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판치는 《유신》망령

 

그 무슨 《새로운 변화》를 운운하면서 《대통령》자리에 들어앉은 현 괴뢰집권자가 출발부터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희망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그토록 열변을 토하더니 《유신》의 구시대로 후진하고있는것이다.

세월은 전진하는데 력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가는셈이다.

박근혜《정부》 7개월을 파헤쳐보면 시작부터 《유신》의 악취가 물씬물씬 풍겨온다.

대표적으로 현 괴뢰집권자가 늘쌍 들고다니는 구호나 《정부》구성방식 등을 놓고보아도 《유신》시대의 부활이라는 비난을 피할수가 없을것 같다.

취임전부터 현 집권자의 입에 묻어다니는 말들이 있었다.

《국민안전》, 《경제부흥》, 《한강의 기적》, 《새마을운동》, 《잘 살아보세》…

이것은 《유신》독재시대의 상징어들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유신》시대의 소위 《경제성장》에 대한 대표적인 은유이다.

지난 2월에 있은 《대통령》취임사에서 괴뢰집권자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네번씩이나 반복하였다고 한다.

연세대학교의 김호기교수는 《박근혜대통령이 이 말을 수차례 되풀이한것을 보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아버지시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것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다.》고 하면서 보수세력에게 있어서 박정희시대는 재현하고싶은 《영광의 20년》일수 있지만 진보세력에게 있어서 박정희시대는 돌아가고싶지 않은 《고뇌의 20년》이라고 못박았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새마을운동》에 깔린 정치적욕망도 위험한것이다.

1973년 11월 21일 제1차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라는데서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은 10월유신의 리념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도장》이라고 말했으며 앞서 같은 해 년두기자회견에서는 《10월유신이라고 하는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것은 곧 10월유신》이라고 고백한적이 있다.

남조선의 한홍구교수는 《박정희의 유산을 이어받으려는 박근혜대통령이 가장 주목하는것은 새마을운동》이라면서 《감히 제2의 5. 16을 하겠다거나 제2의 유신을 하겠다고 말할수 없는 박근혜대통령이 내세울수 있는 박정희표정치는 제2의 새마을운동뿐》이라고 단언했다. 리용기교수도 《유신체제가 박정희시대에서 우연한 일탈적국면이 아니라 박정희시대의 궁극적귀결이자 집약적표현이라고 한다면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열광의 리면에는 유신체제에 대한 잠재적욕망이 감추어져있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현 집권자가 제창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놓고 《제2의 박정희정부》출범의 우회적선언이라고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것이 우연치 않다.

현 괴뢰집권자의 《정부》구성방식을 뜯어보아도 《유신》독재정부를 방불케 한다.

박근혜패당이 지난 1월 《정부조직개편안》이라는것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놓고 언론, 전문가들속에서 현 집권자의 청와대조직개편은 행정분야는 총리, 경제분야는 부총리, 정무분야는 청와대비서실 실장, 안보분야는 《국가안보실》 실장에게 맡겨 이들을 통해 직할통치를 실현해보려는 의도를 반영한것이라고 하면서 《청와대를 통해 직할통치를 실시했던 박정희의 4공화국과 비슷한 구조》라는 비평이 울려나온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있다.

현 괴뢰집권자의 취임이후 《유신》시대에 처음 도입, 시행되였다가 페지된 기구들이 잇달아 되살아나고있는것도 스쳐보낼수 없는 일이다.

얼마전 괴뢰국방부가 군장병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인 《국방정신전력원》을 년내에 설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박정희때인 1977년에 설립되였다가 1998년에 페지된 이후 15년만에 군정신교육전담기관이 부활하는것이다.

괴뢰군의 정신교육강화를 전담하는 이러한 기관을 부활시키는것을 놓고 군장병들에 대한 《사상검증》을 강화하는데 악용될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유신》시대로의 회귀라는 비난이 제기되고있다.

이외에도 현 집권자가 2차에 걸쳐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라는것을 두드려보아도 1963년도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출발점으로 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박정희는 1979년 죽을 때까지 이 회의를 거의 매달 열었지만 이후《정부》에서는 간헐적으로 개최되다가 2009년에 사라져버렸던것이다.

1976년에 처음 시작되였다가 1995년에 페지된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도)》이라는것도 지난 3월 18년만에 부활의 기회를 맞이하였다.(《경향신문》 2013년 8월 12일 참조)

남조선의 각계층은 《현시대에는 필요하지도 않는 구시대유물에 예산과 조직만 랑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러한 《유신》잔재복귀놀음에 침을 뱉고있다.

현 괴뢰집권자의 《유신》부활책동은 《유신진영》을 조작하기 위한 인사사업에서 보다 로골적으로 감행되였다.

《수첩공주》, 《유신공주》라는 별명이 호신부처럼 붙어다니는 현 집권자에게 있어서 당선후 단행한 인사사업이야말로 그 수법과 내용에 있어서 갈데 없는 《유신》복귀놀음의 기본장이였다.

