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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해가 퍼그나 길어졌다. 벌써 저녁무렵이 가까왔으나 해는 배포유하게 서산에 걸터앉아 세상을 굽어보고있다. 그러나 때는 때인지라 중앙보안간부학교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대안리의 농가들에서는 저녁밥짓는 연기가 서로 다투기라도 하듯 키돋움을 하며 솟고있었다.

《장군님, 차라리 저녁식사를 하시고 떠나지 않겠습니까? 오진우가 장군님의 식성을 잘 아는 손종준이까지 동원시켜 특식을 준비한것 같은데.》

김일성동지께서 청사를 나서시여 승용차가 서있는 운동장쪽으로 걸음을 내짚으시자 오진우의 추김을 받은 안길이 비위좋게 청을 드렸다. 뒤에 서있던 군사부교장 오진우와 교무부장 박성철 그리고 손종준은 그저 씨물씨물 웃고있었다. 손종준은 원래 해방직후부터 장군님의 책임부관을 해왔는데 중앙보안간부학교진영을 강화하느라 교원으로 파견되였었다. 안길이 식성을 운운하며 그를 꺼든것은 아마 이런 리유에서일것이다.

《하긴 내 구미를 잘 아는거야 종준동무지.》

김일성동지께서 헌헌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자 오진우는 기다렸던듯 입을 열었다.

《장군님, 저녁시간인데 식사를 하고 떠나십시오. 우리한테 오셨다가 식사도 한끼 안하고 가시면 우리가 어떻게 저녁밥을 먹겠습니까?》

《왜? 오늘이야 욕을 잔뜩 먹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텐데.》

빨찌산 옛 대원들의 그 마음을 모른바 아니였지만 그이께서는 짐짓 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오늘 중앙보안간부학교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비판하신 문제를 다시금 각성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학교에서는 군사교육실무에만 빠져 학생들의 정치적의식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소홀히 하고있었던것이다. 건국실을 꾸려는 놓았지만 벽면마다에는 외국명인들의 초상을 그린 그림들만 주런이 걸려있었다. 며칠전 당사업지도를 내려왔던 허가이조직부장이 가져왔다고 한다.

그이께서는 어째서 우리 나라 명인들은 한사람도 없는가, 우리 나라에도 을지문덕, 강감찬, 리순신과 같은 애국명장들이 있는데 이런 명장들은 하나도 그려붙이지 않고 외국사람만 그려붙여서야 되겠는가고 그들을 엄하게 질책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인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잘 알려주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보내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식사를 하고 떠나십시오.》

박성철의 말이였다.

《안길동무, 좀 보오. 신통히도 빨찌산의 질군들만 모였구만. 어쩌면 중앙보안간부학교에 하나같은 사람들만 골라보냈소?》

《아니, 내가 보냈습니까? 이들이야 다 장군님께서 직접 임명하여 보내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랬던가?!… 하하…》

김일성동지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들에게로 한걸음 다가가시였다.

《내가 왜 동무들의 그 심정을 모르겠소. 나도 그 시절처럼 동무들과 식사도 같이하고 잠도 함께 자고싶소.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구만. 정말 시간이 모자라오.》

이것은 그이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전우들과 한자리에 모여앉아 식사도 같이 나누고 그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빨찌산의 사령관시절처럼 쉬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새 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은 그 시절의 소박한 행복마저 누릴수 없게 만들었다. 국가를 세우고 정규군을 창건하는 일뿐아니라 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짓고 농사를 짓는 모든 일에조차 자신의 발길이 닿고 손길이 닿아야 했다. 며칠전에도 개천군 중흥관개공사장과 강동군 마탄관개공사장에 나가 공사를 모내기전에 끝낼 방도와 대책을 세워주고 돌아오시였다.

한켠으로는 황해제철소 3호용광로복구사업이 어떻게 진척돼가고있는지 자꾸만 신경이 쓰이시였다.

