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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은 처음에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다음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구나.)

객석 맨 뒤줄 한복판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게 몸을 움츠리고있던 정창호 역시 성민이 못지 않은 놀라움과 실망을 체험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변화가 생겼는가.

창호는 옆에 앉은 옥영이며 시종 고개를 떨구고있는 려아라는 녀인의 숨소리를 들으며 빌어먹을 유다를, 7~8월 학질환자처럼 목소리를 떠는 검사를 죽일듯이 쏴보았다.

엊그제만도 검사는 간첩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옥영이가 찔러준 돈까지 되넘겨주며 걱정말라고, 죄명으로는 반미죄와 공화국찬양죄만이 거론되게 되니만치 형기도 극상해야 5~6년을 넘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서운 배신, 무서운 기만이 생겨난것이다.

객석의 반응 역시 정창호와 비슷한듯싶었다.

피고에 대한 재판장(중령이였다.)의 대질심리때 형님을 찾아왔다가 형님으로 하여 체포된 동생이라는것으로 애잡짤한 감상에 젖어있던 사람들은 첫마디 안짝부터 무시무시한 법률로 옥죄여대는 검사의 말에 거의나 다 불만어린 기색이였고 개중에는 가벼운 헛기침과 몸놀림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검사도 그것을 알았는지 객석에는 애당초 눈길도 주지 않고 높은 단우의 법관들만을 보며 말했는데 오직 군복입은 법관들만이 검사의 말은 다 진실이라는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어마어마한 범죄가 증명될 때면 독기서린 눈길로 피고를 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검사는 이럴 때마다 잠시 말을 끊든가 입안의 소리로 말을 흘렸는데 정창호의 경우에는 이 유다에게도 량심이 남아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에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서툰 연설군의 잔꾀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피고는―》

검사는 이때도 입안의 소리로 말을 굴렸다.

《그 범행의 목적과 기도로 볼 때 가장 위험한 반국가범죄인임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고의 공작대상이 국가와 군의 중추적거물로서 그를 적화포섭하는 경우 한국의 기틀이 흔들릴수 있었기때문입니다. 또한 피고는 이북의 적화통일전략과 사상을 공공연히 비호선전하였을뿐만아니라 우방국인 미국을 침략자, 조국분렬의 범죄자라고 함으로써 실제적인 현행범으로 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피고에 대해서는 국가의 기틀을 뿌리채 흔들려는 목적과 기도, 이북의 통일전략과 사상을 적극 옹호선전한 죄, 비법잠입상태에서 자수를 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개심과 전향에 대한 성의있는 방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한국의 법과 질서를 타매우롱한 비방중상죄 등으로써 마땅히 극형이 가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될 또 하나의 리유로는 피고의 성향과 준비상태로 볼 때 그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도 개심과 전향이 전혀 불가능하기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저는―》

검사는 여기서 말을 끊고 처음으로 객석을 휘돌아보았는데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파릿하게 질린 볼살들이 가늘게 떨렸다.

《사형일테지.》 누군가 나직이 속삭이는 말에 검사는 흠칫하며 그쪽으로 시선을 주다가 어쩔수 없다는 태도로 기소장을 내리읽었다.

《상술한 제반사항에 따라 피고 지성민에 대해서는 사형이 가함을 제소합니다.》

정창호는 무엇보다 지태민을 만날 일이 걱정스러웠다. 어저께 헌병대 류치장에 있는 지태민에게 갈아입을 내의와 음식꾸레미를 들고갔던 창호는 성민이에 대해 4~5년정도의 경한 형기로 끝날것이라는것을 제 공로처럼 말하며 옥영이랑 함께 재판정에 가는데 대해 허락을 청했다.

지태민은 《꼭 가봐야겠나.》하며 말로는 시답지 않아하는 태도였으나 꺼칠하게 돋아난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일 때의 얼굴빛을 봐서는 상당한 기대와 관심이 있음이 알렸다.

그런데 사형이라니, 물론 검사의 기소는 말그대로 기소이니만치 최종언도는 두고봐야 알일이다. 하지만… 단우의 법관들과 배심원석의 랭랭한 얼굴들을 보게 되자 어떠한 희망과 기대도 비누거품임을 알았다.

