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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
새벽 3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창밖에서는 눈보라가 계속 울부짖고있었다. 이따금 정원의 나무가지들이 《딱, 딱.》 하고 애처롭게 부러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시는듯 외투깃을 추켜올리신채 집무실의 긴의자등받이에 비스듬히 앉아계시였다.
사랑하는 전우 안길이와 영결한지도 벌써 며칠째…
귀중한 혁명동지를 잃은 슬픔과 괴로움은 잠들줄 모르는 저 눈보라보다 더 세차게 지금 그이의 가슴을 모진 아픔으로 휘저어놓고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 고통은 덜어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잠시라도 그 고통을 잊을가 하여 밤늦게까지 일감을 붙어잡고 앉아있군 하시였으나 일손을 놓기만 하면 기다리고있었던듯 괴로움은 어김없이 심중에 다가왔다.
입술을 꾹 다물고 깊은 잠에 든 사람처럼 누워있던 안길의 모습…
금시 잠에서 깨여나 쾌활한 성격 그대로 노래라도 한바탕 부를듯싶은 전우의 그 모습…
《안길동무! 안길이! 내가 오면 언제나 웃으며 달려나오군 하던 동무가 왜 이렇게 누워만 있소. 산에서 일제와 싸우면서도 죽지 않은 사람이 해방된 조국땅에서 이렇게 가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요. 안길이!…》
그의 령구앞에서 오열을 터치며 부르짖던 그날의 그 웨침이 또다시 마음속에서 울리시였다.
문득 언제인가 학원에 파견할 군사교관문제를 놓고 그에게 가슴아픈 소릴 하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아마 그것이 1935년 북만원정의 길에서 안길을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신 가슴아픈 말이였을것이다. 그 일이 가슴에 맺혀오시였다. 그가 이렇게도 빨리 갈줄 알았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그는 흔연히 자기를 이겨내고 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었지.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는 학원건설장에 나가 마지막으로 삽질까지 했었지…
그때 그가 무엇을 생각했을가. 희생된 전우들에게 못다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생각했을가?… 아니, 결코 의무감 하나로써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그렇게 할수 없다. 그는 자기의 삶이 그 만경대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아니,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을것이다. 이제 만경대의 푸른 언덕에서 마음껏 배우며 뛰여놀 학원아이들이 어서 자라나 부모들이 남긴 고귀한 뜻을 그리고 자기가 못다 간 혁명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기를 바랐을것이다. 그 간절한 념원을 만경대에 묻고싶었을것이다.
하기에 자신께서도 안길의 자식들을 품에 안으시고 《너희들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고 나는 가장 귀중한 혁명동지를 잃었구나. 이 가슴아픔을, 이 엄청난 손실을 무엇으로 메꾸겠니. 그것은 오직 하나 너희들이 아버지의 뜻을 잇는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나의 혁명동지가 되는것이다.》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던것이다.
그리고 다 자란 두 아들은 종합대학에 입학시켜 공부하도록 하시였고 막내딸 옥순이는 혁명학원에 보내시였다.
아직 어린것이 학원에 가서 정을 붙였는지, 집체생활이 생소할텐데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우― 우―
창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울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비로소 그 소리를 들으신듯 어둠에 묻힌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시며 저도 모르게 귀를 강구시였다. 어쩐지 창밖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그 소리가 잠결에서조차 아버지를 찾는 옥순이의 부름소리처럼 여겨지시였다.
순간 못 견디게 가슴이 불안해지시였다.
왜 그럴가? 혹시 그 애가 추위에 떨며 울고라도 있는것이 아닐가.
아니, 학원아이들모두가 다리를 꼬부리고 춥게 자는것이 아닐가.…
눈보라소리가 더더욱 귀전에 크게 울려왔고 그만큼 그이의 걱정도 커졌다. 더이상 참고계실수가 없으시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4시가 다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창 굳잠에 들었을 운전사에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드셨으나 당장 학원에 가보고싶은 생각은 그보다 더 크시였다.
이리하여 승용차는 눈보라속을 뚫고 간리로 향하였다.
그이께서 찬바람을 맞으며 차에서 내리셨을 때 놀라서 달려나온 학원 직일관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져 미처 인사를 올릴 생각도 못하였다.
학원직일관은 차영진이였다.