어디 그뿐인가. 학원림시교사를 꾸리는 문제와 새 교사를 세우는 문제만도 세부분야에 걸쳐 일일이 관심하고 대책해주셔야 했다. 북조선인민위원회 도시경영국에 만경대에 세울 학원교사설계를 맡겨야 했고 평안남도인민위원회에 지시한 학원건설사업소조직문제도 알아보셔야 했으며 교육국에서 학원교원선발사업과 교육강령작성사업, 교구비품준비사업을 옳게 내밀도록 돌보셔야 했다.

닷새전에도 김종항서기에게 이제 학원에 입학하게 될 아이들에게 입힐 내의들과 침구들을 만들 포목을 마련하도록 지시를 주시였고 얼마전에는 학원교사에 필요한 고급건재류들을 들여오도록 직접 조직사업을 하시였다.

《허, 이거 아무래도 오늘 또 군고구마로 저녁을 굼때야 할가보군.》

그이의 미안해하는 그 심정을 리해한 안길이 분위기를 눙치려고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말하는 군고구마소리가 무엇을 념두에 둔것인지 잘 아시였다.

평양학원에서 첫 수업식을 하던 날 시간이 바빠 식사를 못하시고 떠났었는데 가다보니 길가에서 파는 군고구마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그래서 최용진과 하나씩 사서 드시며 이제 길가에서 군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에우던 일을 옛말처럼 이야기할 때가 올것이라고 말씀해주신적이 있었다. 안길을 비롯한 이들모두가 그때 최용진에게서 그 말을 듣고 가슴을 쳤다고 한다.

《장군님!》

오진우가 쇠덩이를 삼키듯 울대를 꿀떡이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진우, 성철이, 동무들에게도 오늘 그렇게 말해주고싶구만. 우리가 오늘의 고생을 옛말처럼 이야기할 때가 꼭 올거라고 말이요.》

승용차는 저녁밥짓는 연기가 안개처럼 짙게 드리운 길가를 따라 중앙보안간부학교를 벗어났다.

바래주던 전우들의 모습이 멀리 사라져 더는 보이지 않을무렵에 안길이 정색하여 말씀드렸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학생 차영진에게 임무를 주었습니다. 무산에 가서 김춘희와 그의 동생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차영진이 지난해에 정숙동무의 부탁으로 그곳에 갔댔으므로 아마 인차 그들을 찾을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시며 추연한 눈길로 차창밖을 바라보시였다. 새로운 생각이 그이의 심중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김현철, 한번도 만나본적도 없고 뜻을 같이하는 길에서 함께 싸웠다고도 말할수 없는 사람, 스러져가는 독립군일망정 적들에게 철알 한알이라도 날리는것이 나라를 독립하는 길이라며 손에 총을 잡았던 사람이였다. 그는 독립군의 마지막부대의 지휘관인 최윤구까지 조선인민혁명군에 합류할 때에도 공산주의자들과의 련합을 반대하였다. 안길이 그들에게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아래 함께 싸우자고 파견원을 보냈을 때 김현철은 두마디안팎에 파견원을 가두어넣었다고 한다. 파견원은 다시 살아돌아오지 못하였다.…

한때 동만일대를 들썩하게 한 이 사건을 김일성동지께서도 아프게 새겨두시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김정숙동지로부터 김현철의 자녀들이 찾아왔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오름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장군님, 그들도 독립을 하겠다고 총을 들었을진대 어쩌면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사람에게 총부리를 들이댈수 있단 말입니까?》

그 소식을 가지고 왔던 안길부대의 통신원은 김일성동지앞에서 가슴을 탕탕 두드리였다. 그러면서 당장에 그 부대를 소탕해버리고말겠다는 안길의 의견을 전하였다. 그때 왜 자신께서 대번에 반대를 하셨던가.