문제는 검사다.

성민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도 호감을 가졌노라고, 더구나 지태민을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하던 녀석이 이처럼 탈을 바꾸다니.

《피고는 할말이 없는가.》

재판장의 엄엄한 말소리에 정창호는 목을 쑥 뽑아들었다.

그는 검사의 기소에서 한두가지라도 론박당하기를 바랐다. 물론 론리로는 어렵다고 보았다. 검사는 만능의 무기 《반공법》을 휘두르는것이고 《반공법》은 기존의 상식과 도덕을 초월하는것이기때문이였다.

《피고는 할말이 없으면 안해도 되오.》

성민은 재판장의 두번째 말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자기가 지금까지 견뎌온것이 바로 이날 이 시각때문이라는것으로 한껏 긴장되였다.

《말하겠습니다.》

가벼운 가슴떨림이 지나갔다. 육박전투에 뛰여들 때 이랬다.

《나는 길게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전에 미국인들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았고 이제 와서 그 어떤 힘으로도 그걸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입니다.》

장내에 가벼운 소음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 땅의 량심과 선의앞에 속임도 조작도 모르는 력사앞에 진실을 밝히는것이 옳다고 보아 몇가지만 말하고저 합니다.

검사의 기소에서는 나를 놓고 공작대상이 〈국가〉와 군의 중추이니만치 포섭하는 경우 〈국가〉의 기틀이 파괴될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여기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는가.

단 하나 이 〈국가〉의 기틀이 매우 허약하고 보잘것없다는것만은 진실이라고 봅니다.》

《피고! 피고는 또 하나의 현행범죄를 저지르고있다.》

《재판장! 이건 나의 분석이기보다 이미 검사의 기소에서 제시된것이요. 검사는 나의 형님이 이른바 적화포섭되는 경우 〈국가〉의 기초가 뿌리채 흔들릴수 있다고 했소. 단 한사람때문에 말이요. 그러니 이 〈국가〉라는 틀이 허약하고 보잘것없다는 나의 말이 무슨 범죄라는것이요?》

장내에는 가벼운 탄성과 호응조의 웃음이 일었다.

《그런데 나의 형님이 과연 〈국가의 기틀〉을 무너뜨릴 용의와 힘이 있겠는가.

검사의 말을 존중하여 그렇게 한다 합시다. 그 경우 형벌집행을 누구에게 먼저 하게 되는것입니까.

저 멀리 〈동태복수법〉이라는 인류초창기의 법으로부터 오늘의 현대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법은 이른바 위법행위를 한 당사자를 처벌하는것이지 그렇게 하도록 한 조장자는 그다음의 취급대상으로 되는것입니다.》

정창호는 이마를 쳤다. 왜 이것을 생각 못했던가, 법의 초보적상식인데.

《그런데 저의 형님으로 말하면 그럴 용의도 없을 사람이거니와 저역시 그런 행위를 바라지 않았으며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슬프게도 이 땅의 법은 형과 동생의 상봉을 〈적화〉와 〈용공〉행위로 규정했고 형님 역시 나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피고! 피고는 그때문에 현행중범죄는 면한셈이다.》

《중범죄?!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물읍시다. 그래, 혈친으로서의 끊어졌던 정을 되찾자고, 이 땅과 민중앞에 죄되는 일을 하지 말자고 하는것이 과연 범죄란 말입니까.》

《피고는 적화통일을 고취하려 하지 않는가.》

《재판장, 민족이 하나로 단합되고 통일을 하자는것이 그래, 당신의 눈에는 적화로만 보이오?》

《…》

《하긴 존경하는 나의 담당검사도 그렇게 말한바 있습니다.》

성민은 통일문제에 대하여 론할 때 검사가 《손을 들었습니다.》라고 하던 말을 상기했다. 그때문인지 시종 고개를 떨구고있던 검사가 불안스런 눈길로 성민을 보고있었다.

성민은 그에 대해서는 더 까밝히지 않기로 하고 장내를 돌아보았다.

감심한 눈길들이 초롱초롱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모인분들속에서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소망이고 민족사활의 절대적인 과제이기때문입니다.》

《피고! 피고는 내란선동을 계속할텐가.》

재판장의 얼굴이 험상궂게 이지러졌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투덜거림이 일었다. 재판장은 구리판우의 망치를 집어들다가 아니꼬운 눈길로 성민을 보며 계속하라고 했다.

