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그 녀자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수배령장을 들고 찾아든 경찰들도 그 녀자의 광채어린 눈길과 마주치고는 얼이 빠져 굳어져버렸었다.…

《언제쯤이면 돌아올수 있을가요?》

《극상해서 한달이면 될거요.》

《한달?…》

그 녀자―순정은 추운듯 몸을 옹송그렸다.

《그때면 이 나무가 백발이 되겠군요. 하얀 눈을 소복이 쓰고 흰수염을 날리며…》

《너무 걱정마오.》

《걱정이야… 저의 랑군님이 어떤분이라고.》

《암, 이제야 정상으로 되누만.》

성민은 호기를 보였으나 순정은 그를 외면하였다.

(어깨를 떨었던가, 아니,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그랬어.)

성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차창밖의 부잇한 길과 조락의 황금빛들판을 바라보았다.

멀리로는 고색의 도시가 어렴풋이 안겨왔다.

(다 왔구나.)

성민은 15년전에도 이 길을 밟았었다. 해방년의 가을, 그때 17살 청년이였던 성민은 중국의 려순, 목단강, 장춘, 광주를 거쳐 이 서울까지 왔었다, 그립고그리운 형님을 찾아.

(어떻게 맞아줄가, 첫말은 어떻게 떼며?)

성민은 이번에도 형을 찾아오고있었다.

남조선군 2성장성이며 《5. 16군사혁명위원회》 위원인 형, 15년전에는 기쁜 상봉의 즐거움만이 앞섰다면 지금은 불안과 막연한 희망뿐이였다.

칙― 합승뻐스가 멎는 순간 정류소 표말옆에 세운 커다란 그림판을 보게 되였다.

―주의! 곁에 있는 빨갱이는 보통사람처럼 보인다―

주홍색얼굴에 괴상한 뿔이 돋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서있는 그림판이였다. 그 그림판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우줄우줄 뻐스에 올랐다.

대부분이 《재건복》들이였다.

진갈색 골덴잠바에 밑이 깡뚱하게 좁은 바지, 누가 퍼뜨렸는지 모를 이 《재건복》은 올해(1961년) 5. 16군사정변후에 생겨난것으로서 국가재건에 성실함을 보여주는 의상으로 되여있다.

《아저씨!》

커다란 목판이 무릎에 부딪쳤다. 바께쯔모자라고 불리우는 미군작업모를 눈두덩까지 내리쓴 열한두살되는 소년이 애처로운 정상으로 그를 보고있었다.

《좀… 사주세요.》

트고 갈라진 손에 들린 목판에는 얄팍하게 구운 빵과 양담배갑들이 놓여있었다.

성민은 망설이다말고 목판채로 다 살수 있는 지페를 꺼내들었다. 그가 《말보로》 한갑만을 집어들자 소년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좀더… 사주세요.》

《됐다. 거스름돈은 필요없으니 그냥 써라.》

차안의 시선들이 그들에게 모여졌다가 흩어졌다. 호부자들한테서 간혹 보게 되는 턱없는 인심으로 생각했을것이다.

《고마워요.》

소년은 머밋머밋 뻐스뒤켠으로 물러나고 성민이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을 때 낯익은 건물이 마주왔다.

국도극장, 그가 처음으로 서울에 왔을 때인 1946년 봄 형님과 형수로 된 옥영과 함께 와봤던 극장이였다.

성민은 세종로어방에서 내릴 계획이였으나 여기서 내렸다.

먼저 극장담벽의 소개판부터 보았다.

1946년에 왔을 때의 극장 담벽에는 ―춘사 라운규의 고향 북관 회령의 쏘프라노가수 김은향독창회― 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는데 지금에는 베일을 쓴 반라체의 녀인이 털부숭이사내의 가슴팍에 안겨있는 미국영화간판이 걸려있었다.

《아저씨, 이걸 받으세요.》

귀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뻐스안에서 만난 소년이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소년의 손바닥에는 신분증사진보다 조금 더 큰 사진이 있었다.

《그건 뭔데?》

《녀대생이예요. 병이 없구요… 진짜예요. 주소는 거기 적혀있어요.》

《아니 이건…》

《진짜라니까요. 병있는 녀자들도 있지만 난 아저씨껜 거짓말하지 않아요.… 인물도 뛰여나구요.》

극장 출입문쪽에 서있던 경관이 이쪽을 보는것을 알자 소년은 다람쥐처럼 사라져버렸다.

산발한 머리칼이 어깨를 가리우고있는 사진속의 처녀는 고작해야 스물한두살, 사진을 주고간 뜻을 음미한 성민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하지만 소년의 미쁜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니 모든 일이 잘될듯 한 조짐처럼 느껴져 속이 너부룩해졌다.

그는 소년이 사라진쪽을 찾아보다가 간이매대식으로 오똑하게 솟은 공중전화소를 향해 걸어갔다. 전화소옆에는 색날은 중절모를 쓴 60대의 로인이 구두닦이궤짝을 깔고앉아 신문을 보고있었다. 방금 전화를 마치고 나오던 녀인이 그 로인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성민이 전화소에 들어가 전화번호안내를 찾으니 찍찍―하는 잡음만 울릴뿐 교환이 나오지 않았다. 신문을 보는가싶던 로인이 문을 두드렸다.