《장군님, 내 이놈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는데 설마 이럴줄은… 독립군의 망신을 마지막날까지 시킨 이놈을 어쩌면 좋습니까. 범두 잡아놓구보면 불쌍하다는데 도대체 이놈은, 이놈은…》 하면서 땅을 치던 최윤구는 총까지 빼들었지만 김현철은 그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새기고 제가 지나간 일이지만 다시 료해해보았습니다. 그 파견원을 죽인것은 김현철이 아니였습니다. 적들과 내통한 변절자의 정보를 받고 우리 파견원을 사로잡기 위하여 왜놈들이 불의에 습격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그 습격에서 파견원도 김현철자신도 부대를 구출하기 위한 전투를 지휘하다가 희생되였습니다.》

이것이 후날 인민혁명군대오에 들어선 그 부대 사람들을 통해 최근에 안길이 알아낸 사실이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만일 왜놈들의 불의적인 습격만 아니였더라면 김현철도 끝내는 파견원의 주장을 따랐을것이라는것이였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프신 가슴을 조용히 달래시였다.

만일 김현철이 제때에 우리의 말을 따랐더라면 그렇듯 가슴아프고 무익한 희생도 없었을것이 아닌가. 남의 말을 선뜻 믿는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우기 그와 같은 인생행로를 걸어온 사람임에야… 그래서 진리란 알고보면 단순한것이지만 그것을 깨닫는데는 수천갈래의 길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도 마지막순간에는 민족재생의 참다운 길을 깨달았을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게 믿고싶으시였다. 아니, 그렇게 확신하시였다. 그처럼 허위를 싫어하고 진실을 갈망하는 인간은, 나라를 사랑하고 원쑤를 증오하는 인간은 달리는 될수 없는것이다.

인간이 한번 잘못 디딘 걸음으로 하여 자기자신은 물론 가깝게는 자손들과 친지들, 멀게는 력사와 후손들앞에 얼마만한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그는 깨달았을것이다.

그의 자식들의 순결한 마음, 아버지로 하여 번민과 죄의식에 잠겨있는 그들의 결곡한 마음만 보아도 십분 믿어지고 또 믿어지시였다. 그들 부모와 자식들의 그 소중한 마음을 아껴주고싶으시였다, 지켜주고싶으시였다.

그리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군당과 군애국투사후원회에 보내는 친서를 전하며 김현철에 대한 우리 당의 평가를 잘 알려주라고 그들남매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차영진을 무산에 보내도록 안길에게 과업을 주시였던것이다.

《안길동무에게 일전에도 말하였지만 우린 그 어떤 주의에 따라서 사람을 갈라보아서는 안되오. 애국심은 주의를 초월하는 고상하고 신성한것이요. 김현철도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한 반일투쟁에 한몸바친 애국자임을 우리는 감정을 섞지 말고 인정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난 그의 아들도 혁명학원에서 키울 결심이요. 그래, 안길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사실 전 얼마전에 정숙동무에게서 그 이야길 들으면서도 그 자식들의 운명사에 대해서 범상하게, 지어 응당한것으로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란 사람이야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안길은 나직하나 괴로움이 비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김현철이 잘못 내디뎠던 길, 뒤늦게나마 바로잡으려고 했던 그 길을 그의 자식들이 이어가게 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영진에게 꼭 장군님의 그 넓으신 도량과 민족애를 잘 알려주라고 다시한번 당부하렵니다. 사실 제가 직접 가야 할 일인데…》

《동무야 지금 어디 몸 뺄 시간이 있는 사람이요?! 정규군창설사업이 동무의 온넋을 칭칭 비끄러매고있는데… 뭐니뭐니해도 난 동무의 건강상태가 걱정이요.》

그이께서는 더 말씀을 잇지 않으시였다.

눈에 피발이 서고 입술이 튼 안길의 수척한 얼굴이 아프게 안겨왔던것이다. 안해마저 왜놈들에게 받은 고문의 후과로 중병을 얻어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이니 고충이 클것이다. 워낙 락천적인 사람이니 좀처럼 우는소릴 할줄 모르는 그였지만 어찌 육신이 힘들지 않고 마음고생이 크지 않으랴.

