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시가를 벗어난 차는 밋밋한 등성이들이 물결쳐간 연갈색들판을 꿰질러 달렸다.

성민은 주린듯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 삶이란 얼마나 좋은것이냐. 순간이나마 모든것을 잊고싶었다.

영등포→ 4km. 얼핏 스쳐지나는 리정표를 본 순간 성민은 목이 울컥 메여올랐다.

11년전 성민은 이 어데선가 밥을 지어먹었다. 전선사령부로 찾아가는 협주단군인들과 함께 노래도 불렀고 서울에서 혹시 만날듯싶은 태민이며 옥영이를 그려보며 끝없는 즐거움에 취했었다.

《전번에 갔던 치들은 굉장한 대접을 받았대여. 칠면조구이랑, 거기에 양주까지 받쳐.》

기생방이야기로 분주스럽던 장교들의 화제가 바뀌여졌다.

《건 임자 회를 동하게 하자는 수작이여.》

《안, 정말이래. 세종로계집대감 있잖아. 그치 영어 오케이에 써비스왕초라 살살 구슬려 한상 차리게 했다는거야.》

《그럼 이번엔 임자가 한번 솜씨를 보여봐.》

차가 미군전용표식의 석비레길로 들어서자 뻐꾸기소리같은 입담들도 끊어졌다. 잠시후 차는 고압전류표식과 해골바가지표식이 붙은 철조망앞의 정문보초소앞에서 멈춰섰다. 구내의 건물들은 죄다 보관용짐함 비슷한 철재건물이였고 그 부지를 감싸고 돌아간 철조망밑으로는 말같은 군견들이 어슬렁거렸다.

미군보초의 검열을 마친 차가 한 철재건물앞에 이르자 2명의 사복쟁이가 마중하였다. 암팡진 몸매에 오지독같은 얼굴의 사복쟁이는 《트기》(백인과 흑인의 혼혈) 같았고 기름한 얼굴이 유난스레 창백한 사복쟁이는 전형적인 유럽형의 늘씬한 사나이였다. 한데 이 유럽형앞에서는 《국군》장교들은 물론 오지독도 설설 기는 태도였는데 이상스럽게도 성민을 여겨볼 때의 그자의 눈에서는 이름못할 호기심과 미묘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세발 달린 사진기앞에서 사진을 찍히고 강제리발을 당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한쪽아래기장이 절반이나 잘라져나간 퍼릿한 미군작업복이였다. 머리 한쪽이 이상스러워 매만져보니 머리 역시 한쪽만 깎여있었다. 이에 대해 리발기계를 쥔 카츄사병에게 한마디 내쏘자 그는 벙어리시늉으로 싱글싱글 웃고 유럽형도 역시 싱그레 웃었는데 뭘 그러느냐 하는 식으로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나가버렸다.

그다음 끌려간 곳은 두사람이 있기에는 좀 작고 한사람이 갇혀있기에는 좀 넓어보이는 방이였다. 복도와 접한 벽에 철문이 있고 철문 복판에 여닫기식 감시구가 있는데 세면 벽은 콩크리트벽이고 바깥벽으로 짐작되는 쪽은 철판이였다.

오지독이 지켜보는 속에 이곳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들었다. 주의사항이란 죄인으로서 지켜야 할 준칙이였다.

《이곳 질서를 잘 지키면 담배도 주고 산보도 시키오.》

이 말을 할 때 철문쪽벽에 붙어있는 일과표를 가리켜보였다. 조선어와 영어로 된 일과표였다.

오지독과 카츄사병이 물러간 뒤 성민은 그 일과표의 산보시간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자기로도 무슨 기운으로 일어섰는지 몰랐다.

인왕산머리의 아침해를 보고 시원스런 바깥공기를 마신 때부터 생겨난 변화라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삶에 대한 애착에 지고마는것이 아닌가.

