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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명백히 대답할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은 분명 행복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비록 그것이 그 어떤 육체적고생이나 고통, 직업적과부담을 안고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추억할수 있는 생의 자욱과 자기가 가고있고 또 가야만 하는 뚜렷한 생의 의지가 비껴있는것이다.

하다면 춘희,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어제날의 꿈많은 문학소녀?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모으던 처녀교원?…

그러나 그것은 봄날의 한갖 아지랑이와도 같은것이였다. 운명은 춘희에게서 추억, 긍지, 희망을 깡그리 앗아가버렸다.

얄궂은것은 그 장본인이 다름아닌 아버지라는것이다.

그의 아버지 김현철은 룡정에서 《향토물산》이라는 간판을 달고 북부조선일대의 토산물들을 시가지의 식당, 상점들에 조달해주는 일종의 상업가였다. 그러나 사실은 일찌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왜놈들에게 희생된 부친의 뜻을 이어 무기와 식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들을 구입하여 독립군에 조달하는 일을 맡아하고있었다.

물론 춘희는 철이 들어서야 사실을 알수 있었다.

상품조달과 거래때문에 늘 집을 떠나 살다싶이 하던 아버지여서 춘희의 소녀시절은 중학교 문학교원인 어머니의 문학세계속에 파묻혀 살아왔다. 한때 강경애와 같은 녀류작가를 꿈꾸던 어머니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소원을 딸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춘희는 벌써 그 시절부터 여느 애들과는 달리 문학작품의 주인공의 세계에 심취되여있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백조》를 비롯한 안데르센의 동화들과 《푸른 집의 앤》,《테스》,《제인 에어》 등 세계문학사가 남긴 녀주인공들의 운명사는 다정다감한 그의 가슴속에 지울수 없는 자욱으로 새겨졌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들이 어떻게 자기를 이겨내고 지켜내며 어떻게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고 완성해나가는가.…

언제부터인가는 그들이 단순히 책속의 그 어떤 미지의 인간들이 아니라 한집안에서 같이 살며 생활하는 더없이 친근한 모습들로 여겨졌고 나아가서는 자기자신처럼 느껴졌다.

그의 끝없는 독서열에 집안의 서고는 이미 판이 난지 오랬고 어머니는 학교도서관의 책들을 부지런히 빌려오느라 왼심을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계집애를 무슨 작가로 만들 작정이냐고 아버지가 핀잔하자 어머니는 정깊은 눈길로 춘희를 바라보며 《난 사실 춘희만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작가가 되였으면 좋겠어요. 작가! 뜻을 따지면 집을 짓는다는 말이지요. 조선사람모두가 다 훌륭한 인생의 집을 짓는다면, 또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기울어진 나라인들 어찌 다시 바로서질 않겠어요.》 하고 조용히 말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킁―》 하고 거센 코소리를 내였었다.

춘희는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주 외우던 말 《지금은 그런 공상보다도 왜놈 한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는 자기의 주장을 뜻하는것임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엔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말에 더 공감이 갔고 이 세상에 작가보다 더 큰 성인은 없어보였다.

춘희가 《예브게니 오네긴》의 녀주인공 따찌아나의 세계에 빠져들만큼 숙성한 처녀로 자랐을무렵 그의 집에는 만주에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벌린다는 라성환이란 사람이 자주 찾아왔다.

춘희에게는 어쩐지 눈빛이 사납고 표독스러워보이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의 존재를 달가와하지 않는것 같았다.

어느날 밤인가 아버지의 방에서는 끝내 두사람의 격렬한 론쟁이 벌어졌다.

《여보시오, 라선생. 난 이미 5. 30폭동이나 8. 1폭동을 보고 당신네들에게 환멸을 느낀 사람이요. 동족의 피를 팔아 독립운동의 헤게모니아를 쥐려는 당신네의 그 속심을 내 모르는줄 아오? 그런데 뭐 독립군은 지리멸렬하게 됐으니 당신네를 도우라? 설사 내 독립군의 마지막군졸이 될지언정 당신들과는 손잡지 않겠소.》

그로부터 얼마후 아버지는 점점 조여들어오는 일제경찰의 추적으로부터 로출될 위험이 조성되게 되자 마지막으로 장만해놓은 무기들을 가지고 아예 독립군으로 들어가고말았다.

