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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분옥은 조국에서 자기 아들을 찾고있다는 말을 듣고도 선뜻 믿지 않았다. 조국에서 누가 아들을 알며 도대체 누가 그 애를 찾을수 있단 말인가.
오직 있다면 시집사람들뿐인데 그 집 형편에서 그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였다. 더우기 마을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들을 찾는 사람은 분명 시집사람들이 아닌 그 무슨 림전원이란 사람이라고 한다. 림전원이란 사람은 대체 누구이며 왜 우리 창완이를 찾을가? 그것도 몇번씩이나 찾아와 우리의 행처를 물었다니 혹시 남편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있었던 사람이 아닐가?… 아니, 아니야. 생전에 남편은 림전원이란 사람에 대해 한번도 말한적이 없으며 설사 그 어떤 기이한 인연이 있었다 한들 창완이 아버지가 죽은지도 16년이 지나간 오늘에 와서 그 아들을 찾는다는것은 있을법도 하지 않은 일이야.
동만에서 토지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일어났던 소동이 가라앉고 본래대로 안정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허분옥이 친정식구들과 함께 동신평으로 돌아온지 며칠 안되던 어느날…
《어머니― 어머니!》
창완이가 불이라도 난듯 달려들어오며 다급하게 찾았다.
《아니, 왜 그러니? 무엇때문에 그래?》
분옥은 아직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들의 숨가쁜 목소리에 놀라 닁큼 일어나 뜨락에 나섰다.
《날 조국에 있는 학원에 보내주겠대요, 림수철이랑 같이!…》
《얘! 천천히 차근차근 말을 해라. 도대체 널 어디에 보내준다구?》
《야참, 조국에 있는 학원에 보내준다니까요.》
《아니, 학원이란 뭐구 도대체 누가 널 그리로 보낸단 말이냐?》
《어머닌 그냥 도대체, 도대체 하면서 그러시네. 림전원아저씨가 나랑 수철일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겠다고 했다니까요.》
분옥은 귀에 익은 《림전원》이란 이름을 아들에게서 듣고 다시한번 놀랐다.
그 사람이 창완이를 찾고있은것이 사실이였구나, 그런데 그가 보내준다는 만경대혁명학원이란 뭘하는 곳인가?…
《창완아, 이 어머닌 네 말을 듣구두 잘 모르겠구나. 도대체 그 림전원이란분이 널 어떻게 안단 말이냐?》
창완이는 제 어머니가 련발하는《도대체》란 말이 우스운지 아니면 자기가 아직 사연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였던지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오늘 창완이는 이웃마을의 딱친구인 림수철이와 함께 현성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신문광고 한장을 얻어보게 되였다. 거기에는 동북항일전쟁에서 희생된 조선혁명가들의 유자녀들을 찾는다는 내용과 함께 림전원을 찾아오라는 주소가 밝혀져있었다.
《야, 수철아! 너의 아버지도 왜놈들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니. 우리 함께 가보지 않을래? 찾아가서 우릴 왜 찾는지 물어라도 보자꾸나.》
《그러자.》
하여 그들은 주소에 있는대로 연변전원공서 림전원을 찾아갔다.
그들이 연부관이란 사람에게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림전원〉이란건 사람이름이 아니라 연변조선족자치구 총책임자인 림춘추동지를 의미하는 직명이야.》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지금 중요한 회의중이니 좀 기다리라고 하는것이였다.
이때 어느 한 방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누군가가 왜 떠드는가고 질책했다. 연부관아저씨가 그에게 리유를 설명하자 방문은 다시 닫기였다.
그런데 잠시후 그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몸집이 큰 한사람이 성급히 나왔다.
《아무리 회의중이래도 그런 아이들이 찾아왔으면야 만사불구하고 알려야지. 우리에게 그 애들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사업이 어디있소?》
그는 연부관에게 이렇게 질책하고나서 창완이들쪽으로 다가왔다.
