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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나 《미술》이라는 용어는 그 어원을 따지고들어가보면 원래 문예부흥기에 이딸리아에서 사용된 《기술》이라는 용어에서 유래된것이다.
문예부흥기까지만 하여도 예술과 과학기술은 분리되지 않고 밀착되여있었다. 이 시기의 뛰여난 화가나 조각가, 건축가들은 다 례외없이 재능있는 과학자였으며 기술자였다.
그들은 일정한 수치관계로 설정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원근법의 발견으로 수학적으로 계산할수 없는 조형공간을 회화에 표현할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인체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 풍부한 근육과 동적인 자세를 재현함으로써 인간의 위대함과 자유를 표현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껠란젤로의 작품들만 보아도 그것은 예술적창조물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대한 과학적탐구의 산물이였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예술이라고 불러도 좋고 기술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던것이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18세기 말엽에 와서야 유럽에서는 《기술》이라는 용어앞에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붙여 기술로부터 미술을 분리시켰다. 도이췰란드의 철학가 칸트는 기술을 《기계적기술》과 《기분좋은 기술》 즉 예술로 구분하였다.
그 어원이 어떠했든간에 문석오가 미술, 그중에서도 조각에 남다른 열망을 품고 그 길에 들어서게 된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 기분좋은 기술에서 받아안은 남다른 기분때문이였다. 미술가였던 아버지가 자기의 재간을 넘겨주기 위해 아들에게 그림공부를 시키기 시작했을 때만 하여도 사실 그는 아무런 흥심도 느끼지 못하였었다. 그런대로 매일같이 정물화며 산수화를 그려바치군 하였지만 그것은 다만 엄격한 아버지의 채찍이 두려워서였을뿐이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그 따분함은 점차 고통스러움으로 번져졌다. 정의감이 강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그의 눈에는 아무리 활짝 핀 향기로운 꽃을 그리자고 하여도 눈물에 젖은듯 시들게만 보였고 아름다운 산새를 그리자고 하여도 왜서인지 그 울음소리만이 처량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던것이다.
일제에게 강산을 통채로 빼앗긴 불쌍한 식민지민족의 설음과 원한을 터치기에는 꽃이니 새니 산이니 강이니 하는것들이 너무도 무심했고 아버지가 애써 쥐여주려는 그 붓이 너무 연약해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누구에게선가 빌려온 문예부흥기 이딸리아 3대거장들의 화첩을 보여주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의 작품들도 마음을 끌어당겼지만 특히 미껠란젤로의 조각품들은 그의 심금을 꽈악 틀어잡았다.
《모쎄》,《노예》,《승리》,《삐에따》…
더우기 미껠란젤로가 자기의 고향 피렌쩨를 수호하는 용감한 투사의 불굴의 기상과 투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를 반영한 대리석상 《다비드》와 피렌쩨공국의 부활에 대한 애국의 념원을 담은 고대로마공화제시기의 영웅 《브루투스》반신상은 애젊은 열혈청년에게 거의 전률에 가까운 환희와 흥분을 안겨주었다.
문석오는 그 조각들에서 인간의 힘과 투지, 항거의 정신과 영웅적투쟁의 기백을 강하게 느꼈고 똑똑히 보았다. 그는 비로소 칸트가 말했다는 그 기분좋은 기술에서 그 무엇으로써도 느낄수 없었던 매혹과 열광 즉 훌륭한 기분을 받아안았던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소박한 기대를 뛰여넘어 조용한 풍물화가가 아니라 붓과 칼을 다같이 틀어잡은 조각가가 될 결심을 다졌다. 그의 결심은 곧 도꾜에로의 고생스러운 고학으로 이어졌다. 미껠란젤로처럼 나도 민족의 영웅들을 조각으로 만들리라, 민족의 영웅들을 단순히 평면속의 존재가 아니라 현실속의 존재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힘을, 용기를, 신심을 느끼게 하며 원쑤들에게는 공포를 안겨주리라.…
도꾜미술학교 조각과에서의 6년간에 걸친 문석오의 고학시절은 오직 이 하나의 일념으로 흘러갔다.