벽들은 철판벽까지 죄다 흰 뼁끼칠로 되여있는데 벽의 아래단들만은 퍼런 뼁끼칠로 매닥질되여있었다. 수인의 정신력과 신경을 쇠멸시키는데는 흰색이 좋은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푸른색을 칠하였겠는가. 희망, 마음의 안정?…

물끄러미 벽을 더듬어보던 그는 흠칫하며 무릎걸음을 했다. 벽의 아래단에 패인 홈자리들을 쓸어보고 만져보고 하다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 공화국 만세! ×8년 9월 ×일―

―나는 영수, 변× 안했다―

한곳에는 공화국기발표식까지 새겨있었다. 이전 거주자들의 웨침과 호흡이 생생히 미쳐오는 발견이였다.

그런데 그들은 어데로 갔는가.

점심밥을 날라온 카츄사병은 묵상하는 자세로 앉아있는 성민을 자못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데요?》 열에 뜬듯 한 눈길로 쏴보는 성민의 돌연적인 물음에 카츄사병은 그러면 그렇겠지 하는 식으로 비죽이 웃었다.

《좋은뎁지요.》 들고온 목곽밥과 국그릇을 가리켜보였다. 뿌잇한 국물우에는 칠면조대가리의 주둥이가 삐죽이 솟구쳐있었다.

유혹이건 굴욕이건 먹기로 마음먹었다. 부실부실한 안남미밥을 수지국그릇에 털어놓고 통채로 목구멍에 들이부을 때 칠면조대가리가 걸려들었다.

뽑아보니 희멀끔한 눈과 반드르르한 털들이 착 달라붙어있었다. 왈칵 구역질이 일었다.

《그게 몸에 좋습지요. 여러가지 광물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으니… 헤헤…》

카츄사병이 떠나간 다음 성민은 그 칠면조주둥이의 도움으로 틈자리의 뼁끼를 긁어내는 고고학작업을 계속하려 했으나 할수 없었다. 밥을 날라왔던 카츄사병과 일본씨름군같은 체격의 미군군조가 나타나 그를 일궈세웠다.

검회색창가림이 드리운 방에서 오지독과 조선인통역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감상이 어떻습니까?》

오지독은 자못 친절을 보이며 (조선인통역이 그의 말을 옮겨주었다.) 의자까지 권해주었다. 그의 책상에는 원반형테프가 감겨있는 록음기와 영문으로 된 타자문철이 놓여있었다.

《여기는 어데요?》

성민이 스스럼없이 의자에 앉으며 묻자 오지독의 입술이 단번에 이지러졌다. 툭 불거져나온 눈으로 한동안 성민을 노려보다가 책상우의 타자문철을 집어들었다.

《이게 뭔지 알겠소?》

《여기는 어데요?》

성민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자 오지독은 쓰겁게 웃었다.

《그럼 먼저 당신의 호기심부터 만족시켜주려고 하오. 여긴 미군부대의 정보기관으로서 명칭은 502부대라고 하오. 우리의 사명을 말한다면 한미간에 체결된 방위협정에 따라 적측의 온갖 적대행위, 적화남침행동의 모든 요소를 종합하고 연구하는것이라고 할수 있소.》

오지독은 멋적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록음기시동단추를 눌렀다.

《이름은?》

거의나 무표정한 태도로 물었다.

출생지, 학교, 군대복무, 신문사… 진술서에 썼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심문이였다.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와 목적까지 듣고나자 오지독은 커피를 권했다.

《당신의 말은 솔직한듯 하면서도 빈구석이 많소.》

《어떤것이 빈구석이라는거요?》

《파견목적이 석연치 않거던… 당신은 로동당원인데 계급적원쑤인 형님을 만나러 왔다는것이 말이 되오? 원쑤에게는 무자비하라! 이것이 당신네의 원칙이 아니요?… 이렇게 볼 때 당신은 원쑤인 형님을 처단하는것이 옳을것이요.》

《당신은 거짓말을 요구하오?》

《노―》

오지독은 책상을 쳤다.

《윌!》

차겁고 메마른 목소리가 울렸다. 성민이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유럽형이라고 본 창백한 얼굴이 뒤에 와 서있었다.

《왜 싸우오?》

그의 입에서는 조선말이 튀여나왔다. 오지독이 뭔가 설명하자 그는 매서운 눈길로 성민을 쏴보았다.

《당신은 여기가 어떤덴지 알고있소?》

《들었소, 거짓을 강요하는 곳이라는것으로.》

《거짓이라?―》

그자는 싱그레 웃으며 벽가의 철함에서 신문지절반만 한 크기의 사진 두장을 꺼내들었다.

