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정일애국주의-사회주의적애국주의의 최고정화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는 애국명장들의 이야기도 많고 나라를 위해 공헌한 재사들의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세계명인전의 갈피를 펼쳐보아도 새것의 발견과 발명, 새땅의 개척과 영웅적무훈담마다에 애국의 피와 넋이 슴배여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처럼 한생을 조국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으로 불태우시고 나라와 민족의 앞길에 세세년년 영원한 승리의 기치로 휘날릴수 있는 애국사상과 정신을 남긴 위인은 정녕 세상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은 그 어느 위인도 명인도 지닐수 없는 숭고한 애국정신으로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여 조국청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애국으로 시작되고 애국으로 수놓아진 불멸의 혁명생애, 그 위대한 한생이 쌓아올린 불멸의 업적에 집대성되여있는것이 바로 김정일애국주의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시고 몸소 실천에 구현해오신 애국주의는 그 본질적내용으로 보나 생활력으로 보나 오직 김정일장군님의 존함과만 결부시켜 부를수 있는 가장 숭고한 애국주의입니다.
이 세상에 애국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고 쏘베트애국주의와 같이 국가주권과 결부되여 불리운 애국주의는 있었어도 절세의 위인의 성스러운 존함으로 불리워지는 김정일애국주의와 같은 참다운 애국주의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김정일애국주의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그토록 사랑하시며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과 인민을 안고 사신 장군님의 태양처럼 불타는 미소이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해치려는 제국주의와 끝까지 맞서 총대로 주체의 사회주의를 결사수호하며 내 나라를 세상에서 으뜸가는 지상락원으로 건설하려는 정신이며 조국통일의 성스러운 위업을 기어이 성취하고야말것이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한생을 불태운 위대한 인간의 삶의 서사시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주체101(2012)년 7월 26일에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 《김정일애국주의를 구현하여 부강조국건설을 다그치자》에서 《김정일애국주의는 우리의 사회주의조국과 우리 인민에 대한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이며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가 가지고있는 본질의 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시말하여 대상에 있어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이고 그 열도에 있어서 가장 뜨겁고 가장 열렬한 사랑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조국과 인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가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조국과 인민을 어떻게 보는가, 다시말하여 조국과 인민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뜨겁고 열렬한 사랑은 숭고한 조국관, 인민관에서 흘러나온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조국을 아득히 먼 옛날부터 자기 조상들이 대대손손 살아오고 선조들의 넋이 깃들어있는 정든 곳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조국이라고 할 때 그것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가리키는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국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이라는 단순한 력사적개념이나 령토적개념만을 포함하는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떠나 세계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듯이 조국도 사람, 인민대중을 떠나서 말할수 없습니다.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모든것을 보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은 단순히 태여난 나라나 고향이 아니라 인민의 참된 삶과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라는 진리를 밝히시고 우리 민족의 참다운 조국은 김일성주석께서 세워주시고 이끌어오신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조국이며 사회주의조국은 오직 수령의 존함과 결부시켜 부를수 있는 수령의 품이라는 조국관을 확립하시였습니다.
조국에 대한 이러한 견해와 관점으로부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을 한시도 떨어져서는 살수 없는 어머니품으로 여기시였고 당을 위해 조국이 있는것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당도 있다는 립장을 가지고 당과 혁명우에 조국을 놓으시고 모든것을 조국과의 관계속에서 보고 대하시였습니다.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고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며 조국에 이바지한것이 없는 사람은 조국에 대하여 말할수 없고 어머니조국의 참다운 아들딸이라고 할수 없다고 하시며 조국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는가를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시였습니다.
조국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가장 열렬한 사랑이 이러한 독창적인 조국관에서 나온것이라면 인민에 대한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 역시 숭고한 인민관에서 흘러나온것입니다.
어느해인가 공화국의 한 시인은 주체사상탑앞에 놓여있는 조선로동당기의 상징인 마치와 낫, 붓을 든 3명의 사람이 높은 단상에 올라있는 군상을 보고 또 보다가 령감이 떠올라 인민이 저 단상에 오르기까지는 수수천년이 흘렀다는 유명한 시를 쓰게 되였습니다.
정녕 인류력사가 흘러 수백만년이 되였지만 인민이 어느때 어느 시기에도 진정으로 자기 운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되여 그렇듯 행복의 단상에 오르고 하늘처럼 떠받들리운적은 없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내놓으시고 한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이민위천》의 정치신앙을 그대로 계승하여 인민을 절대적으로 숭배하시며 인민을 위해 한평생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기에 공화국의 인민들은 진정으로 사회의 모든것의 주인으로 될수 있었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보람찬 생활을 마음껏 향유하는 행복한 인민으로 될수 있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인민관은 인민대중을 사회의 모든것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존대하는 관점과 립장이며 인민에 대한 최대의 믿음이고 존중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인민대중의 모습이 새겨진 조선로동당의 붉은기를 숭엄하게 바라보시며 인민대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인민대중을 열렬히 숭배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바로 그 숭고한 인민관으로부터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이 흘러나온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숭고한 조국관, 인민관을 지니시였기에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습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관계로 서로 정을 맺고 정을 나누게 되지만 자기 조국과 맺은 정이야말로 끊을수도 없고 버릴수도 없는 깊고깊은것이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울창한 수림과 번듯하게 정리된 드넓은 대지를 보시면 부강번영할 조국의 래일과 대대손손 누려갈 인민의 행복한 앞날을 그려보시며 정을 담아 푸른 산, 푸른 들이라고 조용히 외우기도 하시였고 외국방문의 길에 계실 때에는 두고 온 조국과 인민들이 그리워 내 나라, 내 민족이라고 감회깊이 불러보군 하시였습니다.
주체90(2001)년 여름 20여일간에 걸치는 로씨야련방방문을 마치시고 조국에 도착하신 후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로씨야를 방문하는 전기간 조국과 인민을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오래동안 가있으니 조국과 인민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조국, 우리 인민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의 사랑하는 모든것이 다 그리웠습니다. … 그때 내가 동행하는 일군들에게 조국과 인민이 못견디게 그립다고 말하였더니 많은 동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마음속에 안고 사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쏟아부을수 있었던것입니다.
김정일애국주의의 밑바탕에 놓여있는 이러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은 열도에 있어서 가장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이라는데 그 본질의 다른 한면이 있습니다.
김정일애국주의에는 자기가 나서자란 나라, 자기 민족에 대한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담겨져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애국이란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애국이 자기가 나서자란 나라, 자기 민족에 대한 단순한 사랑인것은 아닙니다. 애국이란 말속에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사랑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간의 생존의 근본조건인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간주하시고 그 견지에서 애국의 진가도 평가하시고 모든것을 실천해나가시였습니다.
나라의 자주권이자 민족의 자주권이며 존엄입니다.
민족은 있어도 나라의 자주권을 잃으면 존엄있는 민족으로 살며 발전할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력사는 외래침략자들의 침해로부터 자기의 강토를 수호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싸워온 투쟁력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애국명장 을지문덕장군은 인민들과 함께 료동반도의 대양하 상류소자하에서 30만의 외적을 물리치고 살수대승리(살수대첩)를 이룩함으로써 고구려사람들의 슬기와 기지를 보여주었으며 전쟁을 결속하는데 애국적공헌을 하였습니다.
그후에도 우리 민족은 고려의 강감찬, 서희, 임진년에 《홍의장군》으로 이름떨친 곽재우의병장, 평양성에 기여든 왜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애국적무관 김응서, 73살의 고령에 의병장으로 이름떨친 서산대사,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적과의 해전에서 위훈을 떨친 리순신 등 유명무명의 애국명장들과 애국지사들, 애국렬사들을 수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그들의 애국심을 응당하게 평가하신것은 그것이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위하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보시였기때문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화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도 말할수 있는 지난 세기 90년대 중엽에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치신것도 선군의 길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담보하는 원칙적이고 정의로운 애국의 길이였기때문입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시였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사탕알도 변변히 먹일수 없지만 래일에는 내 조국땅우에 기어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민의 락원을 펼치고야말리라는 가슴속 뜨거운 맹세를 안고 장군님께서 걸으신 길이 다름아닌 선군길이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선군은 우리 조국과 인민의 생명이다, 선군을 하여야 조국을 수호하고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킬수 있다,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고 빛내이며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길은 선군을 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선군의 길을 변함없이 가려는것은 나의 신념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최전연초소들을 찾고 찾으시였습니다.
조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군대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데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였습니다.
국방력이자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고 생존권이며 운명이고 존엄이다, 국방력이 약하면 하고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게 되며 종당에는 인민이 남에게 예속되여 노예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된다, 다시는 우리 인민이 조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빼앗긴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장군님의 심중에 깊숙이 자리잡고있은 철석의 신조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헤치신 선군의 길, 참다운 애국의 길이 있었기에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은 산산이 부서지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굳건히 지켜질수 있었고 선군의 덕으로 다져진 막강한 국방력이 있어 오늘 공화국은 자기의 자주권과 존엄을 높이 떨치고있는것입니다.
이렇듯 거창한 폭을 담고있는 애국은 부모처자와 혈육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것이 김정일애국주의의 지론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기 처자, 자기 혈육에 대한 사랑이자 곧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자기의 부모처자, 자기 혈육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라야 자기가 나서자란 조국을 사랑할수 있다는 고귀한 가르치심입니다.
예로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갈라놓을수 없고 혈육은 나눌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사랑이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처자, 혈육들과의 생활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일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부모형제, 처자를 생각하면 나서자란 정든 고향이 떠오르고 고향을 생각할 때면 혈육의 그리운 모습이 안겨옵니다.
자기 혈육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자기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조국과 인민을 사랑할수 없는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가정에 대한 사랑은 다같이 소중하다, 조국과 가정은 일체이며 따라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처자와 혈육에 대한 사랑은 하나로 되여야 한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따로 있고 처자와 혈육에 대한 사랑이 따로 있을수 없다는것이 장군님의 지론입니다.
주체87(1998)년 2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체육관에 나오시여 리명훈선수를 만나주시였습니다.
그날 롱구경기를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리명훈선수와 식사를 함께 나누시였는데 식사도중에 그이께서는 문득 안해를 사랑하는가, 아이는 몇인가고 물으시였습니다.
리명훈선수가 안해를 사랑하고 아들이 하나 있다고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아들을 고와하는가고 다시 물어주시였습니다.
리명훈선수가 순박한 성미그대로 벌씬 웃으며 아들이 정말 곱습니다라고 대답을 올리자 장군님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치시였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던 다른 일군들도 즐겁게 따라웃었는데 그야말로 친아버지를 모신 화기애애한 가정적분위기 그대로였습니다.
잠시후 장군님께서는 《안해와 아들을 무척 사랑한다고 하는데 좋은 일입니다. 부모처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조국도 사랑할줄 모릅니다.》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습니다.
부모와 안해, 자식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숭고한 조국애로 심화시켜주시는 뜻깊은 말씀이였습니다.
애국의 마음은 자기 고향, 자기 부모형제들에 대한 사랑에 샘을 두고있다는 심오한 뜻의 말씀.
그 가르치심을 전해들으며 사람들은 장군님의 고결한 조국애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였다고 합니다.
김정일애국주의에는 그것이 비록 눈에 뜨이지 않는 평범하고 자그마한것일지라도 조국의 귀중한 한부분으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진실한 사랑이 담겨져있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추상적인것이 결코 아닙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열렬한 애국심은 나서자란 조국산천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아끼고 사랑하는데서 표현되는 구체적인 사상감정이라고 말씀하군 하시였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그마한것일지라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데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깊은 가르치심인것입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방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 있은 일입니다.
어느 한 마을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길옆에 방금 베여다놓은 풀단을 보시다가 급히 다가가시여 그것을 헤치시였습니다. 풀단속에 밑둥이 잘리운 한그루의 애솔포기가 섞여있었던것입니다.
애솔포기를 집어드시고 이윽토록 바라보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몸둘바를 몰라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만큼만 자라자고 해도 몇해는 걸려야 하겠는데 참 아깝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선렬들의 피가 스며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조약돌 하나를 아낄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애국자가 될수 없다고 자책에 잠겨있는 그들을 따뜻이 일깨워주시였습니다.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정을 쏟아부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기에 그이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부대주변의 산에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꾼것을 보시면 더없이 기뻐하시며 애국자부대라는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군 하시였습니다. 그리고 아담하게 꾸려지고 살구나무나 감나무들이 우거진 마을과 중대병영을 보시면 환하게 웃으시며 살구나무동네, 감나무중대라고 민족의 향취를 담아 정답게 불러도 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해 여름날 인민군대의 어느 한 비행군부대를 찾으시였을 때 있은 일입니다.
그날 군부대의 여러곳을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마주보이는 수림을 바라보시며 만족을 금치 못하시다가 저것이 과수원인가고 물으시였습니다.
그이께서 가리키신 곳에는 왕밤나무, 사과나무, 추리나무, 앵두나무 등 과일나무들과 잣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고 실하게 자란 아카시아나무들은 그윽한 향기를 한껏 풍기며 설레이고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과수원을 보는것 같았고 또 어찌 보면 수림을 보는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동행한 일군들모두가 기분이 좋아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였는데 그들을 한사람한사람 일별하고나신 장군님께서는 좀전에 차를 타고 정문으로 들어오면서 보니 마치 수림속에 들어오는것 같았다고,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길 량옆에 있는 나무들마다에 있는 명찰들을 세세히 살펴보시고나서 저것 보시오, 매 나무마다에 군인들의 손길이 가닿지 않은데가 없습니다, 나무를 많이 심고 정성껏 가꾸는것은 애국심의 표현입니다, 이 부대는 애국자부대입니다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습니다.
이렇게 인민군군인들이 응당 해야 할 일을 한것을 보시고도 기쁨을 금치 못하시며 애국자부대라고 높이 평가하시니 정녕 그이이시야말로 애국의 씨앗을 뿌리고 그 화원을 정성들여 가꾸어가시는 애국자중의 참애국자이신것입니다.
하기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김정일애국주의는 내 나라, 내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까지도 다 자기 가슴에 품어안고 자기의 더운 피로 뜨겁게 덥혀주는 참다운 애국주의입니다.》라고 김정일애국주의의 진면모를 방불히 그려보이시였습니다.
정녕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그 열도에 있어서나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가장 열렬하고 가장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에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이 있는것입니다.
가장 적극적이며 희생적인 헌신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의 또 하나의 참뜻이 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이다.》라고 지적하시였습니다.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의 마음으로서 그것은 무한한 헌신과 투신을 동반하게 됩니다. 원래 애국에 대하여 말할 때 사랑과 헌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사랑이 열정적이고 뜨거운 인간의 감정이라면 그 열도는 바로 실천을 의미하는 헌신에 의해 규정되기때문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참다운 애국자가 될수 없습니다.
애국은 결코 우국이 아닙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만으로는 애국의 길에 나설수 없기때문입니다.
말로써는 하루밤사이에 만리장성도 쌓을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것입니다. 실천이 없이 말만 하여서는 종이장 하나도 옮겨놓을수 없다는것은 하나의 리치입니다.
진정으로 애국을 하려면 애국의 마음을 가지고 애국적인 행동을 하여야지 빈말이나 빈구호를 웨치는것은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김정일애국주의에는 조국과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랑할뿐아니라 조국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민의 락원으로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 담겨져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의 하나가 있습니다.
마를줄 모르는 샘에는 영원한 원천으로 되는 깊은 줄기가 있기마련입니다.
몇달, 몇해도 아니고 온 생애를 줄기차게 관통해온 김정일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은 그이께서 지니고계신 뛰여난 자질이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책임감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한생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은 인생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 귀착됩니다. 말하자면 생에 대한 견해와 자각이 인생의 전 과정은 물론 삶의 매 순간순간을 결정하는것입니다.