얼른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오늘 리제순동무의 부인이 날 찾아오오. 아마 지금쯤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있을거요.》

《그렇습니까? 한사람 또 찾으셨군요. 무던히도 마음쓰시더니…》

《림춘추동무가 애를 많이 썼지. 다행히도 리제순의 친척벌되는 사람을 만나 행처를 알게 되였는데 얼마전에 동북에서 나와 함북도 길주군당 합숙에서 일하고있었다누만.》

《예, 춘추동무가 수골 합니다. 평남도당사업도 볼래, 문예인들과의 사업도 할래, 유자녀들 문제까지 맡아안고 뛰여다니는걸 보면 정말이지…》

안길의 얼굴빛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여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아들 영일이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는데 내가 미안스러워하면 〈소식을 아는 아들이야 걱정할게 있습니까. 아직 생사여부조차 모르는 전우들의 자식들이 수두룩한데 그들을 다 찾아내기 전에는 차마 제 자식을 먼저 만나질 못하겠습니다.〉하더군. 얼마전엔 최경화의 아들이랑 전우천의 아들이랑 그리고 김득현의 아들도 찾아냈소.》

《김득현이라면 소덕수의 그 꼽새령감이 아닙니까?》

《그렇소. 백두산밀영을 꾸릴 때 김주현동무랑 정숙동무랑 꼽새령감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한번은 정숙동무가 다 죽게 된걸 그 꼽새령감내외가 극진히 간호하여 살려냈다오. 그들이 아니였다면 그때 살아서 백두산밀영으로 돌아올수 없었을거라고 지금도 정숙동문 외우군 하지.》

《나도 그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잘 싸우다가 1942년초에 사망하였다는 이야길 정숙동무에게서 들었습니다. 야, 모두 그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길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시며 추연한 눈빛으로 차창밖을 바라보시였다.

《공영이, 리광이, 박길이, 권영벽이, 허형식이, 오중화, 오중흡이… 정말 헤아릴수없이 많은 전우들을 우린 잃었지. 아마 그들이 살아서 한몫씩 맡아주었더라면 내나 안길동무나 김책동무의 일이 지금보다는 한결 헐해졌을거요.》

안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먼저 간 전우들을 그리도 잊지 못해하시는 그이의 아픈 심정이 가슴에 미쳐왔던것이다.

《장군님, 면목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장군님의 사업을 잘 받들어드려야 할텐데…》

이 말은 자신의 생이 자신의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고 사는 안길의 진심이였다. 그는 자기의 삶이 희생된 동지들의 뜻과 넋을 이어가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여기고있었다.

김일성장군님의 사상과 령도로 인민이 주인된 새 나라를 세우는것,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총대로 옹위할 혁명무력을 건설하는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전우들의 뜻이였고 넋이였을진대 자기의 한몸을 다 바쳐 장군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는것이 다름아닌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다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겠지만 더우기 이 안길이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설사 전우들의 자식들 문제로 하여 이 가슴에 죄스러움이 쓰리고 아프게 쌓일지라도 아직은 큰것을 위해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 장군님을, 혁명을 보위해야 한다.…

안길은 이렇게 자신을 다시금 다잡으며 그이를 우러렀다.

《아니, 내 말은 그래서가 아니요. 어쩐지 동무를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거던. 생사를 모르던 가족을 겨우 찾아 데려왔는데 아주머닌 중병으로 앓고있지. 듣자니 아직 병원에 면회 한번 가질 못했다면서. 엊그제 정숙동무가 병원에 갔다와서 섭섭한 소릴 하더군. 정숙동무 마음이 그러할진대 아주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소. 그러지 마오. 예로부터 정으로 살고 정으로 죽는것이 인간이라고 하질 않았소. 혁명도 마찬가지요. 그 정이 없이는 혁명도 바로할수 없는거요.》

《…》

승용차는 이미 평양시내에 들어섰다.

저녁어둠이 전조등빛에 헤갈기우며 이리저리 흩어졌다가는 다시금 지꿎게 달라붙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어스름속에 한동안 눈길을 박고계시다가 운전사의 등을 가볍게 다치시였다.

《방동무, 차를 먼저 병원에 대오.》

《알았습니다.》

운전사가 그이의 말씀대로 차를 병원쪽으로 꺾으며 대답올렸다.

