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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또 한병의 술을 꺼내왔다.

섬세한 세공을 한 은초대의 불빛에 《로얄》상표의 블랙위스키는 황금색으로 번쩍이고 벽가에 둘러친 8첩병풍의 신선들은 극락세상의 어려움을 말하는듯싶다.

《들라구.》

《이거 너무 하는것이 아닙니까?》

지태민이 청와대의 《대통령》집무실에서 술을 마시기는 오늘이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태민이 검속에서 풀려나온지 1년 조금 더 되던 가을이였다. 그때 박정희는 《알라스카작전》(북반부출신 장성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의 경위를 곱씹으며 태민이까지 잡아간것은 분명 잘못된 실책이였노라고 구구히 변명을 했다.

그런데 그뒤에 하는 말이 끔찍스러웠다. 태민이더러 헌병사령관을 할수 없겠느냐 하는것이였다. 군대의 기강과 질서가 말이 아니니 엄정쇄신과 척결로 군기를 바로세워달라고.

예전같으면 한번 해볼만 한 일이였다. 군의 부패와 이색을 막는데는 특무대도 있고 검찰도 있지만 그 주역은 헌병대가 하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태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각하》의 기분에 거슬리지 않게 고맙기는 합니다만 제가 재목이 됩니까 하는 식으로 사정을 했다.

《허, 자네가 재목이 안되다니. 이건 임자를 생각한데도 있어. 지금 큰집어른들속에서까지 임자를 놓고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한번 본때를 보이라구. 나를 받쳐달라는것이 기본이네만.

생각해보게, 군사계엄이 끝난 뒤부터는 군안에서도 기강이 물렁팥죽인데다가 파쑈정치요 뭐요를 떠드는 각설이떼들의 타령에도 귀가 솔깃해 어물거리는것들이 있거던. 택규를 생각해봤지만 그 앤 머리가 딸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구 경찰국고쯔까이때 배운 잔재간이 전부거던. 어떤가, 이래도 못하겠나.》

박정희의 장광설과 깔끔한 눈길에 태민은 진땀이 났으나 끝까지 뻗쳤다.

알고보면 헌병대란것이 군의 기강이요 치안이요 하며 질서확립을 떠들고있지만 실제상 업무는 사람잡이이고 지금에 와서는 그 권한을 사회와 민간인들에까지 뻗쳐대는판이니 제가 어찌 그런데 갈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만은 못했다.…

태민은 박정희가 부어주는 술을 스스럼없이 마시긴 했으나 그때의 일이 떠올라 여간만 불편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부대들의 군률상태를 묻던 박정희가 뜻밖의 물음을 꺼내는통에 속이 와들짝 했다.

《참, 자네 누구더라.… 그 동생, 지금도 그 앨 만나지 않나?》

태민은 잔뜩 긴장감이 오는 속에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제가 만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영영 남남이 되였다는건가?》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지금 그 애가 어데 있나?》

《모릅니다.…》

《모른다? 무기징역이라고 했던가.… 자네 일도 안됐군.》

박정희는 머리를 휘젓고는 불쑥 일어섰다.

《내 오늘 자네한테 기쁜 소식을 알릴것이 있네.》 그는 서랍에서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들며 말했다. 《이번에 미국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립장을 바꿨어. 그 잘난 〈푸에블로〉호사건때문에 망신을 한때문인지. 저들 위세만으로는 안되겠다는걸 깨달았거던.》

태민은 무슨 소린지 알수 없었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 당장 이북을 삼킬듯 소란스러울 때는 《미군과 더불어 압록강까지 먹는다.》고 떠들던 박정희였다. 이렇게 보면 여기에도 오그랑수가 있을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두려운것은 《푸에블로》호사건때의 자기내심을 알아차리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이였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온 나라가 물끓듯 할 때 태민은 이상스러운 환희에 사로잡혔다.

터져라! 엔트로우가 하던 말까지 생각했다.

미국이 이기건 북이 이기건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어느편에 서는가, 그건 대수로운것이 아니다.

싸움이 터져 다 죽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편한 일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죽는것은 함께 사는것과 같은것이 아닌가.

그런데 삽시에 북을 도륙낼듯 하던 미국이 뒤주춤 물러났다. 이것은 태민에게서 커다란 실망으로 되였다. 하나로 통일되든가, 다 죽든가 해야 한다는데서 파탄이 왔기때문이였다.