《그래, 너희들은 누구냐? 누구의 아들들인가 말이다?》
림춘추란분은 창완이에게 먼저 눈길을 주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은… 심병윤… 입니다.》
창완은 전혀 생소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듯 자신없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불러보았던것이다. 유복자로 태여나《아버지》란 말조차 불러보지 못하고 자란 그에게 있어서 정말이지 아버지의 이름은 자신에게조차 전혀 귀에 선것이였다. 지금껏 그 누구도 창완에게 그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림춘추라는 이 어른이 처음이였다. 그런데 바로 아버지의 그 이름을 듣고 그가 그토록 놀라며 반가와할줄이야!
《분명 네가 심병윤의 아들이란 말이냐? 그렇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네 이름이 뭐라구?》
《심창완.》
《창완아!》
그는 창완을 와락 껴안았다.
《너를 이제야 찾았구나, 이제야 찾았어! 얼마나 애타게 널 찾은줄 아니? 어디 갔다가 인제야 이렇게 불쑥 나타났느냐?! 응?…》
그리고는 키만 크고 헝겊막대기처럼 약하디약한 그의 모습을 아픈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래, 네 어머닌 지금 어떻게 하고있느냐? 다시 시집을 갔냐?》
《예?》
《참, 너 새 아버지를 얻었는가 말이다.》
《아니요. 우리 어머닌 지금껏 나를 키우며 혼자 사셔요.》
《네 어머니가 정말 장하구나! 유복자를 키우며 여직껏 혼자 살고있다니!…》
이렇게 말하며 그는 이어 림수철에게 눈길을 돌리고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수철이의 대답을 다 듣고나서 그는 역시 수철이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나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에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해 학원을 세워주셨다고 이야기해주며 너희들도 그 학원에서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며 래일 당장 어머니들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는것이였다.…
창완이의 이야기는 다 끝났으나 분옥은 눈물이 앞을 가리워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가정을 이루어 1년도 채 되기 전에 왜놈들이 지른 불속에서 남편을 잃고 열여덟살의 초년과부가 되여 16년세월이 흘러간 오늘까지 가슴속에 쌓이고쌓였던 온갖 설음이 봄날의 눈석이물처럼 사정없이 흘러내렸던것이다.
《네 어머니가 정말 장하구나!》고 했다는 그 림춘추란분의 말 한마디가 이렇듯 설음의 백년장설을 녹여주고 눈물의 막혔던 물목을 터쳐놓을줄 어이 알았으랴. 더구나 아직도 남편의 희생을 가슴아파하며 그를 잊지 않고있다는 사실, 그분이 다름아닌 남편이 생전에 그처럼 따르며 받들던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 사실이 분옥의 마음을 하냥 진정할수 없게 만들었다. 창완이 아버지의 죽음이 결코 헛된것이 아니였다는 새로운 믿음과 행복감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이튿날 연변전원공서를 찾아가 림춘추를 만나니 그는 다시한번 분옥을 치하하고나서 그동안 장군님께서 직접 그들모자의 행처를 알아보기 위해 시집이 있는 덕인리로 몇차례씩이나 사람을 띄웠던 사실과 유자녀들에게 돌려주시는 크나큰 사랑과 배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나서 인차 수속을 해가지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창완이를 조국으로 떠나보내자고 말하였다.
《창완이 어머니, 이제부터는 마음을 푹 놓으시우. 그 애가 학원에 가면 아주머니가 열번을 다시 태여나 보살펴준대두 대신 못할 그런 친아버지, 친어머니의 사랑이 기다리고있습니다.》
×
해질녘의 방천길…
이제는 제법 황소꼴이 다 잡힌 누렁소가 정신없이 풀을 뜯어먹고있다.
일년전만 해도 겨우 중소줄에 들가말가하던것이 여불없이 체통이 커져 먹는것도 가량이 없다. 그때에는 송봉이에게 다리쉼할 겨를도 주지 않고 작은 배를 넌떡 채워가지고는 《음메―》, 《음메―》 하고 어미소를 부르며 가자고 재촉하던 놈이 지금은 때려몰아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큰 배를 다 채우기 전에는 좀처럼 돌아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누렁소의 배는 점점 불룩해만 지는데 송봉의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소리만 난다. 저놈의 배를 다 채워가지고 늦어들어가면 죽물 한공기도 차례지지 않겠는데…
송봉은 야속한 눈길로 누렁소를 쏘아보았다. 이제는 꽤 힘꼴을 씀직한 놈이지만 주인은 아직 애처롭다고 멍에를 메우지 않고있었다.