《왜 그러십니까?》

《예가 처음이시우?》

《녜.》

성민의 말에 로인은 아무런 내색없이 가슴팍에서 얄팍한 책귀를 조금 내보였다.

《교환한테 묻기보담 이 전화번호책을 보는게 낫습지요. 100원만 내시우.》

《…》

《저기 경관한테 보이지 않게 하슈. 이것도 통제품장사와 같아서…》

모서리가 닳아진 얄팍한 전화번호책을 받아쥔 성민은 륙군본부교환번호를 인츰 찾아낼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송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목청고운 처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민은 뚝뚝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아가씨, 수골 하십니다. 나 지태민장군 집전화번호를 문의하고저 합니다.》

《지태민장군?!》

《네, ×지구사령관을 하는―》

《아, 알고있어요. 헌데 누구시죠?》

《명색은 친척인데 군수품조달관계차로 만나게 되여서―》

《군수품조달예요. 몹시 반갑네요. 잠간 기다려주세요.》

처녀는 1분도 안되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군수품조달에 더 열심을 기울여달라는 부탁의 말까지 해왔다.

《고맙습니다. 일후 아가씨를 알게 되면 아가씨에게도 선사를 하지요.》

마음이 떴다. 다시 각전을 찾아 돈구멍에 밀어넣을 때 손이 후들거렸다. 천천히 번호판을 돌렸다.

(누가 받을가? 어떻게 나오고?…)

태민형은 부대병영에 가있을것이니 옥영이나 옥영의 어머니가 받을것이라고 넘짚었다. 그런데 찰칵 하고 돈떨어지는 소리에 이어 《네, 전화받습니다.》하고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소중학교학생정도의 애티난 목소리였다. 처녀애였다. 흠칫하는 가슴떨림이 왔다. 첫째일가, 둘째일가. 형님과 옥영이의 결혼식이 46년 7월에 있었으니 47년도든가 48년도에 태여난 딸일것이다.

《거기 지태민장군의 댁이 맞느냐?》

《네, 그래요. 어데신가요?》

상냥하면서도 오돌찬 물음이다. 성민은 뒤덜미를 쓸어만지며 웃었다.

《난 마산에서 사는 지장군의 친척인데.》

《친척?!… 처음 듣는 소린데요.》

《처음이라?!… 건 그렇지. 어머니를 바꾸거라.》

《어머니는 안계세요.》

《그럼 현숙할머님은…》

《아이, 할머님도 여긴 안계세요.》

《허, 난사로구나. 그럼 너의 집주소나 알려주렴.》

《호호, 저의 할머니까지 아시는분이 우리 집 주소도 모르세요?…》

《그렇게 됐다, 덜퉁한 친척이니까.》

《덜퉁한 친척?! 아이참, 멋진 말씀이네.》

처녀애는 호들갑스럽게 웃고는 집주소는 물론 찾아올 길까지 자상히 대주었다. 깜찍스럽게 생겼을 조카애. 전화소를 나서며 그 애한테 뭔가 사들고 가야 하지 않을가 생각다가 그냥 걸었다.

배낭속에 송이버섯이 있으니 인사불성은 아닐것이였다. 예까지 오면서 그 송이버섯이 물크러질가봐 무척 신경을 썼다.

송이버섯이라면 태민형도 옥영형수도 사족을 못썼다. 그러니 송이버섯구경을 못했을 조카애는 더욱 그럴것이고…

시가중심은 전쟁전이나 전쟁시기와 크게 달라진것이 없었다. 다만 예전의 양옥들과 기와집들사이에 이른바 현대문명의 산아인 비닐로 된 집들이 닥지닥지 들어앉은것이 새로왔다. 세종로울타리 뒤골목으로 들어서 찾고찾던 번지문패를 확인한 성민은 한동안 가쁜숨을 몰아쉬며 못박힌듯 서있었다.

집은 1946년도에 찾아왔을 때와 같은 2층양옥의 벽돌집이였다. 현관문 좌우에는 자그마한 원형창문이 있고 그우 2층방 창문들엔 밤색창가림이 처져있었다.

(어떻게 소개말을 한다?!…)

뒤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가볍게 현관문을 두드렸다.

계단을 울리는 발구름소리, 문이 삐써 열렸다.

머루알같이 까만 눈동자가 내다보는가싶더니 인차 사라졌다.

《그 사람같애요.》

나직한 목소리에 이어 거쿨진 체격의 사내가 문을 열어제꼈다. 보위색군복, 다부진 어깨팍에는 상사의 계급장이 붙어있었다. 경계감어린 눈길이 성민의 아래우를 훑었다.

《누구를 찾으시는지요?》

체격과 거동에 비해 말씨는 숙부드러웠다.

《지태민씨를 찾아왔습니다.》

《마산에서 오신다는…》

《네, 그렇습니다.》

머루알같은 눈이 전모를 드러냈다. 쎄라복, 고등녀학교 학생복차림이였다.

《좀전에 전화를 건 사람인데 이 댁과는 친척되는 사이입니다.》

《그런가요.》

상사는 그닥 미덥지 않아하는 기색이였다. 처녀애 역시 말똥히 보기만 할뿐 전화할 때 그려본것과는 판달리 랭랭한 인상이였다.

노여움이 치밀어올랐다.

