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국통일은 최대의 애국
조국통일대강 제시
견결한 통일의지
조국통일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 있어서 한순간도 잊으신적이 없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지면서 철석의 신념과 의지로 발현된 최대의 애국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 조선은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여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조선만을 생각하지 두개의 조선은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조선민족은 둘로 갈라져서는 살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습니다.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입니다. <조선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이며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시였던 철석의 통일의지이고 애국의 최고표대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우에서 한피줄을 이으며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 단군의 혈통을 이어온 우리 민족이 력대로 살아온 강토는 하나였지 결코 둘이 아니였습니다. 지리적개념뿐아니라 5천년을 내려오면서 한피줄을 이어왔다는 사회력사적개념으로 보아도 조선은 부정할수 없는 오직 하나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지고 국토가 분렬되게 된것은 우리 민족이 바라서도 아니며 우리 민족내부의 갈등이나 분쟁에 의한것도 아닙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의 분렬은 세상이 다 아다싶이 외세의 지배와 간섭의 산물인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통일은 민족최대의 숙원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남조선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전국적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며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민족적단합을 실현하는 문제이라는 고전적정식화를 내리신것도 바로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이며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여야 한다는 투철한 견해와 관점,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였기때문입니다.
《참된 애국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속에 있다.》, 《조국통일은 곧 애국이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최대의 애국투쟁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통일관이 담겨진 이 고귀한 명언들도 그이의 하나의 조선에 대한 철석의 통일의지에 기초한것으로서 민족분렬의 비극을 겪고있는 민족성원모두에게 삶의 투쟁구호를 밝혀주고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모든것을 다 바쳐야 한다는 인생의 고귀한 진리를 깊이 새겨주고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대의 애국적인 행동은 조국과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의 불행과 고통을 가시기 위한 투쟁에 용약 떨쳐나서는데 있습니다. 더우기 하나의 국토와 민족이 둘로 갈라져 분렬의 고통을 겪고있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애국은 나라와 민족의 분렬을 놓고 가슴아파하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나가는데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령도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사활적인 문제로 제기됩니다. 그것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국토분렬, 민족분렬을 하루빨리 끝장내는것이야말로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민족사적인 과업이기때문입니다.
하기에 1980년대초에 《조선은 하나다!》라는 시대의 구호에 자신의 조국통일의지를 담으시면서 민족의 분렬을 더없는 아픔으로 여기며 조국통일위업에 마음과 뜻을 둔 사람이라야 애국심을 가지고있다고 말할수 있으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사람만이 애국자이고 혁명가라고, 모든 일군들의 사색과 활동은 조국통일과 잇닿아있어야 한다고 천명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앞에 지니신 숭고한 력사적사명감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낮과 밤이 따로없이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였습니다.
주체64(1975)년 2월 16일, 위대한 장군님의 뜻깊은 탄생일에 있은 일입니다.
이날도 보통날과 마찬가지로 사업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밤이 퍽 깊어 어느 한 단위의 일군들을 찾으시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어쩔바를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보고싶어 찾아왔다고, 오늘 밤을 동무들과 함께 보내려 한다고 하시며 조국통일문제를 의논해보자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먼저 일군들의 건강과 사업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일이 바로 조국통일이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위업이 간고하고 어렵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기본이라고, 이 세상에 사람이 못할 일이 없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잠시 동안을 두시고 일군들을 둘러보신 장군님께서는 나는 동무들을 볼 때마다 남조선인민들이 보고싶다고, 정말 남조선인민들이 그립다고,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나서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시여 저 멀리 남쪽의 밤하늘가를 이윽토록 바라보시였습니다.
뜻깊은 그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조국통일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의논하시다가 새벽녘에야 자리를 뜨시였습니다.
1980년 여름 어느날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우리는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며 일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아침에 깨여나도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고 저녁에 잠들 때에도 통일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의 이 말씀은 민족분렬의 비극을 안고 사는 우리 민족성원모두에게 참된 애국의 자세와 립장이 어떤것인가를 깨우쳐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을뿐아니라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한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안으시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 끝없는 사색과 로고를 기울이시는 자신의 절절한 심중의 토로이기도 하였습니다.
조국통일을 어느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될 력사적위업으로, 최대의 애국으로 간주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견결한 통일의지는 위대한 수령님 서거이후 조국통일유훈관철이라는 철석의 사명감과 더불어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조국통일을 민족최대의 숙원으로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한평생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조국통일의 구성이시였습니다.
외세의 강요에 의해 민족분렬의 비극이 시작된 그때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시도 조국통일에 대해 잊으신적이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는 그날까지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신 문제가 바로 조국통일문제이며 생애의 마지막친필로 남기신 문건 역시 조국통일과 관련된 문건이였습니다.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여 나라의 통일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것, 바로 이것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더더욱 무겁게 새겨안으신 력사적사명이고 책임감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통일의지가 얼마나 확고부동한것인가 하는것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직후에 있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습니다.
1994년 7월 8일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갑자기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였습니다.
수령님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조용히 찾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절절한 음성으로 수령님께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문건을 보시고 1994년 7월 7일 날자와 존함을 활달한 필체로 쓰신것이 마지막 비준문건이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비준하여주신 귀중한 문건을 잘 보관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문건으로 말하면 1994년 7월말에 평양에서 열리게 되여있던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문건이였습니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도량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결단에 의하여 1994년 6월 판문점에서는 북과 남사이의 최고위급회담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할데 대한 북남합의서가 채택되였으며 이것으로 하여 온 겨레는 환희와 격정에 휩싸여있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겨레에게 조국통일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안겨주실 구상을 안으시고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열리게 된 최고위급회담의 준비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으며 생애의 마지막날 밤에도 자신의 건강은 돌보시지 않으신채 북남최고위급회담관계문건을 자자구구 따져가시며 보고 또 보시고 활달한 필체로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친필을 남기시였습니다.
이 귀중한 력사적문건을 잘 보관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당부에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통일문제때문에 로고에 로고를 다 바쳐오신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조국통일령도업적을 철저히 고수하고 영원히 빛내이시려는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가 어려있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중대보도가 나간 7월 9일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중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당시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심으로써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자연히 할수 없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운명과 전도에 대하여 생각하시였습니다. 그이의 심중에는 그토록 환희에 휩싸여 기대와 희망을 안고 북남최고위급회담을 기다려온 온 겨레가 받게 될 좌절과 실망이 헤아려지셨고 그것으로 하여 장군님께서는 더욱 가슴이 아프시였습니다.
민족의 운명, 조국통일문제해결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놓으실 의지를 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중단하고 손맥을 놓고있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할데 대한 전화통지문을 남조선당국에 보낼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7월 9일과 10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므로 11일에 전화통지문을 보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공화국정부는 7월 11일 오전 10시 사정에 의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한다는것을 전화통지문으로 남측에 공식통고하였습니다.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천명하는 애국애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이 중대조치는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받들어 나라의 조국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 서거 100일중앙추모회가 거행된 1994년 10월 16일에도 수령님의 위업을 계승완성하며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데서 조국통일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것은 수령님의 유훈이며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잘살도록 하려는것이 수령님의 뜻이였다고,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여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꽃피워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을 밝혀주시면서 조국통일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시였습니다.
그 나날 장군님께서는 지금단계에서는 잘살겠다는 생각보다 조국통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로 지향시켜야 한다고,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겨 수행하기 위하여 더 긴장하게, 더 책임적으로,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가르치심도 주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시려는 장군님의 투철한 의지는 1995년 7월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돐 추모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녀사를 만나주신 자리에서 더욱 뚜렷이 표명되였습니다.
조선치마저고리차림으로 백발을 날리며 김일성주석의 령전을 찾아온 고령의 박용길녀사를 뜨겁게 맞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녀사가 문익환선생과 같이 수령님의 령전에 인사를 올리는 심정으로 선생이 수령님을 만나뵈올 때 꼈던 안경과 반지를 몸에 소중히 품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감동되였다고, 자신께서는 녀사가 혼자 온것이 아니라 문익환선생과 함께 왔으며 두분이 수령님께 올리는 남녘인민들의 인사를 안고 온것으로 생각하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습니다.
《… 남녘동포들이 보고싶습니다.