불현듯 누렁소가 부러웠다. 아무리 짐승이래도 저렇게 다 자라서까지 보살핌을 받을수 있으니 내 처지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상팔자인가.
배를 곯아도, 추위에 떨어도 누구 하나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이 신세…
또다시 꼬르륵소리가 난다. 해지기 전에 들어가야 죽물이래도 얻어먹을수 있겠는데…
그러나 갈수 없다. 주인은 누렁이의 배가 조금만 곯아보여도 사정없이 매질을 했다. 매질도 매질이지만 그마저 쫓겨나면 당장 먹고 살일이 막연했던것이다.
송봉은 배고픈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보려고 풀대 하나를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며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사람도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때 방뚝우에서 누군가가 송봉을 내려다보며 소리쳐불렀다. 그저 지나가는 길손이려니 하고 관심밖에 두고있었는데 분명 자기를 향해 오라고 손짓하는것으로 보아 우정 찾아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날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다구?! 뭘 물어보자고 그러겠지.…
송봉은 쓰거운 풀대를 뱉어버리며 방뚝으로 올라갔다.
풍채좋은 젊은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왜 그러시나요?》
송봉은 별로 흥심이 없었던지라 심드렁하게 물었다.
풍채좋은 사람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딘가 긴장이 어린 표정이였다.
《하나 좀 물어보자.》
(글쎄 그렇겠지.) 하고 송봉은 생각하였다.
《네가 혹시 저 왕씨집의 일군이 아니냐?》
《네―에? 그, 그래요.》
《그럼 네 이름이 박송봉이 맞니?》
《맞긴… 맞아요. 그런데…》
송봉은 낯선 사람이 생각과는 달리 자기 이름까지 알고있는데 놀라 얼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다음말은 송봉을 더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그럼 너 삼도만유격구에서 살던 생각이 나겠구나? 채양촌이라는 곳에서 말이다.》
《그런건… 생각 안 나요.》
《하긴… 그때 네 나이가 겨우 두세살때였으니까. 하지만 아버지 이름이야 생각나겠지? 박길이라구…》
《우리 아버지 이름은 박윤형이예요.》
《옳다! 네 아버지의 본명이 박윤형이 옳다. 무장투쟁을 할 때 우린 너의 아버지를 박길이라고 불렀단다.》
《…》
송봉은 춤이라도 출듯 기뻐하는 낯선 사람을 퀭하니 바라보다가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아저씬 누구나요? 어떻게 우리 아버질 잘 아시나요?》
《내 이름은 림춘추다. 여기선 다들 그저 림전원이라고 부르지. 너 내 이름 들은 생각이 안 나니?》
《아니요.》
《안 날테지. 그땐 네가 너무 어렸구 그다음 유격구가 해산되여 너의 일가는 깊이 숨어버렸으니까.》
림춘추는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송봉을 보며 그의 어깨를 잡아 자기 앞으로 바로세웠다.
《신통히도 네 아버질 닮았구나. 박길정치위원동지가 제 피줄 표적 하난 명백하게 남겨놓았구나. 응, 하하…》
그는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가에는 맑은것이 찰랑거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송봉은 그가 아버지와 함께 싸우던 사람이며 자기를 찾아 여기까지 우정 온 반가운 사람이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송봉은 울먹울먹해졌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송봉아! 너 여기 숨어있었으면 세상에 대고 〈박길의 아들이 여기 있다! ―〉하고 소리라도 한번 질러야지. 지금껏 얼마나 널 찾았는지 알기나 하느냐? 숱한 신문광고를 내구 숱한 사람들을 띄우구 또 숱한 걸음을 했는데 오늘에야 널 찾았구나! 찾았어!
네가 삼촌네 아들로 호적등록을 하고 살고있을줄 꿈엔들 생각했겠니. 이젠 됐다, 이젠 됐어! 자, 나와 함께 가자.》
림춘추는 그가 또 어디 숨어버리기라도 할가봐서인지 으스러지게 가슴에 부여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어디로 간단 말이예요?》
《이제 가보면 안다. 넌 정말 좋은 곳으로 가게 됐단다.》
그러나 송봉은 그를 따라설수가 없었다.
