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하고 래왕하고 대화하자
대담: 본사기자, 윤영식(해외통일운동가)
기자: 오늘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여 정말 반갑습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민족의 통일을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만난 기회가 바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발표된지 20돐을 맞는 뜻깊은 때입니다.
이 기회에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합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에서 《8.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가르치시였는데 이것은 민족대단결을 위한 방도들중의 하나로 제시된 내용입니다.
강령의 이 조항은 민족대단결을 위하여 북과 남사이의 격페된 상태를 타파하고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는 문제를 밝히고있습니다.
그러면서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것,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을 밝혀주고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해외동포: 북과 남이 오래동안 격페된 상태에 있는 조건에서 서로 오해와 불신을 풀며 신뢰하고 단합하기 위하여서는 접촉, 래왕, 대화를 거듭하는것이 제일 손쉽고 가까운 방도입니다.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나으며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것이 쓸데없는 선입견과 오해를 가시고 친밀해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것은 동서고금의 력사에서 검증된 진리입니다.
조국통일을 다그쳐나가기 위해서는 온 민족이 민족적범위에서 한마음한뜻이 되여야 하며 그러자면 북과 남의 호상리해를 도모하고 북남사이의 접촉과 래왕, 대화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에 대해 좀더 차분히 설명을 해봅시다.
북과 남의 호상리해를 도모하고 북남사이의 접촉과 래왕, 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은 우리 민족의 민족적감정을 그대로 반영한 지극히 정당한것이라 하겠습니다.
무릇 서로 다른 민족사이에 비록 언어와 풍습, 감정이 다르다 할지라도 부단히 접촉, 래왕하고 대화를 한다면 그 과정에 자연히 서로 리해하고 화목을 도모할수 있는것입니다.
하물며 한피줄을 이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접촉하고 래왕한다면 서로를 리해하고 화목을 도모해나가는데 무슨 큰 장애가 있을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유구한 력사를 흘러오면서 피줄과 언어를 같이해온 단일민족으로서 슬기와 용맹, 지략이 뛰여남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동방례의지국으로 그 이름 또한 세상에 으뜸이요,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외래침략세력과의 싸움에서는 그 어느 민족도 당해내지 못하는 정의감과 단결력과 협조애의 정신이 강한 민족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 민족이기에 비록 북과 남으로 갈라져 살아오고있지만 대대로 이어온 언어와 피줄은 달라지지 않고있으며 민족적감정 또한 그대로 유지되여오고있습니다.
때문에 서로 만나면 쉽게 의사도 감정도 통하고 맺혔던 오해나 때로 짙게 서리였던 반목질시의 마음까지도 따뜻한 봄날의 눈석이마냥 이내 선뜻 풀리고 서로 화해하고 단합할수 있다고 말할수 있는것입니다.
2000년 6월 15일 위대한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남조선의 김대중《대통령》일행을 위한 환송오찬회때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찬도중 김대중은 국방위원장께 불쑥 어디 김씨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때 국방위원장께서는 밝게 웃으시면서 《전주 김씨》라고 대답하시였습니다.
그분의 이 말씀에 김대중은 《나는 김해김씨니까 위원장께서 진짜 전라도사람이구만요.》라고 말씀올렸습니다.
이때 김대중의 부인 리희호가 《나는 전주리씨》라고 하면서 끼여들었습니다.
그러자 국방위원장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리희호를 향해 《그러니 우리가 진짜 한가족이로구만. 이제야 우리 일가가 만났소.》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바람에 장내에는 즐거운 웃음바다가 펼쳐졌습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북과 남이라는 간격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치도 한가족이 모여 즐겁게 식사를 하는 화목한 순간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격동된 흥분을 진정할수 없게 하였습니다.
물론 국방위원장께서 지니신 겸손하면서도 소탈한 풍모와 해학적이면서도 재치있는 유모아에 홀딱 반한것도 사실이지만 연회석상에서 순간적으로 흘러간 그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민족분렬의 가슴아픈 비극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온 민족이 다같이 모여살 통일의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오시려는 그분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기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그 짧은 대화에서 오랜 세월 국토의 허리를 두동강낸 원한서린 콩크리트장벽을 사이에 두고 북과 남의 갈라진 혈육들이 서로 생사여부조차 모르고 소식 한장 전하지 못하는 분렬의 아픔을 하루속히 끝장내고 온 민족이 서로 자유롭게 접촉하고 래왕하고 대화하면서 혈육의 뜨거운 정도 나누고 민족내부에 존재하는 오해와 불신도 가셔내면서 민족의 대단합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심오한 뜻이 겨레의 온몸에 전류처럼 흘러들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이 땅이 어떤것인가. 온 민족이 한강토, 한지붕아래서 자유로이 오가며 서로 정을 나누고 따뜻함을 함께 불러오고 가져다주며 서로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던 동방례의지국이 아니였습니까.