나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통일을 위해 김정일이 있습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여 민족의 최대숙원을 풀고 우리 민족을 세상에 보란듯이 내세우시려는 애국애족의 통일의지가 담겨져있었습니다.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실 위대한 장군님의 통일의지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 사회주의수호전의 나날 더욱 굳건하고 확고부동한것으로 되였습니다.
조국의 최전연초소들을 찾아 끊임없는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나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96년 11월 24일 새벽 통일의 새 아침을 앞당겨올 철의 의지를 안으시고 판문점을 찾으시였습니다.
옛적부터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길손들이 쉬여가는 이름없던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이곳에서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미제의 패전과 공화국의 승리를 선포하는 력사적인 조선정전협정조인식이 엄숙히 진행된 이후 세계가 아는 유명촌으로 되였습니다. 거기에다 이때로부터 하나의 분리선을 경계로 하여 북남쌍방이 치렬하게 대치되게 됨으로써 이곳은 민족분렬의 참상을 적라라하게 보여주는 분렬의 상징으로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다른 전연지대와는 달리 가느다란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적아가 직접 맞붙어 총부리를 겨누고있고 항상 첨예한 대결기운이 서려있는 최전연, 최전방인 판문점과 그 일대에는 그해 11월에 접어들면서 남조선당국의 《남북페쇄정책》과 광란적인 군사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초겨울의 찬기운과 더불어 다치면 터질듯 한 초긴장상태가 감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군들은 장군님께 이러한 판문점에만은 나가시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말씀드렸지만 그이의 결심은 확고하였습니다.
안개자욱한 판문점에 도착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찾으신 곳은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친필비였습니다.
이 친필비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통일을 위해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신 수령님의 한생의 업적을 조국통일사에 길이 전해가도록 하기 위해 수령님께서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친필을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에 비문으로 새겨 세우도록 하신것입니다.
비문판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남기신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생애의 마지막친필이 새겨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문판아래 목란꽃장식부분 웃단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문건에 생애의 마지막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사적비문이 새겨져있었습니다.
형언할수 없는 감회를 안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친필비문앞에 서시여 비에 새겨진 활달한 글발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나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추억깊은 어조로 나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 념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자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리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 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것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어 판문각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대에 나서시여 군사분계선 남쪽을 근엄한 눈길로 바라보시였습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절감하시며 오래도록 멀리 남녘땅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여기서 서울까지는 불과 40㎞밖에 안된다고, 평양까지 가는 거리의 4분의 1도 못된다고, 우리는 서울, 부산, 제주도에도 나가보아야 하겠는데 조국통일이 안되다보니 지금은 여기서 부득이 멈춰서게 된다고 비장한 어조로 말씀하시였습니다.
남녘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걸음을 옮기시여 다시금 친필비앞에 이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친필비앞에 이렇게 서니 생각되는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위업에 바치신 수령님의 로고를 감회깊이 추억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를 내놓으면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한생이였다고 할수 있다고, 우리는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선언하시듯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였는데 나는 조국을 통일하고 통일된 조국을 우리 인민들에게 반드시 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후 1990년대의 마지막해들과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 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통일의 열풍이 삼천리강산에 세차게 몰아치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경이적인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나는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시대가 펼쳐지게 된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력사의 그날 판문점의 통일친필비앞에서 표명하신 철석의 통일의지가 결코 빈말이 아니였음을 현실로 증명하였습니다.
조국통일3대헌장의 정립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통일의 진로를 밝혀주는 조국통일대강들을 제시하시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실현해나갈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여 주시였습니다.
우리 민족지상의 과업인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한치의 드팀도 없이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원칙과 방도를 밝히는것은 조국통일운동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로 됩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외세에 의해 반세기이상 강요된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국토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어렵고도 중대한 민족사적과제입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들고나가야 할 뚜렷한 사상과 리념, 투쟁목표와 실현방도를 제시하여 온 겨레에게 통일의 대강을 환히 밝혀주는것은 조국통일실현의 근본전제로, 확고한 담보로 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사상을 추호의 드팀도 없이 변함없이 계승하며 나라의 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겨올수 있는 통일방략들에 대한 구상을 더욱 무르익히시여 마침내 조국해방 52돐을 며칠 앞둔 주체86(1997)년 8월 4일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발표하시였습니다.
애국애족의 철리가 담겨진 로작의 글줄마다에는 온 겨레의 통일기운을 다시금 불러일으켜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실현해나가시려는 장군님의 철석의 의지가 흘러넘쳤습니다.
로작은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반세기투쟁력사를 총화하고 탁월한 사상과 령도로 조국통일위업을 개척하고 승리에로 이끄시여 통일의 튼튼한 토대를 닦고 그 밝은 전망을 열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였으며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근본원칙들과 방도들을 명시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령도업적을 총괄하시면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정립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판문점현지지도때에 수령님의 통일친필비앞에서 조국통일3대헌장에 대하여 언급하시였었습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와 심혈을 돌이켜보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로선과 방침, 방안과 제안들을 몸소 구상하고 작성하시였으며 그것을 해마다 보고와 연설, 담화를 통하여 천명하시였는데 그 수는 수백건에 달할것이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도 다 우리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침들이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던것입니다.
로작에서 장군님께서는 그날에 언급하시였던 조국통일3대헌장의 심오한 내용을 전면적으로 폭넓게 심화시켜 전개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갈수 있는 근본립장과 근본방도를 천명한 조국통일의 초석이며 민족대단결의 목표와 리념적기초, 단결의 원칙과 방도가 전면적으로 명시되여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온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여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이며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라는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시였습니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룩하신 고귀한 경험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의 3대헌장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령님께서 밝히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정식화해주심으로써 수령님의 조국통일사상과 업적을 변함없이 계승하며 하루빨리 분렬된 조국을 통일할수 있는 통일의 대강이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헌장이란 정치적으로 또는 법률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문건에 부여하는 명칭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국제조약이나 국가정책, 사회적요구를 성문화한 문건에 붙여온것입니다. 헌장은 다른 문건들에 비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특별히 크며 그 리행에서 공동행동을 보장하여야 할 의무성을 띱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규정하신것은 조국통일운동의 방향과 리정표를 뚜렷이 아로새긴 력사적사변으로 됩니다.
사상과 리념, 정견과 사회제도를 초월하여 이룩해야 할 최고의 민족적인 과업인 조국통일위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해나가자면 민족성원 누구나 받아들일수 있고 누구나 의거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원칙적이며 공통된 헌장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한 방략이 있어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어느 한 계급,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북과 남, 해외의 전민족적인 힘을 모아야 할 거족적인 위업으로서 각계각층의 민족성원모두가 하나같이 나라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실현될수 있습니다. 전체 조선민족이 스스로 접수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민족공동의 대헌장이 있어야 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립해주신 조국통일3대헌장에는 민족공동의 지향과 요구, 민족성원모두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수 있게 하는 조국통일의 근본원칙들과 방도들이 뚜렷이 명시되여있습니다.
이 근본원칙들과 방도들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실현해나간다면 서로 다른 사회제도에서 반세기이상이나 서로 다른 리념을 가지고 살아온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조국통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보조를 같이하고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풀어나갈수 있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립하신 조국통일3대헌장이 가지는 력사적의의가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계속하여 김일성주석의 필생의 뜻을 받들어 어떤 정세와 환경속에서도 조국통일3대헌장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실현해나갈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표명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근본문제들을 과학적으로 명시하시였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해결하며 온 민족이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굳게 뭉쳐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마련하며 조국통일을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하며 련방제방식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당면하여 북과 남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원칙적문제들도 밝혀주시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통일문제, 민족문제해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전면적인 해답을 주고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할수 있는 진로를 밝힌 새로운 통일대강으로서 분렬의 어둠을 가르는 통일의 밝은 홰불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사상과 로선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여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한 이 불멸의 통일대강이 제시됨으로써 조국통일운동을 더 활력있게 전개해나갈수 있는 근본지침이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민족대단결5대방침의 제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변함없이 들고나갈 강령적지침인 조국통일3대헌장을 정립하신데 이어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제시하시여 온 겨레의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추동할 지도적지침을 마련하여주시였습니다.
온 민족의 대단결은 조국통일의 기본전제이며 천하지대본입니다. 민족의 대단결속에 조국통일이 있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나가는 과정이 곧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나가는것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굳게 묶어세워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1998년 2월 남조선에서는 민주를 표방하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앉게 되였습니다.
