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침 일찌기 김정숙동지께서는 학원에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굴젓이 가득 담긴 나무통을 차에서 내려 그걸 들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하시였다. 굴젓은 깍두기를 담글 때 쓰려고 우정 시장에 나가시여 사가지고 오시는것이였다.

식당앞에서는 벌써 식당종업원들과 여러명의 녀학생들이 모여앉아 김장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장을 담그느라 수고들 하누만요.》

김정숙동지께서 나무통을 내려놓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셔서야 모두 그이를 알아보고 환성을 질렀다.

《조용들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모르는 그들에게 다급히 이르시며 걱정어린 눈길로 교사쪽을 바라보시였다.

《금방 수업이 시작된것 같은데 이렇게 떠들면 방해를 줄수 있어요.》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을 자제하며 조용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속의 녀학생들에게로 한걸음 다가서시며 물으시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수업에 안 참가했니?》

《저… 식당어머니들의 일손이 딸려 우리 고급반 녀학생들이 김장에 동원되였습니다.》

《그래?!…》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웃음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시였다.

《하긴 다 큰 녀자애들이 김치담그는 방법을 배우는것도 좋은 일이지. 이담에 시집가서 살림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김치를 해달랠수야 없지 않니?》

《호호…》

식당아주머니들이 입을 싸쥐고 웃었다.

고급반 녀학생들은 부끄러운듯 얼굴이 빨개져서 서로서로 마주보았다.

《그러나 오늘 못 배운건 꼭 보충수업을 받아야 한다. 나도 원장선생님에게 이야기해주겠다.》

《알겠어요. 어머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녀학생들이 언제 부끄러워했던가싶게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소매를 걷어붙이시며 한창 양념감이 버무려지고있는 버치쪽에 다가가 앉으시였다.

식당녀인들이 황황히 그이의 손을 부여잡았다.

《아니, 원… 녀사님께서 이런 험한 일을… 걱정마시고 어서 일을 보십시오. 이런건 우리가 다 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예요. 오늘 학원에서 김장을 담근다는걸 알고 우정 나온 길이랍니다.》

《그래도 차마…》

《호호… 내 이 손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예로부터 김치는 양념보다도 이 손맛에 따라간다고 하질 않았나요.》

그이께서는 롱조로 말씀하시며 가볍게 웃으시였다.

《아니, 그럼 산에서 싸우실 때에도 김치를 담그어보셨나요?》

허리가 남달리 굵은 한 녀인이 놀라운듯 바투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럼요. 그땐 이렇게 실한 배추도 또 이런 훌륭한 양념감도 물론 없었지요. 산속에서 어떻게 그런걸 구하겠나요. 시래기 한톨, 고추가루 한줌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어요. 그래서 산나물김치를 자주 담그어먹군 했답니다.》

《산나물김치요?》

녀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늦게야 눈이 녹군 하는 깊은 산속에서 눈속을 헤치며 파릇파릇 움트기 시작한 어린 나물싹을 뜯던 일들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장군님께 한가지라도 별찬을 해드리시기 위해 그리고 전우들에게 고향집어머니들의 그 사랑을 고스란히 안겨주시기 위해 동북산야와 백두밀림의 산발들마다에 새기신 그 무수한 발자취, 발자취…

지금도 그이의 머리속에는 어느 산기슭에 가면 고사리가 많았고 또 어느 산기슭에 가면 참취, 곰취 등이 많았다는것이 휑하니 새겨져있었다.

《왜놈들과 싸울 때에야 사정이 부득이해 그랬지만 해방된 오늘에야 왜 우리가 김치를 맛있게 담그어먹질 못하겠어요.

왜서인지 난 전우들에게 제대로 해먹이지 못했던 김치를 그 자식들에게 마음껏 해먹이고싶어요. 김치를 한번 맛있게 담그어보자요.》

《어쩌면… 녀사님의 마음은…》

김정숙동지께서는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는 녀인들의 얼굴을 정겹게 보시며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자, 어서 일손을 다그치자요. 우리 셋이서는 빨리 양념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우도 썰고 절임했던 배추를 씻자요.》

그이께서 조직해주시는대로 녀인들과 녀학생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일에 달라붙었다. 모두들 신바람이 났다.

