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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의 집무실로 향하는 안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마흔에 접한 사람답지 않게 청사층계를 두개씩이나 성큼성큼 올려짚으며 단숨에 2층복도홀에 들어섰다.
여기서 그는 하마트면 누군가와 부딪칠번 하였다.
《이크!》
어지간히 놀랐는지 상대방의 털모자가 툴렁 떨어졌다.
《좀 보구 다닐게지. 코 깨지겠소.》
대단히 언짢은 목소리였다. 복도홀 창문으로 비쳐드는 희미한 락조에 커다란 체구를 굽혀 털모자를 줏어드는 그 사람의 훌렁 벗겨진 정수리가 번들거렸다.
《정말 미안합니다.》
안길은 진심으로 사죄를 하였다.
털모자를 쥐고 허리를 펴던 상대방은 의외로 반가운 환성을 질렀다.
《이거 안길동무가 아닙니까?!》
《아니, 허가이동지!》
그 사람은 당조직부장 허가이였다.
《하하… 글쎄 이 엄숙한 청사안에서 그렇게 패기있게 달음쳐다닐 사람이 안길동무 말구 누가 또 있겠습니까.》
《하하… 출장을 갔다가 오는 길이다보니 그만…》
안길은 가볍게 웃으며 변명삼아 말했다.
《나도 알고있었습니다. 보안간부훈련소 제2소 실태료해사업때문에 가셨댔다지요?! 함북도당동무들이 그 소식을 전해줍디다. 그간 날씨도 찬데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허가이는 유럽사람들식으로 악수를 청했다.
안길은 내여민 그의 손을 못 본척 할수 없어 마주잡았다.
《수고랄게 있습니까.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내 그곳 동무들에게 안길동무의 사업을 잘 도와드리라고 말은 했었는데… 허허… 그곳 형편이 씨원칠 않다지요.》
《허가이동지, 내 지금 장군님께 사업보고를 드리러 가던 길인데 미안하지만…》
안길은 수인사로 말이 끝날것 같지 않아 직방 량해를 구했다.
《아참, 그렇지. 어서 그래야지요.》
허가이는 이렇게 말하며 큰 체격을 얼른 옆으로 비켜세웠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있던 털이 부르르한 모자를 밤색고급라사직외투자락에 가볍게 털고나서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자기의 앞을 지나쳐가는 안길의 등뒤에 나직이 소리쳤다.
《가만, 내 생각엔 조금 기다렸다가 만나뵙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예? 그건…》
안길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돌아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 쏘련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고계신답니다. 아마 쓰딸린이나 몰로또브에게서 온 중요한 편지같습니다. 나도 방금 서기동무가 기다려달라고 하기에 나오던 길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기다렸다가 만나뵙는것이 옳다고 생각되였다.
《자, 저기 창문쪽이 훤한데 우리 거기서 담배나 한대씩 태웁시다.》
허가이는 제 먼저 활기있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외투주머니에서 《까즈베크》담배곽을 꺼냈다.
《난 피우지 않습니다.》
안길이 담배를 권하는 그에게 사양했다.
《아, 그렇지요. 난 이거 고질이 돼놔서…》
《그런데 허가이동진 쏘련에서 나온지도 1년반이 되여오는데 그 담밸 떨구지 않습니다?!》
《쏘련군사령부동무들에게 좀 얻어피우지요. 다른 담밴 아직 습관이 붙질 않아서… 허허… 습관은 거 제2천성이라질 않습니까.》
그는 기분좋게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인상좋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이 어리였다.
《내 사실 김책동지나 안길동무같은 빨찌산출신일군들과 품놓고 이야길 나누고싶은데 사업분야가 서로 다르다보니 좀처럼 그런 기회가 생기질 않누만요. 당본부에 안길동무같은 빨찌산출신간부가 한사람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길에게는 그가 속에 없는 빈소리를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몇번 상종해보니 지나치게 큰 나라의 경험에만 의존하려는 사고방식이 느껴지긴 하였지만 그의 경력으로 미루어볼 때 한켠으로는 리해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그것이 그자신의 말처럼 제2천성으로 영원히 굳어지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였다.