일일천추로 통일을 갈망해온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남조선에서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동족사이에 대결과 반목이 아니라 화해와 단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민족의 이러한 지향과 념원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해 2월 4일 공화국 정당, 단체련합회의를 열고 북과 남이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민족의 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에 따라 2월 18일 평양에서 열린 공화국 정당, 단체련합회의에서는 북과 남이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민족의 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고 남조선 정당, 단체들에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많은 시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에 새로 들어앉은 《국민의 정부》는 이른바 《해볕정책》이라는것을 들고나오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바라는 겨레의 념원과 기대에 그늘과 실망을 던지고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인 주체87(1998)년 4월 18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 50돐기념 중앙연구토론회 참가자들에게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를 보내주시였습니다. 서한은 위대한 장군님의 새로운 민족대단결총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김일성주석께서 독창적인 민족대단결사상을 제시하시고 우리 민족의 단결을 위하여 한평생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신데 대하여 밝히시면서 수령님께서 남기신 민족단합의 위대한 사상과 업적, 풍부한 경험과 전통을 고수하고 드팀없이 계승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며 우리 대에 조국을 통일하시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천명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높이 받들고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의 대단결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하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또한 김일성주석의 민족대단결사상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심화발전시킨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하며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온 민족이 단결하며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며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며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래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련대련합을 강화하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있습니다.
민족대단결5대방침에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원칙과 사상정신적기초, 그 실현을 위한 요구와 과업, 방도들이 과학적으로 명시되여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대단결5대방침에서 민족문제의 본질과 민족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에서의 력사적교훈을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민족자주를 민족대단결의 근본원칙으로 다시금 명확히 확정하시면서 민족자주의 원칙이야말로 민족문제해결의 핵이고 전민족대단결의 기초의 기초이며 애국애족과 매국배족, 통일로선과 분렬로선을 가르는 시금석이라는것을 강조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우리 민족특유의 애국애족의 정신과 조국통일의 열망을 온 민족의 대단결을 위한 튼튼한 사상정신적기초로 내세우시고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현실적조건에서 온 민족이 지지하고 공감하는 단결의 리념은 바로 애국애족과 조국통일이라는것을 철의 론리로 밝히시여 민족공동의 기치, 전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뚜렷이 해명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대단결5대방침에서 남조선당국자들이 정책전환을 하여 반공화국대결정책을 련북화해정책으로 바꾼다면 북남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발전하게 될것이며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될것이라는 원칙적립장을 명백히 밝히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와 함께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거족적인 투쟁으로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근원인 외세의 지배와 간섭, 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의 반통일정책, 민족분렬책동을 반대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며 북과 남의 당국을 포함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 각계각층 인사들과 인민들, 해외동포들이 광범히 참가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쌍무적, 다무적인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키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북과 남, 해외가 서로 지지하고 보조를 같이하면서 공동행동을 벌릴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민족대단결실현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의 민족대단결사상을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심화발전시킨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며 그 실현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기울이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위대한 민족대단결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강입니다.
여기에는 민족의 대단합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이룩해나가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아량이 맥맥히 흘러넘치고있습니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여당과 야당인사들, 대자본가, 군장성들도 민족공동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들과도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단합할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대화의 폭을 넓히고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놓겠다는 그이의 통일의지, 민족대단결의지를 담고있는것으로 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과 함께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서 출발하여 그 어떤 계급이나 계층의 리해관계나 지역적리익보다 민족의 리익을 우선시하는 애국애족의 경륜입니다. 또한 그것은 반세기이상이나 지속되여온 민족내부의 대결을 끝장내고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해나갈수 있게 하는 위대한 통일대강입니다.
바로 여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민족대단결5대방침이 가지는 무한한 생활력과 거대한 무게가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제시하심으로써 민족의 단합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박한 요구로 나서고 통일운동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심화발전되고있던 현실적요구에 맞게 온 민족의 대단결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고 조국통일투쟁을 힘있게 추진시켜나갈수 있는 힘있는 무기가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투철한 민족자주의 원칙과 열렬한 애국애족의 리념, 강렬한 통일의지로 일관된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내외의 일치한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서울과 부산, 광주를 비롯한 남조선 각지의 거리들에는 《애국애족의 한마음으로 민족이 단결할 때 통일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로 될것이다.》, 《온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앞당기자!》, 《김정일장군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은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참다운 민족관이며 애국관이다.》, 《김정일장군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을 받들어 조국통일을 앞당기자!》, 《전민족대단결사상은 가장 현명한 통일방안》이라는 내용의 벽신문들이 나붙어 사람들을 크게 격동시켰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탁월한 조국통일사상과 풍부한 실천적경험에 기초하여 정립하신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관철하고야말 단호한 결심, 철의 의지와 신념을 내외에 천명한 김정일시대 통일정책선언이였습니다.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통일의 대강으로 제시하시여 온 겨레에게 통일운동의 뚜렷한 목표와 방도를 밝혀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투쟁사와 더불어 력사에 영원히 기록될것입니다.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마련
통일애국의 결단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만 가는 분렬의 아픔속에 우리 겨레는 20세기의 마지막해인 2000년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온 겨레는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민족분렬의 비극을 안고 20세기를 마감하게 된 안타까움과 더더욱 강렬해지는 통일에 대한 갈망속에 이해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세기와 세기가 교차되는 이 2000년에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투쟁사에 일찌기 없었던 력사적사변이 일어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자신의 필생의 사명으로 받아안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애족의 대결단에 의하여 이해에 조선반도에서는 온 겨레 아니 온 세상을 충격의 도가니로 끓어번지게 한 특대사변이 펼쳐진것입니다.
새 세기를 눈앞에 둔 주체89(2000)년의 새 아침을 맞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20세기의 비운의 력사를 돌이켜보시였습니다.
20세기 초엽 사대와 부패무능으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40여년세월 식민지노예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민족이였습니다. 해방후 또다시 외세에 의하여 하나의 강토,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진 때로부터 어느덧 55년이 되였습니다.
정녕 우리 겨레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지 못한채 새 세기를 맞아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럴수 없다. 외세에 의하여 망국과 분렬의 년륜을 새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20세기의 민족적비운사에 종지부를 찍고 21세기에 통일번영의 새로운 민족사를 수놓으려는것은 조선민족의 열렬한 지향이고 념원이다. 오늘날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제는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의 분렬과 대결의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새 력사를 창조해나가야 한다.
장군님의 심중에서는 이런 애국의 결심과 구상이 무르익혀지고있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구상과 의도로 2000년 1월초 일군들에게 2000년 새해를 맞으며 신심드높이 일을 더 잘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2000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였으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는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우리는 2000년에 주체성과 민족성을 계속 강하게 들고나가야 하며 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나가야 한다, 우리 나라는 20세기 초엽에 외세의 간섭과 사대매국노들의 외세의존으로 망했고 조국해방후에는 외세에 의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나라가 분렬되여 민족적비운을 겪고있다, 세계에는 우리 나라처럼 오랜 세월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사는 민족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21세기의 문어구에 들어서는 오늘 우리의 생명은 자주이고 자주는 곧 통일이라는 사상을 강하게 들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올해를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는 의의있는 해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조국통일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위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색과 구상은 나날이 더욱 무르익어갔습니다.
그이께서는 2000년초에 들어와 조성된 정세를 예리하게 주시하시였습니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집권상층까지도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집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형세를 환히 꿰뚫어보시며 지ㄴ금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때라고 보시였습니다.
이렇게 세기와 세기가 교체되는 력사의 분기점에서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제끼실 구상을 무르익히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 3월 어느날 백두산지구를 찾으시였습니다.
그 어떤 큰 구상을 하거나 통이 큰 작전을 펴실 때에는 늘 백두산을 찾군 하신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에 도착하신 그날 낮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장군님께서 백두산의 눈바람을 맞으시며 생각하신것은 민족의 운명, 나라의 통일문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에 접하여 온 겨레가 통일에 대한 환희와 격정으로 들끓던 1994년 6월의 잊을수 없는 그 나날들을 돌이켜보시였습니다. 그이의 눈앞에는 우리 인민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엄한 영상이 안겨왔습니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날에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문건에 불멸의 친필존함을 남기시고 우리 겨레가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조국통일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왔다고 하시던 김일성주석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금시 귀전에 울리는것만 같으시였습니다.
