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
《이젠 대답이 준비되였습니까?》
엔트로우는 전날보다 더 상냥한 태도로 물었다.
《어떤걸 알자는겁니까?》
성민은 그의 중을 떠보고싶었다.
엔트로우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그늘이 스쳐지났다.
《말하지 않았던가요. 좋기는 이북의 대미, 대남전략과 전술, 당, 국가정책으로부터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전반실상과 자료들, 여기서는 한계를 긋지 않겠습니다. 기억되는껏 다 말하시오.》
성민은 지난밤에 준비한 대답을 되새겨보며 허심하게 말했다.
《나는 당원이고 예비역중좌요. 하니만치 당, 국가, 군사비밀을 말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이 말에 엔트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리알같은 눈길로 성민을 보았다.
《당신은 저 기구를 사용하든가 아니면 들개처럼 쏴줄걸 바라는것이 아닙니까?》
《그걸 바랄 사람이 어데 있겠소.》
《그럼 솔직히 말해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엔트로우의 눈에는 가시같은 빛이 뿜겼고 윌은 입술을 감빨았다.
《그럼 말합시다.》
성민은 크게 숨을 들이긋고 말했다.
《당신들한테 있을수 있다고 보는데 올해의 조선중앙방송자료를 종합해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만족이겠지요.》
《야!》
조선인통역이 벌떡 일어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엔트로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켰다.
《그이상 더 말할것이 없습니까?》
《당신의 례절을 생각해서 한가지만 더 말하지요.》
성민은 이자들앞에서 마지막대답으로 그리고 심문의 종결로 끝날 말을 생각했다.
《나는 우리 당의 대미전략이라고 할가, 정책상문제를 알리자고 합니다.》
그는 엔트로우의 눈이 깜빡이는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당신들이 하루빨리 제집으로 돌아가라는것과 그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것이라는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나가야만 이 땅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기때문입니다.》
《당신은 계속 이런 식 설교를 하겠습니까?》
엔트로우는 애써 침착한 자세를 보이는데 윌은 그와 성민을 표독스럽게 보다가 훌쩍 일어나 밖으로 사라졌다.
《나한테도 인내력은 제한되여있습니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민의 싸늘한 대답에 엔트로우는 낯이 파랗게 질리며 까딱않고 마주 쏴보았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윌과 함께 노릿한 털이 얼굴 한가득 덮인 번대머리가 들어섰다.
흉맹한 독수리의 상이였다. 맵짜고 예리한 눈길이 성민에게 멎었다. 엔트로우는 윌을 차겁게 스쳐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번대는 말없이 벽가의 걸상에 앉았다. 윌은 깨고소한 눈길로 엔트로우를 일별하고 성민을 쏴보았다.
《계속할가요?》
성민은 엔트로우에게 물었다.
《하시오.》
신경질적인 답변이였다.
성민은 번대머리의 흉맹한 눈길을 즐기듯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들과의 투쟁에 대해서 말했지요. 남의 집에 와서 삿대질을 하고 불까지 지르는 강도는 우리에게 적입니다. 이로부터 우리에겐 반미가 우선시되는것이고 그에 따른 반미로선이 나온것입니다.》
《까뗌!》
번대머리의 노성이 방안을 들었다놓았다. 뒤이어 2명의 카츄사병이 달려들어왔다.
다음날 성민은 거짓말탐지기에 비끄러매웠다.
엔트로우는 보이지 않고 번대머리의 지휘밑에 윌과 미군군조가 성민이에게 달라붙었다. 빤쯔 하나만을 남기고 옷을 벗긴 다음 문어다리의 흡반같은것을 가슴팍과 팔다리에 붙였다.
성민은 언젠가 해보았던 심전도검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고 했다. 지난밤 오영기와의 통방에서 (성민은 그가 말한 《반대》를 생각던끝에 모르스부호를 반대로 쳤는데 그것이 성공하였다.) 이 거짓말탐지기에 대하여서도 어느정도 알게 되였다.