《왜 그렇게 굳어진 얼굴인가.》

박정희는 탁우에 돈뭉치를 내려놓으며 활기차 계속했다.

《내가 말하자는건 우리가 이제야말로 완전한 주인이 되였다 그 말일세. 백악관과 펜타콘에서 토론한것이라는데 우리가 단독으로도 이북을 누르게끔 대거지원을 주겠다는거야. 군사장비를 일신시키는것으로부터… 죄다 말이야. 이러구저러구 간참하는노릇두 덜하겠다고 하고. 그러니 우리가 진짜주인이 된것이 아닌가.》

태민은 귀가 솔깃해졌다. 늘 미국사람들때문에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던 박정희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주인》이라는 말은 본래의 뜻을 되살린다는것이고 미국사람들 눈치때문에 《알라스카》검속건도 막지 못해 헤식어진 태민이와의 정분도 고스란히 내세울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은근한 기대로 가슴이 뛰였다.

《그래서 난 자네를 예편(제대)시키기로 했네.》

박정희가 재차 하는 말에 태민은 어리둥절해졌다.

《달리 생각말라구, 정 필요하면 군에 다시 오면 될것이고. 난 자네가 돈주머니가 될걸 바라네. 재계에 나가보라는걸세. 어떤가, 사복장성으로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태민의 높뛰던 가슴은 졸지에 얼어붙었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군에서 나가게 되니 좀 섭섭합니다만 앉음뱅이소장이니 물러날 때가 되였다고 봅니다.》

《아아, 그런건 아니야. 자네한테니 터놓고 말하네만 섭정이 끝나도 태황후는 여전히 지켜보거던. 큰집사람들속에선 이 박정희까지 려수폭동건으로 아직도 기연가미연가 의혹을 품은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난 그 사람들의 의혹이 풀려질 때까진 군과 정계의 인사사업도 그들 뜻대로 하려고 하네. 그러나 이건 당분간이지. 정 싫다면 다시 고려할순 있네.》

《아니, 각하의 의향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구. 그래서 난 합당한 자리를 고르던 끝에 군수관련회사 하나를 꾸려 그 사장자리에 자넬 앉히려고 하네. 그럼 자넨 잠간사이에 거부가 될거구 나도 덕을 볼것 아닌가, 하하.》

밖에 나온 태민은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젠 헌신짝처럼 버려졌구나.)

차가 청와대정문을 벗어날 때 그사이 밤눈이 소담스럽게 내린것을 알았다. 서울날씨치고 드물게 보는 풍경이다. 여느때면 애어린 시절의 포근한 기분속에 마음의 즐거움을 가져봤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순결한 인생, 순결한 인간, 흰눈은 조만간 검스레하게 얼어붙든가 녹아버릴것이다.

언제부터?… 박정희도 자기도 정치라는 진펄, 대의라는 표대앞에서 인간의 본도를 벗어났다, 참인생은 허울로만 남았고. 아, 이야말로 희비극이 아닌가.

집근처에 이르러 어수선한 생각을 털어버렸다. 골목골목에서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는것이 보였다.

맞았다! 던져라!

아이들의 떠들썩한 움직임에 시선을 팔던 태민은 《쟁강!》하는 소리와 《앗!》하는 비명에 눈이 둥실해졌다.

운전사가 급제동을 썼다. 왼손으로 이마를 싸쥔 정창호가 오른손으로 차문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냥 몰라구.》

태민은 차창에 뚫려진 구멍과 그 구멍과 일직선으로 뻗어진 길목으로 키가 늘씬한 사내아이가 재빨리 도망쳐가는것을 지켜보며 침울하게 말했다.

벌써 세번째이다. 한번은 경자와 정창호가 나이트클럽에서 돌아오다가 돌총사격을 받았고 또 한번은 집창문이 돌세례를 받았다.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울리기 바쁘게 옥영이와 경자가 현관문밖에까지 뛰여나왔다. 태민이 검속에서 풀려나온 뒤부터 생겨난 습관이였다.

집에 들어선 태민은 정창호의 이마빼기상처를 보고 길길이 뛰는 경자를 언짢게 보며 침실에 들어섰다. 다 큰 처녀애가 실내복바람으로 감겨드는 꼴이 거슬렸던것이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따라들어서는 옥영에게도 잔소리를 했다.