《저… 난 갈수 없어요. 왕씨집의 일자리를 떼우면 난 래일부터 당장 먹을 곳도 잘 곳도 없어요.》
《…》
림춘추가 억이 막혀 그를 바라보았다. 단 한끼의 밥그릇과 단 하루밤의 잠자리가 그에게 얼마나 생사가름의 일이였으면 선뜻 따라서지 못하고 저러랴 하는 생각이 아프게 가슴을 저몄다.
그는 덥석 송봉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걱정 말아. 네가 갈 곳은 있다.》
《예?》
《너는 래일 당장 조국으로 가야 한다.》
송봉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비록 남의 나라 땅에서 태여나 자랐지만 자기의 조국이 조선이며 아버지, 어머니가 바로 그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싸우다 희생되였다는것을 뼈에 사무치게 들어온 그에게 있어서 조국이란 그 부름은 너무도 크고 엄엄한것이였던것이다.
《조국…으로요?》
송봉은 심장이 밖으로 막 튀여나올것만 같아 가쁜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래, 조국으로! 조국에서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어머님께서 송봉일 기다리고계신다. 내가 떠나올 때 그분들께선 널 꼭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이제 네가 조국에 가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너 그분들은 알지?…》
《할머니한테서 들었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삼도만에 오시면 언제나 너희 집에서 류숙하군 하시였단다, 장밤 아버지와 유격대사업에 대해 토론도 하시구.…》
《장군님께서 우리 집에요?》
송봉이는 처음 듣는 뜻밖의 사실앞에 놀라 눈을 흡떴다. 당시 삼촌네 집에서 살던 그의 할머니도 그 사실을 알수 없었던것이다.
할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전장에서 죽지 못했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어온 송봉이로서는 림춘추의 이야기가 꿈같을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를 장군님께서 아신단 말이예요?》
송봉은 미심쩍은 눈길로 림춘추를 쳐다보았다.
《아시다마다, 장군님께서는 나를 여기로 떠나보내실 때도 말씀하셨단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어린 너를 무릎에 앉히시고 네가 자꾸만 옴지락거리며 만지는 만년필을 손에 쥐여주시군 하였다고말이다.
그리고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암유격구〈토벌〉이 있은 뒤 자신께서 열병에 걸려 삼도만에 들어왔을 때 너희 아버지가 집에 데려다 치료를 하도록 하고 불에 타고 끄슬린 옷을 보고는 까만 천으로 치마저고리를 해주었다고 눈물젖어 말씀하시였다.…》
림춘추가 너희 아버지가 《민생단》으로 몰려 갇혀있을 때 김정숙동지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것을 몰래 가져다주군 했다는 말을 하려는데 송봉이가 이상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느닷없이 큰소리를 질렀다.
《아저씬 지금 거짓말을 하지요? 할머닌 그런 말을 한번도 해준적이 없어요. 우리 아버진…》
송봉은 차마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민생단》으로 처형을 받은것이다. 떳떳치 못한 피줄을 이어받은 몸으로서 림전원이 하는 소리를 믿을수가 없었다.
《이녀석!》
그 인자하던 림전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네가 박윤형의 아들이 옳냐? 연길유격대 정치위원 박길의 아들이 옳냐 말이다?》
림춘추는 어린 아이앞이지만 어성을 높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다음 그는 이내 자신을 다잡았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시더냐?》
《우리 아버진, 우리 아버진 〈민생단〉으로 총살당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할머닌 나에게 아버지가 유격대에서 싸웠다는것도 말하지 말라고…》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송봉이의 입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의 눈가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 눈물의 방울방울에는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슴배여있었다.
림춘추는 그제서야 송봉이의 눈물의 의미를 깨달았다.
《송봉아, 너는 잘못 알고있다. 너희 아버지를 〈민생단〉으로 몰아 학살한것은 나쁜 놈들의 책동이였다. 너희 아버지는 김일성장군님의 훌륭한 유격대지휘관이였단다. 그래서 장군님께서 이렇게 나를 보내신것이 아니냐. 동북땅을 다 뒤져서라도…》
림춘추가 말을 더듬는데 송봉이가 갑자기 누렁소의 소고삐를 훌 던져버렸다.