《이거 허행에 불청객이군.》

이 말이 은을 냈다. 상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처녀애를 얼핏 보고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잘 모르고 오신것 같은데 지금은 여기에 안계십니다. 지장군도 부인도 다들 부대본부에 나가있습지요.》

《그럼 현숙어머님은 어데 계십니까?》

《장모님도 아십니까?》

《친척이 친척을 모르면 되겠소. 넌 수신과목을 잘못 배웠구나.》

처녀애에게 눈총을 쏘았다.

《이 앨 탓할 일은 못됩니다. 이 집은 제가 보다나니… 장모님을 만나겠습니까?》

《거야 더 말할것 있소.》

《가시자요.》

처녀애가 냉큼 튀여나왔다. 중발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성민을 보는척도 않고 총총걸음을 놓았다. 수신과목을 잘못 배웠다는 소리가 되게 속을 긁어놓은것 같았다.

《너 이름이 뭐지?》

성민이의 물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토라진 소리를 총알처럼 내뱉았다.

《친척이 친척이름을 몰라서야 되겠나요?》

성민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친척을 친척답게 대해주지 않는것은 뭐라고 하지?》

처녀애가 오똑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보는 눈에 웃음이 바글바글 끓었다.

《비기자요. 제 이름은 경자라고 해요.》

놀랍게도 불쑥 손을 내미는것이였다.

《경자?! 경은 고을 경이냐?》

《그래요.》

《음, 좋은 이름이구나.》

경성의 경도 고을 경이다. 분명 그곳에서 생긴 딸이라는것으로 이름을 경자라고 지은것 같았다.

보폭을 넓게 하며 한가락 엮었다.

《이름자는 생겨난 곳을 땄고 위엄은 아버지를, 생김은 어머니를 닮았구나.》

《아이, 멋져라. 풍월까지 하시네.》

《한데 눈만은 아버지, 어머니 반반이다.》

성민의 웃음진 말에 경자는 손벽까지 찰싹 치며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신통해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어리광치듯 하며 성민의 팔굽까지 껴잡았다. 어릴 때의 옥영이 그대로였다. 눈만이 조금 다를뿐이였다. 옥영이의 눈은 약간 가느스름한것으로 이전시기 흔히 보게 되던 조선미인화의 전형적인 눈이였다면 경자의 눈은 휘동그란 쌍까풀눈이였다.

《아저씨.》

《왜 그러니?》

《아저씬 정말 멋져요.》

《멋지다?》

《그래요. 아저씨가 저의 친척만 아니라면 내가 홀딱 반하고말았겠어요.》

《어이구 맙시사.》

《정말이예요.》

《거짓부리. 아깐… 장님 코끼리보듯 하던데.》

《건 미안했어요. 저두 대뜸 친척이란건 알아봤지만 유전학을 따져보느라 인사가 늦었어요.》

《유전학이라니―》

《멘델의 유전법칙을 모르세요? 아저씨와 우리 아빠의 생김새가 비슷한걸로 몇촌, 몇대의 친척일가 연구해본것이지요.》

《그래 몇촌쯤 될것 같니?》

《그건 아직 답을 얻지 못했어요.》

수집게 지켜보는 눈길에 가슴이 찔렸다.

(내가 너의 삼촌이란다.)

그를 꼭 껴안아주고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른것이였다.

《그럼 그건 너의 연구숙제로 남기려무나. 정 풀지 못하겠으면 외할머님한테 묻던가.》

《꽤나 비싸군요.》

경자는 가볍게 눈을 흘기고 키높은 담장을 두른 양철집앞의 대문앞에 가섰다.

《다 왔어요.》 구리장식못이 드문드문 박힌 대문을 살며시 열고난 경자는 문꼭대기의 딸랑종을 꼭 잡아쥐며 방긋 웃어보였다.

《왜 문을 잠가놓고있지 않니?》

《낮에만 안 걸어요. 할머니한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으니까요.》

유리미닫이문 안쪽의 널마루에 굽높은 구두며 흰코고무신들이 여러개 놓여있었다.

《얘, 조용히 찾거라.》

《뭣때메요?》

《깜짝 놀라게 하자는거다. 그저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아이, 의뭉한 아저씨네.》

경자는 말과는 달리 미닫이문마저 소리없이 열어놓고 쥐잡는 고양이걸음으로 마루에 올라섰다.

(어떻게 맞아줄가?)

목단강의 녀걸, 가게방 점주로서 일본인잠상들도 혀를 두를 정도로 물품을 사고팔고 하는데서 요령과 수단을 펼쳐보였던 형수의 어머니는 돈벌이에 그악스러운 대신 풍성스러운 인심과 대틀로 소문이 나있었다.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쥐색공단치마저고리에 호박색양털등거리를 걸친 녀인이 미닫이문앞에 이르렀다가 굳어졌다.

《어머니,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성민의 인사에 목단강녀걸의 얼굴은 납빛으로 변했다. 옥색반지를 낀 손에서 화투장이 떨어져내렸다.

《절 모르겠습니까?》

《으음.》

녀걸의 입에서는 신음같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얘, 내 좀 있다 들어간다고 해라. 너도 거기 가있고.》 경자에게 한마디 이르고난 녀걸은 버선발로 내려섰다.

《그러지 마십시오.》

녀걸의 손을 황급히 잡으니 얼음같이 차거운 손이 신장대 떨듯 화들화들 떨었다.