위대한 인생은 위대한 인생관의 구현과정입니다. 인생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 숭고하면 할수록 그 인생은 만사람의 찬양과 력사의 공인을 받는 숭고한 생으로 이어지기마련입니다. 인류력사에 이름을 떨친 명인, 위인들의 생애가 높이 평가되고 사람들의 추억속에 길이 남아있게 되는것도 그들의 한생이 남다른 인생관에서 출발하였기때문입니다.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인생관은 이 세상 그 어느 명인의 인생관에도 비길수 없는 참으로 고결한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며 한생을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것이 우리의 인생관이라고 말씀하시였으며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것이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리고 일군들에게 조국과 혁명, 혁명가들과의 관계를 아름드리거목과 그에 마를줄 모르는 영양소를 보장하는 뿌리와의 관계에 비유하여 말씀하시면서 혁명의 뿌리가 되자, 이것이 오늘 우리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인생관이라시며 자신께서는 동무들과 같이 우리 혁명의 억센 뿌리가 되려고 한다고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값높은 인생관에 대하여 밝혀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목은 곧 부강하고 번영하는 조국이였습니다. 인민의 행복이 무르익고 나라의 국력이 세계에 떨쳐지는 강성국가가 바로 그이께서 말씀하신 무성한 거목이였습니다.
그 거목을 받쳐주는 뿌리가 되자는 장군님의 말씀에는 행복을 누리는것보다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바치는것을 더 큰 보람으로 여기고 누가 알아주건말건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여기에 더없는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그이의 숭고한 인생관이 집약되여있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무성한 거목을 떠인 뿌리처럼 한생을 엮어오신 김정일장군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생각할수 없는 인생관입니다.
장군님에게는 오직 인민에 대한 복무만이 있었을뿐입니다. 그이께서는 자신을 인민의 복무자, 인민의 심부름군으로 여기시였습니다.
나는 끼니를 번져도 좋고 얼어도 좋으며 힘들어도 좋다, 인민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으며 행복할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 인민을 행복하게 하고 인민의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한생 뿌리가 될것이다! 장군님의 이 고결한 인생관이 그이로 하여금 위대한 헌신의 한생을 사시게 하였던것입니다.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의 바탕에는 바로 부강조국을 받드는 뿌리로 살아야 한다는 숭고한 인생관이 놓여있는것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김정일애국주의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으로 되는것입니다.
력사에는 조국에 대한 헌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위인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습니다.
《자기 조국의 복리를 위한 투쟁에서 병사가 되여야 한다.》고 개인이 조국앞에 지닌 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도 있었고 《조국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자, 쉽사리 조국과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국을 위해 죽는것은 즐겁고 영예스럽다.》고 하면서 조국을 위한 생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처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헌신으로 자기의 한생을 빛내인 그런 령도자는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맞으신 조국의 새벽, 불타는 열정으로 보내신 낮과 밤, 끊임없이 찾고찾으신 초소와 일터들, 군대와 인민이 있는 그 어디에나 그이의 애국헌신의 일화가 무수한 하늘의 별처럼 새겨져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참다운 애국으로 간주하신 헌신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정력적으로 사업하신 가장 적극적인 헌신입니다.
옛적부터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전해져내려오고있습니다. 신하들은 일하고 임금은 편히 지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의 현실에서는 그 말이 정반대로 되였습니다. 령도자가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근로하시였고 그것이 곧 온 나라 전체 인민의 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세계에는 낮과 밤, 휴식일과 명절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명곡 한편한편, 명장면 하나하나를 위해 창작가들과 함께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시던 1960년대의 그 나날들에 이어 위대한 주체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실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끝없는 사색과 탐구, 정력적인 령도로 낮과 밤을 보내시던 지난 세기 70년대, 창조와 번영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시던 80년대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변하지도 않고 식지도 않고 더욱더 열렬해진것이 인민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열도입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감이 가득 쌓여있으면 걱정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흐뭇합니다.
사실 일감이 많다는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갓쓰고 하늘소타고 시조나 읊조리던 조상탓만 하지 말고 남들이 한걸음 갈 때 우리는 열걸음, 백걸음을 가야 한다고 하신 당부를 지키려면 우리모두가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할것입니다. 나는 오직 인민을 위하여 수령님의 당부대로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살려고 합니다. …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살려고 한다,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시겠다는 맹세를 지켜 장군님께서는 비오나 눈오나 바람이 부나 인민을 찾고찾으시였고 잠도 휴식도 잊으시였으며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일하고 또 일하시였습니다.
1998년 정월의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 있은 이야기입니다.
15일밤 800리 밤길을 렬차로 달려 다음날 아침에 강계역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도착하신 즉시 렬차집무실에서 책임일군으로부터 도의 실태를 보고받으시고 도의 경제발전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곧 현지지도단위인 북천의 띄우개식발전소로 향하시였습니다.
아침 9시에 이곳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쇠붙이에 손을 대기만 하면 떡떡 얼어붙는 강추위속에서 맵짠 강바람을 통채로 맞으시며 강물우에 떠있는 발전소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시고 이어 장강군으로 가시여 장강1호발전소와 산골짜기에 있는 토목식언제발전소 그리고 장강2호발전소와 전기화된 주택마을, 장자산발전소를 차례로 돌아보시며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고 인민생활에 필요한 전기문제를 풀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오전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장군님께서 렬차에 오셨을 때는 오후 사업을 시작하기로 계획한 시간까지 20분밖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빵으로 간단히 요기나 하자고 하시며 검소한 점심식사를 15분도 못되는 짧은 시간에 끝내시고 곧 어느 한 련합기업소로 떠나시였습니다. 이곳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였을 때에는 산골의 짧은 겨울해가 서산에 걸리고 사위에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한 저녁녘이였습니다.
밤새 렬차행군을 하시고 아침부터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일군들이 오늘 현지지도는 그만 끝내셨으면 좋겠다고 청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승용차에 오르시여 전조등으로 길을 밝히시며 다음 대상인 북천3호발전소로 향하시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신 북방의 눈보라강행군길은 산천초목도 보기 드문 폭우와 혹심한 무더위에 허덕이던 2007년, 2008년의 그 잊지 못할 여름들의 삼복철강행군길로 이어지고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온 나라에 지펴올리시며 2009년에 정초부터 단행하신 초강도강행군으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8(2009)년 정초에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을 찾으신 때로부터 불과 10일안팎에 원산과 대안으로, 평양시안의 경공업공장들과 인민군부대, 룡악산유원지로 눈보라강행군을 단행하시였습니다.
동봉과 흥남지구에 가시여 비약의 날개를 달아주신데 이어 흥남에서 천수백리를 달려 락원으로, 평안북도에서 다시 원산으로, 동해 2 000리를 꿰질러 김철과 라남, 무산을 련이어 찾으시였습니다. 만포에서 백두산기슭으로, 또다시 수천리강행군을 단행하여 황철, 덕천, 재령, 희천, 안주, 구성 등지에로 현지지도의 로정을 이으시였습니다.
녕원, 연사, 남흥, 단천, 길주, 함주, 고산, 북창, 구장, 경성, 명천 등 나라의 방방곡곡을 폭풍쳐 달리신 장군님께서는 한해가 저무는 섣달에 들어와 더욱 비상한 열정으로 강계시내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신데 이어 다음날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시고 또다시 머나먼 최북단 라선땅으로, 김철과 성강으로 줄기차게 달리시였습니다. 그야말로 로정에 있어서 천문학적인 초강도강행군이였습니다.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년초의 대소한의 추위와 삼복의 무더위를 결코 피하지 않았습니다. 차체를 얼구는 강추위에 더운 방을 찾지 않으시였고 확확 달아오르는 무더위에 시원한 덕수터를 찾지 않으시였습니다. 가셔야 할 곳, 보셔야 할 단위가 너무도 많아 명절날도 바람부는 북방의 포전머리에서 몇알의 구운 감자로 끼니를 에우시였습니다.
장군님도 인간이십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인간도 누리는 최소한의 휴식마저 마다하시고 오로지 자신의 모든것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바치시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사업하는 시간, 휴식하는 시간이 구별되여있고 국가적으로도 휴식일이 제정되여있으나 장군님에게만은 휴식과 명절이 따로 없었습니다.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기차안에서, 배우에서 일군들을 만나시고 문건을 처리하며 회의를 소집하고 과업을 주군 하시였고 늘 바삐 일하군 하시였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동료들에게 우리는 8시간 로동을 위하여 투쟁하지만 우리들자신은 빈번히 하루에 그 2배나 더 일한다고 말하군 하였습니다. 그러한 근로대중을 위한 노력의 결실로 나온것이 《자본론》을 비롯한 많은 저서들이였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닌은 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언제나 긴장한 나날을 보내였습니다. 특히 1917년 10월혁명이 승리한 날 밤에는 토지법령을 작성하느라 두세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쓰딸린도 전쟁개시 9일동안에 하루에 12~16시간 일하였다는 이야기가 후일 사람들속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력과 헌신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밤새워 일하고나면 그 후과를 가시기 위한 다문 몇시간의 휴식시간도 있었고 하루 두세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 나날도 한생의 몇순간이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오직 조국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이것만을 인생의 둘도 없는 목표로 정하시고 시간도 정력도 바치고 또 바치시며 바치는것을 기쁨으로 안고 일생을 사시였습니다.
어느날엔 우리 걸음이 한걸음 떠지면 그만큼 조국의 전진이 떠지게 된다고, 날씨를 보아가면서 편안한 길을 갈수 없다고 하시며 떠나시였고 어느날에는 로동계급이 보고싶다시며 한밤중에 먼길을 나서기도 하시였습니다. 인민들의 건강문제가 걱정되시여 무더기비를 헤쳐가시며 강행군을 이어가신 날도 있었습니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험한 령길도 넘으시고 때로는 지척도 분간할수 없는 무더기비와 무더위를 헤치시며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자강도로 종횡무진하신 장군님의 령도의 자욱자욱은 눈물없이는 더듬을수 없는 위대한 헌신의 자욱입니다.
무서운 폭열속에 땀에 젖은 야전복이 마를새없이 초소를 찾으시고 공장과 농촌을 찾으시는 그이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와 인민들은 백번천번 뇌이던 장군님 또 오시라는 말이나 생각을 마음속에 묻어두군 하였습니다.
만나뵙고 그이의 로고에 찬 모습을 우러르면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며 마음속소원을 물기어린 눈빛으로 아뢰는 병사들과 인민들에게 오히려 장군님께서는 나를 생각하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마음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병사들과 인민들을 위해서 내가 땀을 흘린것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이런것을 고생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나의 병사들과 훌륭한 인민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강행군할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고 백날을 호강하는것보다 더 좋습니다라고 말씀하군 하시였습니다.
이렇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평생 1만 4 290여개의 단위를 찾으시였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지구둘레를 근 17바퀴나 돈것과 맞먹는 167만 4 610여리의 강행군길을 걷고걸으시였습니다.
하기에 언제인가 미국에서 사는 한 해외동포는 공화국을 방문하여 가는 곳마다 장군님의 헌신의 자취가 어려있는것을 목격하고 어디 가나 그이의 높은 뜻과 사랑이 어려있는 거룩한 땅이니 이 성스러운 지역을 차를 타고 지나기가 송구스럽다, 신발을 벗고 땅을 디뎌야 마땅하지 않겠는가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한바가 있습니다.
이렇듯 김정일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은 인류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지극히 고결하고 숭고하며 가장 적극적이고 불같은 헌신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헌신은 다음으로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고 조국번영의 위대한 력사를 창조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가장 희생적인 헌신입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최대의 헌신은 혁명의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서슴지 않고 한몸바치는 희생적인 투쟁정신과 그 실천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혁명의 길우에는 언제나 준엄한 난관과 시련, 간고한 투쟁이 있게 되며 때로는 가슴아픈 희생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은 자기희생성을 동반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앞에 가로놓인 난관과 시련앞에서 어느때 한번 주저하거나 물러선적이 없으시며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고 인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라 해도 서슴없이 뛰여드시며 불사신마냥 조성된 난국을 타개해나가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기는 공화국의 력사에서 전례없는 엄혹한 시련과 난국이 겹쌓였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헤아릴수 없이 커다란 경제적난관이 겹쳐든 그때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책동을 그야말로 미친듯이 감행해나섰습니다.
공화국은 익측도 후방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주의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조성된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기 위한 근본열쇠를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는데서 찾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주고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시며 끊임없는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그 선군장정의 길은 단순히 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이 아니라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내는 사생결단의 길이였습니다.
초속 20m로 불어오는 강풍에 3m이상 높이로 오르내리는 검푸른 파도를 헤치시며 단행하신 초도에 대한 현지지도와 적아쌍방이 총부리를 맞대고있어 하나의 불꽃이 순간에 불바다로 번져질 상시적인 위험이 서리고 엉켜있는 최대위험지역인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은 민족운명수호의 사생결단의 길, 선군장정의 길에 새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경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 이렇게 순간순간이 긴장되고 위험한 길을 수없이 걷고 또 걸으시였습니다.
준엄했던 사회주의조국수호전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길은 조국의 운명이 달린 사생결단의 최전연길이였습니다.
모진 난관과 시련도 과감히 맞받아나가며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신 바로 여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높이가 있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무한한 헌신으로 일관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김정일애국주의는 만사람을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참다운 애국의 길로 억세게 떠밀어주는 사상정신적원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김정일애국주의의 출발점
확고부동한 믿음
어떠한 사물현상이든 그 시원이 있는것처럼 김정일애국주의에서 말하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이나 가장 희생적인 헌신 역시 그 출발점이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에 대한 장군님의 불보다 뜨거운 사랑,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장군님의 희생적인 헌신은 자기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회주의제도의 정당성,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에서 출발한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정은원수님의 이 말씀은 김정일애국주의의 출발점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명백히 밝혀주고있습니다.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희생적인 헌신은 무엇보다도 자기 인민에 대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절대적인 믿음에서 출발한것입니다.
사랑과 헌신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며 믿음에 기초하고있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사랑과 헌신의 전제인 동시에 그의 중요한 표현입니다.
력사의 갈피를 더듬어보면 아래사람이 웃사람을 먼저 믿고 신하가 임금을 먼저 믿는것이 믿음의 전례였습니다.
나뽈레옹1세는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나도 그대들을 믿겠노라.》고 했고 중국의 문무황제는 《경이 나를 저버리지 않으면 내 또한 경을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들의 리면에는 네가 먼저 나를 믿으면 나도 너를 믿겠다는 속대사가 깔려있습니다. 조건부가 있는 이런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못됩니다. 그래서 로씨야의 문호 똘스또이는 《내 차라리 그대를 믿어서 실수하겠노라.》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어서 실수도 있다는 그런 믿음도 곰곰히 음미해보면 진실한 믿음이 못된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인민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믿음은 인민을 전지전능한 존재, 가장 힘있고 지혜로운 존재로 보고 대하는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는 전제가 없으며 조건이 없습니다.
다 아는것처럼 력사발전의 어느 시대에 창조된것이든지 이 세상의 모든 사회적재부는 다 인민의 무궁무진한 지혜와 힘의 산물입니다.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 변색을 모르며 금방 살아 움직이는듯 한 환각을 안겨주는 신비로운 고구려의 무덤벽화도 인민이 창조한것이며 하나의 무게가 평균 2.5t, 최고 16t이나 되는 화강석 250만개를 쌓아 근 150m의 높이로 건설한 고대에짚트의 피라미드도 근로하는 인민들의 힘에 의하여 마련된것입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김시습이 《나라의 창고에 쌓인 재물은 모두 인민자신이 마련한것이며 웃사람들의 의복, 신발은 바로 인민들의 살가죽이며 음식료리는 인민들의 기름이며 궁전과 차마들도 인민들자신의 힘으로 이룩되는것이며 세금, 공물 및 일체 필수품들도 죄다 인민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것이다.》고 한것처럼 인민대중에 의하여 사회에 필요한 모든것이 마련되여왔습니다.