《가자요, 아저씨. 우리 할머니한테… 가서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다시 말씀해주세요.》…
림춘추가 돌아간 후 할머니와 손자는 밤이 깊도록 잠들수 없었다.
《송봉아, 여직껏 이 할미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너때문에 차마 눈을 감을수가 없었구나. 네가 래일 김장군님의 품으로 간다고 하니 인제는 내 당장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
할머니는 이밤이 생전에 손자를 마지막으로 보는 밤이라고 생각했던지 송봉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눈물에 겨워 말했다.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할머니가 오래 앉아계셔야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드릴수 있지 않나요. 할머니마저 안계시면 누구에게 보여드리겠어요?》
송봉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간절히 말했다.
정말이지 마음속으로는 할머니를 다시 보지 못할것만 같은 불안감이 슬며시 서리였다. 그 불안감을 털어버리려 그는 할머니의 앙상한 가슴에 머리를 가져다대였다.
《다 큰 녀석이…》
할머니는 손자의 응석기어린 그 모습이 대견한듯 오래도록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제한번 응석을 부려보지 못하구 이만큼 클라니 네 설음인들 오죽 크겠니. 그렇다고 조국에 가서 장군님께 응석부릴 생각을 말아.
네 아버지가 살았을적에 김장군님은 정에 무른분이라고 하더니만 그게 참말이였구나. 하늘은 시간을 두고 변하구 사람은 일생을 두고 변한다지만 그분의 인정과 마음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두 영원히 변함이 없구나. 그분께서 널 찾으시기에 난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너의 등을 떠밀어보낸다, 송봉아!…》
《할머니!…》
송봉은 할머니의 주름깊은 얼굴을 눈물을 삼키며 보고 또 보았다.
그 모습을 영원히 망막속에 새겨두고싶었다.
정녕 그 모습은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이였다.
×
오늘은 림춘추에게 있어서 명절처럼 즐겁고 행복한 날이였다.
그동안 애쓰며 고생한 보람이 있어 59명의 혁명가유자녀들을 제1차로 조국에 떠나보내게 된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하여 유자녀들을 여러번 조국으로 보내긴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이며 우연적인것이였지 이처럼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성격을 띤것이 아니였다.
이미 그는 김일성동지께 유자녀들을 떠나보내겠다는 전보를 보내였다.
비록 아직은 첫 성과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동북의 혁명가유자녀들이 오기를 기다리고계시는 장군님께서 조금이라도 기뻐하시며 마음을 놓으시게 전사의 보고를 드리고싶었다.
출발에 앞서 그는 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을 모아놓고 환송식을 크게 조직하였다. 환송식에서 그는 김일성장군님께서 혁명가유자녀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새 조국건설의 그처럼 어렵고 복잡한 속에서 어떻게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이 세워지게 되였으며 또 그들이 어떻게 조국으로 가게 되였는가에 대하여 다시한번 뜨겁게 강조하였다.
림춘추는 연변전원공서의 한 일군을 책임자로 하고 연부관을 호송원으로 하여 인솔조를 편성한 후 유자녀들을 모두 렬차의 전용차칸에 태웠다. 인솔책임자에게는 그 애들의 일체 문건과 함께 김책동지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편지에는 장군님께 보고드릴 그간 사업정형들과 연변인민대학교재로 쓸수 있도록 김일성종합대학의 교과서들을 보내줄데 대한 부탁이 담겨져있었다.
아이들은 대다수가 난생처음으로 렬차를 타보는데다가 장군님께서 계시는 조국으로 간다는 기쁨으로 하여 진정할줄 몰라했고 그들을 바래주러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친척들은 기쁨과 함께 아이들을 품에서 떼여놓는 아쉬움으로 하여 마음을 놓지 못해하였다.아직 그들에게는 학원생활에 대한 아무러한 표상도 없었던것이다.
림춘추는 일부 사람들의 로파심에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나서 한사람한사람 아이들을 확인해보았다.
