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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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담배나 나눠피우고 헤여집시다.》 윌은 문쪽을 보며 담배갑을 내밀었다.
성민은 담배는 피우지 않았으나 받아들었다.
그동안 윌도 퍼그나 수척해졌다. 성민이 거짓말탐지기에 비끄러매웠다가 풀려날 때마다 땀투성이가 된것처럼 윌도 매번 땀투성이가 되여 헐떡이군 했다.
《이제 당신은 남조선군 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우리로서 당신에 대한 좋은 의견을 한마디도 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이제 와서 무슨 그런 말이 더 필요합니까?》
성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동안 어떠한 위협과 꾀임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살았으며 정신병자도 자살미수자도 되지 않은것이야말로 승리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사는가 마는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동안 서로의 얼굴색을 살피며 무료히 담배를 피울 때 엔트로우가 들어섰다.
윌은 기다린듯 했다. 하지만 재빨리 일어서는 그의 눈에서는 심술궂은 적의가 엿보였다.
《오래간만입니다.》
엔트로우는 날카롭게 성민을 스쳐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흥분이란 전혀 모를것 같던 창백한 얼굴에 알릴락말락한 홍조가 비껴있고 눈빛은 어두웠다. 윌과 시선이 맞부딪쳤을 때는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엔트로우는 번대머리가 나타났던 뒤부터는 심문장에 거의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들어와서는 랭철한 방관자의 자세로 지켜봤을뿐이다.
그런 속에서 성민은 번대와 윌이 엔트로우와는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았다.
《난 당신을 위해 오늘 하루를 얻어냈습니다.》
엔트로우는 무엇때문인지 윌과 통역을 밖으로 내보냈다.
쌍지팽이― 진영팔이라는 사람도 이자의 오그랑수에 걸려들어 뭔가 털어놓았고 그 수치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다.
성민은 잔뜩 긴장되였다.
《그 말은 어떻게 리해해야 합니까?》
《뭐 복잡하게 생각할것은 없습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한것이지요.》
《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과 나와는 차이가 있지요.》
엔트로우는 얼핏 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외삼촌은 일정때 반일투사로서 려순감옥에 갇혔지요.》
《네, 거기서 사망되였습니다.》
《좋은 유전입니다. 당신은 투사로 죽게 됩니다.》
《유전학전공입니까?》
《아니, 난 종교철학연구가 전공이였습니다. 교파로 말하면 감리교계통이고.》
《그래서 나에 대해 왼심을 씁니까?》
말을 비틀어보았다.
《정 아니라곤 할수 없겠지요. 먼저 묻고싶은것은 당신은 원래부터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해 그렇게 나삐 생각했습니까?》
《아니요. 정확히 말한다면 45년 9월부터지요. 미국이야 드라이저, 마크 트웬을 낳은 나라가 아닙니까.》
《혹시 당신은―》 엔트로우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한 미국선교사가 일제강점하에 신음하는 이 나라 인민들을 생각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습니까?》
《그런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식민지재분할의 척후병으로 온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지요.》
《그렇다 합시다. 그 척후병중엔 나의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그랬댔구나.)
성민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곧추 그를 쏴보았다. 엔트로우는 여전히 제 생각에만 옴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나로서는 물론 아버지가 어떻게 왔고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 다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신앙과 량심에 충실했다는것만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가요. 한데 이런 이야기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필요하지요. 나로서는 당신의 오해를 풀자는것이고… 사실 나는 10대 소년시절부터 이 나라와 이 나라 인민에 대해 무척 가까운 감정을 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내에서 이 나라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 안다 해도 아프리카의 어느 한 준민족 비슷한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만은 고맙게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이 나라 사람들이 매우 슬기롭고 영민한 민족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내가 여기에 온것은 바로 그때문인것이고―》
《그러니 자원해왔다 그 말이군요.》
《옳습니다.》
《그럼 여기 온 목적은 무엇이였습니까. 우선 국익을 위해서라고 해야겠지요, 강점군의 척후로서. 그 척후가 오늘은 형리로 변했고…》
《너무한데요.》
《너무하다― 그래 당신이 와서 한짓이 무엇입니까. 졸개를 얻기 위해 집을 얻어주고 국익을 위해 통일인사들과 애국자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당신은 내가 고문하는것을 봤습니까?》
《그러니 매는 안 들었다 그 말이군요.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하는짓은 고문이 아닙니까. 당신이 이걸 모른다면 천하의 백치거나 사기군입니다.》
《어떻게 이 담화가 고문으로 됩니까?》
엔트로우의 볼살이 가늘게 떨렸다. 성민은 통쾌했다.