동창생들은 그를 일명 《조선의 미껠란젤로》라고 불렀다.
거기에는 세계적인 조각가가 되려는 그의 높은 지향과 뛰여난 사실주의적미술재능에 대한 찬탄과 부러움이 더 짙게 비껴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예측과는 달리 이 전도유망한 조각가의 앞날은 밝지 못하였다. 수난의 땅,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의 재능을 알아줄 사람도 없었고 재능을 꽃피울 터전도 없었다.
문석오가 그토록 찾고 또 찾아온 주인공 민족의 영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만나보았지만 그들에게서는 도저히 강도에게 빼앗긴 이 나라를 다시 찾을만 한 그 어떤 비범성도 영웅성도 느낄수 없었다.
그는 민족의 영웅을 못 가진 불행한 이 땅을 한탄했다. 그렇다고 몇푼의 돈을 벌자고 《총독부》의 권력자들이나 백만장자들의 조각을 만들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뜻을 꺾고 해방을 맞을 때까지 어느 사진관의 사진사로, 어느 도자기공장의 기사로 생업에 묻혀버리고말았다. 그래도 그 시기에 그가 애착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홍명희초상조각과 백선행반신상조각이라 해야 할것이다. 한사람은 조선의 명사요, 한사람은 민중의 사랑을 받는 애국적인 녀성이였다.
그때 문석오가 비록 붓을 꺾고 한미했던 식민지조선의 화단에서마저 사라졌지만 끝내 그 붓을 저버리지 않았던것은 어느때부터인가 쉬쉬 하며 들려오기 시작한 김일성장군님빨찌산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때문이였다.
자칭 영웅남아들도 적지 않게 만나보고 속히워본 그였던지라 쉽게 믿게는 안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 강산에 그 어떤 상서로운 기운이 태동하고있음이 확실히 느껴졌다. 예민한 미술가의 심장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열정적인 인간의 피가 다시 끓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조국해방을 분수령으로 하여 마침내 세차게 뿜어올랐다. 그는 평양으로 올라왔다. 평양에서 남다른 재능으로 하여 동업자로서 인연이 깊었던 정관철을 만났다.
《정선생은 행운아요. 벌써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구 조국개선환영군중대회때에 장군님의 초상화를 정선생이 그려 모셨다지. 정말 부럽구만.》
《문선생, 재능으로치면야 나야 문선생과 대비나 됩니까. 더구나 장군님께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걸 한사코 반대하시는통에 림춘추동지가 가져다준 장군님의 사진 한장을 놓고 그리다보니…》
《아니, 아니요. 그 초상화에는 영웅의 정기와 기상이 막 넘치고있소. 난 사실 지금껏 모든 예술중에서 조각이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작업의 엄격함이나 분량 등에 의하여 생기는 차이를 내놓고는 조각과 회화사이에 아무런 가치의 차이도 없다.〉고 한 미껠란젤로의 말이 옳았다는것을 절감하였네.》
《하하… 문선생은 여전하시구만요. 걱정마시오. 이제 문선생도 창작의 붓을 들지 않고는 못 견딜겁니다.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령수로 모신것은 우리 조선인민모두에게뿐아니라 우리 미술가들에게도 더없는 행운이지요. 그런 위대한분과 동시대에 살수 있는 행운이 어디 바란다고 쉽게 차례질수 있는겁니까? 미껠란젤로도 역시 르네쌍스라는 행운의 시대가 낳은 미술가가 아니였습니까. 문선생은 조각가로서 꼭 세계적인 명작을 내놓게 될것입니다.》
가식이라고는 조금도 느낄수 없는 정관철의 그 말은 문석오를 흥분시켰지만 그를 통하여 만나게 된 림춘추라는 빨찌산출신의 말은 문석오의 가슴을 더욱 후덥게 하였다.
《문선생! 정말이지 반만년의 우리 조선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영웅으로 높이 칭송하는 시가 나오고 소설이 나오고 그림이 나오고 조각들이 쏟아져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장군님을 모시고 산에서 싸운 우리들은 그럴 마음이 불같지만 어디 선생들처럼 재능이 있어야지요.…》
림춘추의 그 말속에는 투사들의 깨끗한 념원과 절절한 기대가 어려있었다. 아니, 조선인민모두의 뜨거운 소원이 깃들어있었다.
