에 끌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일이 벌어졌다.
《이눔아.》 한마디 거센 웨침과 함께 수정찬 손으로 그자의 목을 옥죄인 권교장은 단숨에 그자를 쳐들어 공중태질을 시켰다. 온 교도소가 총검을 들고 떨쳐나섰다. 아비규환의 신음과 욕설속에 란투가 벌어졌다. 성민이 역시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날아드는 총탁과 몽둥이들에 손짓, 발짓 다해 싸웠다.
이날 교도소장이 성민을 따로 만났다.
《당신이 주모자라지.》
《그렇소.》
《그렇다?!… 한데 교도관들은 당신을 모범수라고 하던데, 점잖고 량순하고…》
《모범수가 이쯤 되였으면 당신들도 생각해볼것이 있잖소.》
《닥쳐라, 모범수는 무슨 모범수! 우리가 모를줄 알어. 적화선전의 리더라며. 뭐, 하층 교도관이며 병사들까지 포섭해야 한다구.》
성민은 무척 놀랐다. 어떻게 이것을 알았는가. 산보시간과 목사들의 복음설교때 남모르게 한 강의를?
《야, 너 뭐 비단솜에 싸인 귀공잔줄 알아. 그래도 5.16혁명의 공로자분의 동생이랍시고 눈을 감았는데 보자보자하니까 앞남산 독두꺼비란 말이야. 너 이제 내 보고서 한장이면 즉결사형이란걸 몰라. 그동안 법도 좀 알았겠는데 기결중의 반국가죄는 즉결사형이란 말이야, 사형.》
그다음 한주일동안 먹감방속에서 총대수정신세가 되고말았다. 먹감방에서 돌아와보니 매타작에 두사람이 희생되고 권교장은 전신불수가 되여 엄정격리의 독감방에 갇혀있다고 했다. 엄정격리란 일체 산보도 금지고 다른 수인들과의 접촉도 격페되게 되여있었다. 성민은 남원대망이로부터 권교장이 전신불수의 중태에 있을뿐만아니라 생명이 오늘래일인것을 알게 되였다. 다른 수인들도 그에 대해 어느정도 아는듯싶었으나 복수의 기회만 노릴뿐 어쩔수 없다는 태도였다. 감옥생활의 고초를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하는 형편에서 바람직한 최후가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는데서는 비장한 영웅성이라고 보겠지만 성민으로서는 타협할수 없었다. 하여 그는 영기와의 통방끝에 집단단식을 호소했다. 감옥의 살인적인 테로행위를 종식시키는것과 당면하게는 권교장의 목숨을 살려내자는것이였다. 그의 제의는 전적인 호응을 받았다. 단식도 투쟁이니까.
이틀간의 단식끝에 성민은 또다시 먹감방으로 갔다. 이번에는 먼저 매타작을 받았고 먹감방에서 풀려나온 다음에는 또다시 교도소소장에게로 불려갔다.
《네가 단식을 선동했다지?》
《그렇다.》
《요구조건도 네가 꾸몄느냐?》
《그렇다.》
성민의 꿋꿋한 태도에 소장은 한숨을 내쉬였다.
《야, 널 륙자배기로 조리돌림시키고싶다만 네가 영웅으로 될가봐 그만은 참는다. 또 내 잘못도 있고… 네 문서장을 늦게야 연구한탓이지. 〈사회주의사상을 과학리론적으로 정립체계화하고… 개심이 불가능하므로…〉 말하자면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걸 그냥 스쳐봤다는거야.》
《허허, 소장님. 그렇게 후회가 되면 여기 어디 땅밑에 파묻구려.》
《아아, 난 그런 영웅 만드는 놀음엔 질색이야. 먼저 요구조건부터 묻자구. 사람을 살리기 위해 치료조건과 간병의사를 붙이라, 맞어?》
《옳소.》
《그래, 그건 들어주지. 한데 여긴 보양원도 치료원도 아니니 전문간병의사는 없는것이고. 어떤가, 자네 한번 하지. 오영기 그자한테서는 답을 얻었어.》
《거 반갑군요.》
성민은 이렇게 되여 권교장의 옆방으로 왔는데 알고보니 영기와 자기도 엄정격리로 처분된셈이였다.
교도소측은 성민이와 영기가 오기전까지 감옥의 골치거리였던 권교장을 격리시킴과 함께 새롭게 나타나 평양물을 먹이는 성민이와 영기를 감옥안의 감옥으로 류치시킨것이였다.
