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해의 봄은 류달리 서둘러 찾아왔다.

마음고운 녀인의 따스한 손길같은 봄아지랑이가 겨우내 얼어붙었던 거치른 대지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입김으로 애무해주더니 벌써 3월 중순무렵에는 나긋나긋해진 나무가지들에서 파릇파릇 새움이 트고 산기슭에는 진달래며 개나리꽃들이 다투어 망울을 터치기 시작했다.

봄, 해방된 조국강산에 두번째로 찾아온 봄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뜻깊게 파고드는 봄의 정취에 함뿍 젖으시여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따뜻한 풍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만경대로 가고계시였다.

이제는 만경대가 초행길이 아니였건만 어쩐지 이번걸음은 잊지 못할 만강의 그 봄날에 장군님의 사향가를 들으며 그려보던 그날의 만경대가 자꾸만 눈앞에 밟혀와 가슴을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오늘 아침이였다. 아침식사를 물리시고 창곁에 다가가신 김일성동지께서 불쑥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군. 정숙동무! 우리 함께 오늘 만경대에 가기요. 만경상춘이라고 평양에서의 봄경치야 만경대의 봄이 제일이지. 지난해 봄에는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올해에까지 만강에서 한 그 약속을 어길순 없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뜻밖의 말씀에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느라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시며 《시간이 몹시 바쁘실텐데…》 하시였다. 그이의 목소리에는 무한한 행복감이 어려있었다.

《어머니, 가시자요. 오늘이야 일요일이 아니나요?!》

어리신 아드님께서도 환성을 올리며 무작정 손을 잡아끄신다.

《옳소, 우리도 로동법령을 지킬 의무가 있잖소. 오늘 반나절만이라도 시간을 뚝 떼내기요.》

이렇게 되여 떠나신 걸음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에게 차례진 행복감보다도 다문 얼마간이나마 장군님의 피로를 덜어드릴수 있게 된것이 더욱 기쁘시여 아드님을 무릎우에 앉히시고 흐뭇하게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옆에는 김책과 부관 리종산이 앉아있었다. 아까 차에 오를 때 김책이 《허, 이거 그럴줄 알았으면 나도 우리 로댁을 데리고 오는건데…》하여 흥그러운 웃음이 터졌었다.

《왜요? 이제라도 아주머닐 데리고 가면 되지요.》

김일성동지께서도 그의 롱담에 장단을 쳐주시였다. 그러자 김책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후날 따로 데려가던가 해야지. 아, 정숙동무곁에 우리 로댁을 세워놓으면 꼭 봉황곁에 집닭 한가지라, 그럼 이 김책이 영 기분없지요.》

《하하…》

《하하…》

그가 형상까지 해보이며 말하는 바람에 모두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웬간해서는 롱담을 즐기지 않는 김책이 이렇게 변죽을 치는걸 보아 그도 오늘의 만경대행으로 하여 기분이 붕 뜬 모양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번 길에 김책의 부인 강정숙이며 안길의 부인 강미분녀랑 다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갈마드시였다. 그러나 강미분녀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는 몸이였다.

남편을 만나 행복을 누릴만 하니 몹쓸놈의 병마가 그를 쓰러뜨렸던것이다.

《가만, 그런데 내 이거 자리를 잘못 잡았다?!》

김책이 또다시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정숙동무곁에야 장군님께서 앉으셔야지 내가 앉으면 다들 속으로 눈치없는 령감이라고 욕을 할텐데…》

《하하… 어찌겠습니까. 김책동무야 내 고향에 가는 손님인데 아무래도 주인이 앞에서 길안내를 해야지요. 그리고 내가 그곁에 앉으면 김책동무의 기분이 더 말이 아니겠는데 우리 젊은 사람들이 기분을 맞춰줘야지요.》

승용차는 벌써 만경대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꺾어들었다.