놈들은 집에 달려들어 어머니를 붙잡아갔다. 어머니는 닷새만에야 들것에 실려 돌아왔는데 놈들의 악착한 만행으로 반주검이 되였다.

집을 떠나간 아버지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어머니는 몸을 회복하지 못한채 1년가까이 병상에 누워있다가 오누이만을 남겨두고 종시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그로부터 반년후, 이번에는 아버지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정녕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였다. 아버지가 사령으로 있던 독립군의 한 부대가 조선인민혁명군과의 격전끝에 전멸되였다는것이다. 그 소식은 만주의 거의 모든 관보들에 크게 실렸는데 독립군잔류부대사령과 유격대원의 시체라고 밝힌 사진까지 나있었다. 아무리 뜯어보고 또 보아도 분명 아버지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춘희는 믿지 않았다. 믿을수가 없었다.

조국을 그처럼 사랑하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한몸을 아낌없이 바치고싶어하던 아버지가 무엇때문에 왜놈들과도 아닌 조선사람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와 싸운단 말인가. 그럴수 없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략선전이다!…

《그래, 너의 아버지 부대가 유격대와 격전을 벌렸다는건 엉터리없는 소리이다. 지금의 독립군이라는건 거의다 망하구 큰 싸움을 벌릴만 한 힘도 없어. 하지만 너의 아버지가 유격대의 손에 죽은건 사실이다. 너도 알다싶이 아버진 우리의 리념을 리해하지 않았구 우리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기를 거절했다. 너의 아버진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독립군의 잔존세력을 부여잡고 끝까지 반일항전을 해보려 했지만 이미 그 뜻을 펴보기에는 운이 기울었지. 그럴 때 유격대에서는 너의 아버지에게 사람을 파견했다. 왜놈들과의 싸움을 위해 유격대에 귀속시키려고 말이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너의 아버진 그 유격대파견원을 잡아가두고 끝내는 처형해버렸다. 결국 이에 격분한 유격대가 너의 아버지 부대를 들이쳐 복수를 한거란다. 네 아버지가 비명에 잘못된건 가슴아픈 일이지만 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수가 없구나. 너도 중학공부까지 했고 이제는 다 자란 처녀나 같은데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아야 하리라고 본다.》

이것은 뜻밖에 불쑥 나타난 라성환의 말이였다.

춘희는 하늘이 무너지는듯싶었다. 땅이 꺼져버리는듯싶었다.

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죽음 그자체만으로도 가슴이 터져오는데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수 없는 그의 말은 춘희의 온넋을 졸지에 산산쪼각내고말았다.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우리 아버진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이것은 슬픔과 고통의 단말마적인 몸부림이였다.

허무해졌다. 자신이, 인생이 아니, 인간이란 그자체가 허무해졌다. 동창생들과 이웃들, 교편을 잡은 소학교 학생들의 눈길에서 그는 가혹한 경멸의 빛을 보았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적의로 짙어가는것을 느꼈다.

불행한 처녀의 넋은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안나 까레니나의 그 비극적인 선택이 리해되였다. 시시각각으로 그러한 선택의 충동이 찾아들군 했다. 그러나 아직 열살도 안된 어린 동생(춘희의 다른 하나의 손아래 남동생은 일찌기 일본군용자동차에 치워죽었다.)의 애처로운 정상이 매번 그의 결심을 멈춰세우군 했다.