이때부터 성민은 총집교회(복음설교)라고 끌어내는 때 말고는 일체 동지들을 만나볼수 없게 된 처지였으나 권교장을 구완하게 된 자격으로 영기와는 부단한 접촉을 이루게 되였다.
교도소가 실시한 이 엄정격리는 영기와 성민이의 평양물을 막기 위한데도 있지만 죽어가는 사람앞에서 비애와 아픔을 실컷 맛보라는것이였다.
성민이도 이것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권교장을 볼 때마다 그러한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랬다. 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서도 살것을 바라고 한알의 사탕이 동지의 건강을 지켜내느냐 못하느냐 하는 속에서도 거침없이 먹는 그를 볼 때면 자기도 언젠가는 이런 식물인간의 처지에 떨어질수 있다는 공포감에 전률하기도 했다.
삐그덕―하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영기였다.
《선생님! 오늘은 신수가 환합니다.》
영기는 언제보나 밝은 얼굴이였다. 아무리 어려운 때도 웃음부터 보이는 사람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귀구멍청소를 하다나니 늦었구만.》
영기는 시찰구에 말박귀가 붙어있는것을 알면서도 흔연히 큰소리로 말했다. 귀구멍청소란 성민이와만 통하는 통방신호의 은어였다. 교도소가 엄정격리책을 실시하면서 딱 한가지 실수라면 영기의 통방선을 차단시키지 못한것이였다. 성민이, 권교장, 영기 순서로 방을 배치하다보니 격페와는 관계없이 통방을 할수 있었던것이다. 감옥측도 그걸 눈치챈지라 영기의 방에 대해서는 밤낮으로 눈에 쌍심지를 켜붙이고있다. 그때문에 영기는 조용한 밤이 아니라 부산스러운 새벽시간에 통방을 하는것이였다.
《이것마저 오늘로 절품이요.》
성민이 2알밖에 남지 않은 사탕을 보이자 영기도 시름찬 기색이였다.
《야단이구만. 사실 나도 그때문에―》라고 하던 영기는 시찰구쪽의 인기척에 청을 높였다. 《어쩐다. 대망이님한테 한번 청을 드려볼가.》
시찰구쪽에서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영기는 피식 웃고는 늘 하던대로 권교장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다른 방 동지들도 이번 겨울을 이겨내지 못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오. 기운이 있어야 운동도 하겠는데 배가죽이 달라붙었으니 한번 싸우다 죽던가 동장군한테 업혀 염라국에 가야 할 형편이라는거요.》
《면회와 차입문제는 어떻게 되였소?》
《반대론이 우세하니 여전하오. 영팔이 그 친구는 가족친척들을 만나는것 자체가 변절이라는거요. 죽으면 죽었지 친척나부랭이들이 보내오는건 받지도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거지.》
성민은 한숨이 나갔다. 영팔이란 502부대에서 알게 되였던 쌍지팽이였다. 그는 지금에 와서도 성민이에 대해서는 무척 랭담했다. 하긴 성민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곁을 주지 않았다. 떠도는 말에는 일가족을 적들에게 다 잃은데다가 미군 502부대에서 자살미수가 실패한 뒤부터 메마르고 의심많은 사람으로 변했다고 했다. 언젠가는 이모라고 찾아온 녀인을 면회조차 하지 않고 사정없이 쫓아버렸다.
《왜 받지 말아야 한다는거요?》
《말하지 않았소? 변절요소라는거요. 설사 그럴 생각이 없다 해도 마음이 약해질수 있다고… 원 무슨 사람인지―》
《앙이 그 말은 옳지라우. 맘이 약해져요.》
권교장이 뜻밖에 말참녜를 했다.
《하, 그럼 선생님도 마음이 약해지던가요.》
권교장은 성민의 령치금 덕분으로 오늘까지 산셈이다.
《그랜지라, 이젠 죽어야 되는데 자꾸만 죽지 않을 생각이 드니 약해진게 아닌지라.》
권교장의 말에 영기는 버럭 화를 내였다.
《선생님은 백두산이랑 한나산이랑 다시 가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 그것도 약한 생각이란 말이요.》
권교장은 왜정때 백두산에까지 가본 사람이였다. 영기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본 권교장은 구원을 청하듯 성민을 보는데 반쯤 벌린 입이 울음울듯 실룩이였다.