만경대는 평양에서 서남쪽으로 약 12키로메터정도 떨어져 대동강기슭에 위치하고있다. 리조시기에는 평안도 평양인흥부 고순화방(일명 화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웠다.)에 속하였고 일제강점후에는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라는 행정체계에 속하였다. 18세기 전반기에 편찬된 《화은집》을 비롯한 기록들에 의하면 만경대라는 지명은 원래 오늘의 만경봉을 가리키는 산이름이였다고 한다. 리조 초기부터 불리워지기 시작한 만경대라는 말은 그우에 올라서면 평양의 이름난 세 강인 대동강, 보통강, 순화강이 합쳐지는 곳에 두루, 두단, 독발(현재의 문발도) 등 세 섬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멀리로는 무학산, 정이산, 해암산을 비롯한 사방 백리안팎의 일만경치를 환히 바라볼수 있다는 뜻에서 일만 만자와 경치 경자를 따고 또 봉우리의 형세가 수백길이나 되는 층층벼랑으로 이루어져있는데다가 그 정수리가 밀어낸듯 펑퍼짐한것이 마치 하나의 정교한 루대를 방불케 한다고 하여 집 대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다. 그후 만경대라는 말은 오늘의 만경봉뿐아니라 그 주변을 포괄하는 지명으로 굳어졌다.

바로 그 만경대입구에서 승용차는 멈춰섰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의 손목을 잡고 장군님의 뒤를 따라 소로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만경봉의 푸른 솔숲은 연분홍진달래며 노란 개나리, 하얀 살구꽃들과 어우러져 마치 칠보단장을 한듯 하고 소나무, 버드나무, 백양나무 등 수림이 무성하게 우거진 동림은 짙어가는 초록으로 하여 더욱 청초하게 안겨왔다.

마치 유년시절 동심속에 그려보던 하늘나라에 들어서는듯싶으시여 저도 모르게 자주 걸음을 멈추군 하시였다.

김책과 리종산 그리고 운전사도 만경대의 봄경치가 새삼스러워져 시종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만경상춘이라더니 정말 만경대의 봄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둔덕에서 김책이 끝내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감탄했다.

《사실 그 아름다움은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이제 4월 중순경에 들어서면 온갖 꽃들이 모두 피여나 한껏 푸르른 나무잎새들과 조화를 이루고 그 진동하는 청신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넘칠 때엔 김책동문 아마 취해서 일어나지도 못할겝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예, 거기에다가 갖가지 새소리까지 울리면 이 김책이 아마 만경대의 신선으로 환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김책의 말에 가볍게 웃으시며 아드님의 등을 그의 앞으로 떠미시였다.

《김책동지, 만경대의 신선이 되려면 우리 정일이에게서 화촌10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셔야 할거예요.…》

《화촌10경이요?》

《증조할아버님이 지난해에 말씀해주셨는데 글쎄 어려운 4자성구를 그 뜻까지 다 기억하고있답니다. 자, 어서.》

그이의 목소리에는 아드님에 대한 무한한 대견함과 은근한 자랑이 진하게 어려있었다.

어머님의 재촉을 받으신 어리신 아드님께서는 잠시 영채도는 두눈을 깜박이다가 랑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화촌10경이란 만경봉에서 볼수 있는 주변의 열가지 경치를 말합니다. 화촌10경은 〈만경상춘〉―만경대의 봄경치, 〈삼도범월〉―두루, 두단, 독발 세 섬의 달풍경,〈봉포타어〉―봉포의 고기잡이풍치, 〈우산목독〉―우산에서의 소방목풍경, 〈광촌취연〉―광촌마을의 밥짓는 연기풍치, 〈석호풍범〉―석호의 돛배풍경, 〈양산창취〉―양산의 푸르른 기상풍경, 〈원암적벽〉―원암의 붉은 절벽 풍경, 〈추교관가〉―추교의 씨붙임풍경, 〈동림송객〉―동림나루터의 손님배웅풍경, 이것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화촌10경입니다.》

김책은 입을 딱 벌리고 굳어졌다.