질문에는 계속 응답하라, 침묵을 지키면 심한 전기적자극이 온다,
의식이 흐려질 때면 오직 한가지 생각만을 하면서 그 생각만을 말하라, 명심할것은 의식이 흐려지는 경우 묻는대로 대답할수 있는데 이때를 조심하라. 영기의 말을 요약하면 이것이 전부였다.
붕― 전기투입소리가 요란했다.
탐지기의 거밋한 형광판이 회백색으로 변하더니 푸릿한 흰선들이 나타났다.
번대머리가 질문했다. 전날에 하던 윌의 질문을 되풀이하는것이였다. 푸릿한 선들이 뜀박질을 할 때마다 가벼운 전기적자극이 왔다.
《비교적 솔직하다고 보오.》
번대머리는 뜻밖의 말을 하며 싸늘히 웃었다.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이 모든 말을 준비했고 또 지금도 이런저런 타산을 하며 말하지요?》
《그렇소.》
《그럼 누가 당신에게 이런 준비를 시켰소?》
오영기가 떠올랐다.
《그런 사람은 없소.》
순간 형광판의 푸릿한 선이 파곡선을 이룸과 함께 온몸이 훌쩍 뛰였다.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보시오.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있소.》
번대머리는 의미있게 윌과 눈길을 마주치고는 계속해 물었다.
《당신은 이곳에 와서 내란을 꾀하려 했지요?》
《아니요.》
《당신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가.》
《그건 사실이요.》
《그렇다면 로동당원으로서 응당 투쟁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소. 나는 죽더라도 당신들을 쫓아보낼 결심이요.》
아픔이 덜어졌다.
놀랍게도 번대머리는 흡족한 기색이였다. 여유작작한 태도로 물었다.
《당신은 왜 지장군을 공작대상으로 삼았소?》
《친척이니 친척으로 온것이요.》
《왜 공작대상으로 삼았는가?》
《친척이니―》
《지장군이 북에 간것은 무슨 목적이였소?》
《집이 그곳이요.》
《거기선 체포하지 않았는가?》
《체포가 아니라 친일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소.》
아픔이 더 심해졌다. 번대머리의 눈알은 바다속 물고기눈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일본군장교로서 응당 처형되여야 하지 않는가.》
《처형받을 행위가 없다는것이 확인되였소.》
《지장군은 북에서 무슨 과업을 받았는가?》
《없소.》
《지금 북조선의 강철생산량은 얼마인가?》
성민은 공포를 느꼈다. 놀랍게도 그 세부적수자들까지 명료히 떠올랐기때문이였다.
붕― 하는 전류소리가 높아지며 전기고문때보다 더한 아픔이 미쳐왔다. 온몸과 뇌수가 파렬되는듯 했다.
성민은 이 아픔이 탐지기의 자체동작때문에가 아니라 번대의 손짓에 따라 고문기구로 변한것까지는 알수 없었다.
무수한 불꽃같은것이 서물거리다가 사라졌다.
의식을 잃었던것이다.
처음에는 천정이 그다음엔 불깃한 전등이 눈에 안겨들었다. 번대는 보이지 않고 윌과 조선인통역만이 있었다.
(이겨냈구나.)
성민은 기뻤다. 하지만 벽가의 시계를 보게 되자 흠칫 놀라게 되였다. 시침은 4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탐지기에 비끄러매인 때는 10시 아니면 11시경이였을것이다. 그러니 그동안은 내내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자기가 뭔가 헛소리라도 개가 될 말을 할수 있었다는 생각이 번개치듯 했다.
다행히 윌과 통역의 기색을 봐서는 별일없은것 같았다. 다들 삶은 시라지꼴이였다.
《여기에 이름을 쓰오.》
성민이 깨여난것을 본 통역이 한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장에는 영문과 조선문으로 된 글이 적혀있었다.
― 본인에 대한 심문에서는 어떠한 물리적폭력과 협박, 공갈, 강제가 없었음을 확인함―
이날부터 계속된 심문은 넉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