《임잔 어데서 오나? 여기서 사는것은 아닐테지.》

《네, 그래서 이처럼 늦게야 찾아뵙게 되였습니다.》

《에구, 간덩이도 크지. 절루 가세.》

들어간 곳은 너렁청한 부엌이였다.

《그래 집안 제절 다 무고하신가?》

녀걸은 이때야 인사를 차렸다. 성민이 집안소식을 대충 말하자 목단강녀걸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큰일일세.》

《큰일이라니요?》

《자넨 지금 여기가 어떤지 통 모르는것 같구만. 엊그제까지 활개치던 장관이요, 뭐요 하던 사람들도 쩍하면 잡혀들어가는 판에… 임잔 빨갱일테지.》

《글쎄 여기선 빨갱이라고 한다더군요. 하지만 저때문에 페가 될 일은 없을겁니다.》

《그랬음 오죽 좋겠냐마는… 한데 여긴 어떻게 왔나?》

성민은 짤막히 말했다. 형님을 만나고 인차 돌아가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목단강녀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망녕이로군. 점심은 자셨나?》

《네.》

《자네 내가 푸대접한다고 원망이 클테지?》

《원망까지야… 하긴 부엌대접을 받으니 좀 별나긴 합니다.》

《내 다 생각이 있어 그런거네. 임자 도청기라는걸 아나?》

《압니다.》

《옥영이네 집에도 그렇지만 우리 집에도 그런게 매달려있다고 하네. 그래서… 이렇게 인사불성이야. 임자 아버지랑 어머니랑 알면 얼마나 섭섭해하랴마는.》

목단강녀걸의 눈굽이 불깃하게 달아올랐다.

성민이도 가슴굽이 쩡해들었다. 인정은 예나 다름없건만 세월이 인정에 포승을 지워놓은것이다.

《그러니 이 집도 감시를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경자 애비가 늘 하는 당부가 그거네. 사람 대면도 봐가며 하구 일체 옛날일을 말허지 말라는 신칙도 있네. 정치는 더 말할것도 없구… 경자 애비같은 사람들은 일언일행이 첫날색시 한가지지.》

《제 알기엔 형님이 여간만 신임을 받지 않는다던데요.》

《그렇게 될려니 오죽했겠는가. 이런 말은 후날 하기루 하고 내가 찾을 때까지 자네네 5촌벌이던가 지응석이 그 사람 집에 가있으라구.》

《아니, 그 아주바이도 여기서 삽니까?》

《그렇네. 여기서 15분가량 가면 되네. 철물점을 차려놓고있는데 임자 형님덕을 크게 보았지. 게 가있으면 등탈 없을걸세. 여긴 눈이 번자자해서.》

그리고는 손목에 찬 구식은테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빨리 떠나라는 신호같았다.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성민이, 날 나쁜 로친네라구 탓하지 말라구.》

《시국이 시국이니 어쩌겠습니까.》

성민은 추연히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래일까지 기별이 없으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성민은 누구의 바래움도 없이 대문밖을 나섰다. 경자라도 다시 보았으면 했으나 그 역시 얼굴도 나타내지 않았다.

성민이가 찾아가게 된 응석이라는 사람은 집안족보책의 이름자에 네모꼴먹테가 둘러쳐진 사람이였다.

네모꼴먹테란 흔히 죽은 사람에 대한 표식이지만 족보책의 네모꼴먹테는 나라의 역신이거나 패륜아로 지탄받는 경우 가문에서 제명한다는 표식이였다.

지응석의 이름자에 네모꼴먹테를 친것은 성민이 할아버지였는데 그 리유란 지응석이 도박과 싸움질에만 미쳐난 건달군이라는데서였다.

실지 그는 어른싸움이건 동리싸움이건 삐치지 않는데가 없었고 도박이라 하면 수백리까지 다 쫓아가는 사람이였다.

이로 하여 동네방네 뒤말이 심했고 집안살림도 엉망이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딱 한가지 장기가 있었으니 조상묘찾기와 제사때마다 발휘하군 하는 지극한 효도였다.

물론 가문의 어른들로서는 부정한 그의 행실과 추문때문에 더없이 숭엄한 좌석인 선산찾기와 제사에 그가 오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고 또 찾을념도 하지 않았지만 수백리밖의 타곳에 갔다가도 그런 날이면 잊지 않고 오군 했다. 다들 이마살을 찌프리게 하는 일이였으나 찾아온 사람을 굳이 쫓아보낼수는 없었다. 그대신 반렬에 세워놓고 술잔붓기도 맨 마지막에 하게 했다. 그때가 가관이였다.

제상이나 묘석앞에까지 무릎걸음으로 기여가서는 잔을 치기 바쁘게 꺼이꺼이 통곡을 하며 일장설화를 늘어놓는데 그간의 잘못된 일들이 자상히 렬거되였고 불효막심한 자기를 부디 용서해주십사하는 말들이 물쏟아지듯 흘러나왔다. 그 일은 되박이마를 묘돌이나 바닥에 마구 짓쫏는것으로 끝나군 했다. 그럴 때면 마음 여린 녀인들은 물론 사당방(위패를 모시는 곳)신장같던 어른들의 눈에도 물기가 그렁하니 고여오르군 했다.…

닥지닥지 들어앉은 판자집들속에서 지응석의 집은 울짱까지 쳐있었고 양철판을 덧대인 대문엔 《고철, 파지, 페품 다 받습니다.》라는 흰 뼁끼글이 이채로왔다.