인류가 이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최첨단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우주정복의 넓은 길을 열어놓고있는 오늘의 현실도 다름아닌 인민대중에 의하여 창조된것입니다.
그러나 착취사회에서 인민들은 이 세상 모든 창조물들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고도 그 향유에서 제외되고있을뿐아니라 무기력하고 몽매한 존재로 천대와 멸시를 받고있습니다.
이 세상에 이름있는 사상리론가, 철학가, 정치가가 수없이 많았어도 인민대중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정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직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김일성주석의 이민위천의 사상을 구현하시여 인민대중을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를 가진 전지전능한 존재로 존대해주심으로써 력사발전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존엄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시였으며 인민대중을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부터 존대와 숭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키시여 인민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대화원을 펼쳐놓으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은 인민을 굳게 믿고 육친의 사랑을 베풀면서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간다. 믿음과 사랑은 수령이 지니고있는 숭고한 풍모이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에 대한 참된 사랑을 위하여 혁명도 필요하고 사회주의도 있는것이며 혁명을 하는 목적도 인민들에게 최상의 인격과 최대의 행복을 안겨주자는데 있는것만큼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혁명이야말로 인간을 완성시켜주는 최대의 사랑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고결한 정신세계입니다.
언제인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내가 자신처럼 믿고 사랑하는것은 오직 동지이고 인민이며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지이고 인민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을 자신처럼,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선과 정책을 하나 세우고 당, 국가건설사업을 지도하시여도,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문제들을 대하고 처리하시면서도 언제나 인민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되게 하시였습니다.
인민군대를 믿고 그에 의거하는 정치, 선군정치를 펴나가신것은 군대와 인민을 믿고 그에 의거하는 위대한 장군님의 정치의 숭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로 됩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 사회주의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일로 믿으신것은 인민군대였습니다.
인민군대에 대한 장군님의 믿음은 선군정치의 전면적개화기가 펼쳐진 1990년대 중반기이후 더욱 뚜렷이 표명되였습니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련의 언덕을 헤쳐가야 했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뼈아픈 상실의 피눈물을 군대와 함께 흘리시였고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바로 인민군대를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장군님의 믿음속에 인민군대가 오른 영광의 단상은 혁명의 기둥, 주력군의 지위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군복을 입은 무장집단이 혁명의 운명,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기둥, 주력군으로, 주도적인 정치세력으로 내세워진적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군대에 대한 믿음보다는 군대에 대한 우려와 위구감이 국가정치지도자들의 지배적인 사상감정이였고 그래서 군대를 경계하며 군대의 사명을 령토와 국가수호 일면에만 엄격히 한정시키고 군대의 정치개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것이 보편적인 관례였습니다. 결국 군대는 국가의 기둥이 아니라 울타리였고 권력자들의 단순한 정치적수단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민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간직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인민군대가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국가정치실현의 앞장에 내세워짐으로써 혁명군대의 절대적인 지위와 역할이 과학적으로 정립되게 되였으며 확고부동하게 공인되게 되였던것입니다.
인민대중을 믿고 그에 의거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정치에는 청년동맹은 우리 당의 미더운 길동무라고, 청년동맹은 우리 당과 함께 영원히 한길을 가야 한다고 하시며 어려운 일이 제기될 때마다 청년들을 믿으시고 그 과업을 청년들에게 맡기군 하신 청년중시정치도 있고 지식인들을 당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로 보시고 총대와 함께 붓대를 중시하신 정치도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에 대한 령도를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구현과정으로 만드시였을뿐아니라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풀어나가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자강도를 본보기로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이끌어나가신 근본비결은 그이께서 자강도로동계급에게 부어주신 믿음에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여러차례나 자강도를 찾으시고 그곳 일군들을 내세워주시면서 신심이 생기고 자신께서 구상하고 나가자고 하는 길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자강도에서 한것처럼 하면 부닥친 고난을 이겨낼수 있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기에 자강도사람들은 하늘같은 그 믿음을 안고 강계정신을 창조하였고 시대의 앞장에서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갈수 있었습니다.
주체87(1998)년 겨울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의 어느 한 공장을 찾으시였습니다. 그 공장으로 말하면 며칠전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면서 들리시려 하였을 때 일군들이 그 기업소는 생산을 제대로 못하기때문에 그만두었으면 한다고 막아서는 바람에 무겁게 발걸음을 돌리시였던 공장이였습니다.
끝없는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이것이 늘 마음에 걸리신 장군님께서는 구실 못하는 자식을 더 위해주라는 말이 있는데 그 기업소를 보기 위해 다시 가야 하겠다고, 그 공장일군들에게 책벌을 주게 되여있는데 다시 가서 만나보자고, 거기에 가서 그들이 받게 되여있는 책벌도 벗겨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동해안지구로 떠나게 되여있던 현지지도일정을 뒤로 미루시고 이 공장으로 오시였던것입니다.
그날 생산현장에 들어서시여 끝없이 펼쳐진 현대적인 자동흐름선들을 보시고 모두가 기업소자체로 만든것이라는것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수입제가 하나도 없단 말이지, 보시오, 다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만든것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리의것이라는 그것이 좋소라고 하시며 환히 웃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자기들이 이룩한 소박한 성과도 크게 헤아려주시고 계획을 못하여 큰 죄를 지었다고 사죄의 말씀을 올리는 일군들에게 아픈 매를 드실 대신 그것은 동무들의 잘못만이 아니다, 앞으로 일을 잘하면 된다고 하실 때 쇠를 다루는 강철의 심장들이 모두 장군님품에 안겨 소리내여 흐느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억센 로동계급도 우는가고 타이르시며 앞으로 자신께서 책임지고 자재도, 걸린 문제도 다 풀어주겠으니 생산을 꽝꽝 하라고 고무도 해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려 공장구내를 금강산휴양소나 칠보산에 있는 휴양소보다 낫게 꾸리였다고 치하도 해주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동무들이 올해 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할것이라고 확신하고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과 기념촬영을 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장군님의 이러한 믿음속에 이 공장 로동계급은 그후 부닥치는 난관을 뚫고나가면서 자기앞에 맡겨진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자랑을 떨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일화중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을 발동하여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하여오시였으며 오직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력사에 류례없는 시련과 난관을 뚫고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길을 열어놓으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사회의 주인으로, 무궁무진한 창조적힘과 지혜를 가진 전지전능한 존재로 보실뿐아니라 남달리 훌륭한 풍모를 지닌 참으로 좋은 인민이라고 하시며 온 세상에 높이 내세워주시였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늘 우리 인민은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직한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인민이다, 이러한 인민은 세상에 더는 없다, 우리 인민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어도 타발이 없고 당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좋은 인민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인민복을 누리고있다고 감동깊게 말씀하시군 하시였습니다.
원래 인민복이란 말은 고금동서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처음으로 쓰신 말입니다. 이러한 어휘는 오직 인민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늘처럼 존중하시는 절세의 위인들께서만이 찾아내실수 있는 명어휘입니다. 여기에는 인민에 대한 장군님의 절대적믿음이 뜨겁게 어려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인민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더 헌신분투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을 주시였으며 높은 정치적자각을 가진 우리 인민의 훌륭한 특질에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우리가 이런 인민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마다하겠는가, 우리 한번 일을 본때있게 전개해서 가까운 앞날에 우리 인민을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 살게 하고 모든 면에서 보란듯이 내세우자고 간곡히 당부하군 하시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신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이 세상 그 어느 위인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과 인민을 위한 무비의 헌신을 낳는 출발점으로,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나가신 그 무한대의 정력의 원천으로 되였습니다.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희생적인 헌신은 또한 사회주의제도의 정당성과 그 승리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확고부동한 믿음에서 출발한것입니다.
1980년대말~1990년대초에 쏘련식사회주의는 70여년의 력사를 기록하고 자기의 존재를 끝마쳤습니다.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진 첫 나라는 뽈스까였습니다. 1989년 9월 뽈스까에서는 정권이 련대성로조에 넘어감으로써 사회주의기발이 내리여졌습니다. 그후 인차 마쟈르, 로므니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모든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련쇄적으로 공산당, 로동당들이 해산되였습니다.
이전 쏘련공산당은 제28차대회에서 쏘베트정권에 대한 령도적지위를 포기한다는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은 《개혁》과 《개편》정책을 실시하는데 공산당이 간섭하지 말라는것이였습니다.
1991년 12월말에는 쏘련이 붕괴됨으로써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복귀되였습니다.
사회주의리념이 처음으로 움트고 세상에 첫 사회주의국가를 낳았던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당한 사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충격을 주고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 그 사상적대변자들은 이러한 사태를 두고 마치도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는것처럼 떠들었습니다. 사회주의를 그토록 증오하고 그것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온갖 책동을 다하던 제국주의자들은 줄곧 사회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요란하게 광고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자신을 믿듯이 사회주의제도의 정당성,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굳게 믿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애국헌신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신분이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언제인가 김일성주석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이제는 쏘련과 동유럽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이 망하고 우리 혁명의 국제적환경이 매우 복잡한데 이런 정세하에서 어떻게 하겠는가고 문의하신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께 하늘이 무너져도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사회주의의 길로 끝까지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장군님의 각오와 결심을 들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끝까지 사회주의길로!
그것은 사회주의제도의 정당성과 그 승리를 굳게 믿지 않고서는 감히 가질수 없는 각오이고 결심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름답고 우리의 승리는 필연적입니다.
나는 동무들에게 우리 식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믿고 또 믿으라고 말하고싶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유럽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세계적으로 반사회주의광풍이 휘몰아치고있던 때의 어느날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회주의의 승리를 믿고 또 믿으라!
미국과 서방의 정객들과 어용나팔수들이 사회주의《종말》을 요란스럽게 광고하고 지구상에서 붉은기가 내리워진다고 환성을 올리던 때, 오래지 않아 조선도 사회주의기치를 내리우게 될것이라는 주제넘는 《예언》이 나돌던 때에 울려퍼진 이 신념의 선언이 세상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한것이였습니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승리를 철의 신념으로 선언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과는 달리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모든것을 독자적으로 하여왔다, 우리는 제가 하고싶은 말을 다하고 제가 하고싶은 일을 다하였다, 우리는 누구의 눈치를 본적도 없고 누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굽신거린적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 우리의 결심, 우리의 구미에 맞게 모든 일을 하여왔다, 우리는 당도 우리 식으로 건설했고 나라도 우리 배심대로 발전시켰으며 군대도 우리 결심대로 강화발전시켰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조선로동당이 력사의 온갖 풍파를 뚫고 승리만을 이룩할수 있은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필승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우리 식대로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오시였기때문입니다.
일군들은 남이야 뭐라든 제정신을 가지고 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꿋꿋이 걸어나갈 때 남들이 앓는 열병에도 걸리지 않고 남들이 겪는 망국의 비극도 겪지 않으며 자기의 존엄을 지킬수 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90년대의 력사의 역풍을 맞받아나가는데서 우리 식, 주체식은 우리 당의 손에 쥐여진 서슬푸른 장검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사회주의가 곡절을 겪고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곡절이다, 시련은 일시적인것이며 승리는 영원한것이다, 나는 참다운 사회주의가 기어이 승리한다는 진리를 굳게 믿고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력사와 더불어 살아오면서 스스로 선택한 리념이다, 사회주의는 인민의것이다, 인민이 있으면 사회주의가 있다, 사회주의를 부정하면 인민대중자체를 부정하는것으로 된다, 우리 나라에서 승승장구하고있는 주체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리념의 표본이며 필승의 상징이다, 인류의 리상과 미래는 사회주의에 있다, 미래는 우리의것이다라고 확언하시며 일군들에게 우리 함께 《적기가》를 높이 부르며 90년대의 역풍을 맞받아나가자고 고무하시였습니다.
이날에 하신 그이의 말씀은 세계가 사회주의《종말》을 떠들고있을 때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인류의 미래는 사회주의이라는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과시한 력사의 선언이였습니다.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그 믿음을 공화국의 천만군민은 철석의 신념과 의지로 새겨안았습니다. 하기에 천만군민은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사랑과 믿음으로 결속짓고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이라는 휘황한 설계도따라 자기의 운명, 자기의 미래를 확신성있게 개척해나갈수 있었습니다.
일찌기 엥겔스가 자본주의가 자기를 매장할 로동계급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의 사회주의는 자기를 완성할 인민을 키워내고있다는 과학적확신,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고계시였습니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늘 일군들에게 우리 인민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 자체의 힘으로 개척하여온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에 대하여 깊은 애착을 가지고있으며 사회주의리념이 꽃피는 우리의 조국을 끝없이 사랑하고있다, 우리 인민은 그 어디에서 무슨 바람이 불어오고 어떤 시련이 앞을 막아도 자신의 피땀으로 이룩하여놓은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을 철저히 고수하고 끝까지 완성해나갈것이다라고 말씀하군 하시였습니다.
진정 사회주의위업의 정당성과 그 승리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절대적인 믿음이야말로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희생적인 헌신을 낳은 원천이며 출발점인것입니다.
숭고한 사명감
사랑과 헌신은 사명감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이나 련인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사랑은 더 말할것도 없고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도 그 구체적대상에 대한 애착심, 그앞에 지닌 의무와 사명 등을 떠나서는 론의조차 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조국과 인민을 이끄는 령도자로서, 수령으로서의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헌신의 원천, 그 출발점은 무엇이였겠습니까.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은 또한 가장 숭고한 사명감으로부터 출발한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그를 책임진 령도자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기어이 륭성번영을 이룩하고야말겠다는 결사의 의지와 숭고한 사명감은 령도자의 사상정신적풍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따를수 없는 숭고한 사명감을 지니시고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을 걸으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력사에는 이른바 웅대한 포부와 출중한 지략, 철의 의지로 나라와 민족의 번영사를 창조하였다고 자처하는 군주, 정치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강력한 군대를 건설하고 그에 의거하여 자기 나라의 령토를 세계적판도에로 넓힌 군사령관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피라미드나 신전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많이 건설하여 고대문명의 발상지, 중심지를 마련하였다고 하는 군주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상공업을 적극 장려하여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정연한 행정적 및 법률적기틀을 수립하여 막강한 국력을 다져놓았다고 자부하는 정치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리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개별적군주의 통치권확장요구나 특권계층의 향락과 치부를 위한것외에 이렇다할 그 어떤 대의명분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라와 민족의 진정한 행복과 부강발전보다는 전제통치제도의 강화와 소수 귀족들의 부귀영화가 제1차적인 요구로 나서다보니 필연적으로 절대다수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 피비린 전쟁이 뒤따르게 되고 남는것은 황페화된 국토와 텅 빈 국고, 더욱더 령락되여가는 인민들의 생활이였습니다.
진정으로 나라와 인민을 위한데 지향되지 못하고 그를 외면한 정치는 사실상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정치라고 말할수 없으며 그러한 정치가들의 생이 결코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참다운 한생이 아니였다는것이 력사가 보여주는 심각한 교훈중의 하나입니다.
이와는 근본적으로 달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졌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부터 그 무엇을 사색해도 그 무엇을 실천해도 조국과 인민의 번영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며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바로 여기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누가 자처한다고 하여 령도자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혁명, 조국과 민족의 기대에 충실하고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받을 때에만 령도자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따라서 령도자의 사명감이란 결국 시대와 혁명, 조국의 요구이고 인민이 부여하는 임무라고도 말할수 있는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기회에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자신의 변함없는 신념과 의지를 피력하시면서 인민들이 나를 지도자로 추천한 이상 나는 우리 인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 조선을 이끌고나갈것이며 인민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충복으로 한생을 살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이것은 인민이 자신께 준 분공이며 임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 있어서 시대와 혁명의 요구, 조국과 민족의 기대를 떠난 령도자의 본분, 사명이란 있을수 없었습니다.
