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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춘추는 미술가동맹사업을 맡고있는 정관철로부터 급히 나와달라는 전화부탁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막 방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뜻밖에도 불쑥 안길이 들어섰다.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보안간부훈련소 제2소 산하부대들이 있는 함경북도일대에 나갔다가 돌아온지 한주일정도 되는지는 알고있었지만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였다.
림춘추는 무등 반가와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안길동지!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춘추동무! 그새 잘있었소?》
그들은 서로 얼싸안다싶이하며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김책동지한테서 들으니 함북도에 갔던 일은 다 잘되였다지요?》
《그렇소, 장군님께서 그곳 도와 군의 여러 기관들이 쓸데없이 적산건물들을 많이 차지하고있는 문제를 바로잡고 합리적으로 조절배치해주시여 제2소의 병실애로를 풀어주셨소. 강건이랑 최용진이랑 이젠 숨을 내쉬게 됐지. 물론 이 안길이도 말이요, 하하…》
《글쎄 그랬으니 이 동생한테까지 올 생각을 다 했겠지요.》
다섯살의 나이차이와 일찌기 룡정대성중학교시절의 선후배간인 연고로 하여 그들은 이렇게 단둘이 마주앉으면 의례히 형, 동생사이로 넘어가군 하였다.
《좌우간 왔던김에 어디 맥이나 좀 봅시다. 얼굴색이 마음에 들지 않소.》
림춘추가 손목을 쥐려 하자 안길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맥은 무슨… 피곤해서 그래. 내 아무렴 최춘국이나 오진우처럼 임자신셀 질것 같은가, 후배생한테 체면없이…》
《좋수다. 그 선배연하는 태도가 언제까지 가나 두고봅시다. 자기 몸에 아직 왜놈들의 총탄이 박혀있다는걸 잊지 마시우.》
림춘추는 짐짓 볼부운 소리로 말했다.
《하하… 나야 자네처럼 우리 항일빨찌산의 력사를 비망록으로 남기지도 못했는데 왜놈총탄이라도 몸에 남겨둬야지. 혹시 알겠소? 그 산증거를 보구 빨찌산력사가선생이 이 안길이도 한페지 써줄지.》
《허참, 롱담은 그만하구 찾아온 용무나 말하시우. 난 사실 정관철동무가 만나자고 해서 막 나가려던 참이우다.》
《오, 작년초까지 평남도당선전부에서 지도원을 하던 그 동무 말이요?》
안길이도 정관철이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그려 장군님의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를 뜻깊게 보장한 미술가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예, 그 동무가 보천보전투를 형상한 〈보천보의 홰불〉이란 작품을 구상했는데 그 초안을 보고 의견을 달라는겁니다.》
《음, 춘추동무가 문예인들의 심장을 계속 달구어놓는 모양이구만. 얼마전에는 시인 조기천이〈백두산〉을 내놓더니 오늘은 또 〈보천보의 홰불〉이라. 멋있어! 제목만 들어도 피가 막 뛰누만.》
안길은 지금까지의 롱조를 싹 버리고 만족하여 연방 감탄했다.
그러는 그에게 림춘추는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정관철동무에게 보천보전투에 대해 말은 많이 해주었는데 사실 그건 그 전투에 참가했던 동무들의 말을 듣고 비망록에 적어두었던 기록을 가지고 이야기해준거지요.》
《하긴 그때 춘추동문 최춘국이와 함께 독립려단 당서기로 북만에서 싸웠지.》
안길이 그의 심정이 리해되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 역시 보천보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실감이 덜할거란 말입니다. 내 그래서 오늘 나가보고 그 동물 오백룡이한테 보내려고 합니다. 오백룡동무에게 시간을 좀 줘서 그가 미술가를 데리고 한번 보천보를 답사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길 들려주게 해주시우.》
《아,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그런 중요한 사업에 사람 하나 붙여주질 못하겠소? 만일 보천보전투에 참가했었더라면 내라도 함께 가주고싶은 심정인데. 내 오백룡이한테 시간을 뚝 떼주지. 그 친구만큼 보천보전투에 대해 생동하게 말해줄 사람이 또 어디 있겠소.》
《그러문요.》
《걱정마오. 내 비록 평남도당 제2비서한테 복종하게 되여있진 않지만 그 문제만은 어제날 인민혁명군당위원회 위원 림춘추동지의 당적지시로 알고 무조건 집행하리다.》
옛 방면군 참모장은 부동자세까지 취해보였다.
