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3 장

2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김일환은 또 한대 담배를 말아물었다. 그리 즐기지도 않는 담배이지만 벌써 다섯대째이다. 혀가 깔깔해지고 입술이 터갈라졌지만 또 성냥을 그어댔다. 담배끝에서 불이 펄펄 일도록 두어모금 빨아서는 후- 하고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비자루처럼 내불었다. 초저녁부터 앵앵거리던 모기들은 좁은 방안에 가득찬 뽀얀 담배연기에 질식되였는지 아니면 열어놓은 뙤창으로 도망을 쳤는지 소리가 없다.

김일환은 눈이 너무 쓰려와 담배불을 나무로 만든 재털이에 비벼끄고말았다.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뒤짐을 지고 좁은 방안을 오락가락 거닐기 시작했다.

아까 초저녁때 현위통신련락원인 리동걸이 달려와 비분에 차서 보고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고막을 징징 울리는것만 같다.

《서기동지, 박파동지가… 희생되였습니다.…》

박파는 룡정구위서기 겸 조직부장으로 룡정에 파견되였었다. 리동걸의 말에 의하면 박파는 룡정에 자리잡기도 전에 한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였다. 개구에서 지하통신원을 하던자가 변절한것이다.

놈들은 박파에게서 비밀을 뽑아내보려고 별의별 고문을 다 들이대다가 너무도 악에 받쳐 군도로 목을 쳐죽였다.

리동걸의 말은 마디마디 뼈짬에 대못질을 하는듯 아팠다.

이제 한창 망울을 터치려던 청춘들이 원쑤들의 그 모진 칼바람에 피여나보지도 못하고 쓰러지는것이 통분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몇번째 아까운 사람을 잃었는가, 채수항, 전혁, 최상동, 김세, 박파… 그처럼 가까왔던 동지들이 속속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가고있다. 김일환은 너무도 괴로와 주먹을 꽉 쥐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귀중한 동지들이 벙글벙글 웃으며 한사람씩 눈앞으로 다가선다.

맨앞에서 다가서는 사람은 얼굴이 걀쑴하고 하관이 빠른 날파람있게 생긴 채수항이다.

채수항은 룡정 동흥중학교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며 운동장이 좁다하게 뛰여다니던 둘도 없는 딱친구였다. 이 화룡땅에 김일성동지에 대한 소식을 처음으로 날라온 사람도 채수항이였다.

그와 함께 공청도 꾸리고 농민협회, 반제청년동맹,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느라 밤잠도 잊고 뛰여다니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일환이, 우린 동흥중학교때 늘 발이 맞는 공격수들이였지. 우리 언제나 그렇게 살자구, 공격수로 말이네.》

명월구회의에 갔다오면서 채수항이가 한 말이였다. 그것이 일환이에게 남긴 마지막말이기도 하였다.

초대 화룡현위서기였던 채수항은 바로 그해인 1931년 겨울 평두산에서 적들에게 체포되여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25살 꽃나이였다.

전혁이도 화룡현위건립에 참가했던 잊지 못할 동지인데 작년 1월 룡정 일본총령사관 류치장에서 21살 꽃같은 나이에 희생되였다.

화룡현위 4임 서기였던 최상동은 금년 2월(음력 1월 18일)에 전사했고 박파는 바로 며칠전에 희생되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재간도룡정총령사 대리 다끼야마가 룡정, 화룡일대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자료를 길림의 만주특파대사 (1932년 3월 1일 일제는 청나라 마지막황제 아이신죠로 부의를 협박하여 룡정에서 만주국건립선언서를 발표하게 함으로써 만주국설립을 합법화함) 무또에게 보냈다고도 한다.

이 괴뢰정권이 둥지를 튼 룡정에는 폭압기구가 그물망처럼 덮여있고 일본경찰들, 일본헌병들, 위만경찰, 특무, 주구, 변절자들이 어디나 득실거리고있다. 룡정, 화룡일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자료가 총령사대리나 만주특파대사급에서 왔다갔다하는 정도라면 벌써 룡정에는 곳곳에 덫과 함정을 만들어놓았을것이다. 박파의 희생이 그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룡정구위지하당조직성원들 거의 모두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여 총살당한것이 4월이다. 왜놈들의 악랄한 검거선풍으로 다 파괴되다싶이한 지하조직을 복구하기 위해 박파를 파견한것이 5월인데 그도 발도 붙이기 전에 잡혀 희생되였다.