《여기선… 솔직한 대답을 하기 전에는 나가지 못합니다. 보시오.》

보았다.

철조망으로 달려가는 한 사나이에게 3마리의 개들이 덤벼들어 어깨와 다리를 물어뜯는 사진이였다.

《그건… 솔직한 대답을 기피하여 도주하던자의 마지막모습입니다. 우리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였지만… 불행하게 되였습니다.》

또 한장의 사진 역시 죽음의 장면이였다. 자동차에 치웠는지 땅크에 깔렸는지 땅바닥에 쓰러진 사나이의 한쪽다리는 물크러져있는데 마지막순간의 고통이 그대로 찍혀진 얼굴에서 불붙는듯 한 눈과 이마의 흉터가 가슴을 찔렀다.

《이건 솔직한 대답을 한것이 괴로와 자살을 시도한 남한빨찌산출신의 사진입니다. 우리 차가 지나갈 때 용감하게 뛰여들었지요. 기실 이 사람은 영웅적사나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의지도 강하고 용기도 있고… 그러나 제아무리 의지강한 사람도 우리앞에선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는 아무런 흥심도 감정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벽가에 놓인 대형무전기 비슷한 기구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한개의 스위치를 틀자 거밋한 유리판이 은백색으로 밝아졌다.

《이게 뭔지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럴테지요. 이건 거짓말탐지기라고 하는데 뇌수신경에 일정한 자극을 주어 대방의 속생각과 비밀까지 죄다 말하게 하는 기구지요. 이런 기구가 있다는걸 들어봤습니까?》

《못 들었습니다.》

《유감이군요. 사실 이건 별로 자랑할만 한것은 못되지만 당신은 대학출신이니 어느정도 가늠이 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례로 내가 당신에게 도적질을 한적이 있는가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솔직히 말할수도 있고 감추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우리로서도 가부를 판단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저 기구는 아주 정확히 식별해내지요. 식별해낼뿐만아니라 당신이 아이적부터 한 도적질을… 실례합니다. 당신은 도적질과는 인연이 없으리라는걸 알고있습니다. 죄다 말하게 되지요. 그땐 당신의 자제력이나 의지는 령으로 됩니다. 내 말이 믿어집니까.》

《당해봐야 알테지요.》

《당해본다? 옳습니다. 여기 왔던 대부분 사람들은 다 당신과 같았습니다, 결국… 그때문에 이처럼 되였습니다만.》 자리에 와앉은 그자는 땅에 쓰러져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헌병대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무척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릴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법앞에 당신을 변호할만 한 주패장을 얻지 못했거던요.》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 방도요, 뭐요 말하는것입니까?》

《아, 친척이 친척을 만나러 왔다? 그때문이겠지요. 물론 국제법상으로는 위법이라고 할순 없습니다. 그까짓 정전체약국으로서의 위법은 빼놓읍시다. 하지만 당신은 이 진술서에서까지 반미적화선전을 하지 않았습니까?》

《진실을 말하는것이…》

《아아, 법과 개인의 진실이 매양 합의를 볼수야 없는것이 아닙니까.

나는 우리들의 사업을 위해서도 그렇고 당신을 위해서 이 말을 하는것입니다. 현재는 당신의 이 진술서 하나만으로도 극형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환경의 이 땅에서… 그런걸 용인하고 리해할만 한 아량은 있다고 봐야겠지요. 더우기 당신의 반미와 적화선전은 말그대로 선전미수로 끝난셈이니 현행범죄는 아니거던요. 이런 측면에서는 지장군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것입니다.》

《당신은 미군장교가 옳습니까? 자기를 고발한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라.》

《당신과는 말할 재미가 있군요. 옳습니다, 미국인은 복수심이 강합니다. 하지만 그 복수는 실용에 따르는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지장군의 고발은 당신을 위한 덕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지장군의 고발이 없어 일정한 기간 자기의 목적실현을 위해 이러저러한 행위를 했다면 우리는 당신을 도울 방도를 찾을수 없을것입니다.》

《그럼 나를 어떻게 도울수 있다는것입니까?》

성민에게는 여유가 필요했다.