그 시절의 춘희에게 있어 안깐힘을 다해 부여잡은 한가닥의 정신적위안이 있었다면 역시 그것은 문학세계의 따뜻한 빛이였다. 그것도 지금까지 다분히 빠져있던 유럽문학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처럼 방황하는 불행한 넋을 위로하는 이 나라 문인들의 소박하고도 진실한 세계였다.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들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배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우에 발자취를 냅니다

들에서 나물캐는 녀자는 방초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있는 사람은 옳은 길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해는 붉은 노을 밟습니다

봄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 나의 길은 누가 내였습니까

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였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가요

 

일찌기 1919년 3. 1운동당시《독립선언서》를 선포한 33명중의 한 사람이였던 불교승출신의 시인 만해 한룡운의 시집 《님의 침묵》속의 시《나의 길》은 춘희가 독실한 신자들의 기도처럼 아침저녁 마음속으로 읊어보는 복음으로 되였고 희망으로 되였으며 이 세상과의 유일한 대화로 되였다.

물론 그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싶어했던 님은 한룡운이 자기 시에 체현시키고저 했던 조국과 향토와 겨레, 자유와 행복을 포괄하는 그렇듯 크고 사랑스러운 모든것을 다 의미하는것은 아니였다.

아직은 소박한, 그저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진실 그리고 문학으로 대표되는(그에게 있어서) 학문의 정의로움이 님의 상징이였다.

어쨌든 처녀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님도 시인의 그 님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였다. 그러나 고생스럽고 고독스러웠던 그 시절, 님의 길을 그토록 애타게 찾고 부르며 정신적방황에 몸부림칠 때에조차 그의 님은 여전히 침묵하고있었다.

한창나이의 처녀였지만 그는 웃음을 몰랐다. 눈물도 몰랐다.

더우기 이미 만주광야에 전설처럼 퍼져있던 김일성장군님빨찌산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뼈를 저미는 죄스러움과 모순된 자신의 처지로부터 오는 슬픔으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아, 진정 산에는 들길이 있고 바다에는 배길이 있으며 하늘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는데 나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조국의 해방과 함께 그의 운명은 더욱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수치를 휘말아올렸다. 일제에 의해 쌓이고쌓였던 인민들의 원한이 그 주구들은 물론 김현철과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터져왔던것이다. 다행히도 백산이가 아직 소년이고 또 춘희가 처녀인것으로 하여 그저 교원직업을 박탈하고 내쫓기우는것으로 일이 끝났으니 망정이지 하마트면 그들은 목숨을 잃을번 하였다.

마가을락엽이 쓸쓸히 흩날리던 어느날 밤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조국땅에 들어섰다. 이국땅에서도 사무치게 그려보군 하던 조국, 비록 왜놈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부모님들이 눈물을 뿌리며 떠나왔다는 조국이였건만 철이 들수록 못 견디게 가고싶고 생각만 하여도 까닭없이 가슴울렁이여지던 신성한 그 땅… 아마도 그래서 사랑하는 조국을 련인의 형상―님으로 노래한 만해선생의 그 시들이 더더욱 춘희의 심금을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에도 소원하던 그 땅, 그것도 왜놈들이 쫓겨간 해방된 내 나라 땅에 그는 기쁨과 환희가 아니라 서러움과 불안, 죄스러움을 안고 들어섰다. 그 누가 자기들을 알아볼가봐 어둠속에서조차 눈길을 들지 못하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야 했다.

처녀의 눈에서는 지금껏 참고참았던, 마르고말랐던 눈물이 물목터진 강줄기처럼 흘러내렸다. 이렇게 조국땅에 돌아오게 되리라고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해보았으랴.

춘희는 허청허청 걸음을 내짚었다. 제 부모를 잃고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괴벽스러워졌다고 해야 할지 좀해서는 묻는 말에조차 대답하기 싫어하는 백산이가 서너발치앞에서 묵묵히 걷고있다.

하긴 사내나이 열두살이면 어찌 세상물정을 영 모른다고 하랴.

