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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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의좋구 화목하구… 그랬다.
언제부터였던가. 멀리로는 《한일합방》직후부터, 가까이로는 1930년대초부터 가문의 조락과 붕괴가 시작되였고 제 뿔뿔이의 흩어짐이 생겼다.
누구는 생활고때문에, 누구는 사상때문에…
이렇게 볼 때 지응석은 어느쪽이라고 해야 할것인가.
지응석 역시 성민이네와 같은 량반지체의 족벌이였으나 일제의 《토지조사령》(토지수탈정책)때 대폭 땅을 떼운것으로 일찌기 빈농가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지응석이 도박쟁이로 된것도 실은 그때문에 생겨난 울화라고 해야 할것이다. 결국 그의 한생에서 가장 행복스러운 시절은 공화국품속에서의 5년간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품을 떠났다. 이에 대해 지응석은 《치안대》요, 물건짝이요, 원자탄바람이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그의 인간됨의 부족때문일것이였다.
그렇다면 태민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세종대왕의 충신이였다는 중시조 할아버지의 직계후손인 성민이네 집안은 지씨가문중에서도 제일 지체가 높고 잘사는 집안이였다. 일제의 《토지조사령》때 성민이네도 적잖은 땅을 잃었으나 오랜 량반가문의 재력이 있어 경성땅에서는 여전히 손꼽히는 갑부집안이였다.
왜놈들한테 빼앗긴 땅마지기대신 경성과 청진일대의 령세선주들한테서 배들을 사 큰 어업주가 되였다.
그런데 아버지대부터 성민이네 집안은 이상한 집안이라는 평을 얻게 되였다. 동시에 경찰의 요시찰대상으로까지 되였다.
이상한 집안이라는 평은 아버지로 하여 얻게 된 호칭이였다. 로씨야의 대귀족이며 작가인 레브 똘스또이의 숭배자, 수제자로 알려진 아버지는 대대로 지켜지는 지주, 어업주로서의 법도를 어겼던것이다. 배군들과 농군들한테서 받게 될 돈과 소작료는 주면 받고 안 주면 쓱싹해 넘겨치웠으며 끼식이 떨어진 집에는 제집 쌀까지 퍼주군 했다. 이로 하여 아버지는 린근지주들의 미움과 배척을 받게 되였으니 이역시 요시찰대상이 된 원인이라 할수 있었다. 하지만 요시찰대상으로 된 근본원인은 아버지가 독립운동에 나선 사람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무작정 도와주었기때문이였다.
태민형도 마찬가지였다.
보천보전투소식이 전해져 온 경성땅이 물끓듯 술렁일 때 태민형은 학교까지 뚜꺼먹고 보천보를 다녀와서는 당장 백두산무장부대로 가 독립운동을 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그는 정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언제부터였던가.
경성에서 살던 성민이네가 중국 목단강으로 와서 산지 2년째 되는 어느날이였다.
그날 성민이네 집에서는 성민이의 목단강1중입학을 축하하여 다들 한자리에 모였었다.
신경(현재의 장춘)1중맞잡이의 목단강1중은 일본인들과 《만주국》관리자제들만을 대상하는 학교로서 조선사람인 경우에는 수재거나 뒤받침이 단단한 집안자식들만이 선볼수 있었다.
그런데 성민은 100점 만점의 기준에서 단연 1등인 99점의 최우수성적으로 입학했던것이다.
《네가 일본애들을 이긴것이 제일 기쁘다.》
태민형은 이런 말로 성민이를 춰주던 끝에 뜻밖에도 언젠가 말을 떼였다가 아버지로부터 퉁을 먹은 만주군관학교 입학문제를 또다시 끄집어냈다. 이때문에 축하연의 기분이 깨여졌다.
성민이 자리를 피하려 하자 아버지가 제지시켰다.
《너도 들어야겠다, 생각도 말하고… 이건 후날 네가 우리들의 처사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기를 바래서다.》
이 말을 하고난 아버지는 엄한 눈길로 태민을 보았다.
《그럼 그동안 연구도 많이 했을테니 말해보거라, 성민이도 잘 알아듣게. 무엇때문에 그놈의 학교엘 꼭 가야 하는가. 다른데도 아닌 왜놈졸병이 될 학교엘 말이다.》
얼굴이 뻘겋게 짓물려진 태민은 성민을 슬쩍 훔쳐보고는 찍어박듯 말했다.