《그래 피심자를 놓고 희롱하는것이 고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고문중에도 제일 심한 고문은 인간을 놓고 거짓을 꾸미며 유희를 하는것입니다.》
《유희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또 하나 물읍시다. 려운형선생은 누가 죽였소. 내 알기에 당신은 려운형선생과 무척 가까웠다고 하던데. 물론 그를 쏜 당사자가 당신은 아닐테지요. 하지만 그분은 바로 당신들때문에 죽은것이 아닙니까. 그래 이것도 부인하겠소? 또 하나, 전쟁때 당신은 무엇을 했소?》
《전쟁때 나는 보통문관이였소. 그리고 려운형선생에 대해 말한다면 나나 많은 우리 사람들이 애석함과 비분을 금치 못했다는 그것이요. 전쟁도 마찬가지요. 당신은 그 전쟁을 놓고 나와 미국전체를 저주하는것 같은데 전쟁은 맥아더장군이나 트루맨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것이요.》
《허허, 당신은 천국으로 갈 준비를 다 갖췄군. 편안히 영면할수 있겠소―》
엔트로우의 볼살이 또 한번 경련하듯 떨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웃음을 보였다. 살기도 증오도 없는, 안개발같이 희미하고 멋적은 웃음을.
시계를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난 당신앞에서 자기 직무를 배반하고있소, 당신을 살리기 위해.
이건 당신의 형님과 옥영부인앞에서 한 약속을 리행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나의 권한이란 극히 제한된것이요. 때문에 여기서는 당신의 노력과 방조가 필요되오.》
《고맙긴 하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지 않소.》
《지금은 그럴 때가 못되오. 이런 면에서 난 당신이 보다 깊이 숙고할것을 바랍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당신은 이전의 진술서 말고도 이곳에 와서 한 몇가지 말만으로도 총살형이요.
지조와 신념에는 관계치 않겠소. 그러되 이 나라 법에 응하겠다는 대답쯤은 해야 되오.》
《그러니 당신은 나에게… 외적으로라도 변절하라 그 소리겠구만.》
《변절?!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못됩니다. 우선 살고 그다음 지장군이랑 도우면 당신은 자기의 뛰여난 지식과 언변을 훌륭히 써먹을수 있지 않겠소.
지금 이 나라의 추세는 민주화로의 지향입니다. 이렇게 볼 때 당신은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큰 몫을 할수 있지요. 실례로 사설변호사협회의 변호사로 되여 통일운동에 나선 동지들을 도와줄수 있지 않소.》
《그럼 한가지 더 물읍시다. 만약 내가 당신의 요구대로 하고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나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당신네가 주관하는 이 땅의 법은 나를 어떻게 할것 같습니까?》
《래일은 래일의 태양이 솟는다. 이건 우리 나라의 유명한 녀류작가 미첼의 말입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응해줄수 없겠소?》
《친절을 보여주어 감사하오.》
성민은 례절있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엔트로우는 낯이 파랗게 질려 입술을 사려물었다.
방으로 돌아온 성민은 30분도 안되여 다시 불리워나갔다. 이번에는 심문실이 아니라 건물밖이였다. 마침 저녁산보시간이라 수인행렬이 마당둘레를 돌고있는데 물매미같이 매끈한 승용차곁에 윌과 엔트로우가 서있었다.
윌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였고 랭담한 기색의 엔트로우의 얼굴은 어두워있었다.
《생각해봤습니까?》
엔트로우는 이 물음을 던지고는 차에 올랐고 모든 수인들의 눈길이 성민이에게 쏠린것을 알아본 윌은 사뭇 친절한 태도로 성민의 팔굽을 잡으며 차에 오르게 했다.
성민은 《시간이 없다.》고 하던 엔트로우의 말을 상기하며 수인모두를 향해 머리숙여 절을 했다.
수인대렬은 그동안 퍼그나 줄어들었다.