령도자에 대한 시대와 혁명의 요구, 조국과 민족의 기대란 다름아닌 조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민족의 륭성번영을 이룩하는 투쟁을 승리적으로 이끌어나가는것이다, 혁명을 하는 목적도 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마음껏 누릴수 있는 사회정치적, 물질문화적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주는데 있는것만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령도자의 모든 사색과 활동은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고 인민에게 바치는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령도자는 그 어떤 권능에 앞서 이 의무에 충실하여야 하며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의 참된 충복이 되여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신조였고 좌우명이였으며 가슴속에 간직하신 숭고한 사명감이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명감을 간직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생을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을 걸으시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여기시였던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우리 민족이 사는 내 나라, 내 조국을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인민의 행복이 꽃펴나는 무릉도원으로 만드는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숭고한 리상으로 내세우시였습니다.
주체49(1960)년 9월 1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룡남산마루에 오르시여 백두에서 개척된 조선혁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나갈 불타는 결의를 담아 읊으신 시 《조선아 너를 빛내리》는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이의 숭고한 사명감과 리상에 대한 시대의 메아리가 되여 끝없이 울려퍼지고있습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과학의 최고전당에 들어서니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가야 하겠다는 결의가 더욱 굳어진다고 하시면서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여 수령님의 위업을 대를 이어 받들어나가는것은 시대와 혁명, 조국과 인민들앞에 지닌 우리의 숭고한 의무입니다.
위대한 태양의 나라 조선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자, 이것은 나의 드팀없는 신념이고 의지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찾아주시고 사회주의승리의 한길로 억세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 조선을 온 세상이 보란듯이 만대에 길이 빛내이실 자신의 숭고한 뜻과 의지를 시 《조선아 너를 빛내리》에 담아 격조높이 피력하시였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는 단순한 즉흥시가 아니라 태양의 나라, 조선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가시려는 절세의 위인의 가장 숭고한 사명감과 리상의 력사적선언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62년 10월 어느날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은동골안을 돌아보시며 읊으신 시 《제일강산》에서 내 나라는 어디 가나 절승경개라 사람들 자랑높이 안고사는 금수강산이며 천하의 아름다움 여기 다 모여 세상에 다시 없는 제일강산이라고 노래하시면서 세계가 부러워 너만을 바라보게 내 너를 더 높이 안아올리리 조선아, 조선아! 너는 나의것 나는 너의것이라고 격조높이 토로하시였는데 이것 역시 조선을 책임지신 자신의 사명감과 리상에 대한 열렬한 피력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위업을 받들어 조선을 만대에 빛내이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안으신 장군님이시였기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주체의 사상, 리론 및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라고 정식화하시였으며 불후의 고전적로작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주체사상의 철학적원리와 사회력사원리, 지도적원칙을 기본론제로 내세우고 그것을 과학리론적으로 해명하심으로써 김일성주석의 혁명사상이 주체의 사상과 리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라는것이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론증되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시였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지니신 장군님이시였기에 여러 나라들에서 붉은기가 내리워지고 사회주의가 좌절되여 인민들이 수치스러운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되였을 때 주체의 사회주의리론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시여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정당성과 필승불패의 생활력, 그 승리의 필연성을 과학적으로 론증하심으로써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있는 결정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 이후 그이께서 물려주신 조국의 운명, 그이께서 맡기고 가신 인민의 운명을 자신이 책임졌다는 숭고한 자각과 사명감을 더욱 가슴깊이 간직하시고 사랑과 헌신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오시였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련이어 붕괴되자 미국은 지난 시기 사회주의체계의 세계적범위에로의 확대를 억제하는것을 골자로 한 《봉쇄전략》을 자본주의가 유일적으로 지배하는 미국주도하의 《1극세계》창설을 노린 《확대전략》이란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들고나가는 공화국에 사회주의압살의 예봉이 집중될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화국은 익측도 후방도 없는 상태에서 단독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맞서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공화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고립과 봉쇄, 압살책동을 전례없이 강화하면서 조선에서의 사회주의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떠들어댔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김일성주석께서 맡기고 가신 조국과 인민의 운명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과 숭고한 사명감을 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운명수호의 기본열쇠를 선군정치방식을 전면적으로 실현하는데서 찾으시고 선군혁명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시였습니다.
1995년 양력설전야에 나는 수령님의 뜻과 위업을 계승하는 길에서 자그마한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드팀없는 신념과 결심을 표명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다음날에 다박솔중대를 찾으시였습니다.
전선시찰의 길, 선군길은 그야말로 장군님께서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군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해오신 나날이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집무실을 떠나 늘 초소에서 군인들과 함께 사시였습니다. 야전복을 입으시고 최전연감시초소를 찾으시여 조국방선을 지켜선 군인들을 고무해주기도 하시고 그들과 야전식사도 함께 나누시였으며 최전연초소에서 낮과 밤을 보내군 하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장군님께서 왜 최전연초소를 찾으시여 군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시는가에 대해서 다는 알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위험천만한 전선길에서 고생이란 고생, 고뇌란 고뇌를 다 겪으시는 그이께 일군들이 초소는 념려마시고 더는 험한 전선길을 걷지 마시라고 간절히 말씀올리군 할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내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은것은 우리앞에 자주적인 인민, 자주적인 근위병이 되느냐 또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나서기때문이다, 이 심각한 문제를 풀수 있는 열쇠가 바로 총대를 강화하는데 있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고봐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신 위대한 령도자, 절세의 애국자만이 하실수 있는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더 높이 추켜드신 선군의 기치가 있었기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 사회주의운명이 지켜지고 강성국가건설의 도약대가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공화국을 어째보려는 미국과 반동들의 발악적인 책동에 철추를 내리며 온 세상에 사회주의의 진리성, 불패성을 과학적으로 론증한 불후의 고전적로작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는 세상이 열백번 뒤집혀진대도 인민의 생명이고 생활인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드시려는 장군님의 숭고한 사명감과 불변의 신념의 력사적선언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6(2007)년 2월 어느날 일군들에게 자신의 심중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한 나라의 령도자이기 전에 수령님의 전사이며 인민의 아들입니다. 수령님의 전사로서, 인민의 아들로서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국력이 강하고 모든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잘사는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면모를 전면적으로 갖추어놓지 못하였으며 조국통일위업도 실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편안히 발편잠을 자고 휴식을 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나라를 세상에서 으뜸가는 강성대국으로 만들고 우리 인민이 통일된 조국땅에서 가장 행복하고 유족한 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하기 전에는 순간도 휴식을 할수 없습니다. 나는 조국과 혁명,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다 바쳐 일하는것을 가장 큰 영광과 행복으로,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나는 시련의 고비가 수없이 앞을 가로막아도 조국과 혁명, 인민을 위하여 변함없이 지금처럼 선군장정의 길을 걷고 또 걸을것입니다. 선군으로 우리 조선을 사상에서도 제일, 군사에서도 제일, 경제에서도 제일로 만들어 누리에 더욱 빛내여나가려는것은 나의 확고한 신념이며 의지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쪽잠과 줴기밥을 드시며 불철주야 빨찌산식강행군, 헌신의 날과 날들을 보내시며 편안한 침대가 아니라 야전승용차, 야전렬차에서 주무시면서도 끊임없는 전선시찰,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신것은 이처럼 조국과 인민의 운명에 대한 절대적책임감, 공화국을 사회주의강성국가로 만들고 인민들이 통일된 조국땅에서 가장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수 있게 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에서 출발한것이였습니다.
정녕 이런 숭고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으시고 오직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주실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시고 바칠수 있는 온갖 헌신을 깡그리 바치신 위인은 이 세상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밖에 없습니다.
숭고한 조국관에 기초한 김정일애국주의
조국과 수령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김정일애국주의는 숭고한 조국관에 기초하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애국주의의 성격과 높이, 가치는 조국을 어떻게 보며 어떤 관점과 립장에서 대하는가 하는데 의하여 크게 규제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조국은 무엇인가, 그에 대하여서는 오래전부터 론의되여왔습니다.
하나의 공동체안에서 동포적공민이 사는 지역을 조국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철학가도 있었고 조국은 선조들과 자기자신, 후대들이 어제도 밟고 오늘도 밟고 래일도 밟을 땅이라고 말한 작가도 있었으며 사람에게 어머니가 하나이듯이 조국도 하나라고 하면서 조국을 어머니에 비유한 혁명가들도 있었습니다. 이전 쏘련의 어느 한 예술영화의 주제가는 조국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고 생활적인 구체적인 표현을 들어가며 조국에 대해 노래하였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람들의 서술과 묘사, 리해는 이렇듯 각양각색이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수령을 중심으로 조국관을 정립한 위인은 없었습니다.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창조하는 투쟁에 한생을 깡그리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인민대중의 참된 삶과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참다운 조국은 오직 위대한 수령에 의해서만 마련될수 있으며 조국은 곧 수령이라는 철학적해명을 주실수 있었습니다.
주체71(1982)년 12월 어느날 새로 나온 예술영화 《월미도》를 보아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만점짜리 종자를 골라잡은 걸작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습니다. 다음해 1월에도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월미도》는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고 조국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도록 교양하는데서 아주 좋은 영화라고 다시금 평가하시였습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월미도》의 핵에 대하여 《예술영화 <월미도>에서는 조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조국은 곧 수령님이시라는 철학적인 해답을 주고있습니다.》라고 밝혀주시였습니다.
예술영화 《월미도》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천앞바다로 밀려드는 5만대군의 적을 견제하고 3일간이나 조국의 섬 월미도를 영웅적으로 지켜싸운 조선인민군 해안포병들의 투쟁을 실재한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감명깊게 보여주고있는 작품입니다.
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가가 바로 《나는 알았네》인데 중대장 리태운과 무전수 영옥이를 비롯한 영화의 주인공들이 심장으로 부른 노래의 《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장군님의 그 품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라는 표현에 바로 위대한 장군님의 수령중심의 조국관이 집약적으로 구현되여있습니다.
사실 장군님께서 만점짜리라고 높이 평가하신 그 영화의 종자는 어느 한 작가에 의하여 새롭게 밝혀진것이 아니라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수령중심의 조국관을 그대로 구현한것입니다.
조국은 수령이라는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관은 력사발전,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절대적지위와 결정적역할에 대한 주체적해명과 탁월한 수령을 모시지 못한탓으로 겪어야 했던 어제날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 그리고 위대한 수령을 모시여 온 세계에 그 위용을 높이 떨치는 조선의 새 력사에 대한 과학적분석에 기초하고있는 가장 혁명적인 조국관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수령중심론을 주장하시였습니다.
맑스주의유물사관에서는 력사발전에서 인민대중의 역할과 개인의 역할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수령의 역할을 개인의 역할의 테두리안에서 취급하였습니다.
허나 장군님께서는 생산방식을 중심에 놓고 사회발전문제를 보는 유물사관의 견지에서는 인민대중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그것은 력사를 주도하는 역할로 볼수 없으며 수령문제를 인민대중과 개인의 관계에서 뛰여난 개인에 관한 문제로 보는 방식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고 간주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의 모든것의 주인도 인민대중이고 모든것을 결정하는것도 인민대중이라는 주체의 원리로부터 출발하시여 수령은 단순히 특출한 개인이 아니라 력사와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혁명의 주체, 력사의 자주적주체에서 중심, 최고뇌수로 된다는 원리를 새롭게 정립하시였습니다.
수령은 뛰여난 개인들과는 비교할수 없는 특출한 지위를 차지하고 특출한 역할을 하며 개인은 아무리 뛰여나다고 해도 이러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할수 없다는것이 장군님께서 밝히신 수령론의 핵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은 인민속에서 나오며 수령의 령도밑에서만 인민대중이 의식화, 조직화되여 혁명의 참다운 주인으로 자라날수 있으며 자기 운명을 옳바로 개척할수 있게 된다는 분석으로부터 수령과 대중이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된 생명체를 이룬다는 원리를 도출해내시였습니다. 그리고 수령과 대중이 하나로 결합되여서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는것만큼 그것을 서로 분리시키거나 대치시켜서는 안된다는것을 수령론전개의 근본원칙으로 일관하게 견지하여오시였습니다.
수령의 령도를 떠난 대중이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될수 없는것처럼 대중과 떨어진 수령도 력사를 향도하는 정치적령도자로서의 생명을 가질수 없습니다. 대중과 떨어진 수령은 수령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령은 철저히 인민의 수령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보내신 편지에서 아버지는 개인의 몸인것이 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의 수령입니다라고 쓰시였고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에서 아버지 김일성장군님은 《인민의 수령님》이라고 칭송하시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주석의 혁명력사는 그 어떤 개인의 투쟁사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최고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인 정치적수령의 혁명력사이라고 정식화하시였으며 수령과 대중을 분리시키거나 대치시키려 생각하여서는 안된다는데 대하여 늘 강조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밝히신 수령중심론의 확립은 조국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조국관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수 있게 한 원천으로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 수령중심론으로부터 출발하여 조국은 수령이라는 독창적인 조국관을 확립하시였던것입니다.
조국은 수령이라는 수령중심의 조국관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김일성주석님과 함께 계시면서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굳히신 관점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김일성주석을 몸가까이 모시고 그이의 슬하에서 성장하시면서 우리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이시라는 진리를 가슴속깊이 새겨오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백두산은 그이께서 수령중심의 조국관을 터득하신 혁명의 성지였습니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백두산을 조종의 산으로 특별히 사랑하고 숭상해왔습니다. 백두산에 대한 숭상은 곧 조선에 대한 숭상이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신 항일혁명의 력사와 더불어 백두산은 자기의 고유한 상징적의미외에 새 의미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족수난의 암담한 시기에 2천만 조선사람들이 백두산을 바라본것은 그곳에 조국의 해방을 이룩해주실 만고의 빨찌산 김일성장군님이 계시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조선의 군대인 혁명군이 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옛날에는 백두산이 조종의 산으로서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조선의 참다운 애국자들이 거기에서 항일대전을 벌린 다음부터는 혁명의 성산으로서 민족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여 성장의 첫 자욱을 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린시절을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나라찾는 싸움에 나선 항일빨찌산대원들과 함께 보내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지니신 수령중심의 조국관은 사실 이 나날에 터득되고 굳건히 자리잡은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일성주석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견결히 옹호보위한것은 결코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것도 아니고 후날에 그이께서 당총비서로 추대되시고 국가주석으로 되실것을 알고 그렇게 한것도 아니였습니다. 또 그 어떤 명예와 행복을 바라서도 아니고 해방된 다음에 그 어떤 직위가 차례질것을 바라서도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심장속에 도탄에 빠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실분은 오직 김일성장군님뿐이시라는 철석같은 신념, 민족의 태양이신 수령님께서 계시여 조선의 해방도, 내 조국의 밝은 미래도 있다는 신념이 굳게 간직되여있었기때문입니다.
항일혁명과 이어진 바로 백두산에서의 남다른 탄생과 성장과정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보다 먼저 조국을 알고 자신의 운명보다 조국의 운명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시였으며 조국의 운명을 백두산위인이신 수령님과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시였습니다. 이 과정에 수령님을 모시여 조종의 산 백두산이 성산으로 더욱 빛나고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있어 우리 조국의 창창한 미래가 있게 되였다는것을 가슴속깊이 새겨안으시였던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시기와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여러 단계에 걸치는 사회적변혁의 시기마다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계시면서 조국의 품은 곧 수령님의 품이라는것을 더욱 절감하시였습니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그이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사람들이 수십년을 두고도 간직할수 없었던 가장 고귀한것을 체득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1952년 6월 하순부터 최고사령부에서 생활하시였는데 그 기간 전쟁의 승리를 마련해나가시며 승리할 래일의 복구건설을 설계하시는 김일성주석을 뵈오면서 그이께서 계시기에 조선인민은 반드시 승리하며 조선은 재더미를 털고 일떠서서 끝없이 륭성번영할것이라는 신념을 굳게 간직하시였습니다.