《하하… 락천적인 그 성격은 여전하시우.》
림춘추는 뜨거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슬며시 손을 잡아쥐였다.
우려한대로 손이 차거웠다. 언제인가 손이 찬것을 걱정하자 안길은 《의사들은 몸이 좋아져도 비만증으로 진단한다더니 빨찌산군의선생도 다를바 없구만. 손이 찬 사람은 심장이 뜨겁다는건 왜 모르오?》 하고 오히려 림춘추를 시까슬렀다. 그때문인지는 모르나 그는 자기의 우려를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 20년간의 풍부한 림상경험을 가지고있는 그는 안길의 병이 쉽사리 고쳐질수 있는것이 아님을 륙감적으로 느꼈다.
일찌기 중학시절 뒤집에서 살던 의원과의 인연이 연고가 되여 의학공부를 시작했던 림춘추는 연길현 조양천에서 봉춘당약방주인의 간판을 가지고 간도지구 당 및 공청비서처 련락원으로 공작하던 때와 유격대에 입대하여 군의로 활동하던 때에는 물론 그후 독립려단당서기, 8련대, 7련대 당서기, 동만당공작위원회 책임자,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던 때에도 환자치료를 중단하지 않았었다. 안길의 말대로 최춘국이 전투에서 다리뼈가 부서졌을 때 그의 대수술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며 오진우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고 그의 치료를 받아 회복되였다. 더 멀리로는 연길감옥에서 탈옥한 최현이 그의 집에서 6개월동안이나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안길이만은 해방된 조국땅에서건만 그 치료가 쉽게 될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어쩐지 뿌리가 깊어진감이 들었던것이다. 거기에다 안길은 자신의 육체적고통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다 . 오직 김일성장군님의 정규군건설위업을 실현하는 참모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하는데만 자기의 온넋을 쏟아붓고있다. 안길의 그런 정열, 그런 락천성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통을 모르고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다름아닌 그가 바라는바일것이다. 안길을 너무도 잘 아는 림춘추로서는 이번에도 건강이니 치료니 하는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이보라구, 춘추동무! 내가 동물 찾아온건 싫은 소릴 좀 하자는거야.》
《예― 에?》
그의 뜻밖의 말에 림춘추는 한순간 얼떠름해졌다. 무슨 롱인가 하여 자세히 보았으나 조금도 그런 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길의 표정은 진지하였다.
《우선 사죄부터 할게 있네. 전번에 동무가 부탁했던 심병윤의 가족을 알아보는 문제를 내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지. 이번에 장군님과 함께 강건동무네 제2소가 있는 함경북도에 다시 가서야 난 동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뼈아프게 자책했네. 장군님께서 그 바쁘신 속에서도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그들의 행처를 찾으시려고 몇번씩이나 걸음을 하시는걸 보구서야 말이네.》
림춘추는 놀랐다.
함경북도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 그들이 나라가 해방되기 몇달전에 중국 동북으로 나갔다고 알려주시기에 그저 그곳 애국투사후원회에서 소식을 알려온가부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이께서 직접 그렇게 수차에 걸치는 걸음을 하셨다니 놀라움과 함께 죄스러움이 가슴에 사무쳐들었다.
《그건… 안길동지가 아니라 내가 사죄해야 할 문젭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나직이 말했다.
《아니아니, 이 안길의 결함과 자기의 잘못을 한데 섞지 말라구. 어디 말 좀 해보세, 춘추! 동문 어째서 자꾸만 장군님의 속을 태우나?》
《예?…》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이번 길에 장군님께선 동무일을 놓고 얼마나 마음을 쓰셨는지 몰라, 영일이때문에 말이야.》
《!…》
뜨거움이 삽시에 온몸을 화끈 달구었다.