《저 애 옷차림을 신칙해줘야겠소.》

일본과의 회담이 결속된 후에 물밀듯 밀려드는 일본제품바람에 경자의 실내옷은 속이 환히 드러나보이는 일본제 나이론옷이다. 부녀간에는 그까짓 눈을 감는다쳐도 피가 서말동이로 끓는 정창호에게는 얇디얇은 천자락을 밀치고 일떠서는 젖가슴이 탑동공원의 돌조각과는 완연히 다를것이였기때문이였다.

《저… 아침에 해성의 아버님이 왔다갔어요.》

《뭣때메…》

태민은 옷을 벗다말고 돌아섰다. 해성이란 지응석의 아들이다.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지응석이 의절을 선포한지도 수년, 그동안 한번도 얼씬하지 않았다.

옥영은 그의 흐려진 얼굴을 보고 한숨부터 쉬며 침대옆 쏘파에 조심스레 앉았다. 긴말을 할 잡도리였다. 엎친데덮친데라고 오늘은 좋지 않은 날이다.

태민은 옷을 걸어놓고 침대에 와앉았다.

《그래, 또 행악질이였소?》

태민은 돌팔매의 당사자가 해성이라는것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 집에서 다른델 이사를 간대요.》

《건 왜?》

《저… 동리에서 몰린데다가 이번 재판에서 져가지고 가산까지 거의다 빼앗겼다고 해요.》

《재판이란건 뭐구 또 빼앗겼다는건 무슨 소리요?》

《전번에 말하지 않았어요.》

태민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되는것이란 지응석과 대판들이싸움을 벌린 일뿐이였다. 지응석이 그를 찾아온것은 검속에서 풀려나온지 나흘째 되는 날인가 저녁이였다. 지응석 역시 그동안 재판소출입과 류치장생활로 초췌하고 악에 받친 몰골이였다. 성민의 재판때 《법정질서》를 깨뜨린 죄와 그뒤에도 법이 어떻소, 북이 어떻소 뒤소리를 많이 하여 형사소송법에 걸려들었던것이다.

그날 응석은 마구잡이욕설과 눈물로 태민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태민은 처음에는 참으려 했으나 동생을 고발하고 잡아먹기까지 했다고 하는 말에는 참을수 없었다. 나가라고 소리쳤다. 하여 응석은 의절을 선포하며 선산의 노염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을러멨다. 그러면서도 성민을 살리게끔 해달라고 눈물코물 흘리며 애원을 했다.

《해성의 아버지 말로는》 옥영은 태민의 침묵을 전번 말에 대한 리해로 생각했는지 제 료량으로 계속했다.

《그전부터 척을 지고있던 사람의 거짓상소에다가 경찰에서까지 짜고들어 망하게 했다는것이예요. 그때문에 재판소출입을 하다가 요 며칠전에 재판을 했는데 〈불법매도〉에 또 뭐라던지… 군수품과 국가물품을 빼내서 팔았다는… 오, 사기죄라고 하던지 그런 죄에 걸려 국세청에도 돈을 들여놓고 또… 협잡군놈팽이한테도 수만금을 바치게 해서 한지에 나앉게 했다는것이예요.》

《집에 돈이 얼마나 있소?》

《저도 그 소리를 했어요. 다문 얼마라도 보탬을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필요없다고 해요.》

《필요없다구?》

《자기는 청청하늘을 보며 깨끗이 살겠노라고 하며 우리 집에 온건 성민이때문이라는거예요. 만약 우리가 정 도울 생각이 없으면 자기라도 그를 만나게끔 도와달라는거예요.》

《만나는거야 제 혼자 가면 되지 도움은 무슨 도움이야.》

태민은 벌컥 성을 내였다.

《그런게 아니예요.》 옥영은 황급한 기색으로 말했다. 《성민이 그사람은 서대문교도소에 있다가 지금은 대전교도소에 가있다는데 해성이 아버님은 대전에만도 두번씩이나 찾아갔지만 아예 만나지조차 못하게 한대요.》

《만나지 못한다구―》

태민은 떡심이 풀렸다. 경찰서요, 재판소요 끌려다니는 속에 대전에까지 두번씩이나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지응석의 모습이 비껴오며 가슴이 아파들었다.

《술을 가져오우.》

《또 마시려구요.》

《가져오라면 가져오는거지 무슨 잔말이요.》

옥영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태민은 실내등을 끄고 상두대의 탁상등만 켜놓았다. 주단우에 길게 뻗쳐진 그림자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소리가 울렸다. 옥영인가 하여 고개를 들고 보니 경자가 문을 빠끔히 밀고 보다가 냉큼 닫았다.