춘희가 정하고 찾아간 곳은 고향 무산이였다. 그곳에 그 무슨 밭은 친척이 있어서도 아니였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였다. 그는 자기 집안의 과거, 정확히는 아버지의 행적을 알지 못하는 이 깊은 산골에서 새 생활을 창조하고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은것이였다. 고향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하긴 신문들에서 떠들썩했으니 이곳에서라고 어찌 모를수 있으랴.

세상을 피해보자고 한 노릇이 오히려 더 험악하고 막다른 골목에 빠져든격이 되고말았다. 춘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이 하늘아래, 이 땅우에서 자기들이 머리들고 딛고 설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절감하였다. 자기와 백산이를 안아줄 그런 님의 품, 자기와 백산이가 안겨살 그런 님의 뜨락은 정녕 없었던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도 님은 여전히 침묵뿐이였다. 그것은 자기들에 대한 이 세상의 침묵이였다. 그것도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랭담과 멸시의 침묵이였다. 춘희는 더이상 님의 그 침묵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운명에 순종하리라 마음먹었다.…

그해의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날 백산이가 없어졌다. 자기를 찾지 말라는 쪽지편지만 남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하긴 그 애에게도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생각이 있을진대 어찌 자기를 바라보는 그 경멸과 증오의 눈빛을 보지 못할수 있으며 욕설과 비난을 듣지 못할수 있으랴. 어찌 서러움과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수 있으랴. 이 세상에 남은 한점 혈육인 백산을 찾아 춘희가 안 다녀본 곳이 거의 없었으나 종시 그를 찾을길이 없었다.

더이상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어린 백산이를 생각하여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 춘희는 모든것을 묵묵히 참으며 무산땅에 돌아왔다.

언제인가는 백산이가 이곳을 찾아오리라는, 어디에 있다는 소식이라도 알려오리라는 미련에서였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다음해 정월도 저물어가던 어느날 낯모를 한 청년이 백산이를 앞세우고 그를 찾아왔던것이다.

《동무가 이 백산이의 누님되는분인가요?》

어째서인지 사뭇 당황해하는 그 청년의 순진해보이는 눈빛앞에서 춘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였다.

《난 차영진이라고 합니다. 평양화물역에서 로동을 하는 사람이지요.》

어깨가 쩍 벌어지고 키가 후리후리한 청년은 굽실굽실한 앞머리카락들을 괜스레 매만지며 이렇게 자기 소개를 했다.

청년의 눈빛이며 말투며 거동을 봐서 그리고 백산이와 주고받는 무언의 눈길에 비낀 친근감을 봐서 그가 어떤 적의를 가지고 찾아오지 않았으리라는 기대감이 은연중 커졌다. 그러나 차영진이 어떻게 백산이를 알게 되고 어떻게 되여 여기까지 오게 되였는가를 듣고나서 춘희는 자기가 그에게서 그 어떤 호의를 바랐던 그자체가 어리석고 미련한것이였음을 절감하였다. 백산이가 도적이 되였었다는, 그것도 명성이 자자한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녀사의 배낭을 도적질했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앞에서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고말았다.

…저벅저벅,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을 높이 쳐든 사람이 다가왔다.

절커덕, 격발기를 잡아당기며 금시 불을 토할듯싶은 총구를 내밀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 끝내 올것이 오고야말았구나. 운명을 피할 길은 정녕 이 세상에 없구나!

그런데 왜 칼을 내리치지 않을가? 왜 총을 쏘지 않을가?

저 사람은 왜 웃고있을가? 비웃음인가? 아니면 한가닥 저 따뜻한 미소는 동정인가?…

《제 말에 무척 놀란 모양이군요. 그러지 마시오. 나도 처음에는 몇번씩이나 찾아오신 녀사님을 알아뵙지 못했는데 저 애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소년에게는 죄가 없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살래야 살수 없었던 비참한 생활의 후과이다,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멀지 않아 이 애들도 마음껏 공부하며 행복하게 살게 될 날이 꼭 온다고 하시면서 저 백산이에게 자신께서 쓰시던 만년필을 꼭 전해주라고 말씀하시였답니다. 그리고 로자까지 쥐여주시면서 꼭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백산이가 꼭 공부를 잘해 훌륭한 학생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까지 하셨지요.》

《예―에?》

《제 말은 죄다 사실입니다. 녀사님의 그 간곡한 당부가 있었기에 나도 이렇게 먼길을 떠나올 결심을 한거랍니다. 자, 백산아. 누나에게 그 만년필을 어서 보여주거라.》

《누나!…》

백산이가 만년필을 내여밀었다.