《그럼 합시다.》

성민은 웃으며 검사를 스쳐보았다.

《존경하는 검사는 나에게 우리 공화국, 나의 조국에 대한 찬양을 죄라고 하였습니다, 옳습니까.》

《옳소.》

재판장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재판장에게 한가지 묻고저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것도 죄로 됩니까. 좋은것을 나쁘다고 말하라, 이 땅의 법은 거짓을 요구하는것입니까.

이런 면에서는 이른바 개심과 전향에 대한 반대를 놓고 범죄라고 하는것 역시 언어도단의 궤변이고 무지라고 봅니다.》

《피고, 무지한 사람은 당신이요. 물론 리해는 되오. 북한체제에서 오래 살다보니 옳고 그름에 대한 식별능력이 경화되였을테니까.》

《그렇다면 한가지 더 물읍시다. 〈5. 16〉이 왜 일어났습니까. 이 사회의 부정과 부패, 악을 일소하기 위해서라고 했지요. 이른바 혁명이 아니면 이 어지러운 사회를 도저히 지탱할수 없다는데서… 그런데 지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피고!》

《난 멀지 않게 가까운 실례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나의 담당검사는 나의 죄명을 놓고 불법잠입죄와 공화국찬양죄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금전의 기소진술은 어떠했습니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그래 이 땅의 법정신과 도덕성의 체현이라고 하는 법관이 이럴진대 5. 16이 제창하는 신성과 정의는 무엇이며 그 신성과 정의를 지킨다는 귀관들은 어떤 카멜레온들입니까.》

《검사, 피고의 말이 사실인가.》

《그건… 거짓입니다.》

《그럴테지. 피고, 당신은 법관을 무고한것으로 또 하나의 범행을 저질렀다. 물론 우리는 당신의 절망적인 심정을 리해한다. 그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당신의 전향과 개심에 대해서 마음을 썼고 재판관인 나로서도 그걸 바랐다. 그래, 피고로서는 지금의 이 자리에서도 한국의 전향제도에 응할 생각이 없는가.》

《허허 재판장님, 도대체 무엇에서 무엇으로 전향하라는것입니까. 실례지만 당신의 부인이 간활한 사기군의 위협공갈에 따라 〈나의 남편은 지랄쟁이고 도적이고 강도다.〉라고 하며 당신을 차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탕, 나무망치가 금속판을 울렸다.

《피고의 발언을 중지시킨다, 착석!》

2명의 헌병이 성민의 어깨를 끄잡아 눌러앉혔다.

정창호는 의자가름대를 다독였다.

자기로도 놀라운 일이였다.

법관들의 참패와 망신에 대해서는 동류의 《호국》군인으로서 응당 수치와 분격을 느껴야겠으나 그 반대였고 가긍하게 보여야 할 성민이가 영웅처럼 우러러보였다.

(객관적으로 볼 땐 이런 심리현상을 놓고 《용공》, 《적화》라고 할수 있어. 하지만 나의 이런 심리는 이데올로기와는 무관계한거야. 저 얼뜨기같은 법관들에 대해서는 리승만때의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경멸하게 되는것이고 《빨갱이》에 대해서는 사상을 초월한 상태의 인간적지조와 총명박식에 끌린때문인것이야. 그리고 중요하게는 지장군의 동생이기때문인것이고―)

이러한 생각은 변호사의 변호발언을 들으면서 더욱 확고한것으로 굳어졌다.

갱핏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40대의 변호사는 인정적인 각도에서 취급해야 할 문제를 정치로까지 끌어간데 대하여 울분을 토한 다음 《반공법》의 불합리성까지 운운했는데 그의 변호는 이때문에 중단되였지만 정창호에게는 자못 생신한 충격으로 되였다.

(변호사의 말이 옳다. 저따위 얼뜨기법관들도 문제지만 이 땅의 법이 야단이야. 법우에 도덕이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거던.)

《반공법》비난때문에 변호사의 발언을 중지시킨 재판장이 3일후에 선고공판이 있다고 하며 휴정을 선포하자 객석은 떠들썩한 소음으로 붐비였다.