룡정지하조직이 파괴되기 전에는 적들의 움직임을 제때에 알려주어 이 어랑촌유격근거지를 지키기도 한결 유리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곳이 함정이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또 사람을 들여보내야 하는가. 또 잡히겠는데…

일환은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게는 못해. 안돼, 무슨 방책을 찾아야 해. 그렇다면?…

일환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입술이 가랑잎처럼 바삭바삭 말라든다. 일환은 마른침을 애써 넘겼다. 불을 삼키는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무슨 방책이 없겠는가.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이 유격근거지를 지키고 혁명을 지키자면…

일환은 또다시 방안을 거닐었다.

아래방에서 어머니 오옥경과 안해 리계순이 숨소리마저 죽인채 노전우를 걷는 그 발자국소리를 새겨들으며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고있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

 

가는 고리버들가지로 엮은 반짇고리를 앞에 놓고앉아 시어머니의 버선을 짓고있는 계순에겐 지금 그 발자국소리가 마치도 돌멩이로 가슴을 탕탕 때리는것처럼 아프게 들려오고있었다. 현위통신원인 리동걸이 찾아와 남편에게 하는 말을 들은 계순은 그 발자국소리에 어떤 심뇌와 고충과 아픔이 깃들어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귀중한 동지들의 희생으로 오는 통분함, 원쑤 왜놈들에 대한 분노, 그 위험한 곳으로 누구든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안타까움…

계순은 벌써 몇번째 왼손가락이 바늘에 찔렸지만 정신은 온통 남편에게 가있었다. 남편과 함께 앞을 가로막은 죽음의 가시밭을 헤쳐나갈 길을 찾고있었다.

어쨌든 룡정에는 하루빨리 사람이 가야 한다. 파괴된 지하조직망을 수습복구하고 인민들을 반일조직에 묶어세울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그것은 유격구의 존망과 관련된 사활적인 문제이다.

지금 일제는 《만주의 치안은 간도부터》라고 하면서 만주국의 지배와 유지에 《암》으로 되는 간도지구의 유격대와 유격구들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고있다. 도꾜의 내각회의에 이 문제가 중요의제로 상정되고 내각에서 파견한 고위관리들이 간도땅에 기여들어 《유격구토벌최종계획》까지 검토하였다고 한다.

일본군부는 항일유격대와의 싸움에서 만신창이 된 간도림시파견대의 일부를 조선으로 소환해가고 그대신 히도미부대를 비롯한 관동군의 악명높은 정예부대들을 동만각지에 투입하였으며 조선강점군의 기본력량도 유격구 《토벌》작전에 즉시적으로 출동할수 있게 우리 나라 북부국경지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해놓고있다.

그런 조건에서 한시바삐 사람을 파견하여 반일대중을 조직에 결속하고 놈들의 움직임을 제때에 놓침이 없이 장악해야 한다. 왜놈들이 유격근거지 《토벌》을 나가든가 어디 지하조직을 들춰내려 한다든가 하는것을 낱낱이 탐지하여 근거지나 해당 조직에 통보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유격대가 먼저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고있다가 적들을 단숨에 때려잡을수 있다. 로출된 지하조직성원들도 제때에 피신시킬수 있다.

이 일을 누가 맡아할수 있는가. 물론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껏 파견되는 사람마다 체포되여 희생되고있는 사실은 룡정에 무서운 함정이 있으며 따라서 이제 파견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잡히지 않으리라는 담보가 전혀 없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

놈들이 현지의 고등경찰관들에게까지 즉석에서 상대를 처형할수 있는 《림진격살》의 권리를 준 조건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잘못될지 전혀 예측할수가 없다.

남편은 지금 그때문에 저리도 속을 태우며 잠들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이를 도와줄수 있을가. 차라리 내가 가면 어떨가.