그는 불덩어리같은것을 삼켰다.
《동무도 장군님께서 그 애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가슴아파하셨는가를 모르지 않겠지? 장군님께서 왜 그 애의 이름을 영일이라구 지어주셨는지도…》
안길의 목소리도 저으기 떨렸다.
《그만하십시오.》
《그만할수가 있는가. 장군님께서 이번 길에 밤잠이나 제대로 주무신줄 아나? 아직 국가를 세우지 못하다보니 남의 나라에서 살고있는 그들문제를 해결할만 한 외교대표부 하나 그곳에 가있지 못하다구, 쏘련사람들에게 그들의 생활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은 하였지만 어떻게 마음을 놓겠는가구, 아버지의 자격으로라도 림춘추를 까자흐스딴에 보냈으면 좋겠는데 그가 당장은 갈수 없다구 왕고집을 부리니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구… 하시며 몇번이구 동무일을 걱정하셨어.》
그것은 이미 장군님께서 림춘추에게도 여러번 말씀하셨던 문제였다. 아들의 편지를 그의 손에 쥐여주시던 그날 저녁 장군님께서는 그애의 이름을 영일이라고 손수 지으신데 대하여 말씀해주시면서 마음같아서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곁방살이를 하고있는 그들을 당장이라도 데려오고싶지만 아직은 그럴수 없다고, 그러니 동무가 개인자격으로라도 가서 영일이만이라도 데려오라고 이르시였다.
그날 밤에는 아들의 소식에 대한 감격과 격정으로 하여 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새가정을 이룬 안해도 어서 가서 불쌍하게 자란 영일이를 데려오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격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마음이 진정되여갈수록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 새 조국건설의 그 수많은 과업들을 내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항일혁명투사들중 그 어느 누가 자기 가족이나 자식을 찾겠다고 혁명사업을 놓고 떠났던 사람이 있었던가. 까자흐스딴은 저 동북이나 원동처럼 우리 나라의 변방도 아닌 광활한 아시아대륙의 저멀리에 있다. 결코 하루이틀에 다녀올수 있는 길이 아니였다.
아홉살난 아들의 애절한 부름소리는 인간 림춘추의 귀전을 쟁쟁히 울렸지만 혁명가 림춘추의 리성은 강인한 의지로 자신을 다잡고있었다. 아버지없이, 어머니없이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받으며 시들어가는 혁명가의 자식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숙동지께서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하루빨리 그들모두를 한품에 안아줄 학원을 세우자고 마음쓰고계시지 않는가.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사업을 맡아해야 할 직접적이면서도 책임적인 중임을 맡고있는 내가 어떻게 자기 아들 하나만이 귀하다고 훌쩍 떠난단 말인가. 그건 혁명가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도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걸음이다. 그래도 영일이에게는 기다리면 언제이건 만나서 안길수 있는 이 아버지가 있지만 기다리고기다려도 안길 품이 없는 희생된 전우들의 그 불쌍한 자식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림춘추는 갈수 없었다. 그 애들모두를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하기전에는 그 길을 갈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량심이였고 의리였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이 림춘추의 결심을 굳히게 한것은 아니였다.
1930년대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일으킨 좌경적인 5. 30폭동의 후과로 감옥살이까지 하고 나와 참다운 령도자를 모시지 못한 조선혁명의 앞길을 두고 가슴치며 번민하던 그 시절…
조양천에 오시여 5. 30폭동과 8. 1폭동의 참혹한 후과를 가실 방도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수행하여야 할 투쟁임무를 밝혀주시던 김일성동지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 과학적예견성과 심오한 분석력, 필승의 신념과 군중을 묶어세우시는 탁월한 령도력…
그것은 정녕 사막의 오아시스였고 어둠을 밀어내고 솟아오른 태양의 빛이였다. 그는 태양과도 같이 눈부신 빛을 뿌리는 김일성동지의 안광에서 순간도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조양천을 떠나시면서 림춘추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며 조양천의 이밤을 잊지 말자고, 혁명의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가자고 말씀하시였다.