성민이 그 집에 들어섰을 때 지응석은 비행기철판을 짓조기고있었다. 몇번의 망치질에 넙죽하던 철판이 둥그런 쇠덩이로 뭉쳐졌다.

《무얼 가져왔수?》

성민을 의아히 보며 한쪽알이 깨진 안경알을 치켜올리던 그의 손에서 망치가 떨어졌다.

《아니, 이게 누군가?》

우루루 몸을 떨고난 그는 제잡담 성민을 그러안았다. 눈굽이 질척해졌다. 꺽꺽 막히는 소리로 어데서 왔느냐, 어떻게 왔고 하며 중언부언 묻고난 그는 기쁨을 금치 못하겠다는 자세로 탄성을 질렀다.

《내 입대껏 너를 보러 산것 같구나.》

옥영의 어머니와는 판 달랐다. 그때 공교롭게도 련탄장수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들었다.

《지상! 있수!》

대문을 삐써 열며 들어서는 그를 보자 그때까지 날고뛸듯 기뻐하던 지응석의 얼굴이 쇠꼬치로 변했다. 의례히 있을상싶은 인사대답은 커녕 대바람에 역증을 냈다.

《넌 또 왜 와서 까치행세냐. 그만큼 말해줬으면 됐지. 그래 불쪽을 뽑아야 떠나갈테냐?》

《아, 무슨 말씀 그리 험하시우. 내돈 달라는거지 생돈 먹자는거요?》

《저런 종개입 봤나. 덜도 보태지도 않고 딱 맞춰줬는데 계속 생주정이냐. 정 그러면 어디 들어와 보거라. 여기 구청 감독관어른두 오셨는데 회계를 해보자, 회계를. 그저 틀리는 날에는 네 집 재산까지 란탕칠줄 알아라.》

성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를 번히 세워둔채 돈싸움을 벌리는것도 놀랍지만 자기를 구청 감독관어른으로 둔갑시켜놓는것이 아연실색할 일이였다.

이미전부터 성민의 기골찬 모습을 흘끔흘끔 살피던 족제비상의 련탄장수는 구청 감독관이라는 말에 기가 눌렸는지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만하시우. 원, 이웃간에 제가 밑지겠수다. 하지만 너무 젠체 하지는 마시우.》

《그래, 일찍 그래야지. 잘 가라구.》

지응석은 비죽이 웃으며 널대문을 닫고는 성민에게 한눈을 찡긋해보였다.

《저런 역뀌(여우)새끼들한테는 우격다짐이 약일세.》

널대문에 빗장을 지르고난 지응석은 손바닥만 한 널쪽을 밀어제친 다음 바깥문걸개에 왕자물쇠까지 채우고 돌아섰다. 성민의 눈길이 도로 맞춰놓는 널쪽에 닿은것을 보고 못내 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누가 와도 집엔 사람이 없는걸로 알걸세.》

《신통하군요.》

《신통하다마다. 도박군 수삼년에 얻어진 경험이지. 방에 들어가자구.》

십수년만에 처음 만나는 사람같지 않게 흔연한 태도였다.

성민은 련탄장수가 사라진쪽을 은근히 눈줘살폈다.

《걱정할것 없어, 돈밖에 모르는 녀석이니까.》

《한데 너무하지 않았습니까? 다 같이 어렵게 사는 처지에―》

《어렵게 산다구?!… 그 녀석은 이 꽁다리동네의 1등가는 그랑데일세.》

《허, 아주바인 그동안 소설공부까지 하셨군요.》

《어쩌겠나. 자본주의에서 살자니 자본주의를 연구한거지. 여기선 돈 한푼 받는것부터 지키는것까지 제갈량이 되지 않구선 못사네. 자넨 38따라지란 소릴 들었나?》

바깥대문의 왕자물쇠 못지 않게 커다란 쇠가 잠긴 문을 열자 퀴퀴한 곰팡내와 뭐라 표현할수 없는 잡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겼다. 머리더수기에 와닿을듯이 길게 뻗쳐내린 전구꼭지를 잡아비틀자 방이 환해졌다. 고품수매창고 같았다. 마사진 자동차기관으로부터 미군의 잠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잡동사니들이 가득 널려있었다.

《여기가 내 비품창고이구 성민이랑 생각날 때면 실컷 눈물을 쥐여짜는 곳일세.》

노랗게 말라비틀어진 몽당수염을 내리쓰는 지응석의 눈에는 방금전까지의 왈패스럽던 빛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처량한 빛만이 차넘쳐있었다. 바싹 메마른 볼엔 얼기설기 주름이 무늬를 이루었는데 되박이마의 반들반들하던 흉터까지 쪼글쪼글 오그라들어있었다.

《게 앉으라구. 여긴 청결검사를 하는 경관들두 겉만 보구 돌아서는 방일세.》

지응석은 앉은뱅이책상곁에 놓인 승용차용의 헌 가죽방석을 밀어놓으며 미군잠주머니에 털썩 물앉았다.