《그럼 어떻게 락착을 보았소?》
성민은 아픈 마음을 누르며 영기를 보았다.
《락착은 무슨… 집단단식을 벌려 누덕솜옷이라도 얻어입던가 식사량이라도 조금 늘쿼보자고 하지만… 한다 해도 담벽차기고 하루이상 넘기면 다들 쓰러질판이니 어디 될일이요.》
성민은 할말이 없었다. 한동안 권교장의 팔다리만 주물렀다. 신경이 마비되여버린 팔다리는 동지달 범고사리대와 마찬가지이다.
이제 며칠을?… 령치금 생각이 또다시 간절해졌다.
성민은 옥영이가 가지고 왔던 령치금 전부를 공용으로 풀었다. 그때도 교도소소장의 호출을 받았다. 모든 수인들에게 령치금을 돌려준때문이였다.
왜? 왜? 끝없는 질문이 되풀이되였다. 모두가 골고루 먹고 잘산다는 《공산》때문이냐 아니면 인심회유냐.
사람이기때문이다. 사람! 성민이 역시 같은 말을 줄곧 곱씹었었다.
교도소소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에는 령치금을 받게 된 당자들의 뒤소리들에까지 대답을 주어야 했다.
내 돈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하자.
감옥에서의 투쟁은 원쑤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혁명가의 육체를 지켜내는데도 있다.
오영기의 뒤받침과 아스피린 한알이 없어 페염에 쓰러지던 형편이라 다들 인차 받아들였지만 영팔이만은 거절했다.
령치금이나 이러저러한 면회와 차입을 경원시하는데는 일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면회자들과 그들이 들고 오는 돈과 음식에는 낚시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감옥당국과 경찰당국의 사촉밑에 전향을 꼬드기던가 고문시에도 지켜낸 비밀을 뽑아내려는 시도가 바로 그 낚시였다.
《여하튼》 성민은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버리며 입을 열었다. 《반대가 있다 해도 돈과 음식은 받기로 해야겠소. 정신이 똑바르믄야 대감님 꿀떡이라도 관계있소?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이곳 진상을 사회에 알리고… 가족친척이라면 깨우쳐도 주고― 어떻습니까?》
성민은 권교장에게 물었다.
《반대없을지라. 성민동지 말한 김장군님말씀 생각나. 한사람이 열을 깨우치고 열이 백을 깨우치고… 늬사 말 옳게 했어.》
소지가 날라온 아침밥까지 먹여주고 일어설 때 권교장이 불쑥 물었다.
《오늘이 총집교회지다?》
《네.》
《데려다 주겐지라?》
성민은 구석쪽에 놓인 한번도 만져보지 않은 성경책에 눈을 주었다.
감옥당국이 억지다짐으로 공급한 성경책은 죄많은 수인들의 천국행을 위한것이라고 하지만 특별사동의 수인들에게는 의사교환수단으로 리용되고있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뜻을 설교받는 자리에서 채 나누지 못한 말들을 슬그머니 되바꾸는 성경책의 글귀들에서 보충하는것이다. 접어놓은 페지장마다에 꼭꼭 찔러놓은 바늘자리의 글들을 따라읽으면 통방때보다 못지 않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것이다.
그런데 권교장이 그리로 가겠다는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동지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들어가는 그에게서 유일하게 남은 락이란 동지들의 얼굴을 보는것뿐이였다.
이날 전도설교가 끝났을 때 성민은 뜻밖에도 면회호출을 당했다.
누굴가. 다시 온다던 옥영이가 떠나간 뒤부터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엄정격리상태에서 면회라니. 검은 라크칠을 한 표지의 《접견기록장부》를 흔들어대는 면회담당의 얼굴빛을 봐서는 속임수는 아니였다.
면회담당은 실죽벌죽 웃으며 일반면회실이 아니라 교무과 상담실로 성민을 데리고 갔다. 마음이 무척 긴장되였다. 교무과 상담실은 주로 전향공작을 위한 면회실이자 상담소였던것이다.
방안에서는 껄껄, 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고급단화에 번들거리는 가죽외투를 입고 색안경을 쓴 혈색좋은 사나이가 상담실 당번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성민을 돌아보았다. 두사람이 마주앉은 상우에는 즐비하게 음식들이 차려있고 상밑에는 술병까지 놓여있었다.