그러던 이 땅이 근 70년간 외세에 의해 북과 남으로 갈라진채 북은 사회주의, 남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제도하에서 서로 대결의식을 가지고 살고있습니다.
력대적으로 남조선의 반통일분렬주의세력들은 북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덮어놓고 외곡하거나 비방중상하는것을 하루삼시 밥챙기듯 일삼아오는데 습관을 굳혀왔습니다.
한피줄을 이은 동족을 《주적》으로 선포하고 각종 침략전쟁연습소동을 매일과 같이 벌려놓고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만일 이러한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한강토우에서 살아온 우리 겨레는 서로 남남처럼 이질화될것이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은 물론이고 나라의 통일은 언제가도 실현될수 없게 됩니다.
기자: 현실은 북과 남의 접촉과 래왕이야말로 민족적뉴대를 회복하고 민족적단결을 실현하는 직접적계기이며 근본조건인 동시에 기본방도의 하나로 된다는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습니다.
해외동포: 접촉과 래왕 그자체가 인위적인 국토분단으로 인한 북남간의 격페구조를 허물어버리는것으로 되며 실제상 통일의 길에 유리한 환경과 상황들이 조성되거나 이루어지기때문입니다.
조국통일문제는 그 구체적과정이 어떻든간에 반드시 격페된 남북간의 장벽을 허물고 접촉과 래왕을 실현하는것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렇게밖에는 달리될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접촉과 래왕이 없이는 민족단합과 통일이라는 민족대렬차편성에 대해 거론할 여지조차 없게 됩니다.
이로부터 민족대단결과 통일은 오직 북남간의 상호존중에 기초한 부단한 접촉과 래왕에 의해서만 실질적이고도 완전한 성취가 가능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접촉과 래왕은 특히 북과 남의 현실을 직접 체험, 목격하고 확인할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방도이며 따라서 반세기이상 되는 기간에 루적된 남북간의 불신과 오해를 털고 호상리해와 단합을 실현할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며 중요한 방도입니다.
접촉과 래왕의 참매력이라고 볼 때 그것은 백중에 백이 다 력사적으로 뿌리깊은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으로 하여 만나기만 하면 민족적의사소통이 되고 상처입었던 우리 민족본연의 단합을 쉽사리 회복할수 있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된 민족뉴대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에 민족성원모두의 주체로서의 역할이 높아지고 민족적대단결의 실현을 다그쳐나가게 될것입니다.
기자: 해외동포들을 만나보면 그들모두가 일치하게 이야기하는것이 있습니다.
해외에 몸을 두고 살고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낯설은 이국땅에서 한동포겨레를 만나면 그가 북이든 남이든지간 무등 반갑고 서로의 유별한 친화력을 느끼게 되며 또 서로 접촉하여 나누는 그 과정이나 시간들이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함을 체험할수록 항상 솟구쳐오르는 감정은 진정 통일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가싶은 뜨거운 마음과 함께 과연 언제면 우린 하나가 되려나 하는 마음의 엇갈림이 갈마든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외동포: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각마저도 눈만 감으면 서로 손을 마주잡고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던 기쁨의 만남과 가슴저미는 리별의 그 모든 상황과 순간들이 세찬 파도인양 우리들 해외동포들의 마음속에 사품치듯 밀려들고 그 생생한 환영의 화폭들을 머리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격정과 흥분으로 하여 이 가슴이 축축히 젖어드는것을 억제할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군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민족적감정, 그 바탕의 분출이 아니랴 하는 느낌이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더욱 깊어지게 되는것과 함께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불러오기 위해 내 육신을 초개와 같이 다해나가리라는 확고한 일념을 열백번 더 굳히게 된다.》
기자: 접촉과 래왕이 가지는 이와 같은 의미와 감정으로 하여 접촉과 래왕은 마땅히 결코 어느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에 한정됨이 없이 각계각층의 북과 남의 광범한 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을 포함하는 온 겨레의 자유로운 접촉과 래왕으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해외동포: 접촉과 래왕이 그 어느 특정계급이나 계층에게만 한정된다면 그 본래의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접촉이나 래왕이 될수 없으며 또 그런 한정된 접촉과 래왕으로서는 민족적뉴대의 완전하고도 실질적인 화목과 진정을 기대할수 없습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북과 남사이에 진행된 접촉과 래왕들은 지난 시기의 소수 특정한 계급과 계층의 한계에서 벗어나 로동자, 농민,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제한된 적은 인원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십, 수백명씩 대규모의 인원으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서로 찾아오고 찾아가며 자유롭게 이루어진 접촉과 래왕이였습니다.