조국의 품은 곧 수령님의 품이라는 진리는 장군님께서 전쟁시기에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에 그대로 구현되여있습니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진달래꽃 방긋 웃는 새봄인가요
종달새가 지저귀는 하늘인가요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나를 안아 키워준 어머닙니다
바다우에 둥실솟는 아침핸가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인가요
해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은
아버지장군님 품이랍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은 조국에 대한 사상감정을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어머님과 밀접히 결부시키고 그것을 다시 아버지장군님의 품이라는 숭고한 감정으로 승화시켜 노래함으로써 조국의 모습을 김일성주석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받아안으시고 조국의 오늘과 찬란한 래일도 김일성주석과 떼여놓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조국관을 깊은 정서속에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밝혀주고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이 조국을 노래한 다른 모든 시가들과 구별되는 높은 사상예술적경지가 있는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오신 과정은 단순히 그 어떤 하나의 체험과정이 아니라 김일성주석과 조선은 뗄래야 뗄수 없는 하나의 혼연일체이며 조선민족의 참된 조국은 수령님이시라는 진리를 정립체계화하고 천만군민의 가슴속에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깊이 심어주신 과정이였습니다.
조선인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수령으로 높이 모심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긍지높은 인민으로 될수 있었으며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일떠세울수 있게 되였다는것, 조선에서 일어난 세기적기적과 변혁은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가 안아온 결실이라는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일관한 립장이였습니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삶이 꽃펴나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참다운 조국을 안아오고 가꾸는 결정적요인이라는 결론을 내리시고 《수령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며 모든 행복의 상징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던것입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수령과 조국의 불가분리적인 련관, 조국이자 수령이고 수령이자 조국이라는 진리가 담겨져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수령님께서 위대하시기때문에 우리 조국이 위대하고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고 하시면서 때문에 자신께서는 조국에 대하여 말할 때 먼저 우리 수령님을 생각한다고 말씀하군 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수령중심의 조국관은 단순한 추상적사유, 론리적사고의 귀결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대한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인류력사발전의 새시대인 주체시대를 개척하시고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로 현대조선의 새 력사를 펼치신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혁명력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집대성한것입니다.
김일성주석을 높이 모심으로 하여 주체로 빛나고 주체로 존엄떨치는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그대로 담은것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처음으로 정립하신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이시라는 숭고한 조국관입니다.
언제인가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신 날 저녁 동행한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신적이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낯설은 땅에 온 소감들이 어떤가고 허물없이 묻자 수행원들은 저저마다 소감들을 말씀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라가 꽤 넓기도 하다는것, 온종일 비행기로 왔는데 이 세상 맨 끝에 온것 같다는것, 조국에서는 그런줄 몰랐는데 온통 눈천지이고 본때있게 춥다는것 그리고 떠나온 조국의 겨울풍경에 대한 추억담 등…
대답은 개개명창이였지만 벌써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어려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느끼는 첫 소감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조국! … 참으로 조국이란 말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불러일으키군 합니다.
조국의 품은 수령님의 품이고 수령님의 품은 어버이품입니다.
조국을 잠시라도 떠나면 이 말의 참뜻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것 같습니다.
깊은 뜻이 담긴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 누구도 여직껏 입버릇처럼 외워온 《조국의 품》, 《어머니 품》의 참뜻을 이때처럼 숭엄하게 되새겨본적이 없은듯 하였습니다.
조국의 품은 수령님의 품, 수령님의 품은 어버이품!
만리타향 이국에서 가슴치게 안겨오는 그 말씀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수령님을 떠나 조국을 생각할수 없으며 그 품을 떠나 이 세상의 그 어떤 행복도 영광도 바랄수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진정 조국은 곧 수령이시라는 수령중심의 조국관을 기초로 하는 김정일애국주의는 어제뿐아니라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사람들에게 조국과 인민의 운명은 수령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으며 수령에 의해서만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 지켜지고 담보된다는 철의 진리를 깊이 새겨줄것입니다.
조국과 사회주의
조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력사적으로 제기된 견해들은 그 내용에서는 일정한 차이들이 있지만 대체로 령토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론의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성이 있습니다.
령토 그자체를 조국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금까지 사람들이 새겨온 조국에 대한 일반적인 표상이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조국이라고 할 때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가리키는것은 사실입니다. 어원적으로 볼 때 조국이라는 말은 조상과 결부되여있는 개념입니다. 자기가 나서자라날뿐아니라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 선조들의 무덤이 있고 조상들의 피땀이 스며있는 땅이나 고향을 조국이라고 하는것은 리해할만 한 일입니다.
그러나 조국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이라는 단순한 력사적개념이나 령토적개념만은 아닙니다.
사람을 떠나 세계를 생각할수 없듯이 조국은 사람, 인민대중을 떠나 말할수 없습니다. 조국은 사람, 인민대중과의 련관속에서만 자기의 참다운 의미를 가집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그들의 자주적요구와 리익의 견지에서 조국을 보고 대하는 독창적인 견해와 관점을 확립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은 단순히 나서자란 나라나 고향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라야 합니다. 비록 나서자라기는 하였지만 참된 삶이 없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나 고향은 조국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이 삶과 행복이라고 말하군 합니다. 하다면 사회적인간의 참다운 삶과 행복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상이 실현되는 진정한 삶과 행복은 오직 참다운 조국의 품에서만 실현될수 있습니다.
자기가 나서자란 나라나 고향이 있다고 하여도 사람,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삶과 행복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것을 참다운 조국이라고 할수 없는것입니다.
지난 시기 이전 쏘련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사람들에게 조국에 대한 교양, 애국주의교양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조국이 무엇인가를 옳게 심어주는것으로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돈과 별장, 자가용승용차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황금만능의 생활방식에 대한 동경이 싹트게 되였고 결국 그들은 《조국이란 보수를 많이 주는 곳》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이 담보》되여있다는 《조국》을 찾아 미국과 서방으로 스스럼없이 떠나갔던것입니다. 결국 이전 동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군대와 인민이 진정한 조국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데로부터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자기의 귀중한 조국을 하루아침에 인민의 원쑤들에게 빼앗기고말았습니다. 그렇게 된데는 물론 원쑤들의 책동이 《인민》이요, 《조국》이요 하는 감투를 쓰고 교묘하게 감행된것과도 관련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사람들이 진정한 조국과 애국이 무엇인가를 가려볼수 있는 자막대기가 없었기때문입니다.
자기의 진정한 조국을 가지고 자기 힘으로 행복한 생활을 창조하고 향유하며 세상에 부럼없이 살려는것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성원들에게 있어서나 공통된 심정일것입니다.
조국이 단순히 나서자란 나라나 고향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라면 그러한 조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이것은 시대와 력사가 제기한 중요한 물음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시대와 력사가 절실하게 제기하는 이 문제에 대하여서도 완전무결하고 명백한 대답을 주시였습니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이 꽃펴나고 후손만대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되여있는 참다운 조국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인민의 참된 삶과 행복이 꽃피는 요람이 조국이라면 그러한 조국은 다름아닌 인민이 주인된 사회주의조국이라는것이 명백히 밝혀져있습니다.
주체75(1986)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기회에 창작가, 예술인들이 조국을 주제로 한 문학예술창작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조국을 주제로 한 문학예술작품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삶과 행복의 요람이며 조국이 없이는 참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수 없다는것과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과 후손만대의 행복과 번영을 보장하여주는 진정한 인민의 조국이라는것을 잘 형상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사실 장구한 인류력사를 거쳐오면서 인민대중은 자기의 삶을 꽃피워주는 삶의 터전이며 생활의 요람인 참다운 조국을 그려왔지만 인민의 진정한 조국이 어떤것인지를 그려보여준 사상가도 없었고 또 그러한 조국을 현실로 펼쳐놓은 실천가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인민대중의 생명인 자주성을 중심에 놓고 그 실현의 견지에서 사회주의조국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이 꽃펴나고 후손만대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되여있는 참다운 조국이라는것을 밝혀주시였던것입니다.
참다운 조국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이 꽃펴나고 후손만대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되여있는 사회주의조국이라는 위대한 장군님의 독창적인 정식화는 사회주의사회의 본질적특성과 그 우월성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해명에 기초하고있습니다.
사회주의조국은 말그대로 사회주의제도가 서있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류사회에 존재하였던 모든 사회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사회주의사회의 본질과 그 면모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조국을 인민의 진정한 조국으로 보는가 아닌가 하는것이 좌우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수천년을 존재해온 착취사회를 부정하고 탄생한 사회주의, 이 행성의 수억만 피압박대중을 그토록 격동시키며 수십년간 존재하여온 우월한 사회주의가 일부 나라들에서 인민대중의 심장속에 진정한 조국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끝내 자본주의로 복귀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것은 원래 사회주의사회가 행복한 삶을 누리려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념원을 실현시켜주는데서 그 어떤 부족점이나 결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착취사회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사회주의의 본질적특성과 절대적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사회주의사회를 인민의 영원한 행복의 보금자리로 건설해나갈수 있는 지침을 안겨줄수 있는 진정한 애국의 정치가, 령도자가 없었기때문입니다.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도 포함하여 지금까지 사회주의를 이끈 지도자들, 인민을 위한다고 한 진보적인 정치가들은 모두가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사는것을 인간의 본성적요구의 전부로 보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물질경제적면에서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생명인 자주성을 중심에 놓고 사회주의사회의 본질적특성과 그 우월성을 해명하심으로써 사회주의조국이야말로 인민대중이 자기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길 진정한 조국이라는것을 완벽하게 론증하시였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가 사회주의사회인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사회주의사회의 본질적특성이거나 우월성의 전부인것은 결코 아닙니다.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것은 인민대중이 자기의 생명인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에 불과합니다. 착취와 압박의 제도적청산으로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에서 획기적전환이 일어나지만 그것으로써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가 다 실현되는것은 아닙니다.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는 자주적요구이며 그것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살며 발전하려는 요구입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인민대중이 사회의 모든것의 진정한 주인으로 될 때 참답게 실현되게 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 《사회주의는 우리 인민의 생명이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사상사업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필수적요구이다》를 비롯한 여러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에서 사회주의사회의 본질적특성과 그 우월성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중심에 놓고 사회주의사회는 단순히 착취와 압박이 없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사회인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된 사회,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권리를 행사하며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주인으로서의 값높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회라는것을 밝히시였습니다.
반면에 자본주의사회는 썩고 병든 반인민적인 사회, 정치생활의 반동화, 물질생활의 기형화, 사상문화생활의 빈궁화로 하여 극소수 착취계급에게는 천당이고 근로인민대중에게는 지옥으로 되는 반인민적이고 반동적인 사회이며 날로 악화되는 반동성, 반인민성으로 하여 파멸의 길로 줄달음치고있는 사회라는것을 철의 론리로 까밝히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조국에서만 인민대중의 참다운 삶이 실질적으로 실현되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행복한 삶이 후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확고히 담보되며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정치생활, 경제생활, 사상문화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마음껏 누리려는 인민대중의 세기적인 념원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서 비로소 참답게 실현된다는것을 완벽하게 해명하시였습니다.
어느 한 나라의 이름있는 력사학자는 출판물에 발표한 글에서 자본주의는 속성상 심각한 생태계파괴를 동반하고 빈부격차를 절정에 이르게 할뿐아니라 황금만능에 토대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타락이 거듭되여 도덕을 진공상태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은 스웨리예, 오스트리아식의 사회민주주의나 요즘 류행되고있는 시장경제로도 해결할수 없을것이며 자본주의가 제손으로 빚어내는 이러한 모순과 문제점들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는것을 말해준다고 썼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이 꽃펴나고 후손만대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되여있는 참다운 조국은 바로 사회주의조국이라는것이 독창적으로 해명됨으로써 수천년에 걸쳐 인민대중이 그려보던 진정한 조국이란 무엇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길 참다운 삶의 품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을 똑바로 가려볼수 있는 가장 옳바른 지침이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영원한 삶을 누려갈 조국은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라고 밝혀주시고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사회주의조국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심어주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내 나라라는것은 단군민족, 김일성민족이 사는 조선이라는 뜻이고 내 조국이라는것은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라는 뜻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 인민이 만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아갈 내 나라, 내 조국은 바로 김일성주석께서 세워주신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라는것이 조국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관점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주의조국이야말로 인민대중에게 그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본성에 맞는 생활을 보장해주는 진정한 삶의 요람, 인민대중을 이루는 모든 계급과 계층의 성원들을 차별없이 한품에 안아 그들모두가 국가와 사회의 평등한 주인으로서 자기의 자주적요구를 마음껏 실현해나갈수 있게 해주는 은혜로운 품이라는 신조가 깔려있습니다.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는 1995년 1월 1일 한폭의 붉은기를 덮으시고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수령님의 령전에 숭고한 경의를 드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신년친필서한을 쓰시고 일군들에게 자신께서 이번에 서한에서 내 나라, 내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내 나라는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주체조선이며 내 조국은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사회주의조국을 의미한다고, 내 나라는 력사적유래로 말하면 단군조선이고 현대조선의 시조의 존함을 붙이면 김일성조선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를 특별히 선정해주시면서 TV방송에서는 자기 수령이 있고 당중앙이 있으며 나라의 얼굴인 수도를 사랑하는 사상감정을 화면에 잘 반영하여 이 노래를 내보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고요한 강물우에 불빛이 흐르네
못 잊을 추억을 안고 내 마음 설레네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평양의 밤아
…
새길수록 뜻이 깊고 들을수록 더 듣고싶은 이 노래는 사회주의조국의 심장인 평양에 대한 뜨거운 송가로, 열렬한 조국찬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 노래를 새롭게 형상하여 TV로 자주 내보내도록 하신데는 아름다운 선률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속에 평양에 대한 깊은 정서와 열렬한 조국애를 심어주자는데 있었습니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국에 대한 노래가 많아야 한다고, 노래를 통해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잘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군 하시였습니다.
언제인가 김일성주석께서 다른 나라를 방문하실 때 렬차안에서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조용히 부르신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일성주석께서는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김정일동지가 만들게 하였는데 이 노래가 제일 좋다고 누구에게라 없이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으시고 그 일을 뜨겁게 회고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정말 좋은 노래입니다. 우리는 노래를 통한 교양을 비롯한 여러가지 교양사업을 짜고들어 인민들에게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심어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시와 노래의 풍만한 화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으며 그 시와 노래들마다에 조국은 곧 김일성주석의 품이고 우리 인민이 안겨살 조국은 주체사회주의이라는 사상과 민족의 얼이 넘쳐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습니다. 그 다심하고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조국애의 숭고한 사상감정을 심어주는데 이바지하는 시와 노래들이 주렁지게 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참다운 조국애를 심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조국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애국자로 억세게 싸워나갈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주신 바로 여기에 숭고한 조국관의 체현자이신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위인상이 어리여있는것입니다.
숭고한 인민관에 바탕을 둔 김정일애국주의
이민위천의 좌우명
김정일애국주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는 숭고한 인민관에 그 바탕을 두고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민위천은 수령님의 좌우명이자 나의 좌우명이며 나의 정치철학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민위천은 장군님의 한생의 좌우명이였습니다.
이민위천은 말그대로 인민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인민을 하늘처럼 여긴다는것은 인민대중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존엄있는 존재로 여기고 내세운다는것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일을 꾸미는것은 사람이지만 일이 되는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다.》고 하면서 하늘을 신성하고 불가항력적인 능력을 가진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영원한 존재로서 자연의 천지조화를 일으키는 하늘의 높이와 위력에 비겨지는 인간은 분명 위대한 존재인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에도 인민은 하늘에 비겨지지 못하였습니다. 반대로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인민은 《노예》, 《귀족의 종》, 《말하는 기계》, 《자본의 철쇄에 묶이운 노예》로 취급당하여왔습니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해온것이 바로 인민이였습니다.
자기의 계급적해방의 사상을 가지고 로동계급이 력사무대에 등장한 때로부터 로동계급, 피압박대중은 미래사회, 새 세계의 주인공으로 인간의 자주적존엄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주체의 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사회를 처음으로 건설하고 세계자주화위업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는 시대와 력사의 선도자로 되였습니다.
이민위천은 바로 시대와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인민대중을 가장 귀중하고 힘있는 존재로 내세우며 인민을 위하여 성실히 복무하고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모든것을 풀어나갈것을 주장하는 좌우명이며 철학사상입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는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이민위천, 이신위민의 리념을 좌우명으로 삼아오시였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생활신조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인민들속에는 철학도 있고 경제학도 있고 문학도 있다고 하시면서 한평생 인민을 자신의 둘도 없는 스승으로 내세우시고 존대하여오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자신께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준 현명한 스승도 인민이였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이민위천의 좌우명은 바로 김일성주석께서 한평생 스승으로 여기신 인민대중을 가장 지혜로운, 자신의 둘도 없는 선생으로 내세우고 존대하는 관점이고 립장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대중을 가르치고 이끌어나가는 령도자이시였지만 언제 한번 스승인 인민을 떠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신적이 없었습니다. 한평생 머리를 숙이고 인민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여기신분이 다름아닌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다음 그이께서 철학을 기본으로 하여 너무나도 불철주야로 사색하고 탐구하시기에 일부 사람들은 그이께 다른 나라에 가서 한 3년동안 공부하시지 않겠는가고 권고한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원래 자신께서도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한 3년동안 공부를 더 하고싶었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고, 철학의 대가이신 수령님께서 계시고 위대한 선생인 우리 인민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이 훌륭한 대문헌고와 떨어져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겠는가고, 자신께서는 이 훌륭한 서재를 학교삼아 한 3년동안 독학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또 언제인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현실은 훌륭한 학교이며 인민대중은 선생입니다. 내가 인민대중을 선생이라고 하는것은 인민대중이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며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있기때문입니다. … 나는 인민대중을 위대한 스승으로 숭배합니다. 나는 인민대중의 사랑받는 아들이 되기 위하여 한평생 머리를 숙이고 인민들로부터 배울 결심입니다. 이것은 나의 좌우명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동무들이 나를 천재라고 하는데 원래 타고난 천재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아는것이 있다면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에게서 열심히 배운 결과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대중속에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과학과 기술도 있다는것, 따라서 인민을 위한 참다운 정치를 하자면 인민대중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속에 들어가 배워야 한다는것, 바로 이것이 그 어느 정치가도 가질수 없었던 위대한 장군님의 특출한 립장이며 창조적탐구의 방법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인민대중을 스승, 선생이라고 하시며 그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시였습니다.
어느해 여름날 저녁 한 일군을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자신과 함께 바람을 쏘이러 가자고 말씀하시고나서 차를 타시고 수도의 거리를 달리시였습니다. 그런데 차가 멎은 곳이 사람들이 붐비는 번잡한 시내복판의 어느 한 청량음료점앞이였습니다.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그 번잡한 음료점안에 들어가시여 음료의 값도 물어보시고 영업시간도 알아보시면서 오래동안 지체하시였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그 일군은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이께 이런 곳에서 더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조용한 곳에 가서 산책이나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내가 애초에 목적하고 온 곳이 바로 여긴데 어디에 가겠는가고 하시면서 인민들속에 들어와 봉사활동정형을 알아보고 민심도 살펴보는것은 하나의 귀중한 수업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옛날 봉건유교계률에 량반선비는 돈을 가지고 다니지 말며 쌀값을 물어보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지배층을 군중으로부터 차단시키는 반인민적인 계률이라고, 오늘 우리 일군들은 상점에 들어가서 줄도 서보고 식당에 가서 손님들과 같이 음식도 먹어보아야 인민들의 요구를 알고 그에 맞게 봉사활동을 개선해나갈수 있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들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것을 자신의 귀중한 수업으로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풍모는 그이의 영광스러운 혁명력사의 갈피마다에 뜨겁게 수놓아져있습니다.
주체99(2010)년 4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전시관을 돌아보실 때였습니다.
넓다란 방의 3개 벽을 꽉 채운 착상도해들이 그이앞에 펼쳐져있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의자에 앉으시여 한 교원이 지시봉을 들고 도해판을 설명하는것을 주의깊게 들으시였습니다.
하나의 도해판을 설명하는데만도 굉장한 시간이 들었으므로 몇개의 도해판만 청취하고나면 집중도가 떨어질수 있었지만 방대한 과학기술적내용들이 다 설명될 때까지 그이의 집중도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도해판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이께서는 처음부터 설명을 다시 청취하시듯 집중된 표정으로 련이어 질문을 하시였습니다.
하나하나의 착상들이 가지고있는 현실성까지 분석적으로 결부해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드디여 돌아가실 때 《오늘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모습은 인민을 스승으로 내세우고 그들에게서 허심하게 배우는것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보여주실수 있는 숭고한 화폭이였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인민에게서 배우는것을 한생의 어길수 없는 신조로 삼으시였기에 그이께서는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예지와 슬기, 경험과 지식을 다 체현하신 위인으로 되시였던것입니다. 하기에 공화국의 천만군민은 《인민을 선생으로 부르시는분 그 선생의 스승은 김정일동지》라고 노래부르고 또 부르는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이민위천의 좌우명은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습니다.
인민이 있어 나라도 있고 조국도 있다는것이 장군님의 애국신조였습니다.
사회주의는 인민이라는 대지를 떠나서는 존재할수도 발전할수도 없습니다. 인민을 떠난다면 사회주의라는 거목은 순간에 그 뿌리가 뽑혀지게 된다는것이 지나온 사회주의운동이 남긴 력사적교훈입니다.
인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자면 인민을 숭배하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복무정신을 지니고 인민의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확고한 관점이였습니다.
주체79(1990)년 1월 1일이였습니다.
그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어떤 고난이 닥쳐온대도 오직 우리 당만을 굳게 믿고 끝까지 따라올 변함없는 좋은 인민이라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사회주의를 하던 수많은 나라의 공산당, 로동당들이 혁명을 포기하고 인민을 배반하였지만 우리 당은 인민을 절대로 배반할수 없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대도 우리 인민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인민군대에는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가 있는데 우리 당일군들의 구호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으로 되여야 한다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 구호에는 인민을 숭배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립장과 관점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여있습니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인민을 위한다는 위인들은 많았어도 위대한 장군님처럼 인민에 대한 복무를 자신의 둘도 없는 좌우명으로 내세우신 인민의 령도자는 없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복무자가 되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안으시고 인민을 내세우시고 모든것을 인민의 리익에 복종시켜나가시였으며 인민을 위해 한생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군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것은 인민을 위해 필요하며 인민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한다, 정치를 펴고 법을 만들어도 인민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하며 군대를 건설해도 인민의 군대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음식상을 볼 때에도 인민들의 밥상을 먼저 생각하고 좋은 옷을 볼 때에도 인민들의 옷차림을 먼저 생각하며 집을 지을 때도 인민들의 살림방을 먼저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에 모시고 오래동안 사업한 한 일군은 자기 회상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이께서 습관적으로 쓰시는 두가지 말씀이 있다. 하나는 인민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실 때 <인민들이 좋아하오?>라고 물으시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민들이 불편해하는 점이 있다는것을 아실 때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고 하시는것이다.》
이 글에는 인민들의 요구와 리익을 모든것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숭배의 관점과 립장이 집약되여있습니다.
인민들이 좋아하는것이라면 언제나 절대적인 지지를 표시하신분도 김정일장군님이시였고 사람들의 창조적활동과 그 창조물의 가치도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를 어떻게 반영하고있는가 하는것을 기본으로 보고 새롭게 평가하신분도 장군님이시였으며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실현하는 길에 위대한 헌신의 낮과 밤을 깡그리 바치신분도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1987년 개점을 며칠 앞둔 평양지하상점을 찾으시여 상점의 품위를 돋군다는 명목밑에 계절에 관계없이 그리고 사람들의 수요에 관계없이 상품들을 진렬해놓은것을 보시고 평양지하상점은 인민들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팔아 그들의 생활을 보다 유족하게 하기 위하여 건설한것이지 여러가지 상품을 진렬하여놓고 선전이나 하자고 건설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일군들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아주신 이야기며 1999년 6월 신의주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대외시장을 목표로 수출용으로 생산하고있던 화장품을 우리 녀성들에게 눅은 값으로 공급해주고 그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외화는 국가에서 전적으로 부담해주도록 하신 이야기나 2000년 어느날 한 제련소를 찾으시고 제련소구내의 나무잎새들이 새들새들 말라드는 현상에서 생산과정에 적지 않은 유해가스가 나온다는것을 간파하시고 비록 제련실수률이 떨어지더라도 유해가스가 나오지 않는 제련법을 도입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신것과 같은 이야기들은 이 땅 그 어디에나 새겨져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최첨단을 돌파하며 번영의 래일을 앞당겨나가던 2009년의 한해동안에만도 전국의 200여개 단위를 찾고찾으시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의 대장정, 초강도강행군을 하시였습니다.
그 나날 쉼없이 달리는 야전차와 야전렬차는 그대로 위대한 장군님의 집무실이였고 정든 집이였습니다.
이제는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만 같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들으며 천만군민은 장군님의 애민헌신의 뿌리가 다름아닌 이민위천이고 이신위민이였음을 더욱 가슴뜨겁게 절감하였습니다.
정녕 인민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 불같은 심정을 지니시고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신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혁명활동력사를 함축하면 인민이라는 소중한 두 글자가 남습니다.
인민을 하늘로 내세우는 이민위천의 숭고한 좌우명을 지니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깡그리 바치신 바로 여기에 인민의 령도자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위인상이 있으며 절세의 애국자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고결한 인민사랑
인민에 대한 참다운 사랑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회주의정치지도자가 지녀야 할 가장 고결한 품성입니다.
력사는 정치가, 령도자들의 인덕에 대한 이야기를 수많이 기록하고있지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처럼 그렇듯 진실하고 열렬하고 고결한 인민사랑을 지닌 령도자를 알지 못하고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베푸신 사랑은 그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친어버이사랑이였습니다.
아마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나 그 어떤 사회적집단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운명문제일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중의 최고의 사랑이 다름아닌 운명을 지켜주고 책임져주는 사랑이라고 말하는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이 세상 그 무엇도 대신할수 없는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되는것도 그것이 자식의 운명을 보살펴주고 책임져주는 사랑이기때문일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은 바로 이 땅의 천만자식을 한품에 안아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끝까지 책임져주는 친어버이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민을 건드리는자들은 지구상의 그 어디에 있건 용서치 않으며 이 세상에 그 어떤 천지풍파가 들이닥친다 해도 인민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정치신조입니다.
우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전 쏘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련이어 무너져내리고 지난날 인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던 정치가들이 하루아침에 배신의 길로 내닫던 준엄한 시기에 세계와 력사앞에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인민적령도자로서의 사명과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배신을 도덕적저렬성의 집중적인 표현으로 단죄하시면서 조선로동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인민을 저버리지 않을것이며 그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질것이라는 숭고한 의지를 안으시고 인민대중의 근본리익을 견결히 옹호고수해나가시였습니다.
인민대중의 근본리익을 옹호고수하는것은 인민대중의 운명과 직결된 사활적인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당장의 밥술을 떠넣어주는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식의 앞날을 끝까지 책임질수 있는 사랑이 부모의 진짜사랑인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화국을 향해 사면팔방에서 고립압살의 광풍이 불어치는 속에서 총대를 앞세워 나라와 민족의 근본리익을 수호해주신것은 인민의 존엄과 운명을 책임진 진정한 인민의 령도자의 위대한 사랑이였습니다.
여기에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89(2000)년 6월과 7월에 조선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하신 가슴뜨거운 말씀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제국주의의 검질긴 포위속에서 익측도 후방도 없이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강성대국건설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은것은 력사의 기적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인민군대를 강화하고 그에 의거하여 조성된 난국을 타개해나갈것을 결심하였다, 그때 우리 일군들속에서는 내가 왜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공장이나 농촌으로 가지 않고 끊임없이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나가는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전혀 일리가 없는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선행리론과 경험에 구애되거나 눈앞에 닥친 일시적인 난관만 생각하면서 혁명의 근본리익을 저버릴수 없었다, 내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은것은 인민생활이 곤난하다는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앞에 자주적인 인민, 자주적인 근위병이 되느냐, 또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나서고있었기때문이다, 이 심각한 문제를 풀수 있는 열쇠가 바로 총대를 강화하는데 있었다, 사실 숨죽은 공장들과 힘겨운 생활난을 겪고있는 인민들의 정상을 눈앞에 보면서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군인들을 찾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는 나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이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지금은 그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고봐야 한다, 사회주의를 지켜내기만 하면 인민생활을 푸는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이제 승리의 통장훈을 부르게 될 때 인민들은 내가 왜 경제사정이 곤난하다는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나갔는가 하는것을 리해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군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만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이 절절한 말씀.
그것은 정녕 인민의 근본리익을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으로, 혁명의 최고원칙으로 여기시고 력사의 온갖 풍파를 헤치시며 인민의 운명을 수호해나가시는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정화였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시대에도 김정일장군님과 같이 전대미문의 겹쌓이는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맞받아 헤치시며 총대로 인민의 운명을 구원하고 인민의 안녕과 리익을 지켜준 참다운 인민의 정치가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고결한 사랑은 인민들의 정치적생명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데서 뚜렷이 표현되였습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나에게는 인간철학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당에서 책임지고 키워주고 보살펴주고 사회에 내세워주며 죽어서도 영생하는 정치적생명을 주어 영원한 삶을 빛내여주는것이 우리 당, 조선로동당의 정책이며 곧 나의 인간철학의 핵입니다.》
사람은 사회적존재인것만큼 육체적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생명을 가지고있습니다. 물론 육체적생명도 귀중하지만 그에 비할바없이 귀중한것은 사회정치적생명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운명을 보살펴주는데서 그들의 정치적생명을 책임지고 돌보는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늘 일군들, 근로자들의 정치적생명문제에 첫째가는 주목을 돌리시며 그들에게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안겨주시고 그 누구도 사람들의 정치적생명을 함부로 건드릴수 없게 지켜주고 보살펴주시였으며 각계각층의 군중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고 그들이 정치적생명을 빛내여나가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언제인가 어느 한 군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앞에 죄를 짓고 잘못되였다는 사람들의 가족이 수백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리 크지 않은 한개 군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기본군중이 인민앞에 죄를 지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으시여 그 문제는 사람들의 정치적생명과 관련된 심중한 문제인것만큼 힘이 좀 들더라도 중단하지 말고 10년이고 20년이고 끝장을 볼 때까지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우리 인민들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과거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일제는 조선사람 100명을 죽이면 거기에는 한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승냥이와 같은 강도적인 론리를 들고나오면서 숱한 조선사람들을 죽였지만 우리는 천만사람을 믿고 품에 안으면 한놈의 나쁜 놈도 얼씬하지 못한다는 믿음의 철학을 주장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가슴에 새긴 일군들은 군중을 믿고 그들에게 의거하여 고심어린 사건조사를 진행함으로써 마침내 전쟁시기 내무원으로 가장한 적간첩일당이 그 일대에서 준동하면서 사람들속에 불화와 반목을 조성할 목적으로 수많은 농촌핵심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교묘하게 살해하였다는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해내고야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쟁시기 인민앞에 죄를 짓고 죽었다던 사람들을 모두 원쑤놈들에게 피살된 애국렬사로 선포하고 그 가족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렬사증을 수여할데 대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이렇듯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나라앞에 죄를 지은 사람들의 가족으로 수십년세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애국렬사의 후손으로 새롭게 태여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놀래우며 남조선사회에서 수십년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청춘을 잃고 병마에 시들은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한꺼번에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긴 전대미문의 력사적화폭도, 씻을수 없는 과오로 하여 정치적생명을 잃고 대오에서 떨어져나갔던 사람들이 소생의 빛발을 받아안고 값높은 삶을 누린 가슴뜨거운 사연도 오직 인민모두의 정치적생명의 은인이신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서만 엮어질수 있었던 사랑과 믿음의 대서사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베푸신 사랑은 가장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인민에 대한 령도자의 사랑의 열도는 인민에 대한 관심과 헌신의 정도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체95(2006)년 3월초 위대한 장군님께서 삼수발전소건설장을 찾아주시였을 때 있은 일입니다.
15세기에 군으로 승격된 삼수군은 옛 문헌에 《세 강이 합하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고 하여 삼수》라고, 《군이 어연강, 압록강, 삼수동강 등 3개의 지류사이에 있으므로 삼수라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져온 고장으로서 산골중의 산골로 알려져왔습니다.
발전소건설장에 도착하시여 건설정형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안쪽의 골짜기에 있는 살림집들을 가리키시며 이제 언제가 완공되면 저 집들이 다 물에 잠기게 되는가고 물으시고는 철거세대가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많은 살림집들이 침수지역에 있다는 어느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철거세대들은 어떻게 처리하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습니다.
도의 책임일군으로부터 먼저 동거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안색을 흐리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내가 오늘 삼수발전소건설장에 온것은 언제를 어느 정도 쌓았는가 하는것을 직접 볼뿐아니라 발전소건설과 관련하여 침수구역에서 철거하는 주민들의 살림집건설문제에 대하여 알아보자는것입니다. 현지에 와보니 발전소건설은 놀랄 정도로 많이 진척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만 가지고 만세를 부르기는 이릅니다.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풀어야 할 기본문제는 침수구역에서 철거하는 주민들의 생활보장문제입니다.
하루빨리 삼수발전소를 완공할 생각만을 앞세우면서 철거하는 주민들의 생활상불편에 대하여 관심을 덜 돌리고있던 일군들은 그이의 말씀에 심한 가책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철거주민들의 생활을 잘 보장해주는 문제를 주선으로 틀어쥐고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침수구역에 있는 주민들을 문화주택을 다 지어주고 철거시키되 그전에 쓰고살던 집보다 더 잘 지어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철거주민들의 생활을 잘 보장해주는 문제를 주선으로 틀어쥐고나가라!
이 말씀은 그 어느 발전소건설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몇만KW의 전기보다 여기에서 철수하는 주민들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명심하고 침수지역 주민들의 생활문제를 말로가 아니라 실천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인민들의 생활을 당에서 돌보고 나라에서 돌봐주는것이 바로 로동당의 정책이고 우리 당의 군중로선이라고 일군들을 절절히 일깨워주시고나서 삼수발전소건설과 관련하여서는 2개전선 다시말하여 발전소건설과 철거세대 주민들의 살림집건설을 다같이 밀고나가되 여기에서 기본은 철거세대 주민들의 살림집건설문제라고, 철거세대 주민들의 살림집건설을 앞세우는 조건에서 발전소건설을 끝내고 전기도 생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가보셔야 할 인민군부대들과 공장, 기업소들이 그 얼마이며 결론을 기다리는 국가적인 문제들도 많았지만 장군님께서는 인민생활과 관련된 문제는 어느것 하나 미룰수 없는 중대사로 보시였기에 머나먼 북방의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달려오시여 일군들에게 발전소건설의 기본문제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던것입니다.
철거주민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4월 어느날 발전소건설과 살림집건설이 동시에 병행되고있는 삼수땅에서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직은 새집들이를 하지 못한 수천여세대에 달하는 침수지역 주민들에게 한날한시에 TV수상기와 그릇세트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생활용품들과 녀성들의 화장품세트까지 보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셨던것입니다.
만사람을 울리는 감격의 이야기는 그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침수지역 주민들이 생활용품들을 받아안던 그날 명세에 밝혀져있는 이불만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도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이 깃들어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얼마 있으면 여름인데 이불만은 두었다가 새집들이를 할 때 안겨주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며 정히 보관하였다가 새집들이를 하는 날 전달하도록 하시였던것입니다.
침수지역 주민들은 그후 새 집에서 새 이불을 받아안고 친부모도 미처 생각할수 없는 사랑과 은정에 목이 메여 한없는 격정에 휩싸이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삼수발전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발전소건설력사에 없는 전설과도 같은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희천발전소의 룡림언제공사장과 희천2호발전소언제건설장을 돌아보시면서도 다시금 침수지역 주민들의 살림집을 먼저 지어주어 그들의 생활을 안착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습니다.
언제나 인민생활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인민을 위한 공장이 일떠서고 인민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중소형발전소건설이 완공되였다고 하면 만사를 뒤로 미루고 찾으시였으며 인민들에게 보내줄 경공업제품이 마련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실 때도 제일로 기뻐하군 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삼일포특산물공장과 대동강식료공장, 강계포도술공장과 훌륭히 기술개건된 평양곡산공장, 평양밀가루가공공장, 선흥식료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식료가공단위들과 12월7일공장에 새로 건설된 위생용품분공장과 평양양말공장에 새로 건설된 녀자양말직장 그리고 보통강백화점과 남포유리병공장 등 수많은 경공업공장들이 련이어 땅을 차고 솟아올라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게 되였습니다.
여기에 장군님께서 2009년의 삼복철인 8월 한달동안에 진행하신 혁명활동을 수록한 《로동신문》의 보도를 종합한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톤을 접견, 연극 《네온등밑의 초병》 공연관람, 개건된 송도원청년야외극장 현지지도, 새로 건설된 보통강상점 현지지도, 남조선 현대그룹 회장 접견,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와 2. 8직동청년탄광 현지지도, 개건확장된 구장양어장 현지지도, 원산제염소 현지지도, 문천시 3중영예의 붉은기 문천중학교(당시) 현지지도…
단 한달동안에 그것도 가장 무더운 삼복철에 단행하신 혁명활동의 일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자료가 아닐수 없습니다.
삼복더위가 한풀 꺾인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우리가 참기 어려운 시련을 과감히 뚫고 헤치면서 선군혁명의 길을 걸어왔기에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락원의 행군길을 열어놓을수 있었다, 고생끝에 락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 인민은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을 이겨내고 드디여 옛말처럼 락을 누리기 시작하였다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나날이 커가는 인민의 행복을 볼 때마다 나는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부강조국건설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일하는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고 보람입니다, 인민을 위한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을 위한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고 하시는 그 말씀은 정녕 애국헌신, 이민위천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으시는 장군님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습니다.
사실 2009년의 여름철날씨는 여느해와 달리 고온현상이 지속되여 참으로 무더웠습니다.
장마철이라고 해도 비는 내리지 않고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낮최고기온이 30°C이상으로 올라가는 심한 고온현상이 계속되여 쏟아지는듯 한 폭양에 대지는 열풍으로 확확 달아올라 싱싱하던 나무잎들도 후줄근해지고 농작물들은 혹심한 가물피해에 시달렸으며 사람들은 그늘밑에서도 땀으로 미역감는듯 한 더위를 이겨내지 못하여 선기가 나기만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때면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과 령도자들은 물론 누구나 다 해수욕장을 찾거나 피서지들을 찾아 주말휴식이요, 여름철휴가요 하면서 단몸을 식히는것이 상례로 되고있습니다.
하지만 이 삼복철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하루한시도 중단없이 땀에 젖은 손수건을 몇번이나 바꾸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평양방직공장을 찾으셨을 때 한 일군이 쏟아지는 뙤약볕을 막아드리려고 양산을 펴드렸으나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마다하시였고 2. 8비날론련합기업소를 찾으시여서는 초산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풍겨나오는 초산직장에만은 들어갈수 없다는 일군들의 만류도 마다하시고 식초냄새가 나는 국수집에 들어가는셈치고 들어가보자고 하시며 몸소 앞장서 들어가시였습니다. 땀에 푹 절은 야전복차림으로 구장양어장과 수도의 여러 봉사단위들을 찾으셨던 그날에는 낮최고기온이 33°C라는 수자를 기록하고있었습니다.
장군님의 이 애국헌신의 강행군길이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나날에도,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였고 그 헌신의 바탕우에 생겨난것이 바로 인민의 행복이고 기쁨이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지니신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깡그리 쏟아부으시였습니다. 천재적인 지혜와 피끓는 열정은 물론 투쟁하다가 설사 쓰러진다 해도 조국과 인민은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하시며 고귀한 생애를 인민을 위하여 초불처럼 불태우신분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이십니다.
그이께 있어서 인민을 위한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 락이였으며 인민을 위한 일을 하면 그만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은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것으로 하여 인민을 통채로 얻으시였습니다. 인민의 진심을 얻으셨고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으시였습니다.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과 인민의 장군님에 대한 지지야말로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가 천만의 심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무한대로 확산될수 있게 한 비옥한 토양이였습니다.
숭고한 후대관으로 일관된 김정일애국주의
미래를 사랑하라
김정일애국주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후대관으로 하여 더욱 뜨겁고 절절하게 안겨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후대들을 교양육성하는 사업을 혁명의 다음대를 키우며 조국의 미래를 가꾸는 사업으로 보시고 그것을 혁명의 전세대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로 간주하시였습니다.
다른 사업에서는 우리 세대가 다하지 못한것이 있어도 후대들이 보충할수 있지만 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을 잘하지 못하면 그것은 누가 보충할수도 없고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민족의 꽃이며 인류의 꽃인 후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따라 조국과 민족의 장래가 결정된다, 후대들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미래를 사랑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조국은 후대들에 의해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게 건설되게 될것이며 따라서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후대들을 더 잘 가꾸고 돌보아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한평생 변함없이 고수하고계신 후대관이였습니다.
이런 후대관을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조국의 역군으로 키우기 위하여 아낌없는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 당은 제일 좋은것을 다 어린이들에게 주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나라의 장래를 알려거든 어린이들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사랑하지 않는 혁명, 미래를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는 혁명은 전망성이 없는 혁명입니다. 그런 혁명이 그 어떤 훌륭한 리상을 달성하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짓입니다.
어린이들이 자기 부모들을 원망하고 정치가들을 원망하고 이 세상을 원망하며 혼란된 현실에 눈물을 짓는다면 그 나라는 의심할바 없이 미래가 없고 전도가 암담한 나라입니다.
새 세대들의 장래가 부모들의 돈주머니에 따라 좌우되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적불평등과 사회악의 희생물이 되는것을 피할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간섭으로 말미암아 지금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과 사회적충돌, 질병과 기아로 하여 목숨을 잃고 불구자로 되고있으며 거리에서 방황하고 범죄와 타락의 길로 떨어지고있습니다.
오늘 세계의 《유일초대국》으로, 《문명사회》로 자처하며 《만민복지》를 부르짖는 미국에 아이를 버려도 된다는 괴이한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1999년에 미국의 어느 한 주에서 만들어졌는데 그후 이 주, 저 주로 퍼져 지금은 무려 47개 주에서 시행되고있다고 합니다. 이 법아닌 법에 의해 지금도 미국에서는 출생후 3일~1개월도 안되는 갓난아이들이 합법적으로 버려지고있습니다.
참으로 《자유의 녀신상》도 통곡할 비극이 아닐수 없습니다.
력사에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떠난 사람치고 애국자란 없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어린이들을 사랑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군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력사에서 《어린이》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이름난 아동문학작가였던 방정환은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글에서 어린이를 어른들보다 더 높게 대접하라, 어른을 뿌리라 하면 어린이는 싹이다, 뿌리가 근본이라고 우에 올라앉아서 싹을 내리누르면 그 나무는 죽어버린다, 뿌리가 싹을 위해 키워주어야 그 나무(그 집 운수)는 뻗어나갈것이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맑스가 아이들의 충실한 벗이였다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손들의 기쁨을 위해 그가 말도 되고 승용마차로도 되였다는 일화는 세상사람들이 즐겨 떠올리는 이야기거리로 되고있습니다.
사람들이 스위스의 페스탈로찌를 지금까지도 추억하는것은 그가 고아들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기의 전 재산과 전 생애를 바친 훌륭한 교육자였기때문입니다.
인류가 기억하고있는 진정한 위인들은 누구나 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온 아이들의 진정한 벗이였고 스승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조국의 미래, 후대들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그 숭고한 높이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제일 사랑하신 김일성주석 그대로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우시고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면 억만금이 든다 해도 무조건 해내시며 어린이들을 위한 일에서는 아무리 사소한것이라도 양보를 모르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반가운 소식중에서도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후대들이 태여나는것을 제일 큰 경사로 보시였습니다.
2000년 3월 어느날 대홍단군의 어느 한 제대군인출신 가정에 들리신 장군님께서 친정아버지앞에서 어리광부리듯 귀속말로 앞으로 태여날 애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안해의 청을 받으시고 친히 아들이면 대홍이요, 딸이면 홍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여 그후 대홍단벌에 대홍이, 홍단이 어린이부대가 생겨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늘 온 나라에는 전설같은 사랑의 이 이야기를 담아 다음과 같은 노래가 널리 불리워지고있습니다.
대홍단에 뿌리내린 제대군인 새 집에
우리의 장군님 해빛안고 오셨네
친정집 아버지를 만나뵈온 딸처럼
아기이름 지어달라 철없이 아뢰였네
장군님은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시며
태여날 꽃망울 축복해주셨네
아들이면 대홍이요 딸이며는 홍단이라
정을 담아 뜻을 담아 이름지어주셨네
…
사랑의 전설이 많고많은 내 나라
장군님의 그 은덕을 인민은 노래하네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후대들이 태여나는것을 제일 큰 경사로 보시고 나라의 모든 아이들을 태여난 첫날부터 따뜻이 한품에 안아 키워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떠받들려 애기궁전으로 세상에 그 이름 떨치는 은혜로운 요람-평양산원도 일떠설수 있었고 세쌍둥이들을 위하여 비행기가 뜨고 그들이 커서도 일생동안 기념이 될 선물도 마련되는 전설아닌 전설도 펼쳐졌습니다.
하기에 1989년 12월 조선인민군 제2차 사로청(당시)일군대회가 진행되였을 때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대회에 참가한 9쌍의 세쌍둥이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시고 세쌍둥이군인들은 우리 당의 아들딸들이라고, 동무들은 다 당이 키웠으며 당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났다고 하시면서 지난날 우리 인민들은 자기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당과 조국이 없었기때문에 세쌍둥이를 낳아도 살려낼수가 없었다고, 옛날에는 쌍둥이도 살려내기 힘들었는데 세쌍둥이를 살려낸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우리 로동당시대에는 세쌍둥이를 하나도 죽이지 않고 다 잘 키워내고있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던것입니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쌍둥이군인들이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서 태여나지 않았더라면 다 살아나지도 못하였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어머니의 젖만 가지고서는 한 자식도 먹여살리기 어렵지만 당의 품이 있고 우월한 사회주의제도가 있기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곡절없이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초병으로 될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세쌍둥이들은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자란것이 아니라 당의 사랑의 품속에서 당이 준 젖을 빨며 자랐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제일 좋은것을 다 어린이들에게 안겨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후대사랑에 의해 수도 중심부에 일떠서던 어느 거리의 건설때에는 기둥을 세우고 벽체까지 쌓는중에 있던 차고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아이들의 놀이터가 훌륭히 꾸려지게 되였으며 나라의 외진 산골마을의 몇명 아이들을 위한 통학렬차, 통학뻐스가 생겨나고 사랑의 다리가 일떠서는 전설같은 이야기들도 생겨나게 되였습니다.
후대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행복한 나날보다 준엄하고 어려운 나날에 더욱 뜨겁게 비쳐들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그 어려운 시기에도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날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와 중학교들로 달리는 콩우유차의 동음은 단 하루도 멎지 않았고 학교들에서는 아이들의 배움의 글소리, 노래소리가 단 하루도 울려나오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당과 국가가 온 나라 인민들과 아이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우리 사회주의조국에서는 부모잃은 아이는 있어도 고아는 절대로 있을수 없다는 신조를 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가정의 아버지, 온 나라 어린이들의 친근한 어버이가 되시여 렬사의 유자녀들은 물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모두를 한품에 안아 친부모도 줄수 없는 사랑을 깡그리 부어주시며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역군으로 키워나가시였습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시기 모든것이 부족한 어려운 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시육아원을 비롯한 각 도들에 있는 모든 육아원들의 실태를 전반적으로 료해하시고 후방보장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계획된 부식물(영양식료품)과 피복류 등 물자와 자재를 무조건 보장하는 강한 규률을 세울데 대한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부모없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질세라 그처럼 마음쓰신 장군님이시였기에 불철주야로 이어가시는 강행군길에서도 부모없는 아이들을 맡아키우는 사람들의 소행자료를 보고받으실 때면 너무도 기쁘시여 그들을 애국자로 높이 내세워주시였습니다.
2009년 2월 어느날 북방의 지방도시 만포시를 현지지도하시던 길에 만포방사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많은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 훌륭히 키우고있는 녀성지배인의 소행자료에 대하여 알게 되시였습니다.
부모잃은 새 세대 청년들이 생활하는 방이며 부엌들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친부모의 심정으로 생활형편까지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모잃은 청년들을 시집장가보낼 때 주려고 지성을 다해 마련한 이불, 부엌세간들도 보아주시고 그가 부모잃은 아이들에 대한 교양사업도 잘하고있다고 치하하시면서 자신께서 고난의 행군시기 량부모를 다 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는데 이 지배인은 자신의 걱정을 덜어주었다고,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그를 참된 애국자,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시대의 꽃으로 온 나라에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친아버지로 높이 모시였기에 공화국에서는 《고아》라는 말은 사라져버리고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의 품속에서 자라난 천만자식들에 의하여 조국은 휘황한 미래로 줄기차게 전진할수 있었습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후대관에 접한 세계는 조선의 끝없이 밝고 창창한 미래에 대하여 격찬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는 김정일령도자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것은 조선에서 령도자와 어린이들사이의 관계를 함축한 말이라고 할수 있다.》
《조선의 어린이들은 정말 나라의 왕이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한번 태여날수 있다면 조선의 어린이로 태여나고싶다.》
《김정일령도자께서 조국의 방선을 지켜선 군인들을 찾아 끊임없이 이어가는 현지시찰의 길에 즐거운 야영소로 가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저어주신 사실에 담긴 의미는 자못 큰것이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시는분, 새 세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험난한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행복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으시는 그이의 풍모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화폭이 아닐수 없다.》
진정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후대관, 그것은 조국의 영원한 무궁번영을 확고히 담보하고 천만군민의 심장을 내 조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한 원동력이였습니다.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조국의 래일을 위하여 뿌리로 사는것, 이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신 인생관이였고 그이께서 조국과 인민, 후대들을 위해 바쳐오신 숭고한 삶이였습니다.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산다는것은 곧 자기 세대만을 위하여 사는것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후대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살며 투쟁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숭고한 삶은 혁명의 새 세대, 조국의 후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결합되여있은것으로 하여 조국의 영원한 무궁번영을 위한 투쟁에로 사람들을 떠밀어주는 원동력으로 되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고 하는것도 미래를 사랑하고 후대들을 위하여 투쟁하라는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헌신은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한 만년재부의 창조, 조국의 미래와 후대를 위한 재부를 더 좋게, 더 많이 창조하기 위한데로 지향된 실로 그 폭과 높이에 있어서 가장 숭고한 경지에 이른 헌신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찾아주시고 빛내여주신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아름답게 꽃피워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무엇을 하나 해도 조국의 먼 앞날을 내다보고 후대들을 생각하며 전망성있게 만년대계로 하여야 한다는것이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총적목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건설을 잘못하여놓으면 조국이, 후대들이 두고두고 욕을 할수 있다고 하시며 로동당시대에 창조하는 모든것은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건축물이 되게 질적으로 하여 먼 후날까지 오래 남아있게 하여야 한다고 늘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이것이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하자!》라는 구호에 그대로 담겨져 천만군민을 숭고한 애국투쟁에로 고무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구상하시고 펼치신 모든 사업은 다 나라의 재부를 늘이고 우리 조국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꾸림으로써 오늘 우리 세대뿐아니라 후대들에게 만년대계의 재부와 보다 행복한 생활조건을 마련하여주기 위한데로 지향되였습니다.
지난 시기의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관점으로부터는 조국과 인민, 후대들을 위한 무한한 헌신의 열정이 나올수 없다고 보신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창조하여 인민들과 후대들에게 가장 훌륭한 재부를 안겨주도록 하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고향과 마을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잘 꾸리는것도 자기자신을 위한 사업일뿐아니라 후대들과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애국사업으로 보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열렬한 향토애와 조국애를 지니고 자기 마을과 거리, 공장과 학교, 자기 군과 도, 온 나라를 사회주의맛이 나고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게 꾸려나가도록 가르쳐주시고 공원과 유원지, 명승지들을 후대들에게 물려줄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잘 꾸리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습니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생관은 후대교육사업에도 력력히 구현되여있습니다.
력사에 앞을 내다볼줄 아는 명인들치고 후대교육사업을 소홀히 한 사람은 물론 없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위대한 장군님처럼 후대들의 행복을 위한 뿌리가 되여야 한다는 숭고한 뜻을 지니고 교육사업을 나라의 흥망과 민족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지는 못하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교육사업은 민족의 장래와 후대들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사업은 오늘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사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오래전부터 교육사업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교육사업을 발전시키며 특히 대학교육사업에서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습니다.
대학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은 주체교육과학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에 전자도서관과 수영관을 훌륭히 건설하도록 하신데서도 찾아볼수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과학교육사업을 맡아보는 한 책임일군에게 김일성종합대학에 전자도서관을 꾸릴데 대한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신데 이어 여러차례에 걸쳐 전자도서관건설과 관련한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건설준비정형을 료해하시고 그와 관련한 준비사업을 잘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관심속에 주체교육과학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에 현대적인 전자도서관을 훌륭하게 일떠세우기 위한 준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였습니다.
주체98(2009)년 3월 19일 새로 건설한 김일성종합대학의 수영관을 돌아보러 나오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김일성종합대학 총건설계획도를 반영한 사판을 보아주시였습니다.
사판에는 대학을 현대적으로 꾸리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함께 전자도서관건설계획이 반영되여있었습니다.
대학의 책임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 새로 꾸리게 될 전자도서관의 위치와 건설계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고드리였습니다.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도 아무 말씀없이 생각에 잠겨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에는 전자도서관을 새로 건설하느라고 하지 말고 본교사를 개작하여 쓰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일군들의 눈은 휘둥그래졌습니다.
본교사라니, 그러면 혁명사적관과 선물관은 어떻게?! …
백두산3대장군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본교사가 김일성종합대학의 상징건물이라는것은 온 세상이 너무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였습니다. 그런 력사의 증견자, 의의깊은 사적건물을 전자도서관으로 쓰라고 하시니 일군들이 왜 놀라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미 일군들의 반응을 예견하신듯 본교사에 있는 혁명사적자료들과 사적물들은 조선혁명박물관에 다 전시되여있다고 하시면서 본교사를 개작하여 전자도서관을 꾸리는것은 여러모로 의의가 있다고, 본교사를 개작하여 전자도서관으로 훌륭하게 꾸리면 당의 령도업적을 빛내여나가는데도 좋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전자도서관이 다되면 제일 좋은 최신콤퓨터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본교사를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개작하여 전자도서관으로 꾸려야 합니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을 훌륭하게 꾸려 교직원,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건설정형을 수시로 알아보시고 수십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모든것을 우선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주시였습니다. 관록있는 설계집단과 실력있는 최우수정보기술집단을 보내주시여 설계와 시공은 물론 설비구입으로부터 설치와 운영시험에 이르는 전 과정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빠른 속도로 진척되도록 하여주시였고 필요한 비품보장과 조립, 설치도 제일 우수한 전문가들이 맡아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심원한 뜻이 담긴 친필명제까지 보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후대사랑에 무한히 고무된 건설자들은 착공의 첫 삽을 박은 때로부터 낮과 밤이 따로없는 전투를 벌려 불과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공하는 기적을 창조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100여종에 수만점의 각종 최신식전자설비들을 갖춘 전자도서관이 일떠서 대학생들은 더 높은 리상과 포부를 안고 세계를 향하여 탐구의 나래를 더욱 활짝 펼칠수 있게 되였습니다.
2010년 4월 12일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한 전자도서관이 아주 멋있다고, 전자도서관이 대학의 다른 청사건물들과 잘 어울린다고, 원래 있던 본교사건물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전자도서관을 건설하기 정말 잘하였다고, 전자도서관을 처음에 예견하였던 자리보다 여기에 건설한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전자도서관안으로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중앙홀을 바라보시며 희한하다고, 중앙홀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씀하시고나서 정면벽 친필명제판으로 시선을 돌리시였습니다.
명제판에는 2009년말에 김일성종합대학의 전체 교직원, 학생들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리시여 장군님께서 손수 써보내주신 친필이 금빛으로 빛을 뿌리고있었습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숭고한 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골간이 되라!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위대한 당, 김일성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게 하라!
2009. 12. 17
김정일》
천근만근의 무게가 실린 뜻깊은 명제였습니다.
이 명제에는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을 가지고 부강조국을 일떠세우려는 민족자존의 혁명철학이 어려있고 원대한 포부와 리상을 가지고 보다 휘황찬란한 래일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뛰고 또 뛸데 대한 사상이 담겨져있으며 남들이 백걸음, 천걸음 걸은것을 한걸음으로 뛰여넘으며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겠다는 자신만만한 투지와 배짱이 높뛰고있었습니다.
이날 학생열람홀, 콤퓨터교육실, 학술교류실, 원격강의실, 토론실, 종합강의실 등 여러 방들을 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돌아보니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을 흠잡을데가 없이 현대적으로 아주 잘 건설하였습니다. 설계도 잘하였고 시공도 나무랄데 없으며 설비들도 최신형으로 과학기술적요구에 맞게 잘 갖추어놓았습니다. 최상급의 전자도서관이 꾸려져 김일성종합대학이 주체교육의 최고전당으로서의 체모를 갖출수 있게 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을 최상급으로 훌륭하게 꾸려놓으니 기분이 아주 좋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전자도서관을 잘 관리운영하여 대학생들을 실력이 높은 혁명인재로 더 잘 키워내라고 절절히 당부하시였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세계1류급의 대학으로 더 훌륭히 꾸리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후대사랑은 대학의 수영관에도 력력히 어려있습니다.
2009년에 새롭게 일떠선 김일성종합대학 수영관은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2007년 8월 어느날 김일성종합대학 야외수영장보수와 관련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야외수영장을 보수하느라고 하지 말고 돈을 좀 들여서라도 대담하게 현대적인 수영관을 건설해야겠다고, 종합대학에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건설한 수영관들중에서 제일 좋고 훌륭한 수영관을 건설하여 교직원, 학생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설계와 시공을 최상의 수준에서 하도록 구체적인 조직사업도 하여주시고 수영관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다 풀어주시며 건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과 로고에 의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수영관은 짧은 기간에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습니다.
수영관이 완공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9년 3월 19일 몸소 대학수영관에 나오시였습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영장에 들어서시여 물놀이장에서 물미끄럼대를 타고 내려오는 녀대학생들을 보시고 환히 웃으시며 물놀이장도 멋이 있다고, 시공을 손색이 없게 잘하였다고 만족해하시며 《세계적인 최상급의 물놀이장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너무도 만족하시여 수영장을 보고 또 보시다가 조약대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시고나서 수영장에 조약대가 없는데 아쉽게 되였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수영장에 승강기가 있는 조약대까지 있어야 김일성종합대학 수영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수영장에 조약대를 설치하면 국제경기도 할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또한 복도의 창문유리를 흐린유리로 교체하며 탈의실에 이동식창가림을 칠데 대한 문제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고나서 수영관이 최상의 수준에서 질적으로 건설된데 대해 다시금 만족을 표시하시였습니다.
수영관을 다 돌아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수영관은 내가 교직원,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는 수영관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오래전부터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에게 훌륭한 수영관을 마련해주려고 생각을 많이 해오면서도 다른 사정으로 하여 인차 마련해주지 못한것이 늘 마음에 걸리였는데 오늘 이렇게 최상급으로 건설된 수영관을 보니 한시름 놓이고 그들에게 이제는 면목도 서게 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강성국가건설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주요전투장들마다에서 자재와 자금을 많이 요구하고있는 긴장한 속에서 현대적인 수영관을 일떠세워주시고도 이제야 면목이 서게 되였다고 말씀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대학일군들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을 위하시는 그이의 후대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한가를 다시금 가슴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영관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주신 말씀을 높이 받들고 그후 대학에서는 수영관개조공사를 힘있게 벌리여 빠른 시일내에 완공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9월 30일 김일성종합대학창립 63돐을 계기로 또다시 수영관을 찾으시였습니다.
새로 설치한 수영관의 원형자동출입문을 보아주시고 수영장에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설치한 조약대도 보아주시고 수영장에 조약대를 설치해놓으니 정말 멋있다고, 조약대가 보기 좋다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습니다.
학생들의 물에뛰여들기와 수영훈련을 보아주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말 잘한다고 치하해주시며 《김일성종합대학에 훌륭한 수영관을 꾸려주고 수영장에서 마음껏 뛰노는 대학생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후대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에 바로 우리의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혁명하는 보람이 있습니다.》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행복, 혁명하는 보람!
고난의 행군시기 자신께서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전선에서 날과 달을 보내시며 야영소로 떠나보낸 아이들, 줴기밥으로 끼니를 에우시면서도 콩우유를 떨구지 않고 보장하도록 그리도 애쓰시며 키우신 후대들이 시련의 언덕을 넘어 강성국가의 령마루에서 저렇듯 밝고 명랑하게 웃으며 행복을 누리니 그것이 곧 장군님의 기쁨이고 행복이며 혁명하는 보람인것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만이 아니라 김책공업종합대학, 함흥화학공업대학, 청진광산금속대학, 원산농업종합대학, 희천공업대학 등 전국의 여러 대학에로 끝없이 이어진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걸음걸음이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밑거름이 되여 나라의 교육과학발전에서는 일대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습니다.
세상에는 조국을 위한 헌신으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많지만 한생을 깡그리 다 바쳐 당대뿐아니라 래일에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는 만년재부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과 같으신 위인은 없습니다.
부강번영할 조국의 래일을 안고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무한한 헌신에 의하여 공화국은 비약의 나래를 활짝 펴고 휘황한 미래를 향하여 줄기차게 전진해올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