우선 그 수법에 있어서 불통과 고집으로 일관된 독판치기인사, 박정희식인사였다.

현 괴뢰집권자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도 안된 상황에서 장관내정자부터 먼저 발표해버림으로써 독단주의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독주를 부렸다.

그러나 이러한 독주는 시작부터 갖가지 장애물에 걸치여 누데기가 되다싶이 하였다. 페쇄적인 인사조치가 부실검증으로 이어졌던것이다.

첫 인선이였던 김용준 《국무총리》후보자가 재산증식, 두 아들의 병역면제의혹으로 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자진사퇴하고 리동흡 《헌법재판소》 소장후보자도 개인비리로 물러나는 등 새 《정부》의 주요고위직에 내정한 인물들이 인사검증에서 쫄딱 벗기우고 줄줄이 자진사퇴하는 바람에 현 집권자는 그만 궁지에 빠져들고말았다.

지난 3월말까지 현 집권자가 내정한 후보자들중에서 부정부패행위와 자격미달 등으로 중도사퇴한 사람은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를 비롯하여 7명이나 되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 비서관까지 계산하면 무려 12명에 달하였다.

그야말로 야당이 자진사퇴하거나 청문회문턱을 넘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들로 《락마축구팀》이라는것을 무을 정도로 되였다고 손벽을 치며 야유할만도 하다.

력대 집권자들이 《정부》를 구성하면서 2~4명의 후보자가 부정부패행위가 드러나 물러난적은 있지만 현 《정부》에서처럼 무리로 나떨어진적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야당들은 《대통령의 불통, 나홀로 수첩인사, 구멍난 인사체계가 빚어낸 대형참사》라고 하면서 현 집권자가 인사실패에 대해 국민앞에 사과하고 청와대인사팀을 전면교체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들이댔으며 언론,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의 인사실패는 리명박정부에 비해 량적, 질적면에서 더 심각하다.》, 《박근혜정부가 인사실패로부터 시작해 초불집회를 겪으면서 급격히 추락한 리명박정부의 전철을 밟을수 있다.》고 현 집권자의 어두운 앞날을 앞질러 계산하였다.

지어 《새누리당》관계자들까지도 《대통령의 인사방식문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인사실패를 자초한 청와대는 반성해야 한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체계를 강화하고 책임있는 관계자는 문책해야 한다.》고 내놓고 비난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결코 고분고분 물러설 박근혜가 아니였다.

인사파동으로 인한 아비규환속에서도 현 괴뢰집권자는 자기가 선출한 후보자들에 대한 임명을 어떻게 하나 실현시켜보려고 자신의 특기인 고집과 강행으로 맞서나갔던것이다.

김용준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하여 명확한 흠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없는 의혹을 몰아붙이는데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언론의 검증을 탓하면서 사퇴를 극구 만류한것을 비롯하여 부정부패 등 각종 의혹으로 물러난 김병관 국방부 장관후보자, 공금류용혐의 등으로 사퇴한 리동흡 《헌법재판소》 소장후보자에 대해서도 현 집권자는 신임의 뜻을 보이며 마지막까지 비호두둔하였던것이다.

그후 야당이 극구 반대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와 리경재 방송통신위원장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을 강행하였고 특히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후보자는 심각한 자질부족문제로 하여 야당은 물론 여당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임명을 실현시키는 독선을 부렸다.

남조선의 어느 한 교수가 《인사가 만사인데 박근혜는 멋대로 종횡무진 돌진하고있다. 공직자인사에 관하여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은 명확한 흠결이 드러나도 감싸며 버티도록 종용하고 껄끄러운 대상은 빌미를 잡아 사실상 사퇴를 종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라고 질타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지금도 론난의 핵심으로 되고있는 현 괴뢰집권자의 이러한 《밀봉인사》, 《나홀로 인사》방식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박정희시대의 그것과 판박이라고 평하고있다.

박정희도 《대통령》시절 혼자만의 인사수첩을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때 당시 박정희의 인사수첩은 《염라대왕의 수첩》이라는 뜻의 일본말 《엔마초》라고 불리웠다.

박정희에게 발탁되여 정계에 진출했던 남재희 전 로동부 장관은 지난 2월 《프레시안》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자기 수첩에 〈누구는 쓸만 하다. 누구는 못쓴다.〉라고 다 메모를 해두었고 그것을 살펴서 인사를 했다. 박근혜당선인의 별명이 〈수첩공주〉인데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것 같다. 다만 그렇게 하다보면 인선의 폭이 아주 좁아진다. 널리 인재를 구하는 모습이 없다는것이다. 수첩에 적힌 사람만 가지고 하다보면 좁아질수 밖에 없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오게 하는 대목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유신》체제부활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 집권자의 독재자적근성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다음으로 그 내용을 두드려보아도 현 괴뢰집권자의 인사놀음이 엄연히 《유신》회귀를 추구한 음모라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현 집권자가 내신하였던 후보자들속에 박정희《유신》독재때 깊은 련관이 있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있다.