아, 이분이야말로 정녕 하늘이 낸 위인이시다. 내 한생을 바쳐 이분만을 높이 모시고 따르리라. 내 김일성동지의 이름과 더불어 불피코 승리하고야말 조선혁명의 광휘로운 력사의 증견자가 되리라!…
이것은 림춘추가 지금까지 쓰던 일기장을 불태워버리고 《나의 비망록》이라고 이름한 새 일기장의 첫장에 《간도 조양천의 밤 (1930년 10월 11일)》이라는 표제아래 동만역섬지구 당 및 공청비서처 성원들앞에서 하신 김일성동지의 연설을 한자한자 기록하며 심장을 태워 다진 굳은 맹세였고 넋을 가다듬어 세운 의지였다.
젊은 지식청년의 열혈의 심장과 넋은 그때로부터 15성상에 걸친 항일혈전의 장구한 투쟁에서 그로 하여금 전투좌지만이 아닌 조선혁명의 력사기록이라는 또 하나의 독특한 좌지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하여 림춘추는 항일혁명투쟁시기 김일성장군님께서 중요회의들에서 하신 수많은 력사적인 보고와 말씀들, 조선인민혁명군의 주요전투행적과 투쟁자료들을 기록한 크고작은 수첩들이 들어있는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조국에 돌아왔다.
이것은 그가 조양천에서 다진 그날의 맹세를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싸워온 결과물이였고 《3. 1월간》주필이였던 대통령감과 중국의 혁명가 위증민의 유언을 끝까지 지켜온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라 혁명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워온 전우들과 렬사들의 령전에 드리는 력사의 꽃묶음이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도 그는 자기의 력사적사명이 끝났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건국의 초행길, 그 전인미답의 길을 헤쳐가시는 장군님의 위대한 혁명력사의 증견자, 기록자도 다름아닌 자기 림춘추가 되여야 한다고 확신하고있는 그였다. 그것은 자신이 한생스스로 걸머진 아니, 하늘이 정해준 아니, 민족과 인민이 맡겨준 성스러운 직분이라고 생각하고있는 그였다.
그런데 개인의 사사로운 일때문에 그 위대하고 성스러운 사업에 단 하루라도 공백이 생긴다면 그 죄를 어찌 천추에 용납할수 있단 말인가!…
《그때문이라면 안길동지, 난 비판을 접수할수 없습니다.》
림춘추의 조용하나 단호한 어조에 안길은 미간을 찡그렸다.
《왕고집쟁이! 하긴 산에서 싸울 때 장군님께서도 임자의 그 왕고집에는 손을 드시군 했지.》
안길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더니 그의 두손을 꼭 그러잡았다.
《이보라구 영일이 아버지, 이번 일은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야. 우리 장군님의 심정을 잘 알지 않나.》
《바로 그래서입니다. 그래, 우리 영일이 하나를 데려온다고 해서 장군님의 그 무거운 근심이 덜어질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동지들의 자식들을 생각하는 그분의 그 인정과 의리심에 끝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지요, 바다가 마르면 말랐지 유자녀들을 위하시는 그 마음에는 끝이 있을수 없지요.》
《그러니 끝내 춘추동문 장군님속을 태우겠다는건가? 동무처럼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자식문제때문에 그분의 속을 태우면 어쩌자는가 말이요.》
그의 말에 림춘추는 다시금 고개를 수그렸다.
목갈린 소리가 동굴속에서처럼 웅얼웅얼 울렸다.
《나도… 어쩌는수가… 없습니다. 지금 할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나야… 장군님의 곁을 떠날수 없는, 떠나서는 안될 몸이 아닙니까?!…》
안길은 슬며시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창문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허거프게 웃었다.