《정숙동무가 꾸려준걸 싣고있겠지?》

《예.》

차가 병원앞에 멈춰서자 운전사가 승용차짐칸에서 불룩하게 싼 꾸레미를 꺼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받아 벙벙해 서있는 안길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이걸 들고 아주머니한테 들어가보오. 병치료엔 약 절반, 마음 절반이라질 않소.》

안길은 왜서인지 얼굴을 비스듬히 옆으로 돌렸다.

《장군님께서 이런 작은 일까지 걱정하시게 해서…》

《안길동무가 아직도 내 말뜻을 다 모른것 같다?!

이런걸 작은 일로만 보는 동무의 그 생각이 내 마음에 들지 않누만. 좌우간 오늘 아주머니가 잠들기 전에는 떠날 생각을 마오. 나도 같이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리제순동무의 부인이 기다리고있고 또 내가 들어가면 오히려 가정적분위기에 방해가 될수 있지.》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안길의 등을 떠미시였다.

《자, 어서!》

《장군님께서 떠나시는걸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안길이 미안스러운듯 그이를 우러르며 하는 말이였다.

《뭘 그러오. 동무가 먼저 들어가야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설게 아니요. 어서 들어가오.》

그이의 거듭되는 권고를 받고서야 안길은 천천히 돌아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뒤모습이 불빛이 환한 병원정문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윽토록 서서 바라보시다가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

그날 저녁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제순의 안해 최채련녀성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저녁상이 들어오자 한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시였다.

《장군님, 제 어찌 감히…》

최채련이 자꾸만 자리를 옮기겠다면서 송구스러워하였다.

《오늘만은 리제순동무를 대신하여 나와 함께 수저를 듭시다.》

그를 억지다싶이 눌러앉히신 그이께서는 이렇게 음식상에 마주앉으니 항일무장투쟁시기 장백현 신흥촌에 들렸을 때 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고 하시며 그때 아주머니가 해준 국수가 참 별맛이였다고, 우리 동무들은 지금도 그때 일을 자주 이야기하군 한다고 추억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리제순동무는 지하공작도 잘하였고 감옥에서도 잘 싸웠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조금만 더 살아있었더라면 조국해방의 날을 맞이할수 있었는데 해방을 앞두고 악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희생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에게 술잔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술병을 기울여 잔에 찰찰 넘치게 술을 부으시였다.

《아주머니, 어찌 한잔술에 그 모든 슬픔이 가셔질수 있으랴만 내가 주는 잔이니 먼저 받으십시오. 제순동무를 대신해서 어서 이 잔을…》

그이의 음성이 갈려왔다. 그이의 손에 들린 작은 술잔에서 맑은것이 위태롭게 찰랑거렸다.

《장군님, 이러시면, 이러시면… 흑…》

최채련의 어깨가 세차게 흔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 그러는 그를 진정시키며 어서 잔을 받으라고 다정히 권하시였다.

최채련은 그 뜨거운것을 삼켰다. 전사에 대한 못 잊을 그리움이 차있는 그 술잔, 모든것을 대신하여 따뜻이 품어주고 보살펴줄 무한한 사랑이 가득차있는 그 술잔, 설음을 박차고 새 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그의 심장속에 심어주시는 혁명의 불씨가 담겨져있는 그 술잔을 오래도록 입술에서 떼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인제야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습니다. 아주머니, 금년에 혁명학원을 개원하려 하는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여 공부시킵시다. 아이들을 공부시켜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잇도록 하여야 합니다.》

최채련은 두손으로 흥분된 가슴을 모아잡았다.

《저… 그런데 계집애들이 돼서…》

《처녀애들이면 어째서요. 어제날의 신흥촌부녀회장의 머리속에 그런 남존녀비사상이 남아있다는게 놀랍군요. 아주머니, 부모의 뜻을 잇는데서 우리가 무슨 아들이냐, 딸이냐를 가르겠습니까.》

그이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해주에 해방직후 황해도당 선전부장으로 사업하다가 반동놈들에게 피살된 민덕원의 유가족이 살고있습니다. 아까운 사람이였는데… 그에게도 딸만 셋이 있는데 지난해 그곳에 갔을 때 맏딸 민순희가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나서 하는 말이 아버지원쑤를 갚을수 있게 총을 달라는것이였습니다.》