《아아, 교도관님도 계시지.》 되돌아나가려는 면회담당을 불러세우는 가죽외투의 말소리가 귀에 익었다.
《나야 뭘.》 담당이 주밋거리자 가죽외투는 《아하.》하고 혀를 차더니 《담배나 피시지.》하며 뭔가 그의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성민이한테 90도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선생님, 늦게 찾아뵈여 죄송합니다.》
색안경까지 벗어내리는 그를 본 성민은 깜짝 놀랐다. 서대문감옥에서 알게 된 차호은이였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허허, 세월이 무정하다고 사람까지 무정하겠습니까.》
차호은은 무슨 장차관쯤 된 자세로 호기를 떨었으나 가느스름한 눈에서는 진정으로의 기쁨이 넘쳐있었다.
《실은》 차호은은 면회담당이 나가는것을 보다가 자못 허심한 태도로 말했다. 《일찍부터 선생님을 찾아뵈려고 했지만 오늘에야 허가를 받았습니다.》
성민은 어떻게 대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암흑가의 왕초였다는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것인데 모범수도 아닌 엄정격리에게 면회승인을 받을 정도면 주구로 전락했을지도 모르는것이다.
《앉으십시오.》
호은은 상담실 담당쯤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하긴 그의 어깨까지 두드려대는 사이이니 그럴만도 할것이라고 보았다.
《지금 무얼하고있소?》
성민이 자리에 앉으며 묻자 호은은 되박같은 주먹을 책상우에 놓으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 말씀부터 할줄 알았습니다. 달리 생각마십시오. 지금은 급전환을 해서 대재벌님의 회사에 적을 두고있습니다.》
《잘됐구만.》
《그럼요. 거느리는 애들만도 4~50은 넘으니까요. 근데 말입니다. 제가 오늘 선생님을 뵙자고 한것은 아이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때문입니다.》
갈수록 뻐꾸기같은 소리였다.
《그러니 결혼을 했구만.》
《했습지요. 선생님, 인간답게 살라는 말씀 명심하여 좋은 집 처녀를 맞았지요.》
《아들인가.》
《딸입니다.》
《맏딸은 복딸이라고 하지.》
《네, 인물, 품성 만점입지요.》
《지금 몇살인데―》
《생후 6개월입니다.》
차호은은 생후 6개월이라는 소리에 어처구니없어 웃고있는 교무과 당번에게 눈을 찔 흘기고는 계속했다.
《사실 선생님같은분한테는 국법에 위반될수 있지만 처가집에서 죽어라하고 믿는 불국사 스님께서 꼭 선생님같은분에게 이름을 짓는것이 좋다고 해서 이렇게 청을 드리게 된것입니다.
선생님이야 저와 인생지하에서 동생동고를 하였고 사상 하나만 빼놓으시면 성인중의 성인이 아닙니까.》
《난 그런 성인이 못되오.》
성민은 놀림가마리에 든 기분이였다.
호은이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한결 순박한 표정으로 돌아가더니 《아차.》하고 이마를 튕기고는 먼눈 팔기로 서있는 당번에게 수작을 붙였다.
《포도대장님, 이거 따끈따끈한것 없을가요. 선생님 몹시 추워하시는데―》
《그건 안돼.》 순간에 포도대장으로 승격된 담당이 머리를 젓자 호은은 또다시 본래의 너스레로 돌아갔다.
《그럼 엎드려 절하리까. 딸애의 운수 팔자를 돌봐줄 선생님한테 도리야 지켜야 될것 아니요. 그래서 내 오늘 포도대장님한테도 두번째 수양아버님이 돼달라고 한거고―》
《이런 떼거지라구―》
교도관은 말은 이렇게 했으나 호은이와는 무슨 관계인지 별스럽게 불룩한 주머니의 덮개를 바로 잡더니 문밖으로 나갔다.
《차군! 정치와 관계된 말을 하면 이거야.》 목을 도려내는 시늉을 하고 문을 닫았다.
