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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은 난생처음으로 사람의 한생이 너무도 짧다는것을 절감하였다.
파란만장의 기나긴 인생에 지칠대로 지쳤던 그에게 있어서 젊은 안해의 사랑과 어린 자식의 귀여움은 고목에 다시 핀 아름다운 꽃이였고 향기로운 열매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든 이 꿈같은 행복은 월송의 마음을 더없이 젊게 만들었지만 그럴수록 때없이 거울속에 비쳐보게 되는 자기의 주름덮인 얼굴과 흰 수염발은 그의 마음을 사무치는 아쉬움으로 젖어들게 하였다. 생각같아서는 지금껏 소중히 비다듬어온 그 수염발을 아무런 주저도 없이 훌 밀어던지고싶었지만 사람들이 로망이라고 웃을것 같아 애써 자신을 다잡군 하였다.
한 10년 아니, 20년만 더 젊었더라면… 사람의 한생이 한 100년 아니, 200년만 더 길었더라면…
(허허… 사람의 욕심이란 참…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이 나이에 그런 렴치없는 생각을 하다니?! 아무렴 이 월송이 신선이 될텐고.
장군님의 은덕이 아니였더라면 내 어찌 때늦게나마 오늘의 이런 행복을 맛볼수 있었겠노.)
이 아침도 월송은 대문밖까지 따라나와 바래주는 안해의 따뜻한 눈길을 등에 느끼며 젊은이들처럼 씨엉씨엉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제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선 아들 직로가 한손을 오무려 입술에 대고 소리쳐부른다.
(원 녀석두. 남들이 보면 웃을라, 손자같은 아들이라구.)
하지만 몸은 벌써 아들을 향해 돌아섰다. 손을 저어주었다.
《나 인차 학원에 간대요―》
뻐기는듯 한 아들의 맑은 목소리…
그래, 가고말고. 장군님께서 직접 널 불러주셨단다!…
월송은 눈에 넣어도 쓰리지 않을 어린 직로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다시한번 눈주어 바라보고나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그의 마음은 상쾌하였다. 그가 애국투사후원회 청사에 거의 이르렀을 때 정문에서 라성환부위원장이 오기섭로동국장과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그들도 월송을 알아본 모양인데 웬일인지 오기섭이 눈을 내리깔며 서둘러 차에 올랐다.
《그럼 믿고 가겠소.》
이런 말이 귀전에 들려오기 바쁘게 오기섭의 차가 그의 곁을 씽 지나쳤다.
라성환이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일찍 나오십니다.》
《나보다도 라부위원장선생이 더 일찍 나왔구려.》
《예, 오늘 학원에 추가된 입학대상자명단을 보내야겠는데 다시한번 따져보느라구…》
어쩐지 그의 말은 변명 비슷하게 울렸다.
《그거야 어제 밤 중앙위원들이 최종적으로 확정한게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제 명색이 부위원장인데 책임감이 어디 그렇습니까. 참, 명단은 내가 학원에 가져다주겠습니다. 그런 먼걸음이야 젊은 사람인 내가 하는게 옳지요.》
라성환이 그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하는 말이였다.
하지만 월송은 그의 기색을 알아보지 못한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주시오. 그런데 이자 그 사람이 오국장이 아니시오?》
《예, 옳습니다. 이거 성화가 났습니다. 오국장이 자기 딸을 학원에 넣자고 저러질 않습니까.》
라성환은 자못 난처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거야?…》
《아마 학원제복도 멋있게 만들겠다, 또 그 학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민족간부감들을 키워낸다 하니까 생각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내 한때 그 사람과 같이 일해보아 잘 아는데 그런 리득을 따져보는데선 셈이 빠르지요.》
《하지만 유자녀학원이야 어디까지나 희생된 렬사들의 자녀들만…》
월송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아들 생각이 났던것이다.
결국은 그 애도 렬사자녀는 아니지 않는가.…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였던지 라부위원장이 념려하듯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월송선생의 아들은 입학대상이 되는데 자기 딸은 왜 안되는가 하는겁니다. 내 참…》
《…》
《내 그래서 월송선생의 경우는 특수하다는걸 심중히 말해주었습니다.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구 저 오국장의 일엔 아예 상관하지 마십시오. 내 다 알아서 처리할테니까요.》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이렇게 말했다.
월송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심중한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를 바라보는 라부위원장의 뾰족스러운 얼굴에 묘한 미소가 서리였다.