…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의 념원, 간곡한 유훈인 조국통일, 그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우리 민족지상의 과제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렬된 민족으로 남아있는 비극의 력사, 치욕의 력사를 끝장내야 한다. 새로운 정세변화가 조성되고있는 지금 겨레의 가슴속에 박힌 분렬의 못을 뽑고 신음하는 조국의 아픔을 풀기 위하여 일대 전환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족분렬 55년을 맞는 민족의 절규이고 갈망이며 시대의 호소이다. …
백두의 눈보라는 더욱더 기승을 부리였지만 분렬의 얼음장을 삽시간에 녹여버릴 이렇듯 뜨거운 애국애족의 열기가 장군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암마냥 끓어번졌습니다.
통일을 위한 대용단을 구상하시며 격동의 래일을 그려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은 북남최고위급회담개최라는 대결단을 내리시던 김일성주석의 숭엄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시간을 잃으면 력사를 잃기마련입니다.
북남수뇌들이 만나 한자리에 앉는다는것자체가 민족사에 애국의 새 년륜을 새길 장거가 아닐수 없었으며 북남수뇌상봉이야말로 외세의 분렬책동을 산산이 부셔버리고 겨레의 머리우에 드리운 분렬의 먹장구름을 활활 불태워버릴 대사변이였습니다.
새 세기의 문어구에 들어서는 2000년에 조국통일운동에서 전환적국면을 열어제낄 원대한 뜻을 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드디여 력사적결단을 내리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남조선당국자의 평양방문초청제의를 넓으신 도량으로 대하시며 조국통일운동사에 금문자로 기록될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을 2000년 6월 평양에서 진행하실것을 결심하시였던것입니다.
6. 15통일시대의 려명은 이렇게 밝아왔습니다.
드디여 4월 8일 력사적인 북남수뇌분들의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을 6월 평양에서 진행할것을 합의한 북남합의서가 발표되였습니다.
《북과 남은 력사적인 7.4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방문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절차문제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실로 4. 8북남합의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통일의지, 애국애족의 대결단이 낳은 민족사적사변이였으며 새로운 자주통일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장쾌한 뢰성이였습니다.
새 세기를 눈앞에 둔 력사의 분기점에서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되는 북남수뇌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은 통일의 서광을 고대하던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에게 환희와 기쁨을 안겨준것은 물론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마냥 온 세계에 충격의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남조선에서는 여야당과 경제, 시민, 로동계는 물론 군부까지도 앞을 다투어 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립장을 밝혔습니다.
합의서발표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북남수뇌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이 81%에 달했으며 북남수뇌회담으로 《남북관계개선의 전기가 마련될것》이며 이로 하여 《통일이 더 빨리 올것》이라고 한 사실은 4. 8북남합의서채택을 지지환영하는 남녘의 민심을 보여주는것이였습니다.
북남합의서발표에 따른 세계 각국의 반향도 컸습니다.
중국외교부와 로씨야외무성은 북남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정부의 립장을 밝혔으며 미국과 일본도 속은 어쨌든 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장엄한 력사적사변의 서곡이 울린 후 온 겨레의 절박한 념원과 기대의 마음들과 세계의 이목은 평양으로, 조선으로 향하고있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의지에 의하여 6. 15통일시대의 려명이 밝아오고있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의 선언
온 민족,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사이에 평양에서는 나라가 분렬되여 55년만에 처음으로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이 진행되였습니다.
주체89(2000)년 6월 13일, 세상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엎으며 커다란 파문과 격정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평양비행장영접으로부터 시작된 북남수뇌분들의 력사적인 상봉은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 1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의 김대중대통령과 단독회담을 하시였습니다.
력사적인 이 회담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겸허한 자세로 김대중에게 먼저 발언하도록 하시고 그가 《베를린선언》과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친서체계》의 내용을 되풀이하는것을 오랜 시간 마지막까지 주의깊게 들어주시였습니다.
남측 당국자의 발언이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대를 맞이하는 첫해에 우리가 처음으로 상봉하는것만큼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락관을 주는 선언적인 문건을 하나 내놓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거기에 담을 자주통일사상과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철의 론리로 펴나가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첫째로, 이번에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2000년대에 《우리 민족끼리》를 공동의 리념으로 하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자주적으로 실현할데 대하여 천명하자는것, 둘째는 련방제문제로서 북과 남의 두 제도,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통일을 지향하되 당면하여 이번 선언에는 낮은 형태의 련방제문제를 담자는것, 셋째로, 당국대화를 개최하고 북남사이의 경제, 사회문화, 인도적문제도 풀어나갈데 대하여 언급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제반 문제들에 대한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을 명백하게 말씀하시였고 상대측에서 잘못 생각하고있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습니다.
근 4시간에 걸쳐 진행된 단독회담에서는 민족의 힘을 모아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룩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통일방도에 관한 문제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방문단교환문제, 각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 당국대화재개문제 등 북남대화와 통일실현에서 나서는 원칙적이고도 중요한 현안문제들이 폭넓고 진지하게 론의되였습니다.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의 수뇌분들이 직접 서명한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은 이렇게 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습니다.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지극히 간명하면서도 뚜렷하게 표현된 민족자주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북남공동선언에서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 조항이 기본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너무나도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하나의 단어속에 자주적인 조국통일사상과 리념을 다 담으시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민족의 자주적의사와 요구에 맞게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것을 본질적내용으로 하고있는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사상으로 일관되여있고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고있는 민족자주리념입니다.
이미 온 겨레가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6월 3일 북남수뇌상봉을 위해 평양에 찾아온 남측특사를 접견하신 자리에서 이번 상봉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력사적인 창조로 되게 하자고 하시면서 조선문제는 어디까지나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남측 당국자와의 단독회담때에도 우리가 조선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적선에서 문건을 만들어야 하며 지난 시기의 유물을 털어버리고 원칙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선언적이고 지향적이며 희망적인 문건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회담에서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로 하고 그 내용에 대하여 합의를 보았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남측 당국자에게 이제 공동선언이 나가면 아마 세상이 또 한번 놀랄수 있다고, 북과 남이 민족주체를 찾았다고 할것이라고, 바로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에 방점이 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마지막날인 6월 15일 남측 당국자일행의 평양출발을 앞두고 마련하신 환송오찬석상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대표단일행에게 우리는 언제나 민족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문제이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문제는 말그대로 외교문제라고 하시였습니다. 이어 그이께서는 우리는 남측 당국이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는것을 무턱대고 반대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는 조건에서 다른 나라들과 공조를 해야 한다고, 자기 민족을 반대하는 국제공조란 있을수 없다고, 우리는 우리 민족을 위한 공조를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시였습니다.
실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과 그것을 핵으로 하는 6. 15북남공동선언은 위대한 장군님의 참다운 애국애족의 사상이 낳은 빛나는 결실로서 거기에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지녀본적 없는 장군님의 강한 민족자주사상과 바다같은 민족애, 동포애, 열화와 같은 애국의 통일신념과 의지가 맥박치고있습니다.
6. 15북남공동선언은 민족문제에 대한 외세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으며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기어이 이룩하려는 긍지높은 민족자주선언입니다. 그것은 또한 북과 남이 분렬이래 처음으로 공동의 통일방도와 목표를 확정한 평화통일선언이고 우리 겨레가 단일민족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서로 도우며 화목과 번영을 도모해나갈것을 확인한 민족대단결선언입니다.
이렇듯 훌륭한 북남공동선언이 불과 한차례의 회담으로 채택된것은 북남관계력사에서는 물론 세계외교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특기할 사변이였습니다.
국제관계사는 무수한 수뇌상봉들과 회담들을 자기의 페지에 기록하고있지만 평양수뇌상봉처럼 온 세계에 커다란 파문과 격정을 불러일으킨 상봉, 북남수뇌회담과 같이 그처럼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회담을 알지 못합니다. 1970년 3월 19일에 있은 동도이췰란드총리와 서도이췰란드총리의 첫 수뇌회담에 대하여 《불특정 자유의제가 합의되였을뿐이다. 분단 23년만에 이루어진 첫 회담은 각자의 기존립장확인이 소득이였다.》는 기록을 남기고있는가 하면 1986년 10월의 쏘미수뇌회담 역시 《합의사안 하나없이 끝난 회담》으로 세인의 혹평을 받았습니다.