《그래 여긴 어떻게 왔나?》

《한데 다들 어데 갔습니까?》

《에미는 콩나물장사를 하구, 예 와서 번 막냉이녀석은 중학교엘 들어가겠다구 제딴의 벌이를 나갔어.》

《저… 다른 애들은?》

《없네. 여기 온 첫해에 그놈의 코레란지 뭔지에 걸려 다들 승천했지.》

《그랬댔군요.》

《뭐 그저 다 팔자지. 생각하믄 이 애비를 잘못 만난탓이긴 하지만…》

《정말 안됐습니다.》

《이젠 일없어. 하루 삼식도 번지지 않구. 자네의 태민형의 덕이 컸지. 이 집두, 철물점두 다 그가 아니믄사 될탁 있나. 이 동리에선 지금 내가 왕땅일세. 처음엔 38따라지라구 업신여기던 터세박이들도 태민이가 내 친척이란걸 안 다음부턴 절절 기지. 군사정권이 선 다음부터는 동장이구 경관이구 죄다 내앞에선 료리점기생년들처럼 꼬리를 치구. 그래 태민일 만나러 왔겠지, 여기 와 살자는건 아닐테고.》

《네, 형님도 만나구 또 아주바이랑 다들 만나뵙자구 왔습니다.》

《허허 나까지… 자네 보기가 미안하구만.》

《헌데 태민형은 언제 찾았습니까?》

성민은 쓰린 마음을 누르며 물었다.

《그건 내가 쓰레기장사를 시작할 때니 54년도 봄일게다. 청결통을 뒤지다가 봤던지 파지묶음안에서 태민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게 되였던거야. 령관 별을 네쪽이나 붙였지만 태민의 모색이야 어데 가겠니. 글을 볼라니 태민이가 보통인물이 아니더라. 〈미국최고훈장수훈자, 그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제목밑에 죽 내리썼는데 과시 우리 혈통에 어긋남이 없더라. 왜 그러니?》

《우리 혈통이라는게 무슨 소립니까?》

《허허, 그렇지. 너야 지금두 로동당원일테지. 대학엘 다니다가 군대에 나갔다는것까지는 알고있다. 한데 내 말을 오해 말어라. 난 너의 형님이 인민군대와 싸운때문에가 아니라 〈용인과감〉하구 〈지략이 출중〉했다는 글에 혹했던거다. 그건 우리 조상대대의 래력에서 나온게 아니겠나.》

지응석은 또 한번 몽당수염을 비틀어쓸고는 자기 역시 용인과감한 사람이라는듯 얄팍한 어깨를 뒤로 젖혔다.

《사실 난 일찍부터 태민이가 큰일을 할 사람이란걸 알았다, 너두 그렇구. 참, 생각나니? 내가 널 도박판에 데리고다닌걸?》

《기억됩니다.》

《큰일을 하자면 그런것두 다 알아야 했기때문이다. 하긴 그때문에 너의 돌아가신 할아버지한테 회초리찜질은 당했다만.》

《태민형은 어떤 공로루 미국놈들의 훈장까지 받게 되였답니까?》

《응, 그걸루 말하면 인민군대를 친 일은 아니다. 쌈이 끝나는 해인 53년 5월에 있은 일인데 중국군대를 무섭게 짓조겼더구나. 책에는 너의 태민이만 아니면 전략적요충인 그 고지를 뺏길번 했다는게다.》

《책은 또 무슨 책입니까?》

《아 그렇지, 잠간 기다려라.》

지응석은 예순고개에 오른 사람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나가더니 목침같이 두꺼운 책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런건 못 봤을테지. 여기에 태민이의 전공이 밝혀져있다.》

노란 금지로 테를 친 옹근 반페지 넘는 대목을 펼쳐보이는 지응석의 눈에는 살가운 웃음이 떠돌았다.

《그건 치우십시오.》

《한국전쟁사》였다.

《허, 네 기분은 알만 하다만 어쩌겠니. 내가 이 책의 덕을 크게 보았다. 38따라지라구 업신여기는 잡것들이 세금이요, 뭐요 하고 들이닥칠 때면 이걸 내보이군 했지.》

《아주바이한텐 저희를 반대해 대공을 세운것이 그렇게 장해보입니까?》

《얘, 그런 말은 삼가거라. 새두 제가 난 고향을 못 잊는다는데 내가 왜 너희를 반대하는 편에 서겠니. 여기서는 태민이두 마찬가지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꼭 들어야만 되겠니?》

《들어야겠습니다.》

《그럼 말하자. 나두 그렇구 태민이도 그렇구 진짜마음은 너희한테, 이북에 쏠려있다.》

《아주바이, 그게 사실입니까?》

《글쎄, 거야 앞으로 좀더 두고볼 일이지만 큰걸 노리는 사람들한텐 십분 있을수 있는 일이 아니겠니. 여느 평백성이라 해도 그렇지. 배군들을 봐라, 바람통세에 따라 외로 갈 때도 있지만 제가 노린 곳을 기어이 가고마는걸. 나로 말해도 빌어먹을, 자칫 실수로 이곳에 왔다만 옛날 농조운동때부터 혁명자로 나섰던 내가 그래 여기 이남편에 붙어있을상싶으냐.》

