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3 장
4
《〈정미소집〉에 신랑쟁이가 온다.》
갑자기 담장밖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터져올랐다. 저저마다 벅적 떠들어댄다.
《색시방 온다. 저것 봐라, 말타고 가마들고…》
한창 잔치준비를 하며 떡을 친다, 국수를 누른다, 닭을 잡는다 볶아치던 선화네 집에서는 금시 벼락이라도 내린듯 했다.
《에그, 벌써 신랑이 들이닥치다니. 래일 상받기루 되여있는데 벌써 오면 어쩌누, 아직 준비가 다 안되였는데…》
두손에 떡가루를 묻힌 어머니가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대문밖을 내다본다. 아닌게아니라 저 멀리 동구길로 사모관대를 한 신랑쟁이가 말을 타고 견마를 잡힌채 꺼떡거리며 들어오는데 그앞에는 기러기를 든 사람이 서고 뒤에서는 온통 꽃으로 꾸민 가마 한채가 따라온다. 또 그뒤로는 부담마들이 따라섰는데 그 행렬이 자못 요란하다.
《이거 야단났구만. 이보라구요, 빨리들 서둘러야겠수다. 얘 선화야, 너 빨리 신방에 들어가 신부를 준비시켜라. 칠보단장 곱게 시키고… 응? 야 빨리, 너 뭘 멍청히 보구있니, 빨리 하라는데…》
《예예, 알겠어요.》
마당 한구석에서 지짐을 부치느라 숯불연기에 눈물코물 찔금찔금 흘리던 선화는 웃방으로 달려들어갔다.
방안에서는 큰 상을 차리느라 분주한데 아버지가 장끼와 까투리를 바로 세워놓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있다.
《아버지, 신부가 어디에 갔어요? 엄마가 빨리 신부를 준비시키래요.》
《신부?》
아버지가 이상한듯 눈을 껌벅거린다.
《신부야 네가 아니냐?》
《예?》
선화는 깜짝 놀랐다. 내가 신부라니 그럼 지금껏 나의 잔치준비를 했단 말인가. 선화는 깔깔깔 웃었다.
《아버지도 참, 무슨 말씀을 그렇게…》
《왜 믿어지지 않느냐? 자, 그럼 어서 봐라.》
아버지는 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선화는 얼결에 밖을 내다보았다. 저 대문밖으로 나무기러기를 안고오는 사람이 얼핏 보이고 그뒤로 말을 탄 사람이 꺼떡꺼떡 오는데… 아- 사모관대를 한 그 사람은 분명 지철민이였다. 둥그스름한 얼굴, 눈, 코, 입이 모두 큼직큼직한 그 얼굴에 온통 웃음이 피여 벙글거린다.
선화는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사실이구나, 정말 그이가 오시는구나.)
선화는 언제 신부옷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마당에 쭉 펴놓은 돗자리우에 나가섰는지 알지 못했다. 지철민이가 말에서 내려 마주섰다.
《신랑, 신부 교배잔을 드리시오.》
그 목소리가 별로 귀에 익다.
수집은 속에서도 얼핏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기러기를 안고온 사람인데 그는 뜻밖에도 자기의 가슴에 그처럼 아픈 못을 박은 그 《혁명가》였다.
《신랑, 신부 합배하시오.》
사자머리 《혁명가》는 너털웃음을 쳤다. 그가 손을 들어 신호를 하자 부담마를 타고왔던 사나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지철민을 꺼꾸로 매달았다. 그리고는 몽둥이로 지철민의 발바닥을 마구 때려댄다.
《안돼, 계급적원쑤를 어디로 데려가겠다는거야. 원쑤와 동침하겠단 말이야? 안돼, 혁명의 순결성을 우린 무조건 고수해야겠단 말이야. 그래 다시 한번 말해봐, 혁명인가 처녀인가.》
선화는 너무도 급해서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저이를 좀 살려주세요, 예? 저이를 살려주세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만 내쉴뿐이다.
선화는 안타까왔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애원했지만 모두들 슬며시 고개들을 돌린다.
그 《혁명가》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다.
《그래 어떻게 하겠어. 원쑤를 계속 사랑하겠어? 죽여버리고말테다.》
매질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커진다.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가슴을 갈가리 찢는듯 하다. 금시 죽을것만 같다.
선화는 두손으로 귀를 꼭 막았다.
《그만두세요. 제가 물러서겠어요.》
《히히히, 벌써 그랬어야지.…》
《혁명가》가 낄낄낄 웃는다.
《내리웟!》
매질을 하던자들이 바줄을 풀자 지철민이 땅바닥에 툴렁 떨어져내린다. 숨이 진듯 온통 피투성이가 된 지철민은 쓰러진채 꼼짝도 하지 못한다.
《철민씨!》
선화가 목메여 부르며 달려가려 하자 그 《혁명가》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안돼, 넌 저사람한테 갈 권리가 없어.》
《혁명가》는 데리고왔던자들을 데리고 대문밖으로 나간다.