《장군님!…》
《영진동무로구만. 추운 날 근무를 서느라고 수고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주시고나서 림시교사건물의 변두리마다에 세워진 야외조명등의 파들거리는 불빛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보이는 침실들쪽을 바라보시였다.
근심어린 그이의 눈길에서 무슨 뜻밖의 긴급한 정황이 생겼으리라고 나름대로 단정한 영진은 긴장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곧 원장동지를 깨우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장 달려가려고 하는 그의 팔을 다급히 잡으시였다.
《깨우지 마오.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다가 피곤해 누웠겠는데… 그리고 나이많은분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찬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들수 있소. 난 그저 우리 아이들의 잠자리나 한번 조용히 돌아보고는 가겠소.》
《예에?…》
영진은 목이 꺽 메인듯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자, 나와 함께 침실들이나 좀 돌아보자구.》
김일성동지께서는 기본교사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떨어져있는 학생침실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래, 옥순이가 제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군 하지 않소? 안길동무의 딸 말이요.》
《아직 우울해있긴 하지만 울지는 않습니다. 옆의 동무들이 모두 자기와 처지가 같은 아이들이니 아마 서로 위로가 되는것 같습니다.》
《하긴 그 애 나이가 열여섯이니 울고싶어도 제 동무들까지 울게 할가봐 참고 이겨낼거요. 이젠 그런걸 생각할 나이거던. 영진동무가 그 앨 잘 돌봐주오. 동무도 화물역에서 일하던걸 안길동무가 군대에 데려오지 않았소.》
《알겠습니다. 장군님,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영진과 함께 초급반 녀학생들의 침실부터 들어가시였다. 방안이 훈훈하였다. 우선 마음이 놓이시였다.
《방안온도가 이만하면 괜찮구만. 한 20℃는 잘되겠소.》
《예, 방안온도가 그렇게 됩니다.》
《다른 방들의 온도도 다 같소?》
《예, 매 방마다 방열판을 놓고 탄불을 때 열을 높이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깊은 잠에 든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둘러보시였다.
옥순이의 얼굴도 보이였다. 다행스럽게도 집무실에서 자신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던 그런 눈물에 젖은 얼굴이 아니였다. 폭신한 솜이불을 덮고 자고있는 평온스러운 그 모습을 보느라니 만시름이 다 풀리는듯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눈길을 돌려 영진을 바라보시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침실온도가 20℃ 아래로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겠소. 그러되 방안습도를 보장할수 있게 방열판주위에 물도 떠다놓고 탄내가 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돌려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침실을 나서시여 이번에는 초급반 남학생들의 침실로 들어가시였다.
영진의 말대로 그 방의 온도도 괜찮았다. 그런데 사내녀석들이 되여 그런지 이불을 차던지고 자는 아이들이 많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들에게로 다가가 하나하나 이불을 바로 덮어주시였다. 맨 나중으로 침대 제일 끝자리에서 꼬부리고 자고있는 아이의 이불깃을 여미여주시던 그이께서는 그가 덮고있는 이불이 작다는것을 알아보시였다. 그 애의 키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컸던것이다.
《이것 보오. 이불이 작으니 큰 아이는 이렇게 꼬부리고 자질 않소? 학년별로 이불크기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말고 아이들의 키에 맞게 만들어줘야 하는거요.》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침실창문쪽을 살펴보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꼬부리고 자는 그 애쪽 가까이에 있는 창문이 약간 벌어져있었다. 아마 잠들기 전에 더워서 조금 열어놓았던 모양이였다.
그이께서는 얼른 다가가 창문을 꼭 닫아주시였다.
《영진동무, 학원일군들이랑 동무네 군사교관들이 밤마다 학생들의 침실을 돌아보군 하오?》
영진이 슬며시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저… 이따금 돌아보군 합니다.》
《이따금 돌아봐서야 안되지. 동무들은 학생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어야 하오. 특히 학원일군들은 밤마다 꼭꼭 침실을 돌아보면서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는가, 이불을 차던지고 자는 학생들이 없는가, 창문이 열리지 않았는가 하는것을 살펴야 하오. 그래서 학생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지 않도록 해야지.》
《…》
영진은 자책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나머지 침실들을 다 돌아보시였다. 크게 마음에 걸리는것은 없으시였다.