《한데 아주바인 어떻게 돼서 여길 왔습니까?》

《그걸 다 말하자면 길다. 후퇴때 그만 머리가 돌았댔지. 너두 알겠지만 내가 소비조합창고일을 볼 때 얼마나 받들리웠니. 남들이 구해오지 못하는것도 죄다 물어들이구. 한데 그놈의 물건짝에 환장이 됐지. 다들 바삐 후퇴하는통에 창고안의 물건들은 고스란히 남았구나. 면에서는 태워버리라고 했다만 그걸 태운다는게 말이 되니. 그래서 집에 가져다가 장쳐놓았다. 후퇴가 끝나 다들 되돌아오면 자, 되박이마 지응석이 나라물건을 이렇게 지켰수다 하고 뽐내보려구. 한데 될턱 있니. 〈치안대〉라는 잡것들이 쓸어들더구나. 노나먹자는거지. 개중에는 도박판에서 사귄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들 공짜라면 쇠붙이도 삼킬 녀석들이라 인정사정 없었지. 물건짝을 내놓지 않으면 총알을 박아넣겠다는거야. 어쩌겠니. 이놈, 저놈 안겨주고… 술상을 채리고… 제길, 인민군대가 재진공할 때도 그 모양이였구나. 몇가지 물건짝을 지키자구 술상을 차리고 곤드레만드레 있는데 친구란것들이 밀려들더구나.

지하실에 감춘 물건짝까지 다 들추며 이남으로 나가야 한다는거야, 가지 않으면 저들 손에 깜장콩알을 먹든가 미국사람들의 원자탄에 재가루가 된다고 하면서. 그 말에 그만… 머리가 돌았구나. 〈치안대〉라는것들과 섭쓸린것두 죄가 될건 분명한거구.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당장은 목숨부터 살려야겠다 하고 남은 물건짝을 꿍져가지고 배에 올랐던게다. 마침 우리 고장에 와있던 국군중대장이라는 량반이 왜정때 도박친구여서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 물건짝으로 잘 살았겠군요.》

성민은 터지는 울화를 참을수 없었다. 지응석은 무안한 기색이였다.

입을 쩝 다시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두 떠날 땐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그놈의 국군중대장과 헤여진 다음엔 오라질 경찰이요, 군대요, 뭐요 하는 잡것들이 달려들어서 이불짐 하나 내놓고 죄다 털리웠구나. 그뒤 고생을 말로 다하자면 장밤 열이라도 다 못할것이다. 참 아버님이랑… 어머님이랑 다들 잘있니? 내가 제 말만 제 말이라구 인사가 늦었구나.》

《안계십니다.》

《안계시다니?》

지응석의 눈이 사발만 해졌다. 성민은 침통하게 그를 보다가 말을 떼였다.

《어머님은 전쟁때 폭격에 잘못되셨구 아버님은 바로 형이랑 아주바이와 같은이들때문에 심화를 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때문에?》

《그렇습니다.》

《에구, 여기서 하는 말이 옳은 소리였구나.》

지응석은 풀썩 잦아드는 형용이였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뭘 에돌것 있나. 월남한 사람의 가족, 친척들을 죄다 촌으로 쫓아보낸다면서, 너야 군대까지 나갔다왔으니 면죄를 당했을거구.》

《아버지는 도인민위원회 대의원으로 력사박물관 부관장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뇌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아버지는 떠나가시는 순간에도 형님이랑 아주바이랑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가문의, 나라의 수치라고.》

성민은 목이 꺽 메였다.

고개를 짓숙이고있는 지응석의 측은한 모습이 마음을 다잡게 했다.

《지금 고향에서는 아주바이의 도박판 친구들까지 다수확모범농민으로, 로력혁신자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한데 아주바인 도대체 뭡니까.》

《그래, 나도 그런 소문은 좀 들었다. 다들 행복히 맘편히 산다는말도 들었구.》

《정말 분합니다. 난 그래도 아주바이한테 나라위한 마음만은 있다고 보았습니다. 경성삐라사건때 왜놈들과의 대들이판싸움에서 아주바이가 순사 두놈을 메꼰지는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바이가 싸움을 좋아해서 그런다지만 전 애국심이라고 보았습니다. 태민형님의 결혼식때도 그랬지요. 모든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왔다고 춤까지 추지 않았습니까. 그래 우리 공화국이 아주바이한테 섭섭하게 한것이 뭣이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도박을 못하게 한것이지요. 하지만 그 덕에 호부자살림을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정말 면목이 없다. 난두 그때를 생각하면 장밤 눈물로 새운다.》

지응석은 축축히 젖은 눈을 팔소매로 훔쳐 닦았다.

《이젠 가슴아픈 꾸중은 그만하거라. 그래 아버님의 묘는 어데다 썼니?》

《고향 선산에 모셨습니다.》

《아니, 그게 그냥 남아있단 말이냐?》

《남아있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겠습니까?》

《그게 정말이냐? 예서 하는 말로는 지주집안 조상묘들은 뿌리채 헐어버린다던데―》

《아주바이는 그것도 말이라고 듣습니까. 그건 악선전입니다.》

《악선전?… 하긴 채 믿어지지 않았다만. 어휴, 내가 미쳤어, 미쳤지. 형―님!》

지응석은 갑자기 목깃을 틀어잡더니 황소영각같은 울음을 터쳤다.

성민을 등지며 북쪽으로 돌아앉고는 두손을 합장하며 머리를 방바닥에 짓쪼았다.

《이 못난 놈을 용서해주시우. 평생의 은혜를 언제 한번 꼭 갚자구 예 와서두 푼전을 모았는데 먼저 가시다니요.》

사설이 길었다.