안길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정말이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한때 연안이나 국내에서 싸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업보다도 직무나 대우에 더 신경을 쓰지, 빨찌산출신들처럼 건국을 위해 한몫씩 맡아서 뛸 생각보다도 앉아서 시비질이나 하고있지…》
《모두야 그렇겠습니까. 일부 사람들이 그렇겠지요.》
안길은 그의 생각이 지나치게 여겨져 한마디 했다.
그러자 허가이는 손을 내저었다.
《안길동문 그사이의 일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지금 애국미문제를 놓고 뒤에서 얼마나 론의가 분분한지 모릅니다.》
《애국미… 말입니까?》
안길은 저으기 놀라며 되물었다.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리라고 짐작했었던지 허가이는 열띤 어조로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그게 어떤겁니까. 우리 농민들이 제땅에서 첫해농사를 지어 나라에 바친 말그대로 애국미가 아닙니까. 그러니 그건 단순한 쌀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의 형편에선 그야말로 나라의 현실적이면서도 유일한 투자밑천이란 말입니다.》
《투자밑천이요?…》
안길은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되뇌이였다.
지난해 12월 재령군의 김제원농민이 30가마니의 애국미를 김일성장군님께 올린것을 발단으로 하여 삽시간에 전국적범위에서는 농민들자신의 자원적인 애국미헌납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안길은 지금껏 농민들의 그 애국적소행을 감동속에 들으면서도 그것이 그 어떤 투자밑천으로 전환될수 있다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하였었다. 그에게 있어서 애국미란 그 부름은 신성한 대기념비를 마주했을 때처럼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그런것이였던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애국미를 그 무슨 물건이나 돈처럼 표현하는것은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물론 어차피 그것을 건국사업을 위해 써야 할것임은 틀림없겠지만…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귀중한 밑천을 이제 수립될 북조선인민위원회청사건설이나 간부들의 주택과 승용차 등 사업조건보장해결에 쓰자고들 하고있습니다.
그뿐인줄 압니까? 도는 도마다 제 욕심을 차리려드는데 글쎄 평남도인민위원장이란 량반은 평남도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도내 로동자, 사무원들의 생활비를 주기 위한 자금으로 쓰게 해달라고 김일성동지께 직접 제기까지 하는 형편입니다. 내 원 참…》
허가이는 진심으로 가슴아파하였다.
《물론 다 그 모양은 아닙니다. 산업국동무들속에서는 공장이나 기계들을 사오자는 사람들도 있고 또 애국투사후원회 일군들속에서는, 구체적으로 김월송부위원장과 라성환부위원장이 말입니다. 그들은 애국미를 다가오는 모쁘르기념사업에 쓰게 해달라고 제기해왔습니다.》
《모쁘르기념사업이라…》안길은 이번에도 혼자소리처럼 그의 말을 받았다.
모쁘르란 일명 국제혁명투사후원회의 략칭이다. 1923년 제3국제당(코민테른)집행위원회는 희생된 혁명투사유가족들의 후원을 목적으로 이 조직을 내오기로 결정하였고 3월 18일을 국제적인 모쁘르기념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런 제기를 한 사람들이 있다는건 다행이지요. 내 생각에는 그들의 제기가 옳다고 봅니다.》
허가이는 스스로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바로 이런걸 두고 정치적투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국내의 렬사유가족들을 후원하면서도 전대미문의 전쟁으로 참혹한 희생을 겪은 쏘련사람들에게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국제주의적인 의리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의 그들의 정치, 경제, 군사적지원을 이끌어낼수 있는… 그러면 지금 안길동무가 정규군건설사업에서 겪고있는 그쯤한 난관은 쉽게 해결될것입니다.》
그는 확신에 찬 눈길로 안길을 바라보았다.
《이런 전략적인 정치적안목이 없이 당장 눈앞의 리익만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치인들로서는 너무 근시안적이지요.》
《허가이동지, 물론 우린 항일전쟁을 할 때부터 국제주의적의무에 충실해왔습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우리들자신의 리념을 지키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지요. 그 이외에 그 어떤 다른 타산은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허허…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자체의 힘으로 건국을 해야 한다는 김일성동지의 사상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국제적환경을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조성하는것도 대단히 중요하지요. 그 영향력을 무시할순 없지 않습니까.》
그는 오랜 습관처럼 두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안길은 왜서인지 그의 정열적인 화제에서 벗어나고싶어졌다. 별로 현실적의의가 없는 그의 이야기에 말려들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무익한 공담을 피하려고 서둘러 화제를 시작점에로 돌려세웠다.