강도 일제와의 전면전쟁을 선포하시고 20성상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하시며 삼도왜적을 전률케 한 전설적영웅, 그분의 다른 위인상은 다 불문에 붙이더라도 30대 초엽의 그 젊으나젊으신 나이에 포악스런 일제를 무릎꿇게 하시고 나라를 찾아주신 그 불멸의 업적 하나만으로도 김일성장군님은 과시 영웅중의 영웅, 위인중의 위인이 틀림없다. 문석오는 그 순간에 벌써 심장을 쿵쿵 울리는 창작가로서의 흥분에 휩싸였다.
위대한 주인공의 눈부신 형상이 막 눈앞에 어려오는듯싶었다. 하여 그는 그 흥분과 예감을 안고 정관철과 함께 보천보로 떠났었고 돌아온 뒤에는 밤잠도 잊다싶이하며 먼저 유화 《김일성장군》을 끝내 완성하였던것이다.
정관철이 그랬었던것처럼 그도 림춘추의 방조를 받아가며 검은 닫긴양복차림에 줄무늬를 두른 양털색펠트장화를 신고 서계시는 장군님의 립상화를 창작완성하였다.
벌써 어제 림춘추가 이 작품을 가져갔는데 아직 아무러한 소식도 없다. 왜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을가? 장군님께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는가? 아니면?…
지금도 문석오는 흥분과 불안이 시계추처럼 엇갈리는 속에서 이제나저제나 림춘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정오무렵이 퍽 지났을적에야 애타게 기다리던 림춘추가 화실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들어서는 한 녀인의 모습을 띠여보았을 때 문석오는 무춤 굳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흰색저고리에 검은색치마를 수수하게 입었으나 그 소박하고 단정한 차림속에는 무엇이라 형언키 어려운 기품이 강하게 어려있었던것이다. 정갈하다고 할가 고상하다고 할가, 아니면 따뜻하다고 할지…
《문선생, 어서 인사드리십시오. 김정숙녀사께서 선생을 만나보자고 오셨습니다.》
《예―에?》
림춘추가 싱글거리며 하는 말에 그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김정숙녀사라니? 아니, 그럼 그 유명한 항일의 녀장군께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분께서 무엇때문에 나를 몸소 찾아오신단 말인가, 이 비좁고 어지러운 화실에 이런 귀인을 모시게 될줄이야!…
《문석오선생을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고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앞으로 몇걸음 다가서시더니 정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시였다.
《아니, 녀사님?!… 녀사님!》
문석오는 뜻밖에 자신의 신상에 들이닥친 꿈같은 현실앞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여 어쩔줄 몰라하며 그저 《녀사님》이란 한마디 부름말만 곱씹을뿐이였다.
림춘추가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려는듯 화실안을 휘둘러보며 넌지시 한마디 했다.
《자 문선생, 녀사님을 그냥 서계시게만 하겠습니까?》
그제서야 할바를 깨달은 문석오는 화판앞에 놓여있던 의자를 황급히 들어 그이께 가져다드렸다.
《앉으십시오, 의자가 변변치 않아서…》
그러는 그의 모습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어린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의자가 한개밖에 없으니 나 혼자야 어떻게 앉겠습니까. 나도 문선생과 함께 서있겠습니다.》
《사실 화실안이 비좁아서 의자를 더 들여놓을 자리가 없길래…》
문석오는 죄송스러워하며 변명삼아 중얼거렸다.
《정말 화실이 좁군요.》
《아, 아닙니다. 내겐 이것도 과남하지요. 그래도 정관철동무가 화실을 구해주었으니 다행이지 나같은 뜨내기생활에야 어디…》
《문선생은 가족을 해주에 두고 림시로 올라와있지요.》
림춘추가 김정숙동지께 그의 형편을 설명해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식솔이 많다는 얘길 들었는데 집살림도 다 버리고 이렇게 혼자 고생하며 그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셨군요.》 하고 진심어린 목소리로 뇌이시였다.