이렇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와보고나니 별스레 마음이 편해지시였다. 시간을 보니 한 30분가량 흘러갔다. 하지만 그 30분간에 그이께서는 며칠을 두고 헤여나오기 어려웠던 모진 괴로움을 털어버리시였다. 그것이 앙금처럼 심중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물론 그 앙금이 이제 어떤 파동이 일면 또다시 퍼져일어나 마음속에 아프게 달라붙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안정감에 휩싸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주눅이 든듯 말없이 자신의 뒤를 따라서기만 하는 영진을 돌아보시며 밝은 어조로 물으시였다.
《그래 영진동문 아직도 전투구분대에 갈 생각을 한다면서?!》
《저, 사실…》
《이보라구 영진이, 물론 전연에 나가서 나라를 지키는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바로 저 아이들, 우리 혁명의 미래를 지키고 키우는것이요. 그 미래만 튼튼하면 나라도 더 굳건히 지킬수 있고 더 부강하게 건설할수 있는거요. 바로 그래서 안길동무가 영진일 여기에 보낸거란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한쪽어깨를 꽈악 움켜잡으시였다.
안길이가 살아있다면 그가 꼭 영진이에게 이 말을 해주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장군님!…》
영진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이의 모습만을 우러러보았다. 왜서인지 마지막으로 안길을 만났을 때 《아직 떨떨해!… 자기가 지금 무엇을 지키고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하고 꾸짖던 그의 목소리가 심금을 파고들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그대로 영진에게 커다란 충격과 깨달음을 안겨주었지만 그 대답을 듣겠다고 한 안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던것이다. 이러한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듯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한번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시였다.
《난 영진일 믿어. 일을 잘하라구.》
그이께서는 격정에 북받쳐있는 영진의 얼굴을 미덥게 바라보시고 나서 천천히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운전사가 재빨리 발동을 걸었다. 차가 흠칫하며 금시 떠나갈듯 하더니 다시 차문이 열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수경례를 하고 서있는 영진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영진동문 직일관으로서 오늘 내가 침실들을 돌아보면서 이야기한것을 원장선생에게 꼭 전달해야겠소. 그럼 수고하오.》
《안녕히 가십시오, 장군님!》
차는 학원을 떠났다.
눈보라는 여전히 사납게 울부짖고있었다.
×
리종익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서야 김일성동지께서 새벽 4시에 학원에 오시여 학생들의 침실을 돌아보시고 가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자기를 깨우지 않은 차영진에게 버럭 소리를 쳤으나 장군님께서 원장선생이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다가 피곤해 누웠겠는데 깨우지 말라고, 나이많은분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찬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걸릴수 있다고 하시며 만류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목이 꺽 메여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는 즉시로 침실들에 나가 학생들의 키에 맞지 않는 이불들을 대책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하였다. 후방경리사업을 맡은 일군이 불리워오고 재봉실의 아주머니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침실들의 방열판주위를 깐깐히 살펴보면서 탄내가 날수 있는 틈사리들을 모조리 찾아내여 대책하도록 하였으며 아궁이들의 상태까지 일일이 다 돌아보고서야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느라니 그곁에 기대여세워놓았던 까만 단장이 외투자락에 채여 넘어졌다. 귀청을 따갑게 울리는 그 소리에 얼핏 이마살을 찡그리며 넘어진 단장을 집어든 그는 저도 모르게 《허허…》 하고 웃고말았다.
옻칠까지 하여 늘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던 단장에 미세한 먼지가 한벌 살짝 덮여있었던것이다. 그러고보니 정말 원장사업을 시작해서부터 단 한번도 단장을 짚어본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앞에 흉스러운 꼴을 보이고싶지 않아 짚지 않은것이 이제는 어느새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아이들과 씨름질을 하며 그들의 세계에 파묻혀버리다나니 저도 모르게 마음뿐만아니라 몸까지도 다시 젊어지는듯싶었던것이다.
그 애들과 함께 있느라니 그는 왕왕 자기 나이를 까맣게 잊고 살때가 많았고 지난날의 그 외로운 고적감과 쓸쓸함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들도 오래동안 부모의 정을 그리며 살아와서인지 그의 두팔에 노상 매달리다싶이 하였다. 아들딸같은 끌끌한 큰 아이들과 손자, 손녀같은 작은 꼬마애들이 《원장선생님.》, 《원장선생님.》 하며 매여달릴 때면 자기가 꼭 몇대를 거느린 대가정의 가장이라는 생각이 들군 하였다.