《선생님, 제가 만담군이 되니 역스럽지요.》
《뭐 여하튼 자네를 보니 반갑네. 그래 지금 무슨 일을 하지.》
《일은 무슨 일이겠습니까. 두드려패는노릇이지요.》
《아니, 그런짓 다신 안하겠다고 하잖았어.》
《어쩌겠습니까. 살자니 그 노릇밖에. 그렇지만 지금은 뻐젓하게 법의 보호를 받으며 하지요.》
《보호를 받다니?》
《그렇게 됐습니다. 새 나라 기둥인 삼성을 지키는 일입지요. 기업을 해치는 놈들을 두드려패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자넨 왜정때의 노가다격이라는건가.》
《아, 그럴수가 있나요. 협잡군, 탐정, 사기군, 외간재벌의 졸개들과 싸우는거지요. 거 이런 말 하자면 끝없습니다. 모두가 서로 속이고 잡아먹는 세월에 크게 꺼릴것은 없는 일이지요.》
성민은 그가 삼성재벌의 고용깡패가 되였음을 알았으나 이런 사회에서는 어데나 있는 주먹패들이라 어쩔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제 자네한테 더 말했대야 그저 그렇겠네만… 딸애를 봐서도 삼가할 일이라고 보네.》
《알고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것까지는 일없다, 그러되 자기를 위한다고 남들에게는 해를 주지 말라! 이겁지요. 선생님말씀 잊지 않고있습니다.》
《그래, 지금은 그쯤 하자고. 진짜 내가 보고싶어 왔나.》
《거야 여부가 있습니까. 주요하게는 선생님의 복수를 해드렸기때문이지요.》
《복수라니―》
《다 말하자면 100만원짜리 논픽숀감이지요. 저의 애들이 선생님 조카애라는 처녀애를 가르쳐주고있습니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린가.》
《허, 신문을 못 보시니 통 모를테지요. 사회말로는 유괴라고 하는데 우리 애들의 〈감화원〉에 모셨지요.》
성민은 속이 덜컥했다. 경자가 깡패들의 소굴에 끌려가다니.
《그건 어찌된건가.》
《어쩌구 뭐가 있어요. 제 동생을 잡아먹는 사람들이니… 한번 맛을 보라는거지요.》
《여보, 그게 도대체 무슨짓인가.》
《아하, 선생님두― 그래 선생님은 분하지 않습니까. 내 알아보니 제 친척되는 아저씨까지 한지에 나앉게 했다는데… 그래서 제가 진짜 판사님이 돼서 죄를 다스린셈이지요.》
《지금 그 애는 무사한가.》
《무사하다마다요.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공주님처럼 모시고있지요. 그 애옆에는 해성이라구 아시지요. 그 한지에 나앉은 친척되는분의 아들, 그 애가 돌봐주는데 공주님의 보초노릇을 하지요.》
《어―엉.》
《너무 놀라실것은 없습니다. 선생님도 몽떼그리스또를 보셨겠지요. 난 루이지 왐빠가 되자는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형 집에도 한장 날렸어요. 선생님을 석방시키게 하던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음식차입을 하라구요.》
《그 앨 당장 놓아주오.》
《네?!》
《놓아주라구.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나, 무슨 죄가. 에이, 사람두.》
《선생님, 그게 진정입니까?》
《그렇네.》
차호은은 시무룩해졌다.
《사실 전… 선생님이 저를 처음으로 인간답게 대해주시구 글도 배워주고 해서 은공을 갚자고… 그리구 선생님이 조국통일때문에 자기를 바치시는걸 보구 저두 사나이답게 의기를 떨쳐보려구 한건데―》
《호은이, 자네 마음은 고맙네만 그건 나까지 잘못되게 하는걸세.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일 못할 일은 죄없는 사람한테 고통을 주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부디 그런 일은 말라구.》
담당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어졌다.
차호은에게 딸의 이름을 설화로 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주고 그와 헤여진 성민은 저녁녘에 다시 만난 영기에게(역시 권교장의 방에서였다.) 차호은과의 자초지종을 죄다 말했다.
호은으로부터 적지 않은 액수의 령치금을 받았다는것을 알게 된 영기는 대바람에 환성을 올렸으나 그 돈의 출처와 유괴설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과 추측을 말하자 그역시 한동안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강력범이건 절도범이건 사회는 인간쓰레기로 치부한다. 거기서는 호은이도 례외가 아니다. 그런 그가 한달동안의 인연을 내세우며 성민을 찾아왔고 그것도 막대한 돈을 가지고 왔다?!
놈들의 음흉한 계략에 따른것이 아닐가? 십분 그럴수 있는 일이였다. 이 감옥에서 봐도 불량스런 잡범들은 정치범 탄압과 회유의 수단으로 되고있다. 그럼 그 음모의 목적은 무엇인가. 거기에 성민의 복수를 돕는다는 유괴가 있다. 이건 성민이라는 북의 사절을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계책일수도 있지 않는가.