이자들은 무엇을 노리는가, 앞으로 무엇이 닥쳐올것인가.

《그에 앞서 몇가지 더 말할것이 있습니다.》

그자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큰 고기가 물렸다고 확신했을 때 요령있게 다음동작을 생각는 로련한 낚시군의 표정이였다.

《우린 당신의 진술서가 비교적 솔직한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문제에서 의혹이 있습니다.

지장군을 만나려는것은 민족과 통일을 위한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친척지간의 재회를 마련하자는것이였다, 명분상 나무랄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만이 목적이겠는가. 그밖에 옛 친지들을 만나려는것도 있지만 우리로선 지장군에 대한 의혹이 큽니다. 그는 비록 당신을 고발했고 빨리 처형할것을 바란다지만… 그것이 진심이겠는가. 이것도 물론 당신이 밝힐 문제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은 권밖에 놓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것은―》 그자는 불을 붙이다가 꺼버린 담배대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알고있는 당, 국가, 군사비밀입니다. 어떤것을 얼마만큼 우리에게 제공하는가, 이에 따라 당신의 운명이 결정될것입니다. 알만합니까?》

《당신은 군인이라고 했지요?》

성민의 물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입니다, 미륙군중좌 엔트로우.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대답해보시오.》

《좀더 생각해볼 여유를 줄수 없겠습니까?》

《그럽시다.》 록음기 회전단추를 눌렀던 엔트로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듯 선선히 응낙했다. 하지만 윌이라고 불리운 오지독은 여전히 개상판이였다.

다음날 아침 성민은 산보를 요구했다. 움직일수 없는 몸으로 어떻게 산보를 하느냐고 했으나 성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놀랍게도 엔트로우가 그의 방에까지 찾아왔다. 무엇때문에 산보를 하려는가 하는데 대해 20여일 넘게 해빛도 바람도 못 쐬였다고 하자 엔트로우는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성민은 지난밤 통방신호를 받았다. 인적기 하나 없던 옆방에서 신호가 울려왔던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그다음에는 크게… 급급히 응답했으나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성민은 군대때 배운 모르스부호로 타전했으나 상대방은 전혀 해득할길 없는 단절음만 보내왔던것이다.

성민은 날이 푸름히 밝자 위생지로 공급된 종이에 자기의 이름과 소속을 썼다. 쓰는데는 칠면조주둥이의 도움을 받았다. 어깨박죽의 상처자리를 터쳐 그 피를 묻혀 썼던것이다.

그 종이를 신발안에 넣고나니 만시름이 다 풀려나가는듯 했다.

산보시간이 되자 밥을 날라주던 담당카츄사병과 물감자처럼 몸이 좋은 카츄사병이 나타나 그를 부축해 일떠세웠다. 밖에 나서자 현기증이 일며 눈앞이 휭 돌아갔다.

《허, 호사를 하는구만.》

뜻밖의 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줄느런히 늘어선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차림도 머리깎음새도 하나같이 성민이와 같은 그들의 얼굴은 삶은 빨래처럼 희였다.

말같은 군견을 끌고 서있는 미군군조 하나가 뭐라고 소리치자 그들은 이렇다 할 반응도 적의도 없이 마당둘레로 천천히 걸었다. 깊은 묵상에 잠긴듯 하고 살아갈 날의 길이를 재이는듯 땅바닥만 짓숙히 걷는 그들에게서는 일푼의 반가움과 따스함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중에서 전날밤의 통방자를 찾아보려 했으나 얼결에 자기를 보는 눈길들에서는 의혹어린 방심과 쌀쌀한 랭기만이 느껴졌다.

(괜히 나왔구나.)

그때야 성민은 2명의 카츄사병이 자기를 부축하고있다는것과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다는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호사라고?!…)

멀리 철조망우로 뻗쳐간 전기줄에는 몇마리의 새들이 앉아있었고 봄날특유의 희푸르스름한 하늘에는 묵은 솜같은 누릿한 구름이 떠돌았다.

(그래도…)

마지막희망과 기대로 땅바닥에 우리 글과 한문자로 이름을 썼다. 담당이 뭐냐고 묻고는 투박한 구두발로 지워버렸다.