계순은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갑자기 숨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면… 그까짓 죽는것은 무섭지 않다. 다만 그 어렵고 힘든 임무를 꽤 수행해내겠는가 하는것이 우려될뿐이다.

아니, 그래도 내가 가야 한다. 이 현당서기의 안해가 제일 위험하고 힘든 임무를 맡지 않으면 누가 맡겠는가, 주저할것도 없었다.

계순은 더운 침을 꼴깍 삼켰다. 슬며시 시어머니쪽을 쳐다보았다. 시어머니는 아래목에 누워있는데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계순은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바느질하던것을 반짇고리에 놓고 살며시 일어섰다. 가만히 사이문을 열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결심이 서니 마음은 편해졌다.

《어찌된 일이요?》

뙤창가에 서있던 남편이 의아해서 돌아본다.

《왜 아직 자지 않고있었소?》

계순은 대답대신 생각깊은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다가 속삭이듯 물었다.

《당신은… 룡정에 보낼 사람때문에 그러지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오?》

《아까 동걸동지가 와서 보고하는걸 들었어요. 룡정형편이 어떻다는걸… 저를 보내주세요.》

남편의 눈이 금시에 커졌다.

《뭐요? 당신이 룡정엘 가겠단 말이요?》

계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남편은 어이가 없는듯 계순을 쳐다보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건 안되오, 절대로…》

계순이 방긋 웃었다.

《당신은… 저를 믿지 못해 그러시지요?》

남편은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듯 또다시 도리머리를 했다.

《이건 믿고 못 믿고 하는 문제가 아니요. 거기가 어디라구 당신이…》

리계순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위험하기때문에 제가 가야 하는거예요. 당신이 제일 마음쓰는 곳엔 바로 제가 있어야 해요. 이렇게 하자고 우리가 가정을 이룬게 아니겠어요. 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보내주세요. 저를 빼놓고 다른 사람을 보낸다면… 제 마음이 편할것 같애요?》

《이건 그런걸 론할 문제가 아니요. 거기에 갈 사람은 따로 있소. 당신은 어서 내려가 자기나 하오.》

《당신 마음은 제가 알아요. 당신은 자기가 갈 생각을 하는것 같은데… 당신은 현당서기가 아니예요. 더 중한 임무가 있는데… 당신일이야 누구도 대신할수가 없잖아요. 저를 보내주세요.》

바로 이때 사이문이 또다시 벌컥 열렸다.

시어머니가 큰일이라도 난듯 뛰여들어와 계순을 붙안았다.

《안된다, 새아가야. 너만은 절대로 안된다.》

리계순은 오옥경의 손을 꼭 잡아쥐며 흔연한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 룡정두 녀자들은 일없어요. 저두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제가 아무렴 제 죽을 곳으로 찾아들어가겠어요?》

오옥경은 세차게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두 안된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면 들어갔지 너만은 정말 못 보내겠다.》

《어머니!》

계순은 안타까이 오옥경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를 믿으세요.》

오옥경은 억이 막힌듯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아, 임자가 말을 좀 해주라구. 안된다구, 응?》

김일환은 안해를 생각깊은 눈길로 이윽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의 결심이 옳은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보내야 할것 같습니다.》

《뭐라구?》

오옥경은 자기가 잘못 듣지나 않았나 하는듯 눈을 흡떴다. 멍하니 아들을 쳐다보다가 그 말이 사실이라는것을 깨닫자 얼굴색이 달라졌다.

《임자는 어쩌면 그렇게 매정한가, 응? 잔치를 한지 도제 며칠이 되였기에… 깨쏟아져야 할 신혼부부인데… 그런 사지판으로 제 색시를 보낸단 말인가, 응?》

오옥경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리계순은 감사의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고는 방바닥에 퍼더앉아 노여움을 쓰는 오옥경을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생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누가 그러던데 신혼부부도 좀 떨어져서 살다가 만나야 더 정이 든대요. 그래야 더 깨가 쏟아지고… 호호호, 어서 내려가시자요, 예?》

《안된다 안돼, 너는 어디도 못 간다. 내가 보내지 않을테다.》

오옥경이 목멘 소리로 웨치며 며느리의 손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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