물론 장군님의 자제분이 나이에 비해 비할바없이 총명하고 영특하다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이렇게 그 어려운 4자성구를 하나도 막힘없이 뜻풀이까지 하여 내리엮으실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선천적인 비상한 기억력과 비범한 리해력이 없이는 벌써 그 초년나이에 응축되고 또 응축된 성구의 세계를 알수 없는것이다.

《장군님, 이제 보니 진짜 만경대의 신선은 우리 장군입니다. 아무래도 이 김책인 안되겠습니다, 허허…》

《아니예요, 아저씨. 난 그저 증조할아버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을뿐이예요. 우리 어머니가 만경대는 아버님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라고 하셨거던요. 그래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과시… 아무렴, 만경대야 우리 장군의 고향이구말구.》

김책은 그 어떤 격정에 휩싸여 사방을 휘둘러보며 몇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더니 머리를 끄덕거리며 김일성동지를 향해 돌아섰다.

《장군님, 예로부터 명소에서 명인이 난다고 하였는데 그러고보면 만경대는 명인을 낳는 곳이 틀림없습니다.》

《하하… 김책동무가 풍수까지 볼줄 아는줄은 미처 몰랐군요.

하긴 만경대가 옛적부터 소문이 난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대의 이름있던 시인들이 만경대에 대한 시들도 많이 지었는데 내 오늘 18세기 홍량호라는 사람이 지은 〈만경대〉란 옛시 한수를 읊을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머리를 수굿하시고 몇걸음 옮기시다가 갈린것 같은 그 특유한 음성으로 천천히 시를 읊으시였다.

 

온갖 시내물 모이고모여

대동강으로 흘러들고

강줄기는 굽이굽이

줄기차게 뻗었구나

 

세갈래 물은 땅을 누비며

서해로 향해가고

높고낮은 일만봉우리

구름속에 솟았어라

 

무수한 돛배들은

쉬임없이 오고가고

물가는 저 멀리로

끝이 없이 아득하구나

 

이국의 루각들이

경치를 서로 다툰다지만

동방천리 루대중에선

만경대가 제일루로다

 

박수가 터졌다. 벌써 그 옛시절에 만경대에 대한 시가 있었다는 놀라움과 감개무량함이 일행모두의 가슴을 흐뭇하게 해주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굽이 뜨거워오시였다.

실버들 푸르른 만강의 그 봄날 한없는 그리움에 사무쳐 조용히 《사향가》를 부르시던 장군님의 그 모습을 다시 뵙는듯만싶었다.

아, 타향에서 부르던 만경대의 노래를 이렇게 고향에서 다시 부르시는 장군님의 감회는 진정 얼마나 깊으시랴!…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한손을 저으시였다.

《내가 시를 읊은것은 동무들의 박수를 받고싶어서 그런것이 아니요. 산에서 싸울 때 우등불 타오르는 밀영의 밤이면 동무들에게 만경대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군 하였는데 해방된 조국땅에 함께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 끝내 만경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거치른 이국의 산야에 묻혀있는 그들의 령혼이 내 목소리라도 들을것만 같아 이렇게 그 시절처럼 만경대이야기를 들려준거요.》

《!…》

《!…》

모두의 눈앞이 뿌잇하니 흐려졌다.

장군님의 심중에서는 만경대의 아름다움이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일수만 없음을, 만경대에 대한 노래가 그저 흥에 겨운 노래일수만 없음을 김책이도 리종산이도 뜨거움속에 깨달았던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줄수 있겠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과 한 그날의 약속을 조금이라도 지켜줄수 있겠는지…》

《장군님!…》

김책이 그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드리고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목이 꽉 잠기여 말을 할수가 없었다.