《우리 평남도당에서 문선생에게 좋은 화실을 하나 구해드리겠습니다.》
림춘추의 말에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림춘추동진 문선생의 가족이 올라와 생활할수 있는 살림집부터 먼저 구해드려야 할것 같아요.》
《아니, 아니… 일없습니다. 한일도 없이 어떻게 페를 끼치겠습니까.》
문석오는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페랄게 없습니다. 문선생의 사업과 생활을 잘 돌봐드릴데 대해서는 이미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예?》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그는 크게 놀랐다.
《장군님께서는 선생이 창작한 립상화를 보시고 자신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제가 그린 작품을 보아주셨단 말입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움에 젖은 그의 모습을 다정히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문선생! 우리 전우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먼저 간 항일의 렬사들을 대신하여 제가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이께서는 정색한 몸가짐으로 다시금 정히 머리를 숙이시였다.
《아닙니다, 녀사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그이앞에 마주 고개를 수그리며 문석오는 감격에 겨워 웨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문선생!…》
림춘추가 감격과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의 어깨를 지그시 잡아주었다.
《림동지!…》
문석오의 두눈에서는 물기가 번쩍거렸다. 그는 인차 자기를 다잡고 김정숙동지께로 돌아섰다.
《그런데 녀사님, 장군님께서 미흡한 그 그림을 두고는 무슨 말씀을?…》
《장군님께서는 선생의 재능을 두고는 칭찬하셨지만 그림을 두고는 몹시 나무람을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문선생이 앞으로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과 생활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창작해주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민의 영웅적투쟁과 생활을요?》
《예, 우리 장군님은 그런분이십니다. 문선생, 장군님께서는 재능있는 미술가를 또 한사람 알게 된것이 기쁘다고 하시면서 우리 민족미술을 발전시키는데서 문석오동무와 같은 재능있는 화가들이 매우 귀중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석오는 무아경속에 잠기였다.
일찍부터 미술가로서의 그의 재능을 인정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중 어느 누구도 그를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석오의 재능에 대한 평가는 결국 리용가치에 대한 평가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나라 미술을 발전시키는데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로 그토록 높이 내세워주신분은 오직 김일성장군님뿐이시였다.
문석오는 간절한 눈빛으로 림춘추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림춘추는 언젠가 자기앞에서 터놓았던 결심을 더욱 굳혔다는것을 깨달았다.
림춘추는 그만이 알수 있게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김정숙동지에게 말씀올렸다.
《정숙동지, 이 문선생에게는 일생의 소원이 있습니다.》
《일생의 소원이라니요? 그게 뭔지 저도 도우면 안될가요?》
《됐습니다. 정숙동지만이 풀어줄수 있는 소원입니다. 자, 문선생! 어서 말씀드리시오.》
림춘추의 말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무엇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귀가 잘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몇번 갑자르더니 드디여 입을 열었다.
《저… 이건 예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신념에 관한 문제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무슨 소원인지 서두부터 심각하군요.》
《그렇습니다. 더우기 저의 그림에 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평가가 내려진 마당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문석오는 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이 자리에서 김정숙녀사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자기의 평생소원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될것이였다.
《원래 조각이라고 하면 그가 가지고있는 기념비적성격이 첫째입니다. 다시말하여 특출한 공적이나 위대한 업적을 쌓은 민족적영웅을 돌이나 동으로 새겨 그의 공적이나 업적이 쌓인 곳에 세움으로써 력사에 길이 남기는것이지요.》
《옳습니다. 로씨야사람들도 북방령토를 개척하여 강대한 로씨야제국을 형성한 뾰뜨르1세의 동상을 뻬쩨르부르그에 세우지 않았습니까.》
문석오의 말에 림춘추가 적극적으로 주해를 달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자기의 주인공과 함께 력사에 남는것이 조각가라고 할수 있지요. 난 지금껏 그런 주인공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 민족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고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쪽발이들밑에서도 이 붓과 조각칼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난 지금에야 민족사와 함께 만대에 길이 전해야 할 업적을 가진 자기의 주인공을 찾았습니다. 녀사님!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을 만년모습으로 이 땅에 세우고싶습니다.》
《문선생!》
《정숙동지, 문선생은 벌써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현지에도 갔었구 또 백두산에도 올라갔다왔습니다.》
《그러니 두분사이에는 이미 토론이 다되여있는 상태로군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장군님을 모시고 백두산에서 함께 싸운 동지들이 그 이야길 들으면 아마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할거예요. 하지만 장군님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슬며시 눈굽을 훔치시며 이렇게 혼자소리처럼 뇌이시였다.