《왜 그러냐?》

대답은 없었다. 태민은 허구프게 웃었다. 방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부부싸움으로 생각했을것이다.

모든것이 파탄이였다, 가정의 단란도 웃음도. 성민의 재판건이 알려지고 태민이 검속되였다가 나온 뒤부터는 그전까지 줄닿게 찾아들던 손님이요, 지기요, 마님이요 하던 사람들도 적잖게 발길을 끊어버렸다.

《어떻게 하실테예요?》

커다란 다반에 술병까지 받쳐 들어온 옥영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 좀더 두고보기요.》

검속에서 풀려나왔을 때는 성민이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소리쳤다.

제따위가 뭣이 돼서 통일이요, 악법이요 떠드는가. 숭어가 뜀박질을 한다고 흐르던 강물이 되돌아설텐가.

그러나 이러한 감정도 일정한 기간뿐이였다. 성민이가 옥영에게 했다던 <옴쟁이>소리도 되게 속을 긁었으나 오히려 그로 하여 형님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하여 반년에 한두번씩은 옥영이의 면회와 물건차입을 허락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중앙정보부에 일일이 장악된다는것을 알게 되자 생각이 또 달라졌다.

그 녀석을 위해서도 그만두어야 한다, 고생을 하느라면 돌아설수가 있을테니까.

이런 식으로 자기의 보신을 합리화하였다.

《젠장!―》

포도주잔에 절반쯤 부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저가락을 들며 보니 소고기편육과 미꾸라지탕외에 고사리, 참대순, 도마도화채따위의 동맥경화방지제가 수두룩했다.

옥영은 태민이를 검진한 의사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설레발에 간보호제요, 동맥경화방지제요를 극성스레 갖춰놓는것이다. 동맥경화는 헌병대에서 풀려나온 뒤 한달도 채 안되였을 때 받은 진단이였다.

류치장생활 9개월에 동맥경화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였다. 그것도 이따금 찾아드는 심문관들에게 욕이나 퍼붓고 옛날일을 새김질하던 생활이였는데… 돌이켜보면 체험자들의 충고를 무시한때문이였다. 마음만 동하면 아무때나 산보를 할수 있었건만 세상일이 다 여의치 않아 침대하고만 씨름했다. 바로 그렇게 심기를 다잡지 못한탓에 재판정에 가보련다는 청에도 눈을 감았고 감았을뿐만아니라 행여나 하고 기다렸다. 태민은 연신 술을 부어 들이키며 안주를 집어들었다. 참대순인가 하는것을 집어씹는데 맛이 별스러웠다.

《이건 뭐요?》

마음도 화제도 돌리려 했다.

《송이버섯이예요.》

《아―니!… 건 어데서 났소?》

《창호씨가 구해다줬어요.》

《창호가―》

태민은 더는 참대순―송이버섯을 집게 되지 않았다.

《왜 그래요?》

《뭐 아니야.》

취기에 잠긴 눈으로 웃어보였다. 그러나 가슴속엔 눈물이 맴돌았다.

어제날을, 고향을 보았다.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솔스러운 바람, 산새들의 정겨운 울음소리, 쌉쌀들크무레한 산의 냄새, 이리기웃 저리기웃. 드디여 나타난다. 노랗게 말라든 가랑잎과 솔잎을 들추며 봉긋봉긋 치솟은 연밤색송이버섯.

《야, 잡았다!》

산삼을 캘 때와 같은 말,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송이버섯은 숨어버린다고 했다.

하나하나 조심스레 따낸다. 짙은 향기, 말큰한 감촉.

《에구, 우리 태민이가 송이밭을 찾았구나.》

허겁지게 웃으며 달려오는 어머니. 어머니의 손에도 송이버섯이 들려있다.

경성에는 관모산줄기의 모든 산들에 송이버섯이 많았다. 그런데 송이버섯은 깨끗하고 외진 곳을 좋아하는지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여 고향에서는 부정을 탄 사람과 마음이 곱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송이버섯이 띄우지 않는다고 했다. 버섯철이면 농가들에서는 물론 시내의 부녀자들까지 송이버섯따기에 나선다.

태민이 6살때던가. 갓 후실로 들어온 어머니가 마을녀인들과 함께 산으로 오를 때 태민이도 따라갔다.