《허, 병장씨는 록크춤을 잘 추시네.》

평북도억양의 목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거쿨진 체격의 《푸른 작업복》이 벌씬벌씬 웃고있었다.

담당이 그에게 또 전기찜질을 당해야겠느냐고 을렀다멨다.

《그래보지. 치료 좋더군.》 평북도억양은 카츄사병에게 눈까지 찡긋해보이며 성민을 턱짓해보였다.

《나와 동향인가?》

《그런건 안 묻게 되지 않았어.》

《뭘 그래, 호사하는 량반 부러워그래. 대학가 선생님이신가?》

《아니, 난 평양사람이요. 지성민이라고 합니다.》

성민의 말에 평북도억양은 네모진 턱을 쳐들고 껄껄 웃었다.

《병아리도 평양이 좋다고 피양, 피양해.》

《빨리 꺼져.》 담당이 그한테 꽥 소리치자 물감자가 물었다.

《저자 정신 왔다갔다 끝났나?》

《여전해.》

성민은 맥이 풀렸다. 한껏 기대를 걸고 이름자까지 알려준 사람이 온전한 정신이 못되는 사람이라는것으로 실망이 왔던것이다.

그때 호각소리가 울렸다.

20여명의 서렬이 질서있게 돌아섰다. 그러자 성민을 지켜섰던 담당도 그만 들어가자고 했다.

《조금만 봐주구려.》

성민은 신발안의 종이장을 생각했다. 넘겨줄 대상도 방법도 찾지 못했으나 여기에 모든것이 달려있는듯싶어 마주오는 사람들을 애모쁘게 바라보았다.

《이보게, 손 한번 잡아보자구.》 쫓겨들어간가싶던 평북도억양이 불쑥 나타나더니 성민의 어깨를 쳤다.

《이 짜식이.》 담당의 손이 번개같이 그의 뺨으로 날아갔다.

《여보, 정신 돈 사람 왜 치는가?》

수인대렬의 맨앞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호령을 쳤다. 쇠붙이같은 눈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나이는 서른일여덟, 날렵한 몸매에 강파롭게 생긴 얼굴이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때문인지 담당은 움질린 기색이였다.

《망종을 부려서.》

《그래도 그렇지. 언제 왔습니까?》

군인식표준어, 예리한 눈길은 대렬검열을 할 때의 중대장, 대대장들을 련상시켰다.

(이 사람이 아닐가.)

《어저께 왔습니다.》

《난 오영기라고 합니다.》

《지성민이라고 불러주시오. 평양사람이요.》

더 말을 할수 없었다.

《평양에서?!》

《정말 평양사람이요?》

《고향은 어데요?》

《언제 왔소?》

저마끔 성민에게 몰려들었다.

이제껏 삶의 빛이 꺼졌는가싶게 어둡고 침침하던 얼굴들에 밝은 미소와 활기가 풍겼다.

(동지들!)

성민은 목구멍이 꽉 잠겨 아무 말도 못했다.

눈물이 망막을 가리웠다.

《이거 초면인사 안됐습니다. 여기선 언제나 반대를 겁내거던요. 반대! 반대라는 뜻과 범위를 잘 모르는 어른들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군과 카츄사병들이 성민이와 그들을 갈라놓자 오영기가 눈을 끔뻑이며 이 말을 했다.

성민은 또 한번 가슴이 울컥해졌다. 그런데 오영기를 뒤따르는 사람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컴컴한 눈확의 침울한 눈길도 눈길이거니와 겨드랑이에 끼고있는 쌍지팽이를 보게 되자 전날 본 사진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되였다.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성민이와 시선이 맞부딪쳤을 때도 침울한 눈빛은 변함없었고 지어 적의가까운 사나운 눈길이였다.

이로 하여 방에 들어와서도 마음을 다잡을수 없었다. 오영기며 여러 수인들과의 상면은 분명 기쁨이고 힘이였으나 고문때문에 머리가 잘못된듯싶은 평북도억양의 모습으로부터 쌍지팽이까지 상기하게 되자 앞으로의 나날들이 몸서리쳐졌다.

(과연 지켜낼수 있겠는가?)

제일 무서운것은 이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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