림춘추가 조급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정숙동지에게 말씀드리는게 아닙니까?! 사실말이지 한 인간의 소원을 풀어주지 못한다는건, 그것도 해방된 이 땅에서 풀어주지 못한다는건 말이 안되지요. 또 그걸 어떻게 문선생 하나만의 소원이라고 하겠습니까. 난 그것이 우리 민족모두의 한결같은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림동지가 문선생에게서 단단히 침을 맞은 모양이군요. 오히려 누가 조각가인지 분간하질 못하겠어요.》
《아닙니다, 녀사님! 나에게 이런 엄청난 결심을 내리게 해준건 바로 이 림동지입니다.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한 력사와 업적을 책으로 남기려는 림동지의 그 소원과 지향이 나를 고무해주었고 떠밀어주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뜨거운것을 삼키시였다.
문석오의 설명이 아닌들 어찌 그이께서 오랜 전우이며 동지인 림춘추의 그 마음을 모르시랴.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으시였다. 자신을 내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자그마한 그 무엇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는 장군님의 고매한 성품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계셨기때문이였다.
시인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이나 리찬이 가사를 쓴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그때문에 얼마나 진통을 겪었던가.
아마 김책, 림춘추를 비롯한 투사들 아니, 이 나라의 모든 인민이 그 서사시와 노래를 자신들의것으로 옹호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것이다.
놀라운 파급력을 가진 문학예술의 힘이 그 작품들의 운명을 구원한셈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상은… 그것은 지면이나 노래를 통해 실현되는 작품이 아니다. 물질적인 실체이며 고정된 장소를 필요로 하는 직관적인것이다. 장군님께서 승인하시지 않는 한 그것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였다.
《장군님께선… 언제 가도 그걸 승인하지 않으실겁니다. 그러니 저로서도 어떻게 도울길이 없군요.》
《아니?! 녀사님…》
문석오의 간절한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
문석오의 화실을 나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림춘추와 함께 버드나무가지들이 휘늘어진 대동강변길을 천천히 걷고계시였다.
《림선생이 왜 그리도 문석오선생일에 왼심을 쓰는가 했더니 결국 두분의 그 소원에서의 공통성때문이였군요.》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림춘추와 둘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를 《림선생》이라고 깍듯이 불러주시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멀리 팔도구 부암동의 야학방시절… 림춘추가 대성중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에서 야학선생을 할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로 그 야학에서 공부를 하시였던것이다.
《정숙동지도 만나보셨지만 그는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을뿐아니라 사람이 진국입니다. 가식을 모르는 사람이지요.》
《창작가가 아닙니까. 깨끗한 량심과 넋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수야 없지요. 우리 장군님곁에 그런 진실한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할텐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실가지들이 어깨를 스치는 무성한 버드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러시고는 한가닥의 실가지를 잡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아직 한때 공산주의운동을 했다는 일부 사람들은 나라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투쟁경력〉을 내세우는데만 신경을 쓰고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예요.》
《그래서 저도 문석오선생이 장군님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는것을 적극 지지하는겁니다. 그런데 정숙동지가 그렇게 나올줄은… 아마 이 림춘추가 이렇게 앉아뭉개고있는걸 안다면 저세상에서 대통령감이랑 위증민동지랑 날 원망할겁니다. 아니, 의리도 없는 자식이라고 저주할겁니다.》
《림선생도 우리 장군님의 마음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 장군님의 뜻을 어길수 없어요.》
림춘추는 손을 뻗쳐 버드나무가지들을 줌안에 움켜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숙동지와는 이거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차라리 김책동지와 토론하는게 낫겠습니다, 에이…》
그의 볼부은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아니, 왜 웃는겁니까? 챠, 이런…》
줌안에서 빠져나온 한가닥의 실가지가 얼굴을 살짝 치는통에 그는 한걸음 물러섰다.