《허허… 이건 되려 비판받는 사람이 비판하는 사람을 울리누만. 하기야 우리 장군님은 너무도 정에 지극한분이시지. 그저 정에 웃고 정에 울고… 오중흡이, 김주현이, 최희숙이, 마동희, 최경화, 권영벽이… 그 수많은 동지들을 잃을 때마다 우시긴 또 얼마나 우시였소. 그런데 아직도 그들의 자식들때문에 마음속의 눈물을 가시지 못하고계시니…
물론 그것이 어쩔수 없는 그분의 천품인줄은 모르는바 아니지만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거던. 희생이 없는 혁명이란 있을수 없지 않는가, 혁명승리라는 그 위대한 위업앞에서 희생이란 비록 가슴아픈것이지만 혁명 그자체를 멈춰세우리만큼 큰것은 아니지 않는가, 희생된 동지들의 유지를 지켜 이 땅에 혁명승리의 붉은기를 날리는것이 혁명가로서의 동지적의리를 다하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혼자소리처럼 천천히 뇌이였다.
림춘추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소부대활동시절 자기의 눈앞에서 왜놈들에게 안해가 고문을 당하는것을 보면서 부스러지도록 이를 갈면서도 그 자리를 떠났던 안길이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도 처자의 생사여부를 알아보는것조차 뒤전에 밀어놓고 오직 건국위업을 위해 한몸을 깡그리 불태우던 그였다.
결코 심장이 차서도 아니였다. 심장이 무쇠같이 든든해서도 아니였다. 그자신의 말처럼 누구보다도 뜨거운 심장을 지닌 사람이 다름아닌 안길일것이다.
다만 개인의 그 어떤 아픔과 고통이든 그것은 혁명투쟁이라는 거대한 위업앞에서는 사소한것이고 단호히 묵새겨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비록 다분히 체념적이긴 하지만 그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지 않을가. 더구나 지금과 같이 새 나라를 일떠세우고있는 력사적사변들이 눈앞에 펼쳐지고있는 복잡다단하고도 엄혹한 정세하에서는…
《춘추동무, 우리 어쨌든 장군님께서 사소하고 부차적인 개인적문제들때문에 마음쓰시고 근심하시지 않도록 모든 힘을 다해 도와드리자구. 그런것이 아니라도 지금 장군님께서 마음쓰시고 돌보아야 할 중대사가 너무도 많지 않소?!
그러자면 동무나 내나 사소한 일들은 장군님께서 걱정하시기 전에 미리미리 해결해나가야 하는거요.》
《명심하겠습니다, 안길동지!》
림춘추는 그의 손을 다시금 꽉 잡았다.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찬 손이 가슴을 알알하게 만들었다.
×
림춘추는 늦어진 걸음을 재촉하였다.
지금쯤 정관철이 이전 석공조합사무실에서 눈이 까매서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이전 석공조합사무실은 대동강 련광정부근의 2층 다락집에 자리잡고있었는데 해방후부터 이곳은 시인들과 화가들을 비롯한 문예인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되였다. 지난해에 조기천과 정관철을 처음으로 만난 곳도 바로 그곳이였다.
갑자기 걸음을 다그쳐서 그런지 호흡이 가빠졌다. 감옥살이를 할 때 왜놈들의 전기고문의 후과로 생긴 심장병이 애를 먹일 잡도리같았다.
그는 할수없이 천천히 걸음을 늦추면서 저도 모르게 두손을 가슴량옆으로 올리며 어깨를 힘껏 추슬렀다. 앞에서 마주 걸어오던 두 처녀가 그의 괴이한 몸동작을 놀란 눈길로 쳐다보다가 서로 마주보며 쌔물쌔물 웃고만다.
그들의 얼굴에 비낀 놀란 웃음을 보고서야 림춘추는 자기가 또 습관적으로 배낭을 추슬러올리는 헛동작을 하였음을 깨달았다.
《헛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와 십수년간이나 메고다니던 빨찌산배낭을 벗어놓은지도 이젠 1년반이 지났건만 아직도 종종 착각하여 오늘처럼 길을 가다가 이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군 하는것이다.
습관이란 정말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빨찌산시절 행군길에서 배낭을 추슬러메군 하던 그 행동이 이제는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빨찌산대원들모두에게 들어있는 그런 전투생활용품 말고도 그의 배낭에는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개척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하여온 항일혁명투쟁의 력사를 기록한 크고작은 수많은 수첩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배낭은 더욱 불룩해졌고 그만큼 무거워졌다.