춘희는 그 만년필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비로소 눈앞의 모든 현실이 거짓이 아닌 진실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인간의 따뜻한 정, 그가 철들어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다른 사람의 정 아니, 이 세상이 처음으로 자기에게 보내주는 사랑의 정이였다. 하지만…

《우린… 이 귀중한걸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예요.》

《예?…》

차영진은 떠나갔다. 그가 춘희의 마지막말뜻을 어떻게 리해하고 떠났는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리해하고 떠났든, 그가 이곳 사람들로부터 모든 사연을 다 알고 떠났든 모르고 떠났든 그것은 춘희에게 있어서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것은 차영진이라는 존재가 춘희의 가슴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마운 사람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이 세상이 춘희에게 보내준 단 한점의 따뜻한 인정을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고스란히 전해준 생의 구원자였다.

이 세상이 춘희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해방조국이 그들을 용납할뿐더러 품어주었다는것을 전해준 생의 고무자였다. 이것으로 하여 그는 비관에 쓰러지지 않았다. 이것으로 하여 그는 새 삶을 창조할수 있게 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을사람들이 그의 진심을 리해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그들은 집안의 과거사와 춘희를 갈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글모르는 자식들이 춘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근 일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차츰차츰 마음의 안정이 깃들수록 그는 자기에게 처음으로 인간의 따뜻한 정을 안겨준 김정숙녀사님을 만나뵙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처지를 놓고볼 때 우연히 차례진 행운이였다고 할지라도 그 인정앞에, 그 믿음앞에 깊이깊이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가야 할 인생의 길을 묻고싶었다.

만약 그분께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놀라신다면 그리고 너와 같은 인간들이 갈 길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러신대도 좋았다. 녀성의 몸으로 손에 총을 잡고 십여성상 일제와의 성전을 직접 벌리신 항일전의 녀장군께 죄많은 자기 가정에 대해서, 백산이가 저질렀던 그 큰 죄에 대해서 가슴후련히 용서를 빌고 판결을 받는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을것 같았다. 고마운 녀사님께 죄를 빌자. 그분의 진정앞에 진실을 터놓고 죄를 비는것이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이고 량심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되여 춘희는 백산이를 데리고 무산을 떠나 평양으로 올라왔다. 평양에서 그가 유일하게 알수 있는 사람은 차영진밖에 없었다.

그러나 화물역에 찾아가니 차영진은 이미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입학한지 1년이 되였다는것이였다. 그래도 백산이가 방랑생활을 하며 눈에 익혀두었던 평양의 거리거리를 따라걸으며 끝내 시인 리찬의 거처를 알아냈다. 춘희가 중학시절에 리찬선생이 학교에서 초빙교사로 얼마간 강의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학소녀였던 그를 각별히 귀여워해준 인연이 있었던것이다.

옛시절의 꿈많던 문학도를 알아본 시인은 그의 간절한 소원을 헤아려주었다. 그리하여 춘희와 백산이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지 않는 평범하고 수수한 저택에 예견치 않았던 손님으로 불쑥 찾아들게 되였다.

그러나 정작 김정숙녀사께서 《자, 우리 서로 알고지내자요.》 하고 웃으며 말씀하실 때 춘희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아, 저 부드러운 미소앞에 어떻게 가정의 죄많은 인생행로를 가볍게 이야기할수 있단 말인가.

정녕 자신에 대해서 한두마디로 명백히 대답할수 있는 그런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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