이에 대해 남조선신문 《한겨레》(2004년 6월 14일부)는 6. 15이후 2004년 5월까지의 기간에 북녘에서 남녘을 방문한 인원은 3 089명으로서 이것은 6. 15이전까지의 10년간에 637명인데 비해보면 근 5배나 늘어난셈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기간에 남쪽에서 북쪽을 다녀간 인원수는 금강산관광객(65만여명)을 빼고 5만 514명으로서 4.5배 늘어난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조선잡지 《민족21》(2007년 2호)은 《2006년에 남북을 왕래한 인원이 10만 1 708명이다. 그것도 금강산관광객을 제외한 수다. 2005년의 8만 8 741명에 비해 15.1%가 증가한 수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의 방문단과 대표단가운데서 대표적인것만 꼽아보아도 6. 15이후 얼마나 많은 접촉과 래왕이 이루어졌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2002년- 남측의 제주도민방문단, 2002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대표단, 남측태권도시범단,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단, 무성변사영화 《아리랑》시사회를 위한 남조선대표단…
2003년- 《이웃사랑회》방문단, 전국교직원로동조합대표단, 《우리 민족 서로돕기운동》방문단, 청년학생대표단…
2004년-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공동사무국 부사무총장일행,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대표단, 적십자사대표단, 로조단체대표단,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방문단…
2005년- 인천시대표단, 남조선 조용필가수일행, 민주로동당대표단,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관람을 위한 참관단…
2006년- 제8차 국내외동포들의 평양의학과학토론회에 참가할 남측의학자대표단, 북남경제문화협력재단 평양참관단, 북남민간교류협의회대표단, 대동무역주식회사대표단, 반일애국인사유가족성묘대표단, 윤이상평화단참관단, 민주로동당대표단, 전남도민 남북교류협의회대표단, 《우리 겨레 하나되기운동본부》대표단(1-2차), 남조선강원도대표단, 《한민족복지재단》대표단, 민족종교 및 민족주의운동단체대표단, 《남북나눔운동》대표단, 《우리 민족 서로돕기운동》대표단, 6. 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대표단…
2007년-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대표단,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참관단, 《남북나눔운동》대표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단, 《우리 겨레 하나되기운동본부》대표단, 동아시아미래재단대표단…
각계각층의 수많은 남측의 동포들은 북녘의 여러 곳을 다녀보고 참관하는 과정에 우리 겨레는 한피줄을 이은 하나의 겨레이며 서로 갈라져 살수 없는 하나의 민족이라는것을 페부로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토대마냥 얼어붙었던 반목과 불신의 뿌리깊은 감정도 순간에 해소된다는것을 다시금 체득하게 되였습니다.
언제인가 남쪽의 어느 한 대학교 학생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2003년 정월대보름날을 해외에서 맞고보니 두고온 고향생각이 간절해지면서 울적한 마음을 막걸리로 달래보려고 동포가 운영하는 한 조선료리점을 찾아갔더니 거기에 남조선에서 류학을 온 두 남대학생들이 앉아 즐겁게 이야기판을 펼쳐놓고있었습니다.