《봐라, 〈빨갱이〉란건 악의 종자여서 형의 딸에게까지 검은 손을 뻗쳤다.》 이런식 선전물이 나가며는 어떻게 되며 세상여론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성민의 말을 곰곰히 들어보던 영기는 머리를 저었다.
《이건 다 지나친 로파심 같소. 다시 생각해보니 성민동무의 복이라고 봐지오. 사실 지동무는 잘 모를수 있지만 호은이 같은 인간들에게도 의협심이 정 없는것이 아니요. 더구나 한달동안 함께 있었다니 동무한테서 충분히 감화되였을것이고. 여기 감옥 청지기들도 동무한테는 다 굽어드는판이 아니요. 물론 동무의 빽이 간단치 않다는것도 있겠지만… 분명 그 호은이라는 청년도 동무한테 상당히 끌린것 같소. 유괴놀음이라는것도 그때문에 벌렸을것이고… 나도 왜정때 얼마간은 류랑아들과 밀려다닌적이 있소. 〈덮치개〉, 〈꽃잡이〉라고 하는 애들과 말이요. 그런데 사회는 그런 애들이라 하면 아예 도리를 젓는데 실상 그런 애들속에도 제딴의 의리와 인정은 살아있소.
호은이란 청년은 바로 그런식 의리와 인정에다가 동무한테서 받은 영향때문에 그런 협기를 떨쳐보인걸거요.》
이렇게 되여 쓰게 된 령치금은 쓰러져가던 사람들을 일궈세우는데서 크게 은을 내였다.
해토무렵인 3월에 경자와 정창호가 성민이를 찾아온것으로 유괴과정의 전반내용을 잘 알게 되였다.
이때도 성민은 교무과 상담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경자도 정창호도 까만 사지양복을 입고 왔는데 정창호는 예나 다름없이 반가운 태도를 보였으나 경자는 시종 랭랭한 태도였다. 오가는 말들에도 거의나 삐치지 않았다.
《저희들이 온것은 약혼식을 하게 된때문이지요.》
이렇게 운을 떼고난 정창호는 담당교도관이 나가자 먼저 그가 나간데 대한 의문부터 풀어주었다.
여기 온것은 성민이의 전향공작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것과 그 공작을 위해 담당의 립회를 마다하게 했다는것이였다.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전 이 감옥당국을 쥐락펴락하는 큰 어른의 도움을 받은거지요. 참, 선생도 잘 아시는 그 려아라는 부인님의 남편되시는분입지요. 알고보니 그분은 선생을 잘 아시는가 봅디다.》
《그와 가까운 사이요?》
《네, 하지만 이젠 련계가 없게 되였어요. 한데 그분의 일이 안됐어요. 부인과 영 헤여졌거던요.》
《건 왜?》
《그런 내적인 사연이야 제가 압니까. 그건 그렇고… 선생은 저의 이 경자씨가 유괴당했던걸 아십니까.》
《유괴라는건 어떤거요?》
성민은 모르쇠를 했다.
《하긴 그럴밖에. 한데 이상한 일이지요.》
정창호는 경자가 유괴된 뒤에 한장의 위협공갈편지가 날아들었다는것과 그를 구원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여다닌 과정을 일종의 무훈담인양 장황히 펼친 다음 또 한번 이상스럽다는 소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한데 경자씨가 돌아온지 며칠 안되여 또 한장의 편지가 날아들었어요. 글체는 신문활자를 따서 붙인것이라 알수 없는데 내용을 보니 불교쟁이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겨요. 저도 좀 아는데 소승불경대목까지 몇군데 박아넣고는 불타님의 뜻이라고 하며 이 경자씨더러 선생님한테 집안의 잘못을 빌고 공양금을 바치라는것이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다간 경자씨도 집안도 크게 앙화를 입는다구… 고망년의 활빈당놀음같은건데 경자씨앞으로 온 편지라 지장군한테 의논을 청했어요. 관계형사들과 합동해서 대수사를 벌리자구. 한데 그전까지만도 수사에 애면글면하던 지장군께서 딱 잘라요. 살아있으면 됐지 그깐 잡놈들 잡는것이 무슨 대수냐고.》
이 말끝에 정창호는 회사사장을 하면서부터 지장군의 일이 더 바쁘다는것과 금융거래의 협잡으로 뭉치돈을 잃었다는것까지 루루이 말했다. 2년후에 다시 와보겠노라고 했다.