정치, 사상,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있는 지역의 북남수뇌회담, 처음부터 남측에서 《만나는것자체가 성과》라고 할 정도로 그 결실을 예측할수 없는것으로 간주되고있던 이러한 회담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한 문제들에 합의를 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이라는 이 력사의 기적은 민족분렬의 비극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민족지상의 과업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할 애국애족의 통일의지를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정치실력과 세련된 령도수완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였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발표에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희와 기쁨,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으며 대결과 불신으로 얼룩진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돌려세우시고 새 세기 민족통일의 리정표를 우뚝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리였습니다.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은 드디여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는 자주통일의 새시대,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를 펼쳐놓았습니다.
민족의 평화번영의 길을 밝힌 10. 4선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핵으로 하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펼쳐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6(2007)년 10월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또다시 마련하시고 10. 4선언을 채택하도록 하심으로써 온 겨레에게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평화번영을 위한 실천강령을 안겨주시였습니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 때로부터 7년간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의 통일기운이 더욱 고조되고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난 세기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여온 나날이였습니다.
특히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흠모열풍이 폭풍같이 일어나고 민족의 대단합을 이룩하려는 지향이 막을수 없는 시대적흐름으로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관계발전에서 다시한번 전환적국면을 마련하기 위해 비범한 예지와 용단으로 수뇌상봉을 결심하시였습니다.
하여 2007년 8월 5일 평양에서 남조선의 로무현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북남합의서가 발표되였습니다.
이 합의서의 발표는 온 겨레를 바야흐로 민족번영과 조국통일위업실현에서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게 된다는 격정과 흥분으로 설레이게 한것은 물론이고 전세계의 이목을 다시금 조선반도에로 집중시켰습니다.
세계 각국의 통신, 방송, 신문들은 《북남수뇌상봉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일》, 《이는 7천만 북남국민의 리익에 부합되는 일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적극적인 환영립장을 표명하면서 7년만에 다시 열리는 북남수뇌상봉이 높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대서특필하였습니다.
그런데 북남수뇌상봉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던 이해 8월 공화국의 많은 지역들에서 100년래의 보기 드문 큰물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것과 관련하여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예견되였던 수뇌상봉은 10월 2일부터 4일까지로 연기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수뇌상봉의 날이 가까와올수록 이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수뇌상봉이 철저히 우리 민족끼리 하는 행사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수뇌상봉행사와 관련한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2000년에 비행기로 왔던 김대중때와는 달리 로무현이 개성공업지구를 통과하는 북남련결도로로 오도록 대범한 아량을 베푸시였습니다.
그리하여 분렬사상 처음으로 남조선당국자가 자기 전용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륙로로 평양에 찾아오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습니다.
10월 2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4.25문화회관광장에 몸소 나가시여 로무현대통령을 맞이하심으로써 세계를 충격과 경탄으로 끓어번지게 하시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마치 먼 곳에서 오는 귀중한 가족을 동구밖 마을입구에서부터 집대문, 사랑방 문지방에 이르기까지 반갑게 맞이해들이는 우리 민족의 옛 풍습을 보는듯 하다.》라고 감동된 심정을 피력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날인 10월 3일에 진행된 남측 당국자와의 회담에서도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으로 일관된 력사적인 선언이 채택되도록 하심으로써 다시한번 온 겨레와 세인의 경탄을 불러일으키시였습니다.
이날 회담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무현대통령과 여러시간동안 우리민족끼리정신으로 일관되고 숭고한 동포애가 흘러넘치는 진지한 담화를 나누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북남관계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는것을 세계앞에 보여주어야 하며 이번 상봉이 민족적자주성을 확립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는 좋은 계기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나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며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들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조선반도의 평화보장문제는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신 장군님께서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군사적적대관계를 해소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을 밝히시였습니다. 그리고 북남사이의 경제협력도 단순한 경제거래가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통일, 공동번영에 이바지하는 숭고한 사업이므로 이것도 역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기초하여 풀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개성공업지구를 활성화하는것을 비롯하여 경제협력사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대범하게 풀어주시였습니다.
이밖에도 장군님께서는 인도주의협력사업문제,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리익과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나갈데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고 선언내용에 포함되도록 하시였습니다.
로무현대통령과 그일행에게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다, 이전 시기의 관념과 낡은 유물을 버리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북남관계를 발전시킬수 없다고 말씀하시여 남측성원들의 한결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회담과정에 로무현대통령이 수뇌상봉의 정례화를 제안하였을 때에는 친척집에 갈 때 정례적으로 가는가, 수시로 놀러가는것이다, 국가간 관계에서는 정례적이지만 북남관계에서는 맞지 않는다, 수시로 만나는게 맞지 않는가고 하시였습니다.
어찌 보면 《정례적》인가, 《수시로》인가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수시로》라는 하나의 말로써 북과 남은 한피줄을 이은 하나의 민족임을 깨우쳐주시였던것입니다.
선언제목에 대해서도 장군님께서는 주제를 명백하게 반영하여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라고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북남수뇌회담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통일애국의 뜻과 의지가 깃든 구체적인 방안들과 대범하고 아량있는 용단들이 선언의 문구마다에 반영된 훌륭한 선언문이 나오게 되였습니다.
지난 시기 북과 남이 수십년동안 해결하지 못하고있던 문제들을 일거에 풀수 있는 실천강령이 단 4시간도 못되는 수뇌상봉에서 마련된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과 결단이 낳은 기적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날인 10월 4일 로무현대통령과 함께 력사적인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하시였습니다.
총 8개 항목으로 되여있는 10. 4선언에서는 북과 남이 6. 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나간다는것을 명백히 천명하였으며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남관계를 호상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나가며 북과 남이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갈데 대하여 엄숙히 선언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경제협력사업을 활성화하고 사회문화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키며 인도주의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가고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리익과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나갈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로써 력사적인 10. 4선언은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발전과 조선반도의 평화, 민족의 공동번영과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방도들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고 포괄적으로 밝힌 행동지침, 실천강령으로 민족앞에 제시되였습니다.
총적으로 볼 때 10. 4선언은 6. 15북남공동선언을 통해 조국통일의 기본방향이 설정된데 기초하여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에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행동내용을 담은 또 하나의 통일강령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북과 남이 힘을 합쳐 10. 4선언에 명기된 합의내용들을 착실히 실천해나간다면 우리 겨레가 그처럼 애타게 소원하며 열렬히 갈망하는 통일의 그날은 그만큼 더 빨리 다가오리라는것은 확정적이였습니다.
10. 4선언은 발표되자마자 온 겨레와 세계의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남조선의 각계 사회단체들뿐아니라 전국경제인련합,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공식론평을 통하여 이번 선언은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남북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협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는 분수령이 되였다고 하면서 열렬히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남조선의 전문가, 학자, 대학교수들은 선언을 높이 평가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전략적결단에 의해서 이와 같은 민족사적리정표가 나올수 있게 되였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수뇌상봉 전기간 남조선언론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행사참여여부와 그이의 표정까지 일일이 보도하면서 수뇌상봉 전 과정을 앞을 다투어 전세계에 중계하였으며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TV를 통해 또다시 뵈옵게 된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온 남녘땅에 또다시 김정일열풍이 일어번졌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도 북남수뇌상봉을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대하였습니다.
세계 각국의 주요통신들이 북남수뇌상봉을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특별뉴스로 전하였습니다. 미국의 CNN TV방송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로무현을 영접하시는 장면을 그대로 방영했으며 프랑스의 AFP통신, 도이췰란드의 데페아통신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공식환영행사에 나오시여 로무현대통령을 파격적으로 영접하시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BBC, 중국의 신화, 미국의 AP, 일본의 지지, 로씨야의 이따르?따쓰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은 이번 수뇌상봉은 철두철미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주도하시였다고 하면서 조선반도에 새로운 리정표가 세워지게 되였다, 10. 4선언은 지난 2000년에 채택된 6. 15공동선언에서 진일보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이번 수뇌상봉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높은 권위를 과시하였다고 하면서 조선반도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시라고 평하였습니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북남수뇌상봉에서 이룩된 긍정적인 성과를 환영하며 이것이 조선반도의 평화과정에 유익할뿐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도 유익할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하였으며 유럽동맹의 대외 및 안보정책담당 고위대표 대변인도 수뇌상봉은 베이징 6자회담과 시기적으로 사실상 일치하였다, 두 사변은 조선반도의 안정보장에서 매우 중요한 조치로 되였다고 하면서 북남수뇌상봉이 가지는 의의를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나토의 한 전문가는 북조선과 남조선사이의 관계발전을 위해 취해지고있는 노력을 환영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면서 평양과 서울이 정전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평화조약을 작성하려는 의지를 과시한 사실이 특별히 긍정적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2007년에 또다시 마련된 북남수뇌회담과 10. 4선언의 채택은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습니다.