학원아이들은 그의 기쁨이였고 자랑이였고 몸과 마음의 의지였다. 로친네가 이따금 《령감은 학원원장이 되더니 내 생각을 영 잊은게 아니요?》 하고 꼬부라진 소리를 하군 하지만 실상 그것은 로친네의 행복에 겨운 푸념질이라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이사짐을 풀던 날 오구작작 모여들어 작은 보따리 하나를 놓고도 제 먼저 들겠다고 싱갱이질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난 당신에게 병신자식 하나 낳아주지 못했는데 우리 장군님께선 저렇게 끌끌한 아들딸들을 열구들 가득 안겨주셨구려.》 하고 눈물을 흘리던 로친네였기때문이였다.
(이제 그 뉘가 이 리종익의 인생말년이 불우하다 하랴? 장차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될 수많은 자식들이 곁에 있는데야 하물며 내 이 짧은 지팽이에 인생을 의지할고!)
그는 단장을 아예 보이지 않게 책장뒤에 세워두었다.
의자에 가앉으니 다시금 장군님의 그 다심한 보살피심이 가슴후덥게 젖어들었다. 백두산의 호랑이로 소문나신분이 어쩌면 그리도 인정이 뜨겁고 다심하신지, 아직은 너무도 젊으신분이 어쩌면 그리도 백년, 천년의 세상만사를 다 겪으신것처럼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늙은이들은 늙은이들대로 그 심정을 속속들이 헤아려주시고 극진히 위해주시는지…
천품이라고밖에는 달리 말할수 없는 그분의 인정이였다. 그분의 사랑이였다. 아마 그런 천품을 지니신분은 이 세상에 장군님과 김정숙녀사님밖에 더는 없을것이다. 리종익은 다시는 그분들께 사소한 근심도 얹어드리지 말아야 하겠다고 속다짐을 하였다. 아무리 학원학생들의 학부형이 되겠다고 하셨다한들 한 나라의 크고작은 정사를 돌보셔야 하는 장군님께서 아이들의 잠자리걱정까지 하시게 해서야 어디 될말인가. 그 애들의 생활보장에 쓰라고 군용화물차까지 보내주시고 귀중한 승용차까지 원장사업차로 배려해주셨는데 그 승용차를 타고 나라정사는 도와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아이들 걱정이야 덜어드려야 할것이 아닌가.…
그가 이런 생각을 다몰아가는데 운동장쪽에서 학생들이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아닌게아니라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나와 눈싸움을 하고있었다.
대견한 미소를 짓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종익은 눈이 둥그래졌다.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은 몇몇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눈가래와 비자루를 들고 멎은지 얼마 안되는 눈을 치고있었던것이다.
(아니, 저런?!…)
놀란 리종익은 황급히 창가에서 물러나 외투도 입지 않고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건 뭐요? 누가 학생들을 눈치기에 불러내라고 했소?》
그는 학생들과 함께 눈을 치고있는 정치부원장에게 소리쳤다.
《수업이 끝났길래 내가 눈을 치자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눈이야 쳐내야 할게 아닙니까.》
리진영은 성이 난 원장의 얼굴을 의아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헛참…》
리종익은 혀를 차고나서 그중 가까이에 서있는 녀학생의 손에서 비자루를 뺏었다.
《학생들은 다들 교실로 들어가시오. 학기말시험이 아직도 한과목 남아있는데 공부할 생각들은 않고 이게 뭐요? 도구들은 그 자리에 놓고 어서 들어들 가시오, 어서!》
원장이 다시한번 소리쳐서야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갔다.
《정치부원장동문 저 아이들이 애처롭지도 않소? 이 추운 날 그 애들 보구 눈을 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요.》
《예?》
《그러다가 한 아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어쩌겠소? 저 애들이 어떤 애들이게…》
《원장동지, 아무리 귀한 애들이래도 제가 배우며 생활하는 곳이야 제 손으로 거둘줄 알게 해야지요. 그리구 방안에 가두어두는것보다는 이렇게 일도 좀 해보는게 아이들의 몸단련에…》
그러나 정치부원장의 말은 리종익이 손을 홱 내젓는 바람에 중둥무이되고말았다.