《돈때문입니다.》
《돈타령은 그만해라.》
《아니, 말해야겠습니다. 그래 제가 그 학교 말고 어느 다른 대학엘 간다면 그 엄청난 학비를 대줄수 있습니까. 집안살림도 파죽이 된 판에… 하지만 그 학교엔 돈이 없어도 다닐수 있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헛기침을 깇었고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성민은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가 돈타령을 그만하라고 한것은 어머니의 속을 허비지 않기 위해서일것이였다.
목단강에 이사를 왔던 초기만 해도 성민이네 집안엔 퍼그나 많은 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던 돈이 2년 채 안되는 사이에 거의 다 없어졌고 수만평 전답도 줄어들었다. 그것은 려순감옥에 잡혀간 외삼촌때문이였다. 근 1년되게 끈 외삼촌의 재판놀음과 외삼촌과 련루된 사람들의 옥살이를 막기 위한 지출에 집안뿌리까지 흔들릴 지경이였다.
이때문에 어머니는 돈소리가 나올 때마다 늘 죄지은 상으로 기가 죽군 하였다.
태민형의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장질부사로 사망한 전처의 후실로 들어온 어머니에게서 태민은 배다른 아들인것으로 그를 무척 어려워했고 어려워하니만치 그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였다. 태민이가 바라는것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다 들어주었고 금이야 옥이야 태민이를 귀히 여겼다. 이때문인지 우뚝밸이 심한 태민이도 어머니한테만은 더없이 곰살스러웠다. 아버지한테는 가끔 엇서는 태도를 보이다가도 어머니가 몇마디 타이르면 군말없이 숙어들군 했다.
《그러니 네 결심은 박힌 말뚝이라는거냐?》
아버지가 이쯤한 비유를 쓸 때면 노성이 터져나올 때다. 하건만 태민은 꿋꿋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 집을 팔아서라도 학비를 댈테니 어느 대학이건 다른델 가거라.》
태민의 눈빛이 번쩍했다.
《안됩니다. 전 우리 집안이 가난뱅이로 되는건 싫습니다.》
《가난뱅인 싫다?!… 그래 가난뱅인 싫구 네 외삼촌까지 잡아간 왜놈의 졸병이 되는건 좋단 말이냐?》
《아버지, 너무 그렇게 숙보지 마십시오. 제가 그 학교엘 간다 해서 꼭 왜놈의 총대잡이가 된다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그전에 외삼촌도 말했지요. 로씨야의 붉은군대장교들속엔 짜리군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저도 그렇게 해보자는겁니다.》
《허― 우리 집안에서 룡이 나오는구나. 한데 넌 언제부터 붉은편이 됐니. 사회주의라면 아예 대갈받기질이더니.》
《전 사회주의가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아버님이 하던 말씀을 따르자는것이지요. 독립을 하자면 공산당이든 독립군이든 나라를 찾는 사람들을 따르고 도와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님, 저도 어른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것도 알구요.》
아버지는 억이 막혀 한숨을 지었다.
《얘, 거 말같잖은 소린 그만 해라. 그래 네가 그놈의 야마도 다마시학교에 가서 뭘 배운다는거냐. 그래 〈도쯔께끼〉, 〈찔럿〉, 〈쐇〉 하는 사람잡는 재주겠는데… 아서라, 똥통에 빠지면 구린내밖에 피우지 못한다.》
《아버지, 왜 그렇게만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알아야 한다고 왜놈을 이기려면 싸움법도 알아야 하잖겠습니까.
아버님이 걱정하는것도 그렇지요. 사람이 제 뜻과 결심만 굳건하면야 그깐 똥통인들 뭬랍니까.》
《허허. 여보, 임자 좀 말해보라구. 임자가 떠받드는 맏이란게 어떤 시라소닌가―》
아버지가 피발선 눈으로 어머니를 쏘아보자 어머니는 화들화들 떠는 손으로 태민의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겼다.
《태민아… 난 네가… 총을 잡는것두 무섭지만 그 총때문에 죽을가봐 겁이 나는구나.》
태민은 벙긋 웃었다.