만약 로무현《정권》이후 권력의 자리를 타고앉아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전면부정하고 그 리행을 회피하는 반민족적, 반통일적범죄를 감행한 리명박보수패당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10. 4선언에서 북과 남이 합의한 조항들이 리행되였더라면 아마도 지금 조선반도에는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가 펼쳐졌을것입니다.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념인 우리 민족끼리를 부정하고 6. 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 4선언의 리행을 거부하는 온갖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매국행위를 배격하고 북과 남이 힘을 합쳐 북남공동선언들을 철저히 관철해나갈 때 우리 조국은 통일되고 부강번영하는 강성국가로 세계무대에 당당히 올라설것입니다.
실로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이며 실천강령인 6. 15북남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마련하신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쌓아올리신 업적중의 가장 큰 업적입니다.
그 영원불멸할 애국업적은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 금문자로 길이 빛날것입니다.
온 겨레를 통일애국의 한길로
자주통일의 새시대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이후 조선반도에는 6. 15통일시대,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라고도 통칭된 자주통일의 새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은 급격히 앙양기를 맞이하였고 분렬이래 일찌기 없었던 경이적인 일들이 우리 조국땅우에 련이어 펼쳐져 북과 남은 물론 해외의 모든 동포들도 통일의 그날이 다가왔다고 하면서 통일조국의 래일을 눈앞에 선명히 그려보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바로 6. 15시대를 자주통일시대로 확고히 전환시키기 위해 끝없는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애족의 령도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민족자주의 원칙,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일관된 선군정치와 그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주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였으며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협력관계가 여러 분야에 걸쳐 심화발전되고있습니다.》
돌이켜보면 6. 15의 환희는 곧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대한 전민족적인 공감이고 지지였습니다.
6. 15북남공동선언이라는 통일의 위력한 무기를 받아안은 우리 겨레가 6. 15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통일운동에 철저히 구현해나갈 때만이 그처럼 바라고바라던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로의 활로를 열어나갈수 있는것입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수뇌회담에서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 15북남공동선언을 채택하신데 이어 온 겨레가 6. 15의 기치,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펼치시기 위하여 정력적인 령도의 날과 달을 보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들을 널리 조직하고 그것을 통하여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을 계기로 급격히 높아진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욱 고조시켜나가도록 하시였습니다.
새 세기의 첫해인 2001년을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는 력사적인 해로 되게 할 구상을 펼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해를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빛내이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습니다.
그에 따라 2001년 1월 10일 평양에서는 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와 수많은 각계 대표들이 참가한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대회가 성대히 열리였습니다. 대회에서는 21세기 첫해인 2001년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할것을 제의하였으며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부터 조국해방의 날인 8월 15일까지를 《6. 15-8. 15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으로 설정하고 이 기간에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킴으로써 민족의 한결같은 통일의지와 단합된 모습을 과시하며 21세기에 들어와 처음으로 맞는 해방의 날을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빛나게 장식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였습니다.
1월의 대회에 이어 5월에 평양에서 열린 공화국 정당, 단체합동회의에서도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에 즈음하여 금강산에서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성대히 진행하며 북과 남, 해외에서 각각 의의있는 행사들을 널리 조직하고 8. 15까지 민족통일촉진운동을 계속 힘있게 벌려나갈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안과 호소는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을 기념하여 북과 남, 해외에서 다양한 통일행사들이 련일 벌어지는 속에 2001년 6월 15일 금강산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단체들이 모여 《6. 15공동선언과 민족의 과제》라는 주제로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성대히 진행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북과 남의 여러 정당, 단체대표들, 해외동포대표단과 대표들 수백명이 참가하여 겨레의 통일열기를 뜨겁게 하였습니다.
이 민족통일대토론회는 그 규모와 내용으로 보나, 이룩된 성과로 보나 통일운동사에 특기할 거족적인 민족통일회합이였습니다.
하기에 남조선의 신문, 통신들도 이 행사를 가리켜 《50여년만에 열린 남북련석회의》, 《남북련석회의후 가장 큰 규모의 회합》이라고 평하였던것입니다.
이해 8월 15일에도 또다시 북과 남, 해외의 각당, 각파, 각계 대표들이 참가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이 평양에서 뜻깊게 거행됨으로써 조국해방의 날을 전민족적인 통일행사로 장식하였습니다.
지난날의 통일대축전행사들에는 주로 북과 해외측 대표들을 기본으로 하고 남측에서는 사선을 헤치고 달려온 《한총련》대표나 통일운동권의 몇몇 대표들이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처음으로 열린 2001년민족통일대축전은 220여개에 달하는 남조선의 많은 정당, 단체의 대표들이 폭넓게 참가한 그야말로 통일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은 통일대축전이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2002년 8월 15일에는 북의 각계층 인사들이 서울에 나가 남녘동포들과 함께 민족통일대회를 진행한것을 비롯하여 그후 6. 15와 8. 15, 3. 1절 등 중요계기들에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단체와 인사들은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광주 등지를 오가며 대규모의 민족통일행사들을 벌렸습니다.
특히 2005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과 8. 15를 맞으며 서울에서 진행된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 15민족대축전은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의 당국대표들의 참가밑에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문제들을 토론하고 민족의 대단합을 위한 행사들을 진행한 전민족적인 대회합으로서 조국통일운동사에 뜻깊은 한페지를 장식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6. 15공동선언지지관철을 위한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북남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북남작가대회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그리고 학자, 예술인, 언론인, 체육인, 종교인을 비롯한 북과 남의 계층별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들이 광범히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통일행사들을 통하여 온 겨레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따라 기어이 통일조국의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려는 굳센 의지와 신념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였으며 삼천리강산에는 자주통일운동의 세찬 열풍이 몰아치게 되였습니다.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펼쳐나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에서 중요한것은 민족공조로 6. 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해나가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신것입니다.
6. 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성과의 비결은 그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하는것이며 그 실천적표현은 민족공조에 있습니다. 민족공조는 통일문제해결의 지름길입니다.
민족은 개별적사람들의 산수적결합이 아니라 민족의식에 의하여 결합된 공고한 사회적집단이고 운명공동체인것만큼 민족공조는 민족의 존재와 발전을 위한 본성적요구로 됩니다. 더우기 단일민족으로서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경우 그것은 더욱 필연적이고 정당한 요구입니다. 력사가 오랜 민족일수록 민족성원들사이의 친화력과 뉴대감이 높습니다. 반만년의 오랜 세월 하나의 강토에서 한피줄을 이으며 살아온 조선사람들은 북에서 살건 남에서 살건 해외에서 살건 다같이 조선민족의 피와 넋을 지닌 하나의 민족이며 공통된 민족심리와 감정, 민족공동의 리익으로 뗄수 없이 련결되여있습니다.
민족의 운명과 전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외세에 의거하지 않고 자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해결하며 그 길에서 언제나 보조를 같이해나가는 민족공조야말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발양하기 위한 필수적요구이며 그 실제적행동입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투쟁에서 북과 남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조국통일과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서로 지지하고 보조를 같이하며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상을 벌려나가도록 하시였습니다.