《아니예요. 그것때문에 웃는게 아닙니다. 림선생이 장군님으로부터 되게 비판을 받고 혼쭐이 났던 일이 생각나서 그럽니다.》
《예?》
《왜? 생각이 안 나세요? 장군님께서 북만원정에서 입으신 촉한후유증때문에 치료를 받고계실 때의 그 일 말이예요.》
생각이 났다. 비록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그 일을 림춘추가 어찌 잊을수 있으랴.…
어느날 그는 치료를 위해 사령관동지의 손맥을 짚어보면서 손금이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장금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그는 유격대원들에게 사령관동지의 손금을 보니 하늘이 낸 위인이 틀림없다고 감탄에 차서 말해주었다. 그 말은 삽시에 온 부대에 쫙 퍼졌다. 모두들 사령관동지의 손금을 보고싶어하였다. 어떤 유격대원들은 나어린 전령병에게 기어이 손금을 보고오라고 부추겼다. 하루는 전령병이 사령관동지앞에 나타나 별스레 갑자르더니 손금을 보여줄수 없는가고 청을 드렸다. 갑자기 웬 도깨비같은 소리냐고 하시자 림춘추가 누군가에게 사령관동지의 오른손금이 장금인걸 보니 분명 하늘이 낸 인물같다고 하여 대원들이 정말인가를 확인해보라고 하기때문이라는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시고 놀랍기도 하시였다.
더우기 부대안에 림춘추가 그런 맹랑한 소리를 퍼뜨리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용서할수 없으시였다. 당장 림춘추가 불리워왔고 장군님의 노하신 추궁이 그의 머리우에 떨어졌다.
《동무는 도대체 뭐요? 누굴 어떻게 만들자는거요?》
《사령관동지,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안이 벙벙해진 림춘추는 조심스레 장군님께 물었다.
《동무는 그래도 신식공부까지 했다는 사람이 손금타령을 하고다니니 그게 제정신이요? 안되겠소. 동문 당일군은 고사하고 혁명군대오에 있을 초보적인 자격도 없소!》
줄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엄한 추궁에 몸둘바를 몰라하며 쩔쩔매던 림춘추는 사령관동지께서 그 장금설때문에 노하셨다는걸 알고서야 얼굴이 벌거우리해서 고개를 숙이였다. 그 모양이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는것인줄 알았는데 웬걸, 다음순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욱 가관이였다.
《그 장금이야기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의 신상이자 조선민족의 운명인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싸우는 우리가 그것을 론하는것이 왜 잘못된 일로 된단 말입니까. 그것은 우리 조선민족의 신념문제입니다. 사령관동지의 장금이야기를 한것때문에 제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무슨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때문에 2천만동포가 저를 처벌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기가 막히시였다. 언제 봐야 자신께서 비판을 하시면 변명 한마디 없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반성을 하던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민족이요, 2천만이요 하고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것인가.
그날 사령관동지께서는 끝내 그의 왕고집을 꺾지 못하시고 그만 손을 내저으시며 웃고마시였다.
사실 림춘추 역시 그 장금이야기가 과학이 아니라는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장군님은 하늘이 낸 위인이시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간직하고있던 그에게 있어서 장군님의 그 모든것이 한없이 성스럽고 귀중하였던것이다.…
《허허… 그때 일은 왜 갑자기?…》
《장군님께서도 손을 내저으셨던 림선생의 그 왕고집은 오늘도 여전하군요.》
《아무렴 이 림춘추의 왕고집이야 누가 꺾겠습니까. 그리구 그 문석오의 고집두 이 림춘추 못지 않다는것만은 잘 알아두시우, 하하…》
김정숙동지께서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주의를 끌만큼 소리내여 웃는 그의 팔굽을 조용히 잡아당기시였다.
림춘추는 다소 목소리를 죽이며 말머리를 돌렸다.