그런데 이 일로 하여 어머니가 된경을 쳤다. 대가집아낙이 려염집녀인들과 산판에까지 오르다니, 할아버지가 대노하여 길길이 뛰였던것이다. 그때 태민이가 어머니를 막아나섰다, 자기가 떼를 써 갔노라고.

집안의 장손이여서 태민이를 더없이 귀히 여기는 할아버지는 눈물까지 쏟는 장손의 말에 더이상 야단을 치진 않았으나 두번다시 가지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뒤에도 자주 갔다. 태민이 송이버섯을 무척 좋아했기때문이였다. 장에서도 살수 있었지만 자기가 따서 깨끗이 다듬어 태민이한테 먹이는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어머니였다.

성민이가 컸을 때 어머니는 그도 함께 데리고다녔다.

이를 놓고 들바람, 산바람이 났다고 역증을 내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리해를 시켰다.

산의 정기를 쐬여야 애들 건강에도 좋고 자연과도 친숙하게 되니 마음가짐과 성장에도 좋다고.

금방 송이버섯의 갓을 떼고 그 뗀 자리에 소금을 친 다음 다시 갓을 맞춰놓고 해빛좋은 바위우에 1~2시간가량 놓았다가 먹는것이 별미였다.

태민이 그 재미를 성민에게 배워주었다. 물론 그때마다 태민이가 더많이 먹었다. 일단 성민이까지 맛을 알게 한 다음엔 홀라당 자기 혼자 다 먹어치울 때도 있었다. 그때면 성민은 울상이 되였으나 어머니한테 고자질까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송이버섯찬이 적을 때면 태민이만 먹으라고 밀어주군 했다.…

《허.》

태민은 자기도 모를 헛웃음을 짓고는 접시우의 송이버섯을 말끔히 비워버렸다. 무슨 일인가싶어 눈이 올롱해있던 옥영이가 시무룩해 말을 떼였다.

《저… 오늘 려아가 왔댔어요.》

《건 왜?》

《성민이때문이지요, 뭐.》

《아니, 건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사람의 정이라는게 그렇나요. 그 애도… 한번 알아봐줬음 하더군요.》

《허, 정이란 말이지…》

《지금 성민이같은 교도수들 생활이 말이 아니래요. 쩍하면 두들겨 패구 굶기구… 그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래요.》

《건 제 남편한테나 알아보라구 해. 나같은거야 정이구 뭐구 안다던가. 그리구… 그한테는 내 소릴 일체 하지 말어.》

《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저 그렇게 알고있으라구.》

옥영이가 음식그릇을 가지고 나간 다음 태민은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희읍스름한 달빛이(실제는 바깥 눈의 반사광이겠지만) 꽉 찬 방안에서 눈만 뜨부럭거렸다.

(려아에 대한 말만 듣지 않아도 심사가 이처럼 괴롭지는 않겠는데… 더러운 고자질군.)

헌병대구류장에서 만났던 중앙정보부장은 성민이의 《친북동향자료》를 렬거할 때 지난 기간 명례한테 했던 말들을 거의다 되옮겨놓았다.

더러운!… 태민은 원체부터 명례라는 인간을 개차반으로 여겼지만 그가 소학교아이들까지 침뱉을 고자질군인줄은 몰랐다.

《더러운…》 방에 들어온 옥영을 보다말고 저도 모르게 《음.》소리를 내질렀다.

《왜 그래요?》

머리핀과 그러루한 물건들을 들어내리던 옥영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별거 아니요.》

태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환각속에서 또다시 성민이를, 성민이의 두눈을 보게 되였던것이다.

《형님도 고자질군이요. 밀고쟁이란 말이야.》

성민은 이렇게 소리치는듯싶었다.

《저… 약을 드셔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라니까.》

태민은 울고싶었다.

내가 왜 이러는가. 이젠 승급도 뭣도 죄다 수포로 되였으니 마음바재일것도 없지 않는가. (태민은 이상스럽게도 그 어떤 희망이나 기대가 좌절되였을 때면 불안이 아니라 마음에 평온을 얻는 특성이 있었다.)

자자, 모든것을 잊어야 한다.

뽀잇한 안개속에서 옥영의 몸놀림을, 유난히 하얀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여겨보며 달콤하고 깊은 잠을 그려보았다.

《춥지요?》

《응.》

옥영의 날씬하고 보드라운 몸을 꽉 그러안자 아닐세라 모든것이 잊혀지는듯 했다.

(그래, 모든것을 잊어야 한다.)