《당신도 군복을 벗었소?》
성민은 유괴범에 대한 수사를 막은 태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인사격으로 물었다. 정창호는 밝은 기색으로 대답했다.
《거야 지장군을 따른셈이지요. 저도 원래는 뭘 좀 크게 할 뜻이 있었지만… 제가 하자던 일이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고 봤지요. 지장군께서도 그렇게 편달해주셨고… 그래서 도미류학을 하려고 해요.》
《미국엘 간단 말이요? <호국>은 어찌하고…》
《무슨 말씀을. 전 선생같은분들과 싸우기보다 이 나라의 법치를 튼튼히 하는데 몸바치자고 마음먹었어요. 후진국이고 리승만때의 부패가 지속되는지라 미국식 문명과 민주정치가 잘 먹어들지 않거던요.》
《경자도 가나?》
다 성숙한 처녀고 새풋한 기색으로 딴눈만 파는 경자여서 묻기가 거북했으나 억지스럽게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경자는 여전히 딴눈을 판채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정창호가 대신했다.
《경자씨도 함께 가기로 했지요. 대학에서까지 선생님일을 알게 되니 이모저모 괴롭거던요. 리해하시리라 믿어요.》
정창호의 말에 경자의 눈굽이 불그레해졌다.
《경자, 나때문에 안됐구만.》
경자는 고개를 수그렸다.
《근데 미국에 가선 뭘 배우려고 하니.》 성민은 가슴이 아팠다.
《어떤걸 배우든 량심만은, 조선사람인것만은 잊지 말거라.》
《그만해요.》
경자는 입술을 깨물고 보다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난 삼촌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집에서 가라고 하니 왔지만 삼촌도 생각은 할테지요. 뭣때문에 여길 와서 우리까지 괴롭히는가 말이예요.
사실 아빠도 삼촌때문에 망쳤고 지금하는 사업도 삼촌때문에 난항을 겪어요. 빨갱이의 형한테 누가 융자를 하고 손을 잡자고 하겠어요. 해성이네 일도 그렇지요. 그 집에서 우리를 놓고 원쑤치부하는데 그것도 삼촌때문이 아닌가요.》
그의 말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네 말이 옳다.》
성민은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촌!》
경자가 그의 손목을 꼭 움켜잡았다. 눈물진 눈에는 애원의 빛이 반짝였다. 《이제라도 잘못했다고 하세요. 네?! 그렇게 되면 방법이 있대요. 우리 집에서 살고… 통일이 되면 사촌애들과도 만날수 있고… 네? 그러지요?》
《경자.》 성민은 그의 볼을 감싸쥐였다. 《똑똑히 들어라. 내가 네 바라는대로 한다면 우선 네가 말하는 사촌애들이 나를 저버릴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삼촌이기에 앞서 이 땅의 아들이다. 어느땐가는 너도 이 말을, 이 미운 삼촌을… 리해할 때가 오리라고 본다.》
《보기 싫어요.》
경자는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얘, 눈섭먹은 닦고 가거라.》
경자의 볼에 흘러내린 검스레한 눈섭먹이 가슴에 맺혔다.
정창호와 경자는 두번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류학을 마치고 온다던 2년후에도 그들은 물론 옥영이도 태민에게서도 기별 한장 없었다.
그런 때 사변이 터졌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는 소식이 온 감방을 뒤흔들어놓았다. 통방에서는 물론 교도관들의 입에서까지 통일소리가 나왔고 통일수들에 대한 (이때부터 조국통일운동에 나선 비전향장기수들에게 《통일수》라는 칭호가 덧붙여졌다.) 교도관들의 태도도 한결 곰살스러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의 여우볕에 불과했다.
법무부에서 내려온 고관의 으르렁거림과 함께 통일과 전민족단결은 《국시위반》으로 범죄시되였고 삽삽한 웃음을 그려붙이고 알랑거리던 교도관들도 흉포한 승냥이로 되돌아갔다. 이와 함께 전향공작전담반이라는 어마어마한 두드려패기단이 조직되였다.
《전향하라!》 《전향하라!》 매일마다 전향테로에 희생된 사람들의 시체가 거적때기에 싸인채 공동묘지로 실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