《허가이동지, 애국미는 우리 농민들이 김일성장군님께 삼가 올린것입니다. 그러니 그 처분권은 명실공히 장군님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그런 론의는 하지 말아야지요.》
《옳습니다. 바로 그래서 나도 김일성동지를 직접 만나뵙자고 했던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돌아가렵니다. 나보다도 안길동무와 같은분들이 곁에서 잘 말씀드리는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좀 당황해진듯싶은 그의 목소리…
안길은 그 어떤 기대가 어린 그의 얼굴앞에서 슬며시 눈길을 돌리였다. 은연중 지금 장군님의 심중이 얼마나 복잡하시랴 하는 생각이 불시에 갈마들었다. 여기에 이제 또 자기의 실태료해보고까지 들으신다면…
자칫하면 이 안길이까지도 그 애국미를 넘겨다보는셈이 되지 않겠는가.
안길은 다시금 무거워지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시각.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세번째로 편지를 손에 다시 쥐시였다.
집무실책상우에 놓여있는 문건들을 끄당겨놓으셨다가도 웬일인지 자꾸만 눈길이 그 편지에만 못박혀 도저히 다른 일감을 잡으실수가 없었던것이다.
그 편지는 쏘련의 가맹공화국인 까자흐스딴에서 보내온것이였다.
이제는 편지를 보지 않고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할수 있었으나 그이께서는 다시금 한글자 한글자 눈주어 읽으시였다. 마치 고조선의 신지글자나 옛중국의 상형문자를 보는듯 한 서투른 조선글로 한장 가득 씌여진 편지는 사실상 다섯문장밖에 안되는 짧은 내용이였다.
《김일성장군님!
나는 림춘추의 아들입니다.
우리 양부모님은 나의 친아버지가 장군님과 조선빨찌산에서 함께 싸웠대요.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아버지가 없으니 난 아직 조선이름도 없어요.
림울라지미르 춘추노비츠 올림.》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손으로 왼쪽가슴을 지그시 누르시였다.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놀라움보다는 아픔이 못 견디게 가슴을 파고들었던것이다. 림춘추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 아울러 편지에 쓴 그의 양부모가 다름아닌 리용구, 고현숙부부일것이라는 예감은 더없이 기쁘고 다행스러운것이였으나 지난 10년간 그들이 이국땅에서 겪었을 그 모진 고생과 불행이 자꾸만 사무쳐와 가슴이 쓰리고 아프시였다.
비록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단 한줄도 씌여있지 않았으나 바로 《림울라지미르 춘추노비츠》라는 그 이름아닌 이름속에 모든 사연이 다 응축되여있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를 손에 쥐신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이미 어둠에 묻힌 창밖에서는 우―우― 기승을 부리는 찬바람소리만이 음산하게 들려왔다.
비로소 그 소리를 느껴서인지 불시에 오한감이 드시였다.
(그들을 원동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청구자밀영에서 헤여지던 그날도 이렇게 찬바람부는 날이였지. 아니, 그날의 날씨는 이보다 더 춥고 사나왔어.…)
잊지 못할 청구자밀영…
옛 왕청유격대 중대장 리응만이 쌍지팽이를 짚고 앞을 막아서며 《장군님, 제발 저를 장군님곁에서 혁명을 하다가 죽게 해주십시오. 제 비록 외다리이지만 총을 쏠수 있고 무기수리도 할수 있습니다. 또 입이 있으니 혁명을 선동하는 연설도 할수 있습니다.》라고 절절히 부르짖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가하면 《어른들이 그러는데 장군님은 백두산에서 싸우면서도 한달에 한번씩은 꼭꼭 우릴 찾아오신댔어요. 정말이지요?》 하고 묻던 또랑또랑한 소녀의 목소리도 금시 귀전에서 울리는듯싶었다.