《글쎄 여느날이라면 몰라두 오늘같은 날엔 안되오. 난 원장으로서 절대로 그걸 승인할수가 없소.》
《허허…》
정치부원장은 더 할말이 없는듯 그저 웃어버리고말았다.
때마침 교무부원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마 원장이 큰소리치는걸 듣고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온 모양이였다. 리종익은 그가 채 와닿기도 전에 다불러세웠다.
《동문 무슨 사업조직을 그렇게 하는거요? 내가 몇번이나 말했소? 아이들에게 험한 일을 시키면 안된다구. 더구나 지금은 시험기간이 아니요.》
《저…》
《긴말할새 없소. 군관들과 교원들, 학원종업원전체를 동원해서 눈을 쳐야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흥섭교무부원장은 오던 때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되돌아 달려갔다.
《벌써부터 아이들을 시켜먹으려 든다니까.》
리종익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며 비자루로 눈을 쓸기 시작하였다.
《원,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다들 나오려던 참일겁니다.》
리진영정치부원장이 그에게 다가서며 하는 말이였다.
《원장동지, 그러지 말고 그 비자루를 내게 주십시오. 눈은 우리가 다 치겠습니다.》
정치부원장이 그의 손에서 비자루를 뺏으려 했으나 리종익원장은 아무 대꾸도 없이 소리나게 비자루질을 해나갔다.
리진영은 학생들에게는 턱없이 무던한 할아버지같다가도 교직원들에게는 종종 호랑이같은 기질을 보이군 하는 고집쟁이 원장의 뒤모습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학생들을 끔찍이 생각하고 위해주려는 원장의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되고 머리가 숙어지지만 그러다가 아이들을 귀공자나 응석받이로 키우게 될가봐 걱정스러웠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언제한번 원장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눈을 쳐나갔다.
어느 사이에 달려나왔는지 교원들과 군사교관들, 종업원들이 걸싸게 일손들을 제끼고있었다. 리종익원장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느슨한 미소가 피여났다. 그는 리진영의 등을 툭 쳤다.
《이보라구 정치부원장, 아까는 큰소리를 쳐서 안됐소, 더구나 학생들이 있는데서. 제 노여운 생각만 하다보니… 아마 늙으면 노여움이 많아지는가 보오, 허허.…》
《그거야 노여움이 아니라 사랑이지요. 난 학생들을 아끼는 원장동지의 그 마음을 존경합니다. 다만…》
리진영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외투도 입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꼭같이 눈을 치느라 수고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리종익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싶어하는지를 다 아는듯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눈먼 사랑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거겠지. 나도 아오. 내 비록 자식은 길러보지 못했지만 귀한 자식 매로 키우랬다는 말쯤이야 알고있지. 허나새나 나도 교육사업을 오래동안 해온 사람이 아니요.》
그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애들앞에는 교육자로가 아니라 아버지로 나서고싶은걸 어쩌겠소. 그런데 그것도 실은 욕망뿐이지 너무도 구실을 못하고있거던. 장군님께서는 우리 애들을 보옥처럼 귀중히 여기시는데 난… 정말 죄스럽소. 오늘 새벽일만 해도 그렇지 않소.》
그의 목소리는 절절하게 울렸다. 리진영은 학생들을 위하는 그의 마음이 자기가 생각했던것처럼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진실하고 깨끗한 그 마음에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원장동지!》
그는 원장의 찬 손을 슬며시 잡았다. 원장을 더 잘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장군님께서 혁명가유자녀들을 보옥처럼 여기실뿐아니라 앞날의 기둥감으로 여기고계시는 그 뜻을 리종익원장이 더 잘 받들어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그 뜻을 따르지 못할 때 원장의 마음은 아이들에 대한 한갖 동정이나 애정으로 끝날수 있다. 그 마음이 혁명의 미래를 품어주고 키워주는 참다운 사랑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에 잠겨 말없이 마주보았다.
벌써 운동장의 눈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교실의 창문들에서는 제비새끼들처럼 오구구 모여앉은 아이들이 얼굴을 창유리에 대고 운동장쪽을 내려다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