불만과 찬탄의 목소리들이 울려나오는 속에 출구로 밀려가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방청자들은 저마끔 성민을 가까이 보러 앞다투어 밀려나왔다.

《젊은이, 장하네.》

성민은 한 로인의 눈에 물기가 그렁하게 고인것을 알아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서 머리를 숙여보였다.

2명의 헌병에게 끌려 재판정을 나설 때 손을 휘저어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검사가 다쫓아왔다. 그는 성민이의 눈길을 외면한채 헌병들에게 뭐라 말하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내가 오늘 당신을 너무 욕보이지 않았소?》

성민이 그냥 말없이 걷기가 멋적어 한마디 비치자 검사는 놀란듯 고개를 쳐들었다.

《각오했어요.》

검사는 수인차가 대기하고있는 밖이 아니라 반들반들하게 닳아빠진 구리문손잡이가 달린 방문앞에서 멈춰섰다. 친척들이 왔으니 식사를 함께 하라고 했다.

《제 본의는 아니였어요.》

검사는 이 말을 남기고 사라지고 어슴비슴 따라왔던 두 헌병이 자기들은 직책상임무이니 어쩔수 없다는 자세로 문가의 말뚝이 되였다.

성민이 문을 열자 맨먼저 눈에 뜨이는 사람은 정창호였다. 한바탕싸움을 치르고난 사람마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정창호가 요란스럽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한걸음 드텨서자 백포를 편 장탁우에 음식그릇들을 펴놓고있던 2명의 녀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옥영은 인차 알아보았으나 하얀 목수건으로 얼굴절반을 가리다싶이하고 조용히 일어서는 녀인이 려아라는것은 뒤늦게야 알았다.

《이거 정말 고맙군요.》

성민은 모두걸이로 인사를 하였다.

《지선생, 오늘 감탄했어요. 대단해요.》 정창호가 의자를 끌어당겨놓으며 설레발을 쳤다. 《글쎄 법관들이라는 사람들이 그 꼴일줄이야. 하참, 그 검사라는 유다는 알고보니 저의 법대출신이란 말입니다. 학교땐 민주가 어떻소, 정의가 어떻소 하던 녀석이 오라질 요술쟁이가 아닌가요. 앉으십시오.》

《당신은 이곳 장교가 맞소?》

《아무리 제편이라도 정의야 정의가 아닙니까. 선생은 오늘 쏘크라테스를 찜쪄먹었어요. 그 언변, 그 태도, 만점이였습니다.》

《창호씨, 그만해요.》

옥영이가 울상으로 말해서야 창호의 입이 다물려졌다.

《난 지금 무슨 욕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간 실고추와 깨가루가 뿌려진 닭곰소반을 성민이앞에 밀어놓고난 옥영은 야료를 부릴듯 한 눈길로 성민을 쏴보았다.

《얘.》

그때까지 까딱않고있던 려아가 옆구리를 찌르자 옥영은 성난 암닭처럼 그 손을 뿌리쳤다.

《넌 이 사람을 영웅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지 않아.》

《형수님, 이런 잔치상앞에서 얼굴을 찡그리진 맙시다.》

성민은 대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한가득 펼쳐진 음식들을 둘러보았다.

《이걸 다 제가 먹으랍니까.》

《어휴―》 옥영은 한숨을 지었고 려아가 그를 대신해 물수건으로 닦은 수저를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고맙소.》

수정을 찬 상태라 맨손으로 닭다리를 뜯었다.

《다들 함께 들어야지요.》

성민의 말에 정창호가 선참 응해나섰다.

《지선생, 이번 선고공판이 끝나면 무조건 항소심의를 하세요.》

2병의 맥주를 말끔히 비우고난 정창호는 입가에 발린 거품을 손등으로 닦으며 기염을 토했다. 《지금의 법관들이란것이 다 얼치기이니 대법원에까지 상소되면 달라질것이 분명해요. 한데… 더 좋기는 다음선고공판땐 적으나마 일정한 자제와 신축반응을 보이세요.》

《신축반응이라는건 어떤거요?》

성민은 정창호의 성의를 외면할수 없었다. 정창호는 사뭇 기뻐하는 기색이였다.