언제인가 그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헐떡거리며 행군대오의 뒤를 따라오는것을 보고 김일이 《눈섭 한오리도 무거운판에 그 종이장들까지 넣어가지고 다니기가 거치장스럽지도 않소?》 하고 한마디 던졌다.
《모르면 잠자코나 있소. 앞으로 우리에겐 이보다 귀중한 보물이 없고 이보다 큰 재산이 없소. 내가 죽더라도 이 배낭만은 광복된 조국에 동무들이 메고가야 하오.》
림춘추의 말을 심중하게 들은 김일이 그후에 알맞춤한 나무를 골라 멋진 지팽이를 만들어주기까지 하였다. 어쨌든 림춘추에게는 배낭을 힘껏 추스를 때마다 그 묵직하게 실려오는 무게를 느껴보는것이 기쁨이였고 즐거움이였다. 동지들이 배낭을 메다주겠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배낭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가 순간도 배낭을 자기 몸에서 떼여놓지 않게 된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그가 림강현, 몽강현 등지의 밀림속에 자리잡고있는 밀영병원들을 돌아보면서 정치사업, 치료사업을 하던 때의 일이였다.
어느날 쏙새골밀영을 돌아보고 선바위처치소로 돌아오던 그는 처치소쪽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았다. 적들의 기습을 받은것이 분명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심장이 멎는것만 같았다. 거기에는 6명의 환자들과 그들에게 맡기고 떠났던 자기의 배낭이 있었던것이다. 한달음에 처치소가까이에 이른 그는 불붙는 처치소주위에서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20여명의 《정안군》놈들이 우글거리는것을 보았다.
환자들도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모두 피신한것이 틀림없었다. 놈들은 처치소에서 들춰낸 환자들의 사품을 가지고 막 떠나려고 하였다. 상전한테 허탕을 치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자는 심산같았다. 그런데 놈들이 걸머진것들가운데는 그의 배낭도 있었다. 배낭을 놈들이 가지고가게 할수는 없었다. 앞뒤를 가릴새없이 싸창을 뽑아든 그는 자기의 배낭을 멘 놈부터 겨누었다.
바로 그 순간 《이러지 마시오!》하는 나직한 소리와 함께 그를 덮치는 사람이 있었다. 처치소책임자였다. 그는 환자들은 모두 무사히 피신했으니 걱정말고 놈들을 따라가다가 맞춤한 장소에서 답새기자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림춘추는 자기가 얼마나 흥분했는가를 깨달았다.
그들은 적들을 은밀히 따라가다가 적들보다 높은 지대를 차지하고 개울옆에서 어물거리는 적들을 한놈한놈 쏴갈겼다. 살아서 줄행랑을 놓은 놈들은 서넛뿐이였다. 배낭을 찾아 어깨에 멘 그는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이게 어떤 배낭인가. 이속에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이 세상 가장 귀중한 보물이 들어있지 않은가!
《내 다시는 이 배낭을 순간도 몸에서 떼여놓지 않으리라!》
그는 이렇게 굳게 맹세다졌다. 그때부터 그는 어떤 정황속에서도 그날에 다진 맹세를 지켰다.
비록 해방된 조국땅에서 그 배낭은 벗어놓았지만 림춘추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날의 배낭이 메워져있었던것이다.…
그는 다시금 심호흡을 크게 하고나서 2층다락집으로 들어갔다.
《정선생,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그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방안에 들어서며 정관철에게 큰소리로 사죄의 말부터 하였다.
정관철의 맞은켠에는 마흔이 넘어보이는 키가 크고 몸이 약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림춘추에게는 낯이 선 사람이였다. 그들사이에 가로놓인 탁자우에는 여러장의 그림들이 놓여있었다. 아마 작품토론을 하고있는 모양이였다.
《원, 무슨 말씀을… 오히려 2비서동지의 바쁜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한걸요.》
성격이 씨원씨원하면서도 사려깊은 정관철은 이렇게 말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림춘추를 념려하여 창문을 열어 담배연기부터 뽑았다. 그리고는 선비처럼 얼굴선이 부드럽고 말쑥하게 생긴 그 낯선 사람을 소개하였다.