《참, 문선생을 래일부터 순천채석장에 보내려고 합니다.》
《문선생을 채석장에요?》
《예. 그 선생이 채석장에서 조각재료들을 채취해오군 했다는데 알고보니 조각뿐아니라 돌가공계통에도 귀신한가지입니다.》
《문선생의 창작에 지장이 있지 않을가요?》
《이건 누가 시킨게 아니라 자기가 자진한겁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우려하시자 림춘추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실은 장군님께서 혁명학원교사건설에 쓸 석재문제를 걱정하시는걸 보고 무심결에 그에게 어디 가까운데서 좋은 석재가 나올만 한데가 없는가 물어봤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에 쓸거냐고 되묻더군요.
내 그래서 궁전건설에 쓸거라고 한마디 했는데 문선생은 아마 앞으로 서게 될 정부청사건설에 쓰는것으로 생각했는지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자기가 직접 맡아야 한다는거지요.》
《원, 림선생도… 그런 일이야 정확히 말해주어야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으시였다.
《제 그래서 학원교사건축에 쓸거라고 다시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좀 어리둥절해하는것 같습디다. 그로서야 인차 납득이 안될수 있지요. 하지만 워낙 마음이 결곡한 사람이라 장군님께서 걱정하신다면 그냥 자기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거지요. 창작가에게는 현실체험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꺼들이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됐군요. 그분이 이번 과정에 장군님의 심중을 체험할수 있다면…》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림춘추를 바라보시였다.
《정말이지 걱정됩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가지, 백가지 일들을 장군님께서 다 근심하지 않으면 안되니… 내 책임이 크지요. 찾아낸 유자녀들보다 아직 찾지 못한 유자녀들이 셀수없이 더 많으니… 며칠전에 장군님께선 동북지방에 있는 그 애들 문제로 또 걱정하시더군요.》
림춘추의 그 밝던 얼굴에 괴로운 빛이 서서히 피여올랐다.
김정숙동지의 눈에도 상심의 빛이 짙게 어리였다.
《그 애들 걱정으로 장군님께서는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군 해요. 어제 밤에는 문득 〈연길유격대의 박길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마저 희생되였으니 지금 고아가 되여 밥을 빌어먹으며 다니지나 않는지…〉하고 혼자소리처럼 외우시더군요.》
《박길의 아들이요?…》
림춘추의 입에서 신음소리 비슷한것이 새여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박길은 김정숙동지와는 물론 그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람이였다.
박길은 연길유격대정치위원 겸 삼도만유격구의 군사부장이였다.
그때 김정숙동지와 림춘추는 다같이 바로 그 삼도만유격구에 있었던것이다.
1934년 9월경 박길은 《민생단》으로 몰려 체포되였는데 극단한 민족배타주의자들은 그를 비롯한 《민생단》혐의자들에게 식사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감방의 뒤창문으로 언감자가루로 만든 줴기밥을 몰래 넣어주군 하시였다. 어느날 왜놈《토벌》대가 달려들었을 때에는 끓는 죽가마까지 머리에 이고 산으로 올라가 그들에게 식사를 보장해주시였다. 그러나 민족배타주의자들과 그에 추종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그를 끝내 《민생단》으로 몰아 무참하게 학살하고말았다.…
어제날의 옛 정치위원의 이름을 되새겨보는 림춘추의 가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가슴아픔과 괴로운 추억이 기슭을 치는 파도마냥 세차게 밀려들었다. 뿐만아니라 미처 그의 자녀들 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가슴을 쳤다.
지금 장군님의 귀전에는 이 나라 삼천리강토뿐 아닌 이국땅에 흩어진 유명무명의 혁명가유자녀들의 눈물젖은 소리가 울리고있다. 그 울부짖음속에는 대륙너머 까자흐스딴에서 울리는 내 아들 영일이의 목소리도 섞여있을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박길동지에게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직 생존해계시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 아들은 아마 할머니손에서 자라기 쉽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림춘추는 끝내 머리를 떨구었다. 저렇듯 범상하게 말씀하시지만 속으로야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으랴, 멀었어! 나는 아직 너무도 멀었어!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동지의 그 동지애의 세계, 그 사랑의 품을 리해하자면 내 마음은 너무도 비좁고 미적지근해!…
림춘추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