《건 선생으로서는 좀 어렵겠지만 오늘의 과격발언을 뉘우친다는… 회개발언을 했으면 하는거예요. 말하자면… 남한체제와 법을 잘 모르는데서 이러이러하게 잘못 생각했다는것과 주요하게는 이곳에 온것이… 선생도 말한바지만 형님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된 점이라는것만을 계속 풀이하는것이지요. 정치나 법률에 대한 분석은 피하고… 아아 달리 생각할것은 없어요. 저로서는 선생말씀 다 옳지만 우직한 법관들로서야 그렇게 되나요. 어쩔수 없어요. 권한이야 그들이 쥐고있으니 신축성있게 하라는겁니다.》

《난 그렇게 할줄을 모르오.》

《왜 그렇게 못한다고 해요?》

그때까지 바삭과자 하나로 동석식사의 분위기를 살리고있던 옥영이가 팩하여 내쏘았다. 성민은 웃었다.

《형수님의 고견을 들어봅시다.》

《고견?!…》 옥영은 억이 막혀 그를 보았다. 《지금 그런 말을 할 계제가 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내 말도 같아. 일일이 론전하지 말고 요령있게 하라는것이여. 그래, 법하고 싸워이기는 장수가 있어?》

《형수, 설설 긴다 해서 달라질것은 하나도 없소. 그리고 알지 않소? 난 기는것은 배우지 못했소.》

시종 고개를 떨구고있는 려아를 스쳐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잘못한것이 있다면 할말을 채 하지 못한 그것뿐이요. 더러운 인간을 더럽게 보지 못한것과 그런 인간의 비행을 막지 못한데 대한… 하긴 이건 오늘의 법정에서는 구태여 말할것도 또 들으려고 하는 문제도 아니지만.》

《그건 누구를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예요?》

《그걸 말하면 또 하나 〈반공법〉위반이 될것 같은데―》

성민은 창호를 보았다. 창호는 얼굴이 벌개지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였다.

《려아씨.》

성민은 처음으로 려아를 똑바로 보았다. 20년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려아의 모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순종만을 미덕으로 아는 예수의 수제자다운 모습이다. 더 거슬리는것이 있다면 상복차림 비슷한 까만 비단두루마기와 흰 동정이 눈부신 목언저리에 청옥목걸이가 한들거리는것이였다.

(이 녀자는 무엇때문에 왔는가?)

새삼스럽게 혐오스러운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그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난 지금 려아씨가 어떤 녀자인지 잘 모르겠소. 찾아온데 대해서는 반갑다고 해야겠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못하오.

물론 려아에 대해서는 나한테도 잘못이 많소. 형수한테도 말했지만 그때의 내가 변변치 못하다나니 제대로… 돕지를 못했거던. 그러나 난 려아가 좋은 사람으로 될걸 바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요. 이제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어리석은것일지도 모르지만 려아는 모든데 대해 잘못 생각했소.》

려아는 까딱도 하지 않았다. 입술만 바르르 떨었을뿐이였다.

분했다. 옥영을 향해 돌아섰다.

《형님이 잘못되였다는데 그뒤 소식은 모릅니까.》

옥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인차 놓여나올것 같다고 해요.》

《그건 사실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니까.》

정창호가 발을 달았다.

성민은 다소간 마음이 놓였다. 려아를 얼핏 보며 옥영에게 물었다.

《형님에게 <옴쟁이>소리를 전했습니까?》

《아이, 그걸 또… 언제 말할 틈이 있었어요?》

《하긴 그렇군요. 그 <옴쟁이>에 대해선 저 려아씨도 잘 알지요. 개질을 하다가 끝내 사람이 되지 못한 불쌍한 인간이 <옴쟁이>랍니다.》

려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으나 성민은 모르는척 했다.

《형수,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것이 간단치 않은것 같습니다.》

《그런 말은 그만해요.》

《지선생, 너무 비감해할건 없습니다.》

정창호가 한마디 께끼는 바람에 성민은 쓰겁게 웃었다. 당황한 기색의 옥영을 보며 계속해 말했다.