《어머니, 그건 념려마십시오. 죽을 고빈 절대 피할테니까.》
그리고는 더없이 공경스러운 태도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전 잘만 되면 만주군관학교를 마치고 항일무장부대로 가자는겁니다. 조선의용군이든 항일유격대든…》
《네가?!― 그게 진정이냐?》
《제가 한입 가지고 두말 하겠습니까. 독립군의 리청천 같은이를 봐도 일본륙사까지 마치고 총부리를 돌리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렇게 하자는것입니다. 만약 제가 지금 한 말을 어기고 다른길을 걷는다면 제 입을, 제 손목을 잘라주십시오.》
그때로부터 4년후 서울에 갔던 태민이 경성에 있는 집으로 왔을 때 그 손목을 자르겠다는 말이 화제에 올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태민형과 술잔을 나눠 얼굴이 벌깃해진 아버지가 태민의 손목을 자른다고 식칼을 찾는 통에 벌어진 일이였다. 그때 고지식한 어머니는 그 칼을 감추느라 허겁지겁했고 그 모양이 우스워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껄 웃었다.
아, 그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하지만 순간에 모든것이 돌변하였다. 태민은 집에 온지 반년도 안되여 다시 남으로 떠나가버리고말았던것이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는… 성민이 태민형의 소식을 알게 된것은 추석을 며칠 앞둔 올해 가을이였다.
지방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그 기간 밀려쌓인 정세통신자료들을 보던중에 알게 되였다. 남조선군사쿠데타가 조작한 《5. 16군사혁명위원회》성원속에 형의 이름이 있었던것이다.
―지태민, 륙군소장 ×지구사령관, 42살… 출생지 함경북도 경성군…
그날 밤, 성민은 아버지의 유품을 마주하고 꼬바기 밤을 새웠다.
아버지의 유품이란 가문의 장손들에게만 넘겨지던 자개박이함이였다. 1951년 8월 경성시가에 대한 적의 대폭격이 있을 때 간신히 보존된 그 함에는 한때 영종왕의 어지며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감사문까지 있었다는데 아버지의 대에는 금옥패물들과 토지문서들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성민이가 이 함을 넘겨받았을 때는 그러루한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토지문서와 빚문서는 《똘스또이의 수제자》로 불리운 아버지가 해방전에 불태워버렸고 금옥패물과 돈들은 독립운동과 가업을 살리기 위한데서 죄다 없어지고말았다.
성민이가 이 함을 열어보기는 3년전에 돌아간 아버지로부터 선조들의 유품이니 잘 건사하라는 당부를 받았을 때가 처음이고 이번이 두번째였다.
《아들 지성민과 그 후손들에게, 1951년 8월 19일》
여러겹으로 접은 모조지를 꺼내 펼치자 가문의 시조로부터 성민이네 대의 항렬, 형제, 조카들의 생년월일, 출생지, 거주지, 직업과 직종까지 자상히 적혀있었다. 대대로 내려오던 족보책이 폭격통에 불타버린것을 아버지가 하루밤, 하루낮 기억을 더듬어 재현해놓은것이다.
그 족보란의 두사람 이름밑에는 검은색네모꼴테두리와 함께 푸른색밑줄이 진하게 쳐있었다.
두사람, 아버지는 태민형과 지응석으로 하여 떠나가는 시각까지 가슴아픈 소리를 많이 하였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하는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았다.
가문에서 삭제한다는 검은색네모꼴표식밑에 친 푸른색밑선은 그 희망을 의미하는것일것이다. 서예와 그림에 밝았던 아버지는 색갈의 의미를 놓고 제나름의 지론을 가지고계셨는데 푸른색은 희망이라고 했다.
성민이 부엌에 들어가 함을 통채로 들어쏟자 퇴색한 사진들과 함께 불에 그슬린 노트 두권이 떨어졌다. 성민이 군교육부시절에 쓰던 《당사》와 《맑스―레닌주의기본》이였다. 재더미로 변한 집터에서 아버지가 이 노트와 사진들을 찾아모을 때 성민은 린제계선에서 련대군중문화지도원으로 있었다.
안해의 고르로운 숨소리를 다시 확인한 다음 침착한 태도로 탄불구멍을 뚫러놓고 사진들을 한장한장 골라 두군데로 갈라놓았다.
그다음 크게 숨을 들이쉬고 그 한무지의 사진들을 갈기갈기 찢어 탄불우에 집어던졌다.
파르스름한 연기를 뿜으며 타드는 사진들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형에 대한 심판, 형과의 최종결별이고 절연이라고 자기를 합리화하였다.