잠시후 옥영은 쌔근쌔근 잠들었다. 태민은 물끄러미 천정만 바라보았다.

취기로 인한 광열도, 아직도 20대의 젊음에 못지 않다는 장쾌한 쾌감도 썰물처럼 사라져버렸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치국평천하란게 뭐예요?》

애어린 성민이 그의 무릎을 흔든다. 머루알같이 까만 눈에는 깊은 연구심이 깃들어있다.

《평천하란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큰공을 세워야 한다는거지.》

그래, 나한테 아직도 그 꿈이 있느냐. 아, 한다하는 어르신들도 전전긍긍 앙앙불락인데 나나 네따위가 무슨 통일이냐?… 불시에 뜨거운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렸다.

그래, 넌 나를 죽이려는거야, 내 속을 썩여 거름을 만들자는거야,

형님도 뭣도 아니라고 시궁창속에 처넣는거야.

문득 옥영에게 했다던 성민의 말이 떠올랐다.

(《옴쟁이》! 허 내가 그와 같다는거지.)

허구픈 웃음속에서도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옥영이가 하던 말이 귀전을 쳤다.

그는 당신을 잊지 않고있어요. 고민하며 괴로와하고있어요.

잊지 않는다?!… 그래, 그럴거야, 그렇게 돼먹은 녀석이니까.

《5.16》후에 가보았던 감옥시찰때의 일이 떠올랐다. 컴컴한 감방, 그 어두움으로 하여 더욱 대조되게 보이는 피기 바랜 얼굴들, 목곽에 붙은 썩은 보리밥알들, 코를 찌르는 악취와 몽둥이들과 쇠사슬들… 그런데 나는 편히 먹고 자빠져있단 말이지, 아아, 이 무슨 일이람.

《사내로서 인간의 도란 불의에 꺾이지 않고 의를 중히 여기고 믿음을 지키는거야.》

이건 내 말이였지. 한데 지금은 그가 이 말을 하는셈이다.

아아, 넌 언제까지 나를 괴롭히려느냐.

태민은 이날 밤을 거의나 밝히다싶이 하였다.

제대수속과 인계사업을 할 때 가까운 부하들의 문제에 끔찍하게 관심을 돌렸다. 밉건곱건 모두에게 좋은 평정을 주었고 권한이 미치는 한도에서 승급도 시켜주었다. 정창호때문에 적잖게 골머리를 썼다.

창호는 지장군을 따라 한생을 바치겠노라고 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을 생소한 돈벌이판에 끌고갈수는 없었다. 더구나 창호의 그러한 결심에는 그간의 인연도 있겠지만 보다는 경자에 대한 엉큼한 욕심때문이라는것으로 더더욱 받아들일수 없었다. 창호는 비록 성실한 청년이였으나 사위감으로 보기는 나이도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지체도 낮아 맞지 않았던것이다. 그럴 때 중앙정보부에서 창호를 달라는 청탁이 왔다.

태민은 몹시 놀랐다.

어떻게 되여 자기의 부관이 중앙정보부와 인맥져있는가.

처음에는 될대로 되라 하는 감정이 앞섰지만 내 사람이였다는 책임감이 그걸 눌러버렸다.

정창호는 사실그대로를 솔직히 다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태민의 물음에 창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중앙정보부에는 안 가겠다는것이였다.

왜? 임자의 소원이 아니였는가?

《그건 멋모를 때의 일이였습니다.》라고 하는 정창호의 입에서는 단방 오라를 지울수 있는 위험스런 말들이 마구 튀여나왔다. 그중에 《지장군같은 호국의 중진들에 대해서까지 감시를 하고 잡을내기를 하는 일이 역스럽다.》는 말은 꽤 들어넘길만 했으나 북의 동생같은이들과는 싸울 《생각도 의기도 없습니다.》라는 말에는 뼈끝까지 오싹해질 지경이였다. 하지만 마음상으로는 그의 말이 더없이 대견했다.

《그럼 안되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람잡이놀음은 자기 역시 몸에 붙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군에 계속 있으라구.》 이렇게 중을 뜨니 지장군의 뒤받침이 없는데야 군에 뭣때문에 계속 있겠느냐 하면서 미국류학이 소원이노라고 했다. 태민은 여기서도 주춤했다. 미국류학은 애당초 경자의 소원이였고 엔트로우와도 토론된 문제였다. 딱한 일이였다. 경자는 《빨갱이친척》이 공개된 뒤부터는 하루 한시가 급해 이 땅을 뜨겠다는것인데 창호까지 함께 미국에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안다던가. 이렇다해서 안돼 하기도 어려웠다.