하기에 인사명단이 발표되자 《제2의 박정희정부》를 보는듯 하다는 의견이 비발치듯 하였던것이다.

현 집권자는 지난 2월 18일과 19일 량일간에 걸쳐 청와대비서실장과 9명의 수석비서관들을 임명하였는데 행정부를 대부분 명망도 없고 실적도 별로 없는데다가 시키는 일만 수걱수걱 하는 《멍부형관료》(멍청하지만 부지런한 관료)들로 꾸린 반면에 청와대비서실은 최측근들과 해당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예스맨》(귀만 있고 입은 없는 심복을 뜻함.)들로 구성하였다.

이것은 그가 자기 손발에 힘이 가지 않아도 자신의 《유신》체제부활을 위하여 생각하는대로 착착 움직여줄 일명 《충신파》들로 측근들을 꾸리는데 힘을 넣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비록 심각한 부정부패현상으로 물러났지만 현 집권자가 할수 있는껏 밀어준 김병관 괴뢰국방부 장관후보자가 박정희, 륙영수의 사진을 부착한 휴대전화고리를 늘쌍 달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여 론난을 빚은적이 있다는 단 한가지 사실에서도 박근혜내각의 진영상태를 다시금 잘 알수 있다고 본다.

특히 비서실장이였던 허태렬은 박정희《정권》때부터 청와대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현 집권자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근 40년동안이나 정치고락을 같이하면서 《친박맏형》으로 불리워온 인물이며 정무수석비서관이였던 리정현도 2004년부터 현 집권자의 《정치적경호실장》으로 자처해온 최측근이다.

또한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이였던 최성재를 비롯하여 나머지 8명의 수석비서관들 역시 박정희때부터 현 집권자와 인연을 맺었거나 오래동안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그를 도와나섰던자들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언론, 전문가들은 《1970년대 박정희의 독재통치방식을 모방한것》, 《직할통치의 신호탄》, 《제왕적대통령제의 부활》, 《강한 청와대, 약한 내각》, 《책임총리제공약은 허울만 남았다.》라고 개탄하였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유신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는 김기춘이 청와대비서실장자리에 올라앉아 사람들을 아연케 하였다.

김기춘의 인선과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기자는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시절부터 함께 해온 세력과 같이 가야 안심이 된다는 판단, 그러니까 박정희대통령시대의 국가리념, 국가이데올로기를 제대로 한번 실행해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김기춘실장을 발탁한게 아니냐는것이지요. 그래서 그 녀자의 멘토단인 〈7인회〉의 좌장격인 김기춘실장을 정치 한복판으로 불러냈다는것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치는 〈유신의 부활〉 혹은 〈유신의 완성〉을 위해 〈김기춘식세계관의 정치가 복원될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집니다.》라고 울분을 토로하였다.

남조선의 한 교수는 《김기춘실장은 정수장학회, 유신, 간첩조작, 지역감정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로 볼수 있는 인물》이라면서 《이것은 박근혜대통령이 력사를 거꾸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한것이나 같다. 반력사적인사》라고 현 집권자에 대한 혐오감을 분출하였다.

《권력의 2인자》로 올라선 김기춘을 비롯하여 《국가안보실》 실장 김장수, 경호실장 박흥렬, 민정수석비서관 홍경식 등 청와대 핵심참모의 대부분은 괴뢰륙군사관학교출신이거나 공안검사출신의 극우보수집단이다.

이들은 과거 박정희《유신》독재처럼 야당이건 진보세력이건 《정권》에 도전하는 세력은 무자비하게 짓눌러놓아야 한다고 떠들고있으며 그로 하여 청와대안에 강경분위기가 횡행하고 야당과의 타협을 주장하던 온건파들은 쑥 움츠러들어 찍소리도 못하고있는 형편에 처하였다고 한다.

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이번 김기춘의 임명으로 각계의 조명을 받고있는것이 이른바 《7인회》로 불리우는 박정희독재시기의 《유신》잔당들이라는것이다. 《7인회》의 성원들을 본다면 김기춘을 비롯하여 김룡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국회의원》,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강창희《국회의장》이라고 한다.

여론은 괴뢰집권자의 인사사업에서 바로 이 《〈7인회의 그림자〉가 지속적으로 아른거린다.》는 의문을 계속 제기하고있다.

실지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은 안병훈의 고등학교 후배이고 류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선후배관계로 얽혀있다고 한다. 또 정홍원《국무총리》는 김기춘의 경남중학교 후배이며 륙군사관학교 25기인 강창희는 28기인 박흥렬 경호실장, 국방부 장관후보자였던 김병관, 김장수 《국가안보실》 실장(27기), 남재준 정보원 원장(25기)과 하나의 선을 형성하고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현 집권자의 인사놀음이야말로 《유신》회귀를 노린 사전준비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것이다.

현실은 독재자의 혈통을 타고난 현 괴뢰집권자와 청와대안의 강경파들의 리해관계가 일치되여 야당과의 정면대결, 민주주의말살을 노린 《유신》체제부활로 나가고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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