잠시후에 한무지의 사진을 거의 다 찢고 불에 타는 모상들을 지켜보던 그는 제풀에 맥이 풀려 손을 내리뜨렸다.
《성민아, 사진이나 태워버린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니, 너 역시 나를 못 잊을것이고―》
쪼그라들며 타는 사진속의 태민은 셈평좋게 웃고있었다.
(그래,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은. 무서운 허위, 무서운 자기기만, 설사 이 모든것을 망각속에 지워버린다 해도 그라는 존재는 그대로 남아있을것이 아닌가.)
가까운 혈육의 시신을 묻으려다 그대로 붙안고 시진한 사람마냥 한동안 얼없이 굳어져있다가 찢으려다만 사진들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사진들을 따로 골라내였다.
태민이때문에 부모님들한테까지 죄스러운 일을 할번 했다는것으로 이마에 진땀이 내배였다.
―목단강1중입학을 기념하여― 라고 쓴 제명의 사진을 보자 눈물이 울컥 치솟았다.
부모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속에서 태민은 어머니의 어깨를 그러안고있었다.
어머니는 1951년때의 폭격에 돌아가셨다.
(태민형이 이 사실을 안다면…)
묵묵히 사진을 굽어보던 그는 함의 밑바닥에 붙어있는 옛날 종이에 시선이 미쳤다. 그전에도 이 함을 열어보았지만 그때에는 그저 바닥깔판종이라고 생각했다. 누렇게 색이 변하고 좀이 먹은 종이장 한모서리가 약간 들려있어 집어들었다.
숨이 꺽 막혀들었다.
한문으로 쓴 정자체의 글.
―수진제가 치국 평천하―
제몸을 바로 한 다음 집을 일떠세우고 나라를 위해야 한다는 뜻의 이 글은 그가 일곱살때 썼던것이였다. 그때 이 글을 놓고 향촌의 한다하는 어른들은 저마끔 성민을 칭찬했다.
모름지기 아버지가 이 글을 그냥 보관한것도 그 자랑때문일것이다.
태민형도 그랬다.
자기 방 웃담벽에 이 글을 걸어놓은 태민은 찾아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턱없이 신동이자랑을 하군 했다.
마음이 구슬퍼졌다. 잠시동안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마분지 접이안에 있는 아버지의 상장들을 꺼내보았다.
…
우 동무는 민주사상이 확고하고 후대교육사업에 모범이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
함경북도인민위원회
1954년 8월 31일
이런 상장은 여러개가 있었다. 내각에서 받은 표창장도 있었고 전쟁시기 시조국보위후원회 명의로 된 상장도 있었다.
한시절 지주였고 큰 어업주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바로 이 상장들로써 성민이와 후손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려고 했을것이다.
상장들을 정히 간종그려 함에 넣고난 성민은 아버지가 만든 족보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신을 묻은 날 밤에 이 족보책을 되살려놓는 일을 했다고 했다.
(무엇때문에?)
태민의 이름자밑에 덧줄로 푸른선을 친것을 보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파들었다.
1946년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와 얼마후에 있은 태민이와 옥영이의 결혼식에는 지응석이며 집안친척들 거의다가 모여들었다. 굉장한 잔치판이였다. 지응석이 과방을 보고 성민이 손님맞이를 했다. 온 얼굴이 달덩이처럼 된 어머니는 부엌과 신방을 부지런히 오고갔고.
그런데 결혼식이 끝난 이튿날 아침, 낯모를 사람들이 나타나 태민을 데려갔다. 그들이 하는 말로는 몇가지 알아볼 일이 있어 데려간다고 했으나 태민은 열흘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움쩍말고 기다려보자던 아버지가 태민이 도보안서로 옮겨간 사실을 알고 청진으로 떠났다.
성민은 물론 어머니까지 따라가려 하자 아버지는 엄하게 눌러 막았다.
《일본군 똥별을 달았던 녀석이 뭣이 그리 중해서 그래.》
하지만 떠날 때의 아버지는 근심가득한 얼굴이였고 역에서 헤여질 때는 서글픈 얼굴이였다.
그런데 그 이틀만에 다시 나타난 아버지는 범잡은 포수마냥 기세충천한 모습이였다. 아버지의 뒤로는 얼굴이 헐끔해진 태민이 비주룩이 웃으며 따랐고.