하도 고국이 그리웠던지라 그들과 같이 앉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것 같아 그들이 앉은 탁으로 가서 나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식사를 주문하고나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니 2002년 9월말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때 저들이 직접 겪었던 이야기를 신이 나게 하고있었습니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채화된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가 부산의 상공높이 타래쳐올랐다는 이야기, 북과 남의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공동으로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끝없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들은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에 점점 더 깊이 끌려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짧은 통성을 나누고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더 자상히 들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나에게 들려준 여러 이야기들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들은것은 바로 그 경기대회에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보내주신 북의 《미녀응원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남남북녀라고 응원단의 개별적녀성들이 하나같이 절색이고 그들이 경기장에서 펼쳐보인 응원모습 또한 너무나 생기발랄하고 독특하고 눈부시여서 남조선의 언론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보낸 일당백의 응원단》, 《붉은 미녀》, 《최고인기군단》, 《아시아게임의 최고스타》라고 련일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는것, 북측의 응원단이 《우리는-》 하면 남측의 응원단은 《하나다!》라고 응답하면서 북과 남의 응원단이 하나가 되여 경기장을 통일의 축제 한마당으로 힘있게 들었다놓았다는것, 북의 응원단이 경기장에서만이 아니라 부산의 여러 장소에서 민족적향취가 진하게 풍기는 예술공연을 진행하여 남녘동포들의 가슴마다에 우리 민족은 갈라져서는 못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겨레임을 깊이 심어주었다는것과 같은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귀동냥하느라 나는 식사할념도 못했습니다.
그때 모교의 한 교수는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해 하면서 자기들에게 이렇게 토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분단 수십년간 북쪽사람들을 원쑤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와서 단 사흘만에 그게 다 깨졌어요.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자기 이름을 순이라고 썼어요. 사람들이 그 순이에게 <우리 만나자>, <련애하자> 그랬습니다. 단 사흘만에 벌어진 일이거든요. 그게 민족동질성이라는거죠. 그걸 못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런 일이 일어날수 있겠나요.
백번 죽었다 깨여나도 안 일어납니다. 같은 민족이기때문에 일어나는겁니다.》
대학생들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노라니 당시 어느 한 교포신문에 《부산은 이미 통일이 됐다. 아니 온 남녘땅이 통일되였다.》, 《백두-한나에 통일무지개가 비꼈다.》고 하면서 북녘동포들의 부산아시아경기대회참가로 남조선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던 부산시민의 90%이상이 북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가지게 되였다고 보도한 기사가 실렸던것을 실감있게 읽어본 기억이 삼삼하게 떠올랐습니다.
여기에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갈것은 단합이냐 분렬이냐에 민족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것입니다.
동족끼리 세월없고 부질없는 허무한 객기로 힘을 소모하며 쇠퇴해질 때 외세는 더욱 강대해지고 비대해져 우리를 넘볼것이며 나중에는 그 외세의 학정하에 또 다시 신음하는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만이 차례지게 될것은 물론이요 그 수치는 무엇으로써도 영원히 씻을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바로 우에서 실증되고 검증된 6. 15시대의 참모습을 통하여 재삼 강조하고싶은것은 오직 상호존중과 상호신뢰에 집착된 전민족적범위에서의 자유로운 접촉과 래왕만이 필시 민족대단결과 민족통일의 본도에 부합되고 그 목적실현의 실제적조건으로 된다는것입니다.
기자: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제8조항에는 또한 접촉과 래왕을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단합하기 위해서는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밝히고있습니다.
해외동포: 접촉과 래왕을 광범히 실현하고 자유롭게 하자면 그를 가로막는 물리적, 정치적장벽과 같은 온갖 장애물을 없애버려야 한다는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봅니다.
지금 남쪽에 있는 콩크리트장벽은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물리적장벽의 산증거물이고 《보안법》과 같은 반통일적악법들의 살벌한 란무는 제도적장치, 정치적장벽의 왕실체들입니다.
방북을 단행하고 북의 사람들과 잠시만 접촉하여도 그를 범죄시하는 이러한 제도적장벽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실제상 자유롭게 접촉, 래왕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쪽의 리명박《정권》은 6. 15이후에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를 완전히 도륙내고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래왕의 길을 악랄하게 차단하였으며 지난 시대에 벌써 휴지통에 처박혔어야 할 《보안법》을 계속 휘두르며 통일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습니다.
지난해에 인터네트를 통해 남쪽신문을 보다가 이런 수기를 접한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몇해전 남에서 터진 이른바 왕재산사건의 피해자 전 경북대학교 교수 안재구의 아들인 안영민이 오랜 세월 자기 가정이 당하고있는 정신육체적고통과 파쑈광들의 간악한 모략책동을 고발하는 수기였습니다.
… 아침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7-8명의 사나이들이 들이닥쳤다. 수사기관 요원들이였다.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콤퓨터는 물론 책꽂이의 책들까지 한장한장 번지며 살피였고 나중에는 옷장속의 옷가지들까지 마구 뒤지였다. 나는 방금 수사관들이 내흔들던 수색령장의 내용을 되새겨보았다.