아, 그 목소리, 초롱초롱 기대를 품고 애타게 바라보던 그 새별눈… 그것은 왕청유격근거지에서 부모를 잃은 량귀동녀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어찌 그들뿐이랴. 전투에서 입은 상처와 일제교형리들의 야만적인 고문의 후과로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을 끌고 사령부를 찾아 끝끝내 남호두로 왔던 리용구, 북만의 혹심한 추위와 적들의 검질긴 추격으로 하여 간고한 행군을 하는 속에서도 2차북만원정대오의 작식을 혼자서 보장하느라 손과 발에 심한 동상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쫄라병에 걸려 쓰러졌던 고현숙.
안순화의 아들과 임신중이였던 림춘추의 안해도 그때 그들과 함께 떠났었지.…
안길에게 한개 중대를 거느리고 수십명이나 되는 부상자들과 부녀자들이 국경까지 무사히 갈수 있도록 엄호해주라고 지시를 주던 그 순간까지 청구자밀영에서의 눈물겹던 리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10년, 이제는 벌써 10년세월이 흘렀다. 그 기나긴 세월속에서, 그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문득 원동훈련기지에서의 국제련합군시절이 생각나시였다.
그 시기로 말하면 이미 쏘련정부가 국가관리운영과 안전보장이라는 리유로 원동지구에서 살고있던 조선사람들을 중앙아시아의 가맹공화국들로 전부 이주시킨지 몇해 잘되던 때였다. 그러나 행여나 하는 생각과 혹 행처라도 알수 있지 않을가 하는 미련으로 그들이 초시기 생활하던 곳으로 사람을 보냈었다.
우려했던바 그대로 그들의 모습도 행처도 전혀 찾을길이 없었다.
다만 리용구, 고현숙부부와 이웃하여 살았다는 로씨야녀인에게서 전해들은 한토막의 가슴아픈 소식만을 가지고 왔을뿐이였다.
그에 의하면 그들은 자기 자식들과 함께 젖먹이어린애인 림춘추의 아들(그해 애기어머니는 산후탈로 인차 사망하였다고 한다.)을 포함하여 열두명의 올망졸망한 유자녀들을 맡아키우면서 령하 60℃를 오르내리는 원동의 추위와 굶주림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였다고 한다.
어느해 추운 겨울날 한살도 채 안되는 림춘추의 아들을 뻬치까우에 눕히고 두살난 자기 아들은 뻬치까아래 침대에 눕혔는데 새벽에 보니 고현숙의 친아들은 그만 얼어죽었더라는것이다.
지금도 그 소식을 전해듣고 너무도 가슴이 미여져와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림춘추가 얼마나 가슴아파했으며 정숙동무는 또 얼마나 눈물을 흘리였던가.
그후에도 행여 그들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으나 종시 알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 쏘련은 파쑈도이췰란드와의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머나먼 까자흐스딴에서 밑도 끝도 없는 림춘추 아들의 편지가 날아온것이다. 그 애의 나이가 지금 아홉살쯤 되였을것이다. 아마 현숙동무네 부부에게서 아버지에 대하여, 조선의 빨찌산에 대하여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으리라. 그래서 그 어린것이 이렇게 빨찌산대장에게 편지를 쓸 엉뚱한 생각을 하였으리라…
(고맙소! 용구동무, 현숙동무. 이국에서 또 낯설은 이국으로 옮겨가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도 이렇게 동지들의 자식들까지 맡아키웠으니 그 깊은 의리심에 내 무슨 말로 어떻게 인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주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름할수 없는 충동으로 마음속 당부를 절절히 뇌이시며 창문가에서 돌아서시였다.
손에 들었던 편지를 봉투에 넣자고보니 왜서인지 림울라지미르 춘추노비츠라는 이름이 또다시 눈에 밟혀왔다. 그 땅에 림울라지미르뿐아니라 김쎄르게이, 박안드레이 등의 범벅이름을 가진 조선사람들이 어찌 한둘이랴만 빨찌산의 아들인 그 애에게만은 당당한 조선사람의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나라를 빼앗겼던탓으로 민족이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불행과 수치를 그 어린것에게서만이라도 당장에 벗겨주고싶으시였다.
일제에 의해 강요되였던 수난의 그 력사, 제 나라, 제땅을 두고서도 그 아버지는 중국 동북에서, 그 자식은 쏘련 원동에서 태여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기막힌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싶으시였다. 그 애의 지나온 아홉해, 림울라지미르 춘추노비츠로 살아온 그 불행의 아홉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밝은 앞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해주고싶으시였다.