아버지는 항일빨찌산 간부를 만났고 태민은 그로 하여 풀려나오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 항일빨찌산 간부로부터 지난일은 생각지 말고 새 조선건국에 힘써달라는 부탁과 고무의 말까지 들었다는 태민의 반응은 너무나도 랭담했다.
《그 사람 말로는 좋은 세상이 올것 같다만… 세월이란게 뜻대로 되니?》
이러루한 말을 심드렁하게 내뱉은 뒤부터 태민은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진종일 집에 꾹 박혀있었다. 그대신 늘 어머니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기밸도 함께 따고 남새다듬도 같이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 애썼다.
그런 어느날 새벽, 성민이 잠을 깨고보니 어머니가 울고있었고 아버지는 담배만 뻑뻑 빨고있었다.
구겨진 종이장이 방바닥에 나딩굴고있었다.
《태민이와 옥영인… 우릴 버렸다.》
아버지의 음침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 종이장을 집어보았다.
―아버님, 아무리 생각해봐야 전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 어쩔수없이 이 길을 택하게 됩니다.
어느곳에 가든 아버님께 죄될 일을 하지 않을테니 떠나가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버님도 대세를 봐가며 근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민이를 군민청에서 쓰자고 한다는데 잘 봐가며 조처해주십시오.… 마음착한 어머님이 저때문에 상심하실 일이 제일 괴롭습니다. 성민이한테도 미안하고…
못다한 자식구실, 천만근 짐을 안고 떠납니다.
부디 귀체 무강하시기를 빕니다.―
긴세월… 태민의 비탈진 운명은 이미 그때 결정된셈이다.
(나? 나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았는가?)
성민은 태민이 떠나가게 된 심리적바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막지 못했다. 마음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를 납득시켜 막을 힘도 수완도 론리도 부족했기때문이였다.
《뭘 하고계셔요.》
나지막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순정이 문지방에 서있었다. 오래도록 성민을 지켜본듯싶었다.
《왜 벌써 일어났소?》
《오늘은 일찍 나가려고 해요. 한데 이건 무슨 애들 장난이예요.》
순정은 바닥에 널려진 사진들과 타버린 사진쪼각들을 놀랍게 보았다.
《당신말대로 애들 장난이지.》
《어휴, 언제면 어른이 되실가.》
순정은 바닥에 널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주어모으다가 반쯤 찢겨진 사진 한장을 들어보이며 방긋 웃어보였다.
《이 처녀가 려아라고 했지요?》
《그렇소.》
성민은 그의 눈길을 외면하였다. 저녁늦게까지 태민의 문제로 함께 놀라고 상심하며 이야기를 나누던중에 려아에 대해서도 말이 있었다.
《이젠 들어가 좀 쉬세요.》
사진들을 함에 넣고난 순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흔연한 태도로 성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당신 거기 좀 앉소.》
성민이 어떻게 말했는지 순정이의 낯빛이 달라지며 불안한 눈길로 되였다.
성민은 길게 숨을 들이긋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형님한테 가봐야 할것 같소.》
《간다는건요?》
성민은 그의 커다란 눈이 엄하게 변하는것을 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서 결판을 내자는거요.》
《총을 가지고 가야겠군요.》
순정은 비웃듯 말했다. 먼 옛날 성민이를 질책할 때와 같은 표정이였다.
《총이야 무슨 필요가 있겠소. 이렇게 손을 잡자는거요, 그전날 당신이 이 보잘것 없는 나를 받아들였듯이.》
목구멍이 꺽― 막히였다. 순정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실없는 얘긴 그만두자요. 어서 쉬세요.》
《아니, 내 정신은 맑소.》
성민은 순정의 손을 더 힘껏 틀어잡았다.
그리고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지금처럼 살면 행복할것 같소? 늘 그때문에 고민을 하고 밤잠을 못 자고… 아이들한텐 또 그 잘난 형님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 되오.
비록 늦긴 했지만 난… 그를 단념할순 없소. 엉, 안 그렇소?》
《진정해요.》 순정의 따스한 손길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나직이 숨을 내뿜으며 올차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예요. 하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생각해봤어요?》
…
잘못인가, 옳은것인가.
성민은 지응석앞에서도 안해와 나눈 말들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되였다.
오해와 편견을 가시고 화목과 통일을! 이것이 성민의 목표자 걸음길이였다.
《아주바이!》
성민은 거뭇한 얼굴의 지응석에게 밝은 얼굴로 말을 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