채친 무우를 고추가루와 마늘, 파, 생강 그리고 젓갈과 버무려 양념준비를 하는 김정숙동지의 두손은 삽시에 벌겋게 달아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성껏 양념감들을 버무리시였다.

《김치는 양념을 잘하여야 맛이 좋아져요. 그런데 고추가루는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될것 같아요. 아이들이 먹을 김치인데 지내 매우면 그들이 먹기 힘들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양념준비와 배추씻기가 다 끝나자 이내 김치소를 넣어나가시였다. 양념을 배추잎의 갈피갈피에 고루고루 묻히시였다.

양념을 다 넣은 배추는 녀학생들이 함지에 담아가지고 움에 있는 김장독에 가져다 넣었다. 그이께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배추가 가득 담긴 함지를 드시고 독있는쪽으로 가보시였다.

아닐세라 그들은 배추들을 대충대충 독안에 넣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서툰 일솜씨를 보고 너그럽게 웃으시고 나서 일일이 깨우쳐주시였다.

《배추는 잎이 흩어지지 않게 꼭 감싸서 차곡차곡 눌러서 넣어야 한단다. 이렇게… 이렇게…》

그이께서는 손수 한포기 한포기씩 배추를 독에 넣으시였다.

《이 어머니가 하는걸 잘 봐두어야 해. 그래야 이다음에 시어머니에게 쫓겨나지들 않아.》

《어마나! 호호호…》

녀자애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치였다.

《웃긴. 너희들이 시집에서 쫓겨오면 이 어머니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니.》

《어머니, 걱정마세요. 우린 절대로 어머니 망신을 시키지 않을테니까요, 호호…》

《그래그래, 아무렴 우리 딸들이 누구들이라구. 자, 너희들이 마저 넣어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 양념을 묻히는 곳으로 오시였다.

《아무래도 김장에 무우를 좀 더 넣어야 할것 같아요. 김치는 무우를 많이 넣어야 맛이 쩡해지고 좋아요. 가만 보니 평양김치가 맛이 있는건 무우를 많이 넣기때문인것 같아요.》

허리가 실한 녀인이 또 혀를 찼다.

《녀사님은 정말 모르시는게 없구만요. 나같은 평양내기도 여직 그렇게까지는 모르고 살았는데 언제 그걸 다…》

《나라고 뭐 더 특별히 아는건 없어요.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맛있는 김치를 담그어 먹일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을뿐이예요.

우리 깍두기와 동치미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자요. 무우가 많이 들어왔으니 바람이 들지 않게 저장도 많이 하구요. 참, 내가 가져온 저 나무통에 굴젓이 들어있는데 그걸 넣고 깍두기를 담그면 아마 별맛일거예요.》

녀인들은 그이의 끝없이 다심한 인정앞에 고개를 숙이였다. 그들의 눈굽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모두 혁명가유가족들이였다.

이 학원에서는 다름아닌 그들의 아들딸들이 생활하고있었다. 그런데 친어머니인 자기들보다도 더 끔찍스레 아이들을 생각해주시고 위해주시는 녀사의 그 마음앞에서 그만 뜨거운 고마움의 눈물을 감출수 없었던것이다.

점심무렵 김장을 거의다 끝냈을 때 리종익원장이 식당에 나타났다.

그는 예상외로 김장을 빨리 끝낸것을 보고 만족해하며 식당녀인들을 치하해주다가 김정숙동지를 발견하고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원장선생님사업에 지장을 줄것 같아 인사도 없이 곧장 여기에 왔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히려 이렇게 그에게 사죄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녀사님께서 이런 수고를 하시는것도 모르고 이 원장이란 사람은…》

리종익은 심한 자책이 어린 눈길로 그이를 우러르며 말끝을 채 잇지 못하였다.

《수고랄게 있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일이야 응당 우리 녀자들이 해야 할 일인걸요. 이젠 다 끝났으니 여기 일은 근심마시고 어서 들어가 일을 보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거듭 말씀하시며 그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풀어주시였다.

리종익은 그제서야 안경을 슬며시 눌러붙이며 한숨을 섞어 웃었다.