《나는 이젠 나로서 할수 있는 일은 다한것 같습니다. 좀 서운한 일이 있다면 형님을 만나지 못한 일인데…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참, 경자는 잘 있는가요. 난 그 애한테마저 미움을 받게 되였는데 영원히 남남이 될가봐 두렵습니다.》

3일후에 재개된 공판에서 성민은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때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지응석이 뛰여들어 자수서를 내흔들며 소동을 부렸던것이다. 성민은 언젠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 자수서를 찢어버렸다. 지응석이 자작 만든 자수서인것이다.

그 소동때문에 헌병들에게 끌려나가던 지응석은 마지막발언을 하는 성민의 입에서 《친척을 만나러 왔다가》라는 말을 듣자 황소울듯 소리쳤다.

《성민아, 그따위의 친척들은 죄다 잊어라. 제 혈육을 잡아먹는 친척도 친척이냐.》

그런데 이로부터 얼마후에 비공개로 다시 열린 3심재판에서 성민의 사형은 무기형으로 고쳐졌다.

서대문형무소의 감방으로 들어설 때는 모든것이 끝장났다는 허무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차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든 감방에는 쓰리와 절도범으로 구속된 5명의 잡범들이 있었는데 《어둠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들은 처음 며칠동안은 《빨갱이》란것으로 무척 꺼려하는 태도였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인차 친숙감을 드러내보였다. 그것은 나이가 어리건많건 성민이 깍듯이 례입을 써주는것과 옥영이가 밀어넣은 령치금을 모두의 공동구좌로 한것이 적잖게 영향을 미친것같았다.

감방안에서 나이는 어리지만 두령격으로 있는 차호은이라는 청년이 무척 그를 따랐다. 전쟁때 류랑고아로 인민군부대에 가서 보름넘게 공짜밥을 먹었다고 하는 차호은은 때없이 북쪽소식을 물으며 지난날에 사귀였던 인민군대아저씨들을 애틋하게 추억했고 똘마니들이 보내오는 음식들이 차입되면 맨먼저 성민이에게부터 대접했다. 왈짜깡패로 서울안은 물론 지방에까지 똘마니들을 거느리고있다는 차호은은 감방안에서도 《말보로》나 《켄트》만을 피웠다. 간수들도 그한테는 넙죽 엎드리는 자세였다. 비록 구속된 몸이라지만 이 《어둠의 아들》에게는 줄닿게 들어오는 돈과 간수나부랭이쯤은 그의 말 한마디에 북어토막처럼 두드려댈수 있는 주먹패들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 차호은은 알짜배기까막눈이였다. 웬만한 말은 영어와 일본말로 엮어대는 그가 조선글을 모른다는것이 놀라운 일이였다.

성민은 이 차호은을 돌려세우고 글을 배워주는데서 한가닥 살아갈 의의를 찾게 되였다.

성민은 9개월후에 대전감옥으로 이송되게 되였다. 그때 굉장한 송별연을 마련한 차호은은 성민을 일생 잊지 않겠노라고 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한데 성민은 이 차호은으로 하여 후날 고민도 하고 신세도 입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전형무소에 온 성민은 정치범들에게 차례지는 0.75의 독감방에 수감되였다. 여기서 제일 큰 고충으로 된것은 고독과의 싸움이였는데 통방과 옥내 산보시에 알게 된 정치범들과의 상면으로 그 고독은 인차 극복할수 있었다. 특히 여기서 오영기를 다시 만나게 된것과 성민이가 평양에서 온것을 알게 된 동지들로부터 북의 소식을 들려달라는 청탁을 받게 된것으로 구차스러운 목숨이라는 절망감에서 완전히 해방될수 있었던것이다.

견디기 어려운것은 숨막히는 독감방에서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는것이였고 여기서도 제일 어려운것이 배고픔을 극복하는것이였다. 일반잡범들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는 썩은 보리밥은 한입에 넣으면 다였고 고무신짝에 담아주는 짜디짠 국물은 허기진 창자를 비틀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었다. 이로 하여 성민은 꿈에서까지 음식을 보군 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면회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를 찾아오는 면회자는 하나도 없었다.

성민은 이것이 《극악빨갱이》들에 대한 징계조치라는것은 인정하면서도 원인은 이 하나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님이 영 잘못되였는가, (이런 면에서는 잘못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면 영 의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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