《김책동문 여기 만경대가 명인을 낳는 곳이 틀림없다고 했지요? 허허… 내 사실 풍수설은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김책동무의 그 말만은 꼭 믿고싶군요.》

《예?》

《이제 우리가 여기 만경대에다 유자녀들을 위한 혁명학원을 세우자고 하는데 정말 그들이 모두 새 조선의 훌륭한 역군으로, 명인으로 자라난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여기 만경대에서 마음껏 뛰여놀며 자란다면 그 애 부모들의 한도, 그 애 부모들에게 못 지킨 약속도 다소 풀어주는것으로 될터이니 그러면 나도 정숙동무도 한결 발편잠을 잘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이께서는 김정숙동지를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시였다.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그 바쁘신 시간을 내여 함께 만경대에 가자고 하셨는지, 어찌하여 다정히 이름을 부르시며 바라보시는지 사무치도록 그 뜻이 가슴에 마쳐오셨던것이다. 자신의 심정을 리해해주기 바라시는 그 사려깊은 마음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뜻이 꼭 같음을 조금도 믿어의심치 않으시는 그 뜨거운 웅심이 장군님의 그 애틋한 눈빛에 다 어려있었던것이다.

하기야 이 김정숙의 마음을 제일 잘 알고계시는분이 장군님말고 이 세상에 또 누가 있으랴!…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눈굽에 축축히 젖어있는 물기를 훔치시며 애써 밝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장군님, 그러고보면 오늘의 이 만경대걸음이 뜻이 깊은 걸음이신데 어서 학원터전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장군님, 그게 좋겠습니다.》

김책이 환성을 올렸다. 리종산이며 운전사도 어린애들처럼 손벽까지 치며 좋아했다.

《정숙동무에겐 내 생각을 숨기지 못하겠구만.

좋소, 이번 길에 학원터전을 잡읍시다.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고 했는데 풍수에 밝은 김책동무도 있겠다, 우리 함께 명당자리를 잡아보기요. 》

《아 장군님, 이거 날 진짜 풍수쟁이로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김책은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리종산이와 운전사를 향해 《여 종산이, 방득룡이, 동무들도 입만 헤 벌리고 섰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명당자릴 잡아보라구. 장군님께서 몸소 화촌10경에서 제일 으뜸으로 꼽는 만경상춘을 구경시키고 옛시까지 읊어주셨는데 그 값이야 해야지.》 하고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그들은 좋아라 목을 빼들고 다시금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박솔숲을 헤치시고 언덕에 오르시였다.

《어머니, 우리도 아버님과 함께 학원터전을 잡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손목을 잡아끄는 아드님을 따라 언덕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봄바람이 훈훈하게 불어와 그이의 머리카락을 가벼이 날렸다.

만경대의 산천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래, 정숙동무 보기엔 어디에 터전을 잡았으면 좋겠소?》

장군님의 물으심에 그이께서는 선뜻 대답드리기를 저어하시였다.

마음같아서는 양지쪽이고 대동강물이 흘러가는것도 잘 보이는 이전 순화학교옆 야산중턱이 제일인것 같다고 말씀드리고싶으셨으나 혁명학원터전과 같은 뜻깊은 자리는 응당 장군님께서 직접 잡으셔야 한다는 생각에 대답을 삼가하시였다.

《장군님, 그럴것없이 저 만경봉에다 학원을 세우면 어떻습니까? 경치를 보는데서야 그 이상 있습니까?》

리종산이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듯 으쓱해하며 말했다.

김책이 그의 엉치를 가볍게 치며 웃었다.

《이 엉터리야, 경치를 보자면야 루각을 세워야지 학원을 세우겠니? 학원은 아이들이 배우며 생활해야 하는 곳이야. 저 바람곶에, 그것도 좁은 산꼭대기우에 어떻게 학원과 같은 큰 집을 짓는단 말이냐.》

《옳아요, 우선 세상에 소문난 만경봉의 경치를 파괴할수 있고 또 어린아이들의 생활에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닐거예요. 운동장도 없지, 물도 길어올려야지, 아이들이 산발을 타다가 떨어져 상할수도 있지…》

김정숙동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자 리종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뒤더수기만 슬슬 긁었다.

《그 말이 옳소. 학원터전은 앞이 환히 트이고 대동강이 잘 보이는쪽에 지어야 하오. 자, 그런곳이 어디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량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다시금 고향산천을 천천히 굽어보시였다.