라성환, 그는 한때 만주에서 화요계의 공산당활동에 참가했다가 일제에게 체포되여 비밀전향을 한자였다. 그후 임무를 받고 북부조선일대로 건너와 오기섭의 농조운동에 관여하면서 인민혁명군의 지하조직선이 와닿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인차 해방을 맞았는데 크게 믿었던 오기섭이 당에서 비판을 받고 제2비서직과 당상무위원자리에서 해임되자 제꺽 허가이쪽에 접근하였다.
자기의 과거를 숨기고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자면 끈 떨어진 조롱박신세인 오기섭보다 당조직부장의 영향력을 리용하는것이 낫다는 정치적야심에서였다. 오기섭이 자기를 유다같은 놈이라고 뒤에서 욕하는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지금까지는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었다.
그런데 어제 밤 오기섭이 자기를 불쑥 집으로 초청하더니 《내 감옥생활을 할 때 얼핏 듣자니 라동무에 대해 뛰뛰한 말이 돌더군. 하지만 난 그걸 믿지 않아!》하며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것이였다.
라성환은 오기섭의 딸문제를 가지고 그를 어루만져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그의 집에서 곧장 나와 막 헤여지려던찰나에 김월송이 나타났던것이였다.
라성환은 그후에도 계속 자기의 과거를 숨기고있다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될 때 애국투사후원회의 자금을 훔쳐가지고 도망쳤다.
그러나 김월송이 애국투사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던 그 당시에만 하여도 그자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있었다.
월송이 민족반역자로서의 라성환과 다시 맞다들게 된것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금강산에서였다.
1948년 4월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 개회사를 김월송에게 맡겨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명망높은 독립애국지사로서의 영광을 만장에 누리도록 해주시였을뿐아니라 그후에는 그가 오래동안 써오던 조선력사에 대한 글을 끝내고싶어하는것을 헤아리시여 부인과 함께 공기좋고 물맑은 천하명승 금강산에 가서 마음껏 저술활동을 할수 있도록 온갖 조건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다.
나날이 더해가는 끝없는 인생의 희열속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 금강산의 신선으로 환생한듯 한 심정을 느끼며 살게 되였다.
아닌게아니라 월송은 죽어서도 영생하는 금강산신선으로 되였다.
1950년 10월초 그는 라성환을 앞세우고 자기를 붙잡으러 달려든 적들로 하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 처하였다. 적들은 명망높은 그를 회유도 해보고 위협도 해보며 그의 신념을 꺾어보려고 발악하였다. 월송은 비장한 최후의 결심을 내렸다.
그는 언제인가 자기의 생일날에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께서 선물로 보내주시였던 하얀 명주로 지은 조선옷을 정히 꺼내입고 삼가 마지막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장군님!
장군님의 은덕속에 새 광명천지에 나서서 여한없이 행복한 삶을 누려온 이 월송이 장군님의 은덕을 고이 간직한채 마지막길을 떠납니다.
렬사 안중근과 리준은 가슴을 치면서 마지막길들을 갔지만 한생의 소원을 다 꽃피운 이 사람은 지금 웃으며 이 길을 갑니다.
부디 만백성의 구성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귀체만강하시여 전쟁을 이기시고 삼천리 내 나라 금수강산을 무궁토록 길이길이 비쳐주시기를 축원하옵니다.…》
그는 이 편지를 안해에게 부탁하고 적들이 졸고있는 이른새벽을 리용하여 연금되였던 자기 집에서 빠져나왔다. 얼마 못 가서 적들이 뒤쫓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미 각오했던 그대로 주저없이 금강산 구룡연의 바위우에 우뚝 올라섰다.
지심을 울리는 구룡폭포의 장쾌한 물갈기가 짙은 새벽안개를 타래쳐올렸다. 산산이 흩어졌던 젖빛안개는 마치 신선의 령험한 도포자락처럼 월송의 온몸을 휘감았다.
(아들아! 네가 있어 이 아버지는 마음놓고 떠나간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너를 품어 세상에 부러운것없이 키워주시기에 아무러한 동요도 없이 웃으며 이 길을 간다, 내 아들아!…)
그는 인생의 온넋을 모아 하늘땅에 소리높이 웨쳤다.
《김일성장군 만세!―》
그는 사정없이 사품치는 구룡폭포의 검푸른 심연속으로 서슴없이 몸을 던졌다. 승천하는 그의 넋인양 흰 안개가 또다시 타래쳐올랐다.
그때 김월송의 나이는 일흔세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