《제상을 차려야겠지.》

눈굽을 뻑 훔치며 고개를 든 지응석은 옛날 선산묘석에 꿇어앉을 때와 같이 엄숙하면서도 애절한 표정이였다.

성민은 한숨이 나왔다.

《그만두십시오.》

《하긴 지금은 낮이니까 로친네랑 온 다음 하자. 집에 로친네두 늘 네 아버님 소리였다. 늬 아버님만 아니면 우리는 몇십년전에 상거지가 되여 어느 다리밑에서 썩어졌을게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지응석의 도박빚은 거의나 아버지가 물어주었고 거덜난 살림보탬도 아버지가 해주었다.

《이보게, 잠간 역사를 합세.》

지응석은 느닷없이 일어서더니 반짇고리에서 한장의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건 뭡니까?》

《별거 아닐세. 여기에 몇자 적고 지장을 찍으라는거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나. 북에서 온 사람들은 죄다 빨갱이간첩으로 몰아치우는 판에 가짜긴 하지만 자수서를 미리 써놓자는거야. 그래야 어떤 놈팽이든지 냄새를 맡고 찾아들더라도 자, 난 이제 찾아갈려던 참이올시다 하면 만사 오케이거던.》

성민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아주바이, 차라리 나를 고발하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집에 〈빨갱이〉가 와있다고.》

《아― 아니, 이 무슨 소릴…》

지응석의 낯이 까맣게 죽어들었다. 성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나꾸챘다.

갈가리 찢겨진 종이쪼각들을 멍하니 보던 지응석은 불시에 성민의 손을 와락 그러잡았다.

《이 사람아, 난 임자넬, 자네 아버님을 봐서 더욱 그런거야. 아버님이 가셨는데 자네까지 잘못되면 내가 자네 선친과 조상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나.》

성민은 숨이 막혔다.

눈물코물을 훔치며 종이쪼각을 줏고있는 지응석의 가긍한 정상에 분기를 눌렀다.

《태민형이 군대에 끌려간건 언제랍니까?》

《엉, 그거… 국군이 락동강너머까지 밀려갔을 때라구 해. 한데 그에 대해선 말하길 싫어하니 더이상 듣지 못했어.》

50년 9월?!… 약간한 안도감에 큰숨을 내쉬였다. 그땐 남조선에서 로약자와 소년들한테까지 강제로 총을 메울 때였다.

(그래, 강제징집령으로 어쩔수없이 끌려들었을것이다.)

《아주바이, 게 좀 앉으십시오.》

《자넨 날 원쑤취급하자는건 아니겠지.》

《허허, 저를 어찌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긴 괜히 해보는 소리지. 임자야 소시적부터 마음이 착하기가 비단결이였어.》

《아주바이, 제 처사는 마음씨라기보다 공화국정책이 이렇기때문입니다.》

《그래, 공화국정책이야 정말 좋았지. 이건 나처럼 머저리짓을 해서 온 사람들 거개가 하는 소리야.》

《형님은 어떻습니까?》

성민의 눈빛이 반짝이는것을 본 응석은 안심어린 기색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도 같다고 봐야지. 그런 얘긴 못해봤네만 내 눈이야 못 속이지. 아까두 말한것처럼 그 사람 마음은 자네들한테 가있어. 혹시 자넨 그 사람과 회계를 보자고 온것은 아니겠지. 국군 장성이니 공화국에서야 첫째가는 원쑤로 볼것 아닌가.》

《그건 사실입니다.》

《아니, 그럼 자넨 그와 진짜 해보자고 왔다는것인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성민의 말에 응석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그럼 못쓰네, 못써. 자네야 어릴적부터 형을 끔찍이 따르지 않았나. 태민이도 자네라면 오금을 못썼고…》

《아주바이.》

성민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사실 제가 온것도 바로 그 정때문입니다. 영영 남남이 될것 같고 원쑤지간처럼 될가봐 온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성민이가 누구라고―》

지응석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여올랐다.

성민은 태민을 만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아주바이가 우리 가문래력을 말씀하시니 하는 소리입니다만 전 그전처럼 친척간의 정분을 살리자고 온것입니다.》

《그럼 해방직후처럼 그 사람을 북에 가게 하자는건가?》

《허허, 북남이 갈라진 속에서 어찌 그리로 가며 제가 가자고 한들 형님이 들을상싶습니까.

제가 바라는건 형님이 더이상 미국놈의 총대잡이가 되지 말고 인간된 도리를 지켜달라는것입니다. 그리고 적으나마 통일을 위해서 힘써주고… 그 통일이란 우선 우리 친척들부터 정을 살려 마음과 손을 맞잡는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아주바이도 그렇게 해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지응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심한 눈길로 성민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난 일찍부터 자네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줄 알았네. 훌륭한 말이야. 암, 훌륭하구 말구. 통일을 하려면 정을 살리구 마음을 합쳐야 한다. 옳지, 옳구말구. 가까운 친척들부터 온 나라 사람모두가 그렇게 되면 통일은 될거야. 나야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페물이지만 태민이야 다르지. 큰일을 칠수 있어. 사람두 돼먹었구, 인정있구 의젓하고… 하긴 거야 우리 가문모두가 그렇지. 하나같이 어질구 의좋구 화목하구―》

지응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무릎 더 가까이 친절히 마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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