《문석오선생이라구 해주에 있다가 얼마전에 올라온 미술가입니다. 조각가이구 화가지요. 문선생, 어서 인사하십시오. 내 일전에 말씀드린 평남도당 제2비서동집니다.》
정관철이 문석오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저 가볍게 머리를 수그렸다. 무척 조용한 사람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림춘추라고 합니다. 알게 되여 정말 반갑습니다.》
《…》
림춘추는 별다른 대답과 감정표현이 없이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의 눈길에 저으기 무안감을 느꼈다.
《저… 원래 말이 없는분이랍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몸으로 느껴본것만을 그리라!〉 이것이 바로 문선생의 지론이지요, 하하…》
문석오의 침묵이 림춘추의 오해를 살가보아서인지 정관철은 변명 비슷이 늘어놓았다.
《하하… 그럼 눈으로는 보았으니 손까지 잡아봐야 하겠군요.》
림춘추가 웃으며 말하자 문석오는 그제서야 빙그레 웃었다.
두사람은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어쨌든 이들은 특이한 사람들이야, 대상을 우선 관찰해보기 전에는 훌훌 속을 터놓지 않거던…
정관철을 비롯한 문화인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러했다.
림춘추가 이곳에 나타나자 그들은 10여년동안이나 산에서 싸움을 해온 빨찌산이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지 하는 의아쩍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분위기는 개의치 않고 그들과 인사를 나눈 림춘추는 다락방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벽에는 세계명화로 알려진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그로서는 10여년만에 다시 보는 그림들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다가서며 렘브란뜨의 《불효자식 돌아오다》와 레삔의 《볼가의 배끌기군들》을 비롯한 그림들을 감회에 젖어 바라보았다.
그때 정관철이 한걸음 다가서며 거센 파도에 금방 삼켜질듯 한 돛배의 배전을 부여잡은 사람들의 각이한 표정을 그린 아이바좁스끼의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빨찌산이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 그림의 주인공들처럼 고생을 하였습니까?》
《아, 이건 아이바좁스끼의 〈아홉번째 파도〉구만.》
림춘추는 그가 가리키는 그림을 바라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입에서 우연히 나온 말이였으나 그 말을 들은 문예인들은 일순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빨찌산출신이 세계명화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것이 그들에게는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였다.
림춘추는 부지불식간에 나온 자기의 말이 그들앞에서 아는 흉내를 낸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바하고는 그들에게 옳바른 인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번째 파도〉의 주인공들앞에 위험은 한순간일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정도의 파도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죽음의 고비를 수십수백번을 넘었습니다. 그 진두에는 언제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서계시였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공포에 질려있지만 우리는 혁명적락관과 필승의 신념으로 수백만리 불바다, 피바다를 헤쳐왔습니다.》
림춘추는 추억깊은 어조로 나직이 말하였다.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조기천이 물었다.
《투사동지는 어느 대학을 나왔습니까?》
그 물음에 림춘추는 난처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조선인민혁명군대오속에서 몇명 안되는 중학출신의 지식인이긴 하였지만 대학이라고는 문전에도 못 가본 그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허허… 백두산대학을 나왔지요.》
후날 정관철이 웃으며 고백한데 의하면 그때 그들은 림춘추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고 한다. 그들은 항일빨찌산에 진짜로 백두산대학이 있었고 그 대학에서 림춘추와 같은 지식인을 키웠다고 생각하였다는것이다. 어쨌든 지성인들과 가장 빨리 호흡할수 있는것은 역시 지성이였다.
《때마침 문선생이 날 찾아왔길래 먼저 이 속사지들을 보였는데 보천보에 가보지도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단박에 퇴를 놓더군요.》
정관철이 주섬주섬 그림종이들을 모으며 하는 말이였다.
림춘추는 그가 내여미는 속사지들을 받아 한장한장 유심히 보았다.