《철민씨!》
선화는 목터지게 불렀지만 철민은 그들에게 끌려가며 묵묵히 돌아보기만 할뿐 아무런 대꾸도 없다.
《철민씨! 철민씨!》
이제 헤여지면 영리별로 될것 같아 선화는 허둥지둥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좀처럼 발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혁명가》가 꽥 소리친다.
《따라오지 말어, 제 입으로 물러서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선화는 몸부림을 쳤다.
《아니예요. 그건 진심이 아니예요. 그건 철민씨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거예요.》
말이 나가지 않았다. 누가 입을 꽉 틀어막은것이다.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아- 아-》
모지름을 쓰다가 갑자기 숨이 후 나갔다. 눈을 번쩍 떴다. 방안이 캄캄했다. 그러고보니 잠간 잠이 든 사이에 꿈을 꾼것이다.
선화는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철민씨는 지금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선화는 자기가 지금껏 속으로는 지철민이를 잊지 않고있었다는것을 절감했다.
그랬다. 사랑이란 심장이 하는 일이였다. 론리적으로는 아무리 그를 잊어버리려고, 그를 잊자고 애써왔지만 심장속에는 그가 꽉 차있었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어쩔수 없는 심장의 권리인것이다. 그래 나는 그를 사랑할테다. 죽을 때까지… 물론 그것이 이룰수 없고 이루어서도 안되는 사랑이지만…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그에게 지장이 되지 않게 나혼자 그이를 사랑하는거야 누가 어쩌겠는가.
아마 그이도 속으로는 나를 잊지 않을것이다.
문득 옛날 그 어느 녀류시인이 썼다는 시가 생각났다. 누구던가, 그래 그게 황진의 시였지.
그리워도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소이다
제가 님을 찾아갈 때 님도 저를 찾으소서
밤마다 오고가는 머나먼 꿈길
한시에 꿈을 꾸어 도중에서 만나사이다
문득 밖에서 무엇인가 굴러가는듯 한 소리가 났다. 무엇을 쏟는듯 한 소리였다.
《?》
선화는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비다듬어 넘기고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영순이가 목판우에 돌을 담아이고 돌다리를 건느는 련습을 하고있었다.
영순이가 무엇때문에 국수집에 들어왔는지 전혀 모르고있는 선화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벌써 며칠째 저렇게 훈련하는것을 보게 되는 선화였다.
낮에는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도 밤에는 국수배달련습을 하는 저 처녀… 저 처녀의 소원은 무엇일가. 먹고 사는것? 돈을 버는것?
가련하기 그지없는 처녀…
선화는 갑자기 련민의 정이 북받쳐올랐다. 선화는 목판을 내려놓고 통나무우에 앉아 잠시 땀을 들이는 영순에게 다가갔다.
《언니(선화는 영순이가 자기보다 나이가 한살 많다는것을 알고 언제부터인가 언니라고 부르군 했었다.), 국수배달이 뭘 그리 좋은 자리라구 그렇게 극성을 부려요? 그러다 밑천 놓겠어요.》
영순은 정선화를 보며 방긋이 웃었다. 조금 비껴앉아 자기옆의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여기 좀 앉아요. 나도 선화를 만나고싶었댔는데…》
선화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푸름한 상현달이 주위에 은은한 빛을 뿌려주고있었다.
영순은 살며시 선화의 손을 잡았다.
《선화는 요즘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있어요? 늘 수심에 차있는것 같은게… 막 보기가 애처롭군요.》
정선화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불쌍한 처녀》, 《가난하기 그지없는 처녀》가 오히려 나를 보고 애처롭다 하다니, 수심에 잠겨있다고 하는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럼 이 녀자는 나를 늘 주시하여왔단 말인가?
계순은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부녀회원들을 통해서 정선화의 사람됨을 알게 된 후부터 호젓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오던 그였다. 자기가 국수집안에서만 맴도는 조건에서 하루라도 빨리 선화를 조직에 받아들여 밖과 련계를 가져야 했다.
선화는 잘만 이끌어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처녀였다.
《달리 생각할건 없어요. 내가 방아간이랑 국수배달이랑 다니다나니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자연히 듣게 되더군요.》
선화는 얼굴을 붉혔다.
《난 선화가 얼굴처럼 마음이 곱고 착하다는것을 잘 알아요. 그래서 선화를 나처럼 믿게 됐어요. 어때요, 선화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진짜 친언니처럼 믿어주겠어요?》
진정이 담긴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듯 했다. 그가 속삭이는 소리에 선화는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누구와도 이런 진정이 담긴 소리로 이야기를 나눈적이 없었다.