《<민족21>에서 활동하면서 재일총련관계자와 접촉하고 그로부터 수시로 지령을 받으면서 조직원을 인입해왔다. …》
이것은 말그대로 《간첩》혐의였다.
불현듯 아버지생각이 났다. 전화로 알아보니 역시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집에도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던것이다.
《나는 괜찮다. 걱정말아라.》
늙으신 아버지였지만 아들걱정부터 하는것이였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는 란장판이 된 집안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불안에 떨었다. 꼭 32년전의 나를 보는듯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79년 남민전사건이 터지면서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되였다.
아버지를 체포하러 수사관들이 들이닥쳤고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수십년세월 《보안법》에 피를 말리우고 살을 뜯기우며 살아야 하였다.
아침에 시작된 수색은 오후 4시가 되여서야 끝났다.
아무런 증거자료도 쥐지 못한 수사관들은 경찰출두요구서를 내팽개치고 돌아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집에 대한 수색은 다음날 저녁 7시까지 계속되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횡포를 당해야 하는가. 지난 기간 합법적으로 북에 들어가 취재활동을 벌린것과 일본에서 같은 언론인들인 총련 《조선신보》관계자들을 만난것이 어떻게 간첩죄로 된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들씌워진 죄명도 마찬가지였다. 《종북싸이트》를 운영하면서 《리적성이 있는 글》을 인터네트에 올렸다는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난 기간 남북교류사업과 통일운동을 해온 그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모두 간첩단, 간첩이라는것이 아닌가.
나는 경찰에 출두해서도 부당한 혐의들을 부인하며 끝까지 맞섰다. 그런데 아버지의 태도는 뜻밖이였다. 이러구저러구 할것없이 자기를 당장 구속하라는것이였다.
《나는 차라리 감옥에서 죽겠다. 그것이 <보안법>에 맞선 내가 력사와 민족앞에 떳떳한 일이다.》
문득 1994년의 구국전위사건때 아버지와 함께 구속되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때로부터 17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부자가 《보안법》의 쇠사슬에 묶이여 고초를 겪어야 하는 이 현실이 개탄스럽다.
과연 그때와 본질적으로 달라진것이 무엇인가.
동족과 만나는것이 《회합통신》이 되고 그들과 의견을 주고받은것이 《지령수수》로 둔갑되며 진보운동이 북의 《정치공작》에 의해 좌우지된다고 걸고드는 시대착오적인 상황은 여전하다.
그러니 언제든지 《보안법》에 의한 피해자가 나올수밖에 없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
그의 수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난 나의 머리속에는 터무니없는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보안법》의 희생물이 된 아버지와 그 아들의 비참한 정상이 떠올라 인차 자리에서 일어날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들부자만이 겪는 아픔이라 하겠습니까. 이남당국은 인간의 량심과 권리를 《보안법》으로 짓밟으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각계층 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폭력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그 단적인 실례가 바로 지난해 7월초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거 100일 추모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북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는 범민련 남측본부 로수희부의장에게 감행한 이남당국자들의 파쑈적폭거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부의장이 판문점 중앙분리선을 넘자마자 그에게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이고 량팔과 지어 두다리까지 들어 짐승처럼 끌고 가는 치떨리는 야수적만행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습니다.
남조선의 교형리들은 그를 집으로가 아니라 감옥으로 끌고 간것도 모자라 올해초에는 악명높은 《보안법》을 적용하여 그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이라는 악형을 들씌웠으며 암진단을 받고 병석에 누워있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총장이 로수희부의장을 북에 파견하는데 관여했다고 하면서 그에게도 악형을 내렸습니다.
《보안법》과 같은 제도적, 물리적, 정치적장벽들이 철페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제2의 로수희들이 계속 생겨날것이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것입니다.
최근에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리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안법》위반혐의로 검거, 투옥된 사람은 이전 《정권》시기에 비해 더욱 늘어났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보안법》에 의한 탄압소동이 얼마나 광기를 띠였으면 이 악법을 《막걸리보안법》이라고 조소하던 각계층이 지금은 그를 가리켜 《고무줄보안법》, 《엿가락보안법》, 《멋대로보안법》이라고 단죄하고 보수《정권》에 대해서는 《보안법립건생산공장》이라고 규탄하였겠습니까. 실로 가슴이 터져오고 이가 갈립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안법》과 같은 파쑈폭압으로 억누르려는 리명박보수세력의 탄압책동때문에 북과 남의 접촉과 래왕이 실현되지 못하고 북남관계는 지난 대결시대에로 되돌아갔습니다.