그런 자신의 속마음이 비껴서인지 불쑥 《영일아!》하는 부름이 새여나갔다.
영일이, 림영일이!…
불러놓고보니 새로 지은 이름이 참 마음에 드시였다.
물론 림춘추가 이미전부터 따로 지어두었던 이름이 있다면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존중해주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림울라지미르 춘추노비츠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그앞에 세워주고싶지 않으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하긴 한점 혈붙이도 없는 낯설은 이국땅에서 그 피덩이 어린것이 어떻게 살아날수 있으리라 믿고 이름까지 따로 생각해두었으랴.
지금껏 림춘추가 아들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은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그런 기대를 단념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자신께서도 공연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싶지 않으시여 한번도 그런 말을 내비치지 않으시였었다.
(춘추동무, 영일이 아버지!…)
림춘추의 얼굴이, 번듯한 이마에 학자처럼 지성미가 풍기는 눈빛을 가진 그의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좀해서는 자기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말보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내성적인 그가 아들의 소식을 받고 어떻게 나올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모름지기 애써 흥분을 감추려 하겠지만 그 두툼한 입술만은 다물지 못하리라!
하지만… 아들의 새 이름과 아들의 소식을 알려준다고 하여 림춘추의 그 마음속 아픔이 다 풀릴수 있으랴. 림춘추와 그의 아들을 위해 해줄수 있는것이 과연 이것밖에 더 없단 말인가.
김일성동지의 마음은 다시금 무거워지시였다.
(당장은, 지금 당장은…)
그이께서는 천천히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기다렸던듯 교환수의 청아한 목소리가 수화기의 진공판을 울렸다.
《말씀하십시오.》
《교환수동무, 수고하오. 평남도당 제2비서동물 좀 찾아주시오.… 음, 나오질 않는다, 전화가 들어오면 그 동물 나에게 보내주시오. 그럼 부탁하오.》
그이께서는 아쉬운 심정으로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김종항서기가 문밖에 안길이 와있음을 보고드린것은 바로 이때였다.
×
《아, 안길동무가 왔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반갑게 안길에게로 다가가시였다.
《장군님!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참모장 안길 제2소료해사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먼길에 정말 수고가 많았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수경례를 붙인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내리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래, 위탈이 또 애를 먹이진 않았소? 정초부터 동물 떠나보내놓구 어디 마음을 놓을수가 있더라구. 위탈이라는게 손발이 차지면 더한 병인데…》
《장군님, 몸은 오히려 거뜬합니다. 앞으로 정규군의 주력사단이 될 우리 동무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오질 않았습니까.》
상봉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흐리지 않으려는듯 그의 목소리는 저으기 쾌활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눈가에 어린 한줄기 근심의 빛을 놓치지 않으시였다. 그리고 그의 심정을 리해하시였다.
함북도당의 보고라면서 허가이조직부장이 그곳 주둔부대들의 형편을 이미 알려왔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금도 내색을 않으시고 안길의 쾌활한 어조를 그대로 따르시였다.
《그렇다니 나도 한결 마음이 놓이누만. 참, 내 한가지 소식을 알려줄게 있소.》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놓았던 편지를 들어 안길에게 주시였다.
《림춘추의 아들이 써보낸 편지요.》
안길이 와뜰 놀랐다.
《예? 림춘추… 아들 말입니까? 아니, 그러니 쏘련에서 온 편지를 받으셨다는것이…》
《그러니 안길동무도 누구처럼 이 편지가 쓰딸린이나 몰로또브에게서 온것쯤으로 알았던 모양이구만, 음?! 큼직한 원조를 주겠다는 편지로 말이요.》
《아, 그런것은 아닙니다.》
《나도 그저 해보는 소리요. 사실 그들은 지금 누굴 원조해줄 형편이 못되오. 엊그제 전쟁이 끝난 나라가 아니요. 설사 여유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들의 제1차적인 관심은 안전지대로서의 동유럽을 강화하는데 돌려질거요.