오기선, 오기석, 정희순, 남채숙, 박송봉, 심창완, 현철순, 현철수, 림수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느라니 그 애들을 찾기 위해 뛰여다니던 나날들이 눈앞에 어려왔다.
신발이 닳도록 드넓은 동북의 산재부락들을 헤매던 일이며 신문들에 광고문을 쓰던 일, 앞을 막아서는 반동놈들과의 목숨을 건 총격전이며 왕청오지의 긴 골짜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일…
그렇게 피흘리고 고생하며 찾아낸 아이들이여서 그런지 정작 곁에서 떠나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오기도 했다.
이제 또 찾아야 할 유자녀들은 얼마이며 또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야 할지…
다음번에는 꼭 이 렬차방통이 차넘치게 유자녀들을 찾아보내야 한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으며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둘러보았다. 그 애들의 얼굴을 언뜻언뜻 훑어보느라니 문득 가슴 한구석이 알찌근해왔다.
조국으로 가는 이들속에 김정숙동지의 일가친척 한분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생각이 못 견디게 림춘추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혁명가 김기준동지의 아들…
김정숙동지께서 그 어린 조카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모진 고생을 다 하셨던가. 일제놈들의《토벌》에 어머니와 형님을 잃고 배고파 우는 어린 젖먹이조카를 업고 이집저집 젖동냥을 다니시던 그이의 모습이 림춘추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키우던 조카애를 오빠에게 맡기고 김기송동생과 함께 유격구로 들어갈 때 그이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으랴.
오빠인 김기준동지가 조카애를 남의 집에 맡겼다는데 그후 오빠마저 희생되다보니 그의 소식은 영 알길이 없었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저 큰 애들만 한 나이겠는데…
사실 림춘추는 조국을 떠나올 때 김정숙동지가 그토록 만류하셨지만 그분의 일가식솔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조카의 행처며 김정숙동지께서 열살나시던 해에 지주놈의 빚값에 끌려갔다는 언니의 소식을 알기 위해 몇번씩 사람들도 띄워보고 또 그자신이 녀사의 일가분들이 살던 곳과 그 주변마을들을 다시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끝내 그들의 행방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림춘추는 자기가 물러선다면 그들을 영영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림춘추는 1929년도 의사의 신분으로 지하활동을 할 때 김정숙동지일가가 살던 부암동과 5리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았으므로 일가분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는 하는수없이 《길림일보》와 《연변일보》, 《녕안일보》등에 광고문을 널리 공개하였다.
《신인광고
전주소: 소연집강
성 명: 김기준(오빠), 방두순(형부)
광고인: 김정숙
이상의 사람들은 9.18사변이후 동북유격전당시에 갈라졌는데 본인 혹은 아시는분은 길림성 연변행정독찰전원공서(연길시)에 알려주심을 바람.》
그러나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였다.
림춘추는 렬차가 울리는 출발기적소리를 듣고서야 가슴아픈 생각에서 깨여났다.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하여 승강대를 내리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작별을 서두르는 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자기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웃음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였다. 어쨌든 오늘은 떠나는 그 애들에게나 바래우는 자신에게 있어 명절처럼 기쁜 날이 아닌가!
그는 연부관에게 아이들을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무사히 학원까지 호송해갈것을 다시금 당부하고나서 떠나는 유자녀들을 손저어 바래주었다.
《얘들아!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아이들아! 이제 너희들은 이 세상 제일 위대하고 따뜻한 품에 안겨살게 될게다. 그 품에서 너희들은 이 세상 제일 행복하고 훌륭하게 자라게 될게다.)
림춘추는 유자녀들을 실은 렬차가 시야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밝은 미래를 축복하며 오래도록 손저어주었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림춘추는 조국에서 보내온 김일성동지의 친서를 받았다.
림춘추동무!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지난 5월에 동무가 모집하여 보낸 혁명가유자녀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아주 훌륭한 아이들이였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된 동무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들이 남겨놓은 유자녀들을 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주인공들인 혁명가유자녀들을 잘 교육시켜 그들의 부모들처럼 불굴의 혁명가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춘추동무! 동북에 있는 혁명가유자녀들을 있는대로 다 모집하여 만경대혁명학원에 추천하여 보내시오.
동무의 건강을 바라면서
김 일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