2002년에 들어와 미국과 그에 추종한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가 다시금 긴장한 대결분위기로 바뀌여졌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4월 4일 평양을 방문한 남측특사일행을 만나시여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며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에 조성된 위기사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갈데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6월에도 장군님께서는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조선의 통일부 장관을 만나시여 북과 남이 마주앉아 회담하는것도 시대가 달라지는데 맞게 바뀌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북남대화와 접촉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6. 15이후 북남대화와 접촉들에서는 온 겨레에게 기쁨을 주는 훌륭한 합의들과 성과들이 이룩되였습니다.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2007년 7월까지 북남당국사이에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8차의 적십자회담과 6차의 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으며 매번 합의문건들이 채택되였습니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 전례없는 기록으로서 1971년부터 2000년 6. 15이전까지 무려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이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6. 15이후 민족공조로 북남대화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민족공조의 위력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북과 남사이에는 당국간 대화뿐아니라 경제와 문화, 체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조선반도를 북과 남으로 두동강낸 분렬의 군사분계선을 뚫고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 사변도 일어났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평양을 방문한 남측특사를 만나신 자리에서 북남철도와 도로련결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북남철도와 도로련결문제가 상정되였을 때 남측특사는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와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련결문제에 대해서만 말씀올렸습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만 련결할것이 아니라 동해선철도도 련결하여야 한다고, 신의주-서울철도만 련결하면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북과 남의 철도와 도로들은 이렇게 되여 동쪽과 서쪽에서 다같이 하나로 련결되게 되였으며 2007년 5월에는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조선의 제진역까지, 남조선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렬차시험운행이 진행되였습니다. 나라의 지맥을 하나로 잇는 이 벅찬 현실은 대립과 갈등, 분렬의 력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마련하는 뜻깊은 경사였으며 분렬의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통일의 길을 열어놓은 력사적장거였습니다.
참으로 우리민족끼리시대가 펼친 또 하나의 감동적인 화폭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북남경제협력의 《옥동자》로 불리운 금강산관광이 더욱 활성화되여 1998년 11월부터 2005년까지 금강산관광길에 오른 남녘동포들의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고 2003년 6월 건설착공식을 한 개성공업지구에서는 2004년 12월에 첫 제품생산기념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5년 9월말부터 10월말까지의 근 한달동안에 무려 8 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는 아리랑열풍이 온 남녘땅을 휩쓸었고 2002년 9월말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8월 대구에서 진행된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륙상선수권대회에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여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0년 8월에 진행된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 2002년 9월 남조선 《KBS》교향악단과 남조선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들, 2001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민족옷전시회, 2002년 9월과 10월에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된 북남태권도시범단의 출연 등도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하기 위한 민족공조의 위력으로 마련된것들입니다.
북과 남사이의 래왕과 접촉이 전민족적범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것이 사회전반분야에로 널리 확대됨으로써 민족내부에는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자라나게 되였고 우리 민족끼리 공조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이 보다 활력있게 벌어졌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날로 강화되는 민족공조로 우리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열풍을 세차게 불러일으키도록 하시였습니다.
반미의 기치를 높이 드는것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우리 민족자신의 힘으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려는 전체 조선민족의 신념과 의지를 힘있게 과시하며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고수하고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전개해나가기 위한 필수적요구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민족공조로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를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확고히 전환시키도록 하시였습니다.
장군님의 이러한 구상과 의도가 2003년을 맞으며 공화국에서 발표된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에서 제기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통하여 제시되였습니다.
공동사설은 현시기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볼수 있다고 하면서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은 미제의 무분별하고 모략적인 전쟁책동에 높은 각성을 가지고 대하여야 하며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단호한 배격을 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하기 위한 조국통일운동에서는 민족공조로 외세의 식민지지배와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반미투쟁의 거세찬 열풍이 일어번지게 되였습니다.
당시 미국대통령이였던 부쉬의 《악의 축》망발과 2002년 2월에 있었던 서울행각을 계기로 남조선에서는 반미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으며 그것은 2002년 6월 미제침략군장갑차가 백주에 14살 난 녀학생 두명을 무참히 깔아죽인 사건이 발생하자 활화산처럼 더욱 타번졌습니다.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의 전국각지에서는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 31일까지 반미초불시위가 끊임없이 벌어졌으며 미국과 일본, 영국, 도이췰란드, 로씨야 등 16개 나라들에서 살고있는 해외동포들속에서도 반미의 초불이 타올랐습니다.
그후 남조선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은 그 어떤 계층이나 단체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을 망라하는 대중적운동으로 확대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잡지 《민》은 《반미는 확실하게 자리잡았고 언제 어디서든지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구호가 되였다.》고 평하였습니다.
2002년 한해동안에 남조선에서 반미투쟁건수가 무려 5 880여건, 반미투쟁참가자수는 연 670여만명에 이르고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5년간 연 2 000여만명의 참가밑에 1만 3 000건의 각종 반미투쟁이 벌어진 사실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운동에서의 놀라운 전변을 보여주는 생동한 자료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남조선인민들속에서는 통일을 방해하고 전쟁과 분렬을 추구하는 미국이야말로 우리 민족공동의 적이라는 민족자주의식, 민족공조의식이 자리잡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6. 15시대에 들어와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실천적으로 형성된것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운동에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의 하나로 됩니다.
참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나아가는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는 조국통일운동사에 일찌기 없었던 이렇듯 경이적인 사변들을 안아왔던것입니다.
오늘도 온 겨레는 자주통일의 드높은 열기가 강산에 차넘치던 그때를 돌이켜보며 6. 15자주통일시대를 개척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고수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기어이 이룩해나갈 결심과 각오로 가슴을 불태우고있습니다.
숭고한 동포애, 광폭의 도량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통일위업수행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은 그이께서 남녘겨레들에게 베푸신 뜨거운 동포애와 더불어 더욱 빛나고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숭고한 동포애의 체현자이시였습니다.
동포애는 한 나라, 한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참다운 애국주의는 열렬한 조국애와 함께 숭고한 동포애로 발현됩니다. 자기 겨레, 자기 동포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 애국주의에 대하여 말할수 없습니다.
숭고하고도 뜨거운 동포애는 절세의 애국자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을 특징짓는 중요한 풍모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시였던 동포애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민족생리의 리치를 구현하고있을뿐아니라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며 모든 민족성원들의 자주성을 지켜주고 꽃피워주는 여기에 민족애의 정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는 애국의 원리를 담고있습니다. 때문에 장군님의 동포애에는 겨레에 대한 웅심깊고 열화같은 혈육의 정이 흘러넘쳤고 진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가득차있었으며 겨레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풀어주는 어버이의 진정이 뜨겁게 스며있었습니다.
바로 이처럼 숭고한 동포애를 지니신분이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어느 한시도 남녘동포들을 잊지 않으시고 뜨거운 사랑과 정을 부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곁에 있는 자식보다 떨어져있는 자식들에 대해 더 마음쓰고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우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였습니다.
어느해 봄날 직승기를 타시고 무연한 청춘과원을 돌아보시며 그곳 과수농장 일군들에게 조국이 통일되면 여기서 생산되는 과일을 인천항으로 실어내여 남조선인민들에게도 공급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신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주체73(1984)년 어느 봄날에 있은 일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는 기상통보를 거듭 확인하시면서 저녁늦게까지 전화기옆을 떠나지 않으시였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한창 씨붙임시기인데 그해따라 이른봄철부터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아 몹시 가물었습니다. 당시 남조선에서도 가물이 들어 야단법석하였는데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담아 신문들에는 《아이고 비는 왜 안 오노》라는 기사가 실리는가 하면 농촌아이들까지 《비야 비야 어서 오라 참새둥지에 불났다》는 노래를 부르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드디여 비가 내린다는 기상통보가 나왔던것입니다.
창밖에서 우뢰소리가 울리자 한 일군이 장군님께 비가 쏟아지기 전에 퇴근하실것을 말씀올렸습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움직일념을 않으시고 비가 좀더 와야겠는데 기다려보자고, 남녘겨레들도 농사를 지어야 먹고살아갈게 아닌가고, 그러자면 남녘땅에도 비가 내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고나서 다시금 송수화기를 드시고 남조선지역에도 비가 오는가를 알아보라고 하시였습니다.
잠시후 남조선전역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남녘땅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습니다.
이윽고 격정에 잠겨있는 그 일군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는 남녘동포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도 그렇고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도 그렇고 늘 남녘동포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절절한 동포애의 정이 그득히 차넘치는 그이의 음성이 방안을 울렸습니다.
《분렬된 조국땅에서 사는 참된 애국자는 남녘동포들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녘동포들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한 참된 애국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남녘동포들을 항상 마음에 안고 사는 참된 애국자만이 최고의 애국인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투신할수 있습니다.》
이렇듯 뜨거운 동포애를 안으신분이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이 불행과 고통을 겪을 때마다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고 걱정하시며 밤을 지새우시였습니다.