안길동무, 난 오히려 영일이의 이 편지를 보며 우리가 무엇으로 새 나라를 일떠세워야 하겠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누만. 참, 영일이란 그 이름은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짧은 편지내용을 다 읽고 놀라와하는 안길에게 자신께서 그 애의 이름을 영일이라고 지으신 사연을 설명해주시였다.
《뜻밖입니다. 춘추동무의 아들이 살아있었을줄은… 그가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더구나 장군님께서 지어주신 아들의 이름까지 들으면야…》
격정에 젖은 안길을 바라보시며 그이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였다.
《정말 그럴가?…》
그러시고는 천천히 눈길을 돌리시였다. 딱히 그 어느 곳이라고 찍을수 없는 공간을 바라보시며 혼자소리처럼 뇌이시였다.
《그것이… 자기 위안처럼 되지 말아야겠는데. 어쩐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먼저 간 동지들앞에 죄스러운 생각이 더 드누만. 그들의 자식들도 어디선가 영일이처럼 자기 아버지를 찾고있겠는데…》
《장군님,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이제 건국사업만 끝내놓고서는…》
안길이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였다.
《건국사업이라…》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얼굴에로 다시 눈길을 돌리시였다. 안길이다운 솔직한 말이였다. 그의 온넋은 다름아닌 건국사업, 구체적으로는 바로 정규군건설에 가있다. 어찌 보면 그가 부럽기도 하셨다.
그처럼 모든 정력과 사색을 오직 건국사업에만 집중할수 있다면…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장 첫 민주선거의 성과에 토대하여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수립하여야 하였고 조선인민혁명군을 하루빨리 정규적인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야 하였다. 나라의 분렬을 막고 전조선적인 인민의 공화국을 창건해야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적자립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참다운 정치적독립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기에 올해부터 첫 인민경제계획수행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공업생산과 알곡생산을 더욱 늘이고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켜야 하였다.
경제건설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고 민족기술인재와 기능로동자들도 매우 부족한 형편에서 더우기 원료, 자재, 자금도 거의나 없는 조건에서 이런 방대한 계획을 수행한다는것은 실로 어렵고 힘든 일이였다.
새 나라를 일떠세우는 그 모든 사업을 다름아닌 자신께서 다 걷어안으셔야 했고 그 모든 해결책을 자신께서 다 세워주셔야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책상우에 무드기 쌓인 문건들을 바라보시였다. 대다수 당면하게 애국미를 투자금으로 먼저 쓰도록 해달라는 각이한 부문들의 주장이 담겨져있는 제의서들이였다. 그 어느 부문, 그 어느 주장 하나 중요치 않거나 타당치 않은것이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자신께서도 요사이 그 애국미를 놓고 하루에도 몇십번 속구구를 해보시는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우리 농민들의 뜨거운 애국지성이 건국의 초석을 마련하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관건적인,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절박한 사업에 바쳐지게 하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그 어느 하나에도 선뜻 결심이 서지 않으시였다.
무엇때문인가? 림춘추의 아들이 보낸 이 편지때문에?…
아니, 아니였다. 이미전부터, 편지를 받기 썩 오래전부터 줄곧 뇌리를 파고드는 그 무엇인가가 자꾸만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의 사색을 종잡을수 없이 분산시키며 자신의 결심을 방해하고있었다.
(건국사업이라…)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금 속으로 이 말을 외우시고나서 안길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그럼 그곳 사업정형을 들어봅시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이번에 내려가 우선 보안간부훈련소 제2소와 그 산하 분소들의 주둔지와 임무수립, 훈련과제들을 다시 확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단위의 중대, 소대들의 지휘관임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외에 자기 편제에 따르는 대렬구성은 모두 완료되였습니다. 임명하지 못한 구분대지휘관들을 앞으로 중앙보안간부학교 제1기 졸업생들로 배치할 때까지 우수한 하사관들로 대리임무를 수행하도록 대책을 세웠습니다. 기본적으로 제2소는 자기의 임무수행에 착수할수 있게 되였다고 봅니다. 다만…》
안길이 잠시 주저하며 동안을 두었다가 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부 중대들의 병실준비상태가 원만히 보장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수자와 형편을 사실그대로 보고하였다. 빨찌산시절부터 장군님께는 오직 진실만을, 그것이 아무리 괴롭고 심중한것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그대로만 보고드려야 한다는것이 혁명가로서의 그의 사업철칙이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지막까지 그의 말을 끊지 않으시였다. 이미 정황은 알고계셨지만 안길의 보고를 들으니 실태의 절박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시였다.