나에게 진정 친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가슴아픈 사연을 다 터놓고 언니의 품에 안겨 목놓아 울수만 있다면…
《난 선화가 그 누구의 강요로 사랑하는 총각과 갈라졌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어요. 왜 그렇게 선뜻 갈라질 생각을 했는지 억이 막혔어요. 갈라질바에야 사랑은 왜 했어요. 끝까지 한길을 가자고 사랑을 하는게 아니겠어요.》
선화는 정녕 놀랐다. 이 방영순이가 보통녀자가 아니라는것을 느낀것이다. 자기의 일을 낱낱이 알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선화는 새삼스레 영순을 쳐다보았다. 영순의 별같은 두눈이 달빛아래에서 그윽히 빛나고있다.
선화는 갑자기 자기 설음을 그에게 다 쏟아놓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선화는 고개를 돌리며 목갈린 소리로 퉁명스레 말했다. 자기로서도 왜 그렇게 말이 나갔는지 몰랐다.
《우리는 한길을 걸을수 없는 사람들이였어요.》
《사랑하면야 왜 한길을 걷지 못해요.》
《우린 처지가 달라요.》
《그 처지가 무슨 상관이예요. 목적이 같으면 되는게지.》
선화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 《간부혁명가》의 말이 채찍처럼 가슴을 때리는것 같다.
《그래 계급적원쑤와 동침을 하겠다는건가, 립장을 똑똑히 하시오. 처녀인가 혁명인가…》
《목표가 같을수야 없지요. 나야 〈착취계급〉이구 〈혁명의 타도〉대상인걸요.》
《그럼 선화는 왜놈들이 좋아요? 그놈들과 한편이예요?》
《예?》
선화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처음엔 얼떨떨해지기까지 했다.
《그게… 그게… 날 보고 하는 말이예요?》
《그것 보라요. 그럼 아버지도 왜놈들을 좋아해요?》
《언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예요, 사람을 어떻게 보구…》
영순은 벌떡 일어서려는 선화의 손을 꼭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그 혁명의 목적이 바로 왜놈들을 몰아내구 나라를 되찾는거라고 하더군요. 조선사람이라면 다 그걸 바랄거예요. 그런데도 목적이 다르다고요?》
선화는 뻥해서 영순을 쳐다보았다.
《선화의 아버진 기껏해서 자그마한 정미소나 가지구있구 이모 역시 요런 작은 국수집이나 운영하구있어요. 그게 무슨 타도계급이 되겠어요. 왜놈들에게 갖은 멸시와 모욕을 다 받는 같은 민족인데… 그 사람이 말하는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친일매국노가 아닌 사람은 그가 누구이건 다 항일전에 떨쳐나서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대요. 선화를 〈타도대상〉이라고 한 그 〈간부〉의 말은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말일거예요. 사람들이 말하는데 사실 그 〈간부〉들속에두 지주의 아들이 있대요.》
《예?》
선화는 그만 한길이나 뛰여오를번 했다.
《언닌… 언닌 도대체 누구예요?》
영순은 선화의 손을 잡아쥔 손에 더 힘을 주며 즐거운듯 속삭였다.
《나야 선화가 언니라고 부르는 영순이지요. 내 말을 못 믿겠어요? 나를 친언니처럼 믿겠다구 하구선.…》
《그럼… 그럼 언닌?…》
《난 그저 선화가 지철민씨와 한길을 걷길 바랄뿐이예요. 서로 믿구 의지하구 사랑하면서… 영원히 말이예요.》
《정말 그렇게 될수 있을가요?》
선화는 영순의 손을 덧잡아쥐며 성급히 물었다. 심장이 후둑후둑 높뛰기 시작했다. 눈앞에 금시 보라빛노을이 펼쳐지는듯 했다. 사랑을 되찾을수만 있다면… 그를 떳떳이 사랑할수만 있다면…
《그건 선화의 결심에 달린거예요.》
《언니!》
선화는 와락 영순의 품에 안겼다.
영순은 선화의 머리며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선화, 난 사실 선화가 마음고생을 한다는걸 알면서두… 지금껏 미루었댔어요. 용서해요. 믿음이란 그렇게 쉽게 생기는것두 아닌가봐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구 또 많은 나날을 지내보구서야 선화를 동생처럼 믿구 뜻을 같이할 결심을 한거예요.》
계순은 선화를 꼭 껴안았다.
《선화, 지금 어랑촌유격근거지에서는 왜놈〈토벌대〉들과 결사전을 하고있어요. 거기서는 어른아이할것없이 녀자건 남자건 다 떨쳐나서 왜놈들과 싸우고있어요.
우리도 여기서 싸워야 해요. 그들을 도와야 해요. 할일이 많아요. 난 선화도 꼭 훌륭한 혁명가가 되리라고 믿어요.》
선화는 울었다. 며칠후에는 부녀회원이 되였다. 통신련락도, 삐라를 나르는 일도 서슴없이 맡아나섰다. 그것이 바로 철민씨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두렵지 않았다. 내 사랑을 되찾을수만 있다면 목숨을 바친대도 아깝지 않을것이다.
이해 여름따라 룡정의 하늘가에는 칠색무지개가 자주 비끼군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