1995년 6월 남조선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려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을 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빚어진 참상을 두고 아픈 마음을 금치 못하시며 한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저녁시간에 물건사러 나왔던 가정부인들이 수백명이나 파묻혔다니 이런 큰 변이 어디 있습니까! 숱한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고 울고있을텐데 그애들이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되였습니다, 정말 가슴아픕니다, 새벽 6시에 퇴근하여 잠간 쉬려고 누웠는데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전화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날에 하신 장군님의 말씀은 그이의 심중에 차넘치던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전하며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습니다.
1984년 8월말과 9월초에 걸쳐 내린 무더기비로 하여 남조선에서 큰물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피해를 입은 남녘동포들에게 베푸신 숭고한 사랑은 또 얼마나 감동깊은것입니까.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하던 그해 8월말에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오시여 비뿌리는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며 비가 자꾸 내리니 남조선인민들이 걱정된다고, 이렇게 비가 퍼부으면 남조선에 영낙없이 큰물이 진다고, 큰물이 나면 그들이 또 고통을 당할게 아닌가고 근심하신 장군님이시였습니다.
무정한 하늘은 끝내 서울을 비롯한 남녘땅 여러 지역에 재난을 몰아오고야말았습니다.
이 재난에 대해 당시 남조선의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대물란리로 350명이 수장, 20만 7 000여명의 리재민 발생, 주림과 추위, 병마가 가련한 인생들을 위협, 수재민들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
이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한지에 나앉은 수재민들을 생각하니 밥을 먹어도 목에 걸릴것 같다고 하시며 무슨 조치를 취했으면 좋을지 빨리 연구해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고 한지에서 떨고있는 리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한 김일성주석의 높은 뜻을 받드시여 지체없이 인도주의단체의 명의로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낼데 대한 결정을 발표하도록 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의 수재지역 리재민들에게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 기타 의약품을 구호물자로 보낼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결정이 세상에 발표되였습니다.
120여년간의 국제적십자구제운동력사에 최고기록을 남긴 구제금은 바로 한해전인 1983년에 스웨리예가 수해를 입은 인디아에 제공한 75만US$였습니다. 그런데 공화국의 구호물자는 딸라로 환산하면 1 800만US$에 해당한것으로서 그의 24배나 되였습니다.
그때 남조선의 《우방》이라고 자처하는 미국과 일본이 제공한 구제금은 고작 2만US$와 10만US$였습니다.
사실 공화국에서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아서 그 많은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 어렵더라도 남조선인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였습니다.
어느날 일군들에게 방대한 구호물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한동포를 구원하는 일인데 구호물자가 아무리 많아도 아까울것이 없다, 우리가 저축해두었던것을 남조선동포들을 구제하는데 쓰지 않고 어디에 쓰겠는가, 뭐니뭐니해도 민족이 제일이다, 도와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바로 이처럼 숭고한 동포애를 안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구호물자를 남조선의 수재민들에게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전달하기 위한 작전도 몸소 지휘하시여 분렬의 장벽을 뚫고 사랑의 구호물자가 남녘인민들에게 가닿는 신화와 같은 기적을 창조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에 의하여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남녘동포들이 그처럼 소원하며 눈으로만 그려보고 마음속으로만 오르던 금강산에로의 관광길도 열리게 되였습니다.
예로부터 때와 장소,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모습을 달리한다고 하여 《선산》, 《풍악》, 《개골산》, 《상악》, 《봉래산》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운 조선의 명산 금강산은 그 경치가 세계의 으뜸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금강산이였건만 나라의 분렬로 하여 남녘동포들은 반세기이상이나 금강산에 오르지 못하였고 생전에 금강산을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마음속 소원이였습니다.
남녘동포들의 이러한 소원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에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고있던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남녘동포들의 금강산관광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깊이 마음쓰시였습니다.
조선민족이라면 누구나 보고싶어하고 오르고싶어하는 세계의 명승 금강산에 남녘동포들모두가 와보게 하여 조선민족의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게 하여야 한다는 숭고한 동포애를 안으시고 장군님께서는 선군장정의 길에서 여러차례 남조선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을 만나주시고 북남경제협력의 일환으로서 금강산관광을 잘해볼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1998년 11월 18일 826명의 남녘동포들이 처음으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사랑의 배길을 따라 꿈에도 소원이였던 금강산관광길에 오르게 되였으며 1년동안에만도 무려 11만여명의 남조선 각계 동포들이 금강산을 다녀가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이후 금강산관광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더 많은 남녘동포들이 금강산관광길에 오르도록 해주시였습니다.
6. 15자주통일시대가 펼친 경이적인 사변중의 하나인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가 뜨겁게 깃들어있습니다.
2005년 8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조선로동당창건 60돐과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다시금 막을 올리고 내외의 대인기속에 공연되고있던 그해 9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장군님의 이렇듯 뜨거운 동포애적인 조치와 세심한 관심에 의하여 2005년 9월 26일부터 10월말까지만 해도 서울과 인천, 광주와 부산, 울산과 제주도를 비롯한 남조선의 각지에서 하루에 수백명씩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는 희한한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던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는 사상이나 정견, 신앙이나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조선민족의 피줄을 이어받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임지고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폭넓은 광폭의 도량이고 비길데 없이 숭고한 사랑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의 길에서 변함없이 광폭정치를 실시하여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그와 단결하며 조국통일의 한대오에서 손잡고 나갈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은 남조선의 대재벌의 한사람인 정주영을 비롯하여 정계와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주시고 애국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신데서 뚜렷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남조선의 《1등재벌》로 불리우는 현대그룹의 창업주, 명예회장이며 한때는 정계에 진출하여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섰던 정주영에게 베푸신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려는 정주영의 민족적량심을 소중히 여기시고 여러차례 만나시여 민족을 위한 북남경제협력의 길에서 애국의 참된 삶을 살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도 그를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로 높이 내세워주시고 그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조전과 함께 조의대표단까지 서울에 파견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와 한없이 넓은 도량은 오늘도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고있습니다.
언제나 숭고한 동포애를 안으시고 민족의 대단결을 지향해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폭의 도량과 포옹력으로 비록 과거에는 조국과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민족의 편에 돌아선다면 과거를 백지화하고 관용으로 대하시며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아낌없이 안겨주시였습니다.
남조선에서 1980년대부터 《대통령》직속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천도교 민족통일연구회 회장,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범종교통일단체인 통일광복민족회의 대표로 활동했으며 남조선 천도교중앙총부 교령,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고문으로도 있었고 의거입북당시에는 김대중이 총재로 있은 남조선의 제1야당인 국민회의 상임고문, 종교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한 정계, 종교계의 인사였던 오익제선생이 공화국의 품에 안길 의향을 표시했을 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책도 맡겨주시고 그가 조국통일위업에 한몸 다 바칠수 있도록 믿어주고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장군님의 넓은 품을 찾아온 사람들속에는 이외에도 현대아산 회장 정몽헌도 있었고 김련자와 같은 이름있는 녀가수도 있었으며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남조선의 전 《대통령》들이였던 김대중과 로무현에게 베푸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의 절정을 이룬다고 볼수 있습니다.
평양상봉 전기간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부어주신 김대중이 2009년 8월 페염으로 앓다가 사망하였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슴아파하시며 친히 자신의 명의로 김대중 전대통령은 애석하게 서거하였지만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것이라는 내용의 조전문을 보내주시고 특사조의방문단을 서울에까지 파견하시여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시였습니다.
로무현이 2009년 5월 리명박패당의 음모로 정치적타살을 당하였을 때에는 심심한 애도의 뜻을 담아 조전도 보내주시였습니다.
실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넓고도넓은 품은 온 겨레를 따뜻이 품어안아 조국통일을 위한 대오속에 세워주고 통일애국의 삶을 빛내이도록 하여주신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였습니다.
이렇듯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민족대단결사상과 탁월한 령도력, 뜨거운 동포애와 광폭의 도량에 의하여 조국통일운동은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더욱 확대강화발전될수 있었고 그 위대한 품속에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정견과 신앙, 계급과 계층의 차이를 뛰여넘어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해나갈수 있는 강력한 력량으로 결속되게 되였습니다.
조국통일위업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애국업적은 통일조국의 래일과 더불어 민족사에 길이길이 빛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