《그러니 병실들을 짓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안길동무 보기엔 어떻소? 강건이나 그들의 생각이…》
《사실… 건설자재만 보장해주면 늦어도 한달안으로는…》
《허허… 안길동무도 그 말을 꽤나 힘들게 하누만. 설사 건설자재를 보장해줄수 있다 해도 병실은 봄철에 나가 지어야 하오. 하루이틀 살다 버릴 건물이 아니잖소?! 그리고 한달동안이나 전사들을 한지생활시킬수도 없지 않소. 그래, 그 주변들의 건물들에 대해선 좀 알아봤소?》
《…》
안길은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미처 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못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자신께서 현지에 나가봐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안길동문 그에 대해서 더 신경쓰지 말고 전반사업에 관심하도록 하오. 내 인차 시간을 내여 2소에 가보겠소.》
《아니, 거기가 어디라고?… 해당 부문에 과업만 주시면 제가 그들과 함께 내려가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펄쩍 놀라는 그를 가볍게 눌러앉히시였다.
《과업을 줘서 내리내리 그곳 실정을 료해하는 동안이면 이 겨울이 다 지나가고말거요. 현지에 직접 내려가봐야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줄수 있소.》
《장군님!…》
안길의 얼굴에 죄송스러운 빛이 짙게 어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심정이 헤아려지시여 얼른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참, 춘추동무에게서 들으니 그가 이번길에 심병윤동무의 유가족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안길동무에게 부탁했었다면서?!…》
《예?》
안길은 그것까지 장군님께서 알고계시는데 놀라와하면서 면구스레 웃었다.
《그런데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심병윤은 연길현 8도구 동신평에서 박성철과 함께 지하정치공작을 하다가 왜놈들에게 희생된 사람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유복자를 품은 심병윤의 안해가 시집인 함경북도 길주군 덕인리로 갔다는것이였다.
안길이 이번길에 알아낸것은 그 녀자가 몇해전에 시집을 떠나 금천리라는 곳에서 살다가 해방을 몇달 앞두고는 그곳에서마저 자리를 떠서 어디론가 없어졌다는것뿐이다.
《그 시아버지 되는 심로인이 며느리의 행처에 대해 영 모르쇠를 합니다. 가만 보니 재가를 한 모양입니다. 그 시집의 살림이 영 말이 아니던데 그래서 얹혀살지 못하고 떠난것 같습니다. 로인이 재가를 하도록 허가를 했구요. 만약 새가정을 이루고 살고있는 며느리가 심병윤의 유가족을 찾는다는걸 알면 당혹해할가봐서겠지요.》
이것은 그곳 군애국투사후원회의 한 일군이 그에게 알려준 말이였다.
십분 그럴수 있는 아니, 열에 아홉은 그렇게밖에 달리 될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져 안길은 더 다른 말씀을 드릴수 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젊은 녀자가 그 험한 세월에 혼자 살기 얼마나 힘들었겠소. 하지만 심병윤의 아들은?…
설사 새 아버지를 만나 성을 달리 부른다 한들 피줄이야 어찌 달라질수 있겠소. 그리고 심병윤동무앞에 그의 피줄조차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뭐라고 변명하겠소.
우린 그의 아들만이라도 꼭 찾아와야 하오. 아무리 시간이 바쁘더라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걸 그랬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드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곧 그렇게 말한것을 후회하시였다. 왜서인지 그를 나무람한것이 가슴에 맺히셨던것이다.
해방후 힘들게 찾은 가족들과 단란한 가정생활도 변변히 누려보지 못하고 또 의사들도 머리를 젓는 중병에 걸린 안해의 병문안조차 가보지 못하고 건국사업을 위해 뛰여다니는 안길이였다. 이런 안길을 그 어떤 인정이나 의리가 없는 사람처럼 평가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모욕으로 될것이였다.
어쩐지 그를 리해해주고싶으시였다.
아니, 그가 리해되고도 남음이 있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이상 아무 말씀도 잇지 않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