때문에 오늘 남조선의 각계층속에서 매일과 같이 벌어지는 《보안법》철페투쟁은 너무도 당연한것이라 해야 옳을것입니다.
랭전시대의 유물인 《보안법》과 같은 제도적장치를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북과 남의 동포들이 호상접촉하고 자유롭게 오가면서 정을 나누고 남과 북의 현실을 직접 보면서 갈라진 국토를 통일하려는 애국의 의지를 굳게 다지게 되고 통일운동에도 더욱 힘차게 적극적으로 떨쳐나서게 됩니다.
기자: 접촉, 래왕과 함께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신뢰하고 단합하는것은 전민족대단결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방도의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말씀을 듣고싶습니다.
해외동포: 대화는 서로의 불신과 오해를 가시고 화해와 신뢰를 구축하고 도모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과 방법의 하나입니다.
민족적단합을 이룩하는 방법 다시말하여 민족통일의 방법은 그 구체적형태와 과정에서 다양할수 있으나 보다 빠르고 진취적인 기본형태와 방식은 역시 대화이여야 합니다.
이것은 민족의 단합과 통일이 대화를 매개로 하여 실현되여야 한다는것을 뜻하는것입니다.
대화 그자체는 국제적견지에서 보아도 민족과 국가들사이의 문제해결에서도 취하는 기본방식으로 되고있습니다.
리해관계의 첨예한 모순과 대립을 동반하는 국가상호간의 여러가지 문제들도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대화를 통하여 타결하려는 움직임이나 노력들이 오늘날 시대적추세로 되고있는것이 그 실례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충돌과 전쟁과 같은 류혈적인 방법을 바라지 않고 보다 순조로운 문제해결을 갈망하는 인류의 공통된 지향의 발현인것이 그에 대한 답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충돌과 전쟁을 바라지 않는 공동의식이 실재하는 조건에서는 어떤 문제도 대화의 방법으로 쉽게 해결할수 있다는것이 현실적으로 긍정되고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경우도 북남간의 대화가 민족적단합과 통일을 위한 기본방법의 하나로 되지 않을수 없습니다.
민족통일은 어느 하나를 흡수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북과 남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공존하고 공동의 번영을 이루자는데 그 목적이 있는것만큼 물리적충돌과 전쟁의 방법은 근원적으로 배제되며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해결에서 반드시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긴박하고도 절실한 문제로 되는것입니다.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옳바른 원칙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습니다.
요컨대 남북간의 대화는 반드시 통일지향적인 대화로 되여야 하며 민족의 단합을 위한 일에서는 그 어떤 위세나 자존심따위도 허용되여서는 안됩니다.
더우기 저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상대방을 흡수통합하기 위한 기만적인 대화는 결국 량자간의 불신과 대결만을 더욱 조장, 격화시키는 분렬지향적인 대화, 대화아닌 대화로 될수밖에 없습니다.
북남대화는 또한 타인의 힘을 바라보는것과 같은 외세의존을 반대배격하고 민족우선, 민족중시, 민족단합의 리념을 앞세워 민족자체의 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민족자주적인 대화로 되여야 합니다.
외세는 우리 민족통일을 정녕코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영구분렬의 먹장구름이 더욱 짙어지기만을 꾀하면서 빗장이 빠지지 않도록 우리 민족내부간에 리간과 쐐기만을 치고있습니다.
1907년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있은 제2차 만국평화대회장에서 렬강들의 힘을 빌어 우리 민족문제해결을 바라다 갖은 랭대와 외면, 버림을 당한데 분격하여 자기의 할복으로 이에 항거하였던 애국렬사 리준. 자기의 선혈을 렬강들에게 휘뿌리며 차디찬 이국의 돌밑에 쓰러진채 무주고혼이 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가 남긴 뼈아픈 령혼의 배회는 오늘 우리 현세인들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과연 이런 외세가 제 민족, 바로 한피줄을 나눈 자기 겨레보다 더 가깝고 친근하고 뜨겁다 한다면 이러한 사고의 사람을 가리켜 그가 누구든 한치앞도 못 보는 눈뜬 소경에 어리석은 왕바보라 하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문제를 가지고 외세에 의존하는것은 외세에 민족문제를 통채로 떠맡기는 허무한 매국배족행위로 되며 또 외세에 통일문제를 의존하면 민족문제를 우리 민족의 리익에 맞게 해결할수 없을뿐더러 반대로 그들의 야심대로 분렬의 지속만을 가져올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성원모두가 반드시 새겨두고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외세도 자기 민족보다 나을수 없으며 외세의존은 곧 망국을 불러온다는것입니다.