《허허… 하긴 장군님과 녀사님의 그 마음을 내 어찌 백에 하나인들 따라가겠습니까. 다 내가 불민한탓입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원장선생님이 학원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해주고있다고 고맙게 생각하고계십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따뜻한 음성으로 그를 위로해주시였다.

《참 원장선생님, 며칠전에 장군님께서 학원에 나오셨다가 데리고 가신 녀학생이 있지 않습니까?》

《초급 1학년의 민순희학생 말입니까?》

《예,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륵막염을 앓고있더군요. 그래서 어제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깨끗이 치료해서 학원에 보내야 할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그때 그 애의 얼굴을 보고 어디 아픈데가 없느냐고 물으시더니 정말 병이 있었군요.》

리종익원장은 감심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며칠전 학원에 나오셨던 장군님께서는 그 애가 아무래도 어디 앓는것 같다고 하시며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도록 하기 위해 저택으로 데려가시였다.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니 이미 앓았던 륵막염이 다시 도졌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말씀대로 그 애를 병원에 입원시키시였던것이다.

그사이에 김장작업은 말끔히 끝나고 식당녀인들은 학원학생들의 점심식사준비에 달라붙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취사장에 들어가 양념묻은 손을 깨끗이 씻고 취사원들의 침실안을 들여다보시였다. 널직한 방안에 줄줄이 걸어놓은 메주덩이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장군님께서 학생들에게 토장국을 끓여먹이자면 메주를 많이 쑤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리종익원장이 그이께 설명해드리였다.

《정말 메주를 많이 쑤어 걸어놓았군요. 배추를 넣고 토장국을 푹 끓여먹이면 우리 아이들이 더 건강해질거예요.》

그이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며 원장을 바라보시였다.

식사칸에서는 벌써 점심식사차림이 한창이였다.

식탁우에 차려놓은 밥, 국, 여러가지 찬들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흐뭇한 눈길로 식탁을 바라보시다가 다반을 들고 나오는 한 녀인을 불러세우시였다.

《아주머니, 내 생각에는 국은 학생들이 식탁에 다 들어와앉은 다음에 퍼서 주면 좋겠구만요. 그래야 그들에게 좀더 따끈한 국을 먹일수 있지 않겠어요.》

그 아주머니는 게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우린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미리 차려놓았던 국그릇들을 모두 거두어 들여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민망스러운 눈길로 그들을 보고 서있는 원장에게 한걸음 다가가시며 의논조로 말씀하시였다.

《원장선생님, 밥량이 다 꼭같은데 어떻습니까? 애들이 밥을 다 먹습니까?》

《예, 밥을 다 먹습니다. 하긴 어린 아이들은 대체로 밥을 남기군 하지만…》

그이께서 물으시는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한 원장은 범상한 어조로 사실대로 말했다.

《그것 보세요. 내 생각에는 밥도 꼭같이 주지 말고 큰 아이들에게는 좀 더 주고 작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먹을만큼 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허허… 아닌게아니라 큰 녀석들은 작은 아이들이 남기는 밥을 제꺽 먹어치우군 합니다. 난 그걸 매일같이 보면서도 달리 생각을 못했는데 녀사님께서는 밥그릇만 보시구서도 그 애들의 심정을 다 헤아리시누만요. 정말 아이들이 녀사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게 우연칠 않습니다.》

《아니예요. 아직 어머니구실을 다하자면 멀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창밖너머 교사쪽에서 식사대렬에 모이느라 부산스레 뛰여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문득 손에서 심한 아픔이 느껴지시였다. 손등이 확확 달아오르고 손가락끝들이 쓰리다못해 막 아려오시였다.

양념을 하시느라 매운 독에 절었던 손이 시간이 좀 흐르고 온기가 있는 식사칸에 들어오자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사정없이 아려오는 아픔에 지그시 입술을 깨무시였다.

《아니 녀사님, 갑자기 어디 편치 않으십니까?》

놀란 리종익원장이 황급히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처 대답할 생각을 못하시고 그저 고개만 가까스레 가로저으시였다.

그제서야 리종익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이의 두손을 발견하고 사연을 짐작하였다. 그는 자기의 눈을 찌르는 아니, 심장을 찌르는 김정숙동지의 두손을 뿌옇게 흐려오는 안경너머로 가슴아프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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