《임자 료량대로 하라구.》

미국류학이라는것이 맨땅짚기헤염은 아닐것이니 돈과 연줄을 잡자면 제풀에 단념할것인지라 선선히 승낙을 줬는데 창호는 사방사처에 연줄을 놓으며 기뻐 뛰였고 경자 역시 당승이 손오공을 얻은것만 치나 좋아했다.

(허, 일이 맹랑한걸.)

수족들의 처리문제를 일단락지은 다음 성민이에 대한 의무를 리행하려 했다. 퇴직금 절반을 갈라 옥영에게 준것이 그 의무의 리행이였다.

《가되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가 만나오.》

옥영은 그의 말대로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대구엘 다녀왔다. (그때 성민은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여있었다.)

태민은 한겻동안 그의 보고를 청취하였다. 아픔도 있었고 위안도 있었다.

성민이 해골처럼 말라있다는것과 령치금을 넘겨줄 때 집안살림이 어떠냐 하고 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찔러드는 켕김도 있었고 태민의 제대소식에 기뻐하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마살이 찌프려드는 속에서도 한줄기 웃음이 나갔다.

《됐소. 이제부턴 매달 령치금을 보내주기요.》

그런데 옥영이가 갔다온지 얼마 안되여 그곳 교도소장이 태민을 찾아왔다.

교도소것들의 수인 친척방문이란 대체로 사바사바 뒤돈(친척인 수인을 잘 돌봐달라는 인사금)을 챙기려는것과 태민이같은 사상수의 친척인 경우에는 전향방조를 위한 청탁때문이다.

아닐세라 이자도 성민이의 위험천만한 《빨갱이》사상선전과 감옥질서교란의 중범죄를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흘끔흘끔 눈치를 보았으나 태민이 뻐꾹소리 한마디 없자 전향청탁에로 넘어갔다.

태민이 여기서도 랭담한, 랭담하기보다 릉멸한다고 해야 할 시푸른 태도를 보이자 교도소소장은 돌연히 태도를 바꾸었다.

《…제가 찾아뵙게 된 용건은 그에 대한 령치금송달을 더이상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때문입니다.》

《건 왜?》

《엄중한 문제가 생겼기때문입니다. 지장군의 동생은 부인님이 가져오신 령치금 전부를 공산했습니다.》

《공산이란 무슨 소린가.》

《노나쓴것이지요. 그때문에 전향할 마음을 품었을 사람들도 다시 눌러붙지요.》

《거야 교도소에서 할 일이 아닌가.》

《아직 법은 그렇게까진 안되여서.》

《그럼 우리도 매한가지 아닌가. 령치금 불허법이 있어?》

《건 없지만… 이건 지장군을 생각해 말씀드리는것입니다. 지장군께서 보내시는 돈이 빨갱이들과 극렬분자들을 위해 쓰인다는것이 알려지면 이모저모 해가 되지 리가 될것은 못되지 않습니까?》

《난 그따위건 몰라.》

태민은 매정하게 그를 쫓아버렸다. 그러나 그가 떠나가기 바쁘게 옥영을 불러 이제부턴 면회도 령치금도 다 그만두라고 큰소리를 쳤다.

죽든 살든 제탓이니… 속에서 불이 일었다. 자기의 이런 처사가 하잘것 없는 감옥지기의 몇마디 위협때문이라는것으로 더욱 그랬다.

이런 때 뜻밖의 일이 생겨났다.

미국류학에 앞서 동무들과의 작별연회에 갔던 경자가 행방불명되였던것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경자동무들의 말에 의하면 연회장에서 나온 경자가 웬 청년과 말하다가 택시에 올랐다는것이 전부였다. 이때문에 태민은 헌병대에까지 수사방조를 요청했고 군수재벌 사장님이 된 태민에 대하여 벌써부터 돈주머니라고 우러르던 경찰들까지 사방수배를 하며 뛰였으나 한달이 넘어도 경자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이로 하여 정창호의 류학도 류산상태에 들어갔다. 본인 당자가 경자를 구원하기 전에는 어데로든 가지 않겠다고 했던것이다. 한데 샬로크홈스를 깊이 연구한 정창호도 그의 행방을 전혀 알아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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