대다수는 부분별 대상들을 속사한것이였다. 군중들의 각이한 군상들도 보였다. 장군님의 형상도 여러 측면에서 시도하고있었다. 화가가 사색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다는것이 알렸다. 마지막장은 화가가 여러 형상들가운데서 선택하여 하나의 전일적인 화폭으로 속사해놓은것이였다. 이를테면 작품의 초안인것이다. 앞에서 보았던 낯익은 형상들이 많았다.
림춘추는 정관철을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내 보기엔 화폭의 전반적인 구도는 비교적 안겨오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할가, 우리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인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군 했던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느껴지군 하던 그런 뜨거운 열기와 무한한 감동이 보이질 않습니다. 더우기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제와 싸우면 반드시 조국광복을 이룩할수 있다는 민족재생의 서광을 밝혀준 보천보의 홰불인데 여기선 그 뜻과 기백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관철의 얼굴은 컴컴해졌다. 물론 아직은 속사에 지나지 않는 초안이지만 이렇게까지 감흥을 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정선생, 작품의 주인공인 김일성장군님의 형상이 진실치 못한데 중요한 원인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 아니, 그건…》
《선생은 아마 조기천의〈백두산〉에서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 짚고 웨치는 김대장―〉이란 시구를 보고 이 형상을 의도한것 같은데 시적감정으로서는 그 형상이 좋았지만 직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미술작품에서는 세부 하나하나가 다 사실그대로 진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선 김일성장군님께서 칼을 짚고 연설하시는것으로 형상되여있는데 우리 장군님께선 사실 칼을 차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각반은 두르셨던것이 옳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무장투쟁시기 장군님의 군복차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정관철은 연방 머리를 끄덕이였다.
문석오의 눈에도 그 어떤 신뢰의 빛이 짙게 어려있었다.
《문선생이 이 속사들을 보고 퇴를 놓았다고 했는데 나도 달리는 할수 없구만요. 어떻습니까? 문선생, 제 의견이 너무 가혹한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옳은 의견이라고 봅니다. 사물과 대상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는 그림의 정확성과 론리성을 담보해주는 법이지요.》
문석오는 그 이상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림춘추는 그의 지지까지 받고나니 자기의 결심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정선생! 보천보에 한번 가보시오. 내 보천보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동무를 붙여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관철이 몹시 흥분하여 손을 썩썩 비볐다.
《저… 림동지, 보천보에 나도 같이 가면 안되겠습니까?》
뜻밖에도 문석오가 조심스레 물었다.
《문선생도 같이 가겠단 말입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이 문석오선생만 한 조각가가 또 어디 있을라구요. 저 평양공회당에 세운 백선행의 반신상도 바로 이 문선생이 조각한거랍니다.》
정관철이 마침이라고 여겼는지 한바탕 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문선생은 일찌기 도꾜에 건너가 조각을 배울 때부터 인간의 힘과 투지, 영웅성을 노래하는 조선의 미켈란젤로(16세기 이딸리아의 조각가, 화가)가 될 꿈을 꾸었답니다.》
《정선생!》
문석오가 질책조로 그를 불렀다.
림춘추는 어쩐지 말이 없고 깨끗하면서도 무게가 느껴지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품을 놓고 그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고맙습니다, 문선생! 정말이지 반만년의 우리 조선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영웅으로 높이 칭송하는 시가 나오고 소설이 나오고 그림이 나오고 조각들이 쏟아져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장군님을 모시고 산에서 싸운 우리들은 그럴 마음이 불같지만 어디 선생들처럼 그런 재간이 있어야지요? 허허…》
림춘추의 절절한 말은 그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이지만 일제를 반대하여 총을 들고 혈전을 벌려온 애국투사, 내노라고 하는 지식인들도 놀라게 하는 인격있는 지성인, 뿐만아니라 자기 사령관에 대한 열화와 같은 충정과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옹호정신을 지닌 열혈충신…
그의 평범치 않은 경력과 지성인다운 인품, 뜨거운 열정은 결코 그 말이 인사치레가 아님을 충분히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 저 사람의 그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절반만이라도 가진다면 그런 창작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리높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상한 영웅찬가를 탄생시킬수 있으리라!…
문석오는 이렇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