그이의 얼굴에는 련련한 회억의 빛이 그윽히 어리였다. 그 애의 모습을 그려보시듯 멀리 별들이 반짝이는 남쪽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열살도 안 잡힌 그 어린것이 말입니다. 보시오, 우리 딸자식들의 정신적각오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난 그 애도 아버지의 원쑤를 갚을수 있게 혁명학원에 데려다가 훌륭한 녀성혁명가로 키우자는겁니다. 하물며 옥화와 정화가 아버지의 뒤를 잇도록 키우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그이의 목소리에는 곡진한 정이 가득 넘치였다. 최채련은 슬며시 눈굽을 찍고나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오늘 우리에게는 할일이 많습니다. 그가운데서도 혁명의 미래인 아이들을 잘 키워 그들이 살기 좋은 내 조국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하는것이 제일 어렵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에는 내나 아주머니나 우리들이 제순동무랑 못다한 일을 대신할수 있지만 래일에는 누가 그 일을 대신하겠습니까.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는 절대로 소홀히 할수 없는겁니다. 내 생각에는 아주머니도 학원에 가서 일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 학원을 세우면 학원에 할일이 많습니다.》

밤은 깊어갔다.

방안에서는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있는 최채련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하긴 이밤 어떻게 그가 쉬이 잠들수 있으랴, 아니, 그보다도 정숙동무가 더 잠들수 없을것이다, 생사여부를 알수 없는 유가족들 생각으로 그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 다름아닌 정숙동무가 아니였던가, 오늘 이렇게 리제순의 유가족을 찾았으니 아마 이밤이 지새도록 기쁜 마음을 나누고 또 나누어도 끝이 없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불빛이 쏟아져나오는 창문가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정원의 느티나무쪽으로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별많은 밤하늘가를 올려다보시였다. 마치 느티나무가지우에 내려앉은듯싶은 한무리의 별들이 가까이에서 빛을 뿌린다. 그것들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쉬임없이 반짝거리며 즐거웁게 웃고있다.

하지만… 눈여겨 바라보니 별들의 세계도 다 한결같은것은 아니다. 저 멀리로는 겨우 알릴듯말듯 한 뭇별들의 가냘픈 빛도 보인다. 그것들은 외롭고 쓸쓸하고 추위에 떨고있는듯싶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오신다. 먼곳의 저 뭇별들처럼 사방 흩어져 불행속에 헤매고있을 동북땅의 유자녀들 생각이 자꾸만 밟혀오신다.

국내에 있는 유자녀들은 각급 애국투사후원회들의 노력과 학원창립준비위원회의 공보들이 실린 여러차례의 신문들을 보고 이렇게저렇게 불쑥불쑥 찾아오고있는데 저 동북땅에서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하긴 전란에 휩싸인 그곳에서 어떻게 조국땅에 학원이 선다는걸 알수 있으랴. 그렇다고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수는 없지 않는가. 결정적으로 그들을 찾으러 동북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

누구를 보낼것인가? 그 누구를 보내야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찾아올수 있겠는가? 그러자면 동북에서 항일전의 첫시기부터 싸우다 희생된 혁명가들도 다 알고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최현? 안길? 림춘추?… 그들이라면 동북땅에 흩어져있는 유자녀들을 다 찾아올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중 어느 누구를 지금의 사업에서 떼여낼수 있단 말인가? !

아니, 오늘의 현실만을 생각한다면 언제 가도 그 애들을 찾아올수 없다,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그 애들을 찾아와야 한다.…

왜서인지 림춘추의 듬직한 얼굴이 언뜻 떠오르시였다.

(그라면, 그라면 해낼수 있을거야. 헐치 않은 일이지. 춘추동무, 동문 내 심정을 잘 알거요, 내 심정을…)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금 희미한 별빛이 가물거리는 먼 밤하늘가에 눈길을 주시였다.

외롭고 쓸쓸해보이고 추위에 떨고있는듯싶은 뭇별들의 모습이 또다시 눈에 밟혀왔다. 언제면 저들도 밝은 빛을 뿌리게 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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