여섯사람은 어데론가 실려갔고 세사람은 죽었다. 한사람은 병으로, 두사람은 자살했다. 평북도억양도 자살했다. 그는 개가 될 말을 할것같아 자살했고 또 한사람은 개가 된것이 알려지자 나무저가락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고 했다. 오영기는 감옥으로 갔고.
한시간 채 안되여 도착한 곳은 《아리랑》이라는 간판이 걸린 단층집이였다.
미리 와있던 한 사복쟁이 미군(성민은 그가 3명의 카츄사병들을 일격에 쓰러눕히던 격술선수임을 알아보았다.)의 안내밑에 들어선 방에는 큰 원탁이 놓여있고 거기에는 해삼탕으로부터 문어회며 물고기구이, 그밖의 조선료리들이 가득 차려져있었다.
《앉으십시오.》 윌의 눈짓을 받은 조선인통역이 흰 카바를 씌운 걸상에 성민이를 앉혔다.
《엔트로우씨께서 송별연을 마련하신것입니다.》
그 말에 엔트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윌도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다면…》 성민은 엔트로우를 보며 말했다.
《우리 동지들도 다 청해야 인사가 아니겠소.》 어릴적의 고즈나끼와 망둥어를 생각했다. 그때의 그자들도 자기에게만은 특전을 보였다.
《먹기 싫다면 그만두지. 한데 이런 좌석은 당신만 아니라 우리와 헤여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거요.》 윌이 거드름스럽게 말했다.
조용히 문이 열리며 2명의 처녀들이 들어섰다. 요란스럽게 화장을 한데다가 신다리까지 환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차림이였다.
윌의 눈짓을 받은 한 처녀가 성민의 앞잔에 먼저 술을 부었다.
《자, 어서 듭시다.》
술잔을 쳐든 윌이 자못 친절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난 먹지 않겠다고 했소.》
《할수 없군.…》
윌은 입안의 소리로 두덜거리고는 술을 들이켰다. 엔트로우는 술잔에 조금 입을 대였다가 떼고는 갓김치를 집어들었다. 한쪼각두쪼각, 윌도 지지 않을세라 갓김치에 달라붙었다. 햄쪼각을 얌전스레 씹던 조선인통역이 성민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선생, 좀 드시지요.》
입술에 기름기가 번질거렸다.
성민은 위장이 비틀렸다. 배에서 울리던 꼬르륵소리가 더 커지고 눈앞이 어질거리며 진땀이 났다. 각재와 몽둥이의 휘파람, 물고문, 전기고문… 아득한 옛적의 모래불로 달려갔다. 지지는듯 한 해볕, 가죽혁띠를 쳐든 영길, 《아프지》, 《참으라》…
뭉클한것이 어깨에 닿았다. 정신을 차리며 팔굽으로 그것을 뿌리치자 《아이》하는 실낱같은 비명이 울렸다. 눈이 올롱해진 처녀가 유방대를 춰올리고있었다.
엔트로우는 못 보는척 했고 윌은 미간을 찌프렸다.
《지선생은 우자입니다. 아, 오늘같은 기회를 놓치다니요. 그래도 하루밤은 인간다운 생활을 즐길수 있었는데―》
다들 거나하게 취해 밖으로 나올 때 조선인통역은 애달픈 어조로 성민이에게 중얼거렸다. 성민은 방안 한쪽에 쌓여진 깨끗한 이불들과 자기를 그러안았던 처녀를 생각하며 쓰거운 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이 가자는데로 가니 502부대의 심문실과 신통히도 같은 방이였다. 그 방에는 번대머리가 한발 앞서 와있었다.
《식사를 안했소?》
번대는 피로한 눈길로 성민에게 묻고는 엄한 기색으로 엔트로우와 윌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성민은 그의 손에서 상아물주리가 뱅글뱅글 돌아가는것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최종심문이라고 판단하였다.
《커피를 좋아한다지요.》
《네, 그닥 나쁘지 않더군요.》
심문에 림할 때의 커피는 그에게서 적잖은 방조로 되였다. 흐릿한 머리를 맑게 할수 있는 음료였기때문이였다.
《드시오.》
번대머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윌이 은제주전자에서 커피를 부어 성민이에게 권했다.
《혼자 들기는 멋적군요.》
《아, 그럼.》
번대의 고개짓에 따라 그자의 앞에 있는 금테두리고뿌에도 커피가 부어졌다. 번대머리는 고뿌전에 조금 입술을 대였다가 떼였다.