그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무슨 생각엔가 잠겼던 김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군님, 우리들 눈에는 만경대의 모든 곳이 다 명당자리인데 그 명당자리에서 또 명당자리를 가려낸다는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헐치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학원터전은 장군님께서 직접 잡아주십시오.》

김책의 말을 들으며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도 지금 자신과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음을 알수 있으시였다.

장군님을 받드는 그의 품성은 산에서 싸울 때나 해방된 조국땅에 나와서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던것이다.

《그럼 좋습니다. 저길 보시오, 저기가 우리 아버님이 세우셨던 순화학교입니다. 그옆의 야산중턱쪽이 어떻습니까? 해빛도 잘 드는 양지이고 또 옆으로는 대동강물이 유유히 흐르는데 학원터로서는 그저 그만일것 같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전 순화학교와 대동강사이에 있는 야산중턱쪽을 손들어 가리키시였다.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곳은 신통히도 김정숙동지께서 속으로 생각하셨던 바로 그곳이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제서야 비로소 가장 훌륭한 절경을 찾아본듯 한결같이 감탄했다.

《정말이지 학원터전으로서는 둘도 없는 명당자리입니다. 장군님! 제 마음에도 꼭 듭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쩌면 장군님께서 자신의 심정을 벌써 다 헤아려보시고 그 자리를 찍으신것만 같으시였다.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시려고 우정 그 자리를 고르신것만 같으시였다. 아니, 그보다는 장군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꼭같은것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시였다.

《아버님! 내 마음에도 꼭 들어요!》

《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리신 아드님을 한품에 안아 높이 드시였다.

《우리 만경대장손의 마음에 든다니 됐구나! 아무렴, 누구누구해도 우리 아이들마음에 들어야지. 아이들이 생활해야 할 곳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김책동무.》

《여부가 있습니까. 우리 장군이 좋다면야 그건 틀림없이 좋은 곳이지요. 이제 저기서 자라는 만경대아이들속에서 박사도 나오구 장군도 나오구 나라의 기둥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올겝니다.》

《정말 그렇게 될가요?… 정말로 그렇게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이 김일성의 제일 큰 소원이 풀리는겁니다.》

그이의 갈리신 음성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 틀림없다니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장군님의 그 인정, 그 의리를 어찌 하늘인들 무심히 보겠습니까! 이제 혁명렬사들의 유자녀들이 장군님의 품을 찾아 구름처럼 몰려올것이고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조선의 미래를 떠메고 나갈것입니다. 전 그것을 확신합니다.》

김책의 목소리도 저으기 갈려있었다. 거기에는 해방된 조국땅에서만도 벌써 1년반 남짓이 장군님을 모시고 건국사업을 하면서도 장군님의 제일 큰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뼈아픈 자책감이 사무치도록 어려있었다. 애국미문제를 놓고도 장군님의 심정을 제때에 헤아려보지 못했었고 일부 사람들이 혁명학원창립의 시기상조를 운운할 때에도 단호한 반격을 가하지 못했었다.

《김책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마움과 격려의 빛이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한없이 순결하고 더없이 고지식한 그의 심중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듣고계셨던것이다.

《자, 동무들! 김책동무의 그 확신이 미덥긴 하지만 우리 아직은 이 자리에서 결론하지 맙시다. 우린 젊은 사람들이니만치 아무래도 만경대에서 오래 살아오신 우리 할아버님, 할머님과 삼촌께 가서 그분들과 한번 더 구체적으로 의논해봅시다. 이런 일에서는 어른들의 말을 꼭 들어봐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아드님을 안으신채로 고향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차 걸음을 못 떼시고 장군님께서 몸소 잡으신 학원자리를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어쩐지 만경대일가분들도 꼭 그 자리를 찬성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생각은 언제나 장군님과 한결같다는것을 이미 체험으로 느끼고계셨던것이다.

김정숙동지의 귀전에는 금시 만경봉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퍼지는 혁명가유자녀들의 랑랑한 글소리와 행복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듯만 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저도 모르게 귀를 강구시며 천천히 만경대고향집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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