북남대화는 또한 전민족의 리해와 신뢰, 단합을 이룩해나가기 위한 민족단합적인 공정하고 진실한 대화로 되여야 합니다.
전민족의 리해와 신뢰, 단합을 부정하는 대화는 백해무익한것이라 하겠습니다.
민족대단결에 기초하는 통일방도로서의 대화는 대화형식이나 방법에 의하여 그 성과가 결정되는것이 아닙니다.
대화에 림하는 당사자들이 대화를 어떻게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이라는 목표에로 성실하게 그리고 인내성있게 지향시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민족단합으로서의 대화, 통일대화로서의 의의와 의미란 있을수 없고 그 대화의 실천적성과 역시 기대할수 없습니다.
실례로 6. 15통일시대이전까지 진행되여온 거의 모든 북남대화가 남쪽당국의 반통일적인 대화자세로 하여 아무런 결실이나 진전도 보지 못하고 공회전만 거듭해온 력사가 그것을 똑똑히 실증해주고있습니다.
전민족의 대단결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대화는 당국자들이나 특정의 개별적당파의 독점물로 되여서는 안되며 전민족의 요구와 의사에 부합되게 해결되여야 할 민족의 사활적인 사업입니다.
이처럼 중대한 민족공동의 문제가 협소한 울타리를 쳐놓은 작디작은 정치천막안에서 몇몇에 의해 순조롭게 해결될수 없다는것은 지난 시기의 북남대화가 보여준 력사적교훈입니다.
현실적으로 남녘의 동포들은 통일문제해결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여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으며 북과의 접촉이나 대화에 직접 가담할것을 조속히 요구하고있습니다.
근로대중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광폭적이며 범민족적인 대화가 마련되자면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각당, 각파, 각계각층사이의 쌍무적대화와 그들이 모두 망라되는 다무적대화를 적극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은 오랜 기간 격페상태에 있던 북남대화에 새로운 힘과 활력을 부어주었습니다.
6. 15이후부터 리명박《정권》이 들어서기 이전까지의 기간에 북과 남은 당국간 대화는 물론 각당, 각파,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대화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습니다.
북과 남의 당국자들과 각계층 사회단체들은 수십차례에 걸쳐 북남상급회담과 적십자회담, 군사실무회담을 진행하였으며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서로 만나 나라와 민족의 지맥과 혈맥을 다시 잇는 문제, 북남사이의 긴장과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문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문제 등 온 민족이 절실히 바라고 념원하고 요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공동보도문과 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북남관계의 전환적계기를 열어놓았으며 통일의 앞길에 가로막혔던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자주통일의 새시대,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새시대를 펼쳐놓을수 있었습니다.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부터 2004년사이에 북남대화는 118회에 걸쳐 진행되였고 회담을 통하여 96건이나 되는 합의를 이루어내였습니다.
이것은 1971년부터 평양상봉이 마련된 2000년까지의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이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합니다.
그러한 북남대화의 길이 완전히 차단되게 된것은 전적으로 남조선에 《실용정권》이 출현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보수당국은 집권하기 바쁘게 각계각층의 대화참여를 극력 반대해나섰습니다.
이로 인하여 북의 진실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모처럼 마련된 북남간의 대화는 민족통일을 위한 대화로 될수 없었으며 번번히 파란의 악순환을 면할수 없었습니다.
바라건대 북남대화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고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가 주어지고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실현하는것이야말로 대화가 명실공히 통일지향적이고도 민족자주적이며 민족단합적인 대화로 이루어지고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위업을 촉진시킬수 있는 대화로 될것입니다.
이것이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오매불망 일일천추로 기대하고 바라마지 않는 진정하고도 참신한 대화입니다.
기자: 옳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받들어 이 땅우에 우리 민족끼리의 새 력사, 민족대단결의 새로운 국면을 반드시 열어놓아야 할것입니다.
앞으로도 해외에서의 통일운동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