《난 이걸 즐기지 않소.》
《하긴 커피를 많이 하면 몸엔 그닥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커피는 여느때보다 더 달았다. 사탕을 많이 넣은것 같았다.
《당신은 인격자요.》
《감사합니다.》
순간 머리가 뗑해졌다. 다음 눈앞이 핑 돌아갔다.
(속았구나.)
방안이 빙 돌아가며 구역질이 일었다. 커피에 약이 들어있음을 알았다.
번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묵묵히 지켜보다가 상아물주리로 성민의 턱을 추켜들었다. 성민은 저항을 시도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아편인가.)
온몸이 천길나락속으로 떨어지는듯 하고 모두의 형체가 하나의 그림자로 가물가물해졌다. 개로 되여 자살한 사람의 유서가 떠올랐다.
《동지들, 나처럼 되지 마시오.》라고 쓴 유서였다.
붕―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기가 거짓말탐지기에 비끄러매인것을 알았다. 타자기건반같은것을 매만지던 번대머리가 조용히 물었다.
《머리가 맑아집니까?》
건반우에 놓인 손이 사마귀다리처럼 움직이자 진짜 머리가 맑아지고 부옇게 보이던 물체들도 원상대로 보였다.
《어떻습니까?》
《…》
《그럼 내가 하는 말을 반복하시오.》
번대는 안과의처럼 성민의 눈을 주의깊게 보다가 말했다.
《나는 조선로동당의―》 국어강독때의 발음처럼 토막토막 끊어하는 말이였다.
성민은 원반형테프의 회전만을 지켜보았다.
《왜 입을 비끄러매고있소?》
번대의 눈이 사납게 번쩍였다.
《나는 당신의 학생이 아니요.》
《그렇다?!》
번대의 말이 떨어짐과 함께 심한 쇼크가 일었다. 지금까지의 탐지기심문때보다 더한 아픔이 왔다. 온몸과 뇌수를 불칼로 쑤시는것 같았다.
《응하겠는가, 안하겠는가?》
성민은 더 참기 어려웠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나는 조선로동당의―》
《좋소, 좋아. 그래야지.》
번대머리는 시죽이 웃고 《강독》을 계속했다.
《나는 조선로동당의 한 괴수로부터 지장군을 흡수하여 내란을 일으키라는 과업을 받고… 반복하시오.》
성민은 이 놀음의 위험에 몸서리쳤다. 의지력의 한계를 생각하며 《아니요!》라고 소리높이 웨쳤다.
《흥, 당신한텐 〈아니요〉가 전부군.》
불칼의 세기는 더 커졌다. 온몸의 신경이 요동을 쳤다. 성민은 《아니요.》를 반복했다. 의식이 마비되여도 《아니요.》의 발음만은 남아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걸.》
상아물주리에서 파아란 연기가 고불고불 피여올랐다. 그와 함께 아픔도 사라졌다. 그대신 방안의 물체들이 다시 휘돌아갔다. 의식도 사고도 죄다 마비되는듯 했다.
번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지금대로 한다면 영원한 페인이 되오. 지금의 고통을 안고 백치로 산다 이 말이요. 그럼 또 한번 기회를 주지.》
번대의 손이 다시 건반에 가닿았다.
《나는 이곳 지하조직책임자였던 오영기와 함께 미군과 카츄사병들을 때려눕힌 다음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반성한다. 따라서 나는 오영기와 그 조직성원들을 알려주겠다.》
붕― 소리가 더 높아짐과 함께 몸이 공중 뜨는것 같았다.
《다시 말한다. 나는 지하조직책임자인 오영기와―》
말소리만은 명료히 들렸다. 흐려지는 의식과 싸웠다.
《옳다. 너희들과는 끝까지… 이겨낼것이다.》
《좋다, 그럼 이 말을 해라. 나는 남한정복과 공산체제확립을 위한 장기잠복과 그를 위한 임무를 받았는바―》
말소리는 여전히 명료했으나 사고는 마비된듯싶었다.
성민은 자기의 혀가 그의 말을 고스란히 옮겨놓는듯 한 환각이 일었다.
(힘, 힘인데―)
성민은 만신의 힘을 다하여 책상을 들이받았다.
